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잡지의 숙명?

청명한 가을하늘이 반가운 요즘이다. 대기도 뽀송뽀송, 상쾌한 기분을 부추긴다. 이런 계절 감각에 걸맞게 이번호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었다. 앞선 7, 8월호가 국립현대미술관 문제나 광복 70주년처럼 첨예하고 시의성 있는 주제로 숨 가쁘게 내달렸다면, 이번 9월호는 숨 고르며 한 템포 쉬어가듯 완급을 조절하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여느 때에 비해 내용이 부실하다거나 형식이 헐렁해진 건 아니다. 예컨대 은둔 생활을 하는 작가 김명숙과 요즘 보기 드물게 목판화 작업에 외길을 걸어온 정비파 작가의 작가론은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깊이 있는 글이다. 그리고 법고창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문봉선 교수의 개인전 소식과 국립현대미술관 <2015 올해의 작가상> 후보 4인 인터뷰, <都城圖>를 테마로 한 이태호 교수의 연재와 현장감 있는 구보다 시케코 추모 기사 등 무엇 하나 소홀히 지나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특집 또한 신선한 시도로 봐주길 바란다. 미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대중문화 현상을 참신하게 풀어낸 기획이라고 자평한다. 물론 마감직전까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난관에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우리 편집부 막내 기자와 동갑내기 디자인 팀장이 의기투합해 만들어낸 기사다. 맛깔난 요리 한 접시를 독자들에게 대접하게 된 것 같아 기특하고 덩달아 흐뭇하다.
한편, 이번호는 광고 지면이 부쩍 늘었다. 솔직히 말해 이 대목에서 표정관리가 쉽지 않다. 회사 수익 면에서는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그런 내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면, 광고 많은 잡지를 싫어하는 독자가 적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 독자는 잡지에 광고가 많으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는다. 상대적으로 책의 내용이 빈약하다거나 원치 않는 광고를 일방적으로 접하게 되는 상황을 불편해 한다. 나 역시도 한때 명품광고 일색인 멤버십 매거진이나 온갖 요란한 상업광고로 도배된 여성지를 보면서 짜증을 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다른 잡지나 신문, 방송을 보면서 광고가 많으면, ‘아~ 이 매체가 이렇게 인기 있고 영향력이 크구나!’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ARTFORUM》 《Art in America》 《ART》 같은 외국 유명 미술전문지는 광고가 엄청나게 많다. 특히 《ARTFORUM》은 3분의 2 이상을 광고가 차지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전 세계 독자는 이런 책에서 기사뿐 아니라 광고를 통해서도 많은 정보를 얻는다. 국내 미술계에서 《월간미술》은 광고주가 가장 선호하고 신뢰하는 매체다. 발행부수를 비롯해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크다. 그러니 광고주 입장에선 당연히 효과적인 홍보수단으로 《월간미술》을 선호한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논쟁처럼, 회사 수익과 직결된 광고가 우선인지 책 본연의 목적인 기사가 우선인지는 처한 입장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다만 편집장으로서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편집부 기자들은 광고를 목적으로 책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좋은 기사로 좋은 책을 만들면 광고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월간미술》에서 광고와 관련된 업무는 편집부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광고담당 부서에서 전담한다.
정리하자면, 《월간미술》은 비영리 공익기관이나 자선단체가 아니다. 엄연히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출판기업이다. 따라서 광고 수주와 정기구독 유치를 통한 안정된 재정 조달이 회사존립의 최우선 전제 조건이다. 언젠가도 이 자리에서 밝혔듯이 《월간미술》은 모든 필자에게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한다. 지금까지 단 한차례 지연되거나 빠트린 적이 없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이와 같은 배경엔 분명 광고료 수입이 큰 몫을 차지한다. 사정이 이러니 혹여라도 그동안 《월간미술》에 실린 광고를 무조건 미워(?)했거나 심지어 시기하고 질투했던 독자께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앞으로는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는 ‘잡지의 숙명’이라고 생각해 주시고, 기사 못지않게 광고 또한 정보취득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관심 있게 봐주기 바란다고 말이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