WORLD REPORT | JAPAN Takamatsu Jiro Mysteries / Trajectory of Work

<Shadow> 캔버스에 아크릴 300×1245cm 1977 The National Museum of Art, Osaka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일본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다카마쓰 지로(高松次郎, 1936~1998)의 대규모 회고전이 일본에서는 이례적으로 두 군데의 국립미술관에서 열렸다. <다카마쓰 지로: 미스터리즈(Takamatsu Jiro: Mysteries)>(도쿄 국립근대미술관, 2014.12.2~3.1)과 <다카마쓰 지로: 제작의 궤적(Jiro Takamatsu: Trajectory of Work)전>(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4.7~7.5)이 바로 그것. 이 전시의 중심에는 그의 작품과 자료를 정리하고 소장한 치바 유미코의 에스테이트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성과 객관적인 시각의 작품세계를 전달한 이 두 전시를 통해 작가는 “스스로 사고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자세를 주문하고 있다.

다카마쓰 지로의 현재

마정연 미술사

도쿄 국립근대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Tokyo)과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Art, Osaka)이 연이어 다카마쓰 지로(高松次郎, 1936~1998) 회고전을 개최했다. 두 곳의 국립미술관에서 공동 기획과 순회 형식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기획과 내용으로 한 작가의 회고전을 거의 동시에 개최한 것은 일본 사상 초유의 일이다. 2015년, 다카마쓰 지로가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1960년대의 초기 작품부터 1990년대 말년의 작품까지 망라해 소개한 미술관 규모의 회고전은, 작가 생전에는 1996년 니가타시 미술관(Niigata City Art Museum)과 작가가 오랫동안 거주한 도쿄도 미타카시 아트갤러리(Mitaka City Gallery of Art)에서 개최된 <다카마쓰 지로의 현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국내에서만 수차례의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1999년 국립국제미술관의 그림자 회화와 드로잉전, 1970년대의 입체작품을 조명한 2000년 지바시 미술관(Chiba City Museum of Art)의 전시, 회화 작품을 재검증한 2003년 미타카시 아트갤러리의 전시 등등. 이들 전시가 다카마쓰의 특정 시리즈 작품에 주목한 데 반해 2004년 후츄시 미술관(Fuchu Art Museum)과 기타큐슈시 미술관(Kitakyushu Municipal Museum of Art)이 개최한 <다카마쓰 지로: 사고의 우주전>은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작품을 망라하는 성격의 전시였다.
규모에는 차이가 있지만, 2014년 12월 2일부터 2015년 3월 1일까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다카마쓰 지로: 미스터리즈(Takamatsu Jiro: Mysteries)>와 2015년 4월 7일 개막해 7월 5일까지 계속되는 오사카 국립국제 미술관의 <다카마쓰 지로: 제작의 궤적 (Jiro Takamatsu: Trajectory of Work)전>도 다카마쓰 지로의 일생에 걸친a 작업을 소개한 회고전이다. 명백하게 다른 관객층을 설정한 두 미술관의 전시가 공유하는 것은 크레딧이다. Yumiko Chiba Associates의 대표인 갤러리스트 치바 유미코가 운영하는 에스테이트(The Estate of Jiro Takamatsu)가 제공한 작품과 자료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은 에스테이트가 발행한《Jiro Takamatsu: All Drawings》(2009)에 게재된 약 4000점의 드로잉이다. ‘에스테이트’는 저작권을 비롯한 다카마쓰의 자료, 작품 일체의 관리를 담당하는 공적인 존재라는 의미이다. 치바는 해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가 재단, 즉 ‘파운데이션’이 아니라 ‘에스테이트’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유로, 작가 개인을 연구하는 단체에 대한 공적 지원 시스템의 부재와 소규모 자금만으로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조직을 운영해 온 점을 들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자료의 정리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아카이브’로서 일반 공개를 할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아카이브’라는 개념이 미국이나 유럽만큼 확립돼 있지 않은 일본에서는 자료 제공 서비스가 국공립 기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90년 다카마쓰와 처음 만나 함께 아틀리에의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한 치바가, 작가 사후에 그 어떤 공적 자본의 지원 없이 기울여온 25년간의 노력이 두 개의 전시로 열매를 맺은 셈이다.
1952년 일본 최초의 국립미술관으로 설립된 이래 줄곧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은 일본 근현대미술의 중심에 있었다. 개인전은 이번이 최초이지만, 이 미술관은 1960년대부터 다카마쓰의 작품을 소장하고, 각종 전시들을 통해 그의 작품을 소개해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긴 역사를 가지는 국립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이 전시가 다카마쓰 지로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 혹은 그의 이름만 아는 국내외의 일반 관객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아이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다카마쓰가 병석에서 남긴 드로잉을 표지로 삼은 단행본 크기의 카탈로그와 전시장 곳곳에 게재한 작품 해설이 일반적인 미술관 해설의 화법이 아니라 친근한 대화체라는 점, 모든 문자 정보가 일본어와 영어 2개 국어로 표기되었다는 점, 그리고 잘 알려진 그림자 시리즈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끔 전시장 입구의 긴 통로에 설치된 그림자 실험실 등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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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rget Never Comes into View> 1964~1970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전시광경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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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전시 광경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모티프가 된 점과 소립자
이 전시가 주목을 받은 또 한 가지 이유는 큐레이션 체제에 있다. 마스다 도모히로, 구라야 미카, 호사카 겐지로가 다카마쓰의 작업을 각자의 관심에 따라, 각각 <‘점’ 하나의 미궁사건: 1960~1963>, <표적은 결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964~1970>, <그것은 ‘회화’가 아니었다:
1970~1998>이란 제목의 파트로 나누어 담당하고, 오타니 쇼고가 전시 전반의 기획 운영을 맡았다. 이 전시가 설정한 대다수의 관객뿐만 아니라, 큐레이터들 또한 동시대 작가로서 다카마쓰의 작품을 접하기보다는 미술사를 통해 알게 된 세대이다. 그들은 그들 세대가 배운 미술사 속의 다카마쓰에 대한 평가, 즉 하이레드센터나 모노하와 관계있는 1960, 70년대의 작업은 높이 평가받지만 그 이후의 회화작업은 그렇지 않은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사각형의 전시공간 한가운데에 실제 사이즈의 아틀리에를 재현함으로써, 도넛 모양 구조의 동선을 이룬 본 전시는, 전시장 입구에서 전시장 출구의 작품들이 보이고, 전시장 출구에서 다시 전시장 입구로 돌아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초기 작품과 말년 병석에서 스케치북에 그린 작품 안에, 다카마쓰가 세계의 기본 단위로 생각한 점과 소립자의 모티프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 온 작품세계 안에 일관적으로 존재하는 요소와 작가의 평생의 관심을 증명해내기 위해서였다. 필자 역시 원형 구조의 전시장을 몇 차례 돌며 전시를 관람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념적이고 난해하다고 알려진 다카마쓰 지로를 통해 일반 관객에게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쉽게 제시하는 데 성공한 전시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한편,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은 다카마쓰 지로와 인연이 깊은 미술관이다. 다카마쓰의 전 시대에 걸쳐 주요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77년 개관 당시 제작을 의뢰한 거대한 그림자 작품은 이 미술관을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1980년 구타이(GUTAI)의 일원인 모토나가 사다마사와 더불어 2인의 개인전을 동시에 개최하는 형식으로 다카마쓰가 최초로 미술관 규모 개인전을 연 곳이자,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림자 시리즈에 초점을 맞춘 전시가 열린 곳이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미술관에서 현재 개최 중인 전시는 역대 최대 규모의 다카마쓰 지로 회고전이자 미술사의 현재 페이지로 남을 귀중한 연구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 5년 전부터 치바와 상의하며 연구를 진행해 온 나카니시 히로유키는 전관의 전시공간을 이용해 450점에 달하는 작품을 소개했다.
평면작업이 주류가 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감상하는 데 상상 이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다카마쓰의 주요 작품들 사이, 여지껏 공백이나 물음표로 존재했던 사고의 과정에 단서를 제공하는 드로잉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전시 작품 하나 하나가 선택되었기에, 관객의 한 걸음 한 걸음에도 적지 않은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해설이 일절 배제된 채 작품만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과 카탈로그에 실린 나카니시의 금욕적인 에세이 ‘다카마쓰 지로의 전체상: 드로잉과 표지, 삽화 작업과 더불어, 연대 순으로’ 또한 최소한의 문자를 통해 최대한의 객관성을 확보한 정보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전시 그 자체와 닮아있다. 이에 따르면 다카마쓰 지로의 작품세계는 조금의 흔들림 없이 논리적으로 발전해왔다. ‘1960~1963년: 점’, ‘1964~1966년: 그림자’, ‘1967~1968년: 원근법’, ‘1969~1971년: 단체(單體:oneness)’, ‘1972~1973년: 단체로부터 복합체(複合體: compound)로’, ‘1974~1977년: 복합체와 평면상의 공간’, ‘1977~1982년: 평면상의 공간’, ‘공간, 기둥과 공간’, ‘1983~1997년: 형(形)’으로. 이 전시가 연대기적으로 구성된 이유다.

<Form/Origin No.1385> 캔버스에 유채 218×82cm 1996 The National Museum of Art, Osaka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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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No.20> 보드에 래커 40.9×1.6cm 1961~62 Aomori Museum of Art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

일본 현대미술을 재검증하다
에스테이트를 중심으로 한 장시간에 걸친 아카이브 구축 작업, 작품과 자료 조사에 기반을 둔 전시회 기획, 작가 집필원고와 작가에 대한 비평의 출판을 통한 문자 정보의 자료화와 번역 작업은, 작가와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사를 재검증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 현대미술의 역사화 작업에 대한 국내 연구의 응답 의미도 갖는다. 치바는 그러한 점에서 다카마쓰 지로가 하나의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의 실험미술: 하이레드센터– 직접 행동의 기록》(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김미경 옮김, 열화당, 2001) 등을 통해 다카마쓰 지로의 이름을 접한 한국의 독자라면 두 전시 안에서 하이레드센터의 비중이 매우 작다는 사실에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2014년 지바시 미술관에서의 대규모 회고전을 이틀 앞두고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세상을 떠난 시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구라야와 나카니시가 공통적으로 제시한 이유의 한 가지는, 2013년 나고야시 미술관에서 자료를 중심으로 한 하이레드센터의 대규모 전시가 이미 개최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다카마쓰 지로라는 작가는 그 자체로서 제시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22일 TBS 방송의 프로그램 <뉴스의 시점>은 이번 두 전시에 대해 보도하며 과거에 방송된 1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1974년 5월 4일자)를 재방영했다. 영상 속에서 다카마쓰는 작품 제작 과정을 직접 보여주며 자신의 작품관과 세계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만,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표현하는 행위라는(…) 그런 ‘표현’과는 조금 다른 것을 하려 한 생각이 듭니다.”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다카마쓰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상식에 기반을 두고 인간 관계, 인간과 사물의 관계가 일원적으로 고정되어버린 데 대한 답답함이라고 할까, 그 일원적인 관계성에서 해방된, 더 넓고, 다각적이고, 깊이 있는 관계(…) 백지 상태로 돌아가, 무구의 지점에서 시작된 관계를 갖고 싶습니다.”
사후 17년을 맞이하는 작가 회고전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주는 의미는 다카마쓰 지로가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구라야는 수평일 때에는 앉기 위한 기능밖에 갖지 못하는 의자가, 벽돌 하나로 인해 기울어지면 인간과 관계없는 물체가 되어버리는 <복합체(의자와 벽돌)>(1972) 작품을 예로 들며, 대지진 이후의 사회 불안과 정치적인 보수화, 올림픽 개최에 대한 흥분과 기대 등, 1930년대의 정황과 매우 유사한 현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가 다카마쓰 지로라는 작가에게서 기존의 개념과 사고방식을 의심하고, 철저히 스스로의 사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태도를 배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4.Takamatsu Painting Chiba

치바 유미코와 작업하는 다카마쓰 지로 ©The Estate of Jiro Takamatsu, Courtesy of Yumiko Chiba Associ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