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캐슬린 킴의 예술법 세상 19]

 


예술품 절도범들은 재산을 훔치는 것이 아니다 

캐슬린 김 | 미국 뉴욕주 변호사, 홍익대 겸임교수

마리 로랑생 〈Group of Artists〉 캔버스에 유채 65.1×81cm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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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의 한 구절이다. 현재 예술의전당에서는 〈마리 로랑생전〉이 열리고 있다.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에 얽힌 이 시의 사연을 아는가. 두 사람의 이별에〈모나리자〉 절도 사건이 있다.

파리 몽마르트 시절 파블로 피카소와 아폴리네르는 서로 예술적 영향을 주고받던 막역한 사이였다. 아폴리네르는 《큐비스트 페인터》라는 비평서까지 출간하며 피카소의 새로운 시도를 옹호했다. 로랑생을 아폴리네르에게 소개해준 이도 피카소. 이렇게 시작된 아폴리네르와 로랑생 간의 사랑이 어떻게 해서 이별로 이어졌을까. 세 사람의 우정과 사랑과 이별은 절도 사건과 어떻게 관련됐을까.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은 폴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The Bathers)〉과 고대 이베리아 석상이 영감의 원천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베리아 석상이었다. 피카소는 아폴리네르의 조수 게리 피에레로부터 이베리아 석상 2점을 구입했다. 하필 석상은 피에레가 루브르 뮤지엄에서 훔쳐온 것이었다.

1911년 8월 22일 오후, 루브르에서 〈모나리자〉가 사라졌다. 어느 미국 유학생이 여느 날처럼 〈모나리자〉를 보러 갔는데 벽이 휑했다. 뮤지엄 측이 찾아낸 것이라곤 층계참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액자와 유리 케이스뿐. 파리가 발칵 뒤집혔다. 놀랍게도 피카소와 아폴리네르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조수 피에레의 진술 때문이었다. 지레 겁을 먹은 피에레는 언론에 대고 자신이 루브르에서 이베리아 석상을 여럿 훔쳤고, 이 중 둘은 친한 예술가에게 팔았다고 자백했다. 그저 자신이 〈모나리자〉 절도범으로 몰릴까봐 한 자백이었다. 경찰은 피에레의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아폴리네르가 루브르의 경비가 허술하다는 내용의 언론 기고문을 쓴 사실이 확인됐다. 그래서 먼저 아폴리네르를 소환했다. 피에레가 훔친 석상을 구입한 피카소 역시 경찰에 소환됐다. 둘에 대한 대질신문이 벌어졌다. 아폴리네르는 피카소가 석상을 구입한 건 맞지만 훔친 물건인 줄은 몰랐을 것이라며 피카소를 방어했다. 그런데 피카소는 그게 아니었다. 그는 아폴리네르를 전혀 모르노라고 잡아뗐다. 둘은〈모나리자〉 절도범이 아니었기에 얼마 후 풀려났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회복될 수는 없었다. 피카소의 소개로 사랑에 빠졌던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의 관계도 그러했다. 그렇게 사랑은 흘러만 갔다.

그렇다면 〈모나리자〉는 누가 훔쳤을까. 범인은 〈모나리자〉의 유리 케이스를 제작한 이탈리아 출신 빈첸초 페루자와 그의 동향 친구였다. (사실이 아님에도) 나폴레옹이 약탈해갔다고 믿은 이들은 이탈리아의 보물을 다시 고국으로 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피렌체로 가지고 갔다. 페루자는 곧 체포됐지만 이탈리아에서 영웅이 됐다. 이탈리아 정부도 〈모나리자〉는 반환했지만 페루자의 송환은 거부했다.

세계 각지의 도난 예술품을 등재하는 ‘도난예술품등록부(ALR: Art Loss Register)’가 있다. 목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회화나 골동품이다. 저명한 예술품일수록 관리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도난품 중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오는 작품 비율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다시 시장에 나올 때까지는 망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가 피렌체에서 모습을 드러내듯 도난 예술품은 대개 다른 나라에서 발견된다. 예술품 전문 절도범들은 작품을 장물업자에게 넘기고, 업자들은 다시 외국으로 되판다. 도난 예술품에 국경은 없다.

절도범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예술가가 있다. 바로 ‘피카소’다.작품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 도난당한 피카소의 작품은 집계된 것만으로도 1000점이 훌쩍 넘어선다. 생전에 피카소는 작업실에 도둑이 드는 경우를 대비해 판매가 결정될 때에 비로소 서명을 했다. 지난 2월 18일 미국 밀워키에서 피카소의 작품이 또다시 절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작품은 초상을 담은 1929년작 판화로 시장가는 약 5만 달러로 추정된다. 예술품 가치평가사가 소장하던 작품인데 잠시 고객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피해자는 절도범을 두고 ‘행운아’라고 비아냥댔다. 작품에는 가격이나 가치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부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단순 절도범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 절도범도 판화의 오른쪽 하단에 녹색 크레용으로 쓴 “Picasso”라는 서명을 놓쳤을 것 같지는 않다.

일반적 의미에서 절도죄는 재산범죄다. 재산적 가치, 즉 돈을 훔치는 범죄다. 그런데 환금하기 쉬운 금반지나 시계도 아니고 왜 하필 유명 예술작품일까. 예술품 절도범들은 왜 하필 팔기도 어렵고, 세상의 주목을 받는 바람에 붙잡히기도 쉬운 예술품을 훔칠까.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는 억만장자이자 예술애호가인 주인공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훔친다. 그러고는 며칠간 집에서 감상한 후 다시 뮤지엄에 잠입해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주인공에게는 유명한 그림을 훔치는 행위 자체가 짜릿한 유희다. 앞선 〈모나리자〉 절도 사례는 낭만적 애국심의 발로다. 최근 미국에서는 임대 전시 중이던 중국 진시황릉 병마용의 왼쪽 손가락이 절취당한 사건이있었다. 범인은 뮤지엄에서 열린 파티 참석자였다. 그는 폐장한 전시장에서 병마용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고, 곧바로 체포됐다. 과도한 자기현시욕이었을까. 중국 정부는 강력한 처벌과 손해배상을 촉구하고 나섰다.

렘브란트의 〈야코프 데 헤인 3세의 초상화〉는 같은 작품이 네 번이나 도난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이 두 번째 도난당한 때는 런던의 덜위치 미술관이 개장한 대낮이었다. 비상이 걸린 직원들이 용의자를 찾기 위해 근처를 수색했다. 그러다 미술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를 싣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의심쩍은 사람을 발견했다. 자전거를 세운 직원이 싣고 가는 네모 모양의 물건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렘브란트의 초상화라고 답했다. 그림이 좋아 보여 복사본을 한 장 만든 다음 다시 미술관에 가져다 놓을 계획이라 했다. 천연덕스럽게 뭐가 문제냐며 반문했다. 자신은 훔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잠시 빌릴 생각이었다며 끝까지 고집하는 바람에 기소조차 할 수 없었다.

명화가 갖는 상징성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이들도 있다. 1994년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미술관에서 뭉크의 〈절규〉를 훔친 이들은 조직폭력배였다. 〈절규〉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두목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아이를 납치해 돈을 요구하는 유괴범죄(kid – napping)가 있다. 외국에서는 이런 범죄를 ‘예술품 납치(art – napping)’ 범죄로 다룬다. 이렇듯 예술의 다양성만큼이나 예술품 절도범죄는 다양하고 역시 그 다양성만큼이나 범죄의 동기 또한 극적이며 각양각색이다.

예술품 절도범이 훔친 예술품(장물)을 자신이 소장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유통시키게 된다. 이렇게 절도 범인으로부터 장물을 매수한 예술품 소장자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훔친 예술품인 줄 알고 구입했다면 당연히 장물취득죄(형법 제362조)가 성립할 것이다. 범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도 저지른 고의 범죄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이렇듯 우리 형법은 고의범을 처벌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런데 몇 가지 경우에는 지극히 예외적으로 과실범죄도 처벌한다. 교통사고가 대표적이다. 누가 교통사고를 내고 싶겠는가. 그런데 잠깐 주의를 게을리 해서 발생하는 사고가 바로 교통 범죄다.

장물 범죄에도 그런 엄격한 주의 의무를 부과한다. 훔친 물건이 함부로 유통되게 되면 결국은 절도 범죄를 고무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실장물죄(형법 제364조)가 있다. 예를 들어 훔친 예술품을 구입한 소장자가 있다고 하자. 사실 전문가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팔러온 사람의 신분을 통해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장 경위 등을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눈감고 가격을 후려쳐서 구입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때는 과실장물취득죄에 해당할 수 있다. 정말 장물인줄 모르고 구입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민법상의 문제로 돌아간다. ‘선의취득’이라는 법리가 있다. 지면 관계상 이 부분은 서술하지 않겠다. 이렇듯 예술품을 훔치더라도 유통을 엄격하게 차단해서 절도 범죄의 횡행을 막고자 하는 것이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라의 형법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뮤지엄이 장물 스캔들에 휩싸였다.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작품이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도굴 또는 약탈, 절취된 것이며 뮤지엄 측은 이를 알고도 장물 거래상으로부터 구입해 전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탈리아 정부는 게티 소장품 가운데 42건이 이탈리아에서 불법적으로 넘어간 장물이라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정부와 뮤지엄 측은 공동 조사를 통해 순차적으로 반환키로 합의했다.

2012년 10월 서울 소재의한 갤러리에서 소개한 사람을 통해 강원 삼척시 어느 절에서 1993년 도난당한 〈영산회상도〉를 2억1000만 원에 사들인 사립미술관장이 있었다. 문제의〈영산회상도〉는 조계종 도난백서에 도난품으로 등재되어 있던 작품이었다. 검찰은 관장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및 장물취득 혐의로 기소했다. 2016년 1,2심 법원 모두 문화재보호법 위반은 유죄로 인정했다. 그런데 〈영산회상도〉에 대한 장물취득 혐의는 장물성에 대한 소명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전체를 검토하지 않아 판단하기 어렵지만 검찰이 입증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음을 지적한 판결로 읽혔다.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창작적 표현을 훔치면 그때는 범죄다. 저작권법 위반이 된다. 그다음으로 예술가의 창작 예술품 자체를 훔치면 그때는 형법상 절도죄를 구성한다. 예술가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예술형사법의 기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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