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FORUM 〈일월오봉도〉와 〈수렵도〉에 깃든 동양사상

강인수 콜로라도 덴버대 강사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필자가 조선시대 <일월오봉도>와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를 음양사상과 우주생성론에 기반한 정치사상으로 재해석한 원고를 《월간미술》로 보내왔다. 대학에서 Computer Lab을 운영하면서 비트(Bit)와 바이트(Byte)로 이루어진 컴퓨터의 디지털 로직과 주역의 괘획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온 필자는 “두 그림이 그려진 시대와 표현은 전혀 다르지만 사상과 철학, 그리고 예술적 기법을 공유하고 있다”며 “방대하고 심오한 사상이자 철학서이며 신학서이다. 곧 우리의 주역이다”라고 해석한다. 《역경》과 유가사상을 중심으로 해석한 두 그림의 연결고리를 살펴본다.

음양의 법칙과 대인의 정치
조선 왕조 500여 년간 제왕의 권위를 상징해온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와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狩獵圖)〉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본 구도와 드러내고자 한 사상과 철학, 그리고 예술적 기법이 동일한 그림이다. 이 두 그림은 직접적인 전승 관계에 있다. 〈일월오봉도〉를 보면 ‘하늘과 산과 물과 나무’를 기본 구도로 삼았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역시 상·중·하단에 배치된 작은 3개의 산 또는 구릉이 하늘과 산과 물을 상징했다고 가정해보면 오른쪽에 거대한 나무가 배치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 유사한 구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만물을 내신 하느님과 이 분을 빼닮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 관한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했듯 두 그림 역시 천지만물의 생성에 관한 동양의 전통적인 음양오행 우주생성론을 동일한 형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일월오봉도〉와 〈수렵도〉는 하늘(일월)과 산과 물과 나무라는 누구나 쉽게 알고, 경험할 수 있는 물상을 이용해 음양의 법칙을 담아낸 동양의 고전 《역경(易經)》과 이에 대한 유가의 해석을 단 한 장에 담아낸 그림이다. 한자로 쓰인 복잡하고 난해한 경전을 간결하고 쉬운 하나의 이미지로 드러낸 것이다. 차갑고 뜨거운 음양 2기(氣)가 오르내리며 내는 물질인 물과 불이라는 수화(水火)의 작용이 천지를 낳고, 이들이 서로 사귀며 천지만물을 내는 과정, 즉 《역경》의 8괘와 64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념과 추상으로 빠지기 쉬운 동양사상과 철학을 살아있는 실천적 지식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기능과 역할을 한다. 즉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한 국가나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필요한 식견과 통찰력을 기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과 소통하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길을 열어주는, 이판(理判)이라는 영적 세계로 인도하는 인문학적 지리정보시스템(GPS)이나 가상현실(VR) 세계인 셈이다. 〈일월오봉도〉와 〈수렵도〉는 천명을 받들어 새로운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와 동명성왕 주몽의 업적과 그 계승자들이 선왕의 정치를 본받아 선정을 베풀어 문물이 풍성한 태평성대를 이루어왔다는 자부심과 후대 임금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교훈을 함께 전한다. 천지를 받드는 성인, 즉 정자(程子)가 “그 덕은 성인이고, 세속적 지위는 왕”이라고 한 대인의 정치에 관한 그림이다.

물은 차갑게 내려오고, 불은 뜨겁게 타오른다
공자는 《역경》의 첫 번째 괘이자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乾卦)에 나오는 밭[田], 즉 세상에 드러난 현룡과 하늘을 나는 비룡이 상징하는 대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여,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호랑이를 좇는다. 그리하여 성인이 나옴에 만물이 우러러본다(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성백효 역주, 《주역전의 상》, p.170~171, 전통문화연구회 참조

먼저 〈일월오봉도〉를 보면 산봉우리가 해와 달보다 높이 솟아올라 거의 하늘 끝에 닿았다. 이 산 중턱에서 발원한 두 개의 거대한 폭포는 아래 계곡의 연못으로 쏟아져 내리고, 그 좌우 양쪽에 뿌리를 내린 두 그루의 붉은 소나무는 온 산을 뒤덮고 있다. 산이 해와 달보다 높이 솟았다면 이는 이 땅의 산이 아니라 저 하늘의 구름 산이고, 이 구름 산에서 발원한 폭포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이다. 산을 넘어 온 하늘을 뒤덮은 구름에 뿌리를 둔 붉은 소나무는 번개나 벼락과 같은 불로 봐야 한다. 주자는 “푸른 하늘이 곧 만물이 의지하는 리(理)인 태극”
이라고 했다. 여기서 푸른 하늘의 해와 달은 태극에서 비롯된 음양, 산은 차갑고 뜨거운 음양 2기를 상징하는 구름 산, 5개의 산봉우리는 음양 2기의 오행, 폭포와 소나무는 음양 2기가 오행을 하여 생성해내는 물질인 물과 불을 상징한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의 선비라면 누구나 한 번씩 읽던 《성리대전》에 나오는 “수지윤하 화지염상 (水之潤下 火之炎上)(물은 차갑게 적시며 내려오고, 불은 뜨겁게 타오르는)”의 음양 작용을 드러냈기 때문에 결국 태극 문양으로 그 뜻을 간략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림은 ‘텅 빈 태허의 우주 공간(Void)’에서 천명에 따라 예정된 어떤 변화가 일어나 차갑고 뜨거운 김이나 수증기와 같은 기운이 오르내리며 내는 대폭발 같은 음양수화(陰陽水火)의 작용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오행으로 천지가 이루어지고, 이들이 서로 사귀어 일월성신과 동식물과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내고, 모든 이 중 으뜸가는 분인 성인이 세상에 출현해 천하만국을 태평하게 한다는 공자의 우주론과 정치사상을 줄거리로 삼았다.

조선의 건국
공자는 고요한 이 땅 위에서 춘하추동 사시가 순환하는 천지의 교류를 두고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쫓는다”고 했다. 여기서 용은 좌청룡으로 양인 봄과 여름을, 호랑이는 우백호로 음인 가을과 겨울을 가리킨다. 뜨거운 양기가 자라면 연못이나 바다의 차가운 물은 증발하면서 높이 올라 푸른 구름 산을 이루었다가 차가운 음기가 자라면 먹구름이 되어 낮게 드리웠다가 천둥 번개가 칠 때 생명의 물을 이 땅에 차별 없이 뿌린다. 구름은 뜨거운 태양을 쫓고, 바람은 차가운 보름달을 쫓는다.
〈일월오봉도〉의 좌우에 배치한 해와 달은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이다. 10간과 12지지를 이용한 동양의 전통적인 방위표기법으로 보면 달은 동남, 해는 서북에 배치되었다. 즉 정면에서 보았을 때 그림의 왼쪽이 동방, 오른쪽이 북방이다. 그림에서 음양 2기의 5행을 상징한 5개의 산은 왼쪽부터 각각 목화토금수 5기(氣)와 동남중서북이 된다. 불을 상징하는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북산과 동산은 한겨울 동지가 지나 생겨난 양, 물을 상징하는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남산과 서산은 한여름 하지가 지나 생겨난 음이 자라는 ‘음양 2기의 소장(消長)과 수화의 생성(生成)에 관한 법칙’을 각각 드러낸다. 〈일월오봉도〉는 결실과 정의를 상징하는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로 하늘에서 음양 변혁의 천도(天道)가 이루어져 만물이 생성되었고, 성인의 덕을 지닌 태조 이성계가 세상에 으뜸으로 출현하여 천명에 따라 혁명을 일으킨 뒤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로 세웠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신유교라 불리는 성리학을 국교로 삼은 조선은 경전에 나오는 유가적 논리체계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직관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제왕의 권위를 드러냈다.

태조 이성계가 받은 천명
〈일월오봉도〉는 오랜 세월 동안 풍상을 겪어온 이끼 낀 소나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공자가 《논어》에서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고 한 바로 그 나무이자,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인 삼봉 정도전이 당시 동북면도지휘사로 있던 이성계 장군을 찾아가 그가 천명을 받은 재목임을 알고 군영 앞 노송에 남겼다는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득한 세월에 한 그루 소나무 / 푸른 산 몇 만 겹 속에 자랐구나 / 잘 있다가 다른 해에 만나볼 수 있을까 / 인간을 굽어보며 묵은 자취 남겼구나(蒼茫歲月一株松 生長靑山幾萬重 好在他年相見否 人間俯仰便陳)”
(출전: 한영우 《정도전 사상의 연구》 p.25, 서울대출판부)

음양수화와 주역 팔괘
음양수화의 작용을 드러낸 〈일월오봉도〉를 보면 푸른 하늘의 해와 달, 좌우로 배치된 폭포와 소나무가 ‘1-2-4-8’이라는 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공자가 〈계사전(繫辭傳)〉에서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8괘를 낳는다”고 한 말을 이미지로 나타낸 것이다. 8괘는 하늘과 땅, 산과 연못, 우레와 바람, 물과 불을 가리키는데, 그림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무성하게 자란 거대한 붉은 소나무는 불(火)이자 우레(雷), 바람(風)을 상징한다. 〈설괘전(說卦傳)〉을 보면 그림의 소나무처럼 “좀처럼 보기 드문 무성함(繁鮮)”을 이룬 것은 우레를 상징하는 8괘의 진(震)에 속한다. 그림은 〈설괘전〉에 나오는 “하늘과 땅이 자리를 잡고, 산과 연못이 기를 통하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가까이 일어나고, 물과 불(또는 번개와 벼락)이 서로 싸우지 않는다(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고 한 8괘에 관한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드러냈다.

주역 64괘와 조선의 제왕학
8괘를 상징하는 물상(物象)은 상하 좌우로 배치돼 기계적인 균형을 이룬다. 이는 하늘의 일월과 이를 품고 있는 좌우 동·남과 서·북의 산과 소나무와 폭포와 연못이 엄정한 대칭 관계를 보여준다. 8괘가 서로 섞여 만물을 내는 과정, 즉 64괘(8×8)를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푸른 하늘과 산(또는 땅)은 임금이 받들어야 할 천지 건곤(乾坤), 폭포와 소나무는 물과 우레로 혼란에 빠진 천하를 다시 안정시킬 수 있도록 돕는 제후 또는 신하를 임명하는 도에 관한 수뢰둔(水雷屯)을 의미한다. 폭포의 발원지인 산속의 샘물은 비록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강과 내를 이루어 바다로 나아갈 수 있게, 즉 형통하게 해주는 성인의 공덕에 관한 산수몽(山水蒙)을 뜻한다. 윗사람이 베푸는 은택과 왕업(王業)을 상징하기도 하는 폭포와 소나무는 창업과 천하가 다스려졌음을 의미하는 수화기제(水火旣濟), 소나무와 폭포는 세습 군주가 선왕의 정치를 본받아 태평성대를 이어나가는 수성(守成)에 관한 도를 담고 있는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된다. 〈일월오봉도〉를 관조하면 동양의 고전 중 가장 난해하다는 《역경》의 심오한 세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월오봉도〉를 보면 조선의 제왕, 즉 천지를 받들어 일월과 같이 행하는 대인이 반드시 갖추거나 행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림은 제왕을 위한 학문을 담고 있다.

선천복희팔괘도

〈주자의 선천복희팔괘도〉 (출전: 성백효 역, 《주역전의 상》, p.89, 전통문화연구회)

<일월오봉도>에 영향을 끼친 불가와 도가의 세계관
그림은 아래로 끝없이 베푸는 따스하고 뜨거운 자비와 높이 나는 새와 같은 절대적 경지와 자유를 사랑했던 불가와 도가가 서북으로 지는 태양과 같이 마지막 광채를 발산하고, 이 땅의 정의를 주장했던 유가가 차가운 보름달처럼 동남으로 떠오르던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
유·불·선 3도 중 해와 달이 산 중턱에서 돈다는 우주론은 불교에만 해당된다. 〈일월오봉도〉에서 거의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산은 수미산(須彌山), 이 사이에 걸려 있는 일월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동서남북을 지키고 있는 산 중턱, 그 아래 기슭에 펼쳐진 바다에서 일렁이는 엄청난 크기의 파도는 “큰 구름과 비가 수레바퀴만한 물방울을 풍륜 위에 뿌려 수륜과 금륜을 이룬다”고 한 경전의 내용과 관련 있다. 그리고 산속의 폭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수풍지화(水風地火)가 되어 극대와 극미의 세계를 보여준다(권오민 역주, 《아비달마구사론 2》, 동국역경원 참조). 또한 5개의 봉우리와 그 아래 바다와 산과 물과 좌우 두 그루의 나무는 중국 고전 〈산해경〉에 나오는 5산 4해의 천하관과 치산치수(治山治水)와 왕조의 흥망성쇠에 관한 중국 하나라 우왕의 가르침,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큰 숲을 이루었다’는 이수목(二樹木)에 관한 일화와 장자에 나오는 오래 사는 나무에 관한 내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자세한 내용은 《산해경》, 정재서 역주, 민음사 참조). 〈일월오봉도〉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대외적으로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지만 불가와 도가도 함께 품고 가겠다는 왕실 내부의 종교적 지향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잃어버린 우리의 기록 문화와 역사
조선시대 제왕의 권위를 상징한 〈일월오봉도〉와 비슷한 유형을 중국이나 일본에선 찾기 어렵다. 이러한 독창성 때문에 지금까지 이 그림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나 역사적, 미술적 가치를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일월오봉도〉의 독창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김홍남, 《중국 한국 미술사》, 학고재, 2009/ 이성미,《어진의궤와 미술사》, 소와당, 2012 참조). 그동안 민화나 왕실과 나라의 국태민안을 비는 부적 정도로 취급받았던 이 그림에 대한 연구가 최근 미술사 학계에서 이루어져 《시경》에 나오는 ‘천보(天保)’ 또는 ‘유교적 통치원리를 드러낸 그림으로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정령주의적 전통과 유가와 도가, 그리고 음양오행 사상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문헌에 바탕을 둔 정확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마땅히 그러할 것’이라는 추상적 개연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 그림을 알면 조선시대 왕조실록과 의궤의 관계처럼 문자로는 다 전할 수 없어 그림이라는 형식을 이용하여 기록해온 우리의 잃어버린 전통 문화와 역사를 찾을 수 있다.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쫓는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는 1938년 당시 일본 도쿄제국대학과 교토대학 교수이던 이케우치 히로시와 우메하라 스에지에 의해 발굴된 이래 지금까지 사슴과 호랑이를 잡는 ‘고구려의 강건한 무인정신’을 드러낸 사냥 그림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 역시 조선의 〈일월오봉도〉와 같이 공자가 주역 건괘에 나오는 대인을 상징하는 현룡과 비룡에 관해 설명하면서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쫓는다’고 한 말에 바탕을 둔 그림이다. 〈수렵도〉는 사냥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지만 〈일월오봉도〉와 같이 주변 대상과 비교할 때 전혀 비례가 맞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나무와 사슴이 뛰어넘는 작은 산, 2명의 사냥꾼과 3명의 몰이꾼, 사냥꾼이 쏘려고 하는 끝이 뭉뚝한 비살상용 화살, 소와 수레 등에 대해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 설명할 수 없었다.

수렵도일부1 사본

하늘과 산과 물과 나무와 주역 8괘
〈수렵도〉에서 상·중·하단에 각각 배치된 3개의 구릉 또는 산을 〈일월오봉도〉와 같이 하늘과 산(또는 땅)과 물, 그리고 그 오른쪽에 배치된 바람에 흔들리는 거대한 붉은 나무는 불을 상징한 것으로 보자. 물은 차갑게 적시며 내려오고, 불은 뜨겁게 타오르는 음양의 작용과 천지가 교류하며 내는 8괘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림 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 전통적인 방향표기법을 적용하면 서남과 동북에 배치된 2명의 사냥꾼이 타고 있는 말은 다른 3명의 몰이꾼이 탄 말보다 월등히 크다. 이는 천지를 상징하는 용마(龍馬)와 빈마(牝馬)다. 남북 상하로 배치되어야 할 천지가 좌우로 이동한 것은 천지가 서로 사귀어 만물을 내는 동적인 과정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오른쪽 위에 배치된 용마를 탄 사냥꾼 뒤에 위치한 구릉은 용을 쫓는 구름과 양기, 나무를 흔드는 실체와 도망치는 범은 호랑이를 쫓는 바람, 호랑이가 숨어드는 흰 산은 음기를 나타낸 것이 된다. 또한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는 듯한 암수 2마리 사슴은 인의(仁義)가 이루어진 세상인 태평성대의 조짐을 알린다는 전설의 동물 기린(麒麟), 그 아래 오른쪽 하단에 배치된 1마리 수사슴은 기(麒)로 차가운 정의를 추구하는 덕이 있는 군주의 어진 정치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은 ‘이 땅에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 하늘이 명령한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 말한 송대 주자의 정치사상을 연상케 한다. 용마와 빈마를 탄 사냥꾼은 천지를 받들어 행하는 대인으로,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 주몽과 그 계승자인 무용총의 주인을 뜻한다. 주변에 배치된 3명의 몰이꾼은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한 일등 공신인 오이, 마리와 협보가 된다.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
〈수렵도〉가 배치된 무용총 내부 천장을 보면 해와 달이 동서로 배치되었다. 이를 전통적인 방향표기법으로 보면 〈일월오봉도〉와 같이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는 때’를 드러낸 것이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해가 동방으로 떠오르는 아침에 북두칠성이나 남두육성과 같은 별을 볼 수 없다. 무용총 천장에 배치된 일월 역시 천도가 순환하여 천지간 만물이 이루어졌고, 성인의 공덕을 지닌 주몽이 세상에 나와 천명을 받들어 고구려를 건국하였으며, 그 계승자인 무덤 주인에 의해 선왕의 태평성대의 정치가 이어져 고구려의 종묘사직이 반석에 오르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주역 64괘로 기록한 무덤 주인의 공덕
〈수렵도〉 역시 3개의 산을 좌우 음양으로 나누고,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가 된 연리지를 배치하여 〈일월오봉도〉와 같이 주역 64괘가 구성될 수 있도록 구도를 잡았다. 산(또는 땅)과 물과 나무가 뿌리내린 오른쪽 하단, 즉 〈일월오봉도〉에서 지는 해가 배치된 서북을 보면 수뢰둔(水雷屯), 산수몽(山水蒙), 지수사(地水師), 수지비(水地比), 그리고 산지박(山地剝) 괘가 몰려 있다. 천지일월 건곤감리와 이 5개의 괘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면 “고조선이라는 큰 산이 무너져 내리고 민족이 갈라져 서로 싸울 때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과 같았던 불세출의 지도자인 주몽이 세상에 으뜸으로 출현하여 3명의 조력자와 함께 소인을 물리치고 대인을 가까이 하며 백성을 편안하게 길러 근본을 튼튼히 한 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군대를 양성하여 한나라를 물리치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대업을 이루었다”는 내용의 서사시가 된다. 〈수렵도〉는 무덤 주인이 망국의 위기에 처했던 고구려를 다시 살려낸 ‘재조(再造)’의 공덕을 이루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주몽의 고구려 건국에 버금가는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수렵도일부2 사본

 

소수림왕과 해동불법을 연 순도와 아도
무용총은 고구려의 왕립학술기관인 태학(太學)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율령을 반포해서 법치를 확립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를 받아들여 고구려 중흥의 토대를 마련한 소수림왕의 무덤으로 보인다. 〈수렵도〉에 나오는 소가 끄는 수레, 즉 우차(牛車)를 보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눌지마립간 22년(438)의 기록을 보면 “이때 백성들에게 우차(牛車)의 이용법을 가르쳤다(敎民牛車之法)”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고구려 장수왕 26년에 해당된다. 신라에서 소를 밭갈이에 이용한 우경은 우차가 나온 지 60여 년 뒤인 지증마립간 3년(502)부터 사용되었다. 우차가 고구려에 먼저 소개됐다고 하더라도 시간적 차이는 크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무용총의 축조 연대는 소수림왕
(371~384)과 장수왕(413~491)의 치세인 4세기 말~5세기 사이로 볼 수 있다. 소수림왕과 눌지왕의 치세 기간은 고구려와 신라에 불교가 처음 소개된 때다. 우차는 불교의 전래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소를 신성시하는 불가에서 소를 보호하기 위해 수레와 농경에 이용하도록 권장했던 듯하다. 일본인 이케우치 히로시는 〈발굴조사보고서〉
에서 북방 접객도의 검은 윗옷을 입은 손님을 도사나 승려로 보고 그림이 도가나 불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했지만 이들의 옷은 고구려의 전통복식이다. 오히려 붉은 옷을 입은 이가 승려 복장에 더 가깝다.
무용총 벽화에서 소가 끄는 수레와 승려가 등장한 것은 무덤의 주인이 불교를 공인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흰 소는 진리의 불성(佛性), 대승과 소승불교, 수레 안에 실린 짐은 경전, 소와 수레를 이끄는 붉은 옷 입은 이는 승려, 승려가 치켜든 막대기는 중생을 올바로 인도하는 회초리로 교화를 상징한 듯하다. 소수림왕은 유가와 불가를 모두 받아들여 정의롭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던 것으로 보인다. 소수림왕이 즉위했을 때 고구려는 건국 이래 최대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부친인 고국원왕때 연나라가 침입했다. 연나라는 남녀 5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가고, 수도인 환도성을 헐고 왕궁을 불태운 뒤 그 후환을 없애기 위해 고국원왕의 생모인 미천왕비를 볼모로 삼았다. 또한 미천왕릉을 파서 그 시신을 실어가기까지 했다. 결국 고국원왕은 혼란기를 틈타 침입한 백제 개로왕의 평양성 공격을 막다 사망했다. 절치부심한 소수림왕은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하며 내치를 다지는 한편 불구대천의 원수인 연나라를 멸망시킨 전진의 왕 부견이 보낸 사신과 승려 순도와 아도를 맞아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세워 해동 불법의 단초를 열어 고구려 중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인에 의해 발굴된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는 한·중·일 인문학계의 편협한 시각과 오해와 무지를 잘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이 그림을 만주 벌판을 누비던 강건한 고구려 무인의 자주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일본은 기이한 사냥 그림으로, 중국은 중원의 지방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으로 해석한다. 그 어느 나라도 이 그림이 《역경》과 유가 문화의 뿌리가 되는 공자의 우주론이나 대인의 정치사상과 관련 있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자의 학문을 받아들인 고구려는 멸망한 뒤 계승자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중국에 속한 하나의 지방 정권에 불과한가? 무용총 벽화의 내용과 기법을 분석해보면 조선의 〈일월오봉도〉와 직접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두 그림은 유·불·선 3도 같은 이질적인 사상이나 종교 등을 개방적으로 수용해온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담고 있다. 회화라는 형식을 이용한 독특한 기록 문화와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을 간결하고 쉽게 표현해내는 직관적 사유체계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와 조선의 제왕을 상징한 그림이 《역경》과 이에 대한 공자와 유가의 해석을 담고 있다고 할지라도 중국 황제 뒤에 놓였던 병풍과 달리 한자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도통(道統)과 왕통(王統)(Governance)’을 바로 세우고, 지켜내기 위한 노력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의 인문학계는 공자의 우주론과 덕(德)이 있는 군주와 현명한 신하, 즉 대인이 서로 만나 태평성대를 이루어내어 천하 만민을 이롭게 한다는 이견대인(利見大人)의 정치사상과 우리 미술의 독창성은 알지 못한 채 모두 엉뚱한 말만 하고 있다. 무용총은 고대 동양 인문학의 정수이자 근현대 인문학의 왜소하고 초라한 무덤이다.
시와 역사와 사상과 철학, 그리고 신학을 담아낸 그림은 조선의 인문학적 전통을 상징한다. 그림은 주역이고, 주역은 그림이다. 시서화(詩書畵)는 곧 시서역(詩書易)을 말한다. 정자는 역을 공부하는 목적은 ‘말[辭]’을 아는 데 있다고 했다. 제왕의 권위를 상징한 〈일월오봉도〉와 〈수렵도〉는 우리말로 쓰인 장대한 서사시이자 역사서이고, 방대하고 심오한 사상이자 철학서이며 신학서이다. 곧 우리의 주역이다. 오랜 세월 가다듬어온 우리의 정언(正言)과 정음(正音)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동안 ‘왕실과 나라의 국태민안을 비는 ‘본[本]’을 보고 그린 그림으로 삼라만상을 드러내었다’는 식의 천부당만부당한 피상적 평가 속에서 보물이나 국보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겪어야만 했던 〈일월오봉도〉는 우리의 문학과 역사뿐만 아니라 유·불·선 3도를 단 한 장의 예술로 녹여낸 인류 인문학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적 시도와 열정을 담아낸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