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망원경과 현미경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어요. 초저녁에 즐겨듣는 에프엠 라디오에서 아주 인상적인 얘기를 들었지요. 물론 방송작가가 써준 대본이었겠지만, 그날따라 디제이의 오프닝 멘트가 귀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특유의 느끼하고 낮은 음성으로 느릿하게 말하는 남자 디제이가 하는 말은 대충 이랬어요. “계절은, 그러니까 봄은 꼭 직선으로만 오지 않는다. 성큼성큼 앞으로 쭉~ 올 것만 같더니만 오른쪽으로도 비틀거리고 왼쪽으로도 비틀 거린다. 두 발자국 다가오다 이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주춤 거린다”면서 어쩌구저쩌구 하더니만 “자연이 창조한 거의 모든 선은 곡선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만든 인공물의 선은 대부분 직선이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저는 특히 나중 얘기에 공감했습니다. 자연이 만든 곡선, 사람이 만든 직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두 개의 점 사이를 가장 짧은 길이로 잇는 선이 바로 직선이죠.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이면서 합리적이고 반듯한. 그럼에도 저는 직선보다 곡선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직선은 이성적이고 곡선은 감성적이니까요. 조금은 늦고 멀리 돌아가더라도 왠지 직선보다는 구불구불한 곡선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런 거죠. 무모한 삽질과 콘크리트로 무지막지하게 정리한 ‘4대강’ 둔치 공원보다 모래톱과 수초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섬진강변이, 거리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태백산맥을 관통한 터널이 있는 미시령 고속도로 보다는 한계령 꼬부랑길이, 수많은 터널과 방음벽에 가로막힌 KTX 레일보다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며 달릴 수 있는 국도가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닌 게 아니라 고루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그 말을 적극 부인하지는 않을 랍니다.
아무튼 편집장으로서 이와 같은 태도를 ‘망원경과 현미경’에 빗대어 부연 설명해 드리고 싶군요. 어쩔 때에는 고개를 들어 망원경으로 광활하고 먼 밤하늘을 보고, 어쩔 때에는 가깝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미립자의 세계를 고개 숙여 현미경으로 탐구할 때도 있다고 말입니다.
이번 ‘민화’ 관련 특집기사도 이런 맥락에서 준비했습니다. 지난 3월호 특집 ‘이슬람 문화’가 망원경으로 보기였다면 ‘민화’는 현미경으로 보기쯤 되지 않을까요? 국립현대미술관 신임관장이나 일부 젊은세대 미술가들이 제기하는 권익문제, 또는 미술시장 활성화나 광복70주년처럼 타이밍을 놓치기 전에 다뤄야할 이슈가 눈앞에 산적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끔씩은 뒤도 돌아보며 일부러 멀찌감치 돌아서 조금은 천천히 가고자 합니다. 심사숙고하겠단 말입니다.
미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눈으로 본다고 작품의 속마음까지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미술이 인간의 시각에 호소하는 예술임이 분명함에도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봐도 그렇고 가까이에서 들여다봐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는 사람이나 미술이나 비슷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뭔지 모를 그 정답에 가까워지고자 할 뿐이죠. 그러니 조바심 내고 서두를 필요도 없습니다. 설렁설렁 느긋해도 좋고, 때로는 아주 집요하고 철저해도 좋습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월간미술》이 미술이라는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친절한 안내서 혹은 좋은 지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P.S. 특히 이번호는 특집을 비롯해 앞쪽 ‘강수미의 공론장’부터 작가와 전시 꼭지를 거쳐 뒤쪽 ‘강성원의 인문학미술觀’까지 읽을 만한 글이 많답니다. 좋은 봄날, 따뜻한 햇살아래서 부디 정독 해주시길….^^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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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모윤범모 가천대 교수
이번 특집의 불씨를 지핀 주인공이다. ‘민화’가 가진 한국적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 미술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힘이라고 확고히 믿고 이를 위한 발판을 다지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경주민화포럼2015〉에서 그가 주창한 ‘길상화’란 용어는 많은 민화인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그는 늦은 밤까지 진행된 토론 말미에도 “더더욱 길상화를 강조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 말대로 나이와 무관하게 그는 “진취적이고 도발적인 젊은 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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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Sni Factory 대표
김 대표가 보내준 한 권의 책이 이번 호 특집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책의 제작 과정에 대해 예상보다 긴 원고를 보내주었는데 지면이 한정돼 안타깝게도 일부만을 게재하게 되었다. 출판사 대표이기 이전에 동국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문학박사로서 《한국의 채색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열정이 느껴졌다. 현재 숙명여대 국제교류학부 객원 교수이자 문화콘텐츠 기업 Sni Factory 대표로 한국문화 및 한국학 관련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