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 ISSUE 김희수 기념 수림아트센터 개관

〈무용가 최승희 사진展: LEAP & EXTENSION, 도약 그리고 펼침〉 수림아트센터 5.12~8.12

‘도약’과 ‘확장’의 계기를 마련하다

하정웅 이사장

하정웅 이사장

수림문화재단 설립자 故 김희수 이사장의 유지를 잇기 위한 ‘김희수 기념 수림아트센터(이하 ‘수림아트센터’)’가 5월 12일 개관, 운영에 들어간다. 부산으로 이전한 영화진흥위원회의 홍릉 구관을 리모델링한 수림아트센터는 전시장과 공연장, 전통음악가들의 연습장, 레지던시 공간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수림문화재단은 2009년, 학교법인 중앙대학교를 20여 년간 운영해 온 동교(東喬) 김희수(金熙秀) 선생이 설립했다. 알려졌다시피 김 초대 이사장은 1924년 경남 창원 태생으로 일본에서 활동한 사업가였다. 수림문화재단은 설립이념으로 ‘문화예술 가치의 확산 및 보급’, ‘인문학 발전과 부흥 촉진’, ‘사회계층 간의 문화격차 해소’, ‘다문화 갈등의 해소와 소통’ 등을 내세우며 문화예술과 관련한 지원사업을 이어왔다. 주요 사업으로 ‘수림사진문화상’, ‘수림문화상(전통예술 작가 지원)’, ‘수림문학상(장편소설 공모)’ 등이 있다. 국공립미술관 등에 평생 모은 1만여 점의 작품을 기증해 국내 미술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킨 재일사업가 하정웅 씨가 2012년부터 2대 이사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하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그의 바쁜 일정으로 인해 공항에서 연결 항공을 기다리는 사이에 이뤄졌다.
하 이사장은 김 이사장과 40여 년 넘게 교유했고, 특히 김 이사장이 설립한 도쿄의 슈린(秀林)외국어학원 이사직을 맡았는데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셈이다. 하 이사장이 내세운 재단의 주요 활동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인재의 교류를 통해 이해관계를 깊게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수림아트센터 건립이 큰 계기가 될 것”이라며 “김 이사장이 한국에서 최초로 국악대를 개설했는데 그 뜻을 받들어 우리 전통예술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수림문화재단은 북촌아트페스티벌을 지원하고 있다.
개관전은 ‘도약과 확장’을 대주제로 〈무용가 최승희 사진전〉으로 준비하고 있다. “최승희 그 자체가 개척자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개관전을 설명한 하 이사장은 “그것이 수림아트센터 운영의 기본바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내내 하 이사장은 재단 운영의 바탕을 ‘화(和, 일본 발음 ‘와’)’ 문화라고 강조했다. 일본 고유의 문화를 지칭하는 ‘화’는 질서와 조화를 중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하 이사장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문화일 것이다. 취임 후 재단의 조직과 운영 기틀을 마련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는 하 이사장은 “예술문화단체의 성격 상 상이한 문화를 공유해 갈등을 극복하는 ‘화’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 이를 통해 평화와 행복을 이룩하는 것이 재단의 궁극적 목표”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하 이사장은 “내가 작품을 수집한 것도 25세에 처음 산 한 점부터였다”며 “재단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는 심정으로 사명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황석권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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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웅 이사장이 자신의 고향을 모티프로한 작품

 

SIGHT & ISSUE 권진규미술관 개관 기념전

〈권진규와 여인〉권진규미술관 2015. 12.5~5.31

괴짜 컬렉터가 사랑한 조각가

5월 4일은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기일(忌日)이다.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짧은 글귀를 남기고 자신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인 것이다. 함흥에서 태어난 권진규는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조각을 배웠다. 이런 인연 때문일까? 강원도 춘천시에 권진규미술관이 건립됐다. 지난해 12월 정식 개관한 권진규미술관은 개관기념전으로 〈권진규와 여인〉(2015.12.5~5.31)을 개최한 데 이어 한국근대미술 11인선 유작전 〈歸巢, 그리고…〉(4.4~6.30)를 연달아 선보인다.
권진규미술관을 설립한 주인공은 김현식 월곡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춘천 토박이 사업가(옥광산 대일광업 대표)인 김현식 대표는 권진규 작품뿐만 아니라 옹기, 장난감, 로봇, 만화책, 슈퍼카 등 오랫동안 다방면에 걸쳐 특색 있는 컬렉션을 해왔고, 《새드 무비 69》라는 장편소설을 쓴 문학인이기도 하다. 특히 권진규 작품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김현식 대표가 미술관까지 개관하게 된 데는 권진규의 여동생 권경숙 여사와의 만남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권경숙 여사는 오빠 권진규의 조각과 부조 100여 점과 드로잉 500여 점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한 독립된 미술관 건립을 몇 년 후로 미루고, 일단 김 대표의 주요 사업터전인 옥광산타운에 건설 중이던 건물을 활용해 미술관을 개관했다. 건물 이름은 미술관이 위치한 월곡리(月谷里)의 순우리말 지명인 ‘달아실’이라고 지었다.
개관기념전으로 기획된 전시 〈권진규와 여인〉은 크게 세 주제로 구성되었다. ‘자소상’과 ‘도모’(일본 유학시절 결혼한 일본인 부인 가사이 도모), 그리고 ‘여인의 조각’이 그것이다. 권진규는 유난히 많은 자소상을 제작했다.
이 자소상은 영원의 시선과 구도자의 내면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그가 사랑한 여인 도모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리즈는 몇 점 되지 않지만, 신라 석공의 혼과 조형의 본질을 담은 불상을 연상시키며 그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인의 조각’은 귀국 후 서울에서 제작된 여인상을 모았다. 사랑하는 아내 도모를 그리워하며 제작된 여인들의 모습은 작가의 내면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무사시노대학 박형국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권진규는 내면의 정신성까지 조형화”하려 했다. 그의 조각은 인물의 외형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인격과 정신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것.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힘으로 가슴속 깊이 진한 감동을 주며 전율을 느끼게 한다. 권진규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을 통해 그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규형 ART PARK 대표

권진규 (9)

 

ART FORUM 간판, 도시의 일상으로 들어오다

2008 Hypermarket 4

위 < The Advertisement > 단채널 비디오(1분30초) 사운드 2004 아래 < Hypermarket 4 > 단채널 비디오(6분20초) 2008

간판이 한국 도시의 속도성과 경관의 밀도를 반영한다는 필자의 두 번째 원고는 박준범의 영상작업을 매개체로 삼아 풀어냈다.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손을 도시의 형성과 변화에 일방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해석하는 바, 종교성과 신화적 의미의 집합체로서 도시의 소외 문제를 야기하는 상징과도 같다. 그래서 권력은 ‘어떻게’ 수행되는지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백승한 미술·건축비평

미니어처 모형과 거대한 손의 등장이 특징적인 작가 박준범의 2004년 작업 <The Advertise-ment>는 한국의 간판 현상과 도시 일상의 다층적 관계성을 생각하게끔 해 준다.1 <The Advertisement>는 2분 남짓 길이의 짧은 실험적 비디오작업이다. 본 비디오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것은 배경으로서의 가로 경관 이미지와, 그 위에서 퍼포먼스를 시작하는 (작가 자신의 것으로 추정되는) 양손이다. 비디오의 배경은 서울이나 한국의 여느 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종류의 것으로서, 고층 아파트, 상업건물, 간판, 현수막, 종이포스터, 공사 가림막, 가로수, 도시 교회 첨탑, 도로변의 이동하는 자동차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일상적이고 진부하기마저 한 이러한 가로 경관은 거대한 손의 개입으로 인해, 일종의 비일상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직사각형의 프레임 바깥에서 불현듯 등장하는 양손은, 그것이 연결된 신체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으며 미리 고안된 계획에 따르는 듯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배경의 왼편에 위치한 일련의 상업건물들과 표면에 부착된 무수히 많은 광고들은 한국 도시의 속도성과 경관의 밀도를 반영한다. 한편 오른편 코너에 위치한 건물은 갓 시공이 끝난 것으로서, 아직 광고물의 침입을 받지 않은 비교적 ‘순수한’ 상태에 놓여 있다. 프레임 바깥에서 진입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거대하고, 움직이는, 확대된 신체 일부로서의 손은, 한국의 도시적 상황 속에서 상업건물 입면의 순수성이 지속 불가능함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그 거대한 손의 개입에 따라, 장식이 더해지지 않은 매끈한 건물 입면은 결국 주변에 위치한 여느 건물들과 다르지 않게 수많은 광고물로 빼곡히 뒤덮이고 만다. 그리고 본 작업은 명확한 퍼포먼스의 완결보다는 페이드-아웃 기법을 통해 느슨한 형태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관람하는 이로 하여금 일련의 광고물 부착 과정이 일회적이기보다는 보다 광범위하고 지속 가능한 것임을 생각하게끔 한다. 한 비평가가 박준범의 작업을 “비디오 형식주의”라고 부른 것처럼, 매체로서 비디오와 장르로서 퍼포먼스의 결합이라는 형식은 분명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부분이다. 다른 한편, 박준범의 작업이 생성하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힘들?흩뜨러진 소규모의 상업 행위와 또 다른 종류의 균질한 (듯 보이는) 힘의 외부로부터의 개입?이 충돌하는 혼종적인 도시영역이다. 전지전능한?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힘의 일상 도시공간으로의 침투와 지배와 같은 도식으로서 종종 이해되곤 하는 본 작업은, 사실 그 의미 해석에 모호함이 존재한다. 본 작업에 등장하는 분할된 신체로서의 거대한 손은 무엇인가? 배경으로서의 미니어처 도시경관은 단순히 양손이 수행하는 퍼포먼스의 배경일 뿐인가? 혹은 퍼포먼스와 배경으로서의 도시경관이 서로 얽히고설켜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도시적 특이성이 본 비디오에서 펼쳐진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있을까?
본고는 비디오 스크린 속의 확대된 신체를 절대적 능력을 지니는 ‘미다스의 손’이나 일상생활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의 시각적 반영이기보다는, 주어진 세계와 조우하며 그럼으로써 예정되지 않은 힘과 긴장감, 그리고 도시적 분위기와 리듬을 생성하는 접점으로 바라본다. 비디오의 시작과 함께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양손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일상 도시조직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압도한다. 재빠르게 이동하는 손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전지전능한 힘(the heavenly action on earth)인 양 미리 준비한 계획에 따라 도시조직 형성과 변화에 일방향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하다. 겉으로 보기에 힘의 위계는 명확하게 설정된다. 그러한 위계에 따른 공간 변화는 도시화의 과정에서 비소통적이고 비민주적 힘의 개입, 그리고 그에 따른 도시소외의 문제를 생각하게끔 촉발한다. 본 작업의 거대한 손은 한편으로는 토머스 홉스가 말하는 절대권력의 상징 리바이어던에 비유될 수 있다. 구약에 등장하는 바다괴물인 리바이어던은 홉스에 의해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군주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사람 모양을 하고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쓰고 있는 리바이어던의 몸통과 양팔의 표면은 300여 명의 개인으로 구성된다. 홉스의 1651년 저서 《리바이어던》의 표지에 등장하는 이 바다괴물은 한 손에는 종교의식을 위한 주교장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세속적 권력을 상징하는 칼을 쥐고 있다.2 리바이어던의 상반신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의 아래로부터 등장하며, 그 앞에는 중세의 성곽도시와 드문드문 주택과 교회들이 위치한다. 성곽도시의 내부는 비슷한 형태의 저층 건물들로 구성되며, 그 중심에는 고딕 양식 성당을 연상시키는 높은 첨탑의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다. 한편 리바이어던의 신체에 포함되어 있는 개인들은 머리를 뒤로한 채 리바이어던의 얼굴을 있으며, 그 리바이어던의 눈은 다시 정면을 향해 응시한다. 미술사학자 호스트 브레드캠프가 말하는 것처럼, 리바이어던의 표지 이미지는 국가가 필요에 따라 일상생활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키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그럼으로써 명확한 힘의 위계를 재설정할 수 있다는, 간단히 말하자면 국가와 개인 간의 힘의 관계와 주권의 문제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3
본 이미지가 제시하는 것은, 평화롭고 안정화된 일상생활 영역은 항시 (전쟁이나 기근 등의) 사회적 불안정에 따라 국가권력의 개입을 허용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리바이어던에서 드러나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성은 중세 성곽 도시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학자 마이클 하르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지적하는 것처럼, 현대도시는 더욱 복잡해진 정치경제와 소비문화의 구조에 의해 작동함에 따라 예측 불가능성과 우발성을 포괄하며, 이는 리바이어던의 현대적 의미 해석에 신중히 접근해야 함을 함축한다.4 다시 말해서 박준범의 작업에 등장하는 거대한 손은, 리바이어던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무수히 많은 개인을 일방적으로 그리고 갈등의 과정 없이 손쉽게 포괄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질문은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권력구조와 권력관계의 논의에 의해 손쉽게 비켜 날 수도 있겠지마는,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도시영역에서의 주체성과 힘의 문제라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주제 또한 복합적으로 생각하게끔 한다.
다른 한편 <The Advertisement>에서 수행되는 미니어처 광고물의 부착은 간판의 난립과 그에 따른 타락한 도시미관이라는, 근현대 한국 도시경관에서 미적 판단이라는 풀리지 않은 논쟁을 상기시킨다. 유동하는 비디오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대한 손과 그에 대비되는 미니어처 가로경관은 이러한 견지에서 개념적이고 구조적으로 파악된다. 그렇게 파악된 박준범의 작업은 일종의 경화된 이미지 혹은 일상생활의 생생함과 깊이가 사라진 평평해진 스펙터클로 받아들여지며, 그러한 이미지화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시비평을 위한 손쉬운 출발점 기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본 작업이 사진이나 회화가 아닌 비디오라는 매체에 기반을 두며, 의미 생성 또한 그러한 매체성에서부터 비롯한다는 사실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본 작업의 특징적인 부분은 시각적 대조와 충격으로 비롯하는 형태나 구조뿐만 아니라,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시적으로 작동하고 관계 맺는 섬세한 방식들이다 (마치 작가 최정화가 플라스틱 사물로서의 “바구니 자체”보다 단위 개체로서의 바구니와 그것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섬세하고 미묘한 “틈과 결”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본 작업이 적어도 2배속 이상의 빨리감기에 의해 상영되며, 화면 속 거대한 손의 허둥지둥대는 듯한 움직임이 자아내는 유머스러움, 확대된 손이 위에서부터 아래로가 아닌 ‘옆’에서 등장한다는 사실, 반복되는 듯한 미니어처 광고물 부착이 완벽한 반복이 아닌 차이를 수반하는 점들은, 정지된 장면의 시각분석으로는 파악되기 힘든 일상생활의 진동성과 역동성을 굴절적으로 반영한다.
박준범의 비디오작업이 촉발하는 도시공간의 권력과 일상생활이라는 문제는 따라서 손의 개입으로 대변되는 힘의 행사에 의한 결과로서의 도시 스펙터클보다는, 그러한 힘의 행사가 어떻게 미시적으로 작동하고 새로운 관계성을 생성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질 들뢰즈의 권력에 대한 언급은 흥미롭다. 미셸 푸코의 작업을 분석하면서 권력의 문제를 논의하는 들뢰즈는, “권력이 어디에서 생성되는가”보다는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가”라는 질문에 주목한다.5

2011 to let

< To let > 단채널 비디오(8분20초) 2011

도시경험 층위의 생성과 소멸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세사회의 군주나 현대사회에서 거대기업의 권력 행사에 따른 힘의 원천을 찾는 것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와 구조를 탐구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분석적 태도이다. 하지만 들뢰즈는 그보다는 권력이 ‘어떻게’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상황들 속에서 흩뜨러지고, 확장하고, 교차하고, 진화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단일하고 조직적이며, 위압적이고 강력한 절대권력의 상징으로서 ‘미다스의 손’이나 홉스의 리바이어던 이미지는 일종의 신화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전근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무수한 개인은 절대권력을 소유하는 국가에 완벽하게 규율되고 작동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끔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은, 그러한 절대권력이 ‘어떻게’ 수행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개인은 국가권력에 온전히 예속되는가? 그럼으로써 일상생활세계에서 개인의 힘이란 극히 미미하여 구조에 균열을 발생시키는 등의 유의미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가?
박준범의 작업이 적어도 2배속 이상의 빨리감기를 통해 상영된다는 사실은, 들뢰즈가 주목하는 일상생활에서의 힘의 관계성과 그러한 힘이 실천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비디오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양손은 빨리감기를 통해 나타난다. 그것은 마치 시간에 쫓기는 것처럼 미리 제작된 미니어처 간판 이미지들을 화면의 오른쪽 코너에 부착하기 시작한다. 화면 속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손은 마치 광고물 부착의 순서를 계획하고 예상되는 입면의 시지각적 결과를 예측하듯 재빨리 움직인다. 한편으로는 비디오 화면 속의 양손은 명확하게 설정된 계획에 의해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미니어처 간판들은 미리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고, 퍼포먼스의 대상 건물의 크기와 위치에 부합하도록 짜여 있다. 그럼으로써 펼쳐지는 비디오 속의 이야기는 고안된 규칙과 그것의 부지런한 이행의 결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움직이는 손은 실수를 일으키고, 때로는 머뭇거리며, 이미 부착한 미니어처 간판을 재배열하는 등의 완벽하지 않은, 다소 인간적인 순간들을 드러낸다. 또한 그러한 머뭇거림은 빨리감기를 통해 극적으로 나타나며, 규칙-따름이라는 개념적 틀에 완벽히 부합하지 않는 변화와 굴절의 순간들을 드러낸다. 갓 지어진 상업건물의 백색 표면은 금세 현란한 광고물들로 뒤덮이고, 광고물의 텍스트들은 부각되거나 위장하고, 그리고 흩뜨러지고 교차함으로써 도시공간의 역동성과 분주함을 반영한다. 위에서가 아닌 화면의 옆 혹은 아래에서 등장하는 양손은 여전히 화면 속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체이다. 하지만 본 작업의 이야기 전개에 그러한 신체만큼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은 도시의 상업 일상을 상징하는 미니어처 간판들이다. 힘의 영향 ‘아래’에 위치하는 듯한 미니어처 간판들은 중첩과 집합에 의해 새로운 힘의 영역들을 발생시키고, 마치 거대한 양손의 퍼포먼스와 대등한 입지에서 도시 분위기를 형성하는 듯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다시 말하자면, 도시 조직에 관여하는 전지전능해 보이는 거대한 손은 사실 그 관여하는 대상을 완벽하게 통제하기보다는 결국은 그 대상과 얽히고설키는 마는 것이다.
규칙-따름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언급은 이러한 맥락에서 교훈적이다: “우리가 규칙을 따를 때, (그러한 따름의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만의 규칙 속에서 얽혀버리고 말게 된다. 그러한 규칙 속의 얽힘이 바로 우리가 이해하고 싶은 부분이다.”6 들뢰즈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권력관계는) 매 순간 힘의 영역에서 한 지점에서 또 다른 지점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한 힘이 방향을 바꾸거나 (다른 힘의) 발자취를 따라감에 따라 굴절과 저항, 비틀림과 우회(의 순간들)을 발생시킨다.”7 물론 본 작업의 처음에 나타나는 백색의 건물 입면은 애초에 옆에 위치한 간판으로 뒤덮인 건물들처럼 될 운명에 놓인다. 하지만 광고물 부착 전-후의 단순화된 도식으로는 감지될 수 없는 변화의 과정을 본 작업이 선보인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과정이 시사하는 힘의 다수성과 불안정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리바이어던이 그려내는 위계적 힘의 도식을 뛰어넘기를 촉발한다.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고 개념적으로 충분히 정의되지 않은 신체의 일부로서의 손, 그것이 선보이는 비디오 퍼포먼스, 그리고 그로 인해 펼쳐지는 역동적인 거리경관의 모습은 2차원적으로 재현된 도시 스펙터클 이상의 무엇이다. 되려 본 작업이 펼쳐내는 것은 실천 수법으로서의 비디오 퍼포먼스와 미니어처 거리경관 사이에서 생성하는 진동하는 도시 분위기, 지역적이고 세계적인 힘의 관계성, 그리고 일상생활의 규칙과 따름의 미세하고 미묘한 얽힘의 순간들이다.
예술작품으로서의 <The Advertisement>와 그것이 참조하는 실제 도시상황 사이에는 불가피하게 이해의 간극이 발생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본고는 그러한 간극을 인정함과 동시에 도시적 일상의 다층적 의미를 탐구함에 있어 박준범의 작업이 하나의 흥미로운 접점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본 작업을 구성하는 장치들과 퍼포먼스의 구체적인 순간들은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사유의 결과물이며, 도시라는 복합체를 생각할 때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되려 본고는 도시를 완벽하고 이상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사실 도시에 대한 이해는 많은 경우 개인적인 인지와 경험의 순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도시라는 단어, 그리고 그것이 매개하는 무수한 역사와 담론의 층위를 생각함에 있어 한두 가지의 올바른 방법은 없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스펙터클한 풍경은 도시에 접근하는 한 가지의 방법일 것이다. 다른 한편 느린 걸음으로 걷거나 자동차를 통해 이동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생생한 거리풍경은 그 역시 또 다른 도시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의 상반된 듯한 도시 경험의 방식 사이에는 예정되지 않은 도시 경험의 층위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한다. <The Advertisement>가 도시 경험의 이해를 ‘위한’ 작업은 아닐 수 있지만, 동시에 도시 경험의 다층성을 생각하도록 촉발하는 계기일 수는 있다. 그러한 계기가 비록 간판이라는, 도시적 일상을 생각함에 있어서 이제는 (적어도 한국의 도시담론에서) 다소 고루한 측면으로부터 시작할지라도, 그리고 한 예술가의 개인적인 동기로부터 출발할지라도 말이다.●

1 작가 홈페이지: http://junebumpark.com.
2 Carl Schmitt 《The Leviathan in the State Theory of Thomas Hobbes: Meaning and Failure of a Political Symbol》 translated by George Schwab and Erna Hilfstein, Connecticut: Greenwood Press 1996, 18p
3 Horst Bredekamp <From Walter Benjamin to Carl Schmitt, via Thomas Hobbes> translated by Melissa Thorson Hause and Jackson Bond 《Critical Inquiry》(25(2) Winter 1999, 255p
4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Empir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1, 86p
5 Gilles Deleuze 《Foucault》 translated by Sean Hand,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8, 71p
6 Ludwig Wittgenstein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translated by G. E. M. Anscombe, Malden: Blackwell Publishing 2001 125p(필자 번역)
7 Deleuze 《Foucault》 73p(필자 번역)

ART FORUM 〈일월오봉도〉와 〈수렵도〉에 깃든 동양사상

강인수 콜로라도 덴버대 강사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필자가 조선시대 <일월오봉도>와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를 음양사상과 우주생성론에 기반한 정치사상으로 재해석한 원고를 《월간미술》로 보내왔다. 대학에서 Computer Lab을 운영하면서 비트(Bit)와 바이트(Byte)로 이루어진 컴퓨터의 디지털 로직과 주역의 괘획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온 필자는 “두 그림이 그려진 시대와 표현은 전혀 다르지만 사상과 철학, 그리고 예술적 기법을 공유하고 있다”며 “방대하고 심오한 사상이자 철학서이며 신학서이다. 곧 우리의 주역이다”라고 해석한다. 《역경》과 유가사상을 중심으로 해석한 두 그림의 연결고리를 살펴본다.

음양의 법칙과 대인의 정치
조선 왕조 500여 년간 제왕의 권위를 상징해온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와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狩獵圖)〉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본 구도와 드러내고자 한 사상과 철학, 그리고 예술적 기법이 동일한 그림이다. 이 두 그림은 직접적인 전승 관계에 있다. 〈일월오봉도〉를 보면 ‘하늘과 산과 물과 나무’를 기본 구도로 삼았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역시 상·중·하단에 배치된 작은 3개의 산 또는 구릉이 하늘과 산과 물을 상징했다고 가정해보면 오른쪽에 거대한 나무가 배치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 유사한 구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만물을 내신 하느님과 이 분을 빼닮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 관한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했듯 두 그림 역시 천지만물의 생성에 관한 동양의 전통적인 음양오행 우주생성론을 동일한 형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일월오봉도〉와 〈수렵도〉는 하늘(일월)과 산과 물과 나무라는 누구나 쉽게 알고, 경험할 수 있는 물상을 이용해 음양의 법칙을 담아낸 동양의 고전 《역경(易經)》과 이에 대한 유가의 해석을 단 한 장에 담아낸 그림이다. 한자로 쓰인 복잡하고 난해한 경전을 간결하고 쉬운 하나의 이미지로 드러낸 것이다. 차갑고 뜨거운 음양 2기(氣)가 오르내리며 내는 물질인 물과 불이라는 수화(水火)의 작용이 천지를 낳고, 이들이 서로 사귀며 천지만물을 내는 과정, 즉 《역경》의 8괘와 64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념과 추상으로 빠지기 쉬운 동양사상과 철학을 살아있는 실천적 지식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기능과 역할을 한다. 즉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한 국가나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필요한 식견과 통찰력을 기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과 소통하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길을 열어주는, 이판(理判)이라는 영적 세계로 인도하는 인문학적 지리정보시스템(GPS)이나 가상현실(VR) 세계인 셈이다. 〈일월오봉도〉와 〈수렵도〉는 천명을 받들어 새로운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와 동명성왕 주몽의 업적과 그 계승자들이 선왕의 정치를 본받아 선정을 베풀어 문물이 풍성한 태평성대를 이루어왔다는 자부심과 후대 임금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교훈을 함께 전한다. 천지를 받드는 성인, 즉 정자(程子)가 “그 덕은 성인이고, 세속적 지위는 왕”이라고 한 대인의 정치에 관한 그림이다.

물은 차갑게 내려오고, 불은 뜨겁게 타오른다
공자는 《역경》의 첫 번째 괘이자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乾卦)에 나오는 밭[田], 즉 세상에 드러난 현룡과 하늘을 나는 비룡이 상징하는 대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여,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호랑이를 좇는다. 그리하여 성인이 나옴에 만물이 우러러본다(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성백효 역주, 《주역전의 상》, p.170~171, 전통문화연구회 참조

먼저 〈일월오봉도〉를 보면 산봉우리가 해와 달보다 높이 솟아올라 거의 하늘 끝에 닿았다. 이 산 중턱에서 발원한 두 개의 거대한 폭포는 아래 계곡의 연못으로 쏟아져 내리고, 그 좌우 양쪽에 뿌리를 내린 두 그루의 붉은 소나무는 온 산을 뒤덮고 있다. 산이 해와 달보다 높이 솟았다면 이는 이 땅의 산이 아니라 저 하늘의 구름 산이고, 이 구름 산에서 발원한 폭포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이다. 산을 넘어 온 하늘을 뒤덮은 구름에 뿌리를 둔 붉은 소나무는 번개나 벼락과 같은 불로 봐야 한다. 주자는 “푸른 하늘이 곧 만물이 의지하는 리(理)인 태극”
이라고 했다. 여기서 푸른 하늘의 해와 달은 태극에서 비롯된 음양, 산은 차갑고 뜨거운 음양 2기를 상징하는 구름 산, 5개의 산봉우리는 음양 2기의 오행, 폭포와 소나무는 음양 2기가 오행을 하여 생성해내는 물질인 물과 불을 상징한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의 선비라면 누구나 한 번씩 읽던 《성리대전》에 나오는 “수지윤하 화지염상 (水之潤下 火之炎上)(물은 차갑게 적시며 내려오고, 불은 뜨겁게 타오르는)”의 음양 작용을 드러냈기 때문에 결국 태극 문양으로 그 뜻을 간략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림은 ‘텅 빈 태허의 우주 공간(Void)’에서 천명에 따라 예정된 어떤 변화가 일어나 차갑고 뜨거운 김이나 수증기와 같은 기운이 오르내리며 내는 대폭발 같은 음양수화(陰陽水火)의 작용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오행으로 천지가 이루어지고, 이들이 서로 사귀어 일월성신과 동식물과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내고, 모든 이 중 으뜸가는 분인 성인이 세상에 출현해 천하만국을 태평하게 한다는 공자의 우주론과 정치사상을 줄거리로 삼았다.

조선의 건국
공자는 고요한 이 땅 위에서 춘하추동 사시가 순환하는 천지의 교류를 두고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쫓는다”고 했다. 여기서 용은 좌청룡으로 양인 봄과 여름을, 호랑이는 우백호로 음인 가을과 겨울을 가리킨다. 뜨거운 양기가 자라면 연못이나 바다의 차가운 물은 증발하면서 높이 올라 푸른 구름 산을 이루었다가 차가운 음기가 자라면 먹구름이 되어 낮게 드리웠다가 천둥 번개가 칠 때 생명의 물을 이 땅에 차별 없이 뿌린다. 구름은 뜨거운 태양을 쫓고, 바람은 차가운 보름달을 쫓는다.
〈일월오봉도〉의 좌우에 배치한 해와 달은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이다. 10간과 12지지를 이용한 동양의 전통적인 방위표기법으로 보면 달은 동남, 해는 서북에 배치되었다. 즉 정면에서 보았을 때 그림의 왼쪽이 동방, 오른쪽이 북방이다. 그림에서 음양 2기의 5행을 상징한 5개의 산은 왼쪽부터 각각 목화토금수 5기(氣)와 동남중서북이 된다. 불을 상징하는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북산과 동산은 한겨울 동지가 지나 생겨난 양, 물을 상징하는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남산과 서산은 한여름 하지가 지나 생겨난 음이 자라는 ‘음양 2기의 소장(消長)과 수화의 생성(生成)에 관한 법칙’을 각각 드러낸다. 〈일월오봉도〉는 결실과 정의를 상징하는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로 하늘에서 음양 변혁의 천도(天道)가 이루어져 만물이 생성되었고, 성인의 덕을 지닌 태조 이성계가 세상에 으뜸으로 출현하여 천명에 따라 혁명을 일으킨 뒤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로 세웠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신유교라 불리는 성리학을 국교로 삼은 조선은 경전에 나오는 유가적 논리체계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직관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제왕의 권위를 드러냈다.

태조 이성계가 받은 천명
〈일월오봉도〉는 오랜 세월 동안 풍상을 겪어온 이끼 낀 소나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공자가 《논어》에서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고 한 바로 그 나무이자,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인 삼봉 정도전이 당시 동북면도지휘사로 있던 이성계 장군을 찾아가 그가 천명을 받은 재목임을 알고 군영 앞 노송에 남겼다는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득한 세월에 한 그루 소나무 / 푸른 산 몇 만 겹 속에 자랐구나 / 잘 있다가 다른 해에 만나볼 수 있을까 / 인간을 굽어보며 묵은 자취 남겼구나(蒼茫歲月一株松 生長靑山幾萬重 好在他年相見否 人間俯仰便陳)”
(출전: 한영우 《정도전 사상의 연구》 p.25, 서울대출판부)

음양수화와 주역 팔괘
음양수화의 작용을 드러낸 〈일월오봉도〉를 보면 푸른 하늘의 해와 달, 좌우로 배치된 폭포와 소나무가 ‘1-2-4-8’이라는 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공자가 〈계사전(繫辭傳)〉에서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8괘를 낳는다”고 한 말을 이미지로 나타낸 것이다. 8괘는 하늘과 땅, 산과 연못, 우레와 바람, 물과 불을 가리키는데, 그림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무성하게 자란 거대한 붉은 소나무는 불(火)이자 우레(雷), 바람(風)을 상징한다. 〈설괘전(說卦傳)〉을 보면 그림의 소나무처럼 “좀처럼 보기 드문 무성함(繁鮮)”을 이룬 것은 우레를 상징하는 8괘의 진(震)에 속한다. 그림은 〈설괘전〉에 나오는 “하늘과 땅이 자리를 잡고, 산과 연못이 기를 통하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가까이 일어나고, 물과 불(또는 번개와 벼락)이 서로 싸우지 않는다(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고 한 8괘에 관한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드러냈다.

주역 64괘와 조선의 제왕학
8괘를 상징하는 물상(物象)은 상하 좌우로 배치돼 기계적인 균형을 이룬다. 이는 하늘의 일월과 이를 품고 있는 좌우 동·남과 서·북의 산과 소나무와 폭포와 연못이 엄정한 대칭 관계를 보여준다. 8괘가 서로 섞여 만물을 내는 과정, 즉 64괘(8×8)를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푸른 하늘과 산(또는 땅)은 임금이 받들어야 할 천지 건곤(乾坤), 폭포와 소나무는 물과 우레로 혼란에 빠진 천하를 다시 안정시킬 수 있도록 돕는 제후 또는 신하를 임명하는 도에 관한 수뢰둔(水雷屯)을 의미한다. 폭포의 발원지인 산속의 샘물은 비록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강과 내를 이루어 바다로 나아갈 수 있게, 즉 형통하게 해주는 성인의 공덕에 관한 산수몽(山水蒙)을 뜻한다. 윗사람이 베푸는 은택과 왕업(王業)을 상징하기도 하는 폭포와 소나무는 창업과 천하가 다스려졌음을 의미하는 수화기제(水火旣濟), 소나무와 폭포는 세습 군주가 선왕의 정치를 본받아 태평성대를 이어나가는 수성(守成)에 관한 도를 담고 있는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된다. 〈일월오봉도〉를 관조하면 동양의 고전 중 가장 난해하다는 《역경》의 심오한 세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월오봉도〉를 보면 조선의 제왕, 즉 천지를 받들어 일월과 같이 행하는 대인이 반드시 갖추거나 행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림은 제왕을 위한 학문을 담고 있다.

선천복희팔괘도

〈주자의 선천복희팔괘도〉 (출전: 성백효 역, 《주역전의 상》, p.89, 전통문화연구회)

<일월오봉도>에 영향을 끼친 불가와 도가의 세계관
그림은 아래로 끝없이 베푸는 따스하고 뜨거운 자비와 높이 나는 새와 같은 절대적 경지와 자유를 사랑했던 불가와 도가가 서북으로 지는 태양과 같이 마지막 광채를 발산하고, 이 땅의 정의를 주장했던 유가가 차가운 보름달처럼 동남으로 떠오르던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
유·불·선 3도 중 해와 달이 산 중턱에서 돈다는 우주론은 불교에만 해당된다. 〈일월오봉도〉에서 거의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산은 수미산(須彌山), 이 사이에 걸려 있는 일월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동서남북을 지키고 있는 산 중턱, 그 아래 기슭에 펼쳐진 바다에서 일렁이는 엄청난 크기의 파도는 “큰 구름과 비가 수레바퀴만한 물방울을 풍륜 위에 뿌려 수륜과 금륜을 이룬다”고 한 경전의 내용과 관련 있다. 그리고 산속의 폭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수풍지화(水風地火)가 되어 극대와 극미의 세계를 보여준다(권오민 역주, 《아비달마구사론 2》, 동국역경원 참조). 또한 5개의 봉우리와 그 아래 바다와 산과 물과 좌우 두 그루의 나무는 중국 고전 〈산해경〉에 나오는 5산 4해의 천하관과 치산치수(治山治水)와 왕조의 흥망성쇠에 관한 중국 하나라 우왕의 가르침,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큰 숲을 이루었다’는 이수목(二樹木)에 관한 일화와 장자에 나오는 오래 사는 나무에 관한 내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자세한 내용은 《산해경》, 정재서 역주, 민음사 참조). 〈일월오봉도〉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대외적으로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지만 불가와 도가도 함께 품고 가겠다는 왕실 내부의 종교적 지향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잃어버린 우리의 기록 문화와 역사
조선시대 제왕의 권위를 상징한 〈일월오봉도〉와 비슷한 유형을 중국이나 일본에선 찾기 어렵다. 이러한 독창성 때문에 지금까지 이 그림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나 역사적, 미술적 가치를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일월오봉도〉의 독창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김홍남, 《중국 한국 미술사》, 학고재, 2009/ 이성미,《어진의궤와 미술사》, 소와당, 2012 참조). 그동안 민화나 왕실과 나라의 국태민안을 비는 부적 정도로 취급받았던 이 그림에 대한 연구가 최근 미술사 학계에서 이루어져 《시경》에 나오는 ‘천보(天保)’ 또는 ‘유교적 통치원리를 드러낸 그림으로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정령주의적 전통과 유가와 도가, 그리고 음양오행 사상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문헌에 바탕을 둔 정확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마땅히 그러할 것’이라는 추상적 개연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 그림을 알면 조선시대 왕조실록과 의궤의 관계처럼 문자로는 다 전할 수 없어 그림이라는 형식을 이용하여 기록해온 우리의 잃어버린 전통 문화와 역사를 찾을 수 있다.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쫓는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는 1938년 당시 일본 도쿄제국대학과 교토대학 교수이던 이케우치 히로시와 우메하라 스에지에 의해 발굴된 이래 지금까지 사슴과 호랑이를 잡는 ‘고구려의 강건한 무인정신’을 드러낸 사냥 그림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 역시 조선의 〈일월오봉도〉와 같이 공자가 주역 건괘에 나오는 대인을 상징하는 현룡과 비룡에 관해 설명하면서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쫓는다’고 한 말에 바탕을 둔 그림이다. 〈수렵도〉는 사냥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지만 〈일월오봉도〉와 같이 주변 대상과 비교할 때 전혀 비례가 맞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나무와 사슴이 뛰어넘는 작은 산, 2명의 사냥꾼과 3명의 몰이꾼, 사냥꾼이 쏘려고 하는 끝이 뭉뚝한 비살상용 화살, 소와 수레 등에 대해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 설명할 수 없었다.

수렵도일부1 사본

하늘과 산과 물과 나무와 주역 8괘
〈수렵도〉에서 상·중·하단에 각각 배치된 3개의 구릉 또는 산을 〈일월오봉도〉와 같이 하늘과 산(또는 땅)과 물, 그리고 그 오른쪽에 배치된 바람에 흔들리는 거대한 붉은 나무는 불을 상징한 것으로 보자. 물은 차갑게 적시며 내려오고, 불은 뜨겁게 타오르는 음양의 작용과 천지가 교류하며 내는 8괘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림 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 전통적인 방향표기법을 적용하면 서남과 동북에 배치된 2명의 사냥꾼이 타고 있는 말은 다른 3명의 몰이꾼이 탄 말보다 월등히 크다. 이는 천지를 상징하는 용마(龍馬)와 빈마(牝馬)다. 남북 상하로 배치되어야 할 천지가 좌우로 이동한 것은 천지가 서로 사귀어 만물을 내는 동적인 과정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오른쪽 위에 배치된 용마를 탄 사냥꾼 뒤에 위치한 구릉은 용을 쫓는 구름과 양기, 나무를 흔드는 실체와 도망치는 범은 호랑이를 쫓는 바람, 호랑이가 숨어드는 흰 산은 음기를 나타낸 것이 된다. 또한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는 듯한 암수 2마리 사슴은 인의(仁義)가 이루어진 세상인 태평성대의 조짐을 알린다는 전설의 동물 기린(麒麟), 그 아래 오른쪽 하단에 배치된 1마리 수사슴은 기(麒)로 차가운 정의를 추구하는 덕이 있는 군주의 어진 정치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은 ‘이 땅에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 하늘이 명령한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 말한 송대 주자의 정치사상을 연상케 한다. 용마와 빈마를 탄 사냥꾼은 천지를 받들어 행하는 대인으로,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 주몽과 그 계승자인 무용총의 주인을 뜻한다. 주변에 배치된 3명의 몰이꾼은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한 일등 공신인 오이, 마리와 협보가 된다.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
〈수렵도〉가 배치된 무용총 내부 천장을 보면 해와 달이 동서로 배치되었다. 이를 전통적인 방향표기법으로 보면 〈일월오봉도〉와 같이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는 때’를 드러낸 것이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해가 동방으로 떠오르는 아침에 북두칠성이나 남두육성과 같은 별을 볼 수 없다. 무용총 천장에 배치된 일월 역시 천도가 순환하여 천지간 만물이 이루어졌고, 성인의 공덕을 지닌 주몽이 세상에 나와 천명을 받들어 고구려를 건국하였으며, 그 계승자인 무덤 주인에 의해 선왕의 태평성대의 정치가 이어져 고구려의 종묘사직이 반석에 오르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주역 64괘로 기록한 무덤 주인의 공덕
〈수렵도〉 역시 3개의 산을 좌우 음양으로 나누고,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가 된 연리지를 배치하여 〈일월오봉도〉와 같이 주역 64괘가 구성될 수 있도록 구도를 잡았다. 산(또는 땅)과 물과 나무가 뿌리내린 오른쪽 하단, 즉 〈일월오봉도〉에서 지는 해가 배치된 서북을 보면 수뢰둔(水雷屯), 산수몽(山水蒙), 지수사(地水師), 수지비(水地比), 그리고 산지박(山地剝) 괘가 몰려 있다. 천지일월 건곤감리와 이 5개의 괘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면 “고조선이라는 큰 산이 무너져 내리고 민족이 갈라져 서로 싸울 때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과 같았던 불세출의 지도자인 주몽이 세상에 으뜸으로 출현하여 3명의 조력자와 함께 소인을 물리치고 대인을 가까이 하며 백성을 편안하게 길러 근본을 튼튼히 한 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군대를 양성하여 한나라를 물리치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대업을 이루었다”는 내용의 서사시가 된다. 〈수렵도〉는 무덤 주인이 망국의 위기에 처했던 고구려를 다시 살려낸 ‘재조(再造)’의 공덕을 이루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주몽의 고구려 건국에 버금가는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수렵도일부2 사본

 

소수림왕과 해동불법을 연 순도와 아도
무용총은 고구려의 왕립학술기관인 태학(太學)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율령을 반포해서 법치를 확립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를 받아들여 고구려 중흥의 토대를 마련한 소수림왕의 무덤으로 보인다. 〈수렵도〉에 나오는 소가 끄는 수레, 즉 우차(牛車)를 보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눌지마립간 22년(438)의 기록을 보면 “이때 백성들에게 우차(牛車)의 이용법을 가르쳤다(敎民牛車之法)”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고구려 장수왕 26년에 해당된다. 신라에서 소를 밭갈이에 이용한 우경은 우차가 나온 지 60여 년 뒤인 지증마립간 3년(502)부터 사용되었다. 우차가 고구려에 먼저 소개됐다고 하더라도 시간적 차이는 크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무용총의 축조 연대는 소수림왕
(371~384)과 장수왕(413~491)의 치세인 4세기 말~5세기 사이로 볼 수 있다. 소수림왕과 눌지왕의 치세 기간은 고구려와 신라에 불교가 처음 소개된 때다. 우차는 불교의 전래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소를 신성시하는 불가에서 소를 보호하기 위해 수레와 농경에 이용하도록 권장했던 듯하다. 일본인 이케우치 히로시는 〈발굴조사보고서〉
에서 북방 접객도의 검은 윗옷을 입은 손님을 도사나 승려로 보고 그림이 도가나 불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했지만 이들의 옷은 고구려의 전통복식이다. 오히려 붉은 옷을 입은 이가 승려 복장에 더 가깝다.
무용총 벽화에서 소가 끄는 수레와 승려가 등장한 것은 무덤의 주인이 불교를 공인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흰 소는 진리의 불성(佛性), 대승과 소승불교, 수레 안에 실린 짐은 경전, 소와 수레를 이끄는 붉은 옷 입은 이는 승려, 승려가 치켜든 막대기는 중생을 올바로 인도하는 회초리로 교화를 상징한 듯하다. 소수림왕은 유가와 불가를 모두 받아들여 정의롭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던 것으로 보인다. 소수림왕이 즉위했을 때 고구려는 건국 이래 최대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부친인 고국원왕때 연나라가 침입했다. 연나라는 남녀 5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가고, 수도인 환도성을 헐고 왕궁을 불태운 뒤 그 후환을 없애기 위해 고국원왕의 생모인 미천왕비를 볼모로 삼았다. 또한 미천왕릉을 파서 그 시신을 실어가기까지 했다. 결국 고국원왕은 혼란기를 틈타 침입한 백제 개로왕의 평양성 공격을 막다 사망했다. 절치부심한 소수림왕은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하며 내치를 다지는 한편 불구대천의 원수인 연나라를 멸망시킨 전진의 왕 부견이 보낸 사신과 승려 순도와 아도를 맞아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세워 해동 불법의 단초를 열어 고구려 중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인에 의해 발굴된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는 한·중·일 인문학계의 편협한 시각과 오해와 무지를 잘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이 그림을 만주 벌판을 누비던 강건한 고구려 무인의 자주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일본은 기이한 사냥 그림으로, 중국은 중원의 지방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으로 해석한다. 그 어느 나라도 이 그림이 《역경》과 유가 문화의 뿌리가 되는 공자의 우주론이나 대인의 정치사상과 관련 있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자의 학문을 받아들인 고구려는 멸망한 뒤 계승자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중국에 속한 하나의 지방 정권에 불과한가? 무용총 벽화의 내용과 기법을 분석해보면 조선의 〈일월오봉도〉와 직접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두 그림은 유·불·선 3도 같은 이질적인 사상이나 종교 등을 개방적으로 수용해온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담고 있다. 회화라는 형식을 이용한 독특한 기록 문화와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을 간결하고 쉽게 표현해내는 직관적 사유체계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와 조선의 제왕을 상징한 그림이 《역경》과 이에 대한 공자와 유가의 해석을 담고 있다고 할지라도 중국 황제 뒤에 놓였던 병풍과 달리 한자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도통(道統)과 왕통(王統)(Governance)’을 바로 세우고, 지켜내기 위한 노력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의 인문학계는 공자의 우주론과 덕(德)이 있는 군주와 현명한 신하, 즉 대인이 서로 만나 태평성대를 이루어내어 천하 만민을 이롭게 한다는 이견대인(利見大人)의 정치사상과 우리 미술의 독창성은 알지 못한 채 모두 엉뚱한 말만 하고 있다. 무용총은 고대 동양 인문학의 정수이자 근현대 인문학의 왜소하고 초라한 무덤이다.
시와 역사와 사상과 철학, 그리고 신학을 담아낸 그림은 조선의 인문학적 전통을 상징한다. 그림은 주역이고, 주역은 그림이다. 시서화(詩書畵)는 곧 시서역(詩書易)을 말한다. 정자는 역을 공부하는 목적은 ‘말[辭]’을 아는 데 있다고 했다. 제왕의 권위를 상징한 〈일월오봉도〉와 〈수렵도〉는 우리말로 쓰인 장대한 서사시이자 역사서이고, 방대하고 심오한 사상이자 철학서이며 신학서이다. 곧 우리의 주역이다. 오랜 세월 가다듬어온 우리의 정언(正言)과 정음(正音)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동안 ‘왕실과 나라의 국태민안을 비는 ‘본[本]’을 보고 그린 그림으로 삼라만상을 드러내었다’는 식의 천부당만부당한 피상적 평가 속에서 보물이나 국보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겪어야만 했던 〈일월오봉도〉는 우리의 문학과 역사뿐만 아니라 유·불·선 3도를 단 한 장의 예술로 녹여낸 인류 인문학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적 시도와 열정을 담아낸 그림이다.●

CRITIC 노순택 Dance of Order/Really Good, Mu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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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43 인버네스 스트리트 갤러리에서 열린 노순택 개인전 광경 아래 피츠로비아 갤러리에서 열린 노순택 개인전 광경

런던 43 Inverness Street 1.28~3.12/The Fitzrovia Gallery 1.21~2.26

임근혜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2013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으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절정에 달하던 당시, 영국 BBC의 한 시사프로그램 기자가 대학생 방북단의 지도교수로 위장한 채 평양을 취재하여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취재가 발각될 경우 학생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었기에 거센 항의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은 논란만큼이나 시청률도 높아서 평소보다 약 70% 상승한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텅 빈 공장과 병원, 기아 상태의 어린이들의 모습과 신으로 추앙받는 김일성과 후계자들의 모습 그리고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장면을 남한의 부유하고 자유로운 모습과 번갈아 보여준 30분짜리 프로그램은 서구 언론이 북한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재현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처럼 지극히 제한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은 ‘잠입 취재’ 등 약간의 흥미 요소를 곁들인 채 센세이셔널리즘으로 소비되곤 한다.
재영(在英) 큐레이터 이정은의 기획으로 런던시내 두 개의 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린 노순택 사진전은 이처럼 제한된 정보와 검열로 왜곡되고 변질된 채 인식되는 북한의 이미지와 남한 속의 일상화된 정치적 폭력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남북한이 “두 개의 무대에서 공연되는 하나의 무용처럼 상호 공존을 반영”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전시는 이미 한국과 독일 그리고 스페인에서 선보인 바 있는 작가의 대표작 시리즈 중 일부를 선별하여 소개한다.
43 인버네스 스트리트 갤러리는 북한이 대외 선전용으로 자랑하는 호화롭고 일사불란한 매스게임과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주체사상탑을 담은 <붉은틀>과 미군 주둔을 둘러싼 공권력과 주민 간의 대치상황을 군사시설인 레이돔과 정찰헬기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얄읏한 공>과 <블랙후크다운>로 구성된 한편, 피츠로비아 갤러리 전시는 살인 기계를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남한의 국군의날 행사를 다룬 <좋은, 살인> 및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화제가 되었던 안상수의 발언에 관한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로 구성되었다. 남북한이 서로를 의식하고 자신을 표상하는 방식은 상호 유사하며, 극한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군사 대치 상황 속에서도 체제 유지를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아름다우면서도 블랙코미디적인 이미지를 통해 역설적으로 전달했다.
이처럼 파편화된 기억을 정치적 역사적 맥락으로 엮어내는 작가의 통찰력은 언어보다 강력한 이미지의 힘으로 한국의 상황에 익숙지 않은 영국인들을 매료시켰다. 갤러리와 런던대 SOAS에서 열린 아티스트토크에서는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분단이라는 정치적 상황이 지배하는 한반도의 일상과 남북한의 관계처럼 정치적 생존을 위해 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지구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테러와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ARTICLE

최정화,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2 (2004)

위 장용근 <도시채집-간판> 잉크젯프린트 100×150cm 2004 아래 최정화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2004

도시의 풍경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간판을 비롯한 홍보물들. 이들은 모두 익숙해진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했다. 《월간미술》은 이를 매개로 한 작업을 통해 우리 삶의 풍경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풀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일대 동아시아학센터에서 도시건축미술에 대해 연구하는 필자는 일상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또 하나의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눈에 띄는 차이를 발견하기 힘든 일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간판, 한국의 일상으로 들어오다

백승한 예일대 동아시아학센터 연구원

한국 도시의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흔히 접하게 되는 수많은 간판, 네온사인, LED 스크린, 전단지, 현수막, 포스터 및 각종 거리광고물들을 한곳에 모으면 어떤 시지각적 효과를 가져올까? 그리고 그렇게 조합된 광고물 이미지들을 가지고, 이제는 진부한 듯한 한국 도시의 ‘일상’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 번 꺼낼 수 있을까? 사진작가 장용근과 작가 최정화는, 이처럼 간판으로 비롯되는 21세기 한국의 특수하면서 보편적인 도시와 일상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장용근의 <간판>(2004)은 수많은 간판 및 가로경관 이미지들로 구성된 포토 콜라주 작품이며, 최정화의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2004)는 작가가 직접 모은 ‘불법’ 현수막들을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미술관 외벽에 한시적으로 전시한 설치작품이다. 비록 표현 매체와 작업 방식은 상이하지만, 두 작가의 작품은 한국 도시경관의 특징적인 요소들 중 하나인 거리광고물을 주요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한다. 21세기 도시풍경, 일상생활,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의 접점에 대해 탐구하는 연재의 첫 에세이로서, 필자는 두 작가의 작품을 함께 읽음으로써 간판으로 뒤덮인 한국 도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차이와 반복, 역동성과 다양성, 그리고 일회성과 특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구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작가가 직접 도시 곳곳을 답사하면서 찍은 가로경관 사진들로 구성된 장용근의 <간판>은 가로 1.5m와 세로 1m의 직사각형 프레임 속에 100장이 훨씬 넘는 도시풍경 사진이 들어있다. 간판으로 뒤덮인 한국 도시경관의 혼란스럽고 무정부주의적인 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장용근의 작품은 ‘대명보청기’, ‘한일사진관’, ‘롯데관광’, ‘주주뱅크’ 와 같이 거리를 걷다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동네 구석구석에 설치된 간판들에 새겨진 일상적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도시공간에 친밀함을 느끼게 한다. 한편, 빈 공간 없이 현란한 간판 이미지들과 메시지들로 빼곡히 채워진 직사각형 화면은 한국의 도시공간이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작동되는 과도한 소비의 공간임을 암시한다.
도시에 대한 깊은 애착과 동시에 상업화된 도시공간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소외감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묻어나는 작가의 <도시채집> 시리즈 간판은, 종종 비평가들에 의해 “욕망의 이미지”, “비일상”과 “값싼 키치”의 공간, “일탈의 이미지” 혹은 “무감각한 도시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작품으로 논의되어 왔다. 이러한 견해들의 이면에는 간판을 아름다운 도시미관을 해치는 “시각공해”, 순수한 건축입면을 침해하는 저속한 표피적 장식, 도시경험의 역동성과 진동이 증발한 공허한 기표, “사회적 권력의 표상”, 특수성과 지역성이 희미해진 “포괄적인 도시”, “부드러운 공해”, “환각의 미학” 등의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후기 자본주의 체제 내 스펙터클 사회에서의 소비문화와 도시소외 현상에 대한 뿌리깊은 비판적 담론들이 존재한다.1 하지만 장용근의 작품이 만약 소비문화로 점철되어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비일상’의 공간을 표상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다 의미있는 ‘일상’의 공간이 과연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거꾸로 생각해서 온갖 종류의 간판언어들과 이미지들로 혼란스럽게 도배된 한국의 도시공간이, 비록 이상적이지는 않을지언정, 한국의 도시상황 속에서 불가피한 일상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품을 자세히 보면, 언뜻 무감각하게 반복되는 듯한 도시경관이 사실은 주어진 상업적 환경 내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들로 표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간판이 종종 소규모 간판업체에 의해 비교적 획일적인 방법으로 제작되는 한편, 장용근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간판 이미지들은 각기 다른 활자체, 평면 구성, 색채, 리듬 등에 의한 상업경관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풍부하게 보여준다. 활자체와 색채를 이용한 간판언어의 부분적 강조, 한글이나 영어나 한자와 같은 언어의 취사선택, 그리고 문자와 이미지를 조합하는 다양한 방식 등은 손님의 눈길을 끌기 위한 진부하고 기계적인 광고전략 이상이 아닐 수 있지만, 동시에 다양한 업종과 사업규모에 따른 상인 각각의 미적 취향과 도시공동체에서 개인의 윤리성이 파편적인 형태로 여실히 반영되는 핵심적 경관 요소들이다. ‘롯데관광’과 같은 여행사 간판은 여타 장식없이 직사각형 간판 위에 업체 상호와 규격화된 상징을 비교적 평이하게 새겨놓은 한편, ‘시집못간 암퇘지’와 같은 동네 고깃집 간판은 미묘한 성적 뉘앙스를 재치있게 간판 언어로 표현하여 지나가는 행인의 눈길을 단번에 끌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처럼 간판이 각기 다른 디자인과 언어표현을 통해 구성된다는 측면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바로 그 지점을 통해서만이 한국의 일상 도시공간을 특징짓는 개별성과 특이성, 그리고 정서성과 도시의 역동성을 파악할 수 있다.
간판이 광고 전달의 수단인 한편 각 상인의 미적 취향과 정서성이 투영되는 접점이라는 사실은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일상생활의 다양성 논의와 맞닿아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저서 《철학적 탐구》 (1953)에서 “하지만 얼마나 많은 종류의 문장이 존재하는가?”라는 스스로 던지는 질문에 대해 “수많은 종류가 있다”고 답할 때, 그는 단순히 문장의 개수에 대해 논의하기보다는, 개인의 즉각적인 생각과 감정을 문장의 형식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다수성과 예측 불가능성, 즉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상의 다채로운 “삶의 형태(forms of life)”에 대한 철학적 탐구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2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하나의 독립된 단어가 단순히 명사인지, 동사인지, 혹은 평문인지, 명령문, 혹은 감탄문인지 구분하기 힘든 모호성은 그 단어의 사전적이고 규범적 의미보다는 일상 생활의 맥락에서만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장용근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겉보기에 균질화된 간판언어들은 한국 도시공간의 일상성을 탐구케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보 전달 이상의 함의가 있다. 가령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피카소 미용실’ 간판이 “(바로 그) 피카소(!) 미용실(이구나!)” 유의 감탄문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기는) 피카소 미용실(입니다)”라는 평이한 문장의 축약형인지는 근본적으로 규정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간판을 마주하는 불특정 다수의 해독 방식은 간판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의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같을 수 없기에, 겉으로 보기에 진부한 간판의 디자인이나 언어표현은 항상 여러 주체에 의해 생성되는 임의성과 애매성, 그리고 즉각성과 창의성을 포괄한다.
장용근의 작품은 시각적 스펙터클을 넘어서 끊임없이 사라져가는 일상 도시 경험의 순간성과 특이성을 반영하며, 그가 현지답사를 통해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다양한 도시 경험의 시공간적 층위들을 2차원 평면에 압축적으로 투영시킨다. 장용근은 대체로 건물 외벽에 빛이 균일하게 투영된 정적이고 기하학적으로 안정된 순간들에 집중하는 한편,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이라든지 인접 간판에 의해 생성되는 그림자와 같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순간들 역시 놓치지 않는다. 이는 작가가 그림자나 바람과 같은 환경적 조건들을 건물의 자율적 입면구성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보다는, 일상 도시공간의 감각적이고 교감적인 차원을 경험하게 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였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장용근의 관심이 상업 도시경관이 체험되는 다양한 도시적 상황들에 있다는 점은 도시 경험과 근대성에 대한 논의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며, 이는 독일의 문예학자 발터 벤야민이 도시를 읽은 방식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영화감독 앨리스 아놀드가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 (2012)에서 언급하듯, 벤야민이 읽고자 한 도시 경험의 순간성과 특이성은 간판이 전달하는 ‘메시지’ 자체에 있기보다는, 가령 비가 오는 날에 간판이 아스팔트 바닥 물웅덩이에 반사되어 다가오는 ‘형식’, 혹은 미술사가 아론 비니거가 벤야민의 언어를 빌려서 말하는 “세속적 불빛(profane illumination)”에 있다.3
이러한 점에서, 장용근의 작품은 간판으로 점철된 한국의 도시풍경을 온전히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기보다는 일상생활의 역동성, 특이성, 차이와 반복, 유머, 정서성, 그리고 규율성을 그만의 미묘한 방식으로 담아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한국 도시일상의 다층적 차원을 생각하도록 촉발하는 듯하다. ‘간판’이라는 제목의 본 작품은 따라서 분리 가능한 개별 사물로서의 간판을 지칭하기보다는, 간판과 같은 일상적 거리경관의 요소로서 특징지워지는 한국 도시공간에서 일상의 의미에 대해 편견없이 다시 한번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장용근의 작품은 한국 간판경관이 아름답거나 아니거나, 혹은 상인들끼리의 과도한 경쟁이 도시의 미관과 공공성을 해치거나 아니거나의 미적이고 윤리적인 판단 문제에 대한 해답을 즉각적으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간판으로 도배된 한국 도시 일상의 가치에 대한 미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 대한 성급한 가치판단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류하게 하며, 그를 통해 사소하지만 경이롭고, 최정화 작가가 말하는 소비문화로 점철된 한국 도시 일상의 “눈이 부시게 하찮은” 순간들을 환기시켜 준다.

도시 일상 생활의 미묘한 차이와 반복
스스로를 “사물에 중독된 페티시스트”라고 소개하는 작가 최정화는,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를 완성하기 위해 버려졌거나 철거된 불법 현수막들을 시청이나 구청 등을 방문하여 직접 수집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한 불법 현수막들을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 김수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르코미술관(1979) 외벽에 설치하였다. 붉은 벽돌의 외장재와 여러 개의 기하학적 매스의 유기적이고 리듬감 있는 접합이 특징이며, 또한 건축역사가 정인하의 표현에 의하면 “에워싸여져 있지만 끊임없이 연결되는 [내부] 공간” 디자인이 두드러지는 김수근의 시적인 건축작품은, 소위 한국의 팝아티스트 혹은 키치아티스트로 대변되는 작가 최정화에 의해, 비록 한시적이지만, 향락적이고 과도한 축제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4 다소 도발적이고 긴 작품 제목이 암시하듯, 최정화는 누구나 (아무나)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물을 가지고 (아무거나),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느끼는 순간들을 작품이라는 형식을 빌려 갤러리 밖을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아무렇게나) 표현할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하여, 자칫 저급하고 저속한 상업광고로 여겨질 수 있는 현수막이 또한 예술적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최정화는 뮤지컬 공연, 아이돌 콘서트, 지역축제, 옷가게 창고 정리, 세계문화유산 선정, 대리운전, 신간 잡지, 불법주차단속 등의 다양한 홍보와 광고 현수막들을 한 공간에 모음으로써, 그가 한 인터뷰에서 말하였듯이, 한국식의 “바글바글”한 도시문화와 “알록달록”한 색채감을 시각적으로 공간적으로 표현한다. 마치 부처님 오신 날 사찰 내 공중에 매달려 있는 알록달록한 연등들과 그 밑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무수히 많은 기도 쪽지를 연상시키는 그의 설치작품은, 김수근 건축의 표면을 거의, 그러나 (가령 크리스토와 장 클라우드가 (1975, 베를린에 설치)를 통해 보여준 것과는 달리) 건물의 표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뒤덮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의 설치작품은 거장의 건축작품인 아르코미술관과, 공연장과 상점들로 둘러싸인 일상적 공간인 마로니에 공원의 역동적인 도시 분위기를 여러 개의 흩뜨러진 현수막들을 통해 느슨하게 연결시키는 듯하다.
최정화의 설치작품에 같은 종류의 현수막들이 반복적으로, 그러나 서로 다른 배열과 접합방식 등을 통해 나타나는 점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경험적 다양성 측면, 다시 말하면 대량 생산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도시공간의 일상적 경험을 통해 펼쳐지는 차이와 반복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던져준다. 가령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에스티 로더 마스카라’ 광고 현수막은 적어도(필자가 관찰할 수 있는 한) 네 번 이상 반복된다. 그중 세 개는 같은 배열방향, 즉 광고문구가 시작하는 현수막의 왼쪽 부분이 아래로 내려오도록 설치되어있는 반면, 네 번째 현수막은 그 왼쪽 시작 부분이 위로 향해 있어서 보는 이의 시점에서 현수막이 180도 틀어지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런가 하면 뮤지컬 ‘여름밤의 꿈’을 홍보하는 현수막은 두 개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붙어있지만 미묘하게 다른 높이로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각 현수막은 다른 면들에 인접한 현수막들의 각기 다른 색깔, 위치 및 문자 등으로 인해, 그리고 현수막 바로 밑에 위치한 전봇대 전깃줄과 가로수 등의 환경적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반복보다는 차이의 효과가 더 크게 다가온다.
이처럼 최정화의 작품에 나타나는, 언뜻 사소해 보이는, 차이와 반복의 시각적 효과는 신유물론자 제인 베넷이 “동일성은 왜곡을 통해 반복된다”라는 주장을 통해 제기하는 문화산업 체제 내에서의 경험의 불확정성을 반영한다.5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기념비적 에세이 <문화산업>(1944)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베넷은, 그들이 1)대량생산 체제가 빈틈없이 완벽하다고 과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2)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산된 제품 혹은 도시의 하부구조는 개개인의 고유한 방식으로 경험된다고 주장한다. 반복되는 공장라인의 제품 생산구조나 거리의 대형 스크린이나 TV화면에서 반복되는 광고 이미지는 각 에이전트의 제작이나 홍보 시스템에 따라 기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작동할 지언정 (그마저 베넷은 우연성과 불확정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제품을 소비하거나 이미지를 경험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은 광고의 메시지나 제품의 완전성과는 별도로, 각자의 삶의 궤적 안에서 선택과 소비를 자기 생활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인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최정화의 화려한 현수막 작품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우려했던 것처럼 시각적 스펙터클에 위압감을 느끼고 수동적 관찰자/소비자가 되었는지, 아니면 그러한 스펙터클을 자기화하였거나 단순히 무시하고 스쳐지나갔는지 등은 신중하게 생각해 볼 부분이다. 가령, 본 작품에 대한 몇 장의 기록 사진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입면의 구성과는 상반되는 당시 마로니에 공원의 차분한 일상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무심한 듯 그의 작품을 쳐다보는 남녀 한 쌍의 연인, 작품을 등지고 (작품의 시야를 너무도 대담하고 극적으로 가리는) 새빨간 파라솔 밑에서 호떡과 쥐포 등의 간이음식 장사를 하는 아저씨, 그 옆에서 일회용 컵에 담긴 다방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 그리고 작품 앞 도로 아스팔트 바닥에 큼직하게 새겨진 “일방통행 차 없는 거리” 안내글자 등….
흥미롭게도, 이러한 기록 사진들은 작품의 화려함보다는 그 주변의 평온하고 심지어 무료해 보이는 일상생활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길거리에 예술작품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감탄하며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로버트 무질이 말한 것처럼 도시 곳곳에 설치된 기념비들은 그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바쁜 일상 생활 내에서 종종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의 주장처럼 도시는 마치 갤러리에서 관객들이 팔짱을 끼고 주의깊게 바라보는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6 무심함이 최정화의 설치작품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가 될 수 있다면, 현수막에서 뿜어져나오는 시각적 현란함이 온전히 보는 이를 현혹게 하여 궁극적으로 자율성을 잃게 한다는 아도르노식의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은,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음 호에서는 지금까지 논의한 한국의 도시와 일상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는 한편, 간판으로 점철된 한국 도시경관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작동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그리고 그러한 주체(들)의 개입에 의해 펼쳐지는 힘의 관계성은 무엇인지를 비디오 작가 박준범의 작품 (2004)를 통해 이야기고자 한다.●

1 Theodor Adorno and Max Horkheimer, , 《Dialectic of Enlightenment》, translated by John Cumming(New York: Herder and Herder, 1972): p.162-163; Michel Serres, 《Malfeasance: Appropriation through Pollution?》 Translated by Anne-Marie Feenberg-Dibon(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1): p.41; Jean Baudrillard, 《Simulacra and Simulation》, translated by Sheila Faria Glaser(Ann Arbor: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4): p.90; Neil Leach, 《The Anesthetics of Architecture》(Cambridge: The MIT Press, 2000): p.46-47; Rem Koolhaas, in 《S, M, L, XL》, edited by Rem Koolhaas and Bruce Mau(New York: The Monacelli Press, 1995): p.1250-51
2 Ludwig Wittgenstein,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translated by G. E. M. Anscombe(Malden: Blackwell Publishing, 2001): p.23.
3 Alice Arnold, (58 min, Icarus films, 2012); Walter Benjamin, , 《Reflection: Essays, Aphorisms, Autobiographical Writings》, edited by Peter Demetz and translated by Edmund Jephcott(New York: Schocken Books, 1978): p.87; Aron Vinegar, 《I am a Monument: On Learning from Las Vegas》(Cambridge: The MIT Press, 2008): p.31.
4 Jung In-ha, 《Architecture and Urbanism in Modern Korea》(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3): p.92
5 Jane Bennett, 《The Enchantment of Modern Life: Attachments, Crossings, and Ethics》(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1): p.126
6 Robert Musil, , 《Posthumous Papers of a Living Author》, translated by Peter Wortsman(New York: Penguin Books, 1995): p.62; Jane Jacobs,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New York: Vintage Books, 1992): p.372

CRITIC 신지도제작자

송원아트센터 8.5~26

채은영 독립큐레이터

현대미술에서 공간과 장소성에 관한 작업은 인간과 자연을 소재로 한 것만큼 흔하다. 도시 일상 공간의 규범과 제도를 일탈하고 표류하는 심리지도 방법론은 다른 장소성으로 우리의 실재를 재배치하며 재인식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신지도제작자(New Cartographers)>는 이러한 방법론에 근거해 비가시적 영역과 관계들을 14명의 작가, 디자이너가 심리적 개인적 조형 방법론에 따라 가시적 매핑으로 엮은 전시다.
1층에는 세밀한 드로잉으로 여러 도시 지도를 중첩하여 새로운 지도를 만들고, 1880년에서 1960년대 세계지도를 재구성해 드로잉을 만든 줄리앙 코와네, 에코 세대의 통계를 다이어그램으로 보여준 옵티컬레이스(박재현, 김형재), 2차원의 지도를 잘라내 3차원 공간으로 만든 임선이, 도시의 공감각적 풍경을 소리지형도로 선보인 백정기,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을 매핑하는 카토그래피 작업을 하는 부로 데튜드, 사회의 불안, 공포 등의 흔적과 드로잉을 만든 유창창이 신지도 제작자로 소개된다. 1층 일부와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서구의 당대 사회와 욕망을 보여주는 옛지도와 관련 서적들이 지도 아카이브로 소개된다.
지하층에는 자신의 일상적 공간 기록을 지도로 만든 김정은, 한강을 따라 수집한 개인의 물건과 사연을 보여준 자우녕, 근현대 서울의 도시 변천사를 슬라이드 프로젝트로 보여준 전진열+안창모, 구룡마을과 송도신도시 등 여러 지역을 GPS로 찾아 만보객이 되어 읖조리는 비디오프로젝션을 선보인 린다 하벤슈타인, 자전거 공유시스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핑하는 심규하, 오래된 골목길의 색들을 색면들로 재구성한 김태현, 도시 공간의 자연-인공 사이 관계성을 설치와 드로잉으로 보여준 심윤선이 신지도제작자다.
전시는 작가, 디자이너, 도시 연구가들의 드로잉, 회화, 사진, 비디오, 사운드, 설치, 다이어그램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됐는데, 이점에서 작가 리서치를 폭넓게 한 기획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기획자는 이렇듯 다양한 방법으로 기존 지도가 우리에게 강요했던 세계와 삶에 대한 인식틀을 벗어나, 우리가 알고 이해해야 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려 한다. 그리하여 삶정치를 회복하는 새로운 장소성을 위한 희망의 공간을 구축해가는 신지도제작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도시 일상 공간에 관련된 적잖은 작업과 전시가 심리지도 방법론의 만보객을 표피적으로 동어반복하며 일상성에 기대거나, 여러 방법론의 종합선물세트식 전시 구성에 기댄다면, 이번 전시는 그러한 전형성을 갖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비가시적 영역을 가시적으로 매핑하는 것보다 매핑의 과정을 통해 다른 맵을 만드는 지도제작자들에 주목한 것은 공간과 장소성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지도 제작자인 작가, 디자이너, 도시 연구가를 내세운 기획의 관점에 대한 기대에 비해 실제 전시는 왜 신지도제작자에 무게 중심을 두었는지에 대한 핵심 근거가 약간 모호하다. 다양한 제작자들이 각각의 방법론으로 다른 가시성의 지도를 제작하는 것은 개인적이고 심리적 방법론에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에 있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작자들을 내세운 기획의 킥이 구체적이지 않아 14명(팀)의 신지도제작자 사이의 관계와 매핑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야 했는데, 최근 신지도제작자들의 유행(?)에 대한 기획자의 배경 설명이 있었다면 기획의 결이 좀 더 섬세하지 않았을까. 미술 쪽 작가와 달리, 디자이너와 도시 연구가의 참여 혹은 협력도 단순히 구성을 위한 수적 다양성의 방편일 것이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선 참여에 대한 기획의 근거가 좀 더 분명해야 한다. 물론 기획의 근거나 킥이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이론적일 필요도 없고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면 되는데, ‘왜’라는 질문에 기획의 답이 열려있는 탓에 다소 전형적이거나 모호한 작업들은 기획에 힘을 주기엔 역부족이고, 상대적으로 서구 중심의 세계나 서울 중심적 매핑은 미시 영역을 자본과 제도로 내밀화화는 신자유주의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전시장의 공간적 제약 탓이겠지만 전시 구성은 언어화된 기획 글과 14개의 새로운 지도 그리고 지도 아카이브들을 물리적 공간에 매핑하기엔 조금 아쉽다. 현재 공간(전시 공간)에 여러 지도와 자료들의 시공간적 매핑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장소성이 기획의 의도를 경험하게 하는데, 공간 제약과 많은 작가와 작업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배치가 작업들과 제작자들 사이의 관계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야심차게 준비했을 지도 아카이브는 1층 작업들 사이에 커다란 지도와 박물관 유리케이스 속 고서들처럼 놓여있고, 1층과 지하층 연결 계단에 아무런 설명없이 아트 포스터처럼 걸려 있어 세계의 가시성을 위한 다른 안내서라기보단, 앤틱한 지도 이미지로 비친다. 최근 여러 전시에서 간과하는 부분인,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을 위한 최소한의 번역이나 설명은 공공기금을 받는 전시나 프로젝트에서 최대한 소통을 위한 시작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 년간 상업갤러리에서 일한 기획자가 독립 큐레이터로서 공공 영역에서 여는 본격적 전시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적잖은 기획자가 물리적인 자기 공간의 힘을 받아 이력과 네트워크를 쌓거나, 일반인이 공무원 시험에 붙거나 대기업 취직을 원하듯 공공기관에서 자본과 제도의 기반을 얻고자 한다. 그런 이유인지, 최근 기획전시는 공공미술관과 거대 상업갤러리의 기획전 그리고 정책적 의도와 자생적 시도가 맞물린 미술시장 관련 행사로 집중된다. 소규모 공간의 전시는 파편화와 자기복제 그리고 다른 공동체적 연대 속에 있다면, 자기 공간이 없이 재원 조성을 위한 시도를 통해 자본과 제도적 긴장을 조율하며 예술 기획을 하는 독립 큐레이터들을 만나기가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것은 기획자 개인 의지나 욕망에 빗대어 탓할 현상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우리 미술계도 자본과 제도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창작기획자들 그리고 공간들의 각자도생 속에 미술의 삶정치성 회복에 대한 기대를 갖기 힘든 탓이다. 이런 제도적 상황에서 건강한 자기조직화를 시도하며 자본과 제도 사이를, 중앙과 지역 사이를 넘나드는 독립 큐레이터들이 지치지 않고 오래 버틴다는 것이 심신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전시에 대한 아쉬움은 다음 행보를 위한 조언의 의미이며, 전시를 준비하고 기획하고 진행하며 노력과 열정을 보여준 기획자에게 미술이 다른 희망의 공간을 안내하는 지도로써 의미를 회복하는 데 자산이 될 것이라 격려의 말과 함께 응원을 보낸다.

위 심윤선 <Constructed Island>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4

CRITIC p.2(전소정&안정주) 장미로 엮은 이 왕관

아뜰리에 에르메스 6.25~8.23

안경화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실장

안정주와 전소정의 공동 작업으로 구성된 <장미로 엮은 이 왕관전>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 작가와, 그녀의 일상을 촬영한 영상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가는 두 명의 작가를 교차 편집한 <카메라를 든 여자>로 시작한다. 새로운 작업실을 둘러보고, 흙으로 무언가를 빚고, 카메라를 들고 낯선 도시를 기록하는 그녀의 행위는 “다 자르고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자”거나 “그녀의 눈 말고 카메라의 눈으로 찍은 풍경들”을 넣자는 작가들의 대화 내용에 따라 갑자기 정지하고, 때로는 다음 장면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서로 간의 의견 교환을 통해 영상을 완성해가는 작가들의 대화와 카메라를 든 작가의 독백에는 안정주와 전소정이 p.2(두 번째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협업하기 이전부터 공유한 예술에 대한 생각이 들어있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던,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그들에게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일은 “일상에 대한 기록과 수집, 그것들의 변형”이자 “남에게는 하찮지만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들”로 규정되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평가나 인정에 얽매이지 않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가야 한다고 다짐한 작가들은 두 번째 영상작업 <누드 모델>에서도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일상과 예술, 주체와 타자, 관습과 혁신 사이를 오가면서 예술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구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누드 모델들은 남녀의 신체적 특성을 과장되게 표현한 누드 옷을 입은 채, 서양미술사에서 미(美)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옷을 벗은 인물들의 포즈를 자랑스럽게 모방한다. “아름다움은 꿈에서나 가능”하다고 울적해 하다가 “아름다움은 내 안에 있”다고 흐뭇해하는 누드 모델의 상반된 감정 표현은 지난한 작업 과정 중에서 희비(喜悲)를 오갈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의 숙명을 희화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천박할 것도, 숭고할 것도 없는” 예술을 업으로 삼고자 노력하는 연습생들에게 감정을 몸짓으로 전달하는 행위(예술작품을 만드는 일)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 않다. 등장인물들은 모델과 아티스트의 시각을 오가며 예술과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펼쳐 나간다.
이 전시에 소개된 마지막 영상작품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안정주의 영상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절대적인 존재와 개념에 대한 의문과, 전소정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실제와 허구를 넘나들며 포착한 사소하지만 소중한 삶의 모습이 결합된 작업이다. 전쟁과 재난처럼 인간이 초래한 사건들을 기록한 영상 자료를 기반으로 한 이 작업은 현실의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과 그 장면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작업 과정을 기록한 영상, 그리고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춤으로 소개하는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택한 영상과 이와 연결된 춤과 소리는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혀내기 어려운 부조리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제시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읽어내며 이를 다시 뒤집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예술의 힘을 경험하도록 한다.
전시 제목인 ‘장미로 엮은 이 왕관’은 <누드 모델>의 대사인 동시에 예술가의 지위를 의미한다. 가시의 고통을 견뎌낸 자만이 쓸 수 있는 장미 왕관은 모든 예술가가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 2는 앞으로도 개별적으로 또는 협업을 하며 두 손의 모습을 형상화한 을 통해 현실의 이면을 바라보고, 이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예술로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 어쩌면 예술가에게는 상을 받거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보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장미 왕관이 아닐까.

위 왼쪽 p.2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 3채널 비디오 & 스트레오 사운드 16분 50초 2015

CRITIC 2015 한국현대형상회화전

갤러리 팔레드서울 7.29~8.11

최금수 이미지올로기연구소 소장

“해방은 도둑처럼 왔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 가슴을 울리는 광복 70주년의 8월이다. 이를 축하하기라도 하듯 남과 북은 총부리를 겨누며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를 조장하고 있다. 이제는 상당수가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들이 살아가고 있는 반도에서 해방 또는 광복이라는 기쁨은 분단의 그늘 아래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광복 70주년 불꽃놀이 행사와 맞물린 남북의 피 말리는 대치 상황은 21세기 이 땅에 살고 있는 민중에게 ‘극과 극을 달리는 20세기형 블록버스터 판타지’를 선사했다.
주지하다시피 ‘남한의 형상회화’는 1980년대 미술운동을 뿌리로 하고 30여 년이 넘게 현장에서 쓰이는, 필요에 의해 고안된 실용 개념의 단어이다. 즉 ‘우리의 역사와 시대현실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되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회화의 한 경향’이기에 그 투박함과 애매함만큼 무궁무진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바로 그 현실 환원적 덩치 탓에 때로는 형상회화가 변혁운동에 복무했던 민중미술 또는 자연적 재현에 몰두한 구상회화와 구분되지 못하고 혹은 현란한 감각으로 치장한 팝 내지는 감정에 호소하는 심상회화로 오인되기도 하며 짧지 않은 시간들을 흘려버렸다. 지금에 와서 그 범주의 불명확성의 원인을 따져보자면 그것은 바로 ‘자각과 자생’이라는 현실과 맞닥뜨린 궁색한 창작환경과 연동된 탓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솔직히 형상회화란 설익고 어설픈 남한 미술계의 특수성에 기반을 둔 좀더 효율적이고 유연한 성격을 지닌 전문 시사용어에 다름아니다.
그렇기에 혹자는 남한 형상회화를 성급히 해방 전후의 이념적 회화 또는 외국 사회운동 성향의 회화 등과 결부시키기도 한다. 물론 이는 가능하고 유효한 되짚음이다. 하지만 전자 후자 모두 현장과 거리를 둔 다른 환경의 학습에 기인하여 남한 형상회화의 키워드인 ‘자각과 자생’의 의미를 놓치기 십상이다. 남한 형상회화에 좀 더 밀착하기 위해서는 1980~1990년대라는 시대상황과 더불어 창작환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야만적 군부정권의 폭압이 일상이었고 미숙한 미술제도하에서 ‘몰개성적 집단적 회화’에 의한 표백된 창작환경은 창작자 개개인의 상상력을 고사시켰다. 이에 따른 필연적인 움직임으로 기존 환경에 반기를 들고 현장으로 뛰쳐나와 변혁운동에 복무한 민중미술 또한 그 시기적 다급성과 도구적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에 ‘대항에서 대안으로’ 방향을 바꾸기는 했지만 새천년 이후 가속화된 ‘대안의 제도화’는 결국 좀 버겁지만 ‘공공미술과 국제화’라는 거대한 요구에 적응하기 바쁘다.
한편으로는 새천년 들어 지자체 기반의 대형 국제미술행사들과 더불어 국공립미술관들이 과거와 사뭇 다르게 약진하고 각종 레지던시 등을 비롯한 창작환경 개선사업이 펼쳐졌으나 미술의 영역도 그만큼 넓어져 그 많은 요구에 부합하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와 비슷한 시기 미술시장은 일희일비이지만 블루칩 젊은 작가들을 출시하며 상승세를 보였으나 오히려 남한 형상회화의 호흡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남한 형상회화의 핵심인 ‘자각과 자생’은 ‘창작과 환경’에 다름아니다. 즉 전달받는 향유자적 입장이나 집단적으로 제도에 의해 학습되고 기안되어 유포되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창작환경에서 체득한 동시대적 자각을 바탕으로 한 개별 창작자의 고유한 자기진술인 셈이다. 물론 뭇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생산’ 이후의 문제들은 현실만큼이나 들쑥날쑥하다. 그래서 다시금 길고 깊은, 다소 불안정한 호흡을 즐겨야 한다.

위 신학철 <한국현대사-광장> (사진 맨 왼쪽) 캔버스에 유채 2015

CRITIC 샌정 study painting

누크갤러리 7.30~8.26

이윤희 미술사

샌정의 회화작품들을 보면서, 이 작가가 한 작품을 제작할 때, 이제 완성이라는 생각을 어느 지점에서 갖는지가 궁금해졌다.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모호한 배경 위에 모호한 형태들이 부유하고 있으며, 이미 그려진 어떤 형태가 다시 숨기도 하고, 형태라 부를 만한 것들 역시 하나같이 완결된 선으로 마무리된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리다 만 듯한 인상을 주는 화면들이고, 그 모든 작품이 완결되기보다는 어딘가로 향해 가는 중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면에 가하는 그의 붓놀림이 호방하여 그리는 순간의 일시적 기분이나 감정을 듬뿍 담아내는 종류의 것도 아니다. 기하학적 형상처럼 보이는 것이든, 인물이나 자연물을 연상시키는 그 어떤 것이든, 형태를 이루어가는 그의 붓질에 모호한 색채 선택만큼이나 조심스럽다. 한 획 한 획의 조심스러운 붓질이 비하면, 흘러내리는 물감자국들의 생동감이나 속도감이 화면에서 낯선 요소로 보일 정도이다. 그는 어느 지점에서 완성이라는 느낌을 가지는 것일까.
거의 비어있는 것 같은 그의 작품 앞에서 최근의 어떤 미술 동향, 목표한 결과치를 위해 꽉 짜여 있는 회화의 경향을 역설적으로 반추하게 된다. 계산된 수수께끼의 답을 풀어낼 때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그러한 작품들을 감상할 때 다가오는 쾌(快)가 분명 존재한다. 그러한 작품들 앞에서 감상자는 작가가 화면에 숨겨둔 사유의 단서들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추적해보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샌정의 작품 앞에서는 감상자의 눈이 화면에서 집중력을 갖게 되기보다는 더듬더듬 길을 잃고 돌아다니게 된다. 말(馬)이나 새, 소녀, 나무와 같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를 인지하고 인물이나 사물들의 관계를 생각하기도 하고, 경계가 불명확한 배경과 형태 사이의 경계에서 그려지지 않고 남아있는 빈 공간이 무한히 확장하는 것 같은 심리적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앞에서는 감상자가 바라보는 지점이 어느 곳에 멎지 못하고 화면 안을 끊임없이 돌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결코 명확해질 수 없는 비언어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그의 화면 속에서 가끔 또렷하게 쓰여진 글자들을 발견하는 것은 또다른 놀라움이다. 모든 작품에 언어적 개입을 거부하는 작품의 제목 가 일괄적으로 붙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들에는 꽤 지시적인 언어들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SOBERING REALITY”, “INDIAN SUMMER”, “LINES AND COLORS” 등의 글자들은, 화면의 조형 요소들이 서로의 정체를 숨겨주는 듯한 그의 화면에서 급작스러운 명확함으로 다가오는, 대단히 이질적인 부분으로 보인다.
비언어적인 사유를 이끄는 모호함과 명확한 글자들의 대비처럼, 그의 작품 전체를 일별해보면 개념적으로 정반대로 여겨지는 것들의 대비가 줄곧 눈에 띈다. 미술의 역사 속에서 한 시기, 지역, 혹은 한 미술동향의 화두였던 것들, 구상과 추상, 유기체적인 것과 기하학적인 것, 서사성과 서정성,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등의 대비적 요소들이, 한 작품에서 드러났다가 다른 작품에서 사라지고, 때로는 한 화면 안에서 만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각적 경험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면서 그 의미를 탐색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study painting”을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삼은 점을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굳이 소문자로 시작하는 이 전시의 제목은 한편으로는 겸허한 표현인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이 지향하는 바와 태도를 알려주고 있다. 한 점 한 점의 작품은 그가 자신의 삶 속에서 공부하고 사유하는 흔적이라는 것, 그 결과물 자체가 어떤 결론을 향해 가기보다는, 그리하여 어떤 결론에 도달한 완성의 지점이라기보다는, 끝없는 과정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삶의 과정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위 샌정 <무제>(맨 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