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먹고, 요리하고, 예술하라

9월호 특집

Eating well with Artist
지금까지 음식과 시각미술을 둘러싼 다양한 조합을 살펴봤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내용은 작가의 밥그릇이다. ‘먹는다’는 말은 행위를 넘어 ‘삶’ 그 자체를 의미하고도 한다. 예술가는 어떤 방식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가. 사회는 예술가의 밥그릇을 들여다본 적 있는가.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자.

화가의 ‘밥그릇을 부탁해!’

배종헌 작가

대학시절 친구 두 명과 함께 어느 초등학교 강당의 대형 입간판용으로 벽화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벽화 비용은 하루 만에 작업을 끝내야 하는 정도였다. 단시간에 작업을 하기 위해 미리 도안이며 재료를 준비해두고 작업 당일 아침 일찍부터 어둑해질 때까지 거의 쉼 없이 일했다. 일이 끝날 즈음, 교감선생님이 오셔서 벽화를 살피시며 한 마디 하셨다.
“칠이 벗겨지거나 하면 곤란한데 이거 얼마나 갈까?”
“글쎄요. 1, 2년은 갈 거예요.”
그 말을 들은 교감선생님은 더 오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셨고, 우리는 고심 끝에 코팅을 하면 벽화가 좀 더 오래 보존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교감선생님은 서비스로 내일 한 번 더 와서 그렇게 해달라고 하셨다. 우리는 추가로 발생하는 재료비며 우리 인건비는 추가 지급될지 여쭈었다. 그때 그 교감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예술을 한다는 학생들이 벌써부터 돈을 밝혀? 순수해야지. 예술 하면서 돈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예술가의 밥그릇은 밥 없이 예술만으로 채워져야 옳고 예술가의 밥그릇에 밥을 담으면 그것이 순수하지 못한 것인지. 나는 나의 밥그릇을 한없이 들여다본 적이 있다. 내가 매일 끼니를 해결하는 그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밥그릇과 국그릇으로 이래저래 탐색을 해보았다. 밥그릇 위에 국그릇을 덮어씌워 밥그릇을 숨겨 보기도 하고, 몇몇 하찮은 측정도구로 밥그릇의 두께며 크기 등을 측정해보기도 하였으며, 밥알을 그릇 안쪽에 일렬로 붙여 밥그릇이 몇 밥알 크기인지 재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를 하여도 예술가의 밥그릇은, 예술가의 국그릇은 내 뱃속에서 울리는 허기를 채워주는 데에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진짜 밥을 퍼서 밥그릇에 담아 내 목구멍으로 넣어야 비로소 배가 불러졌다.
서양미술사에서 음식이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었을 때, 거기엔 인간의 부질없는 탐욕을 경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배웠다. 왜냐하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쉬이 부패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고야 말 덧없는 인생의 무상함을 상징함과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절제된 삶을 요구하는 작품들로 읽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상징성과 교훈적 메시지는 칼뱅이즘(Calvinism)이 주름잡던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에 담긴 전형화된 의미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당시 네덜란드인의 식탁은 비교적 풍성했으리라. 17세기 세계적 지위의 상징이던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를 거점으로 한 회사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네덜란드는 무역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칼뱅이즘은 교회에서 성상 숭배를 금기시하였으니 화가들은 절제를 중시하는 당대의 종교적 입장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장면을 원하는 자본가의 눈높이에 맞는 그림을 그려 생존하였던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음식정물화를 무상(無常)의 알레고리 정도로만 읽는 것은 작품 자체에 머문 감상적 이해의 차원에 머무는 것과 같다. 당시 화가들은 교회의 주문이 끊어진 것을 대체하기 위해, 다시 말해 먹고살기 위해 그와 같은 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음식정물화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대한민국. 오늘 우리의 TV프로그램들은 온통 ‘먹방’ 잔치다. 한국 기업들의 위기, 청년실업 문제, 은퇴 후 노후자금 문제 등 온통 생존의 위기의식이 뉴스를 장식하는 이때에 말이다. 그 틈바구니 속에는 분명 예술가들의 삶도 있다. 사실 예술가는 언제나 경제적 위기를 겪어왔다. 하지만 예술가의 굶주림을 빈곤으로 보지 않고 예술의 양분으로 치켜세웠기에, 빈곤한 예술가는 배고프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술가에게도 냉장고가 필요하고, 배를 채울 양식이 필요하다. 이것은 예술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대다수 예술가의 냉장고 속은 참으로 궁색하기만 하다. 어느 TV프로그램처럼, 이런 보잘것없는 예술가의 냉장고 속 재료들로라도 건강한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레시피는 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TV에서 놀라운 기지를 발휘해서 능력을 과시하는 그런 셰프들처럼 예술가의 빈곤한 냉장고를 열어 감탄스러운 음식을 만들어줄 예술가의 셰프는 없단 말인가.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들처럼 스스로 변해야 하는 것일까. 졸업하면 작품 활동과는 무관한 전혀 다른 진로를 탐색하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의 예비 예술가들을 나무랄 자격이 나에겐 없다. 새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속 감자가 목이 메게 절박하게 느껴진다. ●

배종헌 02

배종헌 〈다 먹다〉 밥그릇 국그릇과 측정도구 1998

배종헌 〈밥_그릇〉 밥으로 만든 밥그릇 2001

배종헌 〈밥_그릇〉 밥으로 만든 밥그릇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