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저온화상 – 홍콩과 서울을 잇는 낮은 목소리

저온화상 __ 홍콩과 서울을 잇는 낮은 목소리

아트 스페이스 풀 11.6~12.7

실제 수신자가 많든 적든 매스미디어는 이름값하듯 다수를 향한다. 귀 기울이는 이가 많든 적든 길거리의 시위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그러나 그 둘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특히 후자가 예술가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아트 스페이스 풀의 전시 <저온화상: 홍콩과 서울을 잇는 낮은 목소리>는 그 목소리의 차이를 서울의 작가 김동규와 홍콩의 수산 챈, 씨앤지를 통해 또렷하게 들려준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인 홍콩의 듀오 작가 씨앤지(클라라&검)는 끊임없이 거리로 나선다. 홍콩의 중국반환기념일에 길거리 약혼식을 올리고, 두 딸을 데리고 “우산 시위”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미디어에 포착되면, 검이 그 장면을 유화 드로잉으로 그린다. 그 그림은 이미 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사진과 기사를 옮긴 것이지만, 거친 필치는 매스미디어가 표방하는 신속하고 객관적이며 사실적인 성격을 흐려버린다. 수산 챈은 민주화 시위의 장면들을 덤덤하고 소박한 드로잉과 글을 통해 자신이 직접 발행하는 신문이나 포스터 등의 인쇄물을 만들어 배포함으로써 자신만의 마이크로미디어를 만든다. 또 검은색 천으로 얼굴을 가린 범죄자들의 모습을 드로잉에 담아 미디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장치가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 불온함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상황을 짚어낸다.
이렇게 홍콩 작가들이 미디어의 속성을 거스르며 미디어에 개입하는 것을 보면서, 김동규는 그들 움직임의 특징을 언어 안에, 정확히 말하면 언어의 빈 틈 안에 오롯이 녹여 넣는다. 매스미디어가 재빨리, 또렷하게, 종종 정신을 어지럽힐 정도로 시끄러운 목소리로 다수의 귀를 사로잡는 것과 달리, 이들은 느리고, 때로는 잘 들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세상에 대해 읊조린다. 다수를 위한 세상의 큰 마디들을 비켜가는 이들의 표현방식을 김동규는 매끈하게 분절되지 않은 언어로 번역한다. 그는 <구순 협주곡>에서 광둥어로 된 문장을 읽고, 또 홍콩 작가들에게는 한국어로 발음하기 쉽지 않은 문장을 읽게 한다. 상대방의 언어로 읽은 문장은 느리고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잘 전달되지 않지만, 바로 그 비규범적인 언어의 사용이 울림을 만들고, 작위적이지 않은 연대를 엮어낸다.
사실 홍콩과 서울 두 도시의 시위대가 이 예술가들이 주목하는 마디 없는 연대를 이미 읽어내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공유한 노란 리본에서 드러난다. 거대 국가에 반환된 민주주의는 세월호 참사로 무너져내린 마음들만큼이나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한 이들은 작은 표지를 공유하여 길고 지루한 서로의 저항을 위로하려 한다. 김동규가 홍콩의 작가들을 만나기 전 세월호 유족들의 시위 현장에서 벌인 퍼포먼스의 흔적인 <개나리부터 은행나무까지>는 종이가 찢어질만큼 격하게 그어놓은 볼펜 자국들로, 걸러지지 않은 격함이 자못 생경하다. 그러나 그 격함에 대한 영상 하나쯤 남겼을 법한 상황에서 별다른 기록도 없이, 스카치테이프로 조심조심 연결되어 모로 걸린 종이들은 건넛방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발음들을 타고 울렁거린다.
낡은 LP판 튀는 소리처럼 이들의 낮은 목소리는 정해진 마디를 따르지 않지만 매끈한 소리들보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다만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도 가볍고 일시적인 빈티지 취향(요즘 “아시아”는 일부러 공장에서 만들어낸 빈티지 같다)에 머물지 않기를,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다그치게 된다.

안소현·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

[Review] 차종례

차종례

분도갤러리 11.3~29

대구에서 처음 선보이는 차종례의 개인전에선 2009년부터 2014년에 제작한 20여 점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의 작품은 <드러내기/드러나기(Expose exposed)> 연작으로 이루어졌다. 전시된 작품을 대면하고 처음 느낀 감상은 같거나 다르게 반복되는 뾰족한 돌기나 봉긋 솟은 둥근 모양의 형태들이 마치 수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든 풍경 같은 것이다.
작가의 <드러내기/드러나기> 연작의 리듬감은 자연과 인공, 평면과 입체, 선과 형이 빚는 일종의 도형퍼즐(puzzle)이다. 이 미묘한 형상의 퍼즐과도 같은 작품을 보면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선’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벽면에 설치한 사각의 퍼즐이나 바닥에 놓아둔 입체에도 부각시켜 놓은 시각적 패턴이고, 나무판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놓은 건축적 덩어리에 장단의 흐름 따라 ‘드러내기/드러나기’하는 형태(形態)이다. 크거나 작은 돌기 모양의 원뿔이 깎고 깎이며 그 실체가 선(line)인지 형(shape)인지 혹은 선과 형, 그 어딘가의 중간지점에서 만나 회화가 조각이고 조각이 회화가 되듯이 나무의 결 따라 역동적인 리듬감을 ‘드러내기/드러나기’하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 느낀 감상이었다.
이러한 선과 형이 갖는 형태에 대해 좀 더 가까이 그리고 깊게 들어가 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선과 형이 외적인 형식이지만, 작가는 소재의 내적인 고유성을 드러내기 위한 유기적인 곡선의 ‘드러내기/드러나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전시된 작품을 담아 와서 이미지로 펼쳐 보자니 작가의 드러내기는 선의 율동으로 시각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시각효과는 예민한 촉수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서 드러나는 선, 재목의 편차가 생기는 측면(edge)의 울림이다. 이 측면의 울림인 선은 나무의 실체를 이루는 결이자 혼이고 미의 형식이다.
이렇게 마치 잠든 나무의 결을 일깨워 원뿔이나 버섯 모양의 형상 따라 나무의 형과 결을 발굴이라도 하듯 깎아내는 작가의 솜씨는 긴 노동의 시간과 반복을 통해 회화인 조각이거나 조각인 회화가 된다. 그것은 우연과 필연을 포개놓은 시공간의 만남이고 섬세한 선과 형이 교차하는 탐미의 순간이다. 이 탐미의 시간은 시·공간이 포개지는 지점에서 만나는 나무의 결, 뾰족한 돌기가 부분과 전체를 이루며 무심한 나열 같지만, 작가의 섬세한 감성의 결과 나무의 결이 조형적인 형태를 입고 만나는 조각적 풍경이 된다. 이러한 시각적 울림은 나무를 다루는 정교한 조각술(carving)로 직선과 곡선이라는 원석을 찾아 보석으로 가공하듯 형과 선의 폭과 넓이에 강약과 장단의 리듬감을 부여한 입체 도형퍼즐이고 빠른 속도와 힘이 반복적으로 가해지면서 액체가 굳어 고체화된 선형퍼즐이다.
크고 작은 전시를 감상한 뒤 나의 선입견을 얼마나 벗기는가에 따라 여운이 길거나 깊게 남는다. 전시를 보고 나서 종종 선입견이 주는 약과 독의 경계가 어디쯤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번 분도갤러리 차종례의 전시를 보고 나서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여운은 인공적 형상의 집요한 반복이 주는 시각적 리듬이었다. 그리고 난 그러한 여운을 따라 선과 형의 울림이 주는 여운을 잡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 노트를 통해 선입견의 문을 열고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해본다.
“나의 작업은 노동과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작은 오브제들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 <드러내기/드러나기> 연작은 수동과 능동, 작가와 관람자만이 있을 뿐 주어진 정보가 없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나의 제작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결정하길 원한다. 선입견이 배제된 상태에서 관람자가 맘껏 상상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일 수도 있고 자연일 수도, 우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 일상적 오브제의 무심한 나열에서 대양(大洋) 한 지점에서 일어난 한 조각의 파도가 태풍으로 성장하는 에너지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가의 손길이 지나간 흔적을 바라보는 감상의 자리는 ‘드러내기’를 위한 감성의 결 따라 ‘드러나기’로 만나는 곳일 것이다. 그 시간 그 장소에는 마치 수행하듯 ‘깎고/깎여서’ ‘드러내기’와 ‘드러나기’가 하나가 되는 시각적 울림이 있다.

김옥렬·아트스페이스펄 대표

[Review] 권경환 – 마르기 전 규칙

권경환 __ 마르기 전 규칙

일민미술관 10.17~12.7

권경환 개인전 <마르기 전 규칙>은 ‘마르기 전’이라는 완결 전 작업과정의 상태에 빗대어 모호함과 모순된 상태를 의미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합의된 작가만의 ‘규칙’들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르기 전이라는 작업과정이 화이트큐브 안에서 다소 현장감 넘치는 무대로 연출되었다.
작가는 종이, 끈, 천, 대나무, 비닐봉지, 시멘트 등 저렴하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작업을 하다가 우연찮게 발생되는 다양한 변형과 변용, 의도되지 않은 반복 작업행위의 흔적과 파편,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유희를 무대 위에 소품처럼 펼쳐놓았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매체를 제한하여 다양한 잉여 생산물들의 스펙터클함을 약화시킨다. 이것은 일상의 현실 속에서 작가로서 체감하게 되는 존재론적 저항이며 앙상하고 뾰족한 잉여의 모습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장치다. 또한 의도된 가내수공업적 작업행위와 상당히 공들인 정교한 수공작업의 대비를 통해 작가는 예술의 정치적 과정에 주목하며 내장된 예술의 위계화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다.
작가 권경환은 그동안 대중매체나 기호 이미지에 개입하여 수동적이고 우둔한 소비자로 전락한 작금의 사회에 비판적 시선을 던져왔다. 2008년 토탈미술관에서 전시한 <물론,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라는 작품은 일련의 정교한 작업과정을 조작함으로써 스펙터클 이미지 사회의 모순을 재치 있게 지적하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권력, 전쟁, 죽음의 구체적 이미지를 직접적 방법으로 채집, 드러내었던 이전 작업과는 다르게, 2013년 몽인아트스페이스 레지던시를 거치면서 이번 작품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태도와 은유적이고 쉽게 의미를 내비치지 않는 개념적인 작업방식을 보인다. 일민미술관 1층을 채운 제한된 미디어들의 오브제 설치는 시장체제에 흡수되어 반성적 사유와 주체적 삶을 살게 하는 사회적 역할을 상실한 미디어에 노골적 회의감을 드러내며, 환상을 부여잡은 채 모든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훈육당한 현대인의 모습에 비판적 시선을 던진다.
<변화와 통일, 균형과 대비를 통해 팽팽하게 비닐봉지를 펼치시오>, <부서지기 쉬운 조각>, <의자에 앉는 방법>, <불순한 합의> 모두 작가의 진지한 작업태도, 작업방식을 통한 심오한 성찰,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섬세함이 있다. 작가의 날선 감각의 영상, 설치, 조각작품들은 무대 위 소품으로서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일종의 풀리지 않는 어려운 암호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한 가지로 읽히지 않는 작품의 난해함은 다소 관객을 불편하게도 하지만 동시에 관심과 의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켜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고 사유하게 하여 그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번 개인전과 함께 일민미술관 2층에서는 시적인 제목들로 구성하여 선정된 진시우, 류장복 작가의 전시가 함께 열렸다. 권경환 설치와는 또 다른 동시대문화에 비판적인 정서를 띠고 있는 진시우 작가의 난해한 개념적 오브제들과 – 동시대성을 드러내는 물질성, 예를 들어 양철통, 까만 비닐봉지, 빨간 테이프, 번쩍이는 노란표면 등 우리가 혐오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클리셰는 조금씩 어긋나 틈을 드러낸다 – 류장복의 어둡고 짙은 철암의 풍경은 서로 결을 달리한다. 전체적으로는 세 전시가 ‘시각문화의 인문적 담론생산’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다소 유연하지 못하게 구성된 느낌이다.

오세원·문화역서울 284 운영팀장

[Review] 이강원 – 풍경의 이면

이강원 __ 풍경의 이면

갤러리 플래닛 11.7~12.5

이강원은 전통적인 조각의 방식을 고수하지만 풍경을 소재로 하면서 재료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현대조각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개인전이 갤러리 플래닛에서 열렸다. 다소 아담한 전시공간에 단색조를 띤 일련의 입체물들이 차분하게 놓이듯 설치되어 있어 전반적인 분위기가 단아하게 느껴졌다. 2005년 “A Scene”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 후 활발하게 활동해오다, 2008년 전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흔적전> 이후 6년 만의 전시이니만큼 작가에게는 의미가 더할 것이며, 미술계의 기대치가 가중된 만큼 부담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이전과 다를 것 없이 작가의 성격만큼 차분했고, 공간은 작아도 내용은 풍성했다. 이는 작가가 조각으로 풍경을 표현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소재 선택에서 재료, 그리고 공간 구성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노력하고 심사숙고했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일반적으로 미술에서 조각은 크게 재료를 깎아내는 ‘조각’ 과 재료를 붙이는 ‘소조’ 로 나눈다. 거기에 소조로 만든 형틀에 액체 상태의 물질을 부어서 굳히는 ‘주조’ 가 있다. 이강원 작가는 이를 ‘구르기’와 ‘흐르기’라고 설명한다. 돌이 구르면서 깎이고 용암이 지표 위로 흐르면서 굳어가는 자연 생성의 과정이 조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로서 조각은 어찌됐든 인위성을 갖는데, 조각의 기본 형식을 자연 현상에 빗대어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각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래전부터 작가는 자연과 도시를 포괄하는 풍경을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풍경의 가장 큰 범주인 빛과 어둠을 표현하기 위해서 크레파스를 녹여 색덩어리를 만들고, 가공고무를 깎아서 그림자조각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알루미늄, 브론즈, 레진 등 더욱 다양해진 재료를 사용해서 풍경의 요소들을 표현하는데, 이는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고려해서 재료의 빛깔, 가공성, 질감 등의 적합 여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료의 특이성에 주목하기보다 표현의 확장을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스테인리스는 강도가 높아 가공이 어렵고, 알루미늄은 주조 시 유동성이 약한데, 작가는 이미지를 구상하면서부터 이러한 재료의 성질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면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현대조각은 “풍경 속에 있는 풍경 아닌 것”(로잘린드 크라우스)이 되었다. 조각은 예전에 벗어났던 건축과 결합하거나, 미술 외적인 것을 다시 끌어들인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건축의 부분이거나 삶과 완전 분리되지 않고, 조각의 주체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중심으로서 그들과 결합한다. 이강원 작가의 작업이 전통조각을 고수하면서 풍경을 다루는 방식은 이러한 현대조각의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순영·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Review] 오치규 – 여백에 말 걸다

오치규 __ 여백에 말 걸다

가나인사아트센터 10.29~11.3

오치규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 1층은 원색의 에너지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음향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두꺼운 선이 드로잉 된 원색의 평면작업과 그 원색의 화면을 바탕으로 한 동일한 원색의 입체 작품 그리고 흰 바탕에 파란 선으로 드로잉 된 평면과 그를 근간으로 한 도자기들로, 한 작가의 작품으로는 다소 많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의 다양한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작가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고 현재 충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현역 디자이너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한 그의 작업이 단순히 회화나 판화 등 평면작업을 넘어 도자기와 입체작업에까지 이르른 것으로 볼 때 그의 예술을 향한 지속적인 연구와 창작에의 열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작가는 그간 수차례의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듯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물이나 대상들에서 소재를 찾고 있다. 최근 그의 평면작업은 화사한 파스텔 톤에서 벗어나 강렬한 원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보다 단순화하여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내적 조화라는 화면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의 절제를 통한 최소한의 이미지로 선과 색, 면이라는 회화의 기본 구성 요소들이 적절히 배합되고 여백과 어우러져 내러티브하고 서정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가 원색으로 된 단색조의 화면, 그중에서도 오방색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한국적인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인간과 자연의 대결 구도가 아닌 모든 자연의 생명체와 우주가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동양적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선과 여백을 중시했던 동양미술의 전통적인 방식을 수용하고 그것을 변환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얻어낸다. 정적이며 소박한 한국의 미와 정서가 스며있는 동시에 색채와 장식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화면이 바로 그것이다. 사물을 본 순간의 감정을 제한하고 선, 색, 면의 기본적인 조형 요소로만 표현된 화면은 적게 칠함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자체를 돋보이게 하여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작가가 가진 에너지의 원천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에 있다. 생과 사, 만남과 헤어짐, 일상의 희비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연들을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작가로서의 시각이다. 수많은 사람이 만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가듯 이러한 모든 것으로부터 소재와 영감을 얻어내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화면을 완성해간다. 그의 작품 속 여백들은 비어있음으로 해서 보는 이들과 교감하고 그들의 상상과 상념들로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말하듯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상의 본질을 봐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여백은 그저 빈 공간이 아닌 못다한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다.

손소정·롯데갤러리 대전점 큐레이터

[Review] 장은의 – 사소한 환상

장은의 __ 사소한 환상

갤러리 조선 11.11~26

주로 영상작업을 해온 작가 장은의는 실재와 허상이 중첩된 공간 속에서 작가-작품-감상자 간의 관계 양상을 모색해왔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눈>(2008), <프로젝트 플레이어스(Project PLAYERS)>, <스케치북-손그림(Handzeichnung)>(2009)등은 관람자의 눈이나 작가의 손을 작품 감상과 제작 과정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그 과정들은 작가나 미술계의 의도적 장치들에 의해 가려진 계기들을 환기시키며 그 가설적 인과관계를 밝히고 있다.
함부르크 조형예술학교 수석 졸업 후 8년 만에 연 첫 개인전 <진정한 사랑>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드로잉으로 실재와 비실재라는 기억과 재현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것이 2009년부터 “나는 그림을 머리로 그리는가, 눈으로 그리는가, 손으로 그리는가” 고심해온 작가가 작품과 재현의 상관관계를 도출하는 가설들을 작품 완성 이전으로 소급하여 현재화했다면, 이번 전시는 회화작업을 통해 일상을 예술로 전환시키는 절차들에 대해 탐색한다. “마음을 움직인 순간”을 작업 변수로 삼고 그 구체적이고 검증적인 절차를 위해, 작가는 일상적 감성의 단편들을 표본 추출한다. 그 일차적 자료는 사진인데, 작가는 오히려 순간을 영원 속으로 저장시키는 그 “편리한 문명”의 도구가 “진정한 나의 시간”을 빼앗았다고 말하면서, 그 잃어버린 시간을 그림을 통해 재-현(re- presentation)하고자 한다. <엄마의 배, 풍요> 등은 엄마의 과거와 사랑을 불러들이고, <푸른산>은 간판 위 구호처럼 ‘셀프’ 넘기를 하던 당시를 회상하며, <청소 1,2,3>은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손금 위로 고인 <오아시스>의 물은 마음을 움직인 계기들을 지도 위의 기호처럼 새긴다. ‘사소한’ 일상 속에 내재된 개인적 체험과 정서에 기반을 둔 작품들이다. ‘비물질적’인 시간의 영원함을 “욕망”하며, 작가는 직관에 의해 기록된 일상의 순간을 그렇게 환기시키고 각인시킨다. 그 보여주기 방식은 미술계의 구조와 그것이 작동되는 원리 등에 무심한 듯 보이는데, 이는 자기과시적인 모습 대신 온전히 그림이 되는 계기들을 추적하고자 함이다.
작가는 미학적 위계를 제시하기보다 옛 접착식 앨범을 연상시키고자 노란색 페인팅 칠로 각 작품들의 소소한 내러티브를 엮고 있다. 전시 의도를 구현하려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나, 노스탤지어 자극을 견인하는 이러한 방식은 그림의 소재가 된 사진 이미지를 담은 프로젝션 장치에 비해 미흡해 보인다. 사진적 재현과 회화적 재현 사이의 간극을 드러냄으로써, 비물질적 계기들을 재-현해낸 공간적 장치가 이미 ‘사소함’에 대한 작가적 통찰의 유의미성을 밝혀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물질적인 광학적 조건들을 통해 큰 공간을 채우던 이전 작업의 충만함과는 달리, 힘을 빼고 초연한 듯 보이는 작업들 속에서 그 사소함이 “생각과 그림을 비워가는 것”에 대한 귀결로 보인다. 재현 매체나 전개 방식에는 큰변화를 보였지만 작가의 ‘그림에 대한 사랑’이 다양한 변인들을 관통한다. 작가와 작품, 일상과 그림 사이의,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련의 가설들이 작가 장은의의 다음 전시를 기대하게 한다.

박윤조·미술사

[Review] 김민호 – 時 點-연속된 시간의 지점

김민호 __ 時 點-연속된 시간의 지점

월전미술문화재단 한벽원 갤러리 11.1~10

작가 김민호의 작업은 다양한 시점의 중첩에 따른 이미지의 변용을 기본으로 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동양회화의 이동시점과 카메라를 통한 고정시점의 대비와 충돌이라는 상이한 가치의 반복적인 중첩을 통한 대상의 해석이다. 이는 단순히 시점의 중첩에 따른 형상의 변화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의 이성적 시각을 아날로그적 감성의 조형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간’(看)은 디지털적 시각이며, ‘관’(觀)은 전통적인 아날로그적 관찰법이다. 그는 무수한 간의 시점을 중첩함으로써 이를 관의 시점으로 변환시키고 있다. ‘간’이 대상의 객관성과 구체성에 주목해 그 깊이에 주목하는 것이라면, ‘관’은 공간의 확장에 주목한다. 이른바 원근이나 투시는 바로 ‘간’의 시각을 화면에 효과적으로 구현하여 종심적인 깊이의 공간감을 구현하기 위한 조형적 장치이다. 이에 반하여 ‘관’의 시점은 좌우, 상하의 전개를 통하여 평면적으로 공간을 확장시킨다. 작가의 화면이 규격화된 형식을 취하지 않고 다양한 변용을 취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장소를 이동해가면서 시점을 변화시키며 대상을 기계적 시각으로 포착하고, 이를 중첩시킴으로써 그 잔상을 통해 형상을 구현해가는 그의 작업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이는 물리적으로는 대단히 기계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대상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극히 모호하고 다중적인 잔상들로 표출된다. 그가 주목하는 두 가지 상이한 가치의 시점 충돌과 같이 화면의 형상들은 허(虛)와 실(實)이 교차되고 변환되며 거대한 잔상들로 표출된다. 견고하고 깊이 있는 화면은 바로 다양한 시점의 반복적 중첩을 시행한 결과물이다. 특정한 대상을 중심으로 시점을 이동하며 수차례에 걸쳐 그리고 지우며 그 내용들을 반복적으로 중첩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전적으로 아날로그적이다. 목탄과 손과 같은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방식으로 첨단의 기계적인 내용들을 수렴해내는 그의 작업 방식은 재치나 기요에 앞서 일종의 본질에 육박하고자 하는 의지로 읽힌다. 그의 화면이 비록 목탄과 콩테 등 다양한 혼합재료를 동원하고 있지만 깊고 그윽한 수묵의 그것으로 읽힌다. 이는 단순히 그의 화면이 수묵과 같이 흑백의 무채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백에 대한 조형적 효과를 십분 발휘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의 화면을 수묵으로 읽는다는 것은 지나치게 전통적이고 강박적인 읽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화면은 분명 수묵의 사상과 정신을 반영하고 있음이 여실하다. 육안에 의한 대상의 객관성은 소실되고 거대한 잔상을 통해 대상을 허의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그의 화면은 분명 수묵의 그것과 매우 근접해 있다.
전통과 현대는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이지만, 여전히 한국화의 화두처럼 제시되고 있다. 그간 적잖은 실험이 이러한 가치로 포장되거나 윤색된 바 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매우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작가가 보여주는 시점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이의 조형적 표출은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적어도 그의 작업은 이미 제시된 화두에 일정한 답할 거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Review] 안옥현 –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본 세상

안옥현 __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본 세상

사진 미술 대안공간 Space22 10.14~11.1

한쪽만 열린 가슴, 갈대밭, 거실의 그림들, 소도구들, 포즈들 (고립과 포옹), 캡션들, 은유적 전시제목 등등. 안옥현의 사진들 안에는 기호가 많다. 프레임 안과 밖에서 읽어주기를 요청하는 기호가 상당히 많다. 기호가 많다는 것 자체가 지적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포진한 기호들이 쉽게 메시지의 콘텍스트로 맺어지지 않는 건 아무래도 보는 이의 역량 부재 탓일 것이다. 이런 경우 기호들을 다 읽으려고 하기보다는 특정한 기호 하나에 집중하는 독법도 사진들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아마 나뿐만은 아닐 터인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기호는 한쪽만 드러난 여인들의 가슴이다. 이 여인들은 왜 가슴 한 쪽을 열어 보이는 걸까, 아니 왜 한쪽 가슴은 숨기는 걸까. 그 드러냄과 감춤의 사이에서 안옥현의 사진들은 어떤 언술을 하는 걸까.
드러냄과 감춤의 유희를 가장 다의적으로 보여주는 놀이는 가면 유희다. 가면은 감추는 척하지만 사실은 드러냄의 전략이라는 점에서 게임이다. 모두 가리기, 반만 가리기, 아예 드러내기 등등 가면 유희는 다양하지만 사실은 모두가 드러내고 싶은 것이 있으므로 가면은 동원된다. 그런데 이 가면 유희는 다름 아닌 욕망의 유희다. 욕망은 드러나면서 동시에 감춰진다. 그 감춰짐은 도덕적인 이유 따위가 아니라 욕망의 운명 때문이다. 욕망은 이미 눈떴으므로 드러날 수밖에 없지만, 아직은 다 드러날 수가 없다. 욕망은 실현되어야 하는데 그 실현의 대상은 아직 혹은 내내 부재하기 때문이다. 안옥현의 여인들이 가슴을 드러내면서 감추고 있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열린 가슴은 욕망으로 뜨겁지만, 감춰진 가슴은 그 욕망으로 외롭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주목해야 하는 건 이 가슴의 변주, 욕망의 변주가 다른 사진들 안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포옹의 사진들은 부재하는 한쪽 가슴이 파트너로 실현되어 채워진 것처럼 읽힌다. 사랑이란, 특히 안옥현의 여인들에게 사랑이란, 자신의 다른 한쪽 가슴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포옹의 여인들은 그 파트너를 마침내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는 어쩐지 아닌 것 같다. 그러기에는 포옹하는 이들의 표정이 지극히 건조하고 더구나 불안해 보인다. 심지어 젊은 여인은 마치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파트너의 옷깃을 애타게 움켜쥐기까지 한다. 이 젊은 여인이 나이가 들면 코르셋의 여인들로 변주되는 걸까. 이제는 꽤 나이가 든 여인들은 코르셋을 입었는데 그 코르셋의 기호는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다시 일어서기, 또 하나는 외출하기다. 어느 쪽이든 가슴이 코르셋으로 변주되기는 했어도 그 또한 욕망 운동의 리듬을 닮았다. 욕망은 이처럼 변주되어 다시 눈뜰 뿐 실현되어 멈추지 않는다. 가슴은 여전히 뜨겁고 욕망은 늙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세월은 흐른다. 그러니 어쩌랴?
결국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하는 건 빛이다. 안옥현은 빛을 강하게 사용한다. 그것이 의도적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 강한 빛이 용서 없이 드러내는 건 피조물의 육체다. 형태는 부드럽고 볼륨은 포만해도 여인들의 벗은 가슴은, 숨구멍이 엿보이는 생물학적 피부조직들은 그녀들의 육체가 불멸의 신이 아니라 세월을 떠날 수없는 피조물의 육체임을 숨기지 못한다. 그래서 욕망은 뜨겁게 불타지만 시간은 욕망보다 더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걸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안옥현의 빛은 낭만적으로 흐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강렬하게 파고든다. 그래서 영혼은 죽을 때까지 젊고 싶어도 육신은 나날이 늙어간다는 피조물, 그것도 여인이라는 피조물의 운명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사진의 빛은 운명적으로 차갑고 잔인하다. 안옥현의 렌즈는 그 빛을 속이려 하지 않는다. 기호가 너무 많아서 읽기가 힘들지만 그녀의 사진들에서 모종의 힘이 느껴지는 건 이 빛에 대한 정직함 때문일 것이다.

김진영·철학아카데미 대표

[curator’s voice] 김길후 – Mind Imprints

김길후 __ Mind Imprints

중국 베이징 화이트박스 아트센터 11.15~12.4

오늘날, 현대예술의 다매체화에도 불구하고 회화는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사이자 실천적인 행위로 더욱 번성하고 있다. 이는 세계 각지의 미술관이나 전시 혹은 현재진행형인 예술 현상을 지켜본다면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현대미술사에서 회화의 종말 혹은 죽음이 선언되었던 것일까? 이러한 선언은 종종 회화 감상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회화에 대해 고찰해 보며 회화를 새롭게 분류해야만 한다. 첫 번째 유형의 회화는 현대미술사의 내러티브와 전혀 관련이 없는 가장 광범위한 실천 행위로, 회화 자체와 그 창작자의 실제 상황과 관련되어서만 존재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미술사의 서사가 아닌 또 다른 차원 혹은 실제라는 주관성의 의미를 지닌다. 두 번째 유형의 회화는 미술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역사적 내러티브 속에만 존재하며 현실의 관념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유형은 회화가 죽었는지 끊임없이 반문하며 회화가 죽지 않았음을 끊임없이 증명한다.
이 유형은 회화에 관한 회화라 말할 수 있는데, 종종 회화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벗어나며 무엇이 회화인지를 판별하는 문제는 중요한 당면 과제로 다루지 않는다. 또한 비논리・비서사・비시각성을 일종의 인식명제로 여기며 인간의 시각과 내적 지혜라는 개념 구성에 도전한다. 현재 이 두 유형의 회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실의 회화창작을 역사서사와 연관짓기도 하고 역사가 아닌 주제와 연관시키기도, 또는 무관하게도 만든다. 결국 그 본질은 회화 창작 주체의 인식과 관련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유일하고 독립적인 회화인식은 전형적인 현대미술사 서사를 뛰어넘을 수 있으며, 모든 미술사 내러티브의 선입견을 벗어나 실제 회화가 어떻게 창작되는지 관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의 작가 김길후의 회화는 이 양자 사이에 걸쳐 있으며 화가의 도전과 대응을 보여준다. 그는 역사적 이미지를 포착하지만 역사화를 그리는 것은 아니며 이미지를 변형시키지만 모더니즘의 양식을 확인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그는 한국 문화를 배경으로 하며 자아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회화 방식과 질감을 구성하고 자신의 강점인 내면을 통해 문화사를 느낀다. 회화란 그 탄생 이래 창작자 내면세계의 투사이자 일종의 자아 신념과 신앙의 흔적이 아니던가. 현대 회화의 구축은 실은 또 다른 내면세계의 구축이자 이미지의 이야기를 제거함을 기본으로 하는데 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김길후가 생활하고 있는 한국 대구는 대도시로서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곳이며, 현대예술에 관한 새로운 각성을 불러일으켜 한국 현대예술을 이끄는 도시가 되었다. 김길후의 회화는 이러한 사고를 계승하고 있으며 그는 자신이 한 차례 세례를 받은 한국 현대예술에 대해 새로운 고찰을 시도한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은 과도한 서구화도 맹목적인 고전주의도 아니다. 그는 동양문화 특유의 내적 성찰 체험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는데 그의 회화는 유화의 깊이와 부조의 공간감을 지닌다. 무엇보다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또 다른 어떤 정신의 투쟁과 영혼의 울림으로 이는 격렬한 현대정신의 내적 폭발을 보여준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회화는 새로운 정신세계를 개척하고 시각의 형식사변을 뛰어넘는 현대미술의 신경향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내용을 갖춘 정신이 형식의 엄숙함을 뛰어넘어 인간 정신의 고양을 바라는 현대사회의 요구가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김길후는 자신의 작품으로 이러한 세계적 관심을 실천하고 있으며, 이는 새천년을 맞은 회화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기회이기도 하다.

왕춘천(王春辰)·중앙미술학원 CAFA미술관 학예연구부장

[Preview] 12월-1

취안숑

대구 우손갤러리 12.5~2015.1.31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 현대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애니메이션 작가 취안숑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작 ‟신산해경”을 비롯하여 3점의 애니메이션 작품과 애니메이션 제작의 모토가 된 회화 작품 30점을 함께 소개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김준권

김준권

아라아트센터 12.10~23

땅과 산, 물 등 우리의 산천을 우리나라 고유의 판화기법인 수묵판화기법으로 원숙하게 표현하는 김준권의 개인전. 작가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않고 우직하게 걸어온 몸의 노동을 목판화를 통해 전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27강혜원(모네)

강혜원&김은수

포항 갤러리 모네 12.1~15

조작된 화려함이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상황과 소통의 문제를 주제로 작업하는 강혜원과 삶을 살아가며 겪는 고뇌 가운데 찾아야만 하는 참된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김은수의 2인전. 두 작가의 근작 26점을 선보인다. 강혜원 작
[section_title][/section_title]

20 노상익(스페이스22)

노상익

스페이스22 12.22~2015.1.22

사진・미술 대안공간 SPACE22가 개관 1주년 기념전으로 외과의사이자 사진작가인 노상익의 사진전을 개최한다. ‘암’을 매개로 만나게 되는 의사, 연구자, 환자 들의 희망과 절망, 죽음의 공포와 생존의 욕망을 함축한 사진을 보여준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14 아라귈레르

아라귈레르

한미사진미술관 11.22~2015.3.28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사진 작가 아라 귈레르의 개인전. 평생 터키, 이스탄불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 작업에 몰두해 ‘이스탄불의 눈’이라 불리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터키의 일상, 시대의 삶을 담은 100여 점의 흑백은염사진으로 서정적 기록을 펼쳐보인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28구명본(조이)

구명본

부산 갤러리JOY 12.27~2015.2.14

전통회화의 사실적 기법으로 구현된 연작으로 소나무가 지닌 서사적 의미를 극대화한다. 작가는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물이 담고 있는 본질을 진정성있게 구축하여 소나무를 통해 우리의 삶의 모습을 은유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김근중

 

김근중

고려대학교 박물관 12.8~2015.1.11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금산갤러리가 아름다운 한국화 작품들을 감상의 기회를 마련하기위해 기획한 ‘한국화 예찬’ 시리즈의 첫 번째 전시. <꽃, 이전-이후>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번 전시는 이 두 세계를 함께 보면서 작가의 철학을 느껴볼 수 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23 박동인 축일

박동인

표갤러리 사우스 11.21~12.12

꽃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형상화하는 박동인의 개인전. 자연을 입체적이고 치밀하게 묘사하기보다는 그만의 구도와 기법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 30여 점을 출품해 하늘과 땅의 조화와 그로 인한 생명의 신비를 보여준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29 김문규

김문규

부산 해운대아트센터 12.4~10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대상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빛, 공기, 물, 바람 등을 추상적 형태로 표현하는 김문규의 개인전. 작가는 근원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대리석과 나무를 재료로 한 조각을 통해 빛과 에너지등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형상화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아트놈

THE FIRST SHOW

LVS PROJECT 11.25~12.14

LVS PROJECT의 개관전시로 “THE FIRST SHOW”를 진행한다. 한국의 젊은 컨템포러리 작가들의 신선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성태진 아트놈 찰스장 오수진 프레드정 등 새로운 공간에 걸맞은 작품을 통해 참신한 담론을 이끌어낸다. 아트놈 작
[section_title][/section_title]

김양열

 

되묻다

갤러리 이즈 12.24~30

고려대학교 동문 그룹8969의 단체전. 전업 작가뿐만 아니라 사업가, 회사원, 디자이너, 주부 등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는 17명이 참여했다.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다 순수하게 시작한 미술작업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전시로 펼쳐진다.김양열 작
[section_title][/section_title]

30 노진숙

노진숙

가나아트스페이스 12.10~16

작가는 이름모를 꽃과 풀 등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린 작은 꽃들을 그릇에 담아 그린다. 계절을 거역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때에 맞춰 피어나는 꽃들을 세필로 섬세하게 그리며 세파에 지치고 미소를 잃어가는 이들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김종렬

김종렬

구리아트홀 12.19~31

흐르는 세월을 형상화하는 김종렬의 개인전. 작가는 삶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소한 모습을 주목하고 그러한 사소한 것들이 삶을 구성하는 요체라 여긴다. 자신의 삶 속에 켜켜이 쌓인 기억을 재구성하며 ‘세월의 깊이와 무게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35 서상환(시인 배달순 초상)

 

서상환구작전

부산 미광화랑 12.24~2015.1.17

장충열 선생의 수집품인 서상환 작가의 젊은 시절 대표작 3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 현실적으로 작업을 지속하기 힘든 전업작가가 생활고를 탈피해 작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준 수장가와 그 예술의 결실인 작가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39 임현옥_作_4

 

 

임현옥

대전 이공갤러리 12.25~31

여성에 관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임현옥의 개인전. 작가는 여성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집이라는 영역으로 작업의 범위를 확장하고 소라, 토르소, 컵, 거울 등의 사물로 집과 여성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환유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36 이춘일(쌍리)

이춘일

대전 갤러리 쌍리 12.4~10

<돌과 바위이야기>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춘일의 개인전. 작가는 돌과 바위로 이루어진 ‘담’을 소재로 택해 전국 각지를 누비고 돌아다니며 찍은 돌과 바위 사진을 모았다. ‘담’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민족의 정서와 심상도 함께 담아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32 박경혜(나무아트)

박경혜

부산 나무아트갤러리 12.6~2015.1.5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은 눈을 통해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박경혜의 개인전. 작가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시선을 담아 우리들의 순수함을 되찾게 해주는 어른을 위한 그림을 그리며 사회 규범에 맞춰사느라 잃어버린 개성을 찾아 눈뜨게 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40 최승선

최승선

갤러리 도올 11.26~12.14

자신의 기억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상상과 망상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최승선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현대 사회에 적응하며 갈등을 겪는 주체적 시선을 통해 혼돈스러운 모습을 ‘사각지대’로 담아낸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33 박옥이대표이미지

박옥이

세종갤러리 12.9~21

‘흔적’을 주제로 내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추상회화를 보여주는 박옥이의 개인전. 작가는 세월 속에 남겨진 많은 흔적을 회상하며 그린 그림을 통해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37 이지유

이지유

갤러리 고도 12.17~23

물감이 종이에 번지는 아련한 형상을 이용해 과거를 회상하는 작업을 하는 이지유의 개인전. 작가는 과거의 기억이 가져오는 따스한 감정을 번지기 기법을 통해 형상화하며 회색으로 기록된 과거의 모습에 색을 더해 그려낸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41 김종택(마레)

 

크리스마스 선물전

부산 갤러리 마레 12.1~12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따뜻한 작품들로 12월을 장식한다. 10명의 작가가 다채로운 색과 아름다운 표현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선보인다.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관객과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김종택 작
[section_title][/section_title]

34 박정용

박정용

광주 제희갤러리 11.5~12.1

삶의 가치를 예술 표현의 토대이자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작가 박정용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 <온전히 求 하리라>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시대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담는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38 임애숙(해오름)

임애숙

부산 해오름갤러리 12.4~24

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임애숙의 개인전. 작가는 즉흥성과 리드미컬함이 특징인 재즈음악과 닮아있는 인간의 감정을 회화로 표현한다. 특히 질료의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 리듬을 꽃의 속성과 본질을 크로키한 형상으로 표현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Picture 8749

한희원

대구 갤러리 제이원 12.2~13

<시간의 여백>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한희원의 개인전. 삶 속에 존재하는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특유의 거침없는 터치와 풍부하고 아름다운 색감을 통해 깊은 서정성을 전하며 세월을 쌓아올린 듯한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