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 ISSUE Hello! 2015 Good Bye! 2014

2015년을 시작하며 2014년 미술계를 정리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주목해야할 전시’와 ‘젊은 세대’, ‘미술 시장’이라는 키워드로 살펴본다. 먼저 2015년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가 발표한 전시 라인업을 통해 올해 눈에 띄는 이슈와 전시를 짚어본다. 이어 지난해 연말부터 대두되고 있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예술활동과 공간 문제 관련 새로운 움직임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2014년 미술시장의 흐름을 결산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2015년 주요 전시 길라잡이

이슬비 기자

지난 2014년은 세월호 사건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침체된 가운데 미술계에서도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다. 먼저 짝수연도인 비엔날레 해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성격의 비엔날레가 동시 다발적으로 열렸다. 특히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 제시카 모건이 이끈 <광주비엔날레>와 작가 박찬경이 기획한 <미디어시티 서울>의 경우 감독의 특성이 잘 반영된 전시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비엔날레의 전시의 질을 떠나 행사 운영 및 진행에 따른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창설 20주년 특별전에서 작가의 작품이 철거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이 일은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사퇴로 이어졌다. 부산비엔날레의 경우 감독 선임 문제를 둘러싸고 우여곡절 끝에 ‘제도개선위원회가’ 발족돼 장기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는 국공립 미술관 관장 자질론이 유난히 많이 거론되었고 결정적으로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직위 해제되는 불명예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2011년 최고경영자 출신 배순훈 관장이 돌연 사퇴한 데 이은 정 관장 직위 해제 사태를 계기로 한국 대표 미술관 수장 자질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공론화될 필요성이 제기됐다.
올해는 국내 비엔날레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비엔날레 측은 전시 수준뿐 아니라 행사 운영 방식에도 힘을 쏟아야 할 시기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해가 지나가고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2015년 미술관과 갤러리 주요 전시 라인업이 발표되었다.
현재까지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공개한 전시 라인업을 살펴보았을 때 단연 눈에 띄는 이슈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한 문제와 분단 현실을 다룬 전시들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는 야심 차게 <북한(가제)전>(7.21~9.27)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을 주제로 작업하는 국내외 작가들과 북한 출신 작가들의 작품, 북한의 우표, 포스터, 선전물 등의 수집품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미술관 측은 “현재 북한 측과 직접적인 교류채널을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며 제대로 성사된다면 만수대창작사 소속 북한 작가들의 작품을 공식적으로 선보이는 최초의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공석으로 남아있는 관장 선임 문제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관에서 7월부터 10월까지 월북작가 <이쾌대전>을 개최한다. 초기 습작부터 6・25전쟁 포로수용소 시절까지 대표작을 망라해 리얼리즘 미술의 대가 면모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2011년부터 해마다 <리얼 DMZ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 아트선재센터는 올해에도 8월부터 10월까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또한 분단 이후 60년간 남북한 건축의 양상을 다방면으로 조명한 건축가 조민석 기획의 <한반도 오감도전>이 3월부터 5월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2014년 제14회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의 쾌거를 이룬 바 있다.
상반기에는 미디어아티스트 거장들의 전시가 연이어 개막해 꼭 보아야 할 전시들로 손꼽힌다. 2016년 10주기를 앞두고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1932~2006)을 제대로 조명하려는 추모 열기가 벌써부터 뜨겁다. 1월 21일부터 3월 15일까지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백남준전 <W3>을 시작으로,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1월 말부터 백남준 추모 9주기를 맞아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텔레비전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소장품 중심으로 구성한 전시 <TV는 TV다>와 백남준의 실험적인 예술 정신을 계승하는 국내 신진작가의 신작 전시<2015 랜덤 액세스>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11월 영국 테이트모던에서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된 이숙경 큐레이터가 기획한 소장품 중심의 백남준전이 열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국내 비디오아트 선구자인 박현기(1942~2000)의 개인전(1.27~5.25)이 열려 그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한다. 2012년 미술관에 기증된 박현기 아카이브 약 2만 점 중 상당 부분이 미술계에 최초 공개되는 만큼, 그의 미술사적 위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제갤러리에서는 백남준의 제자이자 현대미술의 영상 시인이라 불리는 빌 비올라 전시가 3월부터 5월까지 준비돼 있다. 11월 말에는 혁신적인 영상으로 20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전>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열린다.
지난해 남성 원로 작가와 중견 작가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면 올해에는 여성 작가들의 굵직한 전시와 페미니즘 전시가 다수 포진해 있다. 선두주자는 국내외에서 활발한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 양혜규의 전시(2.12~5.10)이다. 2012년에 열린 서도호의 전시 이후 삼성미술관 리움이 두 번째로 마련한 한국 현대미술가의 대규모 개인전이다. 초기작부터 인조 짚을 재료로 한 신작까지 국내에서 활동이 뜸했던 양혜규의 작업 전반을 살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열리는 한국 여성주의미술의 대모 윤석남의 개인전(4.21~6.28)은 초기작과 대표작을 비롯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성 위인을 주제로 한 최신작을 소개한다. 버려진 파편으로 도자기 조형물을 만드는 작가 이수경은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대구미술관과 9월부터 11월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두 번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12월에는 플라토에서 한국 역사의 상처를 재조명하는 작가 임민욱의 개인전이 잡혀 있다. 이밖에 국제갤러리에서는 6월 북한 주민의 수공 자수회화 신작으로 구성된 함경아의 개인전과 yBa 멤버이자 미술계 악동으로 잘 알려진 트레이시 에민의 개인전을 12월에 개막한다. 그리고 6월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리다 칼로전>도 기대해볼 만 하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는 5월부터 7월까지 규범과 경계를 가로지르는 저항적 제스처로서, 위계와 권위 해체하는 급진적 행위로서의 페미니즘 퍼포먼스에 관한 국제 기획전 <Radical Gestures>를 연다. 국내외 여성 안무가 및 퍼포먼스 아티스트 15여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9월에는 동아시아 지역 페미니즘 미술의 현재와 의미를 조명하는 <FANTasia : 아시아 페미니즘전>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소개된다.
또한 올해에는 국외 유명 작가들의 전시가 즐비하다. 먼저 이탈리아 조각의 거장 노벨로 피노티의 대규모 회고전(2.28~5.17)이 서울미술관에서 개막을 앞두고 있다. 놓치지 않고 봐야 할 전시로 철학·문학·영화·연극·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 기반을 두고 조형적 실험을 펼쳐온 작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12.1~2016.2.28)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준비 중이다. 2012년 양현미술상 수상자이자 멕시코의 대표적 개념미술 작가인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4.18~8.2)와 2014년 백남준미술상 수상자인 파키스탄계 영국인 작가 하룬 미르자(10.15~2016.2.14)의 개인전이 각각 아트선재센터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대구미술관에서 준비한 나이지리아계 영국인 작가 잉카 쇼니바레의 개인전(5.30~10.18)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4년 런던 프리즈 마스터즈에서 주목을 받은 일본 작가 우에마쓰 게이지의 개인전이 4월부터 6월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개최된다. 성곡미술관에서는 재중교포 최헌기(추이셴지)의 국내 최초 회고전(3.6~5.31)을 기획하고 있으며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는 4월에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작가 크리스틴 아이 추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국내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으로, 국제적으로 활발한 행보를 보였으나 그동안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서구권 작가들의 개인전이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한편 고미술 분야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가 많다. 용산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 올해 10주년을 맞는 국립중앙박물관은 불교미술에 집중한 전시를 대거 선보인다. 그 중에서 기획특별전으로 준비한 전시는 <고대불교조각대전>(9.24~11.15)이다. 불상의 탄생부터 시작해 한국, 미국, 유럽, 일본, 중국의 18개 기관에 소장된 불교조각 명품 150여 점을 공개한다. 리움에서도 두 개의 고미술전이 마련돼 있다. 한국미술의 정수 가운데 세밀함의 특징을 지닌 작품들을 내세운 <세밀가귀細密可貴 한국미술의 품격전>(7.2~9.13)과 한국전통건축을 관련 사진과 영상, 고미술, 관련모형, 도면, 아카이브 등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국전통건축예찬전>(11.12~2016.2.7)이 그것이다. ●

양혜규  2011 (Courtesy of Kukje Gallery)

양혜규 <성채> 2011 (Courtesy of Kukje Gallery)

윌리엄 켄트리지  201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 예정)

윌리엄 켄트리지 <시간의 거부> 201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 예정)

맨위 우고 론디논 <Where Do We Go From Here> 1999(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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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소의 시대를 맞은 ‘잉여’의 집단 대응

안대웅 유능사 일원

연초 벽두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전시공간의 기지개가 심상치 않다. 1990년대 후반 대안공간 설립 붐 이후 실로 오랜만에 감지되는 활기다. 사실 그 사이에도 수없이 많은 전시공간이 생성과 소멸을 겪었다. 하지만 작금의 사정이 조금 달리 보이는 건, 비단 공간 운영자의 평균 연령이 대폭 낮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유능사(안대웅, 최정윤) 주최로 교역소에서 열린 촤담회 ‘안녕 2014, 2015 안녕?’은 새롭게 짜이는 판형을 약소하게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좌담회에서 흘러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어떤 점이 이런 새로운 공간에 특이성을 부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의 계획은 무엇인지 점검해보자.
이날 가시화된 젊은 공간의 제 모습은 확실히 익숙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으며, 형태적으로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 이른바 ‘기대감소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불황의 국면에 어떻게든 반응한 결과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미래보다 현재 주어진 현실적 상황에 충실하자는 태도–즉 지속적인 공간의 운영보다, 당면한 사태가 문제시되는–역시 대략 공통적이었다.
가령 상봉동에 위치한 ‘오픈베타’ 공간 반지하는, 관리자1 돈선필에 따르면, “어떤 작업공간이 부재하다”는 상황 인식으로부터 탄생한 공간이라고 한다. 따라서 반지하는 작업실과 전시장의 중간 형태를 표방하며, 간섭을 최소화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내 작업실 같은 환경’을 조성/공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돈선필에 따르면, 부담을 극소화하기 위해서 모든 작가를 익명 처리한다고 한다.) 반지하가 일견 기대감소의 시대에 완벽히 적응한 코쿤형 공간으로 보인다면, 그 인근에 위치한 교역소의 ‘이벤트’는 한 순간을 불태우는 카니발이라 할 만하다. 총 33개의 팀이 4일간의 공연과 상영, 강연을 릴레이식으로 이어간 오픈 이벤트 <상태참조>는 SNS상의 타임라인 모습을 실제 공간에서 의태하고 반복하며, 공통의 세대적 감각을 확인하는 시간성을 순간적으로 직조/창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역소의 운영자 중 한 명인 정시우는 “주어진 공간과 시간, 경제적인 제약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노력”이라고 그들의 기획을 설명했다. 이런 독특한 방식의 미술-사건 존재론을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기회 특정성”이란 말로 해설하기도 했다.
한편, 황학동 벼룩시장에 위치한 케이크갤러리의 경우, 낙후한 중앙상가 건물 주인이 건물 두 개 층을 예술가에게 레지던시로 내준 것이 발단이 되어, 전시공간으로 변모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큐레이터 윤민화는 레지던시가 전시장으로 바뀐 이유 중 하나로 “젊은 큐레이터를 위한 오픈 플랫폼”의 필요성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작가와 마찬가지로 요즘은 기획자 또한 공모전이란 관문 없이는 전시가 불가능한데, 케이크의 경우,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 기획안을 펼치고 싶은 큐레이터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2013년 이후 케이크의 전시를 맡게 된 윤민화는 신진작가 개인전 기획과 함께, 황학동의 장소특정성을 유의미하게 활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여러 방면으로 실험 중이다.
시청각과 커먼센터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입지점으로 이미 잘 알려진 공간이다. 현시원과 함영준은 공통적으로, 전시할 마땅한 공간을 찾는 일에 어려움을 겪던 중, 우연한 기회에 공간을 얻은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두 공간은 전시장 컨디션의 제약(시청각의 한옥, 커먼센터의 대규모 폐허)을 제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하며, 기존에 흔히 볼 수 없었던 콘셉트의 기획전을 개최해 관심을 끌어 왔다. 특히 <오늘의 살롱전>(커먼센터)과 <구동희전>(시청각)은 당대의 시각(간)성에 관해 질문을 던진 전시로 호평을 받았다.
올해의 계획으로 빠르게 넘어가자. 반지하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2015년 10월까지 스케줄이 꽉 잡혀있다고 했다. 또 교역소는 4월쯤 <상태참조> 이벤트와 비슷한 종류의 릴레이전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케이크갤러리는 상반기에 압구정 코너아트스페이스 등 생경한 장소에 위치한 미술 공간들과 연합전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하반기에 작가 김민의 개인전과 큐레이터 노해나의 기획전이 예정되어 있다고 전했다. 한편 시청각은 상반기에 학교를 주제로 한 기획전과 잭슨홍의 개인전을 준비 중이며, 하반기에는 외부 기획전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커먼센터는 2월 말경 경향하우징페어에 맞춰, 가구를 주제로 큐브 아트페어를 오픈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젊은 작가 집단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밝히는 데이터베이스 지도 작업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좌담회에서 언급되진 않았지만, 그밖에 다양한 움직임이 존재한다. 한남동에 자리 잡은 구탁소는 예술가와 일반 직업인이 협업하는 형태의 프로젝트를 1월 말부터 가동하고 있으며, 창신동에 위치한 사진전문 갤러리 지금 여기는 3월에 ‘높이’를 주제로 개관전을 열 생각이다. SNS상에서는 모이고 흩어지며 컬렉티브형 모임, 전시/이벤트, 좌담 등을 조직하고 공유하는 움직임이 심심찮게 포착되곤 한다.
한편 이런 공간들의 현존은 그 자체로, 현 미술 제도의 가시권에서 무엇이 배제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좌담회에 참관한 로커 오도함과 미술애호가 구슬의 제안에 힘입어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으로 구체화되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 미술 제도 개선에 관한 다양한 의제가 광범위한 층위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다. 트위터 검색란에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을 쳐보자. ●

 2014년 12월 교역소에서 열린  행사광경

2014년 12월 교역소에서 열린 <상태참조> 행사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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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술시장 결산: 회복의 청신호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 미술시장연구소 소장

2014년 미술계와 미술시장은 봄의 세월호 참사로 전시와 행사가 연기되거나 중단되었지만 가을 들어 주요 행사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국내외에서 유명 작가 전시가 빛을 발한 한 해였다.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리움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등 국내의 대형 미술행사가 한꺼번에 열려 안복도 누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잠깐 조명이 밝았던 2010년을 제외하고는 6년 내내 조도도 낮고 노면도 고르지 못했던 미술시장도 긴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오랜만에 햇빛을 보았다.
화랑에서는 중견작가와 원로작가 전시가 재개되고 해외작가 초대전도 하나둘씩 늘어났다. 화랑들이 역사보다 판매 규모가 크고 역동성이 높은 아트페어를 선택하여 참가하고, 비용 부담으로 주저하던 해외 아트페어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근현대미술품 전문 경매시장은 6월 메이저 경매부터 시장의 호조를 상징하는 낙찰총액 40억 원대에 진입해 연말까지 그 추세를 이어갔다. 2014년은 대형 미술행사가 몰리고 미술시장이 서서히 회복 징후를 보인 한 해였고, 그 중심에는 단색화 열풍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판매 실적에 대한 부담으로 가격이 높은 중견작가와 원로작가 전시를 미뤄온 화랑들이 서서히 초대전과 기획전을 열기 시작했다. 미술시장 주체들이 양도소득세 과세에 적응하면서 불황기의 사업 재정비와 불황 탈출을 위한 자구책 시도 등 적극성을 보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014년 문화계 전반에 걸쳐 확산된 ‘복고’열풍과도 맞아떨어진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과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등이 미술시장의 회복을 도왔다.

1차시장 화랑의 중견・원로 작가 전시 재개, 아트페어의 재편
주요 갤러리들이 백남준, 오승윤, 이승택, 김구림, 정상화, 곽인식, 윤명로 등 원로 생존작가와 작고작가 기획전, 초대전을 개최하여 미술시장 부활을 선도했다. 그리고 조현화랑의 단색화 작가 전시인 <Working with Nature>, 리안갤러리의 키키 스미스, 노화랑의 오치균, 페이지갤러리의 안창홍, 아트사이드의 오원배, 그리고 페리지갤러리의 김기라, 권오상, 홍경택 등 중견・청년·해외 작가의 전시가 미술시장 회복에 힘을 실어주었다. 화랑의 판매가 크게 체감할 정도로 호전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5년간에 비해 전시에 대한 의지가 살아난 것은 확연히 드러났다.
2014년 아트페어 역시 활기를 띠었다. 결과가 공개된 8개 아트페어를 관람한 인원이 30만 명에 달하고, 판매총액도 446억 원을 넘어 2010년대 들어 300억 원대에 머물러있던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외에도 <G-Seoul>, <마니프>, <서울아트쇼>, <대전국제아트쇼>, 부산의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BFAA 국제아트페어>, <부산국제아트페어>, 그리고 대학생들이 참가하는 <아시아프>와 <카우지> 등 20개가 넘는 아트페어가 전국적으로 개최되어 2014년 한 해 많은 관람객이 미술시장을 찾아 미술품을 구매했다.

경매시장도 회당 낙찰총액 40억 원 넘어
집계된 7개 경매회사의 낙찰총액이 918억6,600만 원을 기록하는 등 경매시장이 완만한 U자를 그리며 회복세를 보였다.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는 2010년과 2011년의 900억 원대에서 2012년과 2013년 내리 하락세를 보였다가 2014년 다시 900억 원대로 상승했다. 서울옥션의 국내경매가 낙찰가 기준 2013년 243억8,661만 원에서 2014년 279억8,046만 원으로 15% 증가하고, 해외경매가 149억3,075만 원에서 138억752만 원으로 8% 감소해 전체적으로 6% 증가했다. K옥션의 국내경매는 2013년 188억1,713만 원에서 2014년 303억6,013만 원으로 61%나 증가했다.
고미술 전문회사인 마이아트옥션은 288점 낙찰에 낙찰총액이 83억4,590만 원에 달했고, 아이옥션은 1,568점 낙찰에 낙찰총액이 56억9,376만 원에 달했다. 두 회사 모두 낙찰총액이 2013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에이옥션은 1,486점 낙찰에 낙찰총액이 23억3,280만 원, 온라인 경매를 주로 하는 아트데이옥션은 823점 낙찰에 낙찰총액이 17억2000만 원, 옥션단은 662점 낙찰에 낙찰총액이 16억2,538만 원에 달했다.
양대 메이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의 여름경매가 1회당 낙찰총액 40억 원을 넘었고, 가을경매가 70억 원대, 그리고 겨울경매가 60억 원대를 넘어 경매시장의 회복세를 보여주었다. 경매회사들은 지난 5년간 비용 절감을 위해 온라인 경매를 확대해왔으며, 그 결과 2014년에 온라인 시장이 크게 확대되었다.
국내 작가들이 10년 이상 참가하고 있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의 우리 작가 낙찰총액도 커졌다. 봄경매에서는 45점 중 36점이 팔려 낙찰률 80%, 낙찰총액 44억3,635만 원을 기록했고, 가을경매에서는 31점 중 28점이 팔려 낙찰률 90%, 낙찰총액 65억5,664만 원을 기록했다.

단색화 열풍의 무한 질주
2014년 미술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1970~1980년대에 등장한 단색화였다. 7월 한 달간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정상화전>과 8월 말부터 50일간 계속된 국제갤러리의 <단색화의 예술전>은 2014년 전시 중 단연 핫이슈였다. 단색화 열풍은 아트페어에서도 나타났다. 9월에 열린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 KIAF에서 9개 화랑이 선보인 단색화 작품은 박서보 13점, 윤형근 9점, 정상화 6점, 정창섭 5점, 하종현 3점 등 총 36점이었으며, 공급가액만 32억 원에 달했다. 아트바젤, 프리즈 마스터즈, 피악 등 해외 아트페어에서도 단색화 작품의 판매가 호조를 보였다.
단색화 열풍을 수치로 확연히 볼 수 있는 곳이 경매시장이다. 서울옥션과 K옥션에서 낙찰된 단색화 작품이 3월과 6월 경매 때는 각각 12점과 10점에 불과했는데, 9월 경매에서 20점, 그리고 12월 경매에서는 35점으로 급증하고 12월의 낙찰총액은 9월 경매의 4배에 달했다. 낙찰률을 보면 정상화가 94%, 윤형근 84%, 박서보 81%, 그리고 하종현과 정창섭의 작품이 모두 팔려 단색화 작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정상화의 거래가 급증하며 낙찰총액이 상승했는데, 국내뿐만 아니라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도 3점이 8억9,352만 원에 팔렸고, K옥션이 참가한 홍콩 UAA경매에서도 3점이 2억2,746만 원에 팔렸다.
크리스티 홍콩 가을경매에서도 이우환을 포함한 단색화 섹션이 신설되어 열기가 대단했다. 정상화와 윤형근의 낙찰액 합계가 7억6,261만 원에 달했다. 단색화 작가들의 국내외 전시가 잡혀 있고, 전속화랑 간, 그리고 경매회사 간 경쟁이 가열되고 있어 2015년에도 단색화 열풍과 변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술품 수출입은 전년대비 감소
미술품의 수출입은 2013년에 비해 다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 미술품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2013년보다 수출이 39% 감소하고, 수입 역시 5% 감소했다. 총액만 발표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전년에 비해 회화와 판화의 수출은 줄고 조각은 증가했다. 그리고 회화의 수입은 줄고 판화와 조각의 수입은 증가했다.

미술시장 회복기 펀더멘털 강화, 정부와의 협력 필요
2014년은 중견작가와 원로작가, 그리고 해외 유명작가를 중심으로 화랑 전시가 재개되고, 기존의 아트페어와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후원하는 신설 아트페어가 증가하여 경쟁 양상을 보였다. 미술시장에서 가장 먼저 경기 변동을 느낄 수 있는 경매시장이 낙찰률과 낙찰총액에서 모두 호전되어 미술시장의 회복을 알렸다.
2015년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오랜 침체 후에 찾아온 경기 회복을 더욱 가열하고 호황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시장의 체계화, 전속작가제와 작가 관리 정착을 통한 신뢰성 제고, 작가와 딜러 육성, 비평 구축, 세계화, 시장 질서 준수, 그리고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나타난 작가 재조명과 단색화 이외의 미술운동 및 개별 작가 연구에 대한 투자와 출판 등을 통해 펀더멘털을 강화해야 한다. 투자 확대와 장기 투자를 위해 문화융성을 내세운 정부와의 협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

서울옥션 경매 광경. 서울옥션과 더불어 한국 양대 경매회사인 K옥션의 회당 낙찰가 총액이 40여억 원을 넘었다. 사진 서진수

서울옥션 경매 광경. 서울옥션과 더불어 한국 양대 경매회사인 K옥션의 회당 낙찰가 총액이 40여억 원을 넘었다. 사진 서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