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 박능생 

박능생 Park Neungsaeng⠀⠀⠀⠀⠀⠀⠀⠀⠀⠀

박능생에게 세필은 산수와 도시를 연구하는 일종의 도구로 이용된다. 그간 그가 그려나간 대상은 그의 발자국이 닿았음을 증명하면서 동시에 기억의 편린이 중첩된 집합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지만 작가의 내밀한 경험을 고백하는 노트와도 같다. 곧 열릴 개인전(12.7~28, 수애뇨339)을 준비하는 박능생의 예술 여정을 좇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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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공간을 통찰하다
글 : 임종은 |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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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생 작가는 전통회화 재료와 기법으로 도시와 산수를 연구하며, 흥미로운 작업을 해왔다. 단지 수묵과 모필로 관념적인 산수화를 구현하는 것이 아닌, 작가 자신의 눈으로 보고 직접 두 발로 걸어 다니고 마음으로 느낀,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구체적인 대상과 장소를 묘사하며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실천한다. 그가 다루는 풍경은 과거 산수자연과 같은 소재와 형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살고 있는 환경인 현대도시의 면면이 그가 그린 전통기법의 한 장면 속에 천연덕스럽게 등장하기도 하고 때때로 도시의 날것이 그의 화폭에 생생하게 노출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선지 우리는 이런 것들에 눈길을 주고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다. 그의 산수풍경에는 현대인의 삶이 반영된 도시의 요소가 녹아 있어 인간 문명과 욕망이 드러나기도 하고 활달한 생기를 주기도 한다. 단순히 이질적인 요소를 병치한 것뿐만 아니라 그는 도시 속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쓰레기 산(난지도 일대) 주변을 그리는 등 사고의 폭을 넓히면서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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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것처럼, 각박한 도시의 삶에 지쳤을 때 그리워하거나 때때로 등반을 하는 아름다운 산수 자연 역시 이미 인간 문명이 깊숙이 도달한 곳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거칠고 통제 불가능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자 조성한 현대 도시도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을 최대한 닮으려고 애쓰며, 자연이 부여한 조화와 생명력을 충분히 누리고자 한다. 우리는 박능생의 작업에서 이러한 산과 도시의 아이러니한 관계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의 작업에 전반적으로 표현돼 있다. 그리고 초반 작업보다는 근작에서 이 경향이 좀 더 농후하게 보인다. 이 관계는 사실 우리 세계의 단면이며, 이렇게 제작된 작품은 현실의 삶의 태도를 반영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기보다는 오히려 낯설고 오묘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의 작업에선 산수의 정신성이나, 반대로 난개발로 훼손된 자연의 현실을 신랄하게 재현하고 차갑게 비평하는 시선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그는 성실하고 섬세하게 진경산수를 그린 오래전 대가들처럼 직접 대상을 채집하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사실적이며 구체적인 사물과 풍경들을 그려낸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제14회 이동훈미술상 수상기념전 광경. 박능생 〈 거리 혹은 야경〉 화선지에 수묵 48×53cm(각, 총 20점, 사진 왼쪽 벽면설치 작업) 2017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제14회 이동훈미술상 수상기념전 광경. 박능생 〈 거리 혹은 야경〉 화선지에 수묵 48×53cm(각, 총 20점, 사진 왼쪽 벽면설치 작업)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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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그가 다룬 공간은 우리에게 평범하지 않은 산수화로 다가온다. 그것은 그는 대상의 철저한 사생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실제로 작업을 하면서 중첩된 기억을 재편집하고 화면 속에서 다시 구성하기 때문이다. 작업 과정을 예로 들어 살펴보면, 북한산은 작가가 매우 자주 사생하는 대상이다. 그에게 그 산은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할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가 작업실로 돌아와 북한산을 그릴 때는, 어느 날은 화폭에 비례나 맥락이 맞지 않는 사람 손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이전에 다른 곳에서 봤던 번지 점프 장면이 중첩된다. 화면 속에서 북한산은 그가 본 어떤 한순간의 장면이 아니라 그가 다른 시간에 여러 곳에서 경험한 사건과 대상들이 화면에서 겹쳐져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화면 속 풍경은 결국 초현실적으로 구성된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풍경 안에 또 다른 풍경, 공간 안에 또 다른 공간, 시간 위에 낯선 시간이 병치된 것들 속에 우리의 감각이 머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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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작가는 혼재된 기억을 뒤섞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그가 탐색한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리서치를 더한다. 예를 들면 난지 스튜디오에서 쓰레기로 만든 산을 그린 작업들이 있다. 그가 자연 상태에서 지금까지 익숙하게 보던 나무와 동물, 곤충과 난지도의 그것은 확연히 달랐다고 말한다. 자연의 완전한 상태가 아닌 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의 조사를 수행했다. 그리고 작가로서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한눈에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부분을 그려 전체 화면으로 풍경을 구성하려 했다. 그는 이 방식이 자신이 경험하고 조사한 난지의 본모습을 더 잘 보여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시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우는 방식으로 난지도의 인공산을 파노라마로 만들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이동시점 등으로 구성되었고, 산 전체를 장악하며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상상력을 자극하는 풍경을 연출했다. 그리고 수묵과 채색이 비처럼 흘러내리기도 하고, 질박한 질감과 담담한 색조가 적절하게 구사돼 어떤 정서적인 느낌을 환기시킨다

박능생 〈 붉은산(경복궁)〉 화선지에 홍묵 148×106cm(각, 2폭) 2016~2017

박능생 〈 붉은산(경복궁)〉 화선지에 홍묵 148×106cm(각, 2폭) 201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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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법은 그의 초반기 작업에도 드러나지만 전통 재료 외에 다양한 표현 방법을 탐색하는 정도였다면 근작에서는 더 상세하고 심화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토분, 오일스틱과 목탄 스케치로 질감과 형태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때때로 주묵을 사용하고 채색을 하지 않고 여백도 남겨 경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등 변주를 즐기는 장면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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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초기 도시 풍경의 장면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유려한 표현력을 보여주며 수묵의 유희를 펼친 작품들, 먹이 작가의 통제 속에 자유롭게 번지고, 깨지며, 흐르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며, 시선을 끄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 이후 다양한 재료 실험을 통해 회화적인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며, 나아가 나무에 음각을 한다든지, 설치 요소를 도입해 화선지를 전시장에 자유롭게 걸쳐놓는 작업들은 재료와 기법의 확장을 뚜렷하게 보여줬다. 이것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풍경의 생생한 느낌과 질감을 전하고자 하는 의미 있는 과정과 시도라 하겠다. 확장된 동양적인 매체와 표현을 통해 현대인이 느끼는 여러 가지 정서를 모색하고 가능성에 대해 재고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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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생은 그가 경험하고 느낀 자신의 공간, 산수와 도시를 통해 현대인의 감성을 드러내면서도 오랜 시간 미적인 대상이 된 산수화의 결을 따라 그려내려고 했다. 현대의 풍경과 정서를 전통적인 창작과 감상의 굴레 안에 한정 짓지 않고자 유연하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작가로서의 여정이 작업세계에 드러난다. 그가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처럼 앞으로 현대사회와 산수화의 철학적 이해를 동시에 깊이 견지한다면 그의 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의 장소들은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고 풍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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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회화를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가 익숙함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풍경을 상상하고 이를 가로질러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분명 기대되는 일이다. 작가 박능생은 작품으로 이미 우리에게 이러한 기대감을 환기시켰으며, 여전히 현재 자신을 감싸는 자연 요소들과 삶의 공간에 대한 통찰을 멈추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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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능 생

1973년 태어났다. 충남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 미술학과, 성신여대 미술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국내와 중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다수의 국내외 그룹전과 기획전에 참여했다. 이동훈미술상(2016),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2003), 금강미술대전 대상(1999) 등을 수상했다. 현재 국립창원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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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미술 > vol.406 | 2018.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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