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아티스트] 제여란 – 추상인가 형상인가

김원방 홍익대 교수

제여란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2010년 가인갤러리와 대구 누오보갤러리, 2011년 조은숙갤러리, 2013년 스페이스 캔(베이징), 그리고 올해 1월에서 3월에 걸쳐 대구와 과천 두 군데의 <스페이스 K>에서 열린 개인전들을 통해 그녀의 막대한 양의 작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제여란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작업에 대한 미학적 논평을 먼저 꺼내기보다는, 제여란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을 위해 그녀가 ‘어디 있던 작가’였는지를 먼저 이야기하는게 순서 같아 보인다. 그러고 나서 그녀 작업의 미학적 특징을 논할 것인데, 이것은 “그녀의 작업은 결코 일반적 의미의 ‘추상’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될 것이다.
“제여란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라는 자극적 표현을 내세웠지만 이는 사실 옳은 표현이 아니며, 우리가 그녀에 대해 갖기 쉬운 선입견을 드러내려는 표현일 뿐이다. 여태껏 그녀가 어디로 떠나 칩거한 적은 결코 없다. 단지 이 떠다니는 안개 같은 미술계(라는 이름의 ‘집단적 욕망의 등록소’)가 이곳저곳 몰려다니다가, 우연히 그녀와 또다시 마주치고 그녀의 진가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젊은 세대의 미술인들에게는 제여란이란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는데, 사실 제여란은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개시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활동을 쉬어 본 적이 없는 작가이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암흑기부터 시작하여 오직 대한민국에서 시대를 몸으로 관통해 살아오면서, 미술 트렌드의 대세가 어느 쪽으로 가건 말건,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서 완전히 잊히건 말건, “이제 세상 밖으로 좀 나오라”라는 무례하고 가식적인 조언을 듣건 말건, 20여 년의 긴 시간 내내 시장통이나 산 위의 작은 작업실에서 그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낸다는 것이 과연 아무나에게 가능한 일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도중에 포기한다. 예술가는 대부분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도취’보다는 ‘예술가가 되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무대 위가 아니라 어두운 칸막이 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예술에 대한 도취는 줄어들고, ‘사회적 욕망’이 그를 광포하게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욕망은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그리고 라캉과 지젝이 연달아 논하듯이, ‘세상 속에서, 타인들의 눈 속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 즉 ‘사람들의 보편적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것은 ‘파티에서 주목받고픈 욕망’으로 압축된다. 인정이 이루어지는 ‘타인들의 머릿속’을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행복을 찾는 거처로서는 너무 초라한 곳”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예술가가 꼭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불행한 초상이다. 이제 우리는, 디오니소스처럼 예술에 도취할 것인가 아니면 단지 ‘예술가의 욕망’을 좇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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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으로 귀환하는 아나키즘적 결말

국내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욕망만을 좇던 나머지, 제여란이라는 작가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미술관들이나 큐레이터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앞서 인정받은 작가를(얄팍한 트렌드 때문이건, 외국 큐레이터가 좋아한다는 후광 때문이건) ‘다시’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실은 미술관이나 큐레이터 자신도 그 욕망의 네트워크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가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변태적’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제여란은 그러한 ‘욕망의 생태계’에서 벗어나 있던 작가인데, 지금이라도 미술계가 그를 점차 주목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로 보인다.
이제 제여란의 작업 전개과정을 간략히 짚어보자. 제여란의 첫 개인전이 열린 곳은 1988년 윤갤러리였고, 좀 더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지금은 없어진 동숭동 인공화랑에서의 1990년 개인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미술계는 설치, 복합매체, 그리고 비디오를 위시한 테크놀로지 예술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 회화는,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무난한 미니멀풍 추상회화, 또는 잔재미를 추구한 포스트모던풍 아류회화(엔초 쿠치, 줄리앙 슈나벨 )나 팝아트 아류 등이 조금 살아남았을 뿐이다. 반면 밝은 곳에서조차 디테일 식별이 잘 안 되는 컴컴한 흑색톤, 용암처럼 솟구치는 물질덩어리, 환희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불길한 정조에 관객을 대면시키는 제여란의 그림은, 트렌드를 좇는 기획자나 무난한 그림 좋아하는 화상, 양자에게 모두 ‘부담스러운 그림’으로 인식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로 인한 전시활동의 감소가 그녀를 칩거한 것처럼 잘못 보이게 한 원인이지만, 최근 몇 년간 일련의 전시들은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고, 놀라운 역량의 작가를 우연히 발견한 듯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
이제 제여란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미학적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많은 이가 그녀의 작업을 편리하게 ‘추상화’라고 불러왔지만, 나는 결코 ‘추상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 점은 그녀의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점이다. 그녀의 회화는 추상화가 아니라, ‘형상성의 회화(painting of the Figural)’이다. 형상성의 회화는 ‘형상회화’ 또는 ‘구상회화’라고 부르는 성향, 즉 figurative painting과 전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로서의 형상(구상)회화는 재현적 지시기능을 지닌 ‘구체적 형상(figure)’을 내세운 것이고, 반대로 추상회화(abstract painting)는 그 재현적 형상들을 삭제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형상성의 ‘현존/부재’, 말하자면 ‘예/아니오의 변증법에 따라 ’형상 대 추상의 구분이 미술사적으로 유지되어왔다. 이러한 형상 대 추상의 구분은 롤랑 바르트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레키쇼와 사이 톰블리에 대해 1970년대에 쓴 글에서, 그리고 또 리오타르와 들뢰즈의 형상성 철학에서, 1990년대 이후로는 로잘린드 크라우스, 존 레이크먼, 디디 위베르만 같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에 의해서 사실상 폐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그런 추상회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회화란 20세기 초에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만 성립했고, 오직 ‘스타일’, 달리 말해 ‘형태학적 유형학’의 사고를 통해 구축된 ‘재현의 정치학’에 불과하다. 미술사의 구태의연한 도상학적 전통은, 구체적 형상들이 실은 우리의 시각적 욕망에 의해 포착된 최종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형상들은 사실 관람주체의 응시와 시간 속에서 우발적으로 출현하고 사라지는 역동적인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즉 ‘시각적 무의식(optical unconscious)’의 측면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제여란의 작업은 바로 그러한 ‘형상들의 기괴한(uncanny) 출현과 소멸과정’을 극대화한 회화이다. 그것은 관객의 시선을 전복시키는 이상한 공포의, 혹은 시선을 좌절시키는 재난적 힘 같은 것이다. 그것은 회화에서, 형상의 출현/소멸을 통해 ‘응시’라는 최근의 정신분석학적 주제를 강력히 드러내는 흔치 않은 회화의 사례이다. 질 들뢰즈가 형태의 오형화(誤讀化, catamorphose des formes), 또는 바로크적 추상이라고 부른 것, 디디 위베르만이 ‘스스로 형상화하는 형상’이라고 부른 바로 그것이다. 우연히 망치고 우연히 드러나는 형상들은 제여란뿐만 아니라, 특히 게르하르트 리히터에서 탁월하게 나타나는 면모이다. 그의 회화를 지배하는 까닭 모를 ‘정신분열적 불안감’은 거기에 연유한다. 제여란의 회화는 들뢰즈의 관점을 빌리면, 잭슨 폴록이나 앵포르멜 회화처럼 혼란만으로 채워진 공간도 아니고, 또는 반대로 칸딘스키 경우처럼 기호화된 코드로 채워진 공간도 아니다. 대신 그것은,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나타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하나의 상태 속에 결합시키는 것, 에로스도 타나토스도 아닌 것, 바로 ‘삶-죽음’을 하나의 사유 속에, 하나의 행위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여란 자신도 그 점을 명확히 의식하고 있다. 그녀는 작업 노트에서 “범주적 경계들을 어떤 지점에서도 인정하지 않기”, “사물이 모든 그물을 빠져나오는… ”, “모든 사물의 자발적 방황운동” 등을 강조한 적이 있다.
je3제여란의 회화는 무엇을 재현하거나(형상회화) 또는 반대로 재현으로부터 도피하는것(추상회화)이 목적이 아니라, ‘형상들 자체가 연출하는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회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제여란의 회화는 추상회화가 아니라, 포스트모던적인 ‘형상성의 회화’, 또는 들뢰즈적 의미의 ‘바로크적 추상’이라고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제여란의 회화가 만약 전통적 추상회화라면, 왜 그 작품들은 수많은 ‘숲 같은 것’, ‘짐승이나 덤불 같은 것’, ‘폭포나 피의 분출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인가? 실은 바로 이 ‘무엇 무엇 같은 것’이야 말로 내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그것은 실은 차이의 출현, 즉 형상이 분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같은 것’은 동시에 ‘…같지 않은 것’과 동의어이다. 이것이 바로 기괴한(uncanny) 출현과정이며, 무슨 이미지이든 ‘형상 대 비형상’, ‘형상 대 배경’으로 구분해 내려는 우리의 ‘시각적 욕망’에 저항하고, 회화를 인식론적 도구로 전락시키는 도상학적, 지성주의적 전통에 저항하는 회화인 것이다.
초기부터 제여란 회화는 어두운 숲 속, 습지, 심연, 폭포 등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심지어 재앙적인 느낌의 풍경으로 채워져왔다. 그것은 완결되어 형상을 갖추어가는 풍경을 급작스레 무너뜨리는 재앙과 트라우마의 풍경과 같으며, 바로 이 점이 제여란의 회화를 일종의 정신분석학적인 ‘억압된 것의 귀환’에 연관지을 수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것은 미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신경증적인 정조이다. 연극의 장르 구분을 빌리자면 분명 그것은 그리스 비극 같은 것에 해당할 것이다(급작스러운 비극적 운명, peripeteia). 물론 비극의 정의가 단지 눈물과 가련함의 정조를 뜻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니체, 그리고 크리스테바에 이르기까지, 예술로서의 비극은 ‘내 안의 혹은 세계 속의 타자라는 괴물적 존재를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드는 승화의 힘’을 의미한다.
이번 스페이스 K에서 열린 전시를 비롯해 최근 몇 년간 개인전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은 그녀의 막대한 양의 작업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미술계의 역동성? 그런 것은 없다. 욕망의 생태계는 실은 놀라울 만큼 정체되어 있고, 역동적이라기보다는 증기처럼 휘발적이다. ‘예술가의 욕망’보다 ‘예술에의 도취’를 우선시해온 이 작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우리 미술계가 정말로 좀 더 역동적이 되고 있다는 좋은 반증일 수 있다. ●

제여란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윤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1회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고, 현재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기슭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작가리뷰] 황인기 – 물신주의적 표면이 사라진 자리

정신영 미술비평

그간 0과 1로 재정의된 픽셀 산수화로 전통과 동시대의 성공적인 융합을 제시해 온 황인기는 마치 과거의 선인이나 문인들처럼 사회와 격리된 무위자연 속에서 회화의 방식과 역사에 대한 고민에 집착하는 듯했다. 그러나 3년 만의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신작들은 그의 정치,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 보임과 동시에 다듬어진 이미지에 대한 거부, 그리고 제작자로서의 신체적인 개입 결과물들을 통해, 여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발언 의지가 돋보이는 것들이었다. 전시 제목에 암시되어 있는 것과 같이 물질적 풍요의 일과성 매력에 대한 회고적 태도와 과도한 소비에 대한 반발이나 저항은 황인기의 작품 속에서 보다 물질적인 형태로 제시되어 우리를 압도한다.
프랑스의 패션하우스 루이비통이 만들어낸 가죽 가방은 하나의 사회현상이기도 하다. 소지품을 넣고 이동하기 위한 가방이라는 본래 기능은 이미 부수적인 것이고 소비자에게는 이 제품을 소유하여 과시함으로써 브랜드가 상징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스스로에게 이항시키는 것이 보다 핵심적인 기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년에 가까운 전통을 자랑해 온 루이비통은 자사 이미지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무라카미 다카시를 비롯 리처드 프린스나 최근에는 쿠사마 야요이 등 국제적인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하나의 가방에 우월한 패션감각이나 재력 이상의 예술성마저 부여하는 전략을 취해 성공했다. 어깨에 매달린 루이비통 가방 속에는 지갑이나 전화, 열쇠 외에도 문화, 예술, 사회적 부가가치가 담겨있는 셈이다. 황인기는 아마도 루이비통 제품이 갖는 이러한 복합적 측면에 착안한 것 같다.

in2전시장에는 먼지나 얼룩으로 오염되어 찢기거나 일그러진 형태의 루이비통 가방 44개(전 작품의 제목은 전시명과 같음)가 날카로운 쇠갈고리에 걸려 진열되어 있다. 우리 사회와 소비자들이 이 가방들에 기꺼이 부여해 온 모든 누적된 비물질적인 가치들을 작가는 일말의 주저나 참을성 없이 단숨에 박탈하고 있다. 일렬로 늘어뜨려진 낡고 해체된 검은 덩어리들은 유럽 전통의 고급 상품으로서의 아우라를 잃고 가방 주인의 허영과 조바심과 함께 변질되어 가까이 가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흉물스럽게 변해 있다. 작가는 가공된 가죽에 지나지 않은 명품 가방들의 물리적 정체를 드러내 보인다.
84권의《 타임(TIME)》지를 동일 간격으로 조심스럽게 유리 선반 위에 진열한 설치는 1주일의 유통기한이 지난 지 오래된 이 시사주간지들을 마치 고대 파피루스나 중세 수사본인 양 취급하고 있다. 먼지와 흙모래로 뒤덮인 책 표지들은 아마도 세계사의 한 시점에 우리와 공유했었을 그 1주일에 대해 강렬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표지를 장식해 온 수많은 사건이나 인물들도 이들이 뒤집어쓴 먼지보다 더 뿌옇고 흐릿하게 우리의 기억 속에 잠식되어 잊혀간다. 가슴에 새겨진 고백이나 문학작품 속 한 구절의 영속성에 비해 매순간 우리를 자극하는 최신의 시사정보란 인쇄된 얇디얇은 종이만큼이나 무의미하고 덧없는 것일까. 미니멀 조각처럼 규칙적으로 나열된 우리 사회의 잊혀진 증언들은 스스로의 가벼움과 반복적 성질에 허탈해 지레 퇴색해버린 화석인 듯하다.
시간의 진행에 따라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작가가 2011년부터 의도적으로 부패시켜온 평면작품이다. 물감 대신 콩, 바나나 등의 식품으로 나무판 위에 그려진 유명 브랜드의 로고는 이제는 갈색과 흰색의 무기질적 가루로 변질되어 이미지 식별이 어려울 정도이다. 신성시되어야 할 캔버스 표면을 오물로 뒤덮는 방식은 단순한 파괴행위를 넘어선 자괴적인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앤디 워홀은 캔버스에 금속도료를 바른 후 소변으로 부식시킨 결과물을 작품으로(<산화 회화(Oxidation Painting)>) 제시해 그때까지의 작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각적, 개념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대량 생산, 소비가 미덕이던 찬란한 미국의 경제부흥에 발맞추어 각종 공산품과 스타들의 이미지를 섭렵해온 워홀에게 떠오른 소변이라는 소재이자 재료는 화려하고 지배적이던 물질문명에 대한 비웃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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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계산을 거쳐 산출된 정교한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까마득한 수의 플라스틱 블록을 하나하나 꽂아가며 이미지를 생산하던 황인기의 산수화 작업을 생각할 때, 부패라는 일종의 자연현상에 화면 구상을 내맡기다시피 한 것은 작가의 기술적 우월성에 대한 저항적인 태도의 분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대량 생산되는 완제품으로 뒤덮여 매끈한 인공적인 광택이 흐르는 물신주의적 표면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가 말하는 ‘저속한 물질성(base materialism)’이 자리 잡는데, 이는 바타유의 이상주의와의 싸움의 가장 중요한 무기였으며, 황인기의 경우에도 그에게 기대되는 익숙한 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궁극적 수단으로 사용된 듯 보인다.
in4지하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백색 천을 쓴 다섯 개의 부유하는 듯한 신체 지표이다. 중세의 카타콤과 같이 비밀스럽고 의식(儀式)적인 이 공간에서는 머리를 중심으로 향해 누운 인체의 흔적들이 순교자들의 석묘보다도 더 미련 가득히 무덤의 고요함을 깨고 주문을 되뇐다. 낮은 음성으로 반복되는 것은 7개 국어로 해석된 동물학자 로렌츠(Konrad Lorenz, 1903-1989)의 현대문명비판이라고 하는데, 역사시대로 진입하여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인류는 항상 지금, 현재의 상태에 대해 우려하고 회의하며 후회해왔다. 조상들의 미이라처럼 우리의 현재를 비난하고 우려하며 경고하는 이들의 불협화음이 어둡고 폐쇄적인 이 공간을 채워간다. 그럼에도 작품의 에너지가 결코 절망적이거나 자학적이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팽팽히 당겨진 듯 고정된 5명의 존재가 주는 긴장감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신체를 합성수지로 본떠 만든 복제된 형상 위에 천을 씌워 굳힌 이 구조물들은 말 그대로 작가 스스로의 허상이다. 예술가로서 세상만물의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직업으로 한 그가 흥미를 가진 것이 창조자로서의 작가의 허상임은 겹겹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환영을 만드는 것과 나를 환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 사이에는 교묘한 주체의 치환이 일어난다. 화면상에 이미지를 그려나가듯이 나의 유령을 만들며 작가는 유체이탈의 상태처럼 누워있는 나를 분명 몇 번이고 직시하며 개념적인 가사(假死)상태를 경험햇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나에 대한 발견, 즉, 자아에 대한 경외(境外)시는 라캉이 말하는 거울 속 이미지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과 같이 스스로의 부족과 미숙을 깨닫고 충족해가는 단서로 작용할 것이다. 소비사회의 허상뿐만 아닌, 마치 허물을 벗어놓은 듯한 스스로의 껍질을 제작하며 작가가 각성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번 전시에서 육체의 한계에 대한 자각과 이에 대한 극복의지가 그 어느때 보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전시된 작품들의 물리적인 위압감 때문이다. 무겁게 늘어뜨려진 44개의 가방을 비롯해 50여 개의 액자로 채워진 벽면, 수년치의 주간지들과 반복되는 인체형상, 전 3층에 걸친 의욕적인 인스톨레이션에서는 마치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작가와 같은 패기와 열정, 그리고 창조적 욕심이 느껴지는데, 이는 전시 전체에 충만한 죽음에 대한 연상과 대조적이다. 작가는 디지털화된 시각표현을 주 매체로 삼던 때에 잠복해 있던 신체적, 물리적 감각이 올라오는 것을 참지 않은 결과라고 풀이한다. 언뜻 상반되어 보이는 충만한 창조적 에너지와 이를 선동하는 퇴화나 부식, 부패와 같은 비구조적이고 비정형적인 경향에 대한 관심은 황인기를 통해 한곳에 집약되어 그 작품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갈 듯하다. ●

황인기는 1951년 충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공과대학 응용물리학과를 중퇴하고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와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까지 11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2011년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충북 옥천에서 작업하고 있다.

[작가리뷰] 한경우 – 정교한 계산, 절제된 귀결

반이정 미술비평

개인전 제목과 동명의 작품 (2014)는 언뜻, 의심할 수 없는 명제, ‘생각하는 나의 존재감’에 이른 데카르트의 근대적 사유를 차용한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전시의 얼굴 마담 격인 의 면모를 파편화된 시점들의 총합을 확인할 때 가늠할 수 있는 점에서, 확실한 명제에 도달하려던 데카르트의 세계관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 작품의 정면은 암전된 전시장에서 상영 중인 흑백 비디오작품을 닮았다. 혹은 점증적인 흑백 채색을 나열한 추상회화의 전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근접 거리의 측면에서 바라본 작품은 백색 구조물을 비스듬한 각도로 나열한 입체 구조물로 확인된다. 결과적으로 비디오아트의 모니터나 추상회화의 캔버스 같은 평면작품을 수공으로 시늉한 입체작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점 이동을 통해 또 다른 위상을 얻는다. 작품이 놓인 전시공간의 위층에서 내려본 작품은, 영단어 ‘I MIND’의 3D 입체 텍스트로 작품 제목을 자기지시하는 개념미술의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시장에선 내러티브를 제거한 환원주의적 추상예술에 충실한 외관이라면, 전시장 위층에서 본 작품은 ‘생각하는 나의 존재감’을 명시하는 내러티브를 품은 작업으로 변신한다. (듣자하니 MIND를 동사형 ‘거절하다’로도 해석해 중의적으로 사용했단다. 그러니 데카르트적 사유와는 역시 무관한 셈이다)
복수의 상이한 존재들을 단수의 존재 속에 다시점으로 구현하는 기술은 한경우가 꾸준히 애용하는 시점 계산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 계산법이 적용된 단순한 원점은 정삼각형, 정사각형, 원형을 다면체 하나 속에 구현한 비디오 설치물 <Triangle, Circle, Squa- re>(2008)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시의 대표작 혹은 전시의 표제이기도 한 ‘I MIND’는 외관상 추상화, 비디오아트, 자기지시적 개념미술 등 상이한 매체의 예술 행위들을 하나의 백색 입체 조형물 안에 합체한 경우다. 이 같은 다층적 착시가 가능한 건 다시점에 대한 정교한 계산에서 비롯되며, 다시점 계산법은 한경우의 전작 대부분을 중의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한경우가 화단에서 흔히 만나는 미디어아트의 일반론으로부터 빗나가는 지점에는 항상 단순한 전략이 있다. 장황한 러닝타임으로 관람의 피로를 높이는 비디오 아트의 생리에 비추어, 한경우의 작업은 3~6분의 러닝타임에 압축적으로 담기기 일쑤이고 고정된 카메라를 쓰지만 화면에서 진행되는 극적인 반전 때문에 관전의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다. 또 흔히 비디오아트가 시간예술의 매체성에 집착한 나머지 무거운 스토리텔링에 치우치는 반면, 한경우의 비디오아트는 수수께끼를 숨긴 평면회화의 전통에 오히려 가깝다.
이를테면 눈속임회화, 트롱프뢰유(trompe-l’oeil)의 긴 전통을 따르되 뉴미디어로 변환시킨 경우에 해당된달까. 이 때문에 동일한 눈속임이지만 트롱프뢰유와 한경우가 걷는 노정은 정반대다. 정통 트롱프뢰유 그림이 캔버스 화면 안에 실물이 있는 것처럼 속이는 민첩한 수공 재현 능력에 의존한다면, 한경우의 눈속임은 모니터 화면 속에 예술이 있는 줄 알았는데, 종국에는 예술을 닮은 실물들의 나열일 뿐이라는 귀결에 이르는 점에서 시점 계산의 능력에 의존한다. 거의 예외 없이 작가는 원근적으로 교란되게 배열된 일상 집기의 조합을 영상 촬영해서 흡사 평면을 보는 것인 양 오인하게 만든다.

일상으로 극적 귀환하는 아나키즘적 결말

응시의 집중력이 곧잘 흐트러지기 쉬운 비디오아트를 짧은 러닝타임으로 붙든 것만큼이나, 그가 집착하는 전략은 손쉬운 아이콘을 작품의 진입로에 두는 것이다. 이 대표 아이콘들은 미학적 중의법을 관철시킬 때도 유효하다. 초기작에 해당할 (2005)은 구시대 컬러TV의 화면 조정시간화면을, (2008)는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2011)는 성조기를 썼는데 모두 익숙한 도상들이다. (2011)의 언덕은 필시 컴퓨터 운영체계 윈도의 철지난 버전 바탕화면을 차용한 것일 테다. TV 화면 조정시간화면, 윈도 바탕화면은 시각체험이 모니터로 수렴된 동시대에 피할 수 없는 화면이 되었고, 재스퍼 존스가 회화와 사물 사이의 관계를 평면성으로 일갈할 때 동원한 단골 아이콘이 성조기임을 감안한다면 몬드리안과 성조기는 시각예술 종사자라면 피할 수 없는 화면이다. 또 몬드리안과 재스퍼 존스가 결과적으로 평면성의 도그마에 일정 부분 관여한 선배 미술인이라면, 한경우는 선배의 평면미학을 교란시키는 작업을 통해 세대 격차를 확인시킨다.
han3짧은 러닝타임과 미디어 시대의 도상들을 통해 미디어아트를 전에 없이 친숙하게 만들었다면, 한경우가 가장 자주 애용하는 화면 구도는 좌우대칭 또는 뉴미디어 데칼코마니다. (2006)의 4등분된 CCTV화면, 수면으로 집기들이 반사된 듯 착시를 일으키는 (2009)의 상하 대칭, (2012) 등은 모두 대칭구도 속에 착시기술을 숨긴 작품이다. 좌우대칭의 범주를 느슨하게 잡는다면 (2007)와 (2007)까지 대칭구도로 착시를 견인한 사례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에도 좌우대칭의 불문율은 (2014)가 계승하고 있다. 로르샤흐 테스트란 우연적으로 발생한 좌우대칭 화면에서 피험자들이 발견하는 문맥을 분석하여 그들의 심리를 검사하는 심리 테스트이다. 로르샤흐 테스트 검사지가 우연적으로 형성된 좌우대칭 이미지인 반면 는 작가가 인위적으로 좌우대칭 형상을 집어넣은 경우랄 수 있다. 해당 분야에서 오랜 권위를 누린 도상을 차용해서 멋대로 문맥을 변형시킨 점에서, 몬드리안과 성조기(혹은 재스퍼 존스의 해석)의 미학을 멋대로 변형했던 선례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로르샤흐 테스트는 심리분석 분야에서 긴 전성기를 누렸다. 그렇지만 검사 결과에 대한 정확성과 신뢰성이 검증 불가능한 것이라 피험자가 조작된 답을 내놓거나 실험자가 주관적 견해를 덧붙일 위험을 견제할 수 없다는 비판을 줄곧 받았다.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못한 로르샤흐 테스트를 의사과학이라고 평가절하하는 회의주의도 완고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심리분석 영역에서 퇴출되지 않고 살아남은 게 로르샤흐 테스트다. 검증 불가한 권위의 지속성, 모호한 해석에 대한 공동체의 묵인, 해당 분야에서의 장기집권 등 로르샤흐 테스트의 생리는 화단에서 추상미술이 겪은 전력과 닮은 데가 많다. 로르샤흐 테스트에서 피험자의 진술이나 실험자의 해석의 근거는 오로지 그들의 주관성일 뿐이다. 실제 로르샤흐 검사지에 우연히 찍힌 형상은 추상적이기도 구상적이기도 한 모양새인데, 그중 상당수는 성기의 모양새를 연상시키는 게 사실이다. 이 검사법을 고안한 헤르만 로르샤흐가 스위스 프로이트 학파 출신인 점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성적 메타포를 연상시키는 로르샤흐 검사지는 왠지 특정한 답변으로 피험자들을 몰아가는 인상마저 준다. 로르샤흐 테스트를 둘러싼 심리학계의 회의야 어떻건, 한경우가 검정 비닐과 색채 비닐들을 인위적으로 구겨서 내놓은 좌우대칭 비닐의 절대 다수는 성기 모양을 띠고 있다. 아마 작정하고 성적 코드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형성한 걸 테다. 심리학계에서 장기집권 하면서도 끊임없이 권위를 의심받은 이 검사법의 약한 고리를 시각적 농담으로 고의로 부풀린 것이리라.
사진이건 입체건 비디오건 매체를 가리지 않고 한경우가 당도하는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무정부주의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재현된 예술이 일상으로 극적으로 귀환하는 스토리라인을 따른다. 그런 결말은 더러 화면 속에서 작가의 등장과 퇴장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성조기 화면은 한경우가 착용한 채 퇴장하는 별무늬 재킷으로, 화면조정시간은 집기들의 재배열을 통해 빨간색 캐비닛이라는 일상 사물로 환원되는 식이다. 예술이 사물로 둔갑하는 대반전은 언제나 원근감과 사물의 비율 사이를 정교하게 계산한 결과이다. 한편 현란한 예술이 일상 집기로 환원되는 여러 작품의 결말을 포함해서, 의 원점이 백색 구조물일 뿐인 점, 초기작 (2007)의 마무리가 검정색과 흰색으로 구분된 투 채널로 끝난다는 점 등, 결론과 본질이 언제나 절제된 표현으로 수렴된다. 이는 시감각 자극의 과잉시대에 응하는 작가적 태도의 확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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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달 끝난 전시 <사진과 미디어 : 새벽 4시>에서 초대 작가들 가운데 최소한 3명(이문호, 원서용, 한성필) 이상은 착시효과에서 기민한 안목을 발휘한 경우다. 그 점에서 한경우와 상통하는 부분도 크다. 일군의 주목받는 작가들이 착시의 변주에 집중하는 까닭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환영주의를 날로 강화시키는 뉴미디어 시대에 전업 시각예술가의 농담어린 응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한경우는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조소과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와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를 졸업했다. 총 4회의 개인전과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2012> 등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리뷰] 김성연 – 불투명성, 불확정성이라는 감동

김만석 미술비평

‘감동’이라는 말은 생각외로 특별한 순간에만 발화하는 용법이 아닐 수 있다. 감동은 감각과 운동이 합쳐진 단어로, ‘마음’이나 ‘정서’의 변화나 이행을 포착하고 있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이 말이 갖는 함의는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할지 모른다. 특히 ‘동(動)’이 무거움(중력)과 (외부적) 힘이 적절한 기울기로 결합되어 있는 단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즉, 중력이 고정된 힘이라면, 그것에 외부적 힘들이 주어질 때 운동이 생성되는 것이니, 실상 삶은 곧 감동의 연속이고 감동의 지속이라고 해야 마땅할지 모른다. 우리가 감동을 특별한 순간이나 예술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러므로 삶에서 ‘감동’을 형성하기 힘든 건 이 감동을 주체의 동력으로 삼을 수 없게 되어버린 어떤 기이한 조건들이 삶으로 급격하게 그리고 거부할 틈도 없이 구성되었음을 뜻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예술적 행위와 실천들은 삶을 다시 감동의 연속으로 구성하는 것이어야 할 테고, 삶이 살 만한 방식으로 주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을 세계에 되돌려 주려는 악전고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성연이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뒤 부산으로 돌아와 평면과 설치, 사진, 비디오에 이르는 다채로운 작업과 활동을 통해서 그리기 자체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세계 형식, 도시적 삶과 풍경 등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재구성해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매체를 경유하면서 치밀하게 배치하는 작가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각각의 미디어를 통해 표현된 그의 작업들이 갖는 무게는 허투루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의 작업 궤적을 일별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다만 김성연이 세계를 차가운 시선으로 대하면서도 그 차가움이 외려, 그의 일상 삶에서 만나는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사랑’에 기초를 두지 않았다면, 그의 작업이 그토록 다양한 매체를 경유할 이유가 없었으며 지속적으로 동일한 대상의 ‘이면’을 다른 방식으로 포착하려고 애 쓸 필요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섬> 전시장 2층 공간에 배치된 영상작업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비디오로 촬영된 그의 일광작업실 앞 바다에 있는 작은 ‘섬’이 다채롭게 변주되는 것은 그 사소한 대상에 숨결을 불어넣을 때 일상적 지각 너머에 다르게 존재하는 거의 무한한 방식이 있음을 뜻한다. 세계가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것이라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이나 대상은 우리의 앎 바깥에 있으니 그것을 안정적으로 포착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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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되지 않은, 불완전성의 구축

따라서 세계를 고화질-디지털로 포획하여 미시적인 세계마저 시각적 반경 내로 회수하려는 현존 시스템의 지각능력을 무력화하는 방식이 그의 작업에 도입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대체로 확실성을 의도적으로 결여하고 있으며 선명하거나 작은 세계를 고화질 카메라로 선명하게 확대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불투명함을 강조하며 일상적 시지각의 무능력을 초점화한다. 3전시실에 설치된 작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즉, 불투명한 케이스에 담긴 체크무늬로 채색된 작은 형상들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며 시각적 ‘앎’과 그것이 갖는 욕망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달리 말해, 그에게서 이 세계는 ‘포장’된 것이고, 세계의 진면목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무엇이 세계를 포장하는가?
자본이 세계를 포장함으로써, 세계의 진면목이 감추어진다는 점에서, 김성연의 포장 연작은 상품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함축한다. 디자인이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이미지의 자율성을 획책함으로써 사물의 사물성이 상실되어 차갑게 변모해버렸다는 비판적 진단은 그의 평면작업이나 설치, 비디오작업들을 예민하게 만나는 데에 유효한 시각을 제공한다. 마치, 보르헤스의《 과학적 정확성에 관하여》에서 현실과 똑같은 크기의 정밀한 지도를 제작하는 제국의 우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불투명성이야말로 관계가 구성되는 기초이자 ‘우애’를 나누는 원리가 되며 삶이 서식할 수 있는 장소라고 역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차라리 잘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세계와 내가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일 수 있다.
kim3ok도시는 김성연의 작업에서 가장 불투명한 공간이자 삶의 장소로 나타난다.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서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디지털 이미지로 포착하고 이 이미지를 다시 그리는 방식의 작업을 통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도시의 외관과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자연’의 맨몸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산의 일부가 공룡으로 그려지거나 산복도로 마을의 옥상에 빨래와 파란 물통의 강렬한 색채가 남겨진 것은 삶의 기억과 흔적들이 급격하게 사라지는 사태에 대한 개입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비가시적인 체제로 내모는 논리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기도 한다. <불꽃놀이>와 같은 영상작업에서 특히 이런 태도가 잘 드러난다. 달리 말해, 쾌적하고 매끄러운 도시는 제 속살을 감추고 있으며 그 속에서 거주하는 존재들은 제 삶의 역사와 결을 유실한다는 것.
김성연의 작업들 역시 일정한 방식으로 불안정성을 구축하려는 경향을 띠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전시되는 ‘현재’로 완결되지 않고 항상 미래의 사태로 개방된다. 이는 자신의 작업이 전시되는 순간으로 종결되는 게 아니라, 이후의 전시에서 다시 도입되면서 전시 방식을 항상 변용하고 변주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에게는 작업 역시 불투명한 것으로 남겨져 있으며 지속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행해야 할 것으로 주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평면도 이런 태도로부터 비켜설 수 없으며 사진과 비디오작업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김성연의 작업은 항상 이행의 사태로 기입될 수밖에 없다. 같은 제목의 작업을 제시하더라도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다른 작업이 된다.
그러니까, 김성연은 하나의 텍스트가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선, 완결적인 구조를 갖기보다 지속적으로 형질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듯이 자신의 작업을 구성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을 작가로부터 소외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상기해보라. ‘소외’가 자본주의적 삶의 일반적인 양식이라면, 소외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술적으로 생산된 그것을 김성연은 지속적으로 돌보고 다듬는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 역시 작업에 항상 밀착해 있는 묘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작가의 세계인식과 그 생산물 역시 세계인식의 방식으로 취급하는 태도는 작업을 물신화하는 경향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예술 텍스트임을 주지시킨다.
그는 왜 이렇게 집요하고 철저하게 자신의 작업과 세계를 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성곡미술관 2관 1전시실 전면에 전시된 새 떼가 망명하듯 파도와 바람을 거스르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는 작업에서 엿볼 수 있을 듯하다. 이를테면, <야간비행/trans->에 따르면, 영상에 등장하는 새 혹은 새들은 무엇보다 그 자신으로 여겨진다. 자유를 강하게 열망하는 사람들의 생애가 그러하듯, 그는 자유로운 비행을 꿈꾸었고 서식지를 공중에 마련하려 했음을 감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의 운동 속에서 미술적 실천이나 생산 그리고 어떤 결과물들을 결코 고정된 방식으로 두지 않으려는,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서 그 자신과 그의 정서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 새로서 그의 비행이 어떤 비행이 될지, 그 불확정적인 행로가 무척 기대된다. ●

김성연은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뉴욕대 대학원(석사), 동명대대학원 시각디자인과(박사)를 졸업했다. 1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내 및 타이베이, 일본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부산의 대안공간 반디의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부산에서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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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Focus] 정연두 전

정연두의 작품세계-‘가볍거나 무거운’일상의 리얼리즘

입체와 평면, 가상과 실재의 관계를 다루는 작가 정연두의 개인전이 3월 13일부터 6월 8일까지 플라토에서 열린다.
지난10여 년간 선보였던 작가의 대표작 일부와 신작 〈크레용팝 스페셜〉을 선보인다. 작가중심에서 벗어나 대상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그의 시선은 주체와 대상을 전복시킨다. 작가와 피사체 그리고 관객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전영백 홍익대 교수

jung2ok플라토에 열리는 정연두의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전은 도심 한 가운데에 청량제 역할을 하는 듯하다. 밝고, 즐겁고, 따듯하다. 그리고 가벼운 느낌도 든다. 전시된 작업이 대중 유행가를 다룬 동영상이거나, 일상생활의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어서 그런가 보다. 아니면, 인터랙티브 매체안경을 활용해 이 미술관의 상징인 로댕의 무거운 <지옥의 문>을 가볍게 눈앞으로 당겨오기 때문일 수도. 죽음처럼 검은 지옥의 나락에서 뒤엉킨 신체들은 순식간에 생생하고 육감적인 누드의 군상이 되어 시각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작가 스스로 ‘사진 조각’이라 부른 신작 <베르길리우스의 통로> (2014)는 정연두의 사진미학이 가진 핵심을 함축한다. 조각을 전공한 사진작가라서일까. 입체와 평면을 넘나드는 시각이다.
결과적인 이미지는 하나의 사진작품이나, 그 배후에 피사체(인물)와의 소통을 위한 수많은 시간과 엄청난 수공(手功)의 노력이 있다. 로댕이 표현한 단테의 지옥은 정연두의 <베르길리우스의 통로>에서 연옥으로 끌어올려진 것인가. 관람자 개인별로 보는 가상공간에서 청동의 지옥에 갇혔던 인간들이 표면으로 부상하며 소생하는 듯하다. 이를 위해 작가는 수개월 동안의 <지옥의 문>에 관한 연구에 기반을 둔 모델들의 포즈를 수백 번 촬영, 이를 합성하는 복잡한 작업 과정을 거쳤다. 다수의 드로잉이 그 포즈의 형태적 탐구를 보여준다. 사진이 가진 순간의 포착과 가시적 표면이라는 특징과 대비되는 오랜 시간의 발품과 집요한 관찰, 그리고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꿈을 이뤄주는 비현실적 사진으로 그 이름을 알려왔다. 2000년대 초의 <내 사랑 지니>(2001~), <원더랜드>(2003) 등이 그의 대표작인데, 인물의 꿈을 사진으로나마 실현시켜주는 이러한 작업의 시초가 된 초기작 <영웅>(1998)이 이번 전시에 걸렸다. 이러한 작업은 그 내러티브를 사진이 찍히는 대상 (인물)의 입장에서 만들고, 그(녀)의 소망을 작업의 내용으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가 모든 것을 주관하는 작가중심에서 벗어나려는 점과 대상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던 미학에 이보다 적합한 사진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한마디로, 어깨에 힘을 뺀 작업이다. 정연두의 작업이 관객 다수의 사랑을 받는 건 당연하다싶다. 내용과 주제 면에서 누구나 쉽게 동감할 수 있는 건, 작가 스스로 피사체가 되는 인물의 입장, 시각, 그리고 욕망과 동일시하고 눈높이를 맞춰서이다. 맞춤 시각이다. 누구나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인 거다. 더구나 ‘작가’란 존재는 보통사람보다 그 정도가 심하고, 스토리텔링에 능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정연두의 작업은 ‘들어주는 작가’라는 발상의 전환을 거쳤다. 그의 사진처럼 대상과의 동일시에 충실한 ‘착한’ 작업이 또 있을까 싶다.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순순히 보여준다. 인물이 원하는 대로 꾸미고 구체적으로 실현시켜준다. 대상과 주체(작가)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점에서 정연두를 따를 작가는 없을 것이다. 미술의 근본 메커니즘이 이러한 대상과의 동일시에 있다고 볼 때 그는 훌륭한 ‘작업 태도’를 지녔다. 이 태도가 중요한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전시의 화제작인 <크레용팝 스페셜〉도 이러한 태도의 결실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반짝이가 ‘촌티 나게’ 화려한 파란색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마주치는 동영상과 설치작이다. 이 작업의 주인공은 걸그룹 크레용팝이 아니라, 이들을 의리있게 응원해온 아저씨 팬(‘팝저씨’)들이다. 작가는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간 카톡방을 통해 이들과 소통했고, 급기야 이들을 미술관을 무대로 한 영상 퍼포먼스에 등장시켰다. 50여 명 팝저씨의 우렁찬 ‘떼창’을 찍은 영상, 크레‘용’팝을 의식하고 만든 반짝이는 ‘용’과 현란한 조명의 빈 무대가 마련돼 있다. 그리고 팝저씨들이 헌정한 이름표와 배지들이 부착된 트레이닝복을 수건처럼 말아 크레용 셋트처럼 정렬시켜 벽에 붙인 설치 등 이들의 지극정성이 감동이다. 부성애가 전우애로 맺어져, 엉성하지만 자연발생적으로 뿜어내는 이 중년의 막무가내 열성은, 이들이 초지일관 응원해온 그룹이 처음에 거리를 전전한 무명의 ‘B’급 그룹이었던 점에서 누구에게나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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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대상 사이 시선의 메카니즘

이렇듯 집단성과 사회 동질성을 다루는 작가의 관심이 일찍이 일상 삶의 공간을 관찰하여 제시된 작업이 <상록타워>(2001)이다. 서울 광장동 임대아파트 상록타워의 32가구를 찍은 사진연작인데, 소위 남에게 보이고 싶은 이상적인 가정의 이미지를 전형적으로 포착해 보여준 작업이다. 이 역시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진의 대상(인물들)이 가진 집단의식과 사회적 고정관념을 드러냈다. 한국 사회 중산층이 생각할 수 있는 ‘이상적 가정’의 전형은 그들이 사는 동일한 규모와 구조의 공간만큼이나 유사해 보인다. 획일적 아파트의 사각형 틀 속에 한껏 과시하는 가정의 행복은 그래봤자 별반 차이가 없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가족의 모습은 판에 박힌 듯 행복을 연출한다. 높은 산 정상에 올라 까마득히 내려다볼 때 밀려오는 인간적 연민이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자세히 볼수록 집단의 획일성을 뚫고 각 가정의 개별성이 차츰 드러난다. 정연두가 다수를 다루면서도 개별적이라 보는 이유이다.
요컨대 작가가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프는 주체와 대상의 시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시선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리얼리즘을 담고 있다. 때로 보는 이를 마비시키듯 차갑고, 상품시장의 물건처럼 대상화하고, 또는 상대를 무장시키거나 가면을 씌운다. 그의 초기작 <도쿄 브랜드 시티>(2002)는 명품 숍에서 일하는 점원들의 모습을 현장에서 촬영한 10점의 사진연작이다. 상품시장에서 작동하는 시선의 메커니즘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것이 유발하는 조소, 위선, 긴장 등의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소비문화로 가득 찬 대도시 공간을 사는 우리의 일상생활은 그것이 다른 문화와 교차될 때 더욱 힘겨워진다. 그의 연속 사진작업 <여섯 지점(Six Points)>(2010)은 이러한 다문화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의 삶을 빗대어 뉴욕의 여섯 구역에 사는 다양한 민족별 소수자의 대형 파노라마 영상을 보여준다. 커다란 스케일로 연속장면에 펼쳐진 도시 공간 속 개인들의 모습은 강한 명암의 대조로 인해 더욱 고립적으로 보인다. 밝은 햇빛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인물들은 개별적으로 도드라지고 이들을 천천히 둘러보는 시선은 하나의 시점으로 집결된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길게 늘이는 영상기법으로, 익숙한 도시의 거리를 낯설게 만든다.
이 주체(작가)의 시선을 동일시하면서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나 제각기 힘겹게 살아가는 개인 존재의 중요성을 설득당한다. 그들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주의가 가진 불통과 소외, 그리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개인의 고독감을 지극히 실제적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에, 독백하듯 들리는 남저음 내레이션에 이민자들의 애환을 곁들인다. 이 작업에서 보는 리얼리즘은 수많은 인물이 드리운 그림자처럼 명확하고 개인적이다. 낯선 풍경 속 인물들은 초현실적으로 정적이며 고독해 보인다. 여섯 군데의 다른 지역 속 인물들과 오브제들이 이음새 없이 연속된 하나의 세계는 작가가 각고의 노력을 들인 4년 동안의 결과물이다. 천천히 돌아가는 파노라마 영상은 밝은 스포트라이트로 조명한 거리의 장면을 미세한 간격으로 찍은 수백 장의 컷을 합성하여 구성한 장면인 것이다. 정연두 사진의 제작 과정은 놀랄 정도로 전문적이고 고도로 노동집약적이다. 작가는 때로 이미지의 연출, 미장센의 조작을 그대로 드러낸다. 실제의 장면이 편집되지 않은 채 노출되지만, 최종적인 사진의 가시적 결과는 기막히게 매끈하다. 그러고 보면, 이 작가의 궁극적 관심은 가상과 실재의 관계라 봐야 할 것이다. 그 관계가 만난 사진의 글로시한 표면이 경쾌하고 가볍다. 그러나 그 표면을 받치는 보이지 않는 덩어리의 중량감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정연두의 작업은 무겁거나 혹은 가볍다. ●

[Exhibition Topic] 이브 수스만 전

배명지 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리는 <흰색 위에 흰색: 알고리즘적누와르>는 국내에 알려진 이브 수스만의 작업들과 명백한 간극을 보여준다. 영상의 출발점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 <흰색 위의 흰색>(1918)이다. <알카자르에서의 89초>와 <사비나 여인들의 약탈> 등이 과거 회화를 이미지의 차원에서 전유하면서 현재 시점에서 재맥락화하는 데 주목했다면, <흰색 위의 흰색: 알고리즘적 느와르>는 말레비치의 회화를 이미지-표상이 아닌 내적 의미작용의 차원에서 인용한다. 말레비치의 흰색 회화는 자연 대상을 초월한 순수한 ‘무(無)’로서 ‘유토피아’의 실재를 사각형 내에 응집한 것인데, 이브 수스만의 동명의 영상은 절대주의 회화가 추구하는 이러한 초월의 지대와 순수한 공간, 그리고 우주적 감성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절대주의자의 급진적 정신을 환기시키기 위해 이브 수스만과 루퍼스 코퍼레이션이 찾은 영화의 로케이션은 유토피아적 기획이 ‘러시아 혁명’의 실행으로 옮겨졌던 소비에트연합(러시아)이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의 거리, 풍경, 인물들은 2년여에 걸쳐 촬영되었고, 구 러시아의 오래된 건축과 도시 풍경은 기존 영화에서 수집된 3000개의 영상과 80개의 보이스, 150개의 음악 등과 함께 영화 <흰색 위의 흰색: 알고리즘적 느와르>를 구성하는 주된 소스로 사용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영상의 모든 재료가 ‘알고리즘’의 메커니즘에 따라 유기적으로 결합된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뜻밖의 행운과도 같은 기계 (serendipity machine)’ 라 명명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영상과 보이스는 무작위적으로 결합되고 전시공간에서 실시간 편집된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각각 태그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랜덤으로 재생시키면서, 화면에 비치는 영상은 같은 장면과 사운드가 결코 반복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재생시킨다. 따라서 영화 <흰색 위의 흰색: 알고리즘적 느와르>의 이야기는 기계에 의해 제어되고 관객에 의해 사후적으로 재구성된다. 볼 때마다 새로운 내러티브로 재구성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영화이면서 동시에 영화적 프레임 외부에 있다. 디터 메르쉬가 전자 코드와 상호작용을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의 매체론 신화의 토대로 지적했듯이, 여기서 모든 의사소통은 내러티브와 상징이 아니라 데이터의 변환에 의해 이루어진다.
eve3ok특히 영상 <흰색 위의 흰색>는 공상과학, 과학, 보이스(시), 철학, 미술사 등의 제(諸)학문적 전략을 작동시켜 상호텍스트적인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 영상은 공상과학 영화이기도, 고도의 심리극이나 정치극이기도, 한 편의 시적 영상이기도 하다. 또한 제학문적인 경계를 교차시키고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연쇄적인 구문론을 제시할 뿐 아니라 하나의 결정된 메타포를 거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의미의 혼돈으로 향하게 한다. 모든 의미는 정착되지 않으며, 알고리즘의 변형에 의해 끊임없이 유보되고 지연된다.
영원히 이어지지만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 이브 수스만의 기이한 흑백 영화는 공상과학영화와 필름 누아르 사이에 놓여있다. 이 영화에서 제프 우드(Jeff Wood)가 분한 주인공 홀츠(Holz)는 지구물리학자로, 유정 시멘트 회사가 지배하는 City-A라는 메트로폴리스에 갇혀 있다. 미래 도시에 갇힌 홀츠를 향한 관찰과 감시로 영화는 이어지는 듯하지만, 무한히 이어지는 영상의 순환반복으로 인해 총체적 내러티브는 결코 파악될 수 없다. 외관상 관련 없어 보이는 대상들과 보이스는 서로 대비되면서도 미묘하게 연결되어 관객들을 영화적 환영에 빠져들게 한다. 또한 영화 전체를 감도는 어두운 색채와 흐릿하고 우울한 영상, 의혹에 잠긴 내러티브와 디스토피아적 감성은 필름 누아르의 감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혼재된 공간과 시간
이브 수스만의 이 영화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알파빌(Alphaville)》(1965)에 대한 오마쥬와도 같다. 고다르 영화에서 알파빌은 이브 수스만 영화에서의 City-A와 유비적이다. 이곳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추구한 미래의 유토피아를 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황량한 폐허가 의미화하는 디스토피아를 현실에 투사한 곳이다. 이브 수스만과 루퍼스 코퍼레이션이 촬영한 유토피아를 향한 건축들이 21세기 폐허의 잔상으로 각인되는 것은 역설적이다.
사이먼 리(Simon Lee)가 영화 제작기간에 촬영한 사진작품들은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감성을 전달한다. 사진 <카루셀>과 <파일론> 등이 보여주는 해질녘의 잔광, 버려진 회전목마와 송전탑, 비에 젖은 음습한 풍경은 어두움과 슬픔, 공포감을 전달한다. 이곳은 발전과 진보 세계관에 역행하는 무질서와 퇴보를 지향하는 엔트로피적 공간으로 읽힌다. 이브 수스만의 영상과 사이먼 리의 사진은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내세운 진보의 목표인 유토피아가 결국 허구의 세계임을 재단하는 듯 보인다. 발터 벤야민이 폐허를 언젠가는 붕괴될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로 주목했듯이, 사진 속의 공간은 영원함에 반하는 일시성과 공허, 단절, 불안의 요소들을 담아내고 있다.
영원히 현존할 것 같은 소비에트 건축의 잃어버린 유토피아는 이브 수스만과 사이먼 리가 공동으로 제작한 시적 영상들에서 재생된다. <Seitenflugel(Side Wing)>, <겨울정원(Wintergarden)>, <미래와 과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How to tell the Future from the Past)> 등은 모두 기하학적 형태의 특정 프레임-창문을 통해 보여진 일상의 풍경들을 제시한다. 사진과 영상의 경계에서, 정지된 듯 서서히 진행되는 영상 <Seitenflugel(Side Wing)>에서 창문 너머의 풍경은 익숙한 일상의 파편들이다. 관음증적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의 풍경들은 그러나 실재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연출된 장면이다. 그러나 밖에서 훔쳐보는 듯한 ‘거리두기’의 시선은 내부 일상 풍경의 섬세한 알레고리를 모두 꿰뚫지 못한다.
3채널 비디오 영상 <겨울정원>에서 반복되는 기하학적 형태의 질서정연한 건축-창문 구조는 모더니즘 건축가가 꿈꾸었던 근대적 질서의 구현체이다. 이는 영화 <흰색 위의 흰색>에서 발견되는 20세기 중반 모더니스트들이 고안한 건축 형태의 동어반복이기도 하다. 1960년대 지어진 콘크리트 아파트 블록의 동일한 발코니를 보여주는 영상에서 발코니는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그 모습이 변한다. 동일한 구조 속에 여러 개의 다른 발코니 형상을 담아내는 것이다. 반복성과 동일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건축의 정치적 메타포는 소거되고, 대신 서서히 변화하는 영상의 시적 정취가 획득된다. 흔들리는 자동차 창문 너머의 풍경을 포착한 <미래와 과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는 시간성이 혼재한 가운데 속도가 부여된 흔들리는 영상 이미지를 제시한다. 이러한 영상 이미지들에서 의미작용을 하는 두 가지 지점은 건축적 ‘공간’과 ‘시간’이다. 공간이 가지는 정치성과 내러티브는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시간성에 의해 희미해진다. 이브 수스만의 영상에 내포된 느린 시간은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짚어낼 뿐 아니라, 시간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여 오랜 세월 그 건축에 깃든 삶의 겹들을, 기억들을 사유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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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 Theme] 2014 이응노미술관 신소장품전

대전으로 돌아온 이응노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이응노미술관에 기증된 고암의 작품 500여 점이 공개되는 전시가 대전 이응노미술관(2.25~6.1)에서 열린다. 고암의 회화, 조각, 판화 및 판화 원판과 유품 등이 공개되는 이번 전시는 그 동안 미공개되었던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와 행적을 4개 섹션으로 나눠 살펴본다.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드라마틱한 생을 살았던 고암의 작품세계를 들여다 본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이응노미술관에 다녀왔다. 대전에 간다고 하니 성심당의 튀김소보로와 부추빵을 사먹어야 한단다. KTX 대전역사(驛舍)에서 요행히 성심당를 발견하고 줄을 서서 빵을 사고 택시를 타고 이응노미술관에 도착. 개막식에 맞추어 마침 박인경 여사가 한국에 와 계셨다. 그녀와 환담을 나누며 튀김소보로를 함께 먹는 순간. 그 순간이 이상하게도 내게는 거의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특별하게 다가왔다. 참 오랜 세대 차이가 나서, 내 머릿 속에는 이미 역사 속의 인물들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이응노와 박인경 부부. 그중 한 분은 이미 1989년. 20세기의 질곡 많은 세계사의 한 단락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생을 마감하셨지만, 박인경 여사는 2014년 2월 바로 나의 앞자리에 앉아 1956년 개점한 성심당의 튀김소보로를 맛있게 잡수신다. 내가 그들 인생의 끝자락 어딘가에 잠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만으로, 마치 나도 역사의 한 장면에 등장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그저 소보로빵을 함께 먹는 장면이지만.
lee2ok어떤 예술가도 시대를 떠나 존재할 리 없다. 하지만 나는 왠지 이응노 작가를 생각하면, 특히나 한국의 역사가 그의 생애에 고스란히 겹쳐져 떠오른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난 해 충청도 홍성에서 태어나 1910년 경술국치 때 숙부가 조상의 묘 앞에서 자결했던 사건을 평생 기억하며 살았다. 김좌진과 유관순의 고향이기도 한 홍성 터에서 3·1운동을 경험했고, 20의 나이에 무작정 상경, 김규진 문하에서 열심히 대나무를 그렸다. 간판업을 해서 가세를 세우고 돈을 번 후에는 1935년 일본으로 유학 가 일본 남화와 서양화를 두루 공부했다. (일본에서 돈이 떨어졌을 때는 요미우리 신문배달소를 차려 친척들을 채용하고 그들의 유학까지 지원했다. 엄청나게 강인한 생활력을 소유한 가부장 시대의 남자.)
2차대전 종전 직전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아들을 잃었고(그는 후에 북으로 가서 살아있는 것으로 판명 났지만), 1949년경 박인경 여사를 만나 함께 한국에서의 피난생활을 거친 후 1958년 유럽으로 건너갔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심지어 1964년에는 동양미술을 프랑스인에게 가르치는 학교도 세웠다. 그러던 중 1967년 거의 10여 년 만에 고국을 찾았으나 냉전시대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고국 땅을 밟자마자 감옥으로 끌려갔다. 이른바 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형무소, 대전교도소, 안양교도소를 거쳐 2년 반 만에 석방됐다. 출옥 후 고향 근처 수덕사 앞 수덕여관에 암각화를 남기고 홀연히 프랑스로 돌아가 더욱 완숙한 예술작업을 펼쳤다. 한국에서도 작품 전시를 이어가던 중 다시 1977년,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치미수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내 작품 반입이 전면 금지된다. 이 사건의 정확한 경위는 오늘날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1979년 박정희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시기, 그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프랑스에서 뉴스를 접하며 대작 <군중> 연작을 탄생시켰다. 1983년 프랑스 국적을 택한 후 1987년에는 평양에 가서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1980년대 말 소련이 개방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려는 시기, 전 세계적인 화해 무드 속에서 1989년 1월 1일 서울에서 대규모의 이응노 회고전이 개막했다. 그러나 열흘 후, 그러니까 1989년 1월 10일, 그는 파리에서 돌연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이응노의 시신은 1871년 파리코뮌이 최후까지 저항하다 총살된 페르 라세즈의 묘역에 안장되었다. 20세기 ‘극단의 시대’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한 예술가의 생애를 어찌 이 좁은 지면에 다 담아낼 수 있으랴.
이응노미술관 신소장품전 개막식 인사말에서 박인경 여사는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단 한마디로 압축했다. “이응노 선생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가셨습니다.”

형식, 주제, 소재, 그 무엇 하나 거칠것 없는
lee5ok그는 참으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신 것 같다. 85년간의 그의 생애가 그러할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이 또한 작가의 드넓은 스펙트럼을 증명한다. 이응노는 주로 한국화를 제작했다고 할 수 있으나, 서예, 조각, 판화, 도자기, 태피스트리 등 갖가지 장르를 두루 넘나들었으며, 일본 유학기에는 서양화도 배웠고, 프랑스에서 10미터 높이의 공공 조각도 만들었다. 그는 한지에 먹을 주로 활용했지만, 다 쓴 신문지나 폐지, 나무, 돌, 천, 밥풀, 노끈, 부채, 달걀껍데기, 흙, 벼루 뚜껑, 바위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재료들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그러한 재료들로 그는 사군자도 치고, 소와 닭과 양, 산과 강과 마을도 그리고, 상형문자와 같은 추상의 세계를 드러내는가 하면, 무엇보다 사람, 사람들을 만들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다작의 작가로 쉴 새 없이 손발을 움직였던 그는, 언제나 그리고 긋고 찢고 베고 긁고 짜고 붙이고 짓이기고 지지고 뿌리고 두드리고 굽고 새겼다. 그러니 한마디로 ,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신 것이다!
그토록 다채로운 이응노의 행적을 모두 드러내 보이기에는 어떠한 미술관도 작아 보일 것이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자그마하게 설계하여 큰 욕심을 부리지 않은 이응노미술관의 건축 설계가 역설적으로 적절했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인 건축가 로랑 보두엥(Laurent Beaudouin)은 미술관 입구의 소나무에서부터 중정의 마구 자란 풀, 후원의 대나무에 이르기까지, 우연을 가장한 채 관람자들이 이 풍경들을 자연스럽게 마주치도록 설계했다. 전시장 공간의 형태가 조금씩 달라보이게 한 것도, 건축 재료가 조금씩 다르게 끼어드는 것도, 이응노 작품의 다양성을 지극히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장치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응노미술관은 갈 때마다 볼 때마다 공간도 작품도 달라 보인다.
이번 전시가 특히나 의미 있는 것은 2007년 미술관 개관 이래 두 번째의 대규모 소장품 전시라는 점이다. 2013년 초에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주로 박인경 여사를 통해 기증된 533점의 작품을 정리하고 전시했으며 큰 도록도 함께 출간했다. 올해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비슷한 경로로 수집된 697점의 작품을 대부분 전시했다. 다 걸 수 없는 작품들은 영상실에서 이미지로나마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응노미술관에서는 이제 총 1230점에 달하는 소장품과 많은 아카이브를 체계적으로 정리·관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 방법을 고민하는 학술 심포지엄도 함께 열었다.
지난해 전시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서예, 동물화, 사군자, 추상, 판화 원판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옥중화(獄中畵)일 것이다. 이응노의 출옥 장면을 담은 그 흑백사진 속에서 한쪽 팔에 끼어 있던 뭉툭한 꾸러미. 바로 그 꾸러미에 들어있던 그림들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된 것인가. 거의 반추상화되어 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형상들이 화면 위를 부유한다. 차마 그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은 작품들…. 어찌 보면 마치 분노와 환희가 공존하는 것 같다.
개막식에서 박인경 여사의 인사말은 간결했다.
“이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에는 온통 ‘대전’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그 대전에 이렇게 작품이 와서 걸렸습니다.”
이응노는 작품 옆에 ‘대전교도소에서’라는 말 대신 그저 ‘대전에서’라고만 써두었다. 교도소에서일망정 그래도 고향 근처 대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던 것일까? 그는 실제로 후에 “감옥은 나의 학교였다”고 말했다. 밥풀이 질긴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이도, 그것으로 장기 두는 말을 만들어 쓰던 옥중의 동료들이었으니까. 무엇이든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일상의 행위가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도 그는 감옥에서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 대전교도소에서 탄생한 작품들이 프랑스 파리를 거쳐 이제 다시 대전으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은 그렇게 짧은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감격스러운 사건일 것이다.
박인경 여사의 짧은 인사말은 이렇게 끝났다. “이제는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그 많은 이응노의 작품을 프랑스에 남겨두지 않고 고국으로, 대전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들어오기 위해 여전히 그녀는 애쓰고 있다. 바로 주인공인 우리들을 위해! 전시 보러 대전에 한번 가보자. 2014년의 따사로운 봄날, 1956년 개점한 성심당의 튀김소보로와 부추빵도 사먹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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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조덕현 – THE GARDEN OF SOUNDS

조덕현 – THE GARDEN OF SOUNDS
아트클럽1563   3.7 – 5.17

조덕현의 <음(音)의 정원전>은 설치 형식으로 구현된 섬세한 벽화이자 음악을 위한 간이 무대이다. 음영과 음이 어우러진 공간은 실내에 조성된 정원이기도 하다. 13×4m 크기의 무대 안쪽 4.5m 너비 안에 놓여있는 갖가지 식물들은 밀폐된 하얀 무대 막 위에 다양한 실루엣을 드리운다. 하얀 막 위에 떨궈진 그림자는 마치 수묵화 같은 농담을 펼친다. 정적인 가운데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되는 이 평화로운 풍경은 도시인의 눈을 어지럽히는 전광판 같은 형식이라는 점도 잊게 한다.
그의 작품은 수묵화뿐 아니라, 한옥의 하얀 문풍지에 비친 그림자, 그림자 연극, 수묵 애니메이션, 상감된 무늬, 압화, 흑백 사진–작품 <그림자들>(1986)의 작가 볼탕스키는 ‘그리스에서 그림자라는 말에는 빛을 가지고 적는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그림자는 최초의 사진이다’고 말한 바 있다–이나 느릿한 영상도 연상된다.
여기에 음악까지 곁들였으니 작품이 갖는 감각과 형식의 공감대는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다. 전시장 한 벽면을 이루는 미니멀한 무대는 하얀 백지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내포적 다양성이 있다. 이 공감각적인 설치작업은 드뷔시와 윤이상의 현대음악을 위한 배경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획과 구상 단계부터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대화의 산물이다. 작가가 윤이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인간의 짧고 무기력한 삶에 견줄 수 없는 자연의 커다란 언어에 바탕을 둔 그의 음악철학 때문이었다고 한다.
작품의 기조를 이루는 하얀 바탕에 검은 얼룩들은 통영에 있는 윤이상의 육필 악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것은 단지 현대음악을 현대미술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양자 간의 상응이며 보다 깊은 시원에서의 조우이다. 벽 안에 배치된 각종 식물들은 그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로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지만, 거기에는 컬러사진보다 더 깊은 맛을 주는 흑백사진, 산문적 실제보다 더 운치 있는 시적 분위기가 있다.
자연과 인공 사이에 존재하는 소우주인 이 정원은 ‘살아있는 구조’(롬바흐)이다. 정원과 무대의 중첩은 이 고즈녁한 시공간이 무엇인가로 꿈틀거림을 예시한다. 그 자체로 벽면을 이루는 힘찬 구조는 동시에 미세한 공기의 움직임에도 흔들리는 궤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민감한 표면이다. 이러한 장치는 실물의 모사가 아니라, 실물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것은 정원술 자체가 자연과 협력하여 만들어지는 예술임을 인식하게 한다. 자연은 선택된 것이지만, 주어진 한계 안에서 강요됨 없이 스스로를 펼치고 접는다.
거대한 막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을 바느질 선은 인간을 위한 길이 되었다. 거기에는 인생이라는 여로 위의 군상이 있다. 막을 가로지르는 지평선 위의 작은 인간들은 스케일의 차이 때문에 풀 같은 작은 식물들을 거대한 숲으로 변모시킨다. 인간에게 공포를 줄 수도 있는 원초적이고 무질서한 숲이 아니라, 한가운데로 길이 열려있는 유토피아의 풍경이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노동 없이 행복했던 낙원으로서의 정원이다.
이미지가 펼쳐지는 방식이 그림자라는 것은 그 자신은 소극적이면서도 타자들을 품는 넉넉한 자리임을 알려준다. 빅토르 스토이치타는《 그림자의 짧은 역사》에서 재현의 기원으로 그림자가 거울보다 먼저였음을 밝힌 바 있다. 예술적 재현의 탄생은 음화(陰畵)에 있다는 저자는 시각영역에서 이 두(그림자와 거울) 이미지의 근본원리가 광학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다름을 강조한다. 스토이치타에 의하면 플리니우스가 묘사한 최초의 재현 행위에 드러나는 원시적 속성은 최초의 회화적 이미지가 인간 몸에 대한 직접적 관찰의 결과물이 아니라, 몸의 그림자를 잡아낸 재현물이라는 사실이다.
르네상스 이후 대세가 된 거울의 모델은 동일자를 정면에서 비추지만, 그림자는 타자를 측면에서 비춘다. 그것은 원형을 복제한 것 즉, 미메시스가 아니라, 닮아 보이는 것 만들기 즉, 시뮬라크라(simulacra)이다. 유한한 형식 속에 떠도는 허상이 메아리치는 무대는 대체의 마술이 펼쳐지는 시공간이 된다.
막에 비춰진 자연과 인간은 그것이 모두 덧없는 그림자라는 점에서 무한한 시공간에 찍힌 작은 점 같은 덧없음의 지표(index)이다. 자연이라는 무대 위에 잠시 출연했다가 사라지는 연극배우 같은 인생 말이다. 시간 속에서 생멸하는 소리(음악) 또한 덧없다. 그러나 이러한 덧없음은 생명의 본질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전시의 중요한 요소인 음악은 윤이상의 <두 개의 비올라를 위한 명상>이 연주(연주자 전진희)된 오프닝 공연을 필두로, 전시 기간 내내 이루어진 공연에 있다.
표본처럼 있는 식물조차 진동하는 무대는 음악처럼 시간의 흐름을 탄다. 무대는 다양한 시간적 형태들이 구성되는 장이다. 이 전체적 흐름 속에서 정지나 정적 또한 의미의 일부가 된다. 벽화가 그렇듯이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살아있는 무대를 위한 필수 요소이다. 빅토르 주어칸들은《 소리와 상징》에서 사람들이 우주를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할 때는 우주의 운동이 아니라, 그들의 하모니 즉, 함께 소리 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지적한다. 빛과 색채, 소리, 냄새, 맛, 단단함, 유동성, 거칠고 부드러운 것, 뜨겁고 찬 것, 이들 모두가 무생물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나 음은 오로지 살아있는 것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덕현의 작품에서 음은 전적으로 살아있는 생에 속하며, 미술만큼이나 세상을 내다볼 수 있게 한다. 

이선영・미술비평

[Review] 설원기 – 흑(黑).백(白)

설원기 – 흑(黑).백(白)
통인옥션갤러리 3.5 – 3.30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드로잉은 하나의 선으로 그린 그림이며, 데생은 여러 개의 선을 겹쳐서 그린 그림일 수 있다. 얼추 선으로 그린 그림과 음영으로 그린 그림으로 환원해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단박에 대상을 포획한 그림과 대상을 더듬어 찾아가는 그림의 경우를 비교해봐도 되겠다. 이처럼 드로잉은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머뭇거림 없이, 최소한 머뭇거린 흔적이 없이 사물대상을 단번에 포착해야 하는 까닭에 어렵다.
대개 드로잉이 페인팅에 비해 번잡하지가 않고 단출한 인상을 주는 것도, 적당히 심심하면서 꽉 찬 느낌을 주는 것도 알고 보면 이처럼 하나의 선으로 대상을 압축해 들인 형태 감각과 군더더기 없는 화면에 연유한다. 평소 사물을 관찰하면서 골격 내지 구조와 같은 형태적 특징을 캐치하는 과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평소 몸에 밴 과정이 밀어올린 드로잉은 한정된 화면에 대한 공간운영과 같은 작가의 감각 정도가 즉각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솔직한 그림이랄 수 있겠다. 감각에 관한 한, 가릴 데도 숨을 곳도 없는 그림이랄까.
설원기는 평소 페인팅과 함께 드로잉 작업을 한다. 페인팅이 작정하고 그린 그림이라면 드로잉은 그저 생활의 일부처럼, 일상의 기록처럼 부담이 없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무슨 거창한 예술혼보다는 작가의 평소 인성이며 인격에, 생활감정이며 생활철학에 더 밀착된 그림이다.
소재도 산과 같은 스케일이 있는 그림이 없지 않지만, 대개는 탁자 위에 놓인 화병과 같은 생활의 주변머리에서 취한 것들이어서 마치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듯 친근한 느낌이다.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기로 그린 그림이 주는 편안한 느낌이다. 여기로 그린 그림은 문법에 맞출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여기로 그린 그림만이 줄 수 있는 완성도가 있다. 아마도 드로잉이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그림은 작가의 말마따나 서재에 오랫동안 걸어 놓고 보아도 질리지 않을,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림이고, 없는 듯한 방심 속에 존재감을 숨겨놓은, 그런 그림이다. 흑과 백과 중간계조로 이루어진 그림이 삶의 계조를 닮았다고나 할까.
한지에 목탄으로, 한지에 먹으로, 때론 반투명한 폴리필름 위에 잉크로 그린 그림이 선과 면이 대비되고 흑과 백이 대비돼 보이는 목판화 같고, 선이 강조된 그림이란 점에서 전통적인 수묵화 같다. 그린 부분과 그리지 않은 부분의 안배가 안정감을 주면서 소소한 느낌이고, 부드러우면서 터실터실한 목탄 재질 특유의 질감이 감각적이고 우호적인 인상을 준다.
이처럼 목탄그림이 목탄과 한지가 일체를 이룬 물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폴리필름에 잉크로 그린 그림은 어떤 울림을 자아낸다. 폴리필름은 뒤가 막힌 반투명 재질이다. 그래서 그 위에 잉크로 그림을 그리면 잉크가 지나간 자국이 낱낱이 기록된다. 이렇게 기록된, 중첩된 잉크자국이 울림을 자아내는 것. 이렇게 작가의 그림은 생활의 주변머리를 기록하고 있었고, 일상이 자아내는 정서적 울림을 기록하고 있었다.

고충환・미술비평

[Review] 곽남신 – 껍데기

곽남신 – 껍데기
OCI미술관 3.12 – 4.30

이번 <껍데기>전에서 곽남신은 매우 직설적인 조형언어로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기존 실루엣 연작이 대상의 에센스를 극적 평면성으로 농축시켜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보여주면서도, 동적인 효과와 공간감을 창출하는 시각 장치와 회화적 효과를 가미함으로써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들에서는 평면에서 입체로, 압축적 이미지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로의 전환이 눈에 띄며, 이러한 성향은 보다 즉각적인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캔버스 천에 주름을 잡거나, 컷 아웃에 네온 혹은 LED의 병치, 이미지의 겹치기 잔상 효과 등으로 평면에 기반을 두되 지속적으로 평면성의 탈피를 모색해온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움직이는 조각적 입체 설치작 <홍동지 와상>을 내놓았다. 홍동지는 민속인형극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남성성의 상징적 아이콘이다.
그런데 곽남신은 처참히 조각나 숨을 거둬가는 순간에조차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의 남근이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확인하는 홍동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홍동지의 몸이 기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도 그의 남근만은 다시 일어나고자 꿈질거리는데, 이 사력을 다한 마지막 2초간의 무의미하고 타성에 젖은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남근 세우기는 권력, 외모, 부에 대한 욕망의 제어장치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허무한 욕망을 끊임없이 조장하는 사회와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이자 그렇게 욕망을 좇다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 삶에 대한 연민을 담고 있다. 이는 <끄~응!>, <바디빌더>, <섹시걸>, <꿈꾸는 마초>, <비누거품 남근>, <부풀리기>, <아우라>, <아름다운 인생> 등의 작품들이 <껍데기>라는 제목하에 공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곽남신의 예술은 재료나 소재 면에서 지속적으로 대중을 향해 손을 내밀어왔다. 그는 회화, 판화, 드로잉, 오브제, 실루엣 초상과 사진의 로키(low-key) 조명의 원리를 이용한 LED와 네온 작업에서 3차원 키네틱 설치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와 형식을 소화하면서, 대중매체 이미지를 여과 없이 사용하기까지 점점 더 거침없는 대담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절정기에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곽남신은 모더니즘 회화의 엘리티즘의 한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면서, 복잡한 담론이나 극단적 형식주의를 최소화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예술을 추구해 온 것이다. 대중매체는 우리 시대 아이콘의 양성소이자 그 광범위한 분배를 통해 우리의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욕망을 끊임없이 조장한다. 대중의 삶에 대한 그의 애정은 자연스럽게 그의 예술에 일상에 대한 직관적 성찰을 담는 팝 이미지의 차용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지는, 곽남신의 대중매체의 세속적 아이콘 전유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추상의 절정인 하이 모더니즘의 시기를 거쳐 긴 여정을 통해 도달한 대중 친화적 조형언어에 예술가의 관조적 시선 또한 오버랩된다는 사실이 곽남신 식 팝아트의 특징이다. 헛된 욕망에 지배당하는 인간을 연민하는 인간 곽남신의 존재가, 마초 맨과 섹시 걸의 허상과 판타지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곳곳을 바라보는 더벅머리 곽남신의 실루엣이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 드리워져 있는 듯 느껴지기에, 그의 작품은 마치 일기처럼 진한 삶의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 

이필・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