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강영민

하트는 사랑의 상징이다. 그런데 강영민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하트는 깊이 들여다보며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언뜻 사랑의 의미가 사라지고 기호만 덜렁 남아있는 듯한 그의 작업은 익살스럽지만 예리한 정치적 목적성이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번뜩인다. 그렇다면 강영민의 작업세계는 한 마디로 설명된다. “사랑의 부재를 통해 사랑을 말한다”는.

〈만국기 시리즈〉 벨벳에 잉크프린트 85×117cm  2012

〈만국기 시리즈〉 벨벳에 잉크프린트 85×117cm 2012

사랑의 화가 강영민론

이택광 | 경희대 교수

팝아티스트 강영민을 정의하는 말은 ‘발칙함’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조롱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발칙하다는 수사학에 걸맞은 작가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런 평가가 다소 단편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강영민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온 이력을 뽐내지만 지금의 작가를 이해하는 시발점은 <사랑하면 진다>는 네 번째 개인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그가 ‘하트 화가’로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의 작품 주제에서 하트는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화가’이다. 하트를 그려서가 아니라, 겉으로 장난스럽게 보일망정 그는 끊임없이 사랑을 그리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를 만하다고 본다. <사랑하면 진다>가 개인의 사랑을 그리고자 했다면, <만국기전>은 집단의 사랑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이미지와 구성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언제나 하트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하트야말로 사랑 아니냐”고 항의할 것이다. 그러나 하트는 하트지 사랑일 수 없다. 사랑은 휘발되어버리고, 하트만 남는다. 하트는 싸늘히 식어버린 사랑의 화석이다. 강영민은 이 사랑의 흔적을 화폭에 남긴다. 그의 하트는 귀엽게 웃거나 입맛 다시거나 울고 있지만 도형으로 전락해 있다. 도형은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표정마저 기호화되어 있다. 이렇게 표정의 기호에 지나지 않는 하트가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혼란일까.

그의 하트는 사랑의 기호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 말하자면 사랑 자체를 지시한다. 사랑이 지워진 자리에 하트가 온다. 마치 사랑하는 것처럼 너스레를 떨지만 사실상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은 하트 기호일 뿐이다.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만국기전>이었다. <만국기전>에서 그는 태극기를 비롯한 이른바 국가 상징에 예의 무표정한 하트를 그려 넣고 ‘내셔널 플래그’라고 이름 붙였다.

태극기를 예로 들어보자. 그가 태극기에서 태극문양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하트를 채워 넣자 갑자기 태극기는 다른 무엇이 되었다. 태극문양이 없는 태극기는 태극기가 아닌 것이다. 생긴 모양은 태극기처럼 착시를 일으키지만 곧 태극기라고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관객은 깨닫는다. 태극문양의 자리에 하트를 그려 넣으면 하트기라고 불러야 할 터이다. 강영민은 이 작업을 통해 ‘내셔널 플래그’ 또는 ‘국기’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태극기는 태극문양이지 깃발 일반이 아니다. 다른 ‘내셔널 플래그’ 역시 그렇다.

그는 ‘내셔널 플래그’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하트로 교체함으로써 ‘내셔널 플래그’의 의미를 드러냈다. 그 의미는 결과적으로 특정한 ‘내셔널 플래그’를 특별한 장소에 고정시키는 특수성의 산물이라는 것이 강영민의 메시지이다. 세상의 반응은 구태의연했다. 발칙하다는 찬사에서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그가 건드린 지점은 어디일까. 강영민은 이런 작업을 통해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지던 국가와 상징의 결합 관계가 허구임을 폭로했다. 무릇 예술이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상성의 범주’를 해체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사실에 도전해서 그 허구성을 드러내야 한다.

강영민의 작업은 이런 전략을 구사한다. 일단 하트라는 기호 자체가 사랑의 물신화에 대한 폭로이다. 왜 사랑은 하트로 표현되어야 하는가. 이 관계는 자명하지 않다. 그의 하트는 사랑을 대체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사랑의 상징에서 정작 빠져 있는 것이 사랑 자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귀엽고 아름다워야 할 사랑의 기호가 괴이하고 수상쩍은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사랑의 화가’라고 불려야 하는 것일까. 그는 사랑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구조를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사랑의 급진성을 주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사랑의 뿌리를 파헤치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하트는 사랑의 신화에 대한 패러디이다. 하트가 무엇인가. 바로 심장, 또는 마음의 상징이다. 심장에 마음이 담겨 있다는 발상 자체가 신화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과학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랑의 상징으로 하트를 인준한다. 강영민의 하트를 보면서 관객은 아무 의심 없이 ‘사랑’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 하트의 기호에 없다. 이 공식을 그의 ‘내셔널 플래그’로 옮겨 오면 더 심각해진다. ‘내셔널 플래그’를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가 바뀌면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그렇다면 ‘내셔널 플래그’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요소가 혼연일체를 이루어야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 상징은 무엇일까.

강영민은 ‘내셔널 플래그’에 하트를 그려 넣음으로써 국가적 상징과 국가의 동일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가 하트를 집어넣은 지점은 이데올로기와 주체가 만나는 접점이다.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이데올로기를 요청한다. 이데올로기는 주체의 쾌락을 취한 필수요소이다. 태극기는 이런 의미에서 주체의 증상을 지속시키는 쾌락의 대상이다. 주체는 이 쾌락의 대상을 사랑한다. 이 주체의 사랑이 곧 증상이다. 강영민은 이 사랑의 대상을 하트로 기호화한다. 태극기의 태극문양이 곧 국가의 정체성이라면, 이 정체성이야말로 사랑의 대상이고 하트다.

광화문에 모인 탄핵반대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태극기라는 국가적 상징의 의미이다. 태극기는 탄핵반대집회 참가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애국자’, 다시 말해서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태극기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이 상징을 하트로 기호화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이 ‘애국자’에게 이런 화가의 ‘개입’은 불순하게 보이거나 불경하게 받아들여진다. 왜 그럴까.

그 까닭은 이데올로기야말로 일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주체와 특수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모두가 국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나의 사랑’만이 특별하다고 ‘애국자’는 믿는다. 그런데 강영민의 하트는 그 사랑이 실제로 일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증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어야 할 태극기에 대한 사랑이 하트의 일반성으로 환원될 때, ‘애국자’는 국가와 동일시했던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나만 태극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너의 사랑은 가짜다라’는 구별짓기가 등장한다. ‘국가에 대한 사랑’이 결코 ‘나의 사랑’만일 수 없다는 것, 더 나아가서 그런 국가에 대한 사적인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영민의 하트는 ‘애국’의 외설성을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역설적으로 강영민은 이처럼 사랑의 부재를 통해 사랑을 말하는 화가이다. 그에게 사랑은 유토피아적 충동이기도 하다. 사랑을 통해 강영민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허무주의를 넘어선 우리 존재의 지속성이다. ●

강영민은 1972년 태어났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4년부터 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국내외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1999), 거리예술시장 희망시장 전시기획팀장(2002) 등을 지냈으며, 〈팝아트협동조합전〉(2014) 등 다수의 전시에 기획자로 참여했다. 현재 김포에서 작업하고 있다.

EXHIBITION TOPIC 사임당, 그녀의 화원

사임당, 그녀의 화원

더 이상 신사임당을 ‘한국을 대표하는 어머니상’ ‘현모양처의 표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길 바라는 전시가 서울미술관에서 한창이다. 개관 5주년을 기념하는 이 전시에는 이미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14점의 〈초충도(草蟲圖)〉를 비롯하여 총 15점의 작품이 관객을 찾아간다. 무엇보다 KBS 1TV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에 2005년 공개된 후 처음으로 전시장 나들이에 나선 〈묵란도(墨蘭圖)〉에 주목하자. 이젠 사임당을 단순히 ‘女人’이 아닌, 시 · 서 · 화에 능한 예술가로, 시대적 제약에 굴하지 않고 자기 계발에 매진한 능동적인 한 ‘사람(人)’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오죽헌에는 정말 그 꽃이 피었을까

이홍주 |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사임당 신씨(1504~1551), 현재를 사는 우리는 조선시대 여성의 전형으로 흔히 그를 떠올린다. 그는 출중한 기량의 화가이면서 효녀이자 양처이자 현모인, 가부장적 유교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추앙되어 왔다. 2009년에는 신사임당을 수수하고 점잖은 부인으로 그린 초상이 고액권 지폐의 도안으로 선정되어 과연 그를 한국역사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삼는 것이 적절한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엔 일련의 소설과 드라마가 신사임당을 새롭게 해석하며 또다시 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16세기 전반의 조선을 살았던 한 여성이 왜 이렇게 끊임없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신사임당이라는 여성의 실체와 얼마나 가까운가.

지금 서울미술관에서는 화가 신사임당을 조명한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임당, 그녀의 화원”이라는 제목으로 안병광 서울미술관 관장이 소장한 신사임당 전칭의 〈초충도〉 15점을 선보이고 있다. 공개된 작품은 검은 종이에 채색으로 그린 〈초충도〉 10폭, 유지에 채색으로 그린 초충도 4폭과 송시열의 발문이 함께 장황된 〈묵란도〉 1폭이다. 규모는 작지만 그동안 공개된 적 없었던 작품들이 전시되는 것이라 주목할 만하다.

〈초충도〉는 수박, 양귀비, 구절초, 원추리, 가지, 오이, 달개비, 여뀌, 추규, 봉선화, 패랭이꽃, 맨드라미 등 우리 정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담한 풀꽃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생쥐, 개똥벌레, 개구리, 잠자리, 나비, 벌, 방아깨비와 같은 동물들을 윤곽선 없이 화사한 채색만을 사용하여 묘사하였다. 색색의 화폭들은 과연 신사임당이 가꾸었을 법한 오죽헌의 정원으로 관람자를 이끄는 듯하다. 전시장의 두 면을 차지한 흑지 바탕의 10폭 초충도는 2002년 일본에서 열린 “조선왕조의 미(朝鮮王朝の美)” 순회전에서 공개된 바 있다. 매 폭을 신사임당 그림에 대한 조선시대 문인들의 찬사와 병치하여 대학자 율곡을 키워낸 어머니, 현모양처라는 타이틀 뒤에 가려진 위대한 예술가 신사임당의 면모를 드러내고자 하는 전시의도를 보여준다.

사실 ‘신사임당 초충도’가 한국회화사에서 16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혀왔음에도 신사임당의 화가로서의 진면목을 증명하는 확실한 진작(眞作)은 남아있지 않다. 현재 전하는 작품들은 모두 그의 화풍을 반영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전칭작(傳稱作)이다. 두세 종의 식물을 조합한 장식적인 구도와 도안적으로 평면화하여 단순하게 그린 꽃잎과 잎, 열매의 형태, 이들을 서로 겹치지 않게 배치한 점에서 신사임당 작으로 전칭되는 초충도들은 자수를 놓기 위한 밑그림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특히 검은 공단에 색실로 〈오이와 개구리〉, 〈맨드라미와 도마뱀〉과 같이 유사한 구도와 소재의 화면을 수놓은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자수초충도병〉의 존재는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특히 이번에 출품된 흑지 바탕의 채색 초충도는 자수로 제작했을 때의 효과를 최대한 살려 그린 것이다. 장식성과 생동감이 묘하게 공존하는 매력이 있다. 이 작품은 10폭 중 7폭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초충도10폭병〉과 구도와 경물이 정확히 일치하고, 2폭이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 소장 〈초충도병풍〉 속 화면과 일치한다. 이러한 사실은 ‘신사임당 초충도’로 일컬어지는 범본들이 반복적으로 자수와 회화로 모사되었던 정황을 시사한다.

이 전시에 출품된, 유지 바탕에 채색으로 그려진 4폭 초충도는 이보다 좀 더 원작으로부터 멀어진 모사도로 보인다. 화면의 한쪽 모서리로부터 대각선 방향으로 식물을 배치한 구도는 장식의 목적에 보다 충실하며, 화면에 등장한 검은 나비는 다른 작품에 대칭형으로 등장하는 나비와 달리 19세기 남계우 풍의 나비에 훨씬 가깝다.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묵란도〉는 2005년 KBS TV쇼 “진품명품”에 출품되어 진작으로 인정받아 1억3500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은 바 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이후 문인들의 관심을 촉발시킨 송시열의 발문이 함께 장황되어 있다. 사실 이 그림에 그려진 것은 난이 아니라 원추리꽃이다. 원추리 외에도 두어 가지 풀이 함께 자라고 있고 꽃을 향해 나비 한 마리, 벌 한 마리가 날아들고 있으며 바닥에는 방아깨비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이 역시 채색은 아니지만 수묵으로 그린 한 폭 초충도인 것이다. 이 그림이 난데없이 ‘묵란도’로 알려진 것은 그림에 쓰여진 송시열의 발문이 그의 문집 《송자대전》에 ‘사임당화란발(師任堂畵蘭跋)’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발문에서 이 그림이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손가락 밑에서 표현된 것으로도 오히려 능히 혼연히 자연을 이루어 사람의 힘을 빌어서 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하물며 그가 낳은 아들은 어떻겠는가, 과연 그 율곡 선생을 낳으심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신사임당_초충도_연도미상_종이에 채색 _27x24cm (2)

신사임당 〈초충도〉 종이에 채색 27×24cm연도미상

신사임당_초충도_연도미상_종이에 채색 _27x24cm (1)

신사임당 〈초충도〉 종이에 채색 27×24cm 연도미상

시대와 해석에 묻힌 사임당

서울미술관의 이 짧은 전시는 신사임당과 그의 〈초충도〉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거나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을 규정한 많은 찬사를 그림과 나란히 보여주면서도 그 찬사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모습으로 ‘화가 사임당’을 빚어냈는지를 고찰하지는 않았다. 이 전시를 보고 나서 뇌리에 남는 위대한 예술가 신사임당은 어떤 화가인가. 오죽헌의 정원을 가꾸며 이를 화폭에 옮긴 여성화가? 조선시대에는 이례적으로 당대 저명한 문인들에게 그 예술성을 인정받은 여성? 이것이 아쉬운 이유는 한국회화사에서 ‘신사임당 초충도’가 가지는 기존의 명성이 여러모로 문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신사임당 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수박과 생쥐〉, 〈가지와 개구리〉 등의 작품들을 우리는 교과서에서 보아왔고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초상이 있는 오천원권과 오만원권 지폐에도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들어있다. 그러나 신사임당 회화에 대한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신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의 문헌 기록에는 그의 산수화나 묵포도도를 언급하였을 뿐 그가 초충도를 잘 그렸다는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초충도가 신사임당의 대표작으로 주목되고 여러 작품이 출현하는 것은 18세기의 현상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현상의 단서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이 전시에 출품된 〈묵란도〉에 적힌 송시열의 발문이다. 이 그림은 율곡의 종증손 이동명이 한양의 어떤 이에게 구하여 1659년 송시열에게 발문을 요청한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해 송시열은 신사임당이 “율곡 선생을 낳았음이 마땅한” 근거로 삼아 이이의 학통을 이은 서인계 인사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 만들었다. 이동명은 1676년에는 16세기 문인 소세양의 제화시가 있는 사임당의 산수화에도 송시열의 발문을 요청하였는데, 그 산수화에 대한 송시열의 태도는 ‘묵란도’와는 사뭇 달랐다. 송시열은 이 그림이 율곡의 모친이 그린 그림으로서는 적절치 않다 보았는데, 그림의 수준과 규모가 전문적인 화가의 것이고 소세양의 제화시에 스님이 등장하며, 외간 남성이 여성의 그림 위에 제화한 상황 등이 모두 가당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송시열은 신사임당의 그림을 그들 서인계 문인들이 존숭하는 율곡의 어머니에게 어울리는 화목과 성격으로 재규정했다. 이후 18세기부터 신사임당의 산수화는 역사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그의 그림은 초충도로 대표되었다.

이후 서인 노론계의 핵심인물 정필동이 1707년경 양양부사로 재임하며 입수한 사임당의 초충도 7폭에 송시열계 문인이자 숙종비 인경왕후의 오빠 김진규를 비롯한 신정하, 송상기 등 노론계 인사들의 발문을 받았다. 이 화첩은 결국 숙종의 장인 김주신의 소장품이 되었고 1715년 궁궐에 내입되어 숙종이 열람하게 된다. 숙종은 제시를 지어 무골법(無骨法)의 채색으로 그린 교묘한 그림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이를 모사하고 한 폭을 더하여 8폭 병풍을 만들어 대전에 들였다. 이 전시에 인용된 찬사 대부분이 사임당의 초충도에 대한 숙종과 노론계 문인들의 글이다.

신사임당을 둘러싼 여러 의미와 평가에는 두 가지 사실이 재료가 되었다. 그가 뛰어난 화가였다는 사실과 조선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사실. 신사임당의 그림 재주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대학자의 어머니라도 주목받을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 아들이 율곡이 아니었다면 그의 그림이 아무리 뛰어났어도 조선시대 일반 사가의 여성이 이렇게 풍부한 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사임당이 뛰어난 화가이자 대학자를 길러낸 어머니였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어떤 화가였고 어떤 어머니였는지는 후대에 그를 평가한 남성들의 필요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왔다. 특히 ‘화가’ 신사임당은 후대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은 서인-노론계 문인들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그들이 존숭하는 율곡의 어머니로서 어울리는 성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후 19세기, 20세기에도 신사임당의 그림은 계속해서 율곡과 그를 키워낸 모범적 모성(母性)의 표상이 요구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문화적 기능을 위해 호출되었다.

그러면 우리에게 남은 이 〈초충도〉들은 무엇을 반영하는가? 18세기의 상황에서 신사임당이 자수를 위한 밑그림으로 그린 초충도가 실제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여러 신사임당 전칭의 초충도 양식을 비교하여 어떤 것이 신사임당의 실제 화풍에 가까운지를 규명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이 초충도들의 매력이 반감하는 것은 아니다. 이 그림들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하던 동식물들을 아름답게 도안화하여 자수로 제작했던 전통의 산물이며, 또한 그림을 감상하고 평하며 그에 대한 시문을 적는 미술사적인 활동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문인-정치가들의 관습이 낳은 그 시대의 흥미로운 문화현상이기도 하다. 아들을 대학자로 길러낸 어머니의 자질을 드러내는 자수풍 초충도의 화가로만 신사임당을 수용할 것인가. 이 전시가 단순해 보이는 그림을 둘러싼 복잡한 여러 층위를 들추어 보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

신사임당_초충도_연도미상_종이에 채색_36x25cm (2)

신사임당 〈초충도〉 종이에 채색 36×25cm 연도미상

신사임당_초충도_연도미상_종이에 채색_36x25cm (1)

신사임당 〈초충도〉 종이에 채색 36×25cm 연도미상

CRITIC 때時 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

2016.12.14~2.26 국립민속박물관

김용주 |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 기획관

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 흥미로운 제목과 주제에 한껏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현장에서 마주한 전시의 첫인상은 명료했다. 전시기획 방향과 공간 전개 방식은 본 전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흐름을 군더더기 없이 전달하고 있었다. 기획전시실로 연결되는 복도는 모든 색의 합인 블랙으로 도색되어 있어 과연 이 전시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관람자의 기대를 한층 고조시킨다. 블랙 컬러의 복도를 지나 전시실에 들어서면 시각적으로 대비되는 하얀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에서 하고자 하는 ‘색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려주기 위해 잠시 우리의 시선에서 색을 지워내는 듯하다. 그리고 얼마 후 하얗던 공간엔 각 영역에서 들려줄 색과 관련된 이미지와 텍스트들이 영상으로 투사되며 전시에 생기를 돋운다. 본 전시는 ‘우리의 삶 속에 스민 색깔’을 3개의 중주제, 11개의 소주제로 구성하며 전시실은 크게 7개의 물리적 영역으로 나뉜다. 단색(單色, monochrome)을 다루는 다섯 개의 영역과 배색(配色, color scheme)을 다루는 두 개의 영역, 그리고 다색(多色, polychrome)을 다루는 마지막 영역으로 구성된다. 각 색의 영역은 중앙 복도를 중심으로 대칭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의 공간 구조는 전시의 질서를 형성시켜주는 장치 구실을 하게 된다. 중앙에는 전시에 대한 전체 설명과 각 색 영역에 대한 배치도가 있어 관람 정보를 제공한다.
먼저 백(白)색 영역으로 들어서면 사물과 재질에 따라 백색의 빛깔이 같은 듯 다른 느낌으로 조화를 이루며 유물과 작품에 적용된 색의 미감과 의미를 전한다. 백색의 전시영역에서는 흑백(黑白)의 배색(配色) 조화를 함께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공간 너머 반대 색인 흑(黑)색의 전시영역과 시각적 병치를 이룬다. 두 개의 반대되는 단색 전시영역 중간에 배색 전시영역을 배치하는 구성은 각 색의 미감과 의미를 전달하는 데 더욱 풍부한 설명이 되어준다. 예를 들면 하나의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유의어와 활용어 그리고 반대어를 함께 제시하는 방식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각 색의 공간에서는 유물과 현대작품, 동시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주변 사물과 더불어 색을 나타내는 다양한 언어, 한시, 속담 등을 통해 우리 삶에 스민 색의 의미와 정서를 유??·???무형 콘텐츠를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자에게 전한다. 단색(單色)과 배색(配色)의 전시 관람을 끝으로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는 다색(多色) 영역에 들어서면 공간적 개방감과 함께 색동과 이월오봉도 등 유물과 작품이 한눈에 펼쳐진다. 다색(多色) 영역의 오픈형 디스플레이 방식을 통해 앞서 들려주던 하나, 하나의 개별 이야기들이 합쳐져 절정을 이루듯 색의 클라이맥스를 느끼게 한다.
또한 이곳에는 관람자들이 미디어 매체를 통해 색 구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참여 코너가 마련돼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며 받은 첫인상이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오는 마지막 발걸음까지 이어졌다. 어느 곳 하나 과함이 없는 구성은 명료했다. 전시디자인을 할 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점은, 과하지 않게 전시 주제를 효과적으로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여러 전시 중 기획 의도와 디자인 콘셉트가 맞지 않아 전시 주제가 무엇인지 모호한 경우를 종종 본다. 전시디자인은 실내 장식이 아니다. 그리고 멋스러운 가구나 첨단 매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전시 콘텐츠와 기획의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간적, 시각적 논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전시디자인’이다.
이렇게 기획된 전시는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형성한다. 즉 기획 스토리와 전시 공간구조의 관계, 공간과 관람자 움직임의 관계, 작품(유물)과 작품 사이 관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관계들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고 주제는 같을 지라도 차별화된 전시를 가능하게 한다. 사실 그동안 ‘색(色)’을 주제로 한 전시는 여러 곳에서 있어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가 차별화되어 관람자의 기억에 스미는 이유는, 전시 기획과 공간구조가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전시실을 거닐고 구획된 영역을 드나드는 행위는 책을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무의식적인 행위와 같다. 그리고 이 행위는 전시를 읽어내는 필요조건이 되며 전시실에 계획된 시선의 대비와 순차적 전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의 방식과 같다. 한동안 색과 관련한 전시라 하면 먼저 〈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을 떠올릴 듯하다.

위〈때時깔色, 우리 삶에 스민 색깔〉 전시장 입구

CRITIC 박상우 뉴모노크롬: 회화에서 사진으로

2.9~3.5 갤러리 룩스

이필 |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사진이 애초에 모노크롬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았을 때 작가의 전시제목이 〈회화에서 사진으로〉 가는 뉴모노크롬이라는 점은 흥미와 의문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갤러리 룩스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작품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림이 아닌 사진이 다양한 모노크롬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에는 미술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말레비치, 아그네스 마틴, 이브 클랭, 앨런 매컬럼, 박서보, 이우환을 연상할 수 있는 작품들이 걸려있다.
다수의 작품이 주로 사각형과 원의 형상을 띠고 있고 그 제목도 〈추락하는 검은 원〉 혹은 〈검은 사각형의 비밀〉 등이다. 이러한 유형과 함께 붓이 휙휙 지나간 이미지로 구성된 〈터치〉, 전면 모노크롬 작품 〈모노 골드〉 등은 사진을 이용한 서구의 절대 추상, 추상표현주의, 모노크롬의 패러디로 보인다. 〈디지털 묘법〉이나 〈선으로부터〉는 박서보와 이우환의 회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박상우는 “회화는 오브제를 버림으로써 모노크롬을 실현”하지만 사진은 “반대로 오브제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모노크롬의 놀라운 우주를 발견”한다고 하면서 오브제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추상의 세계를 추구한다.
박상우의 모노크롬 사진은 보는 재미보다 미술사와 사진의 주요 개념 및 담론들을 환기시킨다. 내러티브가 제거된 추상 사진이 인간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지는 언제나 논쟁거리였다. 카핀이나 하트만 같은 모더니즘 사진 비평가들이 픽토리얼리즘을 버리면서 순수하고 꾸미지 않은 사진적인 수단으로 승부할 것을 주장했고, 모더니즘 사진에서 그것은 근접촬영을 통한 추상으로 시도되었다.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옹호자 그린버그는 회화와 사진을 엄격히 구별하여 추상을 추구하는 사진을 경계했다. 박상우의 사진은 단순히 추상을 흉내 낸 모더니즘 사진은 아니다. 패러디와 역설의 전략이 개입되면서, 그의 사진은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주장한 포스트모던적 원본 없는 카피들로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사진 이미지는 반드시 무언가의 이미지라는 인덱스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크라우스의 인덱스 개념이 모더니즘 추상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의 추상 사진은 또 다른 역설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추상이 비대상성을 추구한다고 할 때 박상우의 이미지는 추상을 가장한 대상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브제의 표면을 확대 촬영하여 모노크롬 회화의 형태로 제시한 “추상이면서도 현실인” 역설의 이미지들을 통해 가장 기계적이고 가장 물질적인 것으로 깊이와 인간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과연 이것은 가능한 일일까. 작가가 강조하는 오브제의 물성은 사진의 표면이라는 투명 유리에 갇힌 것일 뿐이다. 회화에서 사진으로의 전이는 작품 표면의 다양한 물성과 텍스처가 프린트라는 단일한 물성의 표면에 갇힌 채 시각적 일루전의 유희를 제공할 뿐이다. 동전의 표면이건 깨진 휴대전화 액정을 찍건, 사진의 표면 물성은 늘 동일하다. 사진의 표면성은 언제나 사진 해석의 한계가 되었다. 그러나 박상우는 사진의 표면을 통해 과학적 무의식의 세계, 비물질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마저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의 모노크롬 사진의 표면은 우리가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것은 회화의 모노크롬이 물질과 더불어 추구했던 세계이기도 하였으니 박상우의 〈회화에서 사진으로〉는 한편 모노크롬 회화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박상우 〈디지털 검은 사각형〉(오른쪽) 2016

CRITIC 이동수

2.1~28 갤러리 조은

고충환 | 미술평론

숨결의 시(작). 작가 이동수가 자신의 근작에 부친 주제다. 대략 숨결이 시작되는 곳, 숨결의 근원 정도를 의미할 것이다. 유형무형의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모든 존재는 결을 가지고 있다. 바람에도 결이 있고, 주름에도 결이 있고, 세월에도 결이 있고, 심지어는 마음에도 결이 있다. 존재 치고 결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다르게는 길과 겹과 주름, 물리적으로는 파동과 파문과 파장, 동양학으로 치자면 기와 운과 생과 동의 상호작용, 그리고 운동으로 치자면 이행과 유격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모든 존재는 항상적으로 여기에서 저기로 이행 중이며, 그렇게 이행하려면 구조적으로 유격이 있어야 하고 길이 있어야 한다. 그 결(그리고 길)들의 궁극이 숨결(그리고 숨길)이다. 호흡이다. 최초의 숨결이 허다한 다른 결들로 분기되는 것으로, 그리고 그렇게 무명의 존재를 파생시키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숨결은 결들의 궁극이고 존재의 원인이다. 작가는 그 숨결이 시작되는 곳(것)을 겨냥한다. 궁극 중의 궁극을, 원인 중의 원인을 정조준 한다.
그림의 주제 치고는 좀 거창하다 싶다. 흔한 사발 아니면 다기에 담아내기에는 너무 큰 주제가 아닌가도 싶다. 아마도 숨 쉬는 그릇에서 처음 착상한 것일 터이다. 그릇은 숨을 쉬는데, 알다시피 이는 결코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실을 알고 보면 그 주제가 그렇게 거창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다도 혹은 다례에서 보듯 차 한잔 마시는 행위 속에도 우주가 있고 각성이 있음을 생각하면 그다지 큰 주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문제는 작가가 흔한 사발 아니면 다기 그림 속에 숨과 결을, 숨이 들고나는 길을, 존재의 원인을, 우주와 각성을 어떻게 담아내고 실현하는지를 살필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무슨 수학공식처럼 손에 잡히는 실체로서보다는 감각적인 아우라를 통해서 암시되고 감지되는 것일 수 있다.
사발 혹은 다기를 그린 작가의 그림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각각 숨을 강조하고 결을 부각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사발 표면에 바른 유약이 머금은 은근한 투명성 혹은 반투명성이 숨을 강조하고 있다면, 사발의 물성과 질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또 다른 경우가 결을 강조한 것일 수 있겠다. 표면적으로 구분돼 보이지만, 숨과 결이 하나이듯 그 이면에서 하나로 통하는,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서로 공명하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이런 공명은 모티프에 해당하는 사발과 검푸른 배경화면의 공명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검푸르다고 했다. 푸른 기미를 머금은 검은색이고, 빛의 기운을 함축한 어둠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수장된 사발을 보는 것 같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켜(질감)를 보는 것 같고, 어둠이 머금은 빛의 기미가 고요와 정적을 가만히 흔드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마치 찻잔 속에 담긴 우주 혹은 삼라만상처럼 존재의 원인에 대한, 숨결이 시작되는 곳(것)에 대한 명상에 가만히 빠져들게 만든다.

CRITIC 애나 한 Pawns in Space 0.5

2.16~3.18 갤러리 바톤

이승환 | 에이루트 디렉터

갤러리 바톤은 2월 16일부터 약 한 달간 애나 한의 작품으로 가득 차게 된다. 천장고 4m에 달하는 전형적 화이트큐브가 애나애나하게 바뀐 건, 작품 제작부터 설치까지 작가가 모든 걸 틀어쥐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혼자서 드로잉하듯 작품을 배치하고, 공간의 요소와 리듬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재료들을 설치했을 것이다. 작가는 유학시절을 거쳐 귀국 후 여러 레지던시를 전전하며 여러 번 이사를 다녔는데, 그 경험이 아이러니하게 공간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고 한다. 작업실 환경은 2015년 에이루트에서의 개인전 때보다 나아졌으나 여전히 현실 공간(작업실)이 작품형식(전시장)의 모티프가 됐을 거다.
공간을 효과적으로 장악하는 방법 중 하나로 천장을 뚫거나 바닥을 쪼개는 게 있다. 이미 일리야 카바코프나 도리스 살세도 등의 작가가 쿵 뚫고 쫙 쪼갰으니 이후 웬만한 방법으로는 새로운 충격을 주기란 어려울 것이다. 애나 한은 공간 장악보다 ‘조율’을 선택했다. 그리고 일상적 오브제의 선택과 이들의 무심한 배열을 통해 얻어지는 생경함 대신 평면회화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고 이 매력이 공간으로 넘치는 순간에 주목했다.
때문에 애나 한은 우선, ‘좋은 화가(painter)’다. 그녀는 기억을 물질로 바꿀 수 있다. 기억 중 절정의 순간을 잡아 캔버스 위에 고정한다. 물질로 전환될 때 기억은 예쁜 색과 최소한의 형태로 소환된다. 단색의 면이 광선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도록 섬세한 브러시 스트로크와 보카시(bokashi, gradation)를 계획하여 치밀하게 그려낸다. 색의 선택도 과감하다. 예쁜 색 선택에 주저함이 없다. 크건 작건 사각이건 다각이건, 스스로 선택한 프레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넘친 기억은 작가를 공간 연출가로 만든다. 프레임 밖으로 확장된 세계는 3차원인데, 시시할 만큼 소소한 몇 가지 재료만 가지고 타블로를 효과적이고 경제적으로 공간화한다. 전시장으로 들어가서 왼쪽 상단에 걸린 〈Meteor Shower〉는 작품에 내재된 LED조명과 전시장 조명 덕분에 드러난 벽 ‘속’의 그림자까지 작품으로 맞아들인다. 〈Cast〉, 〈Sunset Boulevard〉, 〈Butterfly〉 등 작품 대부분이 천, 실, 조명, 크고 작은 캔버스를 마치 물감처럼 활용해 공간에 그린 ‘회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업은 입구 쪽 스트라이프 벽면이다. 분홍과 연두, 이 두 색채가 아사무사하게(알 듯 모를 듯하게) 조합된 시트지는 프레임 안과 밖, 작품과 비(非)작품처럼 내 마음속에 그어진 경계를 흐트러뜨렸다. 그간 프레임 밖 세계를 상상하는 건 관람자의 몫이었다. 애나 한은 거기까지 과잉 친절을 베푼 걸까.

위 애나 한 〈Pawns in Space 0.5〉 전시광경

CRITIC 송창: 잊혀진 풍경

2.10∼4.9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이영란 | 미술칼럼니스트, 뉴스핌 편집위원

민중미술 진영의 대표적 화가 송창(65)은 30년 넘게 ‘분단’을 테마로 작업해왔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아픈 현대사와 대치상황을 특유의 질박하고 묵직한 회화를 통해 일깨우고 있다. 하지만 증강현실게임의 포켓몬이 뮤지엄과 문화유적지에 출몰하고,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는 이 시점에서 ‘분단’은 일견 진부한 테마로 여겨진다. “아직도 분단을 붙들고 있느냐”는 시선도 있다. 혹자에게는 시대착오적인, 케케묵은 주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해묵은 주제를 끈질기게 붙들고 작업해온 송창의 생각은 다르다. 분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요, 천착해야 할 이슈라는 것이다. 남북 대치 상황이 더욱 첨예해진 현 시점에선 모두가 질문하고, 숙고해볼 과제라고 본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본격적인 미술관 개인전을 꾸미고 대작들을 발표했다. 1997년, 지금은 없어진 동아갤러리에서 개인전 〈기억의 숲-소나무〉를 개최한 뒤로 20년 만의 미술관 초대전이다.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내 큐브미술관에서 〈송창-잊혀진 풍경〉이라는 타이틀로 4월9일까지 열리는 작품전에는 근작 및 신작 회화, 입체설치 등 40여 점이 출품됐다.
전시작들은 송창의 뚝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간인은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는 민통선지역의 쓸쓸한 벌판을 꾹꾹 눌러 담듯 그린 〈민통선 들녁〉(1990)이라든지, 임진강변을 절규하듯 그려낸 〈임진갯벌〉(1993) 같은 1990년대 작품도 포함됐지만 이번 개인전에는 2011~2015년 제작한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근작들은 형식상으론 신표현주의, 내용상으론 리얼리즘 미술의 성격을 띠지만 그 카테고리에 집어넣기엔 송창의 조형실험은 다분히 초현실적이다. 현대사가 초래한 민족의 절망과 한(恨), 초자연적 세계관 등이 작품 속에 강렬하게 응집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섬광〉(2015)을 보자.
흰 눈이 내린 비포장도로 위로 장갑차의 깊은 바큇자국이 검붉은 흙길을 드러낸 가운데 저 멀리 군부대가 쏘아올린 포탄의 불꽃이 석양의 하늘로 솟구친다. 움푹 패어 질척거리는 흙구덩이에 고인 물은 60년 전 전투에서 누군가 흘린 선혈처럼 핏빛이다. 그 피는 질척거리는 구덩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화가의 발치에서 멈춘다. 이제 비무장지대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해가 지면 민간인은 머물 수 없다. 두 동강 난 조국을, 절망적인 대치상황을 절절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꿈〉이라는 그림 또한 섬뜩하다. 비무장지대에 건설되고 있는 교각이 어느 날 끊어진 다리처럼 꿈에 등장한 듯하다. 남북 분단이라는 이 길고도 어두운 터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작가는 질문한다.
이번에 송창은 2개 또는 3개의 화폭을 이어붙인 회화도 내걸었다. 〈그곳의 봄〉(2015)이라는 3면화는 중앙에 영국군 유해를 화장했던 검은 화장탑을, 왼쪽엔 화장장 앞에 흐드러지게 핀 노란 망개초를, 오른쪽엔 영국을 상징하는 개가 그려졌다.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분단을 서사의 영역에서 서정의 세계로 이끈 것.
송창의 근작들은 사회학자 김홍중이 최근 설파한 〈파상(波像)〉이란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김홍중은 〈사회학적 파상력〉(2016)이란 책에서 ‘상상력’의 반대가 되는 ‘파상력’이라는 말을 창안했는데, 기존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질 때가 바로 파상이라 했다. 결국 파상은 위기이자 카오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자각과 각성은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 ‘분단’을 주제로 한 송창의 음울하면서도 토해낼 듯 절박한 그림들 또한 비극과 혼동을 그리되 그 속에서 움트는 또 다른 가능성, 곧 ‘파상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작가는 삼베 끈을 화면 전체에 부착한 후 물감을 입혀 두터운 마티에르를 추구한 작업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대형 미사일을 입체로 빚어 “민중미술 하면 좌우 이념부터 따지는 통에 작가들이 많이 떠났다. 후배들도 무거운 주제는 잘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이야말로 다양성이 생명 아닌가. 한쪽으로 쏠린다면 그것은 고여 있는 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중미술은 죽었다’고들 하지만 역사와 삶을 성찰하는 미술로 변모하고 있다고 강조한 작가는 자신의 〈잊혀진 풍경〉이 〈잊어선 안 될 풍경〉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위 송창 〈망각의 통로〉(왼쪽) 캔버스에 유채 227×182cm 2004

CURATOR'S VOICE 사물들: 조각적 시도

1.11~2.18 두산갤러리

추성아 | 독립 큐레이터

〈사물들: 조각적 시도〉를 본 관람자 대다수는 덩어리와 물성이 두드러진 작품들을 “오랜만에 접한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전시가 끝나가는 시점에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에서는 “그렇다면 현재 조각은 무엇인가?”와 같이 조각이라는 특정 장르에 대한 정의 내리기가 지속되었다. 최근 몇 년간 젊은 작가들의 회화에 대한 탐구, 영상, 설치, 퍼포먼스, 그래픽 디자인, 아카이브 전시들이 중심과 주변을 이루던 와중에 관람자들은 분명 눈으로 매스(mass)를 훑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 반가웠을 것이다. 기획자 3명(김수정, 추성아, 최정윤)은 전시를 기획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오늘날의 조각은 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을 피하고 동년배 작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각적 시도(sculptural practice)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필연적인 조각의 특수한 감각에 초점을 두었다.
미술사에서 조각의 성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해체되었기에 장르의 경계 짓기가 무의미할 수 있는 지금 우리가 다시금 조각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조각이 갖는 속성이 오늘날 1980년대생 작가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사물과 이미지를 마주하는 납작해진 현실에서 시의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일상에서 2D와 3D가 뒤섞이는 모바일이나 컴퓨터 화면의 인터페이스에서 과하게 압축되고 빠르게 유포되는 비물질화된 데이터는 곧 이미지이며 이미지가 곧 비물질화된 사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제목 〈사물들: 조각적 시도〉에서 ‘사물들’은 그것이 담고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 조각적 시도와 필연적으로 맺는 지점을 건들며 조각이 갖는 특수한 영역에서 제자리를 지키게끔 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전시는 우리가 평면과 입체를 인식하고 “시각적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조각의 가치를 묻고 제안해 본다. 동시대적으로 공유되는 사물과 이미지의 시각성에 대해 문이삭과 황수연은 인체에 대한 감각의 반응을 형태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경험의 출발로 보고 역으로 매체가 갖고 있는 기본 속성에 충실하다. 조재영은 사물의 속이 비어있는 껍데기를 실존하지 않는 다른 공간의 표면으로 매핑하며, 최고은은 기성품을 해체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오브제를 실험해나간다. 이처럼 참여 작가들의 조각은 상징과 서사가 사라진 과정과 행위에 집중하며 매스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관념을 넘어서 표면 중심의 조각을 탐구하는 영역에 이른다.
기획단계에서 조각이 공간을 점유하고 서로 견주어보는 과정이 드러나는 지점은 참여 작가의 조각들이 물리적인 공간에 놓였을 때 상호-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감각적인 순간들일 것이다. 이를 위해 전시를 준비하면서 설치 과정에 여러 번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한 노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조각이 서로 가까이 있을 때의 어색함, 비슷한 크기의 조각들이 놓였을 때의 빈약함, 물성과 재료가 유사한 조각의 충돌이 주는 조잡함 그리고 각자 뿔뿔이 흩어졌을 때 공간의 흐름이 끊기는 당혹스러운 풍경들이 조각 작업의 설치가 어려운 숙제임을 체감하게 하였다. 조각이 담고 있는 입체의 공간 차지와 시각적인 양감과 중량감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특성은 어느 한 작가의 단일한 조각 오브제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아닌 주변 그 자체로부터 하나의 복합적인 형태를 시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6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에서 기획자 3명은 과거 전시와 달리 조각이라는 특정 장르의 형식을 화두로 던진 동시에 단정적으로 규정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불식하듯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태도와 공간의 충돌이 일으키는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시선이 기획자나 관람자에게 꽤 유사한 잔상으로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조각의 단편들에 대해 정의하기보다 조각적인 것에 균열을 가하며 진행형인 일련의 현상을 느슨하게 조망해보는 시도일 것이다. 나아가 “나, 조각을 한다!”고 거리낌 없이 외칠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위 조재영 〈Through another way〉(왼쪽)  판지, 나무 60×310×230cm 2014

CURATOR'S VOICE 룰즈 RULES

2016.12.22~1.26 원앤제이갤러리
최정윤 | 독립 큐레이터

대학 시절 처음 미술을 접한 것은 모작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모네, 드가, 고흐, 피카소 등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컬러로 출력해 유화물감을 사용해 따라 그리고, 학기가 끝날 때 즈음이면 전시회를 열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사람들〉, 오치균의 〈풍경〉 같은 그림을 좋아했다. 조금 덜 흔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 화집을 뒤적이고, 미술 관련 교양 수업을 듣다가 본격적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게 됐고, 지금에 이르렀다. 동시대미술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회화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작가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개념에 맞는 형식, 매체를 작품에 맞추어 선택하였고, 형식적 한계를 먼저 받아들이고 내용을 구상하는 경우는 줄어드는 추세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회화작품은 오늘날에도 만들어지고 있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추상표현주의, 단색화, 민중미술, 신구상회화, 극사실주의 등 다양한 회화적 경향이 한국 현대회화사의 시대별 주요 쟁점으로 언급되어 왔다. 하지만 동시대 회화 작가들은 다양한 주제를 각기 다른 기법을 활용해 그리고 있다. 오늘날 기획자, 평론가, 작가 할 것 없이 미술계에 종사하는 모든이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도 ‘어떤 미술을 할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방향 설정이 온전히 개인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공통적으로 합의된 의제가 없는 상황에서 작가들의 작업은 지극히 개별적인 성취이다. 그럼에도 특정 시대의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작품에서 느슨하게나마 어떤 경향성을 읽어낼 가능성은 있다고 보았다. ‘요즘 젊은 세대 회화 작가들의 작품에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있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것은 기획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몇몇 작가를 만나면서 그들이 가시적인 세계를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에 큰 거부감을 보이고 있음을 알게 됐다. 텔레비전, 광고, 영화 등 이미지 포화의 시대에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미지가 유일성을 갖기를 원하는 듯 보였다. 회화가 가져야 할 고유하고 독자적 특성을 평면성이라 여긴 그린버그의 형식주의적 태도와 일부 통하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색, 선, 면 등 평면회화를 구성하는 요소들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었다. 재현적 요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형태의 형식 실험이었다. 구체적 대상의 재현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이나 색의 활용방식이 더 대담했다. 전시장에서, 대학의 졸업전시에서 지인의 소개로 이 같은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작가를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작품을 구성하는 내적 요소 그 자체를 활용한 실험이라는 측면에서 전시의 키워드를 ‘규칙 (rules)’으로 정했다. 룰즈(rules)는 참여 작가 모두가 자신이 온전히 ‘통치(rules)’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규칙(rules)을 고수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붙였다. 보통 규칙은 여러 사람이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이자 질서를 의미하지만, 전시에서 지시하는 각 작가의 ‘규칙’은 온전히 각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그 규칙을 명확하게 남에게 설명하거나 공표할 이유조차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규칙이라는 단어의 원래 뜻과는 차이가 있다. 작가들이 제시하는 자못 객관적이고 명확해 보이는 규칙마저 실상은 그 목적이 지극히 불투명하고 자의적이다. 참여 작가 7인의 작업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첫째로 감정이나 경험을 시각화하는 경우(김미영, 최수인, 에이메이 카네야마), 둘째로 선, 색, 형태, 재료 등 회화 구성 요소의 실험에 집중하는 경우(이환희, 고근호, 성시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화 혹은 회화적 재료에 관한 회화(이상훈)를 제작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시의 의도를 읽으려면 언어로 설명하는 것보다도 출품 작품을 직접 대면하는 물리적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빛, 촉각적 느낌, 분위기와 같은 감각적 체험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2017년, 이 시점에 작가들은 왜 이런 형식 실험을 하는 것일까? 정치사회적 이슈나 특정 내러티브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형태이기 때문에 외부세계와 단절된 세상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그림들을 말이다. 사회적 맥락과 미술의 맥락에서 그 이유를 각각 생각해볼 수 있다. 어쩌면 작가들이 만드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 즉각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실현 가능한 형태의 소규모 유토피아였을지도 모른다. 몇몇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둔 하나의 게임 속에서 유희적 태도로 온전한 창작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미술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형식 게임 말이다. 그곳에서 이들은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와 해방감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현실에서 작가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작품이라는, 스스로가 만든 가상의 공간 안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자신이 만든 규칙대로 그 세계를 통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미술의 맥락에서는 조금 다르게 접근 가능하다. 패션이나 음악 분야에서도 트렌드가 돌고 도는 것처럼, 미술, 회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구상적이고 재현적인 회화, 또는 추상적이고 형식 실험이 중요한 회화가 다시 등장하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진보의 역사가 하나의 선처럼 한쪽 방향으로 이어져나갔다면, 이제는 다양한 경향이 한데 섞여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특정 경향에 관한 선호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온전히 취향의 문제가 됐다.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여러 자산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 역시 자유다. 기존의 다양한 스타일을 재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다양한 경향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황이라고 보았다.
‘전시기획’을 왜 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기획자마다 각기 다르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의적으로 이야기해봄직한 의제를 설정하고, 해당 주제에 관해 고민하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더라도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작가를 소개하는 것을 중히 여겼다. 또한 지금, 여기에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과 ‘우리’의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나가고자 했다.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는 오늘날, 〈룰즈〉를 통해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미술을 살핀다.
위 김미영 〈Between Jungles〉 캔버스에 유채 210×180cm 2016

CRITIC 윤향란 線의 詩學

2016.10.4∼12.3 환기미술관
박춘호 |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문학박사

화가 윤향란’이 6년 만에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그녀가 금속 파이프를 불로 달구고 망치질하여 제작한 조각 작품을 전시하였다. 평면에서 입체로의 전환이다. 전시장 한가득 그녀의 손길에 의해 생명을 얻어 살아 꿈틀거리는 금속 파이프들이 넘쳐난다. 장관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일탈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변신이라고 해야 할까?
윤향란의  〈선의 시학?〉?은 화가가 평면작품을 실체로서 현현하고자 하는 충동을 발산한 전시라 할 수 있겠다. 6년 전 그녀는 화가로서 파리에서 오래 거주했음에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드로잉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였다. 명암을 배제하고 선만으로 그린 추상화였다. 당시 전시한 드로잉 작품 중 일부는 이번에 전시한 드로잉 작품과 유사하다. 윤향란에게 드로잉은 여느 작가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실제 작품을 위한 검토 과정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작업을 시작하기 전 그녀는 감각의 촉을 세우기 위해 마치 운동선수가 워밍업을 하듯이 드로잉을 한다. 이렇게 쌓인 드로잉 중에 선별한 것을 그녀는 캔버스에 조합해 붙이고 다시 떼어내기를 반복하며 드로잉 작품을 완성한다. 한편 그녀의 목탄 드로잉을 보노라면 재료는 다르지만 서예에서 추구하는 필묵의 기운생동과 유사함이 느껴진다. 그녀의 드로잉은 그야말로 오랜 습작기를 거쳐야만 드러날 수 있는 선의 맛이 돋보인다.
이번에 전시한 철조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시장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드로잉 작품들과 똑 같은 방법으로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녀는 각각의 성형된 파이프들을 여느 조각가들과 달리 용접으로 완성하지 않았다. 먼저 그녀는 평면에 선을 긋는 것과 같이 파이프로 각각의 선을 만든다.
그 후 캔버스에 조합하듯이 그녀는 각각의 선들을 철사로 묶어 조립하여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입체이기에 작업 중 여러 방향에서 살펴보며 묶고 풀기를 반복해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러니 현장 조립이자 가변설치라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윤향란에게 평면작품과 입체작품은 전혀 별개의 작업이 아니다. 차이점이라고는 이차원에서 삼차원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불로 달구고 망치질하고 구부려 만든 금속 파이프 선들의 느낌이 드로잉 작품에 드러난 선의 느낌과 너무나 흡사하다. 금속 파이프를 이 정도로 다룬 것을 보면 지난 3년간 화가인 그녀가 이 전시를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화가가 느끼기 힘든 노동의 기쁨을 그녀는 이 작업을 하면서 참으로 만끽하고 있는 거 같다.
이번 전시가 앞으로 ‘화가 윤향란’의 작업에 새로운 돌파구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화가’ ‘조각가의 구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 윤향란’ 작품에서의 진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도 그녀가 자신의 작업을 낯설게 바라보며 성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오랜 시간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그녀를 보며 ‘혁신은 항상 중심부와 일정한 거리를 둔 곳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다음 전시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위 윤향란 〈선의 시학〉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