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PEOPLE JB금융지주 김한 회장

침체된 한국화 중흥을 위한 메세나

‘동양화’냐 ‘한국화’냐? 의견이 분분하고 말이 많다. 학과 명칭도 학교마다 제각각이다. 장르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확장되고 열린 개념의 현대미술이건만, 유독 이 분야에서만 여전히 이런 해묵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통과 현대, 한국성과 국제성에 대한 개념과 정의는 그만큼 첨예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JB금융지주 계열 광주은행에서 한국화 분야 작가 지원과 진흥을 위한 뜻 깊은 사업을 시작했다. ‘광주화루(光州畵壘)’란 타이틀을 내걸고 한국화 공모전과 작가상을 제정한 것이다. 총상금 1억 원(작가상 5000만 원, 공모전 대상 1인 3000만 원, 장려상 2인 각 1000만 원)이 주어지는 광주화루를 제정한 JB금융지주 김한 회장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이호억 〈돌을 찢는 남자: 팔(八)폭 괴석도〉 화선지에 유연묵 183×900cm 2016 〈제 1회 광주화루〉 공모전 대상 수상작가

이호억 〈돌을 찢는 남자: 팔(八)폭 괴석도〉 화선지에 유연묵 183×900cm 2016 〈제 1회 광주화루〉 공모전 대상 수상작가

먼저 〈광주화루〉 개최 배경이 궁금합니다. 미술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금융기관에서 미술작가를 위한 공모전을 실시하고 작가상을 제정했다는 점이 의외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메세나 활동, 즉 기업(가)이 예술(인)을 후원하는 일이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광주화루〉를 제정하시게 된 배경과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광주은행과 전북은행은 전라남북도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은행입니다. 흔히 전라도 하면 멋, 맛, 따뜻함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잖아요. 반면 산업적인 측면에선 경상도나 충청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되고 늦은 게 사실이고요. 이런 배경에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문화적 배경과 장점을 부각시키고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전북은행장 시절 〈전주세계소리축제〉와 인연을 맺게 됐답니다. 어느덧 6년째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전통 소리도 중요하지만 요즘 젊은 소리꾼의 새로운 감각과 활동을 잘 개발해서 접목하면 우리 소리도 아주 현대적이고 국제적이고 세계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됐습니다.
〈전주 소리축제〉가 무형문화유산이라면 한국화 공모 〈광주화루〉는 유형문화유산입니다. 전주는 오래전부터 소리와 서예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이에 비해 광주는 비엔날레와 특히 아시아문화전당이 생기면서 하드웨어적인 인프라가 잘 구축된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비엔날레는 엄밀히 말해 우리 미술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 것, 우리 한국화의 전당을 만들어보자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여러 전문가를 모시고 세미나를 열어 한국화의 개념과 범위, 공모전 성격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어떤 형식으로든지 판을 벌여 시도하면 작위적일지라도 한국화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정립되겠지요.
광주지역은 예부터 특히 문인화 전통이 깊은 곳인데 요즘은 침체되어 있습니다. 안타깝더군요. 그래서 한국화 분야에서도 뭔가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문화예술계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각양각색 여러 생각을 가진 분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 사이에서 잘하기가 힘듭니다.(웃음) 광주은행에서 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광주지역 한국화가에만 국한하면 범위가 한정적이니까 전국적인 규모로 공모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한국화 장르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광주화루(光州畵壘)’라는 상 이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화나 동양화라는 말만 앞세우면 좀 진부한 것 같고, 광주은행에서 시행하는 상인데 ‘광주’를 넣지 않을 수도 없고…. 〈광주화루〉라는 이름은 추사 김정희의 ‘회루(繪壘)’에서 모티프를 얻었습니다. 여기에 한국화의 전통과 맥을 지키는 ‘최후보루’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번 〈광주화루〉 실무를 도맡아 진행해 온 광주은행 박철상 부장은 추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입니다. 이름을 정하는 데 박 부장의 역할이 컸지요.
〈광주화루〉는 단발성 사업이 아닙니다. 광주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꾸준히 시행될 겁니다. 만약 수묵화나 문인화 분야에 한정지었다면 현실적으로 작가도 많지 않기 때문에 횟수를 거듭해 오랫동안 지속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전통도 좋지만 전통을 기초로 전통을 깨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작가도 있어야죠. 앞서 예로 든 소리도 판소리 다섯마당처럼 전통도 중요하지만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현대적 감각의 퓨전, 융합 소리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미술도 마찬가집니다. 전통도 중요하지만 지금 살아있는 사람의 입맛에 맞아야죠. 이런 뜻에서 수묵화에만 국한하지 않고 오픈 마인드로 한국화 전 부문으로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이렇게 5년, 10년이 지나면 차츰차츰 정리 되겠지요.

〈광주화루〉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작품을 직접 보시고 느낀 소회 혹은 의견은 어떠신지요?
실험적인 작품도 간혹 있었지만 비교적 전통과 현대적인 작품이 잘 조화를 이뤘다는 첫인상을 받았습니다. 전통적인 병풍 형식부터 콜라주 작품에 이르기까지 표현기법도 아주 다양하더군요. 한편으론 다시 한 번 작가들에게 존경심 혹은 경외감을 갖게 됐어요. 사실 서양화에 비해 한국화 마켓은 아주 열악하잖아요. 미술시장에서 저평가된 것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한국화과가 없어지거나 전공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실정인데도 이렇게 묵묵히 작업하는 분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좋아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도울 수 있다면 앞으로도 아주 기쁜 마음으로 돕고 싶습니다.

공대 출신 금융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에서 예술을 대하는 회장님의 안목 또한 남다를 듯합니다.
한국화는 익숙합니다. 문화재로 등록된 한옥에서 살았거든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병풍이나 전통적인 산수화를 익숙하게 보며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화 사정을 보면 애잔한 감정이 듭니다. 20여 년 전 의재 허백련 그림 값이 아마 지금보다도 더 비쌌을 겁니다. 월전도 마찬가지고요. 이게 현실입니다.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그림이 너무 저평가돼 있어요. 요즘 국내 화랑들이 값비싼 외국 작가나 서양화만 취급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문화란 1~2년에 형성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수백 년이 쌓인 전통이 바탕 되어야 합니다. 우리 문화는 결코 서양에 뒤지지 않아요. 우리가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겨야지요. 일본이나 중국도 스스로 자국문화를 띄우잖아요.
지금도 전주 음식점을 가면 글씨가 붙어있고, 광주엔 아직도 그림이 걸려있어요. 이런 게 문화입니다. 이런 문화를 장려하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게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젊은 세대와 맞춰가며 틀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간 이렇게 좋은 문화를 제대로 장려하지 못했어요. 미력이나마 이런 지원 사업을 매년 하다 보면 한국화 하는 사람들이 “아, 우리에게도 관심 갖고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힘을 얻지 않겠어요. 결국 젊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려야 그 맥이 이어지지요.

〈광주화루〉는 미술계에서 아주 환영할 일입니다. 더불어 광주은행 임직원도 이번 〈광주화루〉를 계기로 회사에 자긍심을 갖고 예술을 대하는 마음가짐 또한 각별해질 듯합니다.
옛것이 쉽게 잊히는 요즘입니다. 대다수 젊은이가 옛것에 관심이 없어요. 그들이 소리뿐만 아니라 수묵화 같은 전통 그림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한자 사용이 줄어들다 보니 이런 경향이 더 심화된 것 같아요. 아무튼 이번 〈광주화루〉가 광주은행 직원과 가족이 함께 관람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만큼 〈광주화루〉의 향후 일정과 미래 모습이 궁금합니다. 구상하는 계획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광주화루〉 진행 과정에서 일부러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전시가 열리니 여러 사람이 직접 관람하면서 흥미를 갖게 될 테고, 무엇보다 이번 공모에 지원하지 않은 작가들도 이후엔 적극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광주화루〉의 취지와 공정한 선정과정, 그리고 전시 작품의 수준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면 도전하고픈 생각이 들 테니까요. 공모전을 시행하면서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심사의 공정성이었습니다. 학연이나 지연 같은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작품성만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상이 되고자 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기대 했던 대로 아주 공정한 심사가 이뤄진 것 같습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광주화루〉는 광주은행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지속될 겁니다. 이번 1회 공모를 계기로 전국에서 더욱 많은 한국화가가 참여하기 바랍니다.

이준희 편집장

김 한 Kim Han

1954년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경영학 석사)을 졸업했다. 대신증권 이사, 메리츠증권 부회장, KB금융그룹 사외이사, 전북은행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광주은행장, JB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화루(畵壘)
조선후기 문인화가인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제주도 귀양에서 돌아와 용산에서 머물 때, 서화(書畫)하는 제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솜씨를 겨루고 김정희의 품평을 받았다. 당시 화가 그룹은 회루(繪壘), 서가 그룹은 묵진(墨陣)이라고 명칭했다. 화루(畵壘)는 바로 회루의 회(繪)를 화(畵)로 바꾸어 만든 이름이다. 즉, 그림으로 경쟁하기 위해 모인 화가들의 그룹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