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토픽] 미디어아트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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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화│백남준아트센터 학예팀장

지난 2월, 도쿄의 롯폰기와 에비스에서는 미디어아트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두 개의 전시 <일본문화청미디어예술제(Japan Media Arts Festival, 이하 ‘미디어예술제’)>와 <에비스영상제(The Yebisu International Festival for Art & Alternative Visions)>가 열렸다. 한국의 문화부에 해당하는 일본 문화청과 국립신미술관에서 작품을 주최하고 <미디어예술제>는 아트,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 만화의 4개 부문에 걸쳐 공모를 받고 수상자를 선정하는 콘테스트 형식을 취한다. 미술관에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전시에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포함되는 경우는 많지만 엔터테인먼트부문이 공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디어예술제>의 이러한 장르적 특성은 미디어아트를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및 컴퓨터, 그 외의 전자기기 등을 이용한 예술”로 정의한 일본의 ‘문화예술진흥기본법’ 덕택에 가능한 것으로, 이는 <미디어예술제>에 대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는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미디어아트에 관한 정의에 긍정적인 이들은 실험적인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에 경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하는 이들은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문화의 산업적인 특성만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미디어예술제>에는 또 다른 비판이 가해지고 있는데, 두 번째 논쟁은 심사위원 구성과 관련되어 있다. 주최 측은 이번 대회에 84개국의 4,327점이 출품되었고 이 중에서 일본 출신 아티스트의 작품이 2,000점이라는 사실을 들어 예술제가 국제적인 행사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술제의 심사위원이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수상작 선정에 있어서 자국 작가의 작품과, 일본의 문화적 감수성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해외 참여자의 작품이 유리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이 점은 애니메이션부문의 대상 수상작으로 14년 만에 해외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사실로도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 진정한 국제행사가 되려면 이제 절반이 넘는 해외 참가자들에게 공정한 잣대를 제시할 수 있도록 심사제도의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같이 겉으로 드러난 문제점과 몇 십 년 만에 도쿄에 내린 폭설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예술제> 는 줄을 서서 봐야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심지어 출품작에 비해 전시 공간이 비좁을 뿐만 아니라, 공간 구획 없이 모든 작품을 한 장소에 모아놨기 때문에 작품 감상이 쉽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전시 이외에도 백남준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의사”라고 칭한 엔지니어 슈야 아베의 공로상 수상 기념 심포지엄 <엔지니어링! 백남준>을 비롯하여 스크리닝, 토크, 워크숍 등의 부대 행사에도 많은 청중이 참석하였다. 이처럼 수많은 관객의 자발적인 참여는, <미디어예술제>가 애니메이션부문 우수상을 받은 히데아키 안노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Q>와 만화부문 대상작인 히코 아라키의 <죠죠의 기묘한 모험 8부>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작가들의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인으로 미디어아트 전반에 대한 일본인의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들 수 있다.
올해 아트부문 대상을 수상한 카르스텐 니콜라이는 알바 노토(alva noto)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알려진 노이즈 음악가이도 하다. 기술적인 장치를 이용하여 사운드와 비주얼을 결합한 작품을 제작해온 니콜라이의 은 텔레비전 모니터에 자석을 대고 움직이거나 코일을 부착한 후 전기를 흐르게 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던 백남준의 실험 TV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작업이다. 벽면에 설치된 4개의 네온 튜브에서 발하는 빛이 카메라를 통하여 CRT 텔레비전에 전달되면, 텔레비전 모니터에는 4개의 선이 나타난다. 이 선들은 천장에 매달린, 끝 부분에 자석이 부착된 기다란 추가 불규칙적으로 모니터 위를 움직일 때마다 색채와 형태가 왜곡되고, 이러한 자기장의 파동은 사운드 시스템으로 전달되어 소리를 발생시킨다. 작가가 와타리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백남준 추모 콘서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는 이 작품은 그동안 소개된 니콜라이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대상은 이란 개별 작업이 아닌, 예술과 과학을 가로지르며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쳐 온 아티스트 니콜라이에게 수여된 것으로 보였다

 

다른 컬러, 동일한 컬러, 그리고 세계화

대상 수상작 보다 관객들을 집중시킨 작품은 심사위원 추천작으로 전시된 에이 와다의 이었다. 구형의 오픈 릴(open reel) 자기(磁氣) 녹음기를 사용한 작품과 퍼포먼스를 꾸준히 진행해 온 와다는, 앞면에 투명한 아크릴이 부착된 4개의 높은 단 위에 자기 녹음기 한 대씩을 설치하였다. 4대의 자기 녹음기에 부착된 릴이 회전함에 따라 릴에 감겨 있던 자기 테이프가 풀려 나가고, 풀어진 테이프는 추상적인 형상을 만들면서 단 속으로 떨어진다. 자기 테이프가 끝까지 풀린 순간 릴이 반대로 회전하기 시작하고, 이어서 테이프는 릴에 다시 감겨 올라가게 되는데, 이처럼 조금 전과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 동안 테이프에 녹음된 음악이 큰소리로 재생되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 작품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용도 폐기된 테크놀로지의 산물에 새로운 기술을 덧대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다른 매체로 변환시킨 와다의 재능은, 이미 오래된 텔레비전의 내부를 조작하여 텔레비전을 드럼과 같은 악기로 변모시킨 전작 <브라운 튜브 재즈 밴드>(2010 일본문화청미디어예술제 우수상 수상작)에서 빛을 발한 바 있다.
<미디어예술제>의 출품작들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두거나 직접적으로 움직임을 연출하는 특성을 보이는 반면, <에비스영상제>에 소개된 작업은 대부분 사진, 비디오, 필름과 같이 미디어아트의 역사에서 ‘고전’의 영역에 속하는 매체들로 표현되었다. 도쿄도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인 만큼 매체의 형식보다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에 중점을 둔 이 영상제는, 매년 동시대의 상황을 드러내고 삶의 다양성을 탐구하는 주제에 맞춰 작가를 선정하는, 지극히 전통적인 주제전이자 그룹전의 형식을 띠고 있다.
<제6회 에비스영상제>의 <트루 컬러(True Colors)전>은 세계(globalization)라는 익숙한 주제를 선택한 만큼 얼마나 참신한 이야기를 끌어내는지가 관건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획자는 18명의 작가(팀)가 참여한 전시 이외에도 심포지엄, 토크, 강연, 그리고 15종류의 스크리닝 프로그램과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서 열린 시징맨의 퍼포먼스를 통해 세계화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대변하는 무대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페스티벌 디렉터인 히로미 기토자와가 세계화에 대하여 언급하려는 내용은 전시 제목인 <트루 컬러>에 대한 해석, 즉 본성·본색·개성의 의미를 지닌 ‘트루컬러’가 다양한 국가와 인종을 배경으로 동시대에 공존하는 각기 다른 문화·전통·사상·자연환경 등을 제시하는 데 적합한 단어라는 언급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전시 작품들 중에서 색색의 페인트를 칠한 오래된 건물들을 촬영한 앙리 살라의 <내게 색채를 줘>는 기획자가 의도하는 세계화와 지역화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 세계화로 인한 예기치 못한 현상 등을 함축적으로 암시한 영상이다. 공산주의 체제가 휩쓸고 간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의 도심 재건사업 중 하나를 촬영한 이 작업은, 자유가 주어진 사회에서 오히려 지역적 특성과 개별적인 맥락이 사라져가는 역설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내게 색채를 줘> 이외에도 살라의 초기 영상 6점이 스크리닝의 첫 번째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기획자가 살라의 작업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는 사실에서 개인과 전체, 지역화와 세계화와 같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진 양 극단의 개념들이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엉켜있고,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공존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록한 그의 작품들이 <트루 컬러전>의 주제를 포괄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계화의 다양한 양상에 초점을 맞춘 이 전시에는 세계화의 한 측면을 스포츠와 전체주의의 속성에 빗대 표현한 타란 질과 필라 마타 듀퐁의 <실내 체육관>, 카메룬과 에티오피아의 일상을 인류학자의 시각으로 기록한 다이스케 분도, 이츠이 가와세의 비디오와 함께 서양의 시각으로 바라본 아시아의 정형화된 모습을 비판하고 이를 넘어서려는 아시아 출신 작가들의 영상이 다 수 소개되었다. 하지만 각 지역의 특수성에 집중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특히 대형 스크린을 통해 티베트의 종교 의식인 코라의 과정을 고화질로 촬영한 리우(Jawshing Arthur Liou)의 비디오를 보면서, 이 작업이 티베트를 바라보는 기존의 시선에 동의하거나 그 시선을 강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완 출신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작가는 티베트 불교의 성지인 카일라스 산과 컬러풀한 색상의 옷을 입고 황량한 설산을 오르는 순례자들을 공들여 촬영하였다. 하지만 아시아인의 작업임에도 ‘문명화되지 않은, 순수한, 미지의, 성스러운’과 같이 티베트를 떠올릴 때 쉽게 연상되는 형용사들로부터 이 비디오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히려 <코라>는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거나 무시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아시아인인 필자 역시 전 지 구적으로 획일화된 시각에 맞춰 아시아를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세계화의 트루 컬러는 이미 우리를 동일한 컬러로 물들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