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피플] 한국문화예술연구소장 김미경

아카이빙, 리얼리티에 다가가기 위한 밑거름

강남대 회화과 김미경 교수가 설립한 한국문화예술연구소(Korean Art Research Institute, 이하 KARI)가 4월 10일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새롭게 문을 연다. 김 소장이 2006년 강남역 인근 오피스텔을 빌려 연구소를 연 지 8년 만이다. 갤러리 공간까지 마련해 아카이브, 연구, 전시, 아카데미, 아티스트 워크숍이 한 건물 안에서 가능하다. 김 소장의 오랜 염원이 실현된 것이다. 그동안 연구소는 아카이브 작업을 중심으로 출판, 번역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한국화에 대한 비평을 연구한
《 우리그림 비평》(2008)을 출간했으며, 2011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코리안 랩소디전>에 ‘이상’과 ‘최승희’, ‘1960~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영상 제작, 그리고 같은해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데페이즈망-벌어지는 도시전> 기획 등을 해왔다. 김 소장은 “연구소는 비영리기관으로 지원금을 받아서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보다 안정적인 연구를 위해 재정 확보 의 자가동력으로서 갤러리를 영리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ARI는 1960~70년대 미술을 중심으로, 1940~50년대 해방공간, 최근 작가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며 아카이브 정리를 하고 있다. 현재 이우환을 비롯해 400명의 작가가 기본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앞으로 계속해서 작가 수를 늘리고 작업 전반에 걸쳐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작가 강국진, 하종현의 경우 숨어있는 자료까지 모두 확인해 작업 전반의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방대한 작업을 마쳤다. 아카이브는 심층 연구를 토대로 전시까지 이어진다. 스페이스 카리아트에서 열리는 첫 번째 전시 <더 모노톤–리피티툼(repetitum)>(4.10~5.30)은 이우환, 하종현, 최병소 3인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반복성을 철학적 증상 혹은 징후로 조명한다. 앞으로 ‘모노톤’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일 것이며 8월에 전시와 연계해 영문학술서도 발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단색조 회화, 모노하, 모노크롬 등 용어에 대한 재검토부터 시작해, 한국의 단색조 회화와 서양의 모노크롬이 공유하는 지점과 차이점을 재조명해 논의의 장을 적극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 모든 연구의 발판은 ‘아카이빙’이다. 김 소장은 1990년부터 한국 근현대미술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며 아카이빙 작업에 돌입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아니면 누가 한국미술을 연구하겠느냐는 심정에 사명감이 들더라. 한국의 실험미술은 유신시대 언더그라운드로 발생해 미술계 내에서 논의된 적이 거의 없었다. 자료 수집을 위해 마이크로필름을 통해 7종 신문을 비롯해《 선데이 서울》,《 주간경향》등 4대 주간지까지 꼼꼼이 살폈다.”
하지만 아카이브는 단순한 자료 수집이 아니다. 김 소장은 “아카이브를 검토할 때에는 작가 집에서 굴러다니는 접시도 다시 확인한다”고 말한다. “강국진의 아카이브를 정리하면서 그의 퍼포먼스 <색 물을 뽑는 비닐 주머니>가 한국 최초 행위예술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카이빙의 결과로 퍼포먼스 연구의 궤적이 달라질 수 있다. 아카이브는 당대 리얼리티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최근 미술계에서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아카이브 기관이 늘고 있다. 김 소장은 반가운 소식이라며 “자료를 많이 수집하는 기관이 있다면 이 자료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팀이 협업해서 결과물이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또한 “KARI는 앞으로 세계와 교류하는 통로도 넓힐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지난 2월에는 홍콩 파라사이트(Para Site)에서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와 연계해 일본, 한국, 대만의 1960년대 행위예술을 조명한 전시 <거대한 초승달(Great Crescent)> 한국 섹션에 참여해 한국의 실험미술 작업을 선보였다. 그리고 김 소장은 4월 15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한국의 실험미술과 단색조 예술’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슬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