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독자의 의무와 권리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있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다. 언론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일부)기자를 조롱하고 비꼬아 비아냥거릴 때 사용한다.  여기엔 ‘불공정, 편파, 선정적, 왜곡, 무책임, 무능’같은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남 얘기가 아닌 것 같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처럼 왠지 뒤통수가 따가운것 같다.
여하튼 매체 성격이나 소속 부서에 따라 기자들은 특화된 영역을 뛰어 다니며 취재한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이나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의 현장, 혹은 대중을 현혹하는 연예계 언저리나 승패의 희비가 엇갈리는 스포츠 경기장 등. 전문 분야에 따라 활동무대가 각양각색이다. 속내 또한 그렇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미술판은 그나마 젊잖고 적어도 겉모습은 우아하고 고상하다. 그래선지 미술 전문기자는 다른 분야 기자보다 비교적 욕을 덜 먹는 편이다. 왜냐면 미술 전문기자의 역할은 취재  능력보다 기획과 편집 능력에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술 전문기자는 엄밀히 따지면 언론인 journalist이기보다 문화생산자 cultural producer에 가깝다. 주관적인 비평가보다 직관적인 큐레이터에 가깝다고나 할까.
새삼스레 이번호 레퍼토리를 훑어본다. 특집 이우환. 생존 작가 한 사람을 특집으로 삼는다는 부담과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인 작가로서 백남준과 더불어 말 그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의 현재 좌표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심사숙고해서 임동식 작가를 스페셜 아티스트로 소개한다. 이우환에 비해 덜 알려진 작가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평가하는 잣대가 다를 뿐, 단언컨대 그에 못지않은 ‘좋은 작가’다. 이번호에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균형추로 손색없다고 생각한다. 혜안 있는 독자라면 이런 의도에 공감하고 복선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지난호 <서용선 개인전>에 이어 <윤동천 개인전> 기사를 대담 형식으로 만들었다. 좀 더 다양한 정보와 전시 뒷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하고자 다각도로 접근 했다. 이밖에 미학자 강성원의  ‘인문학미술觀’ 연재를 시작한다. 일반 독자에겐 다소 버겁고 어렵겠지만 작정을 하고 곱씹으며 정독하길 권한다. 강우방의 ‘民畵이야기’ 와 더불어 미술이론 깊이읽기에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역시 새로 시작한 디자인 칼럼리스트 김신의 ‘디자인 에세이’도 짧지만 재밌고 흥미로운 페이지로 기대된다.
돈으로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으로 돈을 버는 속도를 추월한지 이미 오래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한달 동안 책을 구입하는 데 쓰는 돈보다 커피 값이나 핸드폰 요금으로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다. 분하고 억울하기까지 하다. 독자들이여, 제발 돈 내고 책을 사서 보시라. 그런 후에 흉을 보든지 욕을 하든지 칭찬을 하든지 하시라!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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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4826고충환  미술비평

이른 아침 제주행 비행기에 올라 같은 날 늦은 저녁 서울로 돌아왔다. 심영철 작가의 개인전 취재를 위한 이 일정을 묵묵히 동행해주었다. 일정이 꼬여 긴 시간 지체되는 와중에 상황을 너털웃음으로 넘기며 오히려 다채로운 대화로 기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젠틀맨.
영남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미술비평가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월간미술대상 학술평론부문 장려상(2006)을 수상하기도 했다. 회화를 전공해서일까. 그는 늘 장르에 구분 없이 작가의 작업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비평가다.

 

IMG_9286전민경  국제갤러리 홍보디렉터

파리, 바젤, 프라하로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다. 날수로만 열흘이 넘고. 약 두 달 전부터 준비된 이번 취재는 일정 조정이 관건이었다. 그러나 전민경 디렉터는 갤러리 홍보담당자로서 일정 조정과 적극적인 어필이 돋보였다. 일례로 아트바젤의 지아니 예처가 지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고 바로 붙잡아 스탠딩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항상 자신감 있는 어조로 취재원과 취재진을 연결해주는 중개인 역할은 물론 때론 통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귀국하자마자 바로 브라질로 자원봉사를 떠난단다. 체력이 바닥났다는 건 거짓말이었구려!

 

김신김신  디자인 칼럼리스트

김신의 디자인 잡문집《  고마워 디자인》을 읽으면 디자인이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고마운 생활 요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번 호부터 연재되는 ‘김신의 디자인 에세이’를 통해 그가 디자인이라는 망원경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현장을 엿볼 수 있다. 디자인과 예술, 그 차이보다 인간의 본질적 측면과 맞닿아 있는 디자인의 속성을 포착하는 점이 흥미롭다. 김신은 월간《  디자인》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디자인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 저술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Column] 예술서적 시장은 언제나 위기였다

나는 몇 년 전 폴 클레 전시회를 보러 올림픽공원 미술관에 갔을 때의 복잡한 심경을 잊지 못한다. 나름대로 유명한 화가의 단독 전시였음에도 3시간 넘게 관람하는 동안 관람객을 5명도 보지 못했다. 그림을 감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어서 어떤 그림 앞에서는 30분 동안 가만 앉아 바라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전시마저 외면당한다면 소위 몇몇 유명 전시에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몰리는 이유가 뭘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6년쯤 예술도서를 팔아오면서, 왜 예술 관련 책들이 팔리지 않는지 어렴풋이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미술 교양 도서 붐이 일었다. 예술을 비롯한 문화적 지식이 일종의 ‘일반 대중 교양’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외국 유명 미술관 소장 작품전 같은 대형 전시회가 꾸준히 히트를 기록했고 덩달아 그런 유명 작품들 및 화가들의 삶에 대한 입문서들이 심심찮게 스테디셀러 대열에 올랐다. 이때 많은 출판사가 예술도서 시장에 뛰어들었다. 버블을 키워가던 미술품 경매 시장이나 각종 국제 비엔날레 등을 통해 미술은 화제를 낳았고 그러자 책이 팔렸다. 바야흐로 예술도서 시장은 떠오르는 신대륙 같았다.
그러나 도서 구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 즉 1년에 책을 2권 정도 구입할까말까 하는 대한민국 평균 독자들, 또는 일반인이 기대하는 바는 거기까지다. 가까스로 그나마 유명한 전시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딱 거기에 대한 지식까지만 요구했던 것이다. 이 수요는 일종의 이슈 소비이지 예술에 대한 관심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이슈 소비를 계기로 삼아 미술 애호가로 거듭난 경우도 있겠으나, 예외적인 정도의 수치일 것이다. 방학마다 열리는 유명 전시회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도떼기시장 같은 곳에서 뭘 어쩌자는 건지 혼란스럽기까지 한데도 많은 사람은 그냥 여기 와서 저 유명 그림을 본 걸로 만족한다. 미술이니까 와서 눈으로 보면 된 거 아닌가. 물론 아니다. 유명 작품의 실물이라는 아우라를 소비하는 행위는 지극히 대중추수적인 행위다. 관객들은 유명 화가라는 일종의 셀러브리티의 컬렉션을 구경하러 온 것이다. 미술이라는 의미계를 벗어나서 이미지 그 자체와 그를 둘러싼 아우라를 소비하는 ‘행위’ 또는 ‘현상’은 사회학적인 현상이나 메타-예술의 소재 또는 주제는 될 수 있을지언정 미술작품의 창작과 비평 사이에서 감상자 자신이 능동적으로 재해석에 임하는 ‘감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 소비자들이 같으므로, 예술도서 시장 역시 전시회 소비 시장과 유사한 형태를 갖추었다. 단지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야?” 정도의 호기심이 시장 확산의 원동력이었다. 호기심이 충족되면 소비는 거기에서 끝난다. 바로 이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책들, 소수의 셀러브리티 예술가의 삶과 대표작들을 담은 일종의 다이제스트 미술서가 21세기 초 미술도서 시장의 일시적인 확산을 가져왔다. 그러나 초심자용 다이제스트라는 포맷은 가용자원과 그 변형에 한계가 있다. 결국 동어반복을 계속하던 이 장르는 몇 년 가지 않아 급격히 쇠락했고, 전체 예술도서 시장 역시 그와 유사한 시기에 다시 위기론을 꺼내들었다. 예술도서 시장은 살아남기 위해 시대의 흐름에 편승했다. 힐링이 유행일 때는 치유하기 위한 그림과 음악들을 소개했고, 스펙이 세상 모든 것처럼 보였을 때는 자기계발의 일종으로 예술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 흐름들 어디에 예술이 예술로서 소개되었는가? 예술은 소비재의 하나로, 유행 따라 피고 지는 일시적인 아이돌 기능을 했을 뿐이다.
예술 책 출판을 포기하는 출판사가 늘어나고 출간 종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이는 한때의 좋았던 시절을 제외한 평균을 향해 수렴하는 것뿐이다. 한때의 붐은 그저 갑자기 찾아온 호재였을 뿐, 그 특정 변수를 제외하면 예술도서들은 자체 역량으로는 성장해본 적도 없이 전체 도서시장의 위축과 함께 서서히 잦아들고 있을 뿐이다. 예술이 소비재로 이용되는 현실은 고착화된 지 오래다. 만약 지금이 위기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건 언제나 위기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술 책은 왜 팔리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왜 예술이 사람들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 좋은 책을 만들고 더 나은 글을 쓰자’는 그다음 문제다. 하던 대로 하면 아무리 좋은 결과물이 나오더라도 애당초 관심을 가진 사람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자명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예술이다. 그러나 어떻게 말할 것인가? 어떻게 취미 사진가들과 대형 전시회 애호가들과 논술 문화 학습의 시스템에 침투할 것인가? 비단 도서뿐만 아니라 예술을 둘러싼 소비 시장의 전체적인 기조가 유사함을 상기해볼 때, 예술 소비의 부흥은 정치적 슬로건이나 명약관화한 대의(예술은 좋은 것이다!)보다는 전략전술의 유연함에서 출발할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정의 그 자체는 어떤 성공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최원호·인터넷 서점 알라딘 예술부문 MD

 

[Hot people] 2014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조민석

한국 건축사 100년, 남과 북의 두 얼굴

예견된 소식이었을까.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한국관은 참가한 65개의 국가관 중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미술과 건축을 통틀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이 사자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지난 6월 13일 예술가의집에서 이번 비엔날레 한국관을 이끈 커미셔너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을 비롯 큐레이터 배형민(서울시립대 교수), 안창모(경기대교수) 그리고 권영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참여한 가운데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비엔날레 수상에 대한 관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날 회의장은 취재진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좌중의 흥분된 분위기와 달리 막상 수상을 이끈 조민석 커미셔너는 “수상자를 호명할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며 비록 격앙된 어조이지만 의연한 태도를 취했다. “비엔날레 초반 감독과 심사위원들이 한국관 전시에 보인 뜨거운 관심을 보며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은 삼성미술관 리움 블랙박스의 건축가로 한국에 잘 알려진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다. 그가 제시한 비엔날레 국가관의 공동 주제는 <근대성의 흡수(Absorbing Modernity: 1914~2014)> . 반면 조민석이 이끈 한국관의 제목은 <한반도 오감도(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  조민석은 렘 쿨하스가 전시를 통해 이끌어내고자 하는 맥락을 정확히 짚어냈다고 평가받는다. 렘 쿨하스가 소장으로 있는 네덜란드 설계사무소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에서 근무한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렘 쿨하스는 비엔날레를 통해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 자체가 조명받기를 바라며 건축의 각 요소(element of architecture)에 주목한 전시를 꾸몄다. 한국관의 경우, 한반도의 특수성과 역사성을 연결하는 주제로 남한과 북한의 건축 형상 변화에 주목해 100년 한국 건축의 큰 획을 담아냈다.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대립관계에서 남과 북이 주고받는 건축 현상에 주목하며 우연과 필연, 개인과 집단, 영웅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 등을 아우르는 한반도 건축의 단편들을 모았다. 보편성과 전체성을 전제로 한 건축용어인 ‘조감도’와 대비되는 ‘오감도’란 이상의 시에서 빌려온 용어로 마치 퍼즐조각을 모으듯 전시를 구성했다.
전시는 크게 ‘삶의 재건(Reconstructing Life)’, ‘모뉴먼트(Monumental State)’, ‘경계(Borders)’, ‘유토피안 투어(Utopian Tour)’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안세권, 알레산드로 벨지오조소, 닉 보너의 컬렉션, 최원준, 마크 브로사, 강익중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당초 북한의 건축가가 직접 참여하거나 공동 감독의 큐레이팅 형식을 고려하여 여러 통로를 거쳐 접촉하며 의사를 타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닉 보너의 컬렉션, 찰리 크레인, 필립 모이저 등의 외국인 작가들을 통해 북한의 건축을 살폈다. 특별히 이번 비엔날레는 공모 방식으로 커미셔너를 선정하였고 공모 과정을 포함하여 약 14개월간 동일 주제로 전시를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어 전시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건축가 조민석은 올해 11월 플라토에서 또 하나의 건축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번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아르코미술관으로 옮겨와 전시할 예정이다. 그는 앤서니 폰테노와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유명전>을 공동 기획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굵직한 건축 전시를 이끌고 있는 건축가이다. 건축 전시기획자이자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젊은 건축가는 한국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임승현 기자

조민석은 1966년 태어났다. 연세대 건축공학과와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OMA, 조슬레이드 아키텍처 등에서 일하며 유럽과 뉴욕의 다양한 건축 및 도시 계획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99년과 2003년에는 미국 프로그레시브 아키텍처 어워드를 수상했고, 2000년에는 뉴욕 건축연맹에서 주관하는 미국 젊은건축가상(뉴욕건축가연맹)을 받았다.

베니스 (2)

베니스 (1)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시전경

 

 

[Sight & Issue] Art Basel

바젤에서 발견한 미술시장의 민낯

올해 45회째를 맞는 아트바젤(스위스 바젤 메세 플라츠, 6.19~22)은 철저히 작품을 구매하는 이들을 위한 잔치였다. 몇 년 전까지 보였던 ‘프레스 프렌들리’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공식 개막 전날. 프레스 등록과 동시에 본전시장을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었던 예년과 달리, 이번에는 오로지 VVIP와 대회 관계자, 그리고 참여화랑 관계자를 제외하곤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아트바젤의 전략적 행보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285개 화랑이 참여하는 아트바젤의 첫인상은 전언했다시피 이전보다 구매고객 중심인데다 이전보다 확장된 행사규모, 그리고 특정 작가의 작품으로 쏠리지 않는 다채로움이 돋보였다. 특히 부속행사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비엔날레급 전시로까지 비치는 <Art Unlimited>는 규모가 훨씬 커졌으며, 또 하나의 부속행사였던 <14 Rooms>는 아예 독립되고 특화된 아트바젤만의 전유물이라는 느낌을 충분히 주었다. 약 한 달 전 열린 아트바젤 홍콩의 첫 대회가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가운데 아트바젤의 자신감은 최상에 이르렀다는 생각이다.
세계 경제가 어렵다 하지만 이번 아트바젤만큼은 예외였다. 일반인 공개 전인 6월 17일 VIP 공개 당시 15분 만에 앤디 워홀의 자화상이 3200만 달러(한화 325여억 원)에 팔렸으며, 데이비드 호크니의 풍경화는 400만 달러(한화 40여 억원)에 거래됐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   블룸버그》는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헤드라인을 ‘바젤의 백만장자들은 미술이 현금보다 나은 투자(대상)라 확신한다’고 뽑았다.
아트페어 못지않게 관람객을 즐겁게 만든 것은 <Art Unlimited>였다. 특히 국제갤러리 소속으로 출품한 양혜규(왼쪽 페이지 아래 오른쪽)의 <서사적 분산을 수용하며-비카타르시스 산재의 용적에 관하여(Accommondating the Epic Dispersion-On Non-cathartic Volume of Dispersion)>(2012)는 높이가 10m, 넓이가 800m2에 이르는 대형작품으로 <Art Unlimited> 입구에 설치되어 큰 관심을 모았다.  블라인드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 관람객의 시선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이 작품은 ‘디아스포라’가 사회에 수용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베를린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 중앙홀에 설치됐던 것을 바젤로 옮겨와 소개했다. 양혜규는 이번 전시에 대해 “기존의 디아스포라가 내포한 의미를 작가로서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이 작품이 비록 아트페어에 전시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후 뮤지엄 등의 기관과 콜라보레이션하고자 하는 일종의 예고인 셈”이라고 밝혔다.  3년 전부터 이 전시를 기획한 뉴욕 출신의 지아니 예처(Gianni Jetzer)는 <Art Unlimited>가 비엔날레의 한계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상업성과 비상업성보다는 작업이 함의하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비엔날레와의 차이로 큐레이터의 역할을 들 수 있다. 비엔날레는 큐레이터가 하나의 주제로 작업하는 프로젝트지만 아트페어는 전시되는  작품이 갤러리의 사정에 의해 바뀔 수 있고 시장에 기반한다”라고 답했다.
또 하나의 부속전시인 <14 Rooms>도 아트바젤을 찾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4 Rooms>는 데미안 허스트, 요노 오코, 브루스 나우만,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 14명의 작가의 기념비적 퍼포먼스를 재현한 전시로, 14개의 방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관객은 각각의 방에 입장해 실시간으로 재현되는 퍼포먼스를 감상할 수 있었다.

바젤=황석권 수석기자

· 전시광경. 산티아고 시에라의  2014 퍼포먼스

<14 Rooms>전시광경. 산티아고 시에라의 2014 퍼포먼스

 

 

[Sight & Issue] Sung Donghun in Taipei

다루기 힘든 재료와 겨루다

IMG_8497철을 소재로 중량감 가득한 작업을 해온 조각가 성동훈. 그가 타이베이(台北)에 머물며 진행한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었다. 6월 4일 타이완의 철강기업 둥화(東和)강철의 먀오리(苗栗) 공장에서 열린 <제2기 둥화강철국제레지던시 작가전시회(東和鋼鐵第二屆國際藝術家 駐廠創作成果發表會)>에서 타이베이 작가 쑹쉬더(宋璽德)와 성동훈의 작품이 전시된 것이다. 성동훈은 25점을 출품했으며 그의 작품은 전시장 실내외에 배치됐다. 이를 위해 성동훈은 약 3개월 동안 이곳 공장에 머물면서 작품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는 둥화강철이 세운 둥호아트파운데이션이 주최한 것. 전시 개막 전날 성동훈의 이곳 작업장을 찾았다. 둥호강철은 성동훈에게 철슬러지 30톤을 제공했으며, 공장 한 켠에 별도의 작업장을 조성해줬다. 성 작가는 “약 25년 동안 철을 주된 재료로 작업했지만 이곳에 와서 보니 철제품을 만들고 남은 폐기물인 슬러지에 눈이 갔다. 철의 어머니 같다고나 할까? 이 재료는 부피가 크고 중량이 상당하며 용접이 힘들어 쉽게 다룰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를 재료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당초 주최 측은 철강 및 H빔 등 철과 관련한 생산품을 제공한다고 했지만 성 작가는 제철소 입장에서는 폐기물로 여기는 슬러지에 더욱 눈길이 갔다고 한다. 폐기되는 것이 당연했던 슬러지는 그의 손을 거쳐 돈키호테로, 의자로, 황소 등으로 변신했다. 제작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고. 처음 사용하는 소재여서 여러 실험 단계를 거치느라 그랬다. 재료의 특성상 이번에 출품한 작업은 마치 현무암이나 풍화된 돌처럼 거친 느낌이 가득하다.
둥화강철에서 성 작가에게 제공한 지원은 파격적이라 할만하다. 철을 가공하고 다루는데 있어 공장의 기자재와 장치는 물론, 과장급 간부가 책임을 맡은 별도의 인력도 제공했다. 그래서 성 작가는 한국에서 작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개막식에 참여한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축사에서 “최고 품질의 철을 마다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슬러지를 긁어내 이러한 장관을 연출한 성동훈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며 “철조각이 차갑고 단단한 느낌을 주기 마련인데 성동훈의 작업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야생적인 힘이 넘친다”고 말했다.
이미 타이베이 주밍미술관과 가오슝의 피어2(Pier2)에 작품이 소장된 성 작가는 올해 말까지 타이베이와의 인연을 지속한다. 9월 투씨아트 갤러리(ToSee Art Gallery)와 함께 하는 ‘타이베이아트페어’와 쑨원미술관(Sun Yat Sen Museum in Taipei)에서의 초대전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타이베이의 유리회사와 함께 이번 둥화강철과 진행한 유형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둥화강철아트파운데이션은 둥화강철이 1000만 타이베이달러(한화 약34억 원)를 출연하여 설립한 것으로 다수의 국제적인 예술행사를 후원 및 주최해왔다. 이번 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은 2회째이며 타이베이와 해외작가 각각 1인을 후원한다.

타이베이=황석권 수석기자

 

Hot Art Space

한국에 이주한 외국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전>이 6월 17일부터 8월 1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계속된다. 1년에서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거주하며 작업하는 10개국 13인의 작가를 모았다. 2009년 작고한 에밀 고를 제외한 참여 작가들은 집, 언어, 문화적 판타지, 여권, 서울이라는 주제어를 제시받아 이에 맞는 작업을 선정하여 전시한다. 전시기간 동안 베르너 사세, 사이먼 몰리, 탈루 엘엔이 참여하는 라운드 테이블(6월 26일)과 폴 카잔더와 루크 슈뢰더의 아티스트 토크(7월 3일)가 진행되어 전시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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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1)

리안 (3)

이동기와 김현기의 2인전이 5월 22일부터 7월 5일까지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린다. 아토마우스부터 추상미술에 이르는 이동기의 작품과 극사실적인 재현기법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형상을 만든 김현기의 작품 약 20점이 전시됐다.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가 혼성된 이미지에서 독특한 혼성의 세계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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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아라리오 (1)

작가에게 뮤즈는 창작의 근원이자 원천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개최한 <강형구와 그의 뮤즈, 마릴린전>(5.13~7.20)은 강형구가 그린 마릴린 먼로 작품을 비롯해 작가가 20여 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모은 방대한 양의 마릴린 먼로 초상, 사진, 포스터, 책 등의 자료 컬렉션을 함께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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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환_인사미술공간 (3)

‘아르코 영 아트 프론티어(AYAF)’에 선정된 배윤환의 개인전 <WAS IT A CAT I SAW?>가 5월 9일부터 6월 5일까지 원서동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언어유희를 차용한 전시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서사보다는 이야기의 출발점에 중점을 두었다. 50미터의 대형 연속드로잉이 절반은 펼쳐지고 나머지는 말려있는 형식으로 전시되어 전체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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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1)

이한열기념관 재개관을 기념한 특별전 <열사에서 친구로>가 6월 9일부터 7월 9일까지 열린다.
박경효, 강영민, 낸시랭, 임경섭, 차지량, 홍태림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이한열을 중심으로 열사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과  정의를 제시하고 세대 간의 교차와 ‘청춘’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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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한옥 (2)

화해와 긍정의 메시지를 담은 하트이미지를 전통 회화 속 모란과 화조그림에 접목한 김용철의 개인전 <하트와 모란, 그리고 숲에서의 만남>이 6월 18일부터 25일까지 갤러리 한옥에서 열렸다. 최근 강릉으로 주거지를 옮긴 작가는 색다른 풍광, 공기를 맞으며 느낀 신선한 감정을 그림으로 옮겨 힘찬 생명력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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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젤리_갤러리 로얄 (1)

전시장에 육각형 캔버스를 이용한 작품이 가득 찼다. 5월 22일부터 7월 13일까지 갤러리 로얄에서 열리는 <로얄 젤리전>은 미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예술활동을 하는 작가 7명의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에너지원인 로얄젤리처럼 예술적 자양분의 공급원이 차세대 예술가의 육성임을 은유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연, 사회, 역사적 주제, 철학적 사유를 반영한  작품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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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충현,김윤수_누크 (6)

김윤수, 노충현의 2인전 <지금 그리고 저편>이 5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누크갤러리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다루며 ‘지금 여기’를 표현하는 노충현과 바람, 하늘, 바다 등과 같은 자연의 풍경들로 ‘저편’을 다루는 김윤수의 만남으로 주목됐다.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두 작가의 작업은 관람객에게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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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라갤러리

브라질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과 브라질 양국 간 문화·경제적 교류를 모색하는 취지의 전시인 <함성 SHOUTS OF KOREA 2014>가 6월 11일부터 7월 31일까지 KOTRA 오픈갤러리에서 열린다. 한국과 브라질의 유망 작가 22인이 참가하여 선보이는 40여 점의 작품과 참여기업 협업제품 15점을 함께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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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2)

이야기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며 얻어지는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이면의 본질이나 대상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정서를 표현한 일곱 작가의 전시 <구경꾼들 SPECTATORS>이  6월 11일부터 7월 5일까지 두산갤러리에서 열린다. 구지윤, 류노아, 오용석, 유현경, 이제, 이혜인, 장파가 참여하였다. 이들은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가며 경험을 이미지로 창조해내고 이를 접한 관객은 경험의 흔적에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주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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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_조현 (2)

맨드라미 작가 김지원의 개인전이 <지평선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5월 23일부터 6월 22일까지 부산 조현화랑에서 열렸다. 표현은 단순하고 담백하지만 흐드러지게 핀 꽃의 색은 화려하다. 맨드라미는 단순한 생명력을 가진 꽃으로서 그려지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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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 (1)

현대인의 시각으로 진경산수화를 재해석한 석철주의 개인전 <夢그리고 몽>이 6월 6일부터 8월 9일까지 서호미술관에서 열린다. 청색이나 분홍색 바탕에 흰색 아크릴 물감을 바르고 다시 물로 닦아내기를 반복해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기법을 넘나드는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몽유도원도 시리즈’의 최신작을 모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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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_송은아트큐브 (2)

이건영이 5월 30일부터 7월 9일까지 송은아트큐브에서 <흰 그늘진 마당>이란 제목으로 개인전을 갖는다. 작가는 이름을 상실한 공간 즉 용도나 목적을 잃고 버려진 공간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파괴된 자연과 그 폐허 위로 다시 회귀하는 자연을 이중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관객은 생성과 파괴가 겹치는 어두운 흑백사진 사이에서 어느 것에도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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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표 (1)

패션 광고 이미지 속 모델을 보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떠오른다.
여주에 위치한 샘표스페이스에서 열리는 <perfect skin>(6.2~7.4)은 이를 표현하는 두 작가의 전시다. 전상옥은 광고 속 모델을 캔버스로 옮겨와 감각적으로 재현된 이미지를 다시 재현하며 욕망과 진실 사이를 표현했다. 지희킴은 대중잡지 이미지를 수집 조작하여 현대 여성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전시는 관객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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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_이유진갤러리 (1)

공간을 컴퓨터 데이터화하면서 얻어지는 우연적이고 파편적인 형태를 자신만의 언어로 변형하는 경현수의 개인전이 5월 30일부터 6월 28일까지 열렸다. 이유진갤러리에서 열린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으로 2012년부터 시작한 색과 조형에 대한 탐구와 기하학 추상의 예리한 감각이 돋보이는 <debris>시리즈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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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훈 (4)

신화, 팝, 고전 등을 주제를 실험해 온 엄익훈의 개인전 <조각의 환영>이 6월 7일부터 19일까지 DMC홍보관갤러리에서 열렸다. 금속 재료로 만든 추상의 철조각에 빛을 더해 그림자를 조각과 병치시켰다. 그는 빛을 철저히 계산해서 조각과 함께 전시장 벽에 평면의 인물을 그려내는 도구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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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파크 (1)

최소한의 선으로 동네 풍경을 묘사하는 윤명순의 개인전 <하루, 욕망하는 풍경>이  6월 11일부터 24일까지 아트파크에서 열렸다. 구리선과 혼합매체를 용접하여 사용한 작품은 보는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입체감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일상의 모습은 압축적으로 드러남과 동시에 운동감있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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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규 (4)

정문규 (13)

평면과 입체를 아우르는 김인태와 김병철의 2인전 <집중과 확산>이 5월 16일부터 7월 13일까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정문규미술관에서 열린다.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인간의 문제를 풀어가는 두 작가의 작품이 서로 문답을 하듯이 병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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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울

사랑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이승령의 개인전이 6월 11일부터 17일까지 리서울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는 소통의 부재가 만연하는 현대사회에 주체와 타자 구분없이 사랑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며 아름답고 따뜻한 색채를 사용하여 포근함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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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채남 (3)

자연의 모습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소채남의 네 번째 수채화 개인전이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6.11~17)을 시작으로 교동아트미술관(6.17~23)과 갤러리 아무(6.24~7.31)로 이어진다. 은은한 색채와 아련한 풍경이 어울어져 수채화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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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3)

소나무를 그리는 박정연이 7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6월 18일부터 24일까지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스케일이 큰 작품들을 선보여 관객이 마치 소나무 숲에 와있는 듯 착각을 일으켰다. 작가는 황금색은 조화로움과 순수함을, 소나무는 건강함과 당당함을 담고 있다며 황금소나무의 의미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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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_세종 (2)

꽃과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보여온 박정희의 개인전이 5월 27일부터 6월 8일까지 세종호텔 세종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상상의 공간이 한데 어우러져 서정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회화작품 40여 점을 선보였다. 다채로운 색채미를 내뿜는 그녀의 작품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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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_인사아트센터 (1)

김성호 개인전 <새벽, 빛을 품다>가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렸다. 빛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새벽의 아름다움과 바다의 고요, 빛을 머금은 도시의 아련한 감수성 등 거칠면서도 섬세한 붓 터치로 감각적인 새벽의 풍경을 담아냈다.

[특별기획] Lee Ufan in Versailles

베르사유의 무지개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6월 12일자 문화란에 이런 헤드라인을 실었다. “그(이우환)는 베르사유궁의 완벽함을 극복했다”고. 프랑스 역사와 문화의 자존심 베르사유궁에 입성한 이우환은 그렇게 환대받았다. 1973년 관광차 처음으로 베르사유궁을 방문했다던 그는 팔순(八旬)을 앞두고 이곳에서 전시를 하게 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 이우환의 개인전 <이우환 베르사유(Lee Ufan Versailles)>(베르사유궁, 6.17~11.2)가 열린다. 베르사유궁 실내와 궁정(宮庭) 그리고 그랜드 카날(Le Grand Canal)을 사이에 두고 펼쳐진 그의 작품 10점은 베르사유궁과 조화를 이뤄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의 산책동무가 되었다. 우리 미술계에서 이우환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월간미술》은 이번 베르사유 전시뿐만 아니라 그의 작가 인생 전반을 걸쳐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우선 그의 일대기를 통해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비평가 및 전략가적 면모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주변의 상황을 정리해 본다. 그다음 일본 전위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에 몸담았던 당시 이우환의 활동을 정리하며, 우리 단색조 회화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시각을 전달한다. 또한 파리 베르사유궁에서 열린 이우환 개인전 현지 취재와 이번에 출품된 작품을 철학적 시각으로 풀어내는 글도 싣는다. 이번 기획은 그에 대한 완결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형인 그의 행보에 일종의 쉼표를 찍는 것이다. 지금 이우환은 우리에게 어떤 작가인가?

현지취재, 사진=황석권 수석기자

<Relatum-The Cane of Titan> 철 바위 500×10.5cm(철봉) 175×180×145cmcm(바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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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um-Dialogue X> 철 바위 350×450×5cm(철판, 각, 2점) 130×134×130cm/150×135×130cm(바위, 각, 2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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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um-The Shadow of the Stars>의 부분

 

Versailles Lee Ufan

<Relatum-The Shadow of the Stars> 37개의 철판, 7개의 바위, 석회석, 대리석 40m(37개의 철판으로 만든 구 지름) 2014 Courtesy the Artist, kamel menour and 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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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um-Dialogue Z> 철 바위 300×400×4cm(철판, 각, 2점) 137×150×115cm/126×150×117cm(바위, 각, 2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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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um-Four Sides of Messengers> 철 4개의 바위 400×250×2cm(철판, 각, 4점) 2014

 

Versailles Lee Ufan

<Relatum-Earth of the Bridge> 철 바위 400×300×2cm(철판, 각, 2점) 170×160×113cm/145×180×140cm(바위, 각, 2점) 2014 Courtesy the Artist, kamel mennour and 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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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um-The Tomb, Homage to André Le Nôtre> 철 바위 300×270×180cm(파낸 땅구멍) 268×296cm(구멍 바닥 철판) 90×140×130cm(바위) 2014

 

 

[특별기획] 베르사유 작가 이우환, 외부와의 대화

베르사유 작가 이우환, 외부와의 대화

심은록  미술비평, 철학

베르사유궁은 어떻게 보면 작가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나 자칫 무덤이 될 수도 있다. 장소가 가지는 역사적 상징과 규모에 압도되거나 그것과의 이질감을 극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우환의 이번 전시는 베르사유와 작품이 서로 소통하는 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필자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이우환의 작품을 분석하며 작품과 공간이 나누는 대화에 귀 기울인다.

베르사유 궁전은 ‘전통과 현대와의 대화’를 목적으로 2008년부터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주세페 페노네 등 세계적인 현대작가 전시를 잇달아 개최하고 있다. 첫 번째 초대작가인 제프 쿤스의 전시가 개최되자마자, 일부 프랑스인들은 베르사유의 전통과 명예를 모독한다며,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외국의 미술애호가들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제프 쿤스의 전시는 그의 명성만큼이나 훌륭했다. 그런데 너무 훌륭해서 작품만 보이고 작품이 놓인 장소인 베르사유궁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전시의 목적인 베르사유의 전통과 현대 미술 간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단지 현대미술만의   ‘모놀로그’가 되었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작가의 경우에는 ‘조화’를 지나치게 염려한 결과, 그의 작품은 베르사유궁의 웅장함과 찬란함에 묻혀버렸다. 이 경우도 베르사유와 현대미술의 ‘대화’가 아니라, 베르사유의 ‘모놀로그’가 되었다.
이런 논란을 종식시키고 싶어선지, 올해는 ‘대화’와 ‘관계항’의 대가인 이우환이 초대되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대화’와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라 할지라도 아시아인이 과연 프랑스의 오랜 역사와 철학이 담긴 베르사유 궁전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회의가 일었다.
6월 17일, 마침내 <이우환 베르사유(Lee Ufan Versailles)전>(6.17~11.2)이 막을 올렸다. 까다로운 입맛과 날카로운 혀를 지닌 프랑스 미술애호가들은 감탄했다. 베르사유도 보이고 작품도 보이기 때문이다. 이우환의 작품은 노쇠하고 무거운 베르사유에 생동감과 젊은 역동성을 주었고, 베르사유는 작품에 장엄함과 신비를 더해 주었다. <이우환 베르사유전>에는 총 10점 (실내 1점, 실외 9점)이 설치되었으며, 작가는 관람객들의 동선을 세심하게 고려하여, 작품을 정원을 산책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상하도록 배치했다. 이 글에서는 이우환의 ‘외부와의 여러 가지 대화법’ 가운데, <관계항-솜의 벽>을 통해서 ‘전통과 역사’와의 대화법을,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와 <관계항-바람의 날개>를 통해서 ‘자연’과의 대화법을 살펴 보도록 하겠다.

전통과의 대화법 : <관계항-솜의 벽>

<관계항-솜의 벽>은 베르사유 궁전의 가브리엘 건물(Aile Gabriel) 내에 있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설계된 이 건물에 들어가면, 멀리 이 작품과 그 배경인 내부건물이 보인다. 내부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에는 모던하고 여성적인 이오니아식 원주(colonne)들이 있고 이 원주 가운데에 가브리엘 천사의 조각상이 있다. 아래층에는 모던하고 남성성이 표출되는 도리아식 원주들이 있고, 이 대리석 원주들 한가운데 이우환의 솜으로 된 원주 하나가 세워져 있다. 솜으로 된 원주 꼭대기에는 커다란 돌이 마치 주두장식인 것처럼 가뿐히 앉아 있다. 그리스로마의 건축양식에서 주두장식은 시대적 특징과 성격을 반영하면서 서로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루이14세의 유명한 두 왕실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와 쥘 아르두앙 망사르(Jules Hardouin Mansart)에 의해 지어진 베르사유의 건물 외부는 대부분 프랑스식 고전주의 양식을 따른다(반면에 내부는 대부분 바로크적 양식이다). 루이15세의 왕실건축가 앙주-자크 가브리엘(Ange-Jacques Gabriel)은 이러한 프랑스식 고전주의 양식을 이어받으면서 또한 모던한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가브리엘 건물’을 설계했다. 프랑스식 고전주의나 신고전주의 양식은 시대를 초월한 절대적이고 영원한 미(美)의 표상인 그리스로마 양식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모던하고 날렵한 모양의 그리스로마 양식 원주가 세워졌다.
<관계항-솜의 벽>에 가까이 다가가면, ‘원주’라고 여긴 것이 사실은 ‘벽’의 한 단면이었음을 바로 깨닫게 된다. 이렇게 ‘벽’을 ‘원주’로 착각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작가의 거듭된 숙고를 거친 의도 때문임에 틀림없다. 가브리엘 조각상을 가운데 둔 도리아식 원주와 이오니아식 원주가 정면으로 보이는 바로 그 위치에서만 <관계항-솜의 벽>은     ‘원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위치에서 단지 몇 도만 방향을 바꾸거나 조금만 위치가 바뀌었어도 그런 인상을 받을 수 없다. 특히, 기존의 원주들이 없었다면, <관계항-솜의 벽>은 이러한 사고로 이끄는 암시를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관계항-솜의 벽>은 허물어진 벽의 모습이다. 그리스나 로마의 유적지에 가보면, 원주들은 세월의 폭풍을 견뎌내고 서있지만, 건물들의 벽은 거의 온전한 것 없이 무너져 있다. 바로 그 허물어짐에서 영원성이 보인다. 금방 신축된 완벽하고 튼튼해 보이는 건물에서는 오히려 영원성을 느낄 수 없다. 반대로, 허물어져 일부만 남아있는 성의 폐허나 고대 조각들을 보면 먹먹할 정도의 영원성이 느껴진다. 존재성 혹은 현존성이 그만큼 사라지면서, 시간, 자연, 영원성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의적인 느낌이 ‘솜이라는 가벼운 존재성’과 ‘영원성의 자취인 허물어진 벽’ 그리고 이미 ‘영원의 시간을 겪은 자연석’으로 재현되었다. 더욱이 <관계항-솜의 벽>이 그리스로마의 초월적이고 영원한 미를 표상하는 신고전주의 양식 건물과 원주들 사이에 놓여 있기에, 이러한 양의적인 감성은 더욱 극대화 된다.
육중한 돌이 가벼운 솜 위에 가뿐히 앉아 있는 이 작품은 ‘트릭’을 사용했다. 이러한 종류의 작품은 이우환 조각의 초기 스타일이다.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느낌과 효과는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이번 베르사유 전시 출품작에 철봉과 자연석을 사용한 <관계항-거인의 지팡이>가 있는데, 이는 나오시마의 이우환 미술관에 있는 작품과 같은 종류의 마티에르를 사용한 같은 이름의 연작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이 같은 이름을 지니지 않았다면, 연작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에 대해, 이우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일한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내 작품을 포함하여 모노하 작가들의 작품은 공간이나 위치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모노하 작가들의 예전 작품을 그대로 재생하거나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대와 장소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대로, <관계항-솜의 벽>이 비록 작가의 초기 조각 스타일을 연상시킨다고 할지라도, 이 작품은 ‘이곳 현재(sic et nunc)’에서만 가능한 기능을 한다. <관계항-솜의 벽>뿐만 아니라 베르사유의 모든 작품이 이처럼 ‘이곳 현재’라는 시공간성과 관련하여 기능하고 있다. 이는 베르사유 전시에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곳에서 그가 전시해 온 방식이다.

자연과의 대화법 :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 <관계항-바람의 날개> 그리고 ‘대운하’

베르사유의 정원으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작품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이하, 아치)가 보인다. 높이 12미터와 길이 30미터의 스테인리스스틸로 된 아치의 양 끝에는 두 개의 자연석이 놓여 있다. 아치 밑에는 아치와 똑 같은 크기의 스테인리스스틸이 긴 융단처럼 바닥에 깔려있다. 정원 초입에 있는 스테인리스스틸 융단에 서면, 저 멀리 정원 끝에 있는 또 다른 스테인리스스틸 융단이 보인다. 사실, 후자는 융단이 아니라 앙드레 르 노트르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대운하이다. 스테인리스스틸 융단과 대운하 사이의 간격이 상당히 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놀라울 정도로 모양과 색감이 일치해 대운하가 또 다른 스테인리스스틸 융단이라고 착각할 만큼 비슷하다.
<아치>와 ‘대운하’ 중간에는 ‘녹색융단’이라고 불리는 푸른 잔디밭이 있고, 그 위로 이우환의 또 다른 작품
<바람의 날개>가 펼쳐져 있다. 40개의 거대한 스테인리스스틸로 구성된 이 작품의 반(20개)은 잔디밭 위에 누워있고, 또 다른 반은 세워져 있다. 미풍처럼 혹은 잔잔한 물결처럼 부드럽게 굴곡진 스테인리스스틸 판들은 아치에서 운하를 오가는 바람의 움직임을 시각화한다. 이처럼 이우환의 작품은 정원이 시작되는 <아치>에서부터 <바람의 날개>를 타고 정원 끝에 있는 ‘대운하’까지 3부작(triptyque)처럼 밀접하게 연결된다.
아치의 양끝에 있는 자연석처럼, 이우환의 조각은 언제나 자연에서 가져온 돌을 원래 상태 그대로 전시해왔다. 전시장에 자연을 그대로 옮겨다 놓았으면서도 그는 이를 ‘ready-made’(여기서는 ‘자연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re-made’(‘다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람의 시선이 갔다는 것은 이미 순수하게 자연 그 자체라고 할 수 없는데, 더욱이 자연을 전시장에 옮겨다 놓았으니 이는 re-made이다”라는 작가의 설명은 슈뢰딩거의 유명한 가설 ‘동시에 살아있고 죽은 고양이’를 떠오르게 한다. 사람이 자연을 볼 때, 본다는 그 행위로 인해 자연(슈뢰딩거에 의하면 ‘양자’)과의 관계가 발생하며 자연(‘양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자역학자의 고민과 똑같이, 그는 보기 이전의 자연을 어떻게 표현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왔다. ‘대운하’가 비록 앙드레 르 노트르에 의해 만들어졌다고는 하더라도, 이번 전시에서 이우환은 자연을 옮겨오지 않고, 있는 상태 그대로 자신의 작품에 개입시켰다. 이로 인하여 그가 바라던 것이 어느 정도는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가 조각에서 ‘자연’(자연석)을 차용해왔듯이, 이번에는 베르사유의 ‘대운하’를 그의 작품으로 그대로 차용하면서, 거대한 3부작인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 <관계항- 바람의 날개> 그리고 ‘대운하’가 성립되었다.
이 글의 도입에서 언급했듯이, 베르사유 현대미술전에서 ‘전통과 현대미술의 대화’가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이 베르사유 현대미술전의 초대 작가인 제프 쿤스도 그의 예술목적이 ‘소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제프 쿤스의 ‘소통’과 이우환의 ‘대화’는, 비슷한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왜일까? 이우환 작가에게 서구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소통’과 이우환이 말하는 ‘대화’의 차이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Communication(소통)’은 ‘community(공동체)’에서 나온 말이니까 공동체 내부의 일을 암시한다. ‘Communication’이란 community의 ‘identity(정체성)’로서 이미 공통견해를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뤄진다. 그래서 이는 ‘common sense(상식)’는 되지만 공동체 밖의 세계, 타자와 통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correspondence(조응)’는 공동체 내부에 국한되는 ‘dialogue(대화)’가 아니기에, 서로의 의견을 일치시킨다거나 어떤 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서구적인 표현으로 ‘dialogue’라고 할 때는 또 다른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다. 여기 사람들의 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화’하고는 또 다른데, 서양에서 ‘dialogue’는 ‘monologue’에서 나온 것으로, ‘monologue’가 깨진 상태가 ‘dialogue’이다. 에고(ego)가 깨진 상태에서 오는 것이 ‘dialogue’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말하는 ‘대화(對話)’는 서로 대(對)하고 마주하고 말하는 것(話)이기에, 서로가 대면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고, 처음부터 에고(ego)가 전제되지 않기 때문에, 에고가 깨지거나 답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제프 쿤스의 ‘소통’의 경우와 관련해서 미셸 푸코의 설명을 추가할 수 있다. 푸코는 사람들이 담론하는 경우 정치적이며 전략적인 미세한 권력(pouvoir)이 작용한다고 했다. 소통하면서 상대를 설득하여 화자의 의도를 상대방이 받아들이게 하거나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우환의 경우에는, 상대에게 영향력을 끼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개별성을 존중하면서 ‘대화’하고 ‘관계성’을 가진다. 관계를 맺으면서도 개별적으로 남을 수 있는 미묘한 상황에 대해, 타자성에 대해 늘 고민해온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계는 그 자체에 의해 타자성을 뉴트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유지한다. 타자로서의 타자는 우리가 되거나 우리의 것이 되는 오브제가 아니다, 반대로, 자신의 신비 속으로 들어간다.”
이우환의 조각은 오브제로 환원되지도 않으면서, ‘돌은 돌대로’, ‘철판은 철판대로’ 존재이유를 드러낸다. 이번 베르사유의 전시에서도, 그의 조각품은 조각품대로, 베르사유 정원은 정원대로 존재케 하면서, 관계에 의해 서로의 타자성을 뉴트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서로의 신비 속으로 초대되어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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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um-Wavelength Space> 철 150×500×1.5cm (세로설치, 총20점)/150×24320cm(바닥설치, 총20점) 2014

맨 위 이미지 <Relatum-Wall of Cotton> 바위 솜 270×40cm(솜에 싸인 벽) 30×30cm (바위, 각, 2점) 2014 이번 출품작 중 유일하게 실내에 설치되었다. 1969년에 제작된 <Relatum-System> 연작을 변형한 작품

[특별기획] 이우환 작업이 벌이는 관객과의 끊임없는 대화

성하(盛夏)의 계절을 맞은 베르사유는 따가운 햇살로 가득했다. 2013년 유럽을 휩쓴 이상 고온 현상이 낯설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유럽 특유의 쨍쨍한 햇살도 강렬했다. 그 아래 베르사유궁을 마주하고 선 이우환의 <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Relatum-L’arche de Versailles)>의 은색 호(弧)가 유난히 반짝였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외관을 대표하는 베르사유궁과 이우환의 아치는 과거와 현재, 화려함과 단순함, 서구와 동양 등 대립되는 다양한 요소가 마치 기싸움을 벌이듯 마주서 있었다. 폭 15m에 이르고, 높이 11m에 이르는 이 아치는 양 옆의 바위에 기댄 것처럼 세워져 있었고 베르사유궁의 정원으로 향하는 이들의 출입문 같아 보였다. 이미 《르몽드》에 실린 프랑스의 저명한 비평가 필립 다장(Philippe Dagen)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이우환은 “시골 길에서 비가 멈추자 뜬 무지개를 봤다. 그것이 너무 근사해서 언젠가 저것을 모티프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후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 일을 잊고 있었지만. 그런데 베르사유궁에서 그랜드 커널이 보이는 곳에 서니 예전에 무지개를 보며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무지개를 만들 수는 없지만 아치를 만들면 그 당시 걸으며 느낀 공간에 대한 감동과 기억을 환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라며 작품의 모티프를 설명했다.
6월 12일 프레스컨퍼런스를 마치고 겨우 시간을 내어 한국에서 온 취재진을 따로 마주한 이우환은 일정에 쫓겨 좀처럼 여유를 갖지 못하는 듯 보였다. 기자간담회 준비로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며 어린아이처럼 손에 꼬치 하나를 들고 나타난 그는 그마저 다 먹지 못했다.
이번 전시에는 총 10점이 베르사유궁 실내외에 설치되었다.
이 전시를 위해 이우환은 50여 회 이곳을 방문했다. 베르사유궁에서 전시한다는 것은 작가의 일생에 단 한 번 올까말까 한 매우 드문 기회임을 알기 때문이다. “베르사유궁은 1973년에 관광차 처음 왔었다. 그때 강한 인상을 받았다. 정원이 인공적으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랐다. 나무를 사각형, 원통형, 구형으로 깎아놓았더라.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나 같은 작가가 개입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환경에서 작품을 하면 자연성이 너무 강해 내 작품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깐 비자연적이고, 인공미가 강하며, 산업적으로 발전한 공간에서는 내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완벽한 정원을 만든 앙드레 르 노트르가 자신에게 완벽과 또 다른 공간을 열어달라 부탁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런 르 노트르에 대한 오마주 형식의 작품이 바로 <Relatum-The Tomb, Homage to André Le Nôtre>이다. 이 작품이 놓인 공간은 그간 폐쇄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곳으로 이날도 따로 관리인의 도움을 얻어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이우환은 이 작품에 대해 “르 노트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덩어리처럼 땅 밑에 웅크리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알프레드 파크망 전 퐁피두센터 관장은 “모든 작품은 신작으로 베르사유궁이라는 공간에 맞춰 작업했다. 물론 베르사유궁의 모든 공간을 사용할 순 없었지만 선택할 수 있는 한 그가 직접 전시 공간을 찾아내어 베르사유와의 대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특히 몇몇 작품은 신작일 뿐 아니라 형태와 구조 면에서도 전혀 다른 방식을 띤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사유궁이란 공간이 그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본다”며 이우환의 작업이 베르사유궁에서 특별한 무엇을 만들어냈음을 강조했다.
오픈된 공간에 펼쳐놓은 작품이어서 화이트큐브에서 만났던 이우환 특유의 경건함과 작품 주위를 맴도는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진 듯하다는 기자의 말에 파크망은 “나의 생각은 다르다. 베르사유궁의 환경이 다른 화이트큐브와 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부분을 증진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Relatum-The Shadow of the Stars>나 <Relatum-The Tomb, Homage to André Le Nôtre>의 경우, 관객은 작품과 개인적 관계를 느끼고 경건한 묵상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그의 작업은 갤러리에 놓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관람객의 수가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같은 의미를 띤다. 작업에 사용하는 물질, 작업의 구성과 외부 즉 관람객과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베르사유궁을 방문하는 이는 하루에 약 2만5000명이라고 한다. 또한 여름 성수기에는 그 수가 10만 명까지 훌쩍 늘어난다고. 그들 모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우환의 작품을 스쳐지나게 되는 셈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내 이름이나 작품의 의미를 알 필요는 없다.
그저 ‘아 신기하다’ ‘여기 이런 작품이 있네’ 정도의 감흥을 받으면 된다. 언뜻 들어보니 관객들에게서 그런 반응이 있어 좋았다. 내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였다.”
건강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엉망진창이다. 허리도 좋지 않다. 정말 쓰러질 것 같다. 그런데 백남준이 그랬듯 아무리 작은 전시도 다음은 없다는 생각으로 열의, 성의와 돈, 생각을 몽땅 다 털어넣는다”라고 답하며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떴다.

베르사유=황석권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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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베르사유궁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광경

[특별기획] 작가로 전략가로서 이우환

류병학  미술비평

한 작가를 규정하는 작업은 그의 일생 전반과 주변 환경과 주고받은 영향 등 이른바 맥락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우환이라는 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에 앞서 그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고, 자신을 둘러싼 외부와 어떻게 대화하고 부대꼈는지 점검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가 어떻게 동시대미술의 중심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역사가 깊고 위대한 명소인 베르사유궁 정원에서 전시회를 하게 돼 기쁘고 흥분됩니다. 이 완벽미를 지닌 인공정원 속에서 완벽을 넘어선 우주와 자연의 무한성을 드러내 보이려는 게 제 작업의 의도였습니다.” 지난 6월 12일 베르사유궁에서 열린 <이우환 베르사유(Lee Ufan Versailles)전> 기자회견에서 이우환은 벅찬 감회에 젖어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일명 ‘베르사유 현대미술전’은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역사적 유물인 베르사유궁을 현재진행형의 공간으로 되살리는 야심 찬 프로젝트로 2008년 제프 쿤스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제적인 스타 작가들을 차례로 초대해왔다. 이우환은 아시아 작가로는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2010년)에 이어 두 번째다. 전시를 기획한 알프레드 파크망(전 퐁피두센터 관장)은 “파리 주드폼(1997~98),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2011)에서의 회고전 이후 열리는 이번 베르사유 전시는 이우환 예술세계에 또 하나의 전기를 이룰 것이며, 그는 동시대미술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떻게 이우환은 동시대미술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월간미술》은 필자에게 ‘작가로 전략가로서 이우환’을 주제로 원고를 청탁했다.

미술비평가로서의 이우환

이우환(1936년생)은 1956년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에 밀항한다. 그는 1961년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나 고민 끝에 철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일본화 학원을 다니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1960년대 중반 《매일신문》의 <현대일본미술전>과 쉘 주최 <현대일본미술전>에 몇 차례로 응모하지만 낙선한다. 당시 그는 일본미술계에서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작품’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 같다. 1968년 이우환은 곽인식의 추천으로 한일 문화교류 일환으로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회화전>에 참여한다. 1969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였던 김세중은 곽인식과 함께 이우환을 선정한다.
1969년은 이우환에게 뜻 깊은 해이다. 그는 <오브제에서 사물로>를 미술출판사 미술평론 현상공모에 응모하여 비평상을 받고, 국제청년미술전에 응모하여 수상한다. 그는 당시 일본 미술계에 ‘핫’한 모노하(物派)에 비평(<존재와 무를 넘어서-세키네 노부오론> <다카마쓰 지로-표현작업으로부터 만남의 세계로>)으로 개입하여 일본미술계에서 입지를 굳힌다. 이를테면 이우환은 급진적인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미술계에서 작품보다는 평론으로 주목받았다는 말이다. 1971년 이우환은 평론집 <만남을 찾아서>를 출판한다. 당시 이우환의 평론은 철학과 출신답게 하이데거와 메를로 퐁티 그리고 니시다 기타로의 이론을 미술에 접목한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하이데거의 예술개념과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신체) 그리고 니시다 기타로의 장소성 개념을 ‘모노하’에 접목했다. 이우환의 미술평론은 1960년대 말부터 한국미술계에 ‘이론공부 열풍’을 일으킨다. 이우환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 중반까지 40여 편이 넘는 글을 발표했지만, 1960년 초 철학도의 길을 포기했듯이 이후 미술비평가가 아닌 작가의 길을 걷는다.

아티스트로서의 이우환

하지만 이우환의 아티스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1970년 구겐하임미술관 사건과 1971년 파리비엔날레 사건이 그 단적인 사례이다. 구겐하임미술관은 <재팬, 아트, 페스티벌>에 이우환을 선발했지만, 일본 측은 이우환의 국적이 한국이라는 이유를 들어 전시 초대를 보이콧한다. 그리고 《르몽드》를 위시해 적잖은 파리 언론매체에서 파리비엔날레에 출품한 이우환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결국 그는 상을 받지 못했다. 당시 그는 일본작가 신분으로 출품할 수 없겠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아티스트로서 이우환의 행보를 알려면 그의 전시 경력을 살펴보면 된다. 이우환은 1973년부터 2008년까지 당시 일본 메이저 갤러리 중의 하나인 도쿄화랑에서 개인전을 꾸준히 개최한다. 1973년 그는 다마미술대학 교수로 임명되는데, 그가 일본미술계에 자리매김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1970년 구겐하임미술관의 ‘일본현대미술전’에 출품하지 못했던 이우환은 1974년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에서 열린 <일본현대미술전>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이우환은 도쿄화랑의 파워를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뒤셀도르프미술관 그룹전을 계기로 사방팔방으로 독일 메이저 갤러리들을 물색한다. 그는 1976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 보쿰 갤러리m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당시 리처드 세라 등 국제적인 미니멀아티스트들이 소속돼 있던 갤러리m은 유럽 메이저 갤러리 중의 하나이다. 당시 갤러리m의 딜러인 알렉산더는 유럽미술계의 파워맨이었다. 1976년 갤러리m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이우환은 그다음해인 1977년 ‘카셀도쿠멘타’에 초대된다. 갤러리m의 딜러 알렉산더의 파워를 알 수 있는 사례이다. 1974년 뒤셀도르프 미술관에서 그룹전(일본현대미술전)에 참여했던 그는 1978년 당당하게 개인전을 개최한다. 같은 해 그는 프랑크푸르트의 유명 미술관인 스테델(STADEL)에서 개최한 조각전(Z. B. Sculpture)에 초대된다.
이우환은 또 한국의 메이저 갤러리인 갤러리 현대에서 1978년부터 2003년까지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는 프랑스의 메이저 갤러리 중 하나인 갤러리 드 파리(Galerie de Paris)에서 1984년부터 1995년까지 개인전을 연다. 1986년에는 퐁피두미술관에서 개최한 <일본의 아방가르드(Le Japon des Avant-Gardes)전> 에 초대된다. 1994년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무디마미술관(Fondazione Mudima)에서 개인전을 연 데 이어 구겐하임 소호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 <Scream against the sky>에 초대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갤러리 현대 그리고 인공갤러리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개최한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도록은 갤러리 현대가 금전적 지원을 편집디자인은 인공갤러리가 맡았다.
이우환은 영국의 메이저 갤러리인 리슨갤러리에서 1996년과 2004년 그리고 2008년 개인전을 개최한다. 1997년에 서두에서 알프레드 파크망이 언급했던 파리 주드폼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퐁피두에서 기획한 그룹전 <Made in France>에 초대된다. 1978년 프랑크푸르트의 스테델에서 그룹전에 초대된 이우환은 1998년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어서 1999년에는 독일의 저명한 른 루드빅미술관에서 기획한 그룹전 <Kunstwelten im Dialog>에 초대된다. 2001년에는 영국 런던의 저명한 테이트모던에서 기획한 그룹전<Century City>에 초대된다.
2003년 이우환은 삼성미술관(호암갤러리, 로댕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같은 해 그는 일본의 모리미술관에서 기획한 그룹전(Happiness)에 초대되고, 2004년 도쿄국립미술관의 그룹전 <Ecole de Limpa>에 초대된다. 2006년엔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2007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에 초대된다. 2008년 그는 <이우환 베르사유>를 후원하는 갤러리 중 하나인 뉴욕의 메이저 갤러리 페이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2011년에는 서두에서 알프레드 파크망이 언급했던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리고 2014년 베르사유궁에서 이우환 개인전이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단편적인 이우환의 전시경력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전자는 이우환이 국제적인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메이저 갤러리의 역할이다. 물론 유럽 유명 미술관에서 개최된 이우환의 개인전들 중에는 이우환 개인의 노력으로 성사된 것이 적잖다. 필자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이우환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당시 50대 말이었던 이우환은 자신의 도록들을 직접 들고 미술관 관계자를 찾아다녔다. 한마디로 이우환에게 매니저가 없었던 것이다. 와이? 왜 이우환은 매니저도 없이 혼자 고군분투한 것일까?  이우환 왈, “쓸만한 사람이 없어서…” 문득 “내 인생을 통해 80%는 인재를 모으고 기르며 교육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말이 떠오른다. 후자는 세계미술계의 권력으로 부상한 미국에서의 전시경력이다. 이우환은 유럽에서 활발한 전시활동을 한 반면, 미국에서는 2008년 페이스갤러리의 개인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시경력이 전무한 상태였다. 와이? 왜 이우환은 미국에서 통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우환 왈, “미국미술계가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필자는 <쓰리스타와 이우환>(2003)에서 이우환이 미국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작품의 외향이 아니라 이우환의 상업적 시스템 결여에 있다고 보았다. 그 대안으로 필자는 쓰리스타에게 그동안 구축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하여 이번(2003년 삼성미술관) 이우환 회고전을 미국의 유명 미술관에 순회할 수 있게끔 공격적인 마케팅을 추진할 것을 요청했다. 2011년 삼성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그는 서두에서 알프레드 파크망이 언급했던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삼성과 이우환

국내 모 일간지는 이우환이 삼성가(家)와 친분이 깊다고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1960년대부터 이병철 선대 회장과 최순우 선생 등 고미술 전문가들 사이에 심부름을 자주 하면서 인연을 쌓게 됐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과도 그 시절부터 즐겨 어울리며 답사를 다닐 만큼 절친했고, 지금도 종종 만나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아티스트는 개인이다. 따라서 아티스트는 어느 갤러리에 소속될 것인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국제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위해서는 메이저 갤러리의 서포트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 대기업의 후원 없이 국제미술계의 스타가 되기는 쉽지 않다.
이우환은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했다. 따라서 그는 이건희 회장의 고등학교 선배다. 그리고 그는 (서울대 미대를 중퇴했지만) 홍라희 삼성미술관장의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물론 홍 관장은 서울대 응미과를 졸업했고, 이우환은 동양화과를 다녔다. 1984년  《중앙일보》 창간 20주년을 맞이하여 건축된 《중앙일보》 신사옥에 중앙갤러리가 개관했다. 당시 신사옥에 공공작품을 설치할 때 이우환이 자문역할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우환은 그 이후에도 삼성미술관의 자문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단편적인 사례로 미루어 삼성은 이우환에게 후원자가 돼줬으며 이우환은 삼성에 자문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삼성미술관과 이우환은 일류를 지향한다.
2001년 이우환은 호암상을 수상하고, 2003년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대대적인 개인전을 개최한다. 지난 2011년 2월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현직에 복귀한 후 2012년 VIP 달력 작가로 이우환을 선택한다. 그리고 서두에서 인용했던 알프레드 파크망이 주목했던 두 개의 이우환 회고전(파리 주드폼과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은 삼성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파리 주드폼은 1990년 중반부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삼성의 후원을 받아 1997년 주드폼에서 이우환의 개인전을 기획한다. 삼성은 2010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삼성아시아미술큐레이터’를 설립한다. 첫 큐레이터인 알렉산드라 먼로는 미주 삼성의 후원을 받아 2011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이우환의 개인전을 기획한다.
야심 찬 프로젝트인 일명 <베르사유 현대미술전>은 세계미술계의 절대권력을 꿈꾼다. 이를테면 <베르사유 현대미술전>은 동시대미술의 대표 주자가 되는 ‘티켓’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계미술계의 절대권력을 향한 꿈을 이루는 데 재정적 문제라는 현실을 비켜갈 수는 없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의하면 재정위기로 정부 지원이 줄어든 파리의 박물관은 후원금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에 아해(세모그룹 유병언 전 회장)는 2012년 루브르 박물관에 110만 유로(약 15억3000만 원), 베르사유 궁전에 140만유로(약 19억4600만 원)를 후원금으로 기부하고, 그 대가로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궁 미술관에서 아해의 사진전이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혹자는 “프랑스 문화예술의 자존심이 자본의 논리에 영락없이 팔려나가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자본을 위해 프랑스 문화예술로 장사를 하고 있다.
베르사유궁에서 열린 <이우환 베르사유전> 개막 기자회견에서 카트린 페가르 베르사유 박물관장은 “이우환의 작품은 우리를 조용하고 매혹적인 그의 시 속으로 이끈다”고 평한다. 하지만 현지 언론 기자들은 이우환 옆에 앉은 카트린 관장에게 베르사유궁에서 개최된 <아해 사진전>에 대해 질문했다. 카트린 왈, “‘아해 전시’는 돈 받고 대관해주는 공간 ‘오랑주리’에서 열린 이벤트였을 뿐이다. 이우환 전시는 베르사유궁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매우 권위 있는 전시”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아해 사진에 관한 카트린 관장의 인터뷰는 그와 전혀 다르다. “그(아해)의 작품은 웅장하면서도 겸손하다. 한 사람이 세상, 자연, 생명을 시적으로 바라보는 점이 이례적이다”라고 평했다.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이우환의 벅찬 감회가 길지 못했을 것 같아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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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팔라조 팔룸보 포사티에 설치된 <Resonance>

위 이미지. 2008년 9월 10일부터 10월 25일까지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이우환 개인전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