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필름 몽타주

코리아나미술관 5.7~7.11

김지훈 중앙대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1990년대 이후 영화는 전자미디어의 부상과 더불어 영화적 이미지, 영화장치, 영화적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자신의 전통적인 경계와 구성성분을 잃고 인접 예술들 및 미디어 인터페이스들로 수렴하고 발산하는 포스트-시네마 조건 (post-cinematic condition) 속으로 진입했다. 이 조건 속에서 서로 다른 두 쇼트의 연결을 뜻하는 몽타주는 영화의 특정성을 지탱해온 기법이라는 본성을 유지하면서도 극장 중심의 표준적 영화로부터 이탈하여 현대예술로 이행한다. 이와 같은 몽타주의 확장을 근거로 기존 영상 및 역사적 자료들의 수집과 변형, 재조합을 통해 그것들에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영상 제작의 다양한 실천들을 아카이브 영상 제작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실험영화에서 습득영상 제작에 근거한 영화들을 가리키는 파운드 푸티지 영화(found footage film), 과거의 기록을 탐구하는 감독의 주관성이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의 혼합을 통해 표명되는 에세이 영화, 그리고 무빙 이미지 예술에서 과거의 영화를 포함한 역사적 자료들을 발견과 재구성의 대상으로 상정하는 아카이브 충동(archival impulse)에 근거한 작업들로 분류될 수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 2011년 개최한 <피처링 시네마(Featuring Cinema)전>은 브루스 코너, 피에르 위그, 크리스토퍼 지라르데와 마티아스 뮐러 등의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파운드 푸티지 영화의 역사,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비디오 설치작품들이 영화의 형식적, 주제적 모티프들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제시했다. 반면 이번 <필름 몽타주>에 소개된 작품들은 에세이 영화와 현대예술의 아카이브 충동이라는 전통들 속에서 이질적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역사와 기억의 새로쓰기를 시도한다.
하룬 파로키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Workers Leaving the Factory)>(1995)은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동명의 영화이자 영화사 최초의 영화를 시작으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산업영화와 선전영화들에서 공장과 노동을 재현한 장면들을 재배열한다. 이 방대한 영화적 파편들의 아카이빙을 통해 파로키는 영화와 공장, 노동 사이의 결연관계에 대한 역사를 재구성한다. 안무가 쇼반 데이비스(Siobahn Davies)와 영화감독 데이비드 힌튼(David Hinton)이 공동제작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 (All This Can Happen>(2012)은 몽타주의 다양한 기법들이 에세이 영화의 전형적인 텍스트와 연결될 때 생산되는 풍부한 이미지-사운드 결합들을 제시한다. 걷기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방랑과 노동 사이를 지속적으로 오가는 탈중심적인 내레이션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연속사진과 초기 극영화, 기록영화, 사진 등 방대한 시각적 자료들에 기입된 일상적 제스처들과 다층적으로 연결되면서 20세기 초에 대한 대안적 역사를 구축한다. 엘리자베스 프라이스(Elizabeth Price)의 <울워스콰이어(The WoolworthsChoir>(1979/2012)는 13세기 교회 성가대 좌석에 대한 기록사진과 1960년대 걸그룹의 제스처, 그리고 1979년 맨체스터에서 발생한 화재와 관련된 자료들이라는 3개의 상이한 과거를 비선형적으로 조합하여 새로운 지식들을 낳는다. 이 지식들은 교회 성가대와 현대의 팝문화가 공유하는 합창의 정서적 효과들, 합창단과 걸그룹, 화재 피해자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제스처들이다.
<필름 몽타주전>은 이러한 에세이 영화 및 영상설치 작품들을 노재운, 김아영, 박민하 등의 작업들과 병치시킴으로써 아카이브 영상 제작이 국내외에서 공히 영화와 현대예술 사이의 다층적인 중첩과 교환을 활성화해왔다는 점을 입증한다. 포스트-시네마 조건 속에서 아카이브 영화 제작은 셀룰로이드 영화가 추구해 온 몽타주의 유산들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현재와 미래로 어떻게 새롭게 재생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 노선은 우리의 과거를 항상 다시 기술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변증법적 시각에 호응한다. 몽타주는 바로 이러한 시각을 구체화하고, 영화적 과거의 파편들을 현재와 잠재적 미래를 향해 열어놓는 다양한 방법들이다.

위 안체 에만, 하룬 파로키 <노동을 비추는 싱글쇼트>(오른쪽) 8채널 영상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