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EVIEW 진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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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유의 전사> 레진 실리콘 혼합재료 90×140×90cm(높이, 각) 2015 아래 < UFO의 공격을 받은 슈퍼신의 광장> 혼합재료 360×165×50cm 2015 <UFO의 공격을 받은 슈퍼신의 광장>(벽면 설치작업, 부분) 3D그래픽 랜티큘러 79×140cm(각) 2015

5년만에 열린 진기종의 개인전은 <무신론보고서>(갤러리 현대, 2015.12.4~1.3)라는 부제를 달았다. 매스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에 불신 가득한 시선을 보냈던 그가 이번 전시에는 한 치 앞 운명도 예견할 수 없는 인간이 현재 놓인 상황을 집요한 작업방식으로 펼쳐보인다. 그의 작가 노트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과연 신은 존재할까? 그 신이 지명했다는 대리자의 말 또한 진실일까? 인간은 왜 신을 믿을까?” 이 연속되는 질문에 작가가 스스로 한 대답을 들어보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보고서

류한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진기종이 <CNN>을 발표한 것은 2006년이다. <CNN>은 자타가 인정하는 그의 초기 대표작. 플라스틱 거품 사이를 빙빙 도는 비행기, 그리고 엉성한 자막과 CNN 로고. 이어서 그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다룬 <Discovery>와 자연 다큐멘터리의 촬영 과정을 폭로한 <National Geographic>을 연달아 선보인다. 카메라, 모터, 조명, 장난감 등으로 만든 장면이 TV 모니터를 통해 중계되는 구조인데, 관객은 그 기발함과 재치에 절로 미소 짓게 되지만 그가 다루는 주제의 무거움을 알아차리는 순간 웃음기는 싹 사라진다. 완벽한 데뷔.
그의 초기 작업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첫째, 진기종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어떤 상황을 포착했지만, 오히려 그는 카메라 렌즈 밖의 세상에 관심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카메라 앵글 안에서 벌어지는 통제되고 편집된 상황을 끄집어내기 위해 그는 과감히 카메라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둘째, 그는 오브제를 정교하게 만들지 않았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드라마 세트장을 꾸밀 때 너무 잘 만들 필요가 없다. 그저 카메라 렌즈가 소화할 정도로 대상을 재현하면 된다. 어느 수준만 넘어가면 그것들은 진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진기종의 TV 모니터에서도 그럴싸한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그의 오브제를 바라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허술하고 단순한 것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오밀조밀한 것들이 하이테크가 아닌 로테크에 의해 귀엽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이처럼 진기종은 소형 카메라, TV 모니터 등 전자 장비를 활용하여 현대사회의 매스미디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더불어 카메라 앵글 안의 이미지는 언제든 조작될 수 있는데, 그런 조작은 누가, 왜, 어떻게 하며, 또 그것이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지를 다루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이는 사회에 내재한 여러 미시적 힘의 관계를 드러내는 일종의 ‘계보학적’ 접근과 닮아 있다.
카메라를 통해 렌즈 밖 세계를 바라보던 진기종의 작업은 다소 변화를 맞이한다. 그가 카메라의 렌즈가 아닌 맨눈으로 어떤 상황을 바라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디오라마’ 연작이다. 디오라마는 역사적 사건을 미니어처로 재현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CNN>의 경우 역사적 사건을 작은 오브제로 만들었기에 넓게 보아 디오라마로 칭할 수도 있다. 하여튼 디오라마 작업에는 카메라와 모니터가 없다. 그렇지만 디오라마 시리즈에서도 어떤 한 장면을 선택하고 그 장면이 왜 벌어졌는지를 추적한다는 측면에서 앞의 작품과 같은 맥락이다. 단지 카메라와 모니터가 없기 때문에 미디어 비판이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었기에 도리어 사건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디오라마 연작이 처음 소개된 것이 2010년 <지구 보고서> 개인전이다. 작가는 미국 뉴스 방송사 <CNN>과 아랍계 위성방송 뉴스채널 <알자지라>에서 영감을 받아 주로 석유, 전쟁, 환경 등을 다루었다.
이번 개인전 소재는 ‘신’과 ‘종교’이며 전시제목은 “무신론 보고서”이다. 과거 카메라 렌즈로 볼 수 없는 영역을 보고자 했듯이, 계속해서 그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역을 보고자 한다. 그의 신(종교)에 대한 보고서는 대략 세 갈래인 것 같다.

 미니어처보트 PVC필름 영상설치 가변설치 2011

<항해> 미니어처보트 PVC필름 영상설치 가변설치 2011

여행의 종착점은 결국, 인간
첫 번째는 ‘종교와 개인’의 문제이다. 그와 관련된 작업은 <염주와 기도>이며 영상과 입체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니터에는 조계사에 다니는 한 할머니가 등장하고, 그 앞에는 큼직한 염주와 손이 설치되어 있다. 작가는 절에서 염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할머니들이 도대체 어떤 내용을 기도하는지가 궁금했다고 한다. 대략적으로 예상할 수 있듯이, 할머니가 기원한 것은 심오한 불교 교리도 아니고, 국가와 세계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식들이 잘되라는 정도이다. 이는 아마도 교회를 다니거나 성당을 다니는 평범한 어르신들의 기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성직자가 아닌 이상, 평범한 사람이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절대적·형이상학적 신을 믿기보다는 자신에게 필요한 신을 스스로 구성하는 게 아닐까.
두 번째는 ‘종교와 종교’의 문제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려는 미국의 특수부대원과 빈 라덴을 지키려는 알카에다 부대원이 서로 마주보며 각자가 믿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자유의 전사>이다. 이 두 군인은 모두 실물 사이즈로 재현되었고, 이들이 지닌 각종 무기, 장비, 군복 등도 대부분 실물이라고 한다. 단 총은 한국의 사정상 모조품. 첨단장비로 무장한 미군은 오른손에 묵주를 들고 자신이 믿는 하느님에게 기도하고 있다. 반면 재래식 무기를 가진 알카에다 부대원은 오른손에 수브하(이슬람교에서 사용되는 묵주)를 들고 자신이 믿는 알라에게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종교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일컬어진다. 그러면 결국 같은 신에게 기도하는 셈인데, 혹시 이들이 믿는 신은 인간이 스스로 구성한 게 아닐까.
세 번째는 ‘종교와 외계인’이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지구상의 종교들은 대체로, 일부 사이비 종교를 제외하고, 외계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이야기한다. 보통 종교의 절대자는 하늘에 있는 것으로 상정되는데, 그 하늘 너머에 있는 외계인은 그들에게 당황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드넓은 우주에 생명체가 지구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다루는 게 이른바 ‘슈퍼신’ 시리즈이다. 진기종은 이슬람교, 천주교, 기독교(개신교), 불교, 유대교 등을 혼합하여 가상의 신종 종교를 만들었다. 외계인이 지구에 왔는데, 이 신흥 종교의 사제들이 외계인을 공격하고 있다. 아마도 자신들의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외계인을 적대시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외계인들이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다. 분명 지구까지 올 정도면 고등생명체일 텐데 이들은 힘이 없다. 지구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 어쩌면 그들은 지구인을 배척할 생각이 애당초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이번 전시를 보다 보면 반복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구슬’이다. 그것을 가톨릭에서는 묵주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염주라고 하는데, 사실 이슬람교, 힌두교, 그리스정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들이 있고 그 용도도 비슷하다. 전시에서 이 구슬은 일종의 ‘라임(rhyme)’으로서 전시에 시각적 악센트를 주는 동시에 여러 종교를 하나로 묶는 매개체로도 작동한다. <신을 향한 항해>에서 세계 5대 종교의 사제 5명이 한 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런데 사제들의 육체는 없고 휘황찬란한 금빛 사제복만 남아 있다. 금빛. 작가는 대다수의 종교가 금으로 무언가를 장식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의외로 종교들은 서로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명은 ‘무신론 보고서’이지만, 그렇다고 진기종이 신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바라보는 지점은 우리가 신 그 자체에 다가가기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 자신만의 신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물론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환원되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 진기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찾아 여행을 떠났지만, 결국 그의 종착역은 우리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 기 종 Zin Kijong
1981년 태어났다. 경원대 환경조각과를 졸업했다. 200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국내는 물론 타이완, 독일 뒤셀도르프 등지에서 8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한국과 독일, 브라질, 터키,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현재 몽인아트스페이스레지던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