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오래된 것이 좋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요즘이다. 지금처럼 계절이 바뀔 무렵 풍경을 표현할 때 아주 적절한 수식어가 있다. 평소에 자주 쓰지는 않지만 조금씩, 틈틈이, 점차, 천천히, 차츰차츰 같은 뜻을 지닌 ‘시나브로’가 그것이다. ‘시–나–브–로’라고 발음할 때 오물거리게 되는 입술 모양새도 예쁘고 듣기에도 참 달콤하다. 받침 없는 글씨 또한 정감이 간다. 계절 뿐 아니다. 가끔씩 집에 있는 화분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고 거기에 매달린 이파리가 미세하게 넓어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고양이에게 시달리면서도) 요란하게 티내지도 않고 묵묵히 꿋꿋하게 시나브로 저 혼자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약하게만 보이는 식물의 생명력이야말로  웬만한 동물을 능가한다.
이렇게 ‘시나브로’는 무엇보다 ‘자연’의 법칙과 섭리를 설명해주는 적절한 말이다. 새삼스레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새국어사전》에서 ‘자연’의 뜻을 찾아봤다. “①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고서 존재하는 것이나 일어나는 현상(산·강·바다·동물·식물·비·바람·구름 따위) ②사람이나 물질의 본디의 성질. 본성(本性) ③철학에서, 인식의 대상이 되는 외계(外界)의 모든 현상을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 있더라. 나는 이런 자연을 동경하고 좋아한다. (다른 의미일지는 몰라도) 삶에 있어서도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자연스러워지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막상 세상을 살다보면 맘처럼 그렇지 못하다. 자연스럽기는커녕 부(不)-자연스런 경우가 훨씬 많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임에 틀림없지만 현실에서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고 거역하며 파괴도 서슴지 않는다. 자연재해도 무섭지만 인간이 더 두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마 전, 인사동 밤거리에서 눈에 익은 건물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1990년대 중후반 특히 동양화가들의 전시공간으로 각광 받았던 공평아트센터가 있던 건물이었다. 약간의 술기운도 있었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그 커다란 건물이 통째로 철거됐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적이었다. 서울에서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 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너무 쉽게 없어지고 너무 빨리 사라진다. 뭐든지 한곳에 진득하게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게 없다. 카페, 술집, 갤러리, 사람… 다 마찬가지다. 인사동에선 이제 관훈갤러리와 부산식당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세상이나 사람이나 모두 자연처럼 시나브로 변해갈순 없는 것일까? 나는 오래된 것이 좋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bold_title]CONTRIBUTORS[/bold_title]

김연수(왼쪽 벽면 시계 없애주세요)김연수  소설가

소설가는 대개 부지런하지만 특히 성실한 작가로 알려진 그는 평소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이번에는 안지미 이부록과 협업해 새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 오프닝에 맞추어 김연수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갤러리를 방문해 깊은 첫인상을 남겼다. 디자이너 안지미와는 동갑내기로 1990년대 말《  출판저널》 기자였을 당시 안지미가 잡지 디자인을 맡으면서 알게 된 오랜 인연이라고. 대표적인 저서로 소설집《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등과 다수의 산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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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렬김옥렬  2014강정대구현대미술제 전시감독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2014강정대구현대미술제>를 알차게 이끌었다. 디아크 내부에 설치된 전시과정 소개 기록사진, 영상 속 작가와의 인터뷰 모두 발로 뛰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매사에 중립적인 편이지만 전시기획에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취재차 만난 그녀는 숨 쉴틈 없이 이번 전시기획에 대해 설명했고, 한국현대미술 현장의 이모저모에 대한 열변을 토했다. 그녀가 하는 미술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전시를, 그리고 블로그를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현재 아트스페이스펄과 현대미술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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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

강홍구  작가

사진작가이자 글 쓰는 작가.《  미술관 밖의 미술이야기1,2》 《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외 꾸준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언제 사라질지 모를 한국의 풍경을 렌즈에 담아 <녹색 연구>, <그집> 시리즈 등을 발표했고 수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2014>의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주제어에 그가 먼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고향인 신안군 섬마을의 추억을 담아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전시를 풀어낸 맛깔난 그의 글이 독자들과 교감될 수 있길 바란다.

 

 

 

 

 

[Column]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

20세기 미국 추상미술계 우상인 작가 프랭크 스텔라는 자기의 회화작품을 설명하면서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고 말했다. 이 명언은 한편으로 그의 회화가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즉 그의 회화가 제시하는 것은 화면의 바깥세계에 실재했던 혹은 실재하는 (관객이 직접 경험하고 있지 않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화면의 형식 자체가 투명하고 실제적인 (관객이 직접 경험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매체가 곧 메시지’라는 설명이다. 다른 한편 그 명언은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 본다’라는 인식론적인 명제도 의미한다. 즉 화면의 현실 자체가 관객의 관점과 관심에 따라 특수하게 지각된다는 뜻이다. 이 지각의 한계는 곧 하나의 현실을 놓고 상반된 두개의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는 모순의 근원이다. 따라서 그 명언은 그 모순을 극복하고 두 현실의 공존과 화합의 장을 이룩해야 한다는 윤리적인 요청을 암시한다.
예술감독 선정 과정에서 물의를 빚었던 부산비엔날레가 8월 20일 드디어 개막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공정하게 선정되었다고 구설에 오른 그 예술감독이 자국 프랑스 문화권 출신 작가들을 대거 선정하여 또 한 차례 물의를 빚고 있다.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감독 선정이야 행정적인 문제로 보고 그 선정절차와 규정을 재검토해 오해의 여지가 없게끔 말끔하게 정리하면 되겠지만, 감독의 작가 선정은 까다로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와 전시기획자의 자율성 보장이라는 미술의 근본적인 대전제에 연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엔날레조직위원회에서 예술감독에게 각국의 작가 수를 고르게 맞추어 달라고 주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올해 부산비엔날레가 ‘프랑스판 비엔날레다’라는 지적은 정당하다. 그 지적은 부정적이지만 그 자체로 부산미술계의 건강한 상태를 시사한다. 그러나 그 지적이 부산미술계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자성의 계기가 되어야지 분열의 무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프랑스 문화권에서 다수의 작품이 선정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조건들을 확인해야 한다. 우선 전시기획의 개념을 검토해봐야 하고, 또 그 외의 조건들을 검토해보아야 한다. 편중된 작가 선정 결과만 놓고, 프랑스 예술감독의 ‘정치적 발상’이라거나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의 ‘문화사대주의’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단편적이다. 더욱이 ‘비엔날레를 볼 필요가 없다’라든지 ‘비엔날레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식의 ‘전부가 아니면 제로(all or nothing)’라는 극단적인 태도는 궁극적으로 우리 미술계 발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술은 스스로의 생성조건을 드러내고 그것을 생산한 사회와 시대를 반영한다. 미술작품도 그렇고 미술작품들을 발표하는 전시도 그렇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협소하게는 부산미술계, 광범위하게는 우리 미술계와 우리 사회, 나아가서 동시대미술의 편향적이고 승자독식적인 성향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동양 지역에 편중되거나 서구지향적인 부산비엔날레가 될 것이라는 예고는 이미 물의를 일으킨 ‘공동 감독론’에서 명백히 경고되었었다. 보도된 공동 감독론에서 ‘서구지향적’이란 용어가 ‘프랑스판’을 의미한다는 구체적인 지표는 없었다. 아무튼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 경고의 긴박성은 충분하게 전달되지 않았고 부산지역 미술인들은 그 예고를 무시했다. 결국 그 예고는 현실로 다가왔고 현재 부산지역 작가들은 부산비엔날레 ‘파행’의 대안으로 새로운 트리엔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 트리엔날레가 대결의 경쟁심리에서 나온 발상이라면 이 역시 승자독식적인 자세를 의미한다. 비생산적인 대결의 상황보다 생산적인 화합의 장을 구성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지난 20여 년간 한국은 경제면에서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제 문화적으로 발전해야 할 단계이다. 이 과제는 한국의 작가들과 큐레이터들, 예술행정가들에게 성숙함을 요구하고 세계 동시대미술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승자독식이라는 동시대미술의 극단적이며 경쟁적인 대립 성향은 지난 20세기 냉전시대의 특수한 산물이다. 21세기 한국에서 그런 구태의연한 자세와 미학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동시대미술의 성향을 개선하는 일에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작가들이 세계 동시대미술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공헌들 중의 하나이다. 2014년 부산비엔날레는 신자유주의의 허점을 보완하고자 글로컬 개념으로 포장된 미학이 현재 부상하고 있음을 우리 눈앞에 엄연히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컬 미학 역시 과거 냉전미학의 사고방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냉전미학에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우리는 그 미학을 직시하고 그 미학의 맹점을 간파해서 보완하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미학을 탐색해야 한다. 즉 동시대 미술을 힘의 논리에 입각한 대립의 시각이 아닌 상생의 논리에 입각한 화합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냉전의 유산이자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 대결논리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대결논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세계시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그 대결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잠재력을 개화시킬 수 있는 도상에 서 있음을 지각해야 할 것이다. 이견이 많은 2014년 부산비엔날레와 <무빙 트리엔날레>의 생성을 새로운 화합의 미학을 개척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즉 우리는 갈등이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화합의 싹을 지금 여기서 적나라하게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비엔날레를 혁신할 동력을 부산미술계 내부에서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한행길・뉴욕 코리아아트포럼 공동설립자 겸 디렉터, 독립 큐레이터

[Hot People] 큐레이터 JEAN-LOUIS FROMENT

달콤한 덫에 사로잡히다

<문화 샤넬전>을 진두지휘한 큐레이터, 장 루이 프로망이 한국을 찾았다.  그는 2007년 모스크바의 푸슈킨 미술관을 시작으로 2011년 상하이, 베이징 그리고 2013년 광저우와 파리를 거쳐  8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문화 샤넬전>을 기획한  인물이다.  올해로 6번째 전시를 기획하다 보니  그는 누구보다 샤넬을 깊이 연구하고 탐구한 명실공히 샤넬의 삶과 역사에 정통한 전문가다.   지금까지 이어진 <문화 샤넬전>은 가브리엘 샤넬이라는 인물을 보여주는 거대한 주제는 일맥상통하지만 그 소주제와 전시에서 보여주는 자료들은 전시가 열리는 도시마다 다르게 꾸며졌다. 동대문디자인 플라자(이하 DDP)에서 열리는 <문화 샤넬: 장소의 정신전>은 샤넬에게 의미가 깊은 장소 10곳을 선정해서 샤넬의 패션, 주얼리, 시계, 향수 등의 창작품들과 함께 500점 이상의 다양한 사진, 책, 예술작품 등을 선보이는 기존 전시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인물보다 장소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샤넬을 중심으로 한 당시 미술가와 문학가들의 유럽 문화계 네트워크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장소를 테마로 정한 것에 대해 장루이 프로망은 “샤넬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은 아직까지 이 장소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 장소성이 깃들어 있기때문”이라고 답했다. 장소성을 보여주는 전시이기에 전시장소 를 신경써서 선택했다.  DDP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한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건축한 DDP는 건축가의 선정부터 개관 이후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비록 DDP가 다양한 시각으로 읽힐 수 있지만 경계를 무너뜨리고 혁신적인 시각문화를 창출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샤넬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언급했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독특한 공간의 문을 열고 전시장에 입장하면 무척이나 어둡다. 그곳에는 노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투명한 유리 쇼케이스들이 반듯이 정렬되어 있다. 서랍장 같은 쇼케이스에 놓인 그림 및 사진자료는 대부분 누워있다. 오브제와 관람객 간의 거리를 줄이려는 시도다. 그래서일까.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전시는 은밀하게 펼쳐진다. 장 루이 프로망은“보물상자 속의 보물을 발견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또한 샤넬이 살던 공간의 내부 조명이 황도 빛이 나는 따뜻한 조명이이서 그 느낌을 살리고자했다”고 설명했다.
장 루이 프로망은 <문화 샤넬전> 외에도 <장 누벨의 건축전> <르 몽드 장 폴 고티에전> 등 패션과 건축을 다루는 매체 간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 전시를 꾸준히 기획해왔다. 이에 대해 그는 “모든 예술가는 자기 안에 상반되는 생각들을 갖고 있다”며 “여러 형식을 연결시켜 관람객이 하나의 인물, 사물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함께하는 장르들에 정당성이 늘 확보돼야 한다”며 크로스오버 전시의 의미를 설명했다. 샤넬에 빠져 살면서 향후 프로젝트를 계획하기 힘들다는 그는 주변에서 “샤넬 전시를 진행하면 달콤한 덫에 빠질 것”이라던 말을 절실히 느끼고 즐기고 있다. 임승현 기자

장 루이 프로망은 보르도 현대미술관의 설립자로 관장을 지냈다. 다수의 국제 전시와 대학 강의 및 출판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기획자다. 1990년과 1994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 파빌리온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바르셀로나 카이사(CAÏXA) 컬렉션,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고문을 지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르 몽드 장 폴 고티에전>, <패션의 열정 – 패션의 100년전>, <장 누벨의 건축전> 등 패션 또는 건축 관련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문화샤넬전>으로 총 6회의 전시를 기획했다.

 

Culture CHANEL_Exhibition_12-2

DDP 전시장 전경(사진제공 CHANEL)

 

 

[Sight & Issue] 2014 강정대구현대미술제

대구현대미술의 발판을 넘어

<강정대구현대미술제>가 어느덧 3회를 맞았다. 2012년 물문화관 디아크(The Arc)와 시민공원이 강정고령보 근처에 자리 잡으면서 강정 대구현대미술제가 첫발을 내디뎠다. 거대한 활 모양의 디아크가 위용을 뽐내는 문화공원 일대는 첩첩이 둘러싼 산을 배경으로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이루고 있다. 올해 <강정대구현대미술제>는 지난 8월 하순 ‘강정에서 물·빛’이란 타이틀로 개막해, 9월 21일까지 성황을 이루며 거의 한 달간 진행되었다.
미술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1970년대 바로 이곳, 강정의 낙동강가에서 펼쳐진 <대구현대미술제>를 기억할 것이다. 1970년대 이강소, 이건용, 김구림, 박현기, 최병소 등 주로 대구 출신 젊은 작가들이 국제미술계의 선진적 경향을 수용하여 한국미술에 ‘아방가르드’의 작위를 부여했다. 미술관 밖에서 벌이는 퍼포먼스나 이벤트, 설치미술, 개념미술은 1970년대 뉴욕에서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새로운 충격이었고 예술적 반란이었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그것도 타블로나 오브제 위주의 전통미술 방식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져갈 개념예술 형식으로 선보였다는 것은 지금도 대구미술인들의 예술적 자긍심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강정에서 물·빛’에 출품된 20여 점의 작품은 디아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원 곳곳에 위치하면서 나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정이라는 장소가 지닌 역사성과 공간성의 무게도 만만치 않거니와, 디아크 문화공원에 장소특정적으로 설치된다는 조건 때문에 참여 작가 대부분은 전시 주제만큼이나 장소의 역사성을 의식한 것 같다. 출품작 중 다수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급성장하던 시절을 오늘에 비추어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술문명의 상징인 디아크와 지금은 섬처럼 떠있는 옛 토지 사이의 공간에 사직단을 쌓아 현대적 제식 행위를 한 김광우, 농경지대였던 강정이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변화한 모습을 반추하며 강정자리라는 별자리를 설치한 차현욱, 팝송가사를 차용하여 아방가르드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변화한 강정 강변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김승현, 디아크의 초현실주의적 형태와 대조적인 원초적 형태의 알을 세 가지 다른 재료로 제작하여 산업시대 ‘백일몽’의 표상인 디아크를 배경으로 설치한 황성준 등은 시간의 간격만큼 변모해온 강정과 한국사회의 모습을 반성적으로 돌아본다.
그런가 하면 과거보다는 현재에 방점을 두고 지금 여기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고찰하는 작업들도 꽤 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타인의 피를 섭취하며 생존하는 일군의 모기들로 추상화한 강대영이나, 대지의 기운을 흡수함으로써 거대하게 자라난 말의 역동적인 형상을 통해 욕망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질주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황우철은 다소 직설적으로 동시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이에 비해 간접적인 표현방식을 택한 나현은 디아크 뒤편에 네 개의 환기장치를 설치했는데, 인공적 아름다움을 지닌 시민공원 뒤편에 감춰진 자본주의적 욕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술회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현대인의 모습을 5미터 상공의 나룻배에 앉은 피노키오의 모습으로 표현한 김봉수와, 일견 꽃처럼 보이는 화분들을 채우고 있는 현대적 건축재료 콘크리트의 양면성에 주목한 최두수도 우회적인 방식을 취해 동시대 한국사회의 단면들을 꼬집는다.
2012년의 ‘강정랩소디’와 2013년의 ‘강정가다’에 이은 ‘강정에서 물·빛’은 강정 대구현대미술제의 진일보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기존의 행사들이 단기간의 이벤트적 성격을 띠었다면, 이번에는 주제의식을 지닌 꽤 안정된 전시행사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동식물을 막론한 모든 유기체는 물과 빛이 없다면 탄생할 수도 생존할 수도 없다. 참여 작가들은 모두 제 나름의 방식으로 ‘물과 빛’의 화두를 장소성과 어우러지게 구체화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가령 조숙진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은 강렬한 영상을 장소특정적 설치를 통해 보여주었고, 김성수는 마치 풍향계처럼 강바람을 따라 회전하는 채색 나무조각들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상처와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대구현대미술제>가 부활하고, 성공적인 전시행사로 진행된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반가움과 함께 아쉬움도 없지 않다. 비록 달성문화재단이 지원하는 공공 문화행사일지언정,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우리는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들과 전혀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역사적 의의가 큰 이 미술행사가 과거 선배들의 실험성, 도전성, 급진성을 계승할 방법이 없을까? 1977년 <대구현대미술제>에 국내외 200여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창조의 열정을 불살랐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지금의 <강정대구현대미술제>는 다소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이제까지 개최된 <강정대구현대미술제>의 진화 단계를 돌아보며 이런 아쉬움을 잠시 유보하고, 앞으로 미술계에 던져줄 신선한 충격을 기대해 보고자 한다. 강미정·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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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철 <세속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욕망은 진화한다> 2008

[Hot Art Space]

 

8월 25일부터 10월 19일까지 토탈미술관에서 열리는 <문타다스: 아시안 프로토콜전>은 안토니 문타다스의 첫 번째 한국 개인전이다. 이 전시에서는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의 큐레이터, 건축가 등과 벌인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50여 개의 키워드를 각국의 문화, 사회, 정치 등의 상황과 관련지어 재조합한 사료와 공/사적 공간비교 등을 펼쳐낸다. 1942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문타다스는 다양한 환경 요소와 관련해 그 안에서의 소통과 관계, 공간의 문제 등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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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환 (2)

<사각지대 찾기>를 타이틀로 한 오인환의 개인전이 9월 4일부터 24일까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왼쪽)과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렸다.
권력의 감시망하에 놓인 개인이 그 권력으로부터 피하려는 몸짓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군대에서의 경험, 유니폼이라는 획일화된 규정에 놓인 이들의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상호감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CCTV가 각각의 전시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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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손 (2)

회화에서 출발해 사진, 설치, 출판 등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시도를 선보여온 작가 이태량의 개인전 <EXISTENCE and THOUGHT 2014>(9.10~23)가 갤러리 그림손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전동기의 힘으로 기계 장치가 움직이는 버전과 영상 버전으로 ‘언어를 대신하는 시각적 장치’를 새롭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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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 (1)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김성환의 개인전 <늘 거울 생활>이 8월 3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작가의 비디오, 드로잉, 설치 등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는 작품이 공간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내용을 담았다. 9월 1, 2일에는 신작 퍼포먼스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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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두 (1)

이청준의 소설과 김선두의 그림이 ‘고향’을 매개로 만났다. 이청준·김선두의 2인전 <고향읽기>가 9월 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열렸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두 작가의 깊은 우정이 문학과 미술의 콜라보레이션 전시로 승화 한 것이다. 친필 원고를 비롯한 이청준의 유품과 사진기록물이 소개되었고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김선두의 작품 40여 점이 선보였다. 특히 이청준의 소설 《눈길》의 내용을  장지에 그려 만든 병풍엔 두 예술가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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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트

故 이동엽의 회화와 이수종의 달항아리가 만나 일으키는 잔잔한 파동을 담은 전시 <백색숨결전>이 8월 21일부터 9월 19일까지 송아트갤러리에서 열렸다.
모든 물성을 걷어낸 백색을 공통분모로 하는 이 전시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것을 말하는 백색의 깊은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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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2)

권오상의 개인전 <Structure>가 9월 12일부터 11월 8일까지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신작<Masspatterns>와  <New Structure> 연작을 선보였는데 발견하기 힘든 실제의 오브제가 섞여 있다. 즉흥적으로 이뤄진 이 과정을 통해 ‘나’로서 구축되는 세계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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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 (2)

8월 29일부터 9월 28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전준호의 전시 타이틀은 <그의 거처>였다. 나무로 제작된 기도하는 해골상, 오브제 작업 <코는 왜 입 위에 있을까>, 영상작업 <묘향산관> 등이 출품되었다. 특히 <묘향산관>은 제5회 후쿠오카트리엔날레에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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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1)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수보드 굽타의 개인전이 8월 29일부터 10월 26일까지 새로 개관하는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에서, 9월 1일부터 10월 5일까지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상하이 전시에는 <이것은 분수가 아니다> 등이, 서울 전시에는 30여 점의 음식 페인팅 등이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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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현미서 (2)

9월 2일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초자연전>은 일견 미술이 과학을 만나는 양상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리경(사진) 조이수 박재영 김윤철 백정기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현장에서 설치한 작업으로 구성돼 있다. 자연에 반하는 기계 장치를 이용해 상상 속에서 가능했던 시각적 경험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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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1)

<70’s Renaissance 조각전>은 조각계 원로 초대전이다. 9월 1일부터 10월 5일까지 이브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전시에는 김경옥 김혜원 김효숙 민복진 백현옥 심정수 이정자 전뢰진이 출품했다. 구상조각에 초점을 맞춘 이 전시를 통해 우리 조각의 다른 단면을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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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아트 (1)

<평균적 고통>으로 명명된 이동욱의 개인전이 8월 23일부터 9월 12일까지 코너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작가는 폴리머클레이를 소재로 작은 인체를 구현한 작업을 꾸준히 해왔던 바, 이번 전시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동물인형에 붙어있던 가격표를 다른 오브제에 붙인 신작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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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생트

김하영의 개인전 <캐릭터 없는 캐릭터들>이 9월 3일부터 24일까지 갤러리 압생트에서 열렸다.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는 개성을 상실한 현대인을 관찰하고 유머와 아이러니를 섞은 작업을 선보였다. 이로써 몰개성적인 우리의 모습이 투명한 폴리에스터캔버스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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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유슬 (2)

라유슬의 개인전 <레가토(Legato)> (LIG 아트스페이스, 9.3~10.2)는 음과 음 사이를 이어서 연주하라는 음악용어에서 따왔다. 이는 유년기 음악과 친근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으로 캔버스는 끊어지지 않는 선과 면의 연속과 중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써 새로운 차원을 넘나드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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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류뱌다 (2)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조현아의 개인전 <Effaced>(8.22~9.21)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렸다. 작가는 영상, 설치, 사운드 작업을 통해 자신이 2년 전 출간한 소설에서 문자 ‘O’를 제외한 모두를 지워내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면서 수많은 이름이자 동시에 이름 없는 ‘O’의 유령들을 호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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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 (2)

고양이의 날(9월 9일)을 아는가? 1년 중 하루라도 길에서 태어나고 죽은 고양이의 생명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2009년부터 시작된 기념일이다. 갤러리 가비에서 이날을 기념해 <고양이, 섬을 걷다전>(9.5~14)이 열렸다. 고경원 김대영 박용준은 한국과 일본의 섬을 다니면서 촬영한 고양이 사진 40여 점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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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프 (1)

이형구의 개인전 <Measure>(갤러리 스케이프, 9.2~10.19)의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말(horse) 조련 도구와 같은 오브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들은 걷기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행적 행위가 갖는 무의식성과 의식적인 훈련 사이의 아이러니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이러한 장치들은 그러나 익숙해지면 자연스러운 행위를 하게끔 하는데 이는 존재의 방식을 바꾸는 의미로 치환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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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 (2)

스페이스 캔의 오래된 집 재생 프로젝트로 열리는 조소희의 개인전이다. 8월 27일부터 9월 30일까지 열린 이 전시에서 작가는 실이나 양초 등 유약한 재료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재료가 만들어내는 것은 오래된 집이라는 공간의 대기와 함께 빛과 그림자 등과 어우러져 또 다른 형태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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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9)

한국 현대미술의 전세대를 아우르는 주요 작가들의 전시 <한국현대미술: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8.29~9.28)이 중국 항저우 소재 삼상당대미술관(三尚当代美術館)에서 열렸다. 항저우는 남송(南宋)의 수도로 중국 전통미술의 중심지이자 베이징의 중앙미술학원과 함께 양대 미술대학으로 평가받는 중국미술학원이 있는 곳이다. 차이궈창, 황융핑 등 대표적인 중국 현대미술가도 이곳 출신이다. 전시가 열린 삼상당대미술관은 중국미술학원 미술관과 함께 항저우 미술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현지의 뜨거운 주목을 받은 이 전시에 한국 현대미술의 두 거장 백남준, 이우환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아타 유근택 홍경택 이세현 이용백 오윤석 권순관 김기라 박지혜 장종완이 참여했다. 전시 기획을 맡은 윤재갑 상하이 하오미술관 관장은 “항저우는 현대미술보다 전통미술의 벽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현대미술 작가 층이 두텁지 못하다. 이곳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선보인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오랫동안 다양한 실험이 축적된 한국 현대미술 작품들이 중국 미술계에 큰 자극을 줄 것”이라며 이번 전시의 중요성을 밝혔다. 항저우=이슬비 기자

[Special Feature] 광주비엔날레 2014 – 터전을 불태우라

터전을 불태우라

베일에 가려졌던 <제10회 광주비엔날레>(9.5~11.9)의 진면목이 드디어 공개됐다. 총감독 제시카 모건이 제시한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화두는 파괴와 생성. 그녀는 창조적인 생성을 위해선 기존의 제도와 관념, 체제, 규범을 과감히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습화된 모든 가치와 낡은 이념을 활활 불태워 없애버려야만 과거와 완전히 결별할 수 있다.
이런 의도에 걸맞게 출품작 90% 이상이 광주비엔날레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물량공세를 통한 이미지의 과잉과 무미건조한 스펙터클이 범람했던 과거 비엔날레와 확연히 구분되는 대목이다. 또한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미학적 정치학’이라는 측면에서 현대미술의 담론을 제시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과 사명감에서 한발 비켜 나 있는 듯하다. 대신 관람객의 순수한 감정에 호소하며 진지한 시각으로 작품 읽기를 유도한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비엔날레가 전시 주제처럼 원점으로 돌아가 미술계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는지 그 여부는 단언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기존 제도에 저항하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실험적인 장으로 그 기능과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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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골드스타인 <불타는 창문> 혼합재료 1977

어두운 방 안 창문 속 붉은빛은 집이 불타거나 창밖으로 불길이 번지는 인상을 준다. 이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보는 경험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1 (9)

후마 물지<분실물 취급소> 섬유유리 버팔로 가죽 방적사 2012

작가는 박제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인간 형상에 가까운 몸을 만들어냈다. 정권의 억압 하에 실종되었다가 훗날 사체로 발견된 사람들을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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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리아 파커 <어둠의 심장> 숯, 철사 2004

삼림 관리를 위한 불 놓기가 오히려 산불로 번져 숲을 태운 미국 플로리다의 사건 현장에서 가져온 나무 잔해로 설치작업을 구성했다.

1 (4)

제인 알렉산더 <심포지엄> 설치 2014

기존의 개별 작품 56점이 모여 연출된 거대한 장면은 다양한 권력구조에 의해 국가통제 시스템이 붕괴 위험에 처한 풍경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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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다 파하르도 <교차로>(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 2003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를 반추한 작품으로 미국이 점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타협하지 않은 필리핀의 대안적 역사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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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바수알도 <섬>(내부 모습) 혼합재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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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바수알도 <섬>(외부모습) 혼합재료 2009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역사적 지역인 산 텔모에서 불탄 한 건물의 잔해물을 추려서 작은 규모로 구축한 집이다.
집 안에는 작가가 발견하거나 만든 오브제들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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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키엔홀츠 & 낸시 레딘 키엔홀츠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 혼합재료 1985

국가권력에 관한 알레고리로서 이 작품은 공포와 선동의 잠식 효과를 역설하며 거꾸로 뒤집힌 혼돈의 세계를 묘사한다.

[Special Feature] 광주비엔날레 2014 – 냉정과 열정 사이, 차갑고도 뜨거운

정현  미술비평

한 해 걸러 비엔날레가 다가올 때마다 나는 처음으로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기억에 취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비엔날레를 떠올리면 마음이 심란해지기 일쑤다. 생각해보면 1990년대 비엔날레를 관람한다는 것이 특권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고 한국에서 세계적 작가들의 작업을 보는 쾌감도 남달랐다. 세계화를 표방한 문화 정책에 의해 설립된 광주비엔날레는 한국을 넘어 다른 세계, 문화,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가 문화 제도화의 밑그림을 그리던 시기였다면 2000년 이후 미술계는 본격적인 세계화의 좌표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양적으로 팽창한 미술계는 금융자본 붕괴 이후 정체기를 맞이했다. 21세기 이후 아시아를 비롯한 비서구권 국가들이 경쟁하듯 비엔날레를 창설한 이후부터 비엔날레는 세계 문화지형도를 움직이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고 이른바 ‘미학적 정치학’이 전개되는 거점이 되었다. 이 같은 국제적인 행사가 주는 긍정적인 긴장감은 나를 여전히 흥분시키지만, 언제부턴가 비엔날레를 통해 ‘미술’을 감상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되어버렸다. 2014년 가을, 또다시 비엔날레의 계절이 돌아왔다. 비엔날레 현장을 방문하기 전부터 호기심만큼이나 피로함도 함께 찾아왔다. 비평가는 늘 현장에 있지만 제대로 즐기기는 어려운 직업이다. 이해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은 언제나 어렵고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예술감독 제시카 모건의 말을 빌리자면,   <터전을 불태우라>는 1980년대 초 미국 팝그룹 토킹 헤즈의 노래 제목으로 미국 중산층의 불안을 담은 송가처럼 불렸다고 한다. 여기서   ‘불태우다’의 의미를 활활 타오르는 환희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은유한다고 설명한다. 막상 전시의 문을 열자 의견이 엇갈린다. 전시 주제를 일차원적으로 재현했다는 의견과 역대 최고의 비엔날레였다는 평가가 오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에게 <터전을 불태우라>는 오랜만에 비평가의 입장이 아닌 전시를 즐기는 한 명의 관객 입장에서 포만감을 느낀 전시였다. 무엇보다 이번 비엔날레는 이해하기가 쉽다. 이해의 용이함이 깊이의 부족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동시대를 사는 다수가 이미 전제된 전시의 의미 혹은 개념에 의지하지 않고 작품들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의미의 맥락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것은 사유의 특별함보다 공통점에 무게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올해 비엔날레는 웅장한 스펙터클을 선사하지도 않고 미술제도나 사회문제를 개념적으로 비틀지도 않는다.
전시는 장편 소설을 공간 안에 옮겨놓은 듯 사건을 목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개막 식전 행사에 선보인 임민욱의 퍼포먼스는 전시의 프롤로그가 되어 잊힌 역사적 사건을 현재로 이동시켜 기억의 반대편으로 우리의 의식을 이동시킨다.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불타오르는 빨간 창(잭 골드스타인, <불타는 창문>(1977)이 놓여 있고, 곧바로 이불의 초기 퍼포먼스 영상과 오브제 작업이 관객을 기다린다. 혹자는 전시 주제를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재현한다고 비판하지만,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전문인과 대중 사이를 가로막는 지식이나 경험의 장벽이 어느 정도 허물어진 상태다. ‘빨간 창’이 주제에 대한 직접적 재현일 수 있으나, 입구에서 맞닥뜨린 강렬한 이미지의 충격은 관객을 사건의 목격자로 만들기도 하고 폭력에 의한 사회적 불안을 은유하기도 한다.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이야기의 시작은 이처럼 불이 타오르고 있는 사건이 벌어진 시점에서 출발하지만 도입부를 지나면 사건 이후의 외상, 폭력의 전조, 터전을 잃어버린 이후의 잔해가 놓인 공간을 가로질러야만 한다. 이상이 1부(제1, 2전시실)의 이야기라면 2부(제 3, 4전시실)는 마치 초현실주의 소설처럼 실재와 환상, 재현된 현실과 개념적으로 설정된 예술작업이 기이하게 조우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모든 게 소진된 곳에서 음악이 흐르고 폐허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윤곽을 그린다(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 <M.2062(피츠카랄도)>(2014)) 희망을 향한 기대는 미약하게 나타나지만 그 공명은 깊다.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오직 한 방향으로만 페이지를 넘기듯 <터전을 불태우라>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동선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다원성을 지향하는 최근의 전시 공간 디자인 경향과 달리 복고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방식이 되레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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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지날리니 무케르지 <수목생성> 대마 금속 프레임 1991~1992 작가는 인도의 전통 조각에 뿌리를 두고 금속 프레임에 대마 섬유를 공들여 엮으면서도 인도 안팍에서 논의되고 있는 예술, 공예, 모더니즘의 적용 방식을 해체한다.

사건을 목격하는 관객
남겨진 주검의 잔해들로 채워진 컨테이너 박스 두 개가 비엔날레 광장 앞에 놓여 있다. 그것은 말이 없다. 임민욱의 <내비게이션 ID>   (2014)는 한국전의 비극이 만들어낸 악몽 같은 현실의 일부를 꺼낸 작업이다. 사건은 발단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원, 형무소 재소사 등 인민군 부역혐의를 받은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그중 진주와 경산에 거주하는 민간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유해와 유골은 오늘까지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돼 있고, 학살된 사람들의 가족은 죽음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현실이라 믿기엔 너무도 초현실적인 현장이 우리의 일상 안에 버젓이 버티고 서 있지만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은 그저 강 건너 불 구경꾼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주검을 보관한 컨테이너 박스를 광주로 옮기는 과정을 헬리콥터에서 촬영해 생방송으로 전송하고 희생자 가족들은 비엔날레 광장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내비게이션 ID>는 폭력의 희생자들을 현재형 시점으로 호출해 비극적 오디세이의 상황을 제시하는데, 이는 과거를 현재로 전환하는 통과의례가 된다.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선동적 표제가 지시하듯 전시는 희망이 소진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외상을 건드린다. 비엔날레 전시관 내외부에 설치된 스털링 루비의 <난로>(2014)에서 나오는 연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폭력, 학살, 억압이 자행되고 있다는 상징이 된다. 제1, 2전시장은 국가, 자본, 산업화, 물질주의 등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의 현장을 재연하는 대신 일상 속에 은밀하게 배어있는 폭력을 시사하고 있다.
어쩌면 폭력이 자행되는 장면보다 증상, 징후, 잔해같이 보이지 않는 폭력이 일상 안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 더욱 큰 공포로 다가온다. 파키스탄 작가 후마 물지의 조각 <분실물 취급소>(2012)는 국가 폭력에 의해 실종된 사람을 연상시키고 데쓰야 이시다는 기계나 부속품들로 결합된 인간의 형상을 통해 폭력에 의한 외상의 징후를 시각화한다. 회화 속 인물들은 영화 <모던타임즈>의 채플린과 다르지 않다. 터키 작가 바누 제네토글루는 한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증류주인 소주의 인류학적 궤적을 추적한 후 그가 직접 모은 다양한 소주를 시음할 수 있는 바를 제공한다. 이른바 한국 소주 지도를 그린 셈인데 바슐라르가 언급한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성질을 갖고 있는 술을 통해 초국가적 사유를 펼친다. 브라질 작가 레나타 루카스의 <불편한 이방인이 될 때까지>
(2014)는 비엔날레 전시관 벽을 부숴 건너편 아파트를 향한 새로운 창문을 만들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비엔날레 제도 안에 개입한다. 전시장 초입의 <불타는 창문>과 대칭을 이루는 작업이다.
스위스 작가 우르스 피셔는 자신의 뉴욕 아파트 내부를 1:1 사진으로 재현한 공간 내부에 피에르 위그, 조지 콘도, 도모코 요네다 등의 작업을 개입시켰다. 이러한 개입의 방식은 이중적으로 표출된다. 우선 재현된 피셔의 아파트 내부, 다시 재현된 아파트 내부에 걸려 있는 예술작품, 실재를 재현한 공간 안을 점유하고 있는 타인의 작업들은 삶, 일상, 진짜와 가짜 등이 혼재한다. 이처럼 제3전시장은 피셔의 아파트 공간 내부와 외부로 분리되는데, 외부는 사회적 비평을 내포한 작업들로, 내부는 팝적인 요소로 가득 찬 유쾌하고도 괴상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4전시장은 현실과 허구, 실재와 환영이 교차하고 성정체성의 질서를 묻는 다소 원론적인 젠더 이슈와 게이 운동에 관한 작업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벨기에 작가 카르슈텐 휠러의 <미닫이 문>(2003)은 미래주의 영화에 등장할 것같은 자동 거울 문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제시한다. 복도이자 방인 정체성이 모호한 이 공간은 브루스 나우만의 복도 작업과 댄 그레이엄의 거울 작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모호한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곳곳에 포진해 있다. 김성환의 <게이조의 여름-1937의 기록>(2007), 올라퍼 엘리아슨의     <밤 없는 여름, 낮 없는 겨울>(1994), 특히 므리날리니 무케르지의 <수목생성>(1991~1992)은 금속 프레임에 대마 섬유를 엮어 만든 공예적 조각으로 남녀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식물을 형상화한다. 젠더 정치학의 시선은 이데올로기의 견고함을 부수기 위한 큐레이팅의 묘수로 보인다. 전시의 끝부분이 되자 타오르던 불꽃도 소진된다. 전시장 전체를 횡단하던 엘 울티모 그리토의 벽지 <미장센>(2014) 속 불꽃과 연기 패턴도 사라진다. 곤잘레스 포에스터는 축음기를 들고 있는 홀로그램 환영이 되어 어둠 속에 서있다. 이미지는 죽음을 대신하는데, 이미지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엘레지처럼 들린다. <터전을 불태우라>는 극단적인 작업들과 냉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무엇’을 대하는 따스함이 전시를 관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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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스털링 루비 <난로> 청동 주물 2014 파괴와 부활에 대해 개념적으로 다가가는 이 작품은 ‘터전을 불태우라’는 비엔날레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4개의 대형 난로가 전시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Special Feature] 광주비엔날레 2014 – 터전을 불태우라, 살아있는 무대

배은아  독립 큐레이터  

<터전을 불태우라>는 문자 그대로 불태움과 변형, 말소와 혁신, 구속과 투쟁, 소비와 소외, 상실과 회복, 젠더와 성정치, 실재와 가상, 도시와 이민 등 사회적 규범들과 예술의 관계 속에 나타나는 저항과 도약의 이미지들로 꽉 차있다. ‘불’과 ‘집’, 그리고 ‘태우다’라는 반복되는 주제를 통해 부각되는 문화 정체성, 다양한 문화권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의 반복과 재구성, 과거 작품의 재생과 기존 작품의 해체와 재조합, 그리고 미술관 전체를 관통하는 안무적 디스플레이는 개별 작품이 수행하는 각각의 욕망과 욕구를 ‘재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머물게 하지 않고 ‘가능성의 지평’으로 확장시킨다. 이러한 전시 맥락 안에서 퍼포먼스는 과거와 현재, 정립과 반정립, 체제와 반체제의 혁명적 잠재력을 체화(體化)하면서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해 사회적 정치적 역동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5개의 전시 공간은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상호 소통하면서 터전을 불태우라는 대주제 아래에서 통합된다. 각 전시장의 입구와 출구에는 경계를 넘어서는 행위를 확장시키는 설치, 사운드 혹은 퍼포먼스와 같은 장치가 배치되는데, 이들은 관객의 기존 관람방식에 개입하면서 몸의 물리적 자극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시대성에 집중하도록 한다. 알로라 & 칼사디야의 <음계(기질)와 늑대>는 정렬된 20인의 인위적인 환대의 제스처를 통해 전시장 입구를 차단함과 동시에 경계를 넘어서는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영역을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확보한다. 우르스 피셔의 아파트를 재현한 건축물 <38 E. 1st St.>의 입구에 배치된 피에르 위그의 <네임 아나운서>는 입장하는 관객의 이름을 실내로 호명하면서 안과 밖의 경계를 확장한다. 호명된 이름은 건축물 내부를 뒤덮은 3D 디지털 프린트 벽지의 스타일리시한 인테리어와 그 안에 애매하게 배치된 뜬금없는 예술작품들과 어색한 혹은 불편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수행력(performativity)은 퍼포먼스가 아닌 조각과 설치, 회화를 통해서도 획득된다. 제1 전시장 출구에 설치된 구정아의 <그것의 영혼>은 흔들리는 벽을 통해 출구의 위태로움을 경험하게 하며, 제2 전시장 입구의 피오트르 우클란스키의 <무제(크게 벌려)>는 마치 목젖을 통해 인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흡입력을 느끼게 한다. 제4 전시장의 출구에 설치된 카르슈텐 횔러의 <일곱 개의 미닫이문>은 입구의 <음계(늑대)와 기질>에 대한 답변으로 무한 반복되는 출구와 입구의 운동성과 함께 유년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본전시에서 퍼포먼스는 역사의 허구성을 표출하고 사회적 규범을 비판하면서 과거의 순간과 운동, 작품, 사건을 현재진행형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일본작가 에이 아라카와와 한국 공연기획자 임인자는 아스팔트라는 가상의 광주지역 극단을 창립하고 1980년대 독재정권의 억압 시대에 활동한 연극 집단의 인물들을 재조명한다. 레나타 루카스의 아파트 창문 <불편한 이방인이 될 때까지> 앞 횡 한 광장에서 펼쳐지는 홍영인의 <5100:     >은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록물에서 발췌한 이미지들을 동시대의 움직임으로 안무한다. 로만 온닥의 <시계태엽장치>는 시간과 관객의 관계를 공간 속에 육화(肉化)하고 그 흔적을 축적한다. 관객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시간의 감옥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감금된 채 사라져간 수많은 희생자의 억압된 삶을 떠올린다. 미술관의 구조적 개입을 통해 완성되는 옥인콜렉티브의 <작전명: 님과 노래를 위하여>는 미술관 방송시스템을 점유하며 비상사태의 순간에 폐체조(肺體操)를 준비하는 역설적인 작전을 제시한다.
개막 기간에 선보인 세실리아 벵골레아 & 프랑수아 세뇨와 정금형의 도발적인 안무는 본전시가 꿈꾸는 쾌락적이고 유희적이면서 급진적인 사건의 소용돌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댄 플레빈의 붉은 네온 라이트 <매복으로 사망한 이들을 위한 기념비(내게 죽음을 상기시켜준 P. K.에게> 앞에서 공연된 벵골레아 & 세뇨의 <실피데스>는 신화 속 공기의 요정을 연기한다. 검정 라텍스 주머니에서 잉태된 요정들은 삶과 죽음, 환상과 실재, 그리고 가능과 불가능성의 관계를 재구성하면서 몸이 가지고 있는 현전성을 부각시킨다. 정금형의 <심폐소생술 연습>은 바닥에 누워있는 연습용 마네킹과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움직임을 통해 사물에 존재성을 부여하고, 죽음으로 인해 인간의 존재성을 획득하는 역학관계를 드러낸다.
<터전을 불태우라>에서 퍼포먼스는 전시 디스플레이의 새로운 방법론 그리고 시각예술의 한 매체로서 몸과 정체성, 움직임과 정치성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되었다. 현대미술에서 퍼포먼스는 더 이상 스스로의 정체성에 만족하지 않고 주변의 것들과 관계하면서 오히려 이를 전복하고자 한다. 퍼포먼스를 포함한 400여 점의 작품은 전시장을 감싸는 검붉은 연기, 꿈틀꿈틀 앞으로 기어 나오는 문어,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난로, 그리고 쉴 곳을 잃은 유골들의 컨테이너와 함께 살아있는 무대를 연출한다. 문화사가 하비 파커슨이 말했듯이 근대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변화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터전을 불태우라>는 경직된 사고와 고정된 관점을 불태우고 여전히 반복되는 역사 속에 사라진 저항정신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다. 이 모험이 지금 여기에서 다시 출발한다. ●

2 (3)

로버트 하이네켄 <뉴스 아메리카에서 깨어나다> 복합재료 1986

작은 방으로 꾸며진 전시장 안에는 뉴스 이미지가 모든 면에 도배되어 있다. 마네킹은 뉴스를 보면서 보이고 들리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미국 시민을 의인화한다.

2 (21)

겅지안이 <쓸모없는> 혼합재료 2004

지인들에게 쓸모없는 물건을 받아 그 이유를 메모로 붙이고 물건들을 기능별로 분류해서 체계적으로 배치했다. 중국의 물질문화에 대해 사회적으로 고찰한 작품이다.

3 (9)

레나타 루카스 <불편한 이방인이 될 때까지> 2014

비엔날레 전시관 남측 파사드에 맞은 편에 보이는 아파트 창문을 재현했다. 한국 사회의 획일화된 주거환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4 (5)

에이 아라카와 & 임인자 <비영웅극장(극회 광대, 놀이패 신명, 극단 토박이, 가상극단 아스팔트의 극중인물 연구> 설치 2014

두 작가는 1980년대 시민들의 저항의식을 고취시키는 극을 상영한 극단들을 토대로 제3의 가상 극단을 만들고 주목받지 못했던 다양한 인물 군상을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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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협력큐레이터 에밀리아노 발데스(Emiliano Valdes)

  “이번 비엔날레의 도전은 젊은 작가,  새로운 작업”

EMILIANO 2이번 전시에 참여하기 전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개인적인 소개를 부탁한다.
과테말라 출신으로 런던과 메데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콜롬비아 메데인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수석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5년 넘게 과테말라 소재 스페인문화센터(Centro Cultural de España)에서 비주얼아트의 큐레이터이자 책임자로 일했으며, <도큐멘터 13(dOCUMENTA13)>와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the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현재 《컨템포러리 매거진》을 발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식의 형태, 공공 프로그램 생산, 예술과 문화, 그리고 자연환경 사이의 관계에서 예술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소감을 말해달라. 광주비엔날레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전시에 함께 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헌신적이고, 열정적이며, 전문적인 팀과 같이 일하게 된 것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비엔날레가 해마다 성장하고 전문적으로 변화해갈 뿐만 아니라, 이전에 행해졌던 비엔날레와 같이 획기적인 전시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제시카 모건과 함께 일하면서 일하는 스타일, 전시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
제시카는 매우 기민하고, 영특하며, 철저한 큐레이터다. 그녀와 함께 일한 것은 영광이었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인상깊은 에피소드를 말해달라.
이번 비엔날레의 도전은 대규모의 연구, 제작 지원, 향후 설치가 요구되는 많은 수의 새로운 커미션 작업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놀랍도록 전문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하면서 우리는 작품들이 최고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힘써야 했다.
이번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이나,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의 작업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전시에 참가한 젊은 작가와 중견 작가들은 (비록 이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진 않을지라도) 개인으로서 또는 그룹으로서, 모두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다시 쓰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예리하며, 사려 깊고, 유능한 작가들이다. 그들을 알게 되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리서치 과정 역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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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큐레이터 파토스 우스텍(Fatos Usteck) 

 “동시대 한국미술의 토대를 들여다본 보기 드문 기회”

FatosUstek이번 전시에 참여하기 전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개인적인 소개를 부탁한다.
이스탄불 출신으로 현재 런던을 중심으로 독립큐레이터이자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웨덴의 린코핑 대학에 출강하고 있으며 작가   퍼 휴트너(Per Hüttner)와 함께 2015년 봄 개관하는 스톡홀름 노벨 뮤지엄(Nobel Museum)을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또한 2016년에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열릴 그룹전 준비를 하고 있다. AICA Tr의 멤버이며, 국제적인 미술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현대미술잡지 《Nowiswere》을 창간해 필진으로 일했다.
협렵 큐레이터라는 개념이 모호하다. 이번 전시에서 당신이 진행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 부탁한다.
나와 에밀리아노 발데스는 전시 준비 초기단계부터 협력큐레이터로 참여했으며, 배은아 씨는 올해 초 진행 도중에 합류했다. 우리의 역할은 다양한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이었는데, 작가 리서치를 하는 것부터 제작 과정을 확인하고 기금 지원서를 작성하고, 예산 범위를 설정하고 대출 목록을 작성하는 일 등이었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말해달라.
전시 콘셉트를 정하는 과정에 작가 리서치 기간을 여유있게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자료에 접근하면서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왜냐하면 영어로 번역된 출판물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좀 더 심도 있는  정보를 얻고 리서치를 풍부하게 하기위해 많은 큐레이터와 역사학자와 대화도 많이 나눴다.
이번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이나,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한국 예술신이 젊고, 드라마틱하며, 다양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상에 대한 개념적인 관찰뿐 아니라 미디어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예술적인 흐름이 존재한다. 동시대 한국미술의 토대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한국내의 미술흐름과 공예의 역사를 배우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우리는 큐레이팅 리서치 내내, 세대 구분없이 다양한 예술가들을 탐험하고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이러한 예술신도 미술시장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시장의 요구안에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예술가가 많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나는 비엔날레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으며, 이들 대부분이 1970~1980년대를 관통하는 역사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슬비기자

[Exhibition Topic]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4

Ghosts, Spies, and Grandmothers

올해로 8번째를 맞이한 <SeMA 미디어시티서울2014>(9.2~11.23)는 미디어라는 매체보다는
주제를 강조한다. 아시아에 대해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과연 아시아란 하나로 답할 수 있는 개념인가?
전시 제목이기도 한 ‘귀신 간첩 할머니’를 통해 해독해야 할 주술, 암호, 방언과 기억해야 할 섬과 산 같은 장소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 모호해진 아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귀신이 없어진다

강홍구  작가

청탁을 받아 이글을 쓰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글을 쓰는 데 적격자가 아니다. 우선 비엔날레 종류의 미술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국내외 여러 비엔날레를 보고, 참여도 해보고 내린 결론은 그렇다. 비엔날레라는 이름의 전시는 대개 거창한 주제를 내걸고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모아 보여준다. 돈도 많이 쓴다. 그걸 다 집중해서 관심 있게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애초에 관객이 전시를 어떻게 잘 보느냐에 큰 관심이 없다. 몇 명이 오느냐에는 관심이 있지만. 그래서 보고나면 화가 나거나 다리가 몹시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행히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는 규모와 짜임새 면에서 그렇지는 않았다.
다음으로는 전시의 제목 때문이다.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말을 들으면 내 정서와 감각 등은 섬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버린다. 신안군의 작은 섬인 내 고향은 곳곳이 귀신 나는 곳이고 도처가 죽은 자들이 묻혀있던 곳이었다. 집마다 있던 성주, 조앙 등의 집안 귀신들 말고도 일종의 동네 귀신으로 탱자나무 길 아래 차일 귀신, 터진목에 애장터의 애기 귀신에다 뻘밭에는 도깨비들이 있었다. 그리고 해당화 피던 모래밭에는 6.25 때 철사에 손이 묶여 죽은 사람들이 영광에서 떼로 떠밀려와 묻혀 있다고 했다. 바닷가에서 보았던 사람의 두개골은 돌을 던져도 잘 깨지지 않고 단단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넋을 건지는 굿이 바닷가에서 가끔 벌어졌고, 육탈을 기다리는 빛 바랜 초분이 밭 귀퉁이나 야산에 웅크리고 있었고, 어둡고 축축한 여름밤에는 안개 속에 도깨비불이 날았다.
귀신들을 잘 보고 만나는 사람들은 할머니들이었다. 밭 매고 집에 오다 보고, 날이 흐릿하고 빗기 품은 바람이 불 때 동네 고삿길에서 보고, 바닷가에 갯것하러 갔다 만났다. 간첩도 마찬가지였다. 섬 뒤로 펼쳐진 서해 바다가 간첩들이 드나드는 통로였다. 특히 바로 옆인 임자도에서 일어난 간첩단 사건은 초등학교 시절 우리의 삶을 바꿔 놓았다. 조그만 섬에 전투경찰대 일개 소대 정도가 참호를 파고 몇 해 동안 주둔했던 것이다.
이 따위 경험들은 물론 전시와 직접 상관은 없다. 하지만 ‘귀신과 할머니와 간첩’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정서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린다. 일종의 병적 고착이다.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쓰는 데 적격자가 못된다. 전시 제목만 들어도 어릴 적에 보던 서늘하고 으스스하지만 이상하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고 싶은 상엿집 분위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좋은 전시란 그럴 만한 질문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귀신, 간첩, 할머니>는 언젠가 던져야할 좋은 물음이고 있어야만 할 전시였다. 주제를 중심으로 한 전시의 짜임은 불필요한 오버 없이 담담했고 동선도 큰 무리는 없었다. 전체를 둘러보고난 인상은 애초의 기대와는 달랐다. 상엿집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전시 제목인 세 단어가 만나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를 보고 싶었는데 그건 없었다. 그러니까 전시 전체의 구성이 병렬적이었고 그것이 전시 전체의 의도였던 것도 같다.
좋은 작품이란 역시 일종의 질문이다. 답이 아니다. 하지만 비엔날레나 그룹전의 어려움은 작가들이 질문에 대해 답을 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발생한다. 이 전시도 일부는 그러했다. 예를 들면 여러 사람이 언급한 양혜규의 작업은 내가 보기엔 그 깔끔함과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잘 쓴 답처럼 보였다. 양혜규의 작업은 평소에 해오던 작품의 무속적 변주이다. 양혜규의 작품들은 대개 무언가를 모으고, 움직이게 하고, 이동 가능하도록 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방울이라는 소재를 모으고,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고, 수동으로도 돌릴 수 있게 만들었다. 때문에 무속용 소도구인 방울을 이용한 잘 다듬어진 작업 그 이상 어떤 것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정보과잉 상태의 작품들에 관해서다. 그런 작품들은 거의 관습적으로 입체, 설치, 영상, 텍스트, 드로잉을 한 묶음으로 공간에 모아 동어반복 상태를 만든다. 물론 그 사이에 매체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말이 되풀이될 때 반복적 공허함도 매체에 따른 점층적 효과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메인 작품을 위한 장식으로 보인다. 때문에 오히려 작업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만다.
다른 하나는 일부 작품들이 가지는 약간 과도한 계몽적 태도이다. 나는 이것을 알고, 조사했고 작업했기 때문에 당신들도 알아야 한다는 강박증은 보는 사람의 피로도를 높인다. 물론 전시 주제의 영향도 있겠지만 정보와, 계몽과, 예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예민한 재고가 필요해 보였다.

쑤 위시엔  비디오(21분8초)와 설치 2013

쑤 위시엔 <화산치앙> 비디오(21분8초)와 설치 2013

김수남  연작 중에서 함경도 망묵굿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아카이브용 피그먼트 인화 40×58cm 1981

김수남 <한국의 굿: 만신들 1978-1997> 연작 중에서 함경도 망묵굿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아카이브용 피그먼트 인화 40×58cm 1981

불편함이 핵심이다
나는 미술관에서 비디오나 영상작업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상 하나만 보아도 힘든데 그걸 연속 본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흥미 있었던 것은 영상들이었다. 여러 개가 있지만 몇 개만 들자.
우선 베트남 프로펠러 그룹의 <쿠치의 게릴라들>이 그렇다. 내용은 간단하다. 베트남 호치민시 외곽에 쿠치터널이라는 지하터널이 있다. 쿠치터널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과 싸우기 위해 복잡하게 판 이른바 땅굴이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곳에서 요즘 서구의 관광객들이 총알 한 발에 1달러를 내고 AK47이나 M16을 쏜다. 특별한 연출도 없는 다큐멘터리이다. 모든 장면은 슬로 비디오로 상영된다. 관광객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총을 쏘고 그것을 잡는 카메라의 위치는 총구의 정면이다. 물론 방탄유리 뒤라고는 하지만 뭔가 불안한 느낌이 좀 든다. 그리고 낄낄거리며 웃고 총을 쏘는 관광객과 베트남전 당시에 만든 선전영화 내레이션이 부딪치면서 지극히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든다. 어쩌면 전쟁이 끝나고 통일을 이뤘으니 전쟁터를 관광상품화하는 여유를 가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보는 내내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핵심이다.
다음은 에릭 보들레르의 일본 적군파를 다룬 <시게노부 메이와 시게노부 후사코, 아다치 마사오의 원정과 27년간 부재한 이미지> 라는 긴 제목의 다큐멘터리이다. 유감스럽게도 다큐가 너무 길어 다 보지는 못했지만 본 내용만으로도 지극히 인상적이었다. 다큐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영화와 테러가 유사하다고. 이는 물론 적군파 전투원인 에키타 유키코가 썼다는 “혁명의 시나리오는 영화 각본과 같은 식으로 쓰여 있어야만 한다”에서 따온 것이리라. 영화가 시나리오를 쓰고, 다시 검토하고 등장인물을 캐스팅하고, 스태프들을 모아서 촬영하듯이 테러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테러는 목표물을 정하고, 어떻게 작전을 펼칠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자금과 테러리스트들을 모은 뒤 실행한다. 물론 테러에 재촬영이란 없다. 그리고 피차의 목숨이 걸려있다. 섬뜩했다. 테러를 일종의 예술로 볼 수 있다는 시각 자체가 무섭다. 아니다. 이건 인간이 세상 모든 일을 해나가는 기본적인 태도다. 누구나 어떤 일을 할 때는 시나리오를 쓴다. 글로 쓰건 상상하건 꿈을 꾸건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시행한다. 대부분 성공하지는 못한다. 예술이란 어쩌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그래서 실패한 시나리오에 대한 보상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렇다. 그래서 테러에 대한, 테러리스트에 대한 다큐란 실패한 테러에 대한 만가(輓歌)이다. 젊은 시절 기사만 보아도 충격적이었던 적군파 사건이 수십 년이 지나 미술관 속에 들어왔다. 냉전, 혹은 열전의 일부였다고 간단히 말할 수도 있지만 여운은 간단치 않다.
다음으로는 미하일 카리카스의 <소리 내는 아이들>과 김인회를 비롯한 무속 연구가들의 굿을 기록한 영상물이다. <소리 내는 아이들>이라는 작업이 흥미를 끈 것은 살풍경한 배경과 아이들 사이의 기이한 대비도 대비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소리가 무당들의 무가와 겹쳤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노래하고 소리 지르는 과정들이 일종의 굿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속 연구가들이 기록한 굿은 내가 서울에 와서 보았던 퍼포먼스에 가까운 굿들보다는 훨씬 굿 같았다. 굿의 원형들이 담긴 비디오들은 상태가 나빴지만 매력적이었다. 물론 너무 많아 다 보지 못했다. 정말 필요해서 열리는 굿판과 행사로서의 굿 사이의 어마어마한 차이-그걸 아우라라고 해야 할지 절실함의 차이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렇다. 그리고 김수남의 사진뿐만 아니라 직접 연관이 없을지라도 이갑철의 신기어린 사진들과 육명심의 인상적인 무당 사진들이 같이 전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물론 전시장에서 만난 디렉터의 말처럼 굿 영상물과 사진과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래 몇 해 동안 고향인 신안군을 촬영하느라 섬을 돌았다. 섬에도 이제 귀신이 없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들도 더 이상 귀신을 보지 않는다. 산 속에서 나무를 하다가 친인척 누가 죽었다는 소리를 환청으로 듣던 할아버지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던 아이들도 없다. 귀신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즉 기억하고 호명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전시도 마찬가지다. 이름 부른 메아리가 얼마나 멀리 퍼질지는 알 수 없지만 아시아인의 식민지 경험과 냉전과 열전, 20세기에만 거의 1억 명 이상이 강제로 죽은 곳에서 그 피해자, 여성, 고통에 대한 질문은 당연히 지속되어야 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디렉터의 표현대로 그들이 보내는 주문과 암호와 방언은 마땅히 기억되고 해독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과도한 사명감이나 자신감, 혹은 이 전시와 상관없이 요즘 일부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죽은 자들을 이용하려는 태도는 마땅히 경계해야 하리라. 언젠가 거대한 규모의 넋 건지는 굿이 진도에서 벌어져야겠지만 그때도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산자의 부끄러움과 겸손함일 것이다.
참, 섬 주변에 간첩도 없는 것 같다. 배를 타고 북쪽에서 남쪽 섬까지 드나들었다는 그들의 소식도 끊긴 지 오래이다.●

프로펠러 그룹  비디오 20분4초 2012

프로펠러 그룹 <쿠치의 게릴라들> 비디오 20분4초 2012

필라 마타 듀폰트 (왼쪽) HD비디오 5분4초 2013 최진욱 와  각 캔버스에 아크릴 97×130cm 2000

필라 마타 듀폰트 <이상적인 포옹>(왼쪽) HD비디오 5분4초 2013 최진욱 <북한A>와 <북한B> 각 캔버스에 아크릴 97×130cm 2000

 

[Exhibition & Theme] The Art of ‘Dansaekhwa’

단색화(單色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근래 국제갤러리의 <단색화의 예술전>(8.28~9.19)와 우양미술관의 <고요한 울림전>(8.12~10.12) 등 단색화와 관련한 전시가 잇달아 열리면서 이를 두고 어떤 현상으로 파악하려는 의도가 이곳저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단색화’는 극대화된 모더니즘의 표상으로 여겨지면서 서구의 미니멀 회화나 일본의 모노하 등과 비교된다. 그러나 단색화는 동시대의 사회적 고민과 유리된 유미주의적 태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는다. 분명 시점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차이에 대해,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치열한 논의를 거쳤는가? 여기 두 필자가 각각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단색화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어본다.

단색화의 사회적 위치 또는 가치

홍지석  단국대 연구교수, 미술비평

이 글은 1970~80년대 한국 단색화(또는 모노크롬 회화)의 사회적 위치, 또는 가치를 비판적으로 재고해보려는 시도다. “비판적으로”라고 했지만 이 글은 당시의 단색화를 사회현실과 괴리된 것으로 간단히 내치는 접근을 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글은 단색화를 하나의 사례로 삼아 자율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라는 예술의 위치를 한국의 현실에서 반성적으로 숙고하는 작업이기를 희망한다.
주지하다시피 1970~80년대 단색화에 관한 사회적 관점에서의 비판은 ‘현실과의 괴리’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것이 “밖으로부터의 예술공간을 차단하여 고답적인 관념의 유희를 고집함으로써 진정한 자기 이웃의 현실을 소외, 격리시켜왔다”(현실과 발언 창립취지문)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의 단색화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이 “구상과는 별개의 것임”(이일)을 분명히 하면서 “표상과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하나의 독립된 실재”(이일)를 제기하려 했다. 또는 “세계를 비표상적으로 이해하는”(김복영) 작업으로 나아갔다. 여기에는 ‘현실’ 또는 ‘실재’에 대한 상이한 해석이 자리한다. 단색화를 현실과 괴리된 것으로 파악하는 사람에게 현실은 1970년대 또는 1980년대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뜻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화면에서 적극적으로 일루전을 제거하고 물성을 초극하려는 의지”     (오광수)로 표상되는 단색화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로부터 괴리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을 그와는 다르게 해석하는 관점이 있다. 가령 이일은 현실이 “단지 객관적 여건으로서 주어진 것으로만 그치지 않으며 필경은 주체적으로 체험되어야 할 하나의 세계”라고 본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 현실은 가장 ‘현실적인 것’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김열규를 인용하여 “관념, 개념, 또는 지식에 의해 가로막혀있지 않은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순수성”을 말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우리 자신에 의해 현실이라는 것에 뒤집어씌어진 가면을 벗긴 사물과의 만남”(이일)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1970년대의 단색화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원적 반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이데올로기는–그것이 지배 이데올로기든, 그에 반대하는 대항 이데올로기든–      “거대 주체가 부여한 허상 내지는 가상에 지나지 않는”(김복영) 것일 수 있다는 비판은 정당하다. 한국현대미술에서 우리가 목격해온 바, 자신이 지닌 신념, 이데올로기를 정의로운 것으로 단정하고 그러한 신념에 따라 악으로 간주된 것을 공격하면서 정작 자신의 신념,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색화(와 담색화 담론)가 비표상적 관점에서 제기한 표상(재현)에 대한 근본적 반성은 확실히 사회적으로 유의미하다. 하지만 이렇게 “사물을 표상으로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하면서 “사물로 복귀하는”(김복영) 접근은 또한 아도르노가 지적한 대로 “아무런 위험도 없게 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미리 주어진 것을 자신으로부터 배제하면 할수록” 거기에는 “지극히 빈곤한 것, 비명, 어쩔 도리 없는 무기력한 제스처”가 나타난다는 아도르노의 지적은 단색화의 역사적 전개, 특히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단색화 작업의 양상을 볼 때 설득력이 있다.

김기린 (사진 맨 왼쪽, 1977) (가운데 설치, 1980년대)

김기린 <Visible, Invisible>(사진 맨 왼쪽, 1977) <Inside, Outside>(가운데 설치, 1980년대)

현실과의 괴리? 가장 현실적인 것?
하지만 1970년대 당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그저 빈곤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김복영을 인용하면 그들이 자발적인 자기해체 또는 자기소멸을 통해 기도한 물성과의 만남은 “물성의 범자연적 결정체로서 모노크롬 회화를 성취하고 그로 하여금 자연의 권화를 갖게 함으로써 사회현실로부터의 억압에 맞서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이것은 예술이 억압적 사회현실에 맞서는 나름의 방식이다. 이 경우 “주체의 소멸 결과로서 얻게 된 범자연적 권위”(김복영)란 지배이데올로기에 굴종하지 않기 위해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독자적인 거처로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거처가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것이 되려면 거기에는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타의식이 전제되어야 하고 작품 자체의 긴장은 외부세계의 긴장에 대한 관계 속에서만 타당성을 지닌다는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1970~80년대 현실에서 많은 경우 단색화 제작과 담론은 지배이데올로기 내지는 사회와의 긴장 속에서 진행되기보다는 당대 한국 사회가 요구한 ‘전통’, ‘민족적 정체성’ 담론과 한데 얽혀 진행되었다. 이런 문맥에서 그것을 외견상 유사해 보이는 일본의 모노하나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구별하려는 작업이 진행됐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 한국의 단색화에 고유한 특성으로 상정된 비물질성, 정신성, 손맛(드로잉) 같은 자질들은 곧장 한국성, 동양성 담론과 연결되었다. 그렇게 일체의 의미가 소거된 텅빈 기표로서 단색화는 어떤 특정한 욕망들이 투사되는 스크린이 되었다. 물론 그 욕망들은 이데올로기와 무관할 수 없다. 가령 김영나의 표현을 빌리면 “결국 모노크롬 미술은 이제까지의 서양미술 추종일변도에서 좀 더 동양적인 과묵한 색채와 뉘앙스, 극소의 표현을 통해 전통문화에서 자연관, 정신성, 수묵회화, 자기 수양, 문인화의 전통을 계속했고 이것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되었다. 또한 미네무라 도시아키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무엇을 한국의 아이덴티티로 삼을 수 있으며 또 그런 회화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란 물음에 답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과”다. 1970년대의 작가들에 김환기를 더하여 “김환기, 이우환의 청색과 백색 여백, 그리고 이동엽의 백색공간, 그것은 학의 날갯짓과 선비의 욕망 자체이다”(윤익영)는 식의 서술이 가능하게 된 이유다.
일체의 허상 내지는 가상에 대한 거부에서 사물로 복귀한다는 단색화의 한 귀결이 한국성, 또는 동양성 담론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 이데올로기와의 결합이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 결합을 통해 단색화는 많은 것을 얻었다. 특히 그 결합을 통해 단색화는 사회적인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것, 공개적으로 상찬될 만한 것이 되었다. 물론 그 결합은 애초의 단색화 작업이 갖는 사회비판적 계기를 상당 부분 거세하는 결과를 빚었다. “서구의 물질문명에 반하는 동양적, 또는 한국적 정신성의 회복”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유의미한 비판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적인 것, 동양적인 것이 됨으로써 단색화(그리고 단색화를 제작하는 행위)가 어떤 유토피아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앞서 김영나의 발언 곧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단색화는 단절이 극복된 어떤 유토피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다시 아도르노를 인용하면 “유토피아를 가상이나 위안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예술이 유토피아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또한 “예술은 화해의 가상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화해되지 않은 것 가운데에서도 화해를 견지한다”(아도르노)고 했다. 지금 “우리 고유의 자연관과 사유에 입각한 정신의 세계를 회화 평면을 매개로 육화하는 작업”(윤진섭)으로 설명되는 단색화가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1970년대의 단색화 작업이 “물상화되고 소외된 닫혀진 자기완결 세계”에 대한 비판(이우환)에 기초해 장소의 열림을 지향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자기의 대상성을 투명하게 하는 존재”(이우환)의 등장은 그것이 처음 등장한 시점에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거짓된 것으로 부정하는 비판의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지워버린 깨끗한 텅 빈 화면은 곧 갖가지 욕망(그 가운데는 화가 자신의 세속적 욕망이 포함될 것이다)이 투사되는 스크린이 되었고 욕망들은 그 깨끗한 것을 오염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1970~80년대의 단색화는 사회적으로 역설적이다. 어쩌면 단색화의 사회적 의의란 그 역설을 우리 앞에 생각할 거리로 던져주었다는 점에 있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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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모노톤아트(Korean Monotone Art)를 다시 말하며

김미경  한국예술연구소KARI 대표, 강남대 교수

최근 국내외에서 ‘단색화(Dansaekhwa)’라는 이름으로 한국 ‘모노톤아트(Monotone Art)’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 이제 정말 그것은 국제화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미술시장만 뜨거워질 뿐 정작 그것을 촉발해 온 연구 담론은 뒷방 신세가 된 것 같다. 한국현대미술을 사랑하고 연구해 온 연구자로서는 자본주의 미술시장의 논리 앞에서 왠지 허탈감을 느끼며 담론 없는 국제화 현상은 곧 사그러들 수밖에 없음을 우려하게 된다. 필자는 20여 년 전 소논문 <한국의 실험미술-AG를 중심으로>에서부터 서구 미술에서 고유명사화되지 않은 음악적 용어인 ‘모노톤’을 사용해왔고, 박사논문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사회>에서나 지난 4월 뉴욕근대미술관(MoMA)에서 한 전문가 특강에서 큰 공감을 얻었던 바, 그 용어를 사용하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김미경, <한국의 실험미술-AG를 중심으로> 1998,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사회> 2000,
《   Re-reading Korean Contemporary Art》  2014) ‘모노톤아트’를 번역하면 ‘단색조(單色調) 예술’이다. 이 ‘조(調)’자가 있고 없고에 따라 의미가 엄청나게 달라지며 미술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도 모노톤과 모노크롬(Monochrome)은 매우 다른 맥락을 이룬다.
1975년 5월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白)전(韓國 五人の作家五つのヒンセク白展)>은 근본적으로 임진왜란의 역사가 말해주는 일본의 조선 침략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백자 사랑을 상기시키는 ‘일본인의 시각’이 깔린 전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마모토 다카시라는 일본의 화랑주가 시도했던 이 최초의 공식적인 한국 모노톤아트 전시에 일본 식민주의의 역사가 잠재되어 있음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김미경, <素-素藝로 다시 읽는 한국 단색조 회화> 2002,《  한국현대미술자료 약사(1960-1979)-정치 경제 사회와 함께 보는 한국현대미술》 2003) 물론 식민 지배가 끝난 이후 30년 만에 부활한 일본인의 조선에 대한 태도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야마모토는 광복 전 함경도 청진에서 일본군으로 주둔했으며 초등학교만 졸업했을 뿐이지만 골동상으로서 조선의 골동품에 대한 안목이 높은 인물이었다.     (이우환, 김미경 2002년 인터뷰) 문제는 모노톤아트의 기원이 되어버린 일본 전시를 역사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흰 창호지를 중첩시켜 붙여나간 일련의 작품을 1971년 제2회 AG전에 출품한 서승원, 흰 바탕에 유리컵을 그려 1972년 <앙데팡당전>에서 평면 1등을 차지한 이동엽, 같은 전시에서 흰 바탕에 흰 베개 이미지를 그린 허황, 1973년 일본 무라마쓰(村松) 화랑에서     <묘법>을 전시한 박서보, 1962년부터 흰 창호지 작업을 해 온 권영우가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白)전>에 포함된 작가들이다. 1970년대 일본인에게 조선 백자를 다시금 상기시킨 ‘흰색’이라는 공통점 외에 이들은 전시 이전이나 이후에 함께 만난 일도, 모노톤아트와 관련된 미학적 담론을 주고받은 일도 없었다. 이우환의 소개로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일본 비평가와 일본 화랑주가 기획한 모노톤아트의 공식적인 첫 일본 전시는 그렇게 식민주의 ‘타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나는 예전에 모노톤아트가 ‘모노크롬(Monochrome)’이라 불리는 현상을 우려했는데 최근에는 ‘단색화(Dansaekhwa)’로 불리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모노크롬’이라는 용어를 쓰는  순간 모든 논의가 서구 담론의 하부구조가 되기 때문이며, 아직 국제화 초기 단계라서 서구인들은 아직 그 문제를 잘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단색화’는 문자 그대로 ‘단색(單色)’ 즉 ‘한 가지 색깔’이라는 모노크롬의 개념도 벗어날 수 없고 ‘그림 화(畵)’로서 ‘그림’이라는 개념적 한계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에서 제기된 ‘모노크롬(Monochrome)이 아니라 단색화(Dansaekhwa)’라는 외부 기획자의 주장은 그 용어들을 나란히 병기한 데서 자기 모순을 입증했다. 용어는 그것을 말하는 화자의 담론적 태도와 개념의 에센스가 집약돼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모노톤아트’가 결코 ‘한 가지 색깔로 된 그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국의 미술인들은 거의 모두 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색깔로 된 그림’이라는 뜻의 ‘단색화’를 쉽게  사용할 수 있을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여러 가지 색조(tone)가 있고, 그린버그 식의 ‘모더니스트 페인팅(Modernist painting)’이나 ‘아메리칸 타입 페인팅(American type painting)’과 같은 모더니즘적인 ‘그림(회화)’ 개념의 평면성(flatness)을 훨씬 뛰어넘는, 시공간의 물질과 장소성의 프로세스 문제가 담겨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 진지하게 자각해야 한다. 윤형근이나 박서보, 정창섭이나 정상화의 작품을 일부 모더니즘 회화 개념으로 다룰 수는 있겠지만, 하종현이나 최병소, 심지어 김장섭이나 김용익의 평면 오브제, 심문섭의 평면적 작업들을 어떻게 ‘단색화’라는 말로 다룰 수 있겠는가?
일찍이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白)전>의 도록에 서문을 썼던 나카하라 유스케는 ‘백색’도 아니고 ‘모노크롬’도 아닌 ‘흰 색’의 일본식 표기이자 특수명사처럼 사용된 ‘흰새쿠(ヒンセ)’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는 까닭을 밝혔다. ‘중간색을 사용하면서 화면이 지극히 델리케이트하게 마무돼 있는 회화들’이 서구의 백색 모노크롬(단색)과 달리, 색채를 없앤 흰 화면도 아니고 형태를 배제한 흰 공간도 아닌 ‘우주적 비전의 틀’이라고 매우 정확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반면 또 하나의 서문을 썼던 이일은 안타깝게도 “백(白) 또는 백색(白色)이 한국 민족과 깊은 인연을 지녀온 빛깔이며, 빛깔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신”이라고 하면서도 “서로 성격을 달리하는 이들의 화면 그것은 혹시 모노크롬의 것으로 묶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버렸다. 이후 한국현대미술계의 작가와 언론, 그리고 비평은 이 ‘모노크롬’이라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상용화는 비운을 맞았다. 게다가 일본 ‘모노하(ものは)’ 용어의 뜻도 모른 채 이우환의 회화와 모노하 작업들을 혼동하면서, 모노크롬과 혼용한 ‘모노하’(?)라는 국적 불명의 말도 비평계에서 나왔다. 쉬운 길이 언제나 바른 길은 아니다.
정치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1970년대 유신시대는 한편으로 언더그라운드 실험미술을, 다른 한편으로 모노톤아트를 잉태했다. 이 두 가지 경향은 한국현대미술을 국제적으로 담론화할 수 있는 양대 산맥으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사회>에서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특히 모노톤아트는 양면성을 띠는데 하나는 현실 초월적인 노장 사상의 무위적 태도가 소위 ‘한국성’과 ‘한국적 정체성’을 표방한 군부정치 국가관에 공교롭게도 부합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거기에 최병소처럼 군부정치에 침묵으로 일관되게 저항하는 태도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김용익처럼 모노톤아트의 정치 권력화에 담론적으로 저항한 경우도 주목된다. 국가가 이들을 ‘한국적’이라 간주했으므로 언더그라운드 실험미술과는 달리 탄압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던 모노톤아트의 내부에는 이렇듯 국가권력이나 미술권력에 저항하는 작가와 국가관에 암묵적으로 타협하는 작가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을 넘어서서 다면적인 모노톤아트의 정치 사회적 측면을 보여준다.

단색화(우양) (9)

정창섭 <묵고(默考) No.95523>(사진 오른쪽) <묵고(默考) No.95524> 120×60cm(각) 1995

다양한 방법론들의 강점
모노톤아트에는 작가마다 독특한 방법론이 있었고, <에꼴 드 서울전>이나 <서울현대미술제>와 같은 단체전을 통해 모노톤아트가 집단 정치화했을 때도 개성적인 방법론들은  건재했다. 그 점은 결코 단순하지 않은 당시 한국의 정치 사회적 양상 그리고 모노크롬과 모노하 사이에서, 이우환과의 우정관계 속에서 간과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여기서 행위와 물성, 프로세스와 반복, 평면성과 공간성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작가마다 독특하게 갖고 있는 방법론 중 내가 최근 주목하는 것은 하종현과 최병소 작가의 방법론이다. 단지 조형적 방법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적 의식을 동반하며 조망하는 것이다.(김미경, <최병소論-소멸하며 태어나다> 2006, <지우기의 미학> 2013, <하종현: 발언과 침묵의 예술> 2008, <기(氣)・통 (通)・시(時)・공(空)-하종현론(河鍾賢論)> 2012) 나로서는 박서보와 심문섭의 초기 작업들과 김용익의 작업 등에 대한 연구 또한 진행 중이다. 쉬포르 쉬르파스(Suports/Surfaces)가 유물론적 해체 방식으로 캔버스와 틀을 대하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방법론이 있었다는 점이나 모노하 작가들 간에는 더욱 복잡한 ‘모노’에 대한 해석적 방법론이 있었다는 점 등은 그 미술 경향들을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한 요체였다. 따라서 모노톤아트의 커다란 담론적 경계 안팎으로 이들 방법론이 더욱 심화 연구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필자는 지난 9월 1일 국제갤러리 심포지엄에서 이우환 작가에게 ‘모노톤아트와 이우환의 담론적 관계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답변은 분명할 수 없었다. 모노하 맥락에 있든 회화와 3차원 공간의 관계에 있든 이우환과 모노톤아트 작가들의 인간적인 우정 관계 이상의 미학적 공감대를 작업과 개념에서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모노톤아트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하면서도 그 미학적 토대에서 자신의 작품을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도 그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사유에서 다시 한 번 세계적 주목을 받은 이우환의 작품과 함께 모노톤아트가 전시되는 현상은 미술시장의 경제논리를 보여준다.
모노톤아트는 이우환을 매개로 일본에서 기원적인 첫 전시가 이루어졌고 이후에도 간단치 않은 갈등관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우정 전시는 이어졌다. 이우환과 함께 세계 미술시장으로 나아가는 모노톤아트에서 우리는 이제 ‘인간적인 친구 관계’와 ‘미학 담론’을 구별하여 다룰 수 있는 지성 정도는 갖추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우환 (사진 맨 왼쪽) 캔버스에 유채 128.5×161.8cm 1974

이우환 <점으로부터>(사진 맨 왼쪽) 캔버스에 유채 128.5×161.8cm 1974

박서보 (사진 맨 왼쪽) 캔버스에 유채와 연필 194.5×260cm 1972

박서보 <묘법 No. 10-72>(사진 맨 왼쪽) 캔버스에 유채와 연필 194.5×260cm 1972

정상화 (사진 맨 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 226×181cm 1980

정상화 <무제 80-9-23>(사진 맨 오른쪽) 캔버스에 아크릴 226×181cm 1980

하종현 (사진 맨 왼쪽) 마포천에 유채 194.5×269.5cm 2006

하종현 <접합 06-010>(사진 맨 왼쪽) 마포천에 유채 194.5×269.5cm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