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설마! 오비이락(烏飛梨落)? 언론 길들이기? 블랙리스트? 검열? 찍어내기? 갑질?… 글을 쓰는 지금, 머릿속에 두서없이 떠오르는 말들이다. 2016년 1월호 브리핑 제목이 ‘두고 봅시다!’ 였다. 그런데 정말 두고 볼 일이 벌어졌다. 그때 브리핑 맞은편 페이지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미술인 550명의 실명이 실린 이 광고의 주된 내용은 마리 관장의 검열 의혹에 대한 입장 표명과 검열반대 윤리선언 요구였다. 에둘러 말하지 않겠다. 2017년부터 《월간미술》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광고가 사라졌다. 2016년에는 총 14페이지에 걸쳐 광고가 게재됐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까지 광고가 없다. 지난 3월 중순, 광고팀장이 나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저~, 편집장님 좀 이상해요… 국립현대미술관,… 다른 잡지는 광고가 들어왔다는데…, 이번 달에도 《월간미술》 광고는 아직 결정된 게 없대요…, 혹시 마리 관장 사임하라는… 편집장님 브리핑 때문에…” 순간 설마 했다. 그러면서 나는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절대 아니에요. 아마 요즘 광고할 만한 좋은 전시가 없어서 그렇겠죠.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라고 답했다. 그런데 설마 했던 일이 정말 생겼다. 끝내 이번 달에도 국립현대미술관 광고는 없다. 마감 직전,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근무하는 몇몇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광고팀장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조심스레 물어봤다. 처음엔 모두 약간 놀라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해다. 그럴 리 없다”고 딱 잘라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급이 높은 학예사 한 사람은 이 문제는 홍보부서 소관이라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관장을 나가라고 해놓고 광고를 기대하냐”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나는 지난 2016년 12월호 마리 관장 인터뷰 일정을 잡아 준 홍보부서 책임자와 통화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의 문제 제기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신경 쓰겠다”는 말만 되뇌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월간미술》에 광고를 꼭 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반드시 《월간미술》에 광고를 할 의무도 없다. 어떤 매체에 광고를 하고 안 하고 판단하는 건 100% 미술관 몫이고, 미술관의 자율적 판단 기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 《월간미술》에 몇 개월 동안 광고를 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떼쓰는 게 아니다. TV나 신문처럼 미술잡지 역시 광고주와의 관계로부터 일정 부분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광고주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편향되지 않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분투해
왔다. 그런데 2016년 12월호 브리핑에서 내가 마리 관장에게 사임을 요구한 이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여러 정황상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그래서 의구심이 든다. 결국 나의 의문과 문제 제기는 이렇다. 첫째, 과연 마리 관장은 이런 일을 정말 모르고 있을까? 둘째, 그렇다면 광고게재 결정권을 쥔 홍보부서 책임자 개인의 갑질인가? 셋째, 이도 저도 아니라면 외국인 관장에 대한 심기 경호 차원에서 빚어진 간부급 행정직, 학예직의 과잉 충성 때문이란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내 매체 광고비를 줄이는 차원에서일까? 참고로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예산은 지난해보다 45% 늘어난 225억 원이 증액됐다. 이 가운데 전시예산은 15억 원이 늘어났다. 요즘 워낙 경기가 안 좋아 운영예산을 대폭 줄인 대부분 사립미술관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신규 사업인 ‘마리 프로젝트’에는 총 42억을 확보했다. 주요 예산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공공프로그램 4억, 다국어출판 3억, 해외교류전시 13억, 디지털 고객서비스 7억, 야외프로젝트(덕수궁관 5억, 과천관 10억) 15억 예산이 들어간다.” – 《아시아 경제》 2016년 12월 5일 기사 인용
여하튼 만약 관장이 이런 정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반대로 관장이 이 일을 모두 알고 있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광고게재를 무기로 삼아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을 통제하고 길들이려 한 부하직원의 권력남용을 방조하고 묵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리 관장은 홍보부서 직원과 공범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검열 의혹 전과가 있는 마리 관장은 한국에 와서도 결국 ‘제 버릇 개 못 준’ 꼴이 되는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이런 미술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미술 언론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애써 부인하고 싶지만 국립현대미술관과 《월간미술》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금 이 정황이 최근 몇 개월 동안 언론에 의해 드러난 국정농단 사태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고 책임자는 모르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부인하고, 실무자는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라고 둘 다 발뺌 한다면 말이다.
앞서 마리 관장은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비전과 중점 추진사업을 발표했다. 한국미술의 국제적 위상 강화를 내세우며 출판과 해외 홍보에 중점을 두겠노라 역설했다. 이런 전략에서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홍보업무가 일원화된 걸로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해외 홍보를 위해 국내 홍보가 상대적으로 위축되거나 소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그 자리에서 마리 관장이 자랑하듯 발표했던 앤디 워홀 전시가 소리소문 없이 취소됐다. 이후 전시가 무산된 이유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이나 사후조치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거창하고 번지르르하게 계획을 발표하고, 진행하다가 안 되면 말고 하는 식이다. 서울관 운영부장도 제 맘대로 사표를 던지고 미술관을 떠났다.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어떤 평가나 책임추궁 역시 없다.(마리관장 사임 요구와는 경우가 다르다) 이뿐만 아니다. 들리는 소문엔 역시 마리 관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전시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도 개막을 코앞에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국립현대미술관과 관련된 일에 마리 관장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총체적 난국이다. 언제까지 이 지경이어야 하는가? 표류하던 국립현대미술관이 지금 침몰하고 있다.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하루빨리 건져 올려야 한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