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SHIN’S DESIGN ESSAY 5]

디자이너에게 너무 큰 걸 기대하는 건 아닌가?

김신   디자인 칼럼리스트
얼마 전 어느 기업의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 기업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주역인 디자이너들을 위해 새 강좌를 마련한다며 워크숍을 개최해 강좌의 목적과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그 강좌의 목적은 한마디로 디자이너에 대한 ‘계몽’이다. 디자이너의 의식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왜? 앞으로 디자이너가 할 일이 많고 그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한국의 미래 번영을 위한 전사일 뿐만 아니라 과잉 소비에 따른 지구 환경의 파괴를 막아낼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디자이너부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식하고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나사 같은 존재로 머무르지 말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 희망찬 미래를 건설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뭐 그런 내용이다.
사실 이런 사고는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먼저 디자이너가 새로운 세상을 건설했다는 생각은 디자인 역사 책에 수록됐다. 윌리엄 모리스는 단지 디자이너가 아니라 열정적인 사회개혁가였다. 그의 이상을 이어받은 발터 그로피우스는 바우하우스로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디자인 인재를 양성했다. 바우하우스의 선생과 학생들은 그 뒤 우리 삶의 풍경이 된 모더니즘 스타일을 창조했다. 그들은 형편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불쌍한 민중을 위한 미학을 창조했다. 디자인 역사책들은 이들의 활약을 ‘유토피아’ 건설에 비유한다. 그러나 유토피아에 비유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건 실현 불가능한 이상주의로 끝났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이다. 그것에 대한 의식을 깨워준 이는 빅터 파파넥이다. 그는 저서《 진정한 세계를 위한 디자인》(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으로 번역 소개됨)에서 디자이너의 도덕적 책임감에 대해 강조했다. 예를 들어 대중의 변덕스러운 기호에 영합해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낸 디자이너 덕에 사람들이 멀쩡한 물건을 빨리 폐기해버려 자원이 낭비되고 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디자이너는 매력적인 광고를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소비에 빠져들게 한 죄도 지었다.
이 두 가지 사고의 맹점은 마치 이 세상을 만드는 데 디자이너라는 전문가만 기여한 것처럼 말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언제부터 디자이너가 이 사회에서 그렇게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나? 일단 독자 여러분 주위에 있는 디자이너를 한번 보라. 기업 내 디자이너든, 외주 회사 소속이든 그들의 발언권이 얼마나 큰가?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생겨난 뒤 디자이너가 세계를 변혁하는 데 얼마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가? 사실은 바우하우스조차 정치인과 기업인의 판단으로 설립되고 폐쇄되었다. 그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절충하는 가운데 모던 스타일이 탄생한 것이지 디자이너의 순수한 창조 행위에 따른 산물이 아니란 말이다. 디자인은 디자이너 혼자 만든 것이 결코 아니다.
영웅주의적으로 쓰인 역사가 디자인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 뭐 엄청난 걸 해줄 거라고 착각까지 한다. 그래서인지 디자인으로 업적을 남기려는 정치인이 나타난다. 디자인 시티를 만들겠다고 떠든다. 디자인이 행복을 만들어줄 거라고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는다. 대개 그런 정치적 도구로 쓰이는 디자인은 과잉적 표현을 낳는다. 눈에 띄어야 업적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 결과물에는 디자이너의 감각이 더해진다. 그렇더라도 디자인은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스타일로 기존의 물건을 폐기물로 만드는 이른바 기업의 ‘인위폐기’ 전략 역시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업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본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 현대의 소비사회와 그에 따른 막대한 자원의 낭비가 어찌 디자이너 혼자의 책임일 수 있겠는가? 광고 역시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고, 무엇보다 광고주의 결정과 판단이 만드는 것이다.
한때 유행처럼 21세기에는 3D가 중요하다고 했다. Digital, DNA, Design. 이런 구호 때문에 디자인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이 되고, 또 세상을 잘못 이끈 책임까지 져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디자인은 그런 힘이 없었다. 영국의 디자인 비평가 에드리언 포터의 말처럼 디자인은 사회적 욕망의 산물일 뿐이다. 만약 파괴적이고 낭비적인 소비사회에 대한 책임을 디자이너에게 물으려면 그만한 권한과 보상을 처음부터 주었어야 했다. 디자이너는 어느 시대에도 그런 권한과 보상을 받은 적이 없다. 행복한 미래를 창조하는 데 디자이너들이 분명 큰 기여를 하겠지만, 그것을 기획하는 건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다.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낭비의 사회를 만드는 것도 모두 권력과 자본이다. 자기들이 뜨고 싶어서 디자이너의 머리를 바꾸고 계몽하겠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11.12~2015.2. 27) 전시광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11.12~2015.2. 27)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