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강요배

작가 강요배의 어린 시절 습작부터 최근작까지 총망라된 대규모 회고전이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4월 14일부터 7월 10일까지 ‘시간 속을 부는 바람(The Wind Blowing through Tim)’이란 제목으로 계속되는 이 전시는 오랫동안 작가가 역사와 자연, 그리고 인간을 주제로 탐구해온 리얼리즘 회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제주도 특유의 자연 풍광과 그 속에서 살아온 민초의 삶이 담긴 강요배의 작품세계를 추적한다.

제주의 특수에서 우주의 보편으로

김준기 미술비평,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자연 속에서 삶의 뜻을 찾아온 화가 강요배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렀다. 10대 어린이 시절부터, 20대 청년기, 30대 이후의 구작들과 낙향 이후의 근작들 그리고 최근작들을 망라한 대규모 기획전 <강요배: 시간 속을 부는 바람>은 한 예술가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펼쳐놓은 본격 회고전이다. 우주를 생각하며 자신을 진지하게 성찰했던 청년 강요배의 1970년대 그림들은 물론 성장기의 동심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어린이 강요배의 그림들까지 선보이며, 제주의 역사와 풍경으로 우주와 생명을 이야기해온 예술가의 깊은 세계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어머니의 컬렉션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어린이 강요배의 그림들은 이제는 초로에 들어선 예술가의 삶 전체를 다시 들여다 보게 한다.
청년 강요배의 그림은 중년 강요배와 맞닿아 있다.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현실과 발언’ 동인 활동 전후 작품들을 포함해 1990년대 이후 20여 년간 제주에 살면서 작업한 그의 구작 다수를 만날 수 있어 더욱 뜻깊었다.
그가 첫개인전을 연 것은 1976년 제주시 관덕정 인근 대호다방에서의 일이었다. 이후 40년만에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 것은 제주 예술가 강요배의 세계를 가늠해보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초등학교(초등학교) 시절의 그림이 등장한 것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자화상이나 풍경, 사물, 상상의 세계 등을 그려낸 꼼꼼한 솜씨가 돋보인다. 본격적인 수련기에 접어든 청년 강요배가 문학과 철학에 심취하여 정신세계를 키워가던 시기의 작품들도 매력적이다. 민중미술운동에 뛰어든 20대 청년 강요배는 우주와 자연을 생각하는 태극문양을 비롯한 기하학적 형상들을 이용하여 세계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1980년대의 강요배는 현실 속의 삶을 추적하여 적극적으로 발언하고자했다.그는 민중미술의 전형성 가운데 하나인 전통회화의 형식과 내용을 차용한 그림들로 당대의 경향을 대변하고 있다.
민중미술 1세대 화가로서 그는 현실과 발언 동인 활동과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그린 화가로 주목받아왔다. 1990년대 초까지의 그가 제주의 역사를 그렸다면, 이후의 그는 제주에 귀향하여 제주의 자연을 그렸다. 낙향하기 이전의 강요배는 서울에 머물면서 제주도 4?3항쟁을 담은 역사화를 그려냈다.
그것은 꼼꼼한 현장 취재를 할 여력이 없어, 매우 제한적인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들을 토대로 일군 성과라는 점에서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화가도 서사적인 회화, 특히 풍경과 사건을 다루는 그림에서 필수불가결한 시각자료들의 결여를 딛고 장중한 역사화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만큼 강요배는 어린 시절부터 온몸으로 체득한 제주의 풍경과 서사를 충만한 에너지 저장소에 담아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1992년 이후의 강요배는 제주에 살면서 제주 전역을 답사하며 땅과 바다와 하늘의 뜻을 담아냈다.
제주의 시공간은 그에게 ‘시간 속을 부는 바람’이라는 전시명이 드러내듯 우주적 관점의 성찰을 가져다 주었다. 예술적 표현은 예술가 개인의 자아주체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예술적 근대주의의 근본이다. 강요배는 예술에 대한 이 근대적 신뢰로부터 출발한다. 강요배의 예술은 철저하게 예술적 자아의 발현으로서, 자연과 생명, 역사 그리고 우주를 객관대상으로 삼은 비판적 주체로서의 예술가 정체성으로부터 나온다. 비판적 예술의 제1상수는 이러한 성찰의 주인공인 예술가 주체의 자아다. 우리가 강요배의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 강요배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의 그림에는 제주가 녹아 있다. 제주는 강요배 예술의 상수다. 제주의 강요배와 강요배의 제주를 들여다 보는 것은 강요배 예술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유년기의 기억으로부터 청년기의 학습과 중년기의 성찰을 아울러 그가 품어온 제주는 우주적 세계관으로 나아가는 창이자 우주 그 자체다.
그는 제주를 중심으로 우주를 성찰해왔다. 그의 세계관은 물질과 생명 양대 축으로 진화하는 우주의 공진화를 좇아 생성과 사멸의 이치를 생각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운동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타고 시간 속에 부는 바람처럼 세계 이해에 다가서려는 부단한 여정이 강요배의 삶과 예술이다. 그는 한 줌의 흙과 풀 한 포기, 그리고 한줄기 바람에서 인간과 자연, 생명과 우주를 생각하며 화가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강요배의 세계관은 민중미술 1세대로서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모종의 부정적 독해를 불러오곤 했다. 일각에서는 제주도 낙향 이후 동시대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발언을 뒤로했다는 점을 들어 민중미술의 퇴행으로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를 넘어서는 총체적 관점으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한다면, 우리는 강요배라는 한 화가의 세계를 더욱 웅숭깊은 우주예술의 시각에서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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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강요배: 시간 속을 부는 바람> 전시광경

리얼리즘회화를 넘어서
적지 않은 수의 민중미술운동 당사자가 보여준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경향을 리얼리즘 관점의 퇴행으로 보는 시각은 강요배의 경우에도 예외일 수는 없었는데, 이번 전시에서 나타나듯 강요배는 청년시절부터 일관되게 자연과 인간 삶을 총체적으로 집약한 우주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제주도에서의 그의 삶과 예술은 인간 강요배의 성정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세계는 한 시대의 대세를 이룬 특정 예술이념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애초에 그를 길러낸 제주의 자연과 역사가 그에게 안겨준 근본 성정을 풀어낸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청년 강요배의 <태극도>, <생존>, <나비> 등의 작품들은 생명과 존재에 대한 우주적 관점의 세계 이해를 모색하고 있다. 강요배는 30여 년 전의 화두를 다시금 본격화하고 그것을 고도의 추상화 전략으로 풀어내고 있다. 세계관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공시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바탕을 둔다. 나아가 시간의 축선을 타고 흐르는 통시적 관점의 세계이해를 결합한 강요배의 예술은 풍경화의 영역을 역사적 풍경화로 확장하면서 우주적 관점의 세계이해로 진화해왔다. 그의 진화는 더욱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 오랫동안 형상회화를 그려온 강요배는 근년에 들어 추상화(化)를 언급해왔다. 몇 해 전부터 그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추상화 과정’이라고 언급하며 지금까지 펼쳐온 형상과 서사의 세계에 모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예시하곤 했다. 그가 말하는 ‘추상화 과정으로서의 그림’은 세계이해의 지평을 화면 위에 나타내는 인간의 목적의식적인 행위로서의 그림에 대한 정의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근작들에서 펼쳐지고 있거니와 향후 작업의 본격적인 향배로 보인다. 물과 불 같은 세계 구성의 근본 물질을 다룬다거나, <구름이 하늘에다>와 같이 푸른 하늘에 나타난 뭉개구름 토끼구름을 그려내는 일은 순수한 동심의 표현이 아니라 매우 대담한 도발에 가깝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온 자연과 역사 같은 거대서사를 이렇듯 유머코드로 풀어낸다는 것은 그림의 뜻에 대한 그의 말과 흐름을 같이하는 일이다. <청시창>이나 <답청> 같은 작품에서 나타나듯이 최소한의 형상과 색채로 사물과 사건의 깊은 뜻을 담아내려는 시도에서도 그렇다. 그것은 사물에 담긴 간명한 뜻이나 인간행위가 남긴 최소한의 흔적을 포착하여 은밀하면서도 치명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고도의 추상화 전략이다.
이 전시는 강요배의 그림에 따라붙는 제주의 자연과 역사라는 수사를 확인하는 장이면서, 동시에 그렇듯 지역적 특수성의 국면으로 치달아온 그의 삶과 예술을 우주적 보편성의 차원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예술을 위해 투신하는 것이라거나, 그 반대로 그의 예술이 자신의 삶을 규정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그의 삶인 삶과 예술의 불이(不二)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발 디디고 살아온 땅의 역사를 안고, ‘시간 속을 부는 바람’을 잡아내고자 했다. 나아가 그는 그 부는 바람 속에서 우주의 이치와 생명의 이치를 찾아내고자 했다. 우주를 품은 그의 보편적 가치 지향은 제주라는 특수한 현실 지평에서 한층 더 풍부한 감성학의 세계로 진화하고 있다. ●

강요배  Kang Yobae
1952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 제주 대호다방에서 첫 개인전 <각(角)>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5회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예술상(1998), 제27회 이중섭미술상(2015)을 수상했다. 현재 제주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