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사회와 호흡하는 미술

잡지는 표지가 특히 중요하다. 표지 이미지가 책의 얼굴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표지는 그달 책의 주요 내용과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보통 작가 얼굴이나 작품 가운데서 표지를 선정하기 마련인데, 너무 밋밋하거나 강렬해도 안 되고, 너무 선정적이거나 상업적인 냄새가 짙어도 안 된다. 그러니 이미지 선정에 고심할 수밖에 없다. 이번호 표지는 작가 임옥상이 1989년 제작한 <하나됨을 위하여>. 한지를 부조 형식으로 캐스팅해서 떠낸 후 그 위에 채색한 이 작품은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리얼리즘의 복권전>에 출품됐다. 주먹 불끈 쥐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고무신 발로 철조망을 성큼 뛰어넘는 주인공은 ‘故 늦봄 문익환(1918~1994)’이다. 종교학자(목사)이자 시인이었으며 열렬한 통일운동가였던 그는 1989년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돌아온 직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투옥됐다. 요즘은 대통령도 ‘통일 대박’이란 말을 대놓고 하는 시절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1988년 늦봄, 문무대 입소하는 날 교문 앞에서 문익환 목사의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대학교 1학년 남학생은 예외 없이 교련수업 일환으로 1주일 동안 문무대에서 군사교육을 받았고 2학년은 전방 군부대에 입소했다. 그때는 그랬다.
한편 <하나됨을 위하여>는 2013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기념 <시대정신전>에 출품될 뻔했다. 그런데 시대착오적인 사전검열(?)에 걸려 결국 전시되지 못했다. 끝내 공식적인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전시개막 직전 이 작품을 미리 본 청와대 관계자의 외압이 있었다는 뒷얘기가 돌았다. 한 20년쯤 후에 누군가 말할 수도 있겠다. “그때는 그랬다”고.
이번 특집 ‘도시재생’은 임승현 기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도맡아 만들었다. 영국에서 유학한 임 기자는 영국 건축가 그룹 ‘어셈블’이 2015년 터너프라이즈를 수상한 것에 주목했다. 여기에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 이슈를 덧붙여 특집으로 발전 시켰다. 얼핏보면 미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모티프 같지만, 사회와 호흡하는 미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공감대를 얻을 수 있으리라. 이런 의미에서 서울의 옛 그림과 현재 모습을 비교 답사하는 이태호 교수의 ‘진경산수화 톺아보기’ 역시 어느 때보다 각별히 읽혔다. 더불어 특집에 소개된 윤동주문학관은 도시재생의 의미를 넘어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개봉되고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초간본 모습 그대로 재출간된 것도 그렇지만, 이번호 표지 주인공 문익환 목사가 윤동주 시인과 절친한 친구였다는 사실이 더욱 애잔하다.
마지막으로 <리얼리즘의 복권전>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신생공간 전시 <서울 바벨>에 대한 아티클을 눈여겨 읽어주기 바란다.
“이 날선 미술운동을 둘러싼 현대사의 맥락도 복권해야한다. 어느 때보다도 혁명적인 미술이 필요한 작금에 ‘민중미술’이 지나간 시절을 회고하는 추억의 사조로 다루어져서도 안 될 것이다.” – 김미정
“이들이 예술계를 의식하는 예술인이고 예술계의 법칙에 적응하려 한다면 동호회 활동과의 차이(우위)도 증명하는, 즉 미학을 가시화하는 책임도 스스로에게 있음을 고민해야한다.” – 신현진
수전 손택의 명저 《사진에 관하여》 옮긴이 후기에는 “수전 손택은 ‘인용구로만 이뤄진 비평문, 그래서 무심코 일어날지 모를 감정이입까지 배제된 비평문’을 쓰고 싶어 했지만 때 이른 죽음으로 그런 비평문을 완성하지 못한 ‘W. B.’, 즉 발터 벤야민의 못 다 이룬 꿈을 ‘자기 식’대로 되받아 수행한 것이다” 라는 말이 나오더라. 나도 흉내 내봤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