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6 우정수

우정수 (1)

믿음이 가라앉은 혼돈의 시대

“나는 인간들로서는 파헤치지 못할 한 수수께끼의 과정을 풀었고, 그리고 그것을 기록했다. 이성의 탐구 정신에 따른 하나의 행운. 그러나 어떤 정황들은 내가 그런 무시무시한 특별대우를 받았으리라는 점에 의구심을 갖도록 만든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과연 줄기차게 진실을 기록했는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다.”(보르헤스 〈또 다른 죽음〉 중에서)
작가 우정수의 그림에는 책이 등장하지만 책에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는다. 관객은 그가 이야기로 삼은 서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물론 전시 혹은 작품 제목에 늘 문학의 레퍼런스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무너지는 책더미에서 텍스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책뿐만이 아니라 보름달, 원숭이, 부엉이 등 그의 그림에는 수많은 상징물이 등장한다. 마치 중세 기독교 벽화나 네덜란드 정물화에 등장하는 오브제처럼 그의 작업 속 기물은 상징을 해석하기 위한 매개이자 도구이다. 그러나 그 매개의 다중적인 해석 가능성은 관객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집중하는 매개체 중 하나는 ‘책’이다. 그 텍스트를 이미지화 하면서 작가는 현실과 가상 사이를 오가는 교묘한 줄타기를 한다. 이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작가만의 방법일 것이다. 작가는 2015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에서 열린 〈불한당들의 도시〉에서 선보인 작업에서 사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면, 2016년 OCI미술관에서 선보인 〈책의 무덤〉에서는 고질적 사회 부조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바뀔 수 없다는 허망함을 드러냈다. 그는 그동안 사회적 저항의 감정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비록 서브컬처 이미지를 활용할지언정 그의 회화에는 독기 어린 화가 있었고 투쟁의 메시지가 강렬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형지물이 한 공간에 수없이 많이 등장하고 소용돌이치는 〈책의 무덤〉시리즈에서 이전보다 배가된 회화의 역동감이 느껴지지만, 감정적으로는 ‘분노와 열정’보다 무너져내리는 허무함이 포착된다. “과연 이미지가 어떤 힘을 지닐 수 있을까? 억누르지 않고 표출하는 감정표현이 사회적 변화의 불씨가 될 수 있을까?” 작가는 자문했다. 그렇다면 이제 한숨 뱉어낸 듯한 그의 목소리는 어느 지점을 향하고 있을까?
우선 구도에서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거대한 종이를 사용한 〈책의 무덤〉시리즈의 경우 액자 없이 펼쳐진 종이를 사용해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텍스트의 홍수를 표현했다. 그의 그림은 책을 넘기듯 하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마치 두루마리 그림을 펼친 듯 구성의 시작과 끝이 맞물려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의 회화는 평면과 공간, 현실과 가상, 저항과 포기를 동시에 내포한다. 더 나아가 스페이스 BM에서 선보인 신작에선 액자를 그림의 도구로 사용했다. 펼치는 그림과 달리 프레임을 사용해 맺음이 있는 작업을 만들어내면서, 액자의 유리를 사용해 관객의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구도를 택한 것이다.
그가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텍스트에는 현실 같은 허구가 존재했다. 한편 회화로는 전달하지 못하는 진짜 현실이 있다. 그 표현의 딜레마에서 찾아온 허망함이 회화에 대한 절망은 분명 아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의 어느 지점을 부유하던 그는 이제 맺고 끊을 수 있는 회화를 찾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이 세상에 대한 허무주의는 아니길 조심스레 바란다.
임승현 기자

우정수
1986년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사와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과 OCI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7년부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7월 14일부터 8월 14일까지 스페이스BM에서 열리는 그룹전 〈나레이션〉에 참여한다.

〈원숭이도서관〉 종이에 잉크, 아크릴 433×514cm 2015

〈원숭이도서관〉 종이에 잉크, 아크릴 433×514cm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