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2월 표지6

어떤 장면들

# 1. 먼저 특집 얘기부터 하자면, 결국 곽세원 기자가 해내고 말았다. 월초 편집회의 때 나는 기자들에게 이런 망언(妄言)을 자주 한다. “이 특집기획, 다음 생(生)에 해보시라”고. 반성한다. 이번 특집 기획안도 바로 그런 예였다. 사실 기획안을 처음보고 실현가능성이 낮은 안건이라고 단박에 무시했다. 솔직히 더 중요한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미적취향에서 비롯된 선입견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미 아는 사람은 알 듯, 나는 비디오 영상작업이나 최첨단 테크놀로지 운운하는 이른바 뉴미디어 계열 작품에 몹시 거부감을 지닌 인간이다. 그런데 하물며 ‘인공지능과 미술’이라니. 모르긴 해도 당시 곽 기자는 나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절대 이 결혼 허락 못 한다”는 막장드라마 속 옹고집 노인네처럼 여겼으리라. 아무튼, 곽 기자는 오기가 발동한 듯 꾸역꾸역 기어코 보란 듯이 이렇게 특집을 만들어 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속속 들어오는 초고상태 원고를 읽으며 “이거 ‘보그 병신체’ 아니냐”는 망언을 또 쏟아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편협하고 옹졸하고 무심하고 무례한 나를 스스로 꾸짖고 반성하며 사과한다. 그럼에도 낯선 외래어 개념과 용어, 처음 맞닥뜨린 이름으로 넘쳐나는 글을 보면 여전히 골치가 아프다. 아마도 일부 독자도 나와 같은 반응일 수도 있겠다. 공부하는 자세로 차분히 읽어 내려가자. 그러다보면 ‘인공지능과 미술’의 실체에 반 발짝쯤이라도 다가 설수 있지 않을까?

# 2. 모든 가치판단이 그런 것처럼 나이 많음과 적음 역시 상대적이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새삼 나이를 적잖이 먹었다는 걸 실감할 때가 종종 있다. 좌식 식당에서 배불리 밥 먹고 일어설 때 나도 모르게 “에구구~” 소리를 낸다거나, 누군가에게 명함을 받아 들곤 좁쌀만 한 글씨를 보겠다고 안경을 들추는 것도 모자라 코앞까지 갖다 댄다거나, 남들 다 웃는데 뭔 얘긴지 혼자 못 알아듣고 멀뚱멀뚱 뻘쭘할 때처럼 말이다. 상태가 이 지경이니 인기 있다는 TV 프로그램 얘기에 끼지도 못하고 SNS 용어와 신조어에도 거의 까막눈 수준이다. 그렇다고 완전 구제불능은 아니다. 지난달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열린 〈룰즈〉와 두산갤러리 〈사물들 : 조각적 시도〉를 보고 그냥 ‘좋~다’가 아니라 ‘안구정화(眼球淨化)!’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부 젊은 작가들이 내놓은 수준이하 작품을 보고 오염됐던 눈이 이 두 전시를 본 후 말 그대로 깨끗해지고 맑아진 느낌을 받았단 말이다. 역시 개인적 취향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이 정도는 돼야 비로소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3. 안구정화에 이어, “○○○ 안 본 눈(目) 삽니다”라는 요새 말처럼 나는 “○○○ 안 들은 귀(耳) 삽니다”라고 외치고 싶다. 지난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만난 某 선생은 나를 보자마자 “왜 그렇게 마리 관장을 미워하고 싫어하냐”며 가르치듯 이렇게 연설(?) 하셨다. “일찍이 네덜란드로부터 조총(鳥銃)을 수입한 일본이 그것을 앞세워 임진년에 조선을 침략했던 것처럼, 우리도 유럽 미술계에 네트워크가 넓은 외국인 관장을 이용해 국제무대에 한국미술을 알리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헐~! 마침 그 양반을 만나기 전에 낮술도 한잔 했던 터라 자칫 흥분할 뻔 했지만, 다행히 조곤조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그 말 안 들은 걸로 하고 싶다.

# 4. 스페셜 아티스트 박은태. 여러 면에서 인공지능 특집과 대척점에 서있는 작가다.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뿐 아니라 삶과 일치된 작가의 태도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겉멋만 들어 작품은 개떡처럼 해놓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며 ‘아티스트 피(fee)’를 요구하거나, 꼴같잖은 공간 운영자라며 공공기금 따먹기에 혈안 된 일부 젊은 세대와 박은태 같은 작가의 시대정신 차이는 무엇일까?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