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2016 06 표지_

무엇이 ‘진짜 미술’인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개념미술) 작가 김소라의 전시 소식이었다.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 – 김소라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시각이미지를 배제하고 비물질인 소리만으로 공간을 채운다’고 한다. 헐~~! 나는 아직 이 전시를 못 봤지만 앞으로도 굳이 애써 찾아가서 볼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 뭔가 볼거리가 있어야 가서 보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작가나 미술관 기획자는 “(촌스럽게) 미술을 눈으로만 보려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텅 빈 전시공간을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하세요.”라고 친절하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이메일에 첨부된 보도자료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10대의 스피커에서 퍼져 나오는 각기 다른 소리는 텅 빈 전시 공간을 채우면서 그 파동과 흐름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한다. 관람객은 때로는 단일한 소리의 울림을 때로는 서로 섞인 소리와 마주하면서 청각적 경험을 넘어 촉각적, 신체적으로 지각하게 된다. 이와 함께 논리적인 연속성 대신 자유롭게 교차된 비언어적인 소리는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과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소리, 신체, 공간에 대한 사유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소리로 축조된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글쎄, 이런 것도 미술일까? 과연 어디까지가 미술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명색이 미술전문지 편집장이라는 사람이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될 말일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벌거벗은 임금님’을 곁에서 호위하는 간신배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뻘쭘하게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작가 뿐 아니라 특히 해외 여러 현대미술가가 다른 장르 예술가와 협업을 꾀한다는 것, ‘소리’를 흥미로운 매체로 여긴다는 것, 미술(관)의 개념을 확장시키며 관객과의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는 것 등 동시대미술 언저리에서 시도되는 경향이나 추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뒤샹 이후 현대미술사에는 이보다 더 파격적이고 전위적이며 급진적인 전시나 작품이 비일비재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거나 괜히 시비 거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마시라.
사실 내가 이렇게 감정을 여과 없이 거칠게 내보이면서까지 언짢음을 숨기지 못한 이유는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 때문이 아니다. 나는 최근 유행처럼 번진 (일부) 젊은 작가의 전시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그런 전시(물)는 ‘미술’이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 무엇’이라고 일컬었다. ‘굿-즈’가 대표적 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아트스펙트럼2016>에서 본 옵티컬 레이스의 그래픽 구조물이나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 일부 출품작도 나는 미술이 아닌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자유지만) 제 맘대로 작품이라는 레테르를 달고 겉멋 부린 ‘그 무엇’을 보면 매우 불편하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한 껍데기를 보면 공허하다. 이번호 특집기획과 작가꼭지에 나의 이런 생각이 반영되었음을 밝힌다. 마감 기한 직전에 도착한 성완경 선생의 글과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김동일 교수의 글을 추천한다.
나는 ‘미술이란 철학적 사고에 의한 실체가 있는 물리적 구현’이라는 정의에 99.99% 공감하는 사람이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