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관람 권유

알아서 스케줄 정리를 해주는 스마트한 손전화기도 없다. 예쁜 손 글씨로 꾹꾹 눌러 쓴 일기장도 없다. 대신 매일 있었던 일을 간단히 메모하는 A4용지 크기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다. 펼치면 한 달 치 요일과 날짜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루 24시간이 가로세로 5cm 면적으로 구분 되어있다. 거기에 하루 동안의 일상과 기억을 저장한다. 그렇다고 완벽한 문장으로 기록하지도 않는다. 사람이름과 고유명사 그리고 숫자와 = → ※ 같은 기호를 사용해 아주 간결하게 끄적이는 수준이다. 필체는 지랄발광체.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암호문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내용은 별 것 없다. 만난 사람과 장소, 식당이나 술집이름 그리고 주종(酒種)과 안주 등 주로 먹고 마시고 떠들며 보낸 흔적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작가이름이나 전시제목 또는 갤러리/미술관 이름 따위 단서가 보태진다. 이처럼 개인적인 음주활동 내역하고 촬영·간담회·인터뷰·출장 등 회사업무와 관련된 음주활동 내역 비율이 대략 반반이다. (그나마 음주가무보다 음주잡담을 즐기는 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무튼, 이런 생활패턴에서 公과 私의 구별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사적인 만남의 시간이고, 또 어디서 어디까지가 공적인 업무의 공간인지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대목에서 기자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특히 (미술전문지) 기자들은 일반 직장인처럼 하루 종일 시원하고 쾌적한 사무실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질 못한다. 혹여 그렇더라도 일을 많이 한다거나 잘하는 게 아니다. 주말이나 휴일, 심지어 휴가 중에도 전시를 보거나 작가를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만약에 이런 경우를 일로 여긴다면 그거야말로 고역일 게다. 자기가 좋으니까, 관심이 있으니까, 진심으로 우러나서, 윗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흔쾌히 전시를 보러 다니고 밤늦도록 음주활동에 매진하는 거다.(부디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길!)
지난달 나는 이 지면에서 “제발 돈 내고 책을 사서보시라”고 말했다. 이번엔 감히 또 이렇게 권유한다. “제발 전시를 직접 관람하시라!”고. 학교에서 시키니까 마지못해 가거나, 남들이 보러 간다니까가 덩달아 따라 가는 식이 아니라, 평소에 자발적으로 자주 전시장을 둘러보길 바란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작품을 훑어보고  그 전시를 진짜로 봤다고 착각하거나 오해하지 마시라. 제 발로 전시장을 찾아가 작품 앞에  서서 두 눈으로 직접 봐야 그게 진짜다. 아무리 화질이 좋은 모니터나 인쇄상태가 좋은 도록, 잡지에서 봤더라도 그건 다 가짜다. 실제 미술작품을 본다는 것, 그것은 리얼리티와 오리지널리티 나아가 ‘아우라’를 체험하는 일이다.
이번 특집, 옛 그림에 나타난 이상향이다. 솔직히 이상향은 ‘(옛)그림’ 속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금의 현실이 비루할지라도 이상향은 분명 이 땅 위 어딘가에 있다. 어떻게 사유하고 실천할 것인가?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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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3이현주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는 한·중·일 3국의 대표 산수화를 한데 모아놓은 유례가 없는 전시다. 본지의 편집 마감날 개막(7월29일)하는 전시라 사전에 취재해야 하는 상황. 전시 직전이라 매우 바쁜 데도 기자의 자료 요청과 취재에 시간을 기꺼이 할애해 준 이현주 홍보 전문경력관. 20여 년 박물관을 알리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그는 대학원에서 홍보를 전공했을 정도다.  “열심히 일한 직원이 맺은 열매인 전시를 세상에 내놓아 반짝거리게 하는 것이 홍보”라고 말하는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이 돋보인다.

 

 

 

MM_CT장계현  갤러리 담 대표

소담한 공간을 가꾸는 아담한 주인. 염성순 작가 기사를 준비하며 하루가 멀다하게 드나들어도 한결같이 따뜻한 차를 우려 기자의 바쁜 마음을 평온히 해주었다. 통인가게에서 16년간 근무한 경력은 전시마다 휴관일 없이 혼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그녀의 우직한 인내를 대변한다. 회화, 조각, 공예를 주로 전시하는 갤러리 담은 2006년 4월 개관하여 내년이면 어느덧 10주년을 바라본다.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시점. 갤러리 담이 깊게 우린 우롱차처럼 짙은 향이 우러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오진이_Photo오진이  서울대학교미술관 학예연구사

취재를 위해 여러 미술관, 갤러리를 돌아다니지만 기자를 항상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는 이가 있다. 특히 이번 취재 때는 전화 통화만 나눠 얼굴을 모르던《월간미술》 필자와 직접 인사시켜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리고   2013년 5월호 ‘미술공부’ 특집에 필진으로 참여해 미술 공부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해 준 바 있다. 오 학예사는 2006년부터 서울대학교미술관에 재직 중이다. 주요 전시 기획으로 <기록문화: 전통에서 현대까지>(2009),    <한국전쟁의 초상>(2012), <리:퀘스트-1970년대 이후 일본 현대미술>(2013) 등이 있다.

[Column] 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은 가능한가?

1974년 <이것은 돌입니다> 시리즈를 시작으로 한국 극사실 화의 태동과 형성에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고영훈의 개인전을 계기로 ‘한국 리얼리즘의 장르와 양식 규정의 가능성 모색을 위한 콜로키움’이 지난 5월 31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렸다. 건강한 미술생태계 조성과 현대미술 전개에 필수적인 비평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한편, 한국 현대미술의 주류로 성장해 온 형상미술의 계보와 유파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양식인 리얼리즘의 맥락에서 고찰하기 위해 마련된 토론회다. 평론가 6인(김복영, 김영호, 김영순, 정연심, 정은영, 김성호)과 화가 17인(한만영, 이석주, 주태석, 김강용, 고영훈, 황순일, 김영성, 이원희, 정보영, 김남표, 두민, 권경엽, 강세경, 마리킴 등)을 논객으로 30여 명의 미술인이 머리를 맞대었다. 이 콜로키움은 ‘한국 리얼리즘’이라는 주제를 내세운 난상토론회라는 점 외에도 극사실회화의 주역들과 이론가들이 함께 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주지하듯 예술의 영역에서 리얼리즘이란 ‘객관적 현실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재현·묘사하려는 태도와 창작방식’을 말한다. 리얼리즘에 대한 논쟁은 ‘리얼리티’의 개념과 그 표상방식을 둘러싼 담론을 거치며 전개되어왔다. 논쟁의 중심에는 실재(real), 존재(being), 사실(fact), 진실(truth), 본질(essence), 현실(actuality)과 같은 철학적 개념들이 혼재하며 근대 미학과 예술학의 발전과 더불어 의미가 재규정되면서 복잡성은 가중되었다. 미술의 경우 19세기 프랑스의 리얼리즘 사조가 시대와 현실을 진실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며 출현한 이래, 사회주의 리얼리즘, 쉬르레알리즘, 누보레알리즘, 하이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 네오리얼리즘 따위가 바통을 이어받으며 변태와 분화를 계속해 왔다. 최근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와 시뮬라시옹 개념에서 제기되는 실재와 이미지 해석 방식은 리얼리즘 미술의 생태계를 전과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고 있다. 이렇듯 예술의 본성이 변화하는 현실과 존재에 대한 성찰인 이상 리얼리즘의 진화가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주제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리얼리즘 논의는 (신)형상미술의 출현과 맥락을 같이한다. ‘단색화’로 대변되는 추상미술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 이후 국내 화단에서 새로운 형상성을 보여주는 작가들이 등장하고, 1980년을 전후해 형상미술이 하나의 경향으로 정착한 이래 한국 리얼리즘 미술은 다양한 갈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형상성의 발현 현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리얼리즘은 독자적인 양식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지 못한 채 섹트주의(sectarianism)의 울타리에 가두어졌거나 서구 특정양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면이 있다. 한국의 형상미술이 민중미술이나 극사실회화처럼 이제 국제화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환경적 요인을 고려한다면 한국 리얼리즘의 특수성과 양식적 규정의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닐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가 전개되면서 미술에서 계파와 그룹이 사라지고 개별적 경향들이 부각되는 현실에서 한국 리얼리즘의 현주소를 가늠할 계보를 세우는 일은 가능할까. 또한 미술시장과 미술관의 권력이 미술현장의 경향성과 대중의 미의식을 지배하는 왜곡된 현실에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양식을 세우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번 콜로키움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제기하고 있다. 리얼리즘 포럼이 지속가능한 행사로서 담론 형성의 길잡이가 되기를 희망하며 주최 측은 한국 리얼리즘의 모색과정을 네 마디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잠정결론을 내렸다. 첫째. 한국 리얼리즘에 대한 양식적 규정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둘째. 한국 리얼리즘의 경향성을 지니는 작가군을 조사한다. 셋째. 한국의 리얼리즘 작품을 양식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는 논리적 틀을 모색한다. 넷째. 대규모의 기획전 <한국 리얼리즘전>을 개최해 담론을 전시로 구현한다. 이상의 네 마디가 하나의 프로젝트가 될 것이며 첫째 마디에 해당하는 이번 행사에서 드러난 작가와 비평가들의 관심은 차기 행사에 대한 타당성을 제시해주었다.
‘한국 리얼리즘(Korean Realism)’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동안 현상으로써 인정되어 온 다양한 리얼리즘의 계파들을 섹트주의를 넘어 장르현상으로 설정하기 위한 논리개발을 시도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한국 리얼리즘의 세계화를 위해 포괄적 외연을 갖추는 가운데 전개되어야 하는 사업일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리얼리즘의 전통적 맥락과 현대적 계승이 모색되어야 하며 단순히 외면적인 것을 넘어 현실의 본질적 측면을 묘사하기 위한 전형을 창출해야 한다. 엥겔스의 주장처럼 ‘리얼리즘이란 세부적인 묘사의 진실성 이외에 전형적인 환경에서 전형적인 성격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므로.

김영호·중앙대 교수

위.고영훈 <이것은 돌입니다 7411> 캔버스에 유채190×400cm 1974

[Column] 나전칠기의 귀환 – 고품격의 섬세한 손맛이 그리운 이들에게

옛날 할머니가, 혹은 시어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자개장롱이 기억나시는지? 1960~1970년대 중산층 여인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싶어 했던 혼수품 제1 순위가 바로 자개장롱이었다. 자개란 전복, 혹은 조개껍데기를 얇게 자른 조각으로, 자개로 장식한 나전칠기(螺鈿漆器)는 예부터 실생활에 애용되던 값비싼 전통공예품이다. 그러나 아파트 중심의 현대적 주거문화의 확산과 기능주의적인 서구 모던 디자인 양식이 유행하면서, 장식적이고 덩치만 큰 할머니들의 향수어린 자개장롱은 구식으로 치부되어 내버려지거나 처박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최근 오랜 기간 잊혔던 칠기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새롭게 우리 문화계에 화려한 귀환 행진을 벌이고 있어서 주목된다. 얼마 전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동대문시장에서 나전장식 머리핀을 구매하여 한국 나전칠기의 문화적 명성을 드높였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전시관에서 열린 특별전 <한국공예의 법고창신>에서도 나전칠기에 대한 국제 디자인계의 평가는 매우 높았다. 2011년 서울모터쇼에서 BMW가 선보인 명품 자동차 <나전칠기 BMW 750Li>는 차량의 내장재를 한국 나전칠기 장인과 협업하여 만든 것으로서 주목받았다. 이와 같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한국의 전통 나전칠기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어떨까? 아직까지 구식 자개장롱으로만 나전칠기를 기억한다면 그대야말로 모더니티 미술 디자인 양식에 매달려 있는 21세기의 구식 인간이다.
나전칠기의 기원은 중국에서 찾을 수 있으나,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나름대로 독특한 나전칠기를 제작했다. 그중에서도 고려시대의 나전칠기가 가장 고품격의 손맛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나전칠기는 전 세계를 통틀어 20여 점에 불과한데, 대부분 외국에 있다. 고려 나전칠기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천년을 이어온 빛 – 나전칠기> 특별전을 통해서였다. 이 전시에서 나전 장식 공예품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제작되었으며, 현재 고려시대 나전칠기가 국내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외국, 특히 일본에 남아 있는 여러 점의 고려 나전칠기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것이다.
최근 국외 소장 한국 문화재 환수운동에서 고려 나전칠기 환수 문제가 논의된  것은 당연했다. 올해 봄, 드디어 이러한 관심들이 결실을 보았다.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고려 나전경함(螺鈿經函) 한 점이 환수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것이다. 이번에 기증된 나전경함은 고려말 대장경 간행 때 함께 제작한 불교 경전 보관용 상자로서 전 세계에 9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옻칠한 상자의 표면에 모란당초문과 연주문 등의 섬세한 문양을 새긴 나전 조각 2만 5000여개를 붙여서 장식한 이 나전경함은 고려시대 장인의 고품격 손맛과 마음이 모아져서 완성된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고려 미술품의 정수이다. 이 나전경함의 귀환으로 인하여,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국립박물관에서 고려 나전칠기의 실물을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려 나전칠기에 버금가는 명품을 제작하려는 현대적 노력은 2001년 미국 뉴욕의 소호에 세워졌던 비움(Vium)과 같은 디자인 기업에 의해서 본격화되었다. 비움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전통 나전칠기 장인들과 현대 디자이너들의 협업은 현재진형형으로 여러 장인과 디자이너들에 의해서 꾸준히 시도되고 있으며, 그 결과 전통적인 수공예 기법과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이 조화된 현대 한국 나전칠기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호평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나전칠기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올해 봄에는 국립제주박물관에서 <빛의 예술 나전칠기전>을 열어 조선시대 왕실의 명품 나전칠기들을 소개했다. 이번 여름 부산 근대역사관에서는 <근대 나전칠기 공예전>을 통하여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우리나라 전통 나전칠기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들에서 소개된 옛 나전칠기 유물들은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나전 장식과 검은색 혹은 붉은색의 칠 바탕이 만나서 창출해낸 현란하면서도 아름답고 우아한 한국적 미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간결하고 기능적인  미에 익숙한 현대 한국인들은 최근 귀환한 나전칠기의 국제적 명성을 통해서 섬세함과 느림과 정성이라는 한국 전통 장인들의 손맛이 깃든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고품격의 손맛을 간직한 나전칠기의 화려한 전통적 아름다움을 할머니의 자개장롱 추억과 함께 곱씹으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대문화와 미적 감수성에 접목시켜 재탄생시키는 일에 다같이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주경미·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Hot People] 한국관 참여작가 전준호

우리만의 리그를 벗어나다

작가 전준호가  8월 21일부터 9월 23일까지 갤러리 현대 신관에서    ‘그의 거처’란 제목으로 전시를 연다. 2009년이후 5년만의 개인전이다. 전시 개막을 20여 일 앞두고 그를 만났다. “문경원 작가와 공동작업하면서 개인 작업도 지속해왔기에 개인전이란 틀에 부담은 없다. 다만 대중적인 컨텍스트를 간직한 채 현재 고민하는 문제의식을 녹여내는 것에 대한 짐이 있다”며 전시 소감을 밝혔다. 작가는 예술이 늘 무책임하게 ‘소통’을 외치지만 실상 시장과 유착하고 권력 지향으로 점철되는 면에 염증을 느꼈다. ‘우리만의 리그’를 벗어나는 것이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요 테마다. 문경원과의 프로젝트〈 News from nowhere〉 중 2012년〈 카셀 도쿠멘타13〉에서 선보인, 건축가 디자이너 의사 문학가 등을 만나 함께 작업한〈 Voice of Metanoia〉역시 그러한 시도였다.

전준호 (4)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업〈마지막 장인〉(위 사진)은 나무를 깎은 해골조각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2009년 도쿄 개인전에서 선보인 해골 반가사유상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전혀 다른 맥락을 지닌다. 조각 자체에 대한 경외심보다 그가 관심을 두는 점은 이 작업과 함께 전시될 소설이다. 관객은 해골의 탄생설화가 담긴 14쪽 분량의 단편소설을 읽은  후 전혀 다른 맥락으로 작품을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 자체가 신화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의 담론이 된다. 우리 시대는 일거일동이 신화로 버무려져 있다. 작가는 이런 시대에 ‘현실은 과연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물으며 현실과 신화 사이를 표현했다. 한편 오는 9월〈후쿠오카 트리엔날레〉에 선보이게 될 문경원과의 공동작업  〈묘향산관〉도 이번 전시에서 국내 첫선을 보인다. 북한에서 운영하는 중국 북경의 ‘대성산관’이라는 식당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건내거나 동료들과 예술에 대해  밤새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영상으로 풀어냈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오묘한 제3의 지대에서 펼쳐지는 예술, 사랑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다. 신화가 현실이 된 세상에서 그 중간지점을 찾는 점이 전준호의 개인 작업과도 맥을 같이한다.
문경원과 함께〈 2015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할 작품은〈카셀 도쿠멘타13〉에서 전시한 바 있는   영상작업〈세상의 저편(El Fin del Mundo)〉의 연작이다. 이 작업에 대해서는 “아직 기본적 배경만 나와 있는 상황으로 어떤 방식의 전시로 엮을지는 고민 중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시스템은 무엇이고, 그 속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이전보다 더 구체적이고 명료해진 상태”라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전준호는 현실 기반의 작업을 하면서 ‘사회적 참여의식이 강한 작가’ 혹은 ‘정치적 발언이 두드러지는 선동적인 작가’라는 주변의 평을 듣곤한다. 이에대해 작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담론을 꾸미는 작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예술과 대중의 진정한 소통 방법을 연구하며 우리의 현실과 허상을 일루전이란 시각언어로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임승현 기자

전준호는 196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의대를 졸업하고 영국 첼시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석사를 졸업했다. 1995년 송아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국, 일본, 프랑스에서 9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수많은 단체전에 참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영국 컨템포러리 아트 소사이어티, 미국 휴스턴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여섯 차례의 국내외 수상 경력이 있다.   2013년부터 작가 문경원과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으며 <2015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함께 선정되었다.

[Hot People] 한국자수박물관 관장 허동화

보자기는 내  삶과 예술의 바탕

한 장의 천으로 물건을 싸서 보관하거나 운반하는 보자기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 터키에만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조각보는 한국 고유의 것이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한복은 제작하는 과정에서 조각천이 나오기 마련인데 한국의 옛 여성들은 버려진 천 조각을 모아 보자기를 만들었다. 한국의 전통 보자기는 국내에서는 일상용품으로 치부되어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국외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와 아름다운 조형성으로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으며,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의 공로가 크다. 한국자수박물관은 1978년부터 40여 년간 미국,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55회에 달하는 전시를 열어 한국의 전통 자수와 보자기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최근 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 인근 한국자수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규방문화의 극치, 보자기>(7.7~31)는1683년 10월에 만들어진 <궁중화문자수보>를 비롯해 대표적인 소장품 80여 점을 선보였다. 올해 초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 지난해 터키 국립회화건축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도 출품돼 큰 호응을 받은 작품들이다. 허 관장은 “우리는 우리 것이 귀한 줄 잘 모르고 계속 남의 것, 서구적인 것에 치중한다.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과거와 현대를 잇는 끈으로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전과 함께 허동화 관장의 개인전(한국자수박물관 7.7~31)도 열렸다. 허 관장은 컬렉터이면서 1999년 하남 국제엑스포 초대작가로 개인전을 가진 이후 오브제, 콜라주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였다. 심지어 그가 입고 있는 옷도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버려진 옷감을 활용해 작업한 콜라주 작품과 버려진 기물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작품 40여 점을 공개했다. 허 관장은 오랫동안 조각보를 분석하다보니 원, 네모, 세모 세 가지 문양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보자기는 하늘, 땅,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이자 우주를 표현한 것이다.
내 작업도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우주를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그의 작업에는 꽃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상상의 꽃이며, 축복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보자기가 버려진 조각천을 활용한 것처럼 낡고 하찮은 물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허 관장의 작품에는 환경친화적이며, 조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한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가 진하게 배어있다. 또한 그의 작업은 작가 개인의 색채보다 몇 백 년에 걸쳐 내려온 한국의 색에 뿌리를 두고 그 가치를 재창출하는데 의의가 있다. 허 관장은 몇 십년 혹은 100여 년이 된 옷감을 수집해 이를 자르고 오려 붙여 비구상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다. 색은 조금 바랬지만 오랜 세월을 머금어 특유의 색감을 드러내는 작품의 색채는  더 오묘하다. 허 관장은 “내 작품은 나의 단독 작품이 아니다. 자연과 선조, 나의 합작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수(米壽)전을 열기도 한 그는 앞으로도 수집과 연구는 계속하겠지만 작업 활동에 보다 집중할 계획이다. 8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내 작품은 기존 작가와 다르게 특별한 제약이 없고, 자유롭다”고 말하는 허 관장은  “기존 작가들이 하지 않은 표현방법을 시도해 한국의 전통적인 미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슬비 기자

사전(絲田) 허동화는 1926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와 동국대 법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Linda Vista Paptist대, 명지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전력공사 지사장, 재향군인회본회 이사, 한국사립박물관장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사전자수연구소와 한국자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문화훈장 보관장, 제57회 서울시문화상,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 한국미술 저작상, 제15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부문(<이렇게 소담한 베갯모전>) 장려상 등을 수훈 및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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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ht & Issue] 최재은 개인전 – The House that Continuously Circulates

오래된 장소, 오래된 시간의 기억

독일과 일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 최재은의 개인전 <순환이 지속되는 집(The House that Continuously Circulates)>(6.23~9.21)이 열리는 체코 프라하국립미술관 성아그네스 수도원은 그야말로 수도원의 아우라를 고스란이 간직한 곳이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프라하 1구역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골목길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에 시끄러운 세상에서 분리된 차분함이 유지되고 있었다. 13세기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1963년부터 국립프라하미술관에 속해 전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재은의 개인전 <순환이 지속되는 집>은 이 공간의 역사와 분위기 그리고 건축적 구조 등과 맞물려 차분하지만 묘하고 또한 역설적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방문 당시 전시를 앞두고 한창 설치에 몰두하고 있던 작가는 설치된 장면을 최대한 보여주겠다며 기자와의 만남을 하루 늦추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전시는 꽤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었다. 최재은은 2008년 이 미술관에서 열린 <프라하트리엔날레(ITCA)>에 참여, 이번 전시에 대한 영감을 받고 미리 200×100cm의 일본산 종이다발을 화학처리해 수도원 뒤편에 묻어두었다. 이러한 작업과정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 <World Underground Project>의 연계선상에 있다. 평소에도 오래된 종이를 모으는 것이 취미라는 최재은이다. 약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색이 바랜 종이들은 수도원 중앙홀 전시장으로 옮겨졌다. 시간의 흐름을 담은 듯 빛바랜 종이에는 ‘1955’, ‘LUCY’ 등의 텍스트를 출력해 기록하고, 그리고 수분이 완전히 빠져나간 꽃, 암석 등을 올려놓았다. <Paper Poem>으로 명명된 이 작업은 한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하나의 서사시를 읽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한다. 비가시적인 시간의 흐름은 최소한의 작가적 개입에 의해 수도원이라는 공간과 어우러져 큰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번에 출품된 <Two Anežskys>도 마찬가지. 오래된 종이에 “YOU ARE IN ME I AM IN YOU”를 출력해 바닥에 깔고 비즈 등으로 장식한 의자와 그렇지 않은 원래의 의자를 마주보게 설치했다. 최재은은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정지된 대기처럼 잔잔히 전하고 있다. 싱싱하게 피어있는 꽃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촬영해 완전히 말라버린 꽃으로 마무리한 <Somebody is there-Nobody is there>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전시를 주관하는 프라하국립미술관의 근현대미술부 디렉터 헬레나 뮈실로바(Helena Musilová)에게 이번 전시에 대해 물었다. 올해 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체코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전>(1.25~4.21)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그다. 그는 최재은의 전시에 대해 “이곳에서 최재은 작가처럼 설치작업을 하는 작가를 초청하기는 처음”이라며 “성아그네스 수도원이라는 특정장소에서 한국인과 유로피언의 생각이 혼합된 작품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프라하=황석권 수석기자

Somebody is there, nobody is there  c-print 150×100cm 2014

Somebody is there, nobody is there c-print 150×100cm 2014

 

[Hot Art Space]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는 뉴욕현대미술관의 공모 프로그램 <YAP(Young Architects Program)>은 1998년 시작되어 칠레, 이탈리아, 터키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최장원, 박천강, 권경민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 문지방의 <신선놀음>이 최종 선정됐다. 이 작품은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15_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전>(7.8~10.5)에 출품되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야외에서 관객과 만난다. 구름을 형상화한 풍선과 나무계단, 물안개, 잔디, 트램펄린으로 구성된  <신선놀음>은 관객이 스스럼없이 지나가며 관람할 수 있다. 서울관 제7전시실에서는 최종후보군에 오른 나머지 4팀(명)의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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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샤오강

6월 14일부터 9월 10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장샤오강 개인전 <Memory+ing>이 열린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장샤오강의 이번 전시는 한국의 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최초 개인전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198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중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보낸 장샤오강의 작업세계를 엿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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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을호 (1)

부부 건축가 서을호와 김경은이 참여한 글로벌 아트 전시 <Inspiring Journey: 소재로 꽃을 피우다>는 소재에 대한 작가적 시각을 보여준다. 이에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하고 늘 쓰이고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소재를 전면에 등장시켜 그것의 존재를 환기한다. <4Havitats>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부직포를 재료로 하여 인간의 형상으로 오려낸 160장의 중첩된 통로를 지나면서 쉽게 지나치는 것이 어떻게 미적 경험으로 작용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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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k (1)

설치작가 천대광의 〈아이소핑크 Nr.1(isopink Nr.1)전〉이 6월 16일부터 7월 15일까지 스페이스K 과천에서 열렸다. 전시장 공간에 정선의<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모티프로 한 대형 구조물을 인공적 소재인 분홍색 고밀도 스티로폼 단열재 패널 300여 장으로 축조했다. 관람객은 작업 내부를 통과하며 저마다의 인공자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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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뉴엘 (1)

피규어 디자인, 패션 디자인과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아우르는 대만 팝아티스트 그룹 스테이리얼(STAYREAL)의 대표 작가 노투굿(NO2GOOD)의 첫 한국 전시가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롯데 에비뉴엘에서 열린다. 범람하는 캐릭터 이미지 속의 작가 자신을 표현한 마우지 시리즈를 대표하는 조각 20점, 페인팅 및 판화 10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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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백자 (2)

<백자대호(白磁大壺), 빛을 그리다: 김환기, 오수환전>은 백자의 미적가치가 김환기 오수환이 작품에 구현한  현대미술과 어떻게 조우하는지 보여준다. 관객은 백자를 바라보는 김환기와 오수환의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7월 16일부터 8월 17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보물로 지정된 백자 3점을 비롯, 총 7점의 백자대호가 조선청화백자와 함께 선보인다. 또한 김환기의 유화와 과슈, 그리고 오수환의 추상화와 드로잉 등이 함께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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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 (2)

또 하나의 백자전은 호림박물관에서 열린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에서 기획한 올해의 특별전 두 번째 순서인 <백자호 Ⅱ_순백에 선을 더하다>(7.1~10.18)가 바로 그것. 1부에서 순백자항아리의 단아한 면을 통해 조선의 미의식을 살펴봤다면 이번 전시는 청화·철화백자를 통해 왕실의 엄숙함(청화백자)과 자유분방한 필치(철화백자)를 엿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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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60 (2)

박소영의 개인전이 7월 7일부터 16일까지 가회동60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가회동60이 기획한 <2014한국화 힐링을 만나다전>의 일환이다. 대나무와 매화를 원으로 표현하여 마치 포도를 보는 듯한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는 이를 통해 우주와 자연이라는 주제를 구현한다. 또한 그 우주와 공간에 사색하며 거니는 작가를 그 것들과 공존하게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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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아트사이드 014

<Text &Text Monster>로 명명된 오윤석의 개인전이 7월 10일부터 30일까지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열렸다. 오윤석은 종이에 칼로 구멍을 내는 방법으로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속적으로 작업했던 <Hidden Memories> 연작을 선보이는데 작업이 곧 수행이라는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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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각 (3)

올해 처음 소장품을 미술관 문 밖으로 내어 관람객을 맞이한 간송미술관. 그 2부 전시가 <보화각(葆華閣)>이라는 타이틀로 7월 2일부터 9월 28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 신윤복의 <미인도>(국보 제135호) 등 대표적인 유물과 함께 1부에 전시되었던 주요 지정 문화재가 재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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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1)

김범수의 개인전 <tête>가 7월 3일부터 15일까지 스페이스 선+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 조각과 사진작업을 선보인 작가는 익숙한 사물을 불안정하게 배치하거나 요소를 제거하고, 비정상적인 조합을 통해 기존 질서 구조의 근간을 흔든다. 이러한 과정은 시각 위주 담론에 균열을 제기함으로써 현대미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미를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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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주_메이크샵 (3)

안정주의 개인전 <아득한 세계>가 6월 27일부터 7월 26일까지 파주 메이크샵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작가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전현직 대통령이 들고 국민 앞에 대통령직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선서하는 이미지를 구해 A4 용지에 출력하고 한 장씩 테이프로 붙여 거대한 종이 현수막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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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7)

 

한국 전위미술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이건용(1942~)의 개인전 <달팽이 걸음_이건용>이 6월 24일부터 12월 1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일환인 이번 전시는 실험성 가득한 이건용의 대표작 80여 점이 소개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는 ‘관계의 시작’, ‘신체적 회화’, 그리고 ‘예술도 소멸한다’ 3개 섹션으로 나뉘어 <신체항>, <포> 등의 초기작부터 <장소의 논리>, <달팽이 걸음> 등 화제의 퍼포먼스까지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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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 (1)

7월 4일부터 1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전시실에서 열린 <느낌의 공동체전>은 스튜디오 입주작가들이 기획과 출품에 참여한 전시다. 작가들은 이를 통해 입주작가 간 뿐만 아니라 작품과 공간, 관객 등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장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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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3)

호남대 교수이자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본부 부회장인 윤진섭이 기획한 <여름, 7일간의 난장 퍼포먼스 페스티벌_Slow Slow Quick Quick전>이 6월 27일부터 7월 3일까지 쿤스트독갤러리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사전에 짜인 기획에 의해 행사가 진행되는 형식을 벗어나 기획자의 즉흥적인 발상과 영감에 의한 퍼포먼스와 이벤트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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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경 (2)

전희경의 캔버스는 동양의 산수화를 보여주는 듯 이상향, 즉 유토피아적 요소로 가득하다. 그의 개인전 <Utopia in Emptiness>가 7월 9일부터 15일까지 갤러리 고도에서 열렸다. 전시 타이틀과 전희경의 작업에서도 보이듯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제3의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이상을 좇지만 결국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는 우리의 지금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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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이 (1)

이윤이의 첫 개인전이 6월 20일부터 7월 27일까지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렸다. 출입문이자 회전하는 하모니움으로 관객과 조우를 꾀하고 관람객이 전시장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게 했다. 작가는 전시와 관객 사이에서 벌어지는 담화를 담고 있으며 그 속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알레고리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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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면_자하 (2)

‘공화(共和)의 터에서 움트는 유위(有爲)의 공동체’라는 다소 난해한 전시명을 내세운 강용면의 개인전이 7월 4일부터 27일까지 자하미술관에서 열렸다. 출품작 <현기증>은 고은의 시 <만인보>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수많은 이의 두상을 모아 설치한 것으로
폭 15m에 달하는 대규모 작업이다. 이는 각각의 개인이 동등한 자아로서 그것의 유기적 집합체가 이루는 이상적 공동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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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강 (1)

홀씨의 이미지를 통해 역동적인 생명력을 표현하는 작가 김선강의 10번째 개인전 〈생명 사랑〉이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 자기 전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작가는 생명의 창조적 과정을 보여준다. 한지를 가득메운 채색이 또 하나의 여백으로 읽힐 수 있도록 얽매이지 않은 열린 공간을 창출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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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 (1)

옻칠로 회화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가 성태훈의 개인전이 7월 16일부터 29일까지 갤러리 이즈에서 열렸다. ‘날아라 닭’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작업실에서 키우던 수탉이 날개를 파닥거리다가 나는 모습을 쫓으며 시작된 작업들을 선보인다.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와 모순을 우화적 소재와 옻칠이 주는 짙은 질감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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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4)

2013년 문신미술상을 수상한 고정남의 초대전 <새총 곰의 초대>가 7월 4일부터 8월 13일까지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곰을 소재로 유년시절 천진난만함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특별기획] 이상향, 그들이 꿈꿨던 어딘가 있을 그곳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자신이 있는 시공을 초월하여 보다 나은 공간과 상황을 꿈꾼다 즉 이른바 이상향을 꿈꾼다는 것이다 그 꿈의 내용은 역사적 상황과 문화환경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 말은 이상향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그 수치를 가늠할 수 없음과 같은 의미이리라 이러한 이상향을 주제로 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대표작이 모였다  7 월  29일부터 9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중국 상하이박물관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중 이상향을 주제로 한 대표 산수화 40여 건을 선보인다. 이에 맞춰  월간미술 은 고미술품에 드러난 이상향을 주제로 특집을 내보낸다. 이번 전시의 프리뷰와 각 섹션에 대한 설명을 담아 전시장을 찾을 독자 여러분이 좀 더 진중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이상향을 그린 작품이 산수와 만나 일으키는 화학작용과 그것의 구성에 대한 내용과 이유를 밝힌다 마지막으로 현재 이상향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글을 싣는다. 이상향을 꿈꾸는 것조차 버거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는 의미다.  이상향의 모습은 작가의 수만큼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그 초월적 존재에 대한 동경은 인간이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더 강렬해지지 않을까?    비록 동경의 대상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추락할 것을 알지라도 말이다.

이상향의 대표적 상징

<소상팔경도>는 중국 호남(湖南)성의 동정호(洞庭湖) 남쪽 소수와 상수가 합류한 곳의 절경을 장면으로 그린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전래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그려졌으며 일본에도 전달되어 또 다른 양식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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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징명(文徵明, 1470~1559)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비단에 먹 24.3×44.8cm(각) 명(明) 16세기 상하이박물관 소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연사만종(煙寺晚鐘)> <산시청람(山市晴嵐)> <원포귀범(遠浦歸帆)> <강천모설(江天暮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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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창(董其昌, 1555~1636)  <연오팔경도(燕吳八景圖)>
비단에 채색 26.1×24.8cm(각) 명(明) 1596 상하이박물관 소장 동기창의 초기작으로 귀향을 앞둔 고향 친구 양계례(楊繼禮)를 위해 그렸다.
‘연(燕)’은 베이징을, ‘오(吳)’는 고향 ‘송강(松江)’을 가리킨다.
사진 왼쪽부터 <성남구사(城南舊社)> <서산추색(西山秋色)><방재후월(舫齋候月)> <서호연사(西湖蓮社)> <구봉초은(九峰招隱)> <서산모애(西山暮靄)> <서산설제(西山雪霽)> <적벽운범(赤壁雲帆)>

정선장동팔백운동-1정선장동팔창의문-1

정선(鄭敾, 1676~1759)  <장동팔경도(壯洞八景圖)>
종이에 담채 33.7×29.9cm(각) 조선 18세기 <백운동(白雲洞)>(왼쪽) <창의문(彰義門)> 인왕산과 백악산 일대를 장동이라 일컫는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산수를 이상향으로 삼아 그린 작품이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다

 18세기 조선의 위정자와 지식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사람과 자연이 벗되어 살면서 경제적인 부를 누리는 장면을 통해 그들이 생각한 현실적 이상향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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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李寅文, 1745~1824?)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비단에 담채 43.9×856.0cm 조선 18세기 폭이 8m가 넘는 대형작품인 <강산무진도>는 김홍도와 쌍벽을 이뤘던 이인문의 대표작이다.
산 아래 배가 정박해 있는 마을과 인물이 다양한 준법으로 표현됐다. 궁중 소장품으로 그렸다고 추정되며 이에 따라 조선 후기 위정자가 바라던 이상향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존경하는 그가 머물렀던 그곳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는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자(朱子, 1130 – 1200)가 찾은 중국 무이산(武夷山) 구곡계(九曲溪)의 경관을 그린 것이다. 현인의 거주 장소를 그려 우회적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8월 특집 사진1

8월 특집 사진2

8월 특집 사진3

이성길(李成吉, 1562~?)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비단에 담채 33.5×398.5cm 1592 두루마리 형식의 작품으로 계곡을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1곡부터 9곡까지 연결되어 있다. 조선 초기 안견(安堅)파 화풍과 명(明)대 절파(浙派)의 화풍이 절충되어 있다.

은자(隱者)의 삶을 살다

은거의식은 산수화가 문인들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되었다. 도연명(陶淵明)이 상징적인 인물로 전해지며 그의 행적과 시구는 이후 수많은 문학과 회화의 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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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 전선  <귀거래도(歸去來圖)>
종이에 채색 26.0×106.7cm 원명(元明) 14~15세기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mage source: Art Resource, NY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주제로 그린 작품. 이 작품은 남송(南宋) 말부터 원 초에 활동한 전선(錢選, 1235?~1307?)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왼쪽의 제시(題詩)는 전선이 지었다.

여기가 내가 머물 낙원인가 하노라

정치와 제도는 현실을 이상적인 곳으로 만드는 데 있어 걸림돌일지 모른다.
그러한 시스템의 속박을 벗어나 오로지 인간의 본성에 충실할 수 있는 곳,
그곳도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이었다. 그러한 꿈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드러나 있으며 그것을 그린 <도원도(桃源圖)>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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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오카 데사이(富岡鐵齋, 1836~1924)  <무릉도원도(武陵桃源圖)>
종이에 색 178.0×365.0cm(각) 일본 메이지(明治) 1904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봉래선경도(蓬萊仙境圖)>와 교체 전시된다.

[특별기획] 동아시아의 꿈을 담은 전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이상향을 주제로 한 작품을 한데 모았다 각국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동일한 주제의 작품을 나라와 문화권과 연계해 비교하며 볼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가 가진 의의라 하겠다.

박은순・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뜨거운 폭염으로 심신이 수고로운 한여름을 맞아 많은 사람이 몸과 마음의 피로를, 삶의 피로를 덜어낼 휴가를 꿈꾼다. 멀리 떠나는 휴가가 아니더라도 이 여름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고 하여 마음이 설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때로는 예술에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담아왔으니,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는 한중일 선조들이 마음속에 품어왔던 이상향에 관한 전시이다. 이 전시는 한중일을 대표하는 100여 점의 산수화 작품을 모아 비교, 전시하면서 동아시아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감상하고, 이루어온 예술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특히 세계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된 중국회화 명품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최초의 기회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된다. 또한 중국회화 소장품으로 유명한 상하이박물관 소장 작품도 여러 점 전시되며, 일본의 대표적인 국립박물관인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일본작품들도 전시되어 유사한 주제를 다룬 한중일 삼국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의욕적인 기획이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성숙해가는 모습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전시는 대규모의 전시답게 전체 내용을 일곱 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진행하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각 주제를 따라 가면서 주요한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 내용을 간단히 살펴 보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 주제는 ‘이상향으로 가는 길’이란 개념으로 전시의 프롤로그가 될 것이다. 한중일 삼국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서화 및 각종 시각예술품을 통해서 이상향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는 전통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제에 만들어진 <산수문전>과 작품을 통해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산수문전>에는 고대의 이상적인 산수 표현을 대변하는, 세 봉우리를 가진 삼산형의 산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공간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공간은 아마도 신선들이 살았던 봉래산이자 현존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름답고 영원한 이상향에 대한 개념을 시각화한 대상일 것이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시작된 이상향을 시각화하는 전통은 회화작품을 통해서 꾸준히 이어지면서 한국 특유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김홍도(金弘道)는 풍속화가로 유명하지만 유명한 고사나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작품도 자주 그렸다.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는 세상사를 벗어나 근심 걱정 없는 삶을 살고자 하였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이루기 어려운 꿈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화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사람들이 꿈꾸었던 방식대로 이상향을 시각화하는 전통이 존재하였다.
두 번째 주제는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장소들을 더욱 이상화해 그려 늘 감상하고자 하였던 작품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대변하는 주제 및 작품은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이다. <소상팔경도>는 중국 최대의 호수인 동정호(洞庭湖)로 흘러들어가는 여러 물줄기 가운데서 가장 이름난 절경이었던 소수와 상수가의 아름다운 경관을 담은 산수화이다. 소상팔경은 소수와 상수 주변 이름난 경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덟 곳의 경치를 선별하여 이르는 것으로 중국 후난(湖南)성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다. 필자는 어느 해 더운 여름 이 여덟 곳을 답사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남한만한 면적의 후난성 전역을 8일에 걸쳐 버스로 답사하면서 빡빡한 일정으로 벅찼던 기억이 난다. 즉, 이 아름다운 여덟 곳은 실재하는 장소들이지만 차도 없던 그 옛날 이 장소들을 방문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아름다운 명승 금강산 여행을 꿈꾸면서 금강산도를 그리고 감상하였던 것처럼 중국사람들도 <소상팔경도>를 그리고 감상하였을 것이다.
중국에서 11세기경 그려지기 시작한  <소상팔경도>는 특히 문인계층에게 선호되면서 후대까지 비교적 꾸준히 제작되었다. 중국에서 그러하였듯이 소상팔경은 시문(詩文)의 주제로도 선호되었다. 따라서 <소상팔경도>는 시화 (詩畵)일치를 대표하는 산수화의 주제이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명대의 대표적인 문인화파인 오문화파(吳門畵派)의 대가 문징명(文徵明)이 그린 <소상팔경도>를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상팔경도>는 고려시대 11세기 중엽 이후 소개되면서 꾸준히 애호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상팔경은 꿈에서만 갈 수 있는 이상향이었다. 중국 사람들에게 명승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야말로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그래선지 <소상팔경도>는 어쩌면 중국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욱 많이 제작, 감상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15세기 이후 19세기까지 <소상팔경도>는 관념산수화의 대표적인 주제로서 지속적으로 제작, 감상되었다. 그리고 이상적인 명승을 대변하는 소상팔경의 전통은 18세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한양 장동의 아름다운 팔경을 그린 <장동팔경도(壯洞八景圖>까지 그 여맥이 이어졌다.
세 번째 주제는   ‘현인이 놀던 아홉굽이, 무이구곡도’이다. 무이구곡(武夷九曲)이란 남송대 주자학의 창시자 주자(朱子)가 중국 푸젠(福建)성에 있는 명산인 무이산에 은거하면서 아홉 굽이의 물줄기를 구곡이라 명명한 것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시대였고, 주자는 성리학의 연원이 된 신유학, 주자학의 창시자로서 지속적으로 존경받았다. 성리학과 그 시조인 주자에 대한 존경은 주자가 살던 무이구곡을 본따 이이(李珥)가 황해도 은거지에 고산구곡(高山九曲)을 설정하거나 주자가 지은 <무이구곡가>를 본따 <고산구곡가>를 짓는 등 특히 16세기 이후 조선 선비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무이구곡을 그린 <무이구곡도>를 본따서 조선에서도      <무이구곡도>를 그리는 일이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의미있는 명승의 실경으로서 <무이구곡도>가 그려졌다고 한다면 조선에서는 이상적인 학자 주자가 살던 이상적인 장소로서 무이구곡에 대한 상상과 흠모를 전제로 그려지고 감상되었던 것이다. 즉, 시적인 영감을 일으키는 명승으로서의 <소상팔경도>와 또 다른 맥락에서 성리학의 이상향으로서의 <무이구곡도>가 존재하였다.
1592년 선비화가 이성길이 그린 <무이구곡도권>, 16세기에 제작된 필자 미상 <주문공무이구곡도>, 1915년에 제작된 채용신의 <무이구곡도> 등은 조선시대 성리학적 관념의 이상향으로서 무이구곡에 대한 열망과 흠모를 담고 있다. 또한 중국 청나라 때의 정통파 문인화가 왕휘가 그린 <무이첩장도(武夷疊嶂圖)>는 위의 작품들과 달리 단폭에 그려진 작품으로서 중국과 조선 무이도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비교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죽주거

포기하지 않은 꿈
네 번째 주제는 ‘태평성대를 품은 산수’로서 시대를 초월한 이상으로서 훌륭한 정치가 이루어진 태평성대에 대한 이상을 담은 작품들이다. 이러한 이상은 때로는 현실적인 실경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러한 시대에 대한 꿈을 담은 관념적인 산수화가 될 수도 있다. 18세기에 제작된 두 작품은 대조적인 두 가지 경향을 보여준다. 궁중에서 활동하던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태평성시도  (太平城市圖)>는 왕도정치가 이루어진 시절 번성하는 수도에서 살고, 노동하고 즐기던 백성들의 삶을 이상화해서 표현하였다. 그려진 건축물과 사람들의 모습은 중국인지 조선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결국 가장 평화로운 시절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는 백성들의 모습과 사회적 환경을 시공을 초월한 모습으로 표현한 풍속화이자 산수화이다. 이러한 작품이 정치적, 사회적 이상을 좀 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재현하였다고 한다면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무궁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을 모든 상상력을 다 동원하여 이상향에 대한 최대한의 가능성을 펼쳐본 작품이다. 이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경치를 누린다는 것은 곧 가장 이상적인 삶이고, 그러한 삶을 누린다는 것은 곧 태평성대의 도래를 통해 현실 속의 이상향을 만나는 것이리라. 18세기 말 정조연간 최고의 산수화가로 이름이 높았던 이인문(李寅文)은 당시 사람들이 꿈꿀 수 있었던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자연경을 창조하였다. 이 대작 속에는 당시 유행한 남종화(南宗畵)뿐 아니라 북종화(北宗畵)의 다양한 소재와 기법이 총체적으로 동원되었으며, 안정되고 번성하던 정조연간의 시대적 자신감과 예술적 수준이 성공적으로 담겨 있다.
다섯 번째 주제는 ‘자연 속 내 마음의 안식처’로서 자연 속에서 은거하는 이상적인 삶을 다룬 작품들을 전시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주제를 대표하는 화제로 <귀거래도(歸去來圖)>는 중국 육조시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은거하는 삶을 구가하였던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유래했다. 명나라 초에 제작된 작자 미상의 <귀거래도>는 중국에서 제작된 <귀거래도>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참고가 된다. <귀거래도>는 조선 초부터 말까지 꾸준히 제작되면서 조선 선비들의 이상을 담아냈다. 또한 19세기에는 전기(田琦)의 <매화초옥도>와 이한철(李漢喆)의 <매화서옥도>에서 확인되듯이 중인 여항화가들이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를 자주 그렸다. 이 또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시절, 즉 겨울로 은유되는 시절에 깊은 산중에 은거하며 자신의 뜻을 펼 날을 기다리는 은자의 삶을 재현한 화제이다. 여항화가들은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한계에 갇혀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중인의 고뇌를 이러한 화제를 통해서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여섯 번째 주제는 ‘도가적 세계관 속 이상적인 산수’이다. 도가적 이상을 잘 반영한, 가장 애호된 화제는 <도원도(桃源圖)>였다. 도원도는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유래된 화제로서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사는 도화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복사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도화원의 경치를 부각시켜 그리거나 현실과 유리된 장소로서 도화원을 그린 작품이 조선시대 내내 제작되었다. 물론 중국에서도, 또 일본에서도 도화원은 꾸준히 재현되었다. 불교에서 서방극락정토가,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천국이 이상향이라고 한다면 한중일 동아시아의 선조들에게는 도화원이 그러한 이상향에 해당하였다.
중국화가 정운붕의 <도원도>와 20세기 초 일본화가 도미오카 데사이가 그린 <무릉도원도>, 조선 초 화원 안견(安堅)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그리고 19세기 화원 안중식(安中植)이 그린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는 곧 그러한 곳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뜻을 담은 작품들이고, 동시에 어쩌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열망, 혹은 그러한 이상향을 현실 속에 이루고 싶은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한 꿈이란 현대인이 꿈꾸는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더운 복날 따사롭고 기분 좋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복사꽃이 활짝 핀 시절은 그저 먼 꿈이야기만 같다. 도원도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나 꿈을 꾼다. 언젠가는 나도 그러한 곳에 살리라는.
일곱 번째 주제는 에필로그로서 ‘현대미술 속 재해석된 이상향’을 재현한 작품들이다. 이상향이란 시대를, 국적을, 민족을 초월하여 인간이 꿈꾸는 파라다이스이다. 선조들이 지녔던 이상향에 대한 소망은 시대를 초월하여 20세기,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련한 봄날을 그린 이상범의 작품 속에, 낙원을 꿈꾼 백남순의 작품 속에,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로 표현된 장욱진의 풍경에도 이상향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인간의 꿈이 시대적 경향을 통해서 변화된 채로, 그러나 그 본질만큼은 영원히 변치 않은 채로 우리의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한 이상향에 대한 우리의 시각화는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견하면서 전시장을 나오게 될 것이다. ●

도원문진

 

[특별기획] 산수화로 그린, 이상향의 꿈

이상향은 왜 산수화로 표현되었을까?
우리는 그 의미를 알아야 할 이유가 있다 산수는 사람들이 꿈꾼 다양한 이상을 품고 있으며 그것을 소재로 그린 그림은 그 다양함을 담을 수 있는 것이었다 현실 너머의 그곳에 대해 알아본다.

고연희 ・미술사

산수화의 ‘산수(山水)’란, 처음부터 자연 속의 자연이 아니었다. ‘산수’란 오히려 인공의 개념이었다. ‘산수’는 현실적인 욕심이 제거된 청정한 도덕이요, 시비를 따지는 소리가 없는 고요함이며, 나아가 우주적 순리의 실현체로 인정받았다. ‘산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문명의 속도보다 지혜롭고 사회적 성취보다 현명한 사람이라, 말하자면 그 고상하고 뛰어남의 정도가 비현실적인 사람을 뜻했다. 손에 꼽을 만한 동아시아의 성현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모두가 산수를 배울 만한 개념으로 정의했고, 좋아하기에 가장 마땅한 대상으로 제시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즐기고 어진 자는 산을 즐긴다”고 한 공자의 요산요수(樂山樂水)나 아래로 흐르는 물의 덕을 지목한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가 모두 고전의 상식으로 전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속된 기운(俗韻)이 없고, 본성이 산과 언덕(邱山)을 좋아했지”라고 말한 5세기의 도연명     (陶淵明), “그대가 정치를 안다면, 나는 구학(丘壑)을 더 잘 안다”고 자부한 같은 시절 사유여(謝幼輿)가 속된 현실과 고상한 산수의 대비를 정확하게 표현했다. 11세기 송나라 최고의 산수화가로 활약한 곽희(郭熙)는, 산수로 나가지 못하는 관료를 위하여 산수화가 필요한 현실사정을 역설하며 산수화를 널리 진작시켰다. 조선의 모든 선비는 산수를 사랑하노라고 시로 읊었고, 심지어 산수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에 깊은 병이 들었노라고 한탄했다. 그들은 관직을 떠날 의향이 없더라도 오직 산수를 사랑하노라고 읊음으로써 내면의 고상함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그치지 않았다. 산수는 지고한 이상(理想)으로 의심 없이 인정되었다.
‘산수화’란 이러한 ‘산수’를 담은 그림이다. 동아시아 문명사에서 지식과 권력을 획득한 이들이 산수화를 꾸준히 요구했던 근본적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보기 좋게 산이 솟고 맑은 물이 흐르는 산수는, 현실적 문제가 말끔하게 사라진 곳이며 선량한 사람이 머무는 곳이다. 현실 너머로 펼쳐낸 꿈이나 특정한 이상사회의 소망이 있으면 산수화로 표현되었고, 그 가운데 어떤 테마는 산수화의 주요한 화제가 되었다.
동서고금의 사람들은 현실의 부족이 충족된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 동서의 역사 속에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이상세계를 보면, 그 시절의 정치사회적 모순이 사라진 사회이거나, 이데올로기가 제거된 곳, 혹은 억눌린 욕망을 마음껏 향유하거나 아예 인간적 시공간의 제한이 없는 절대영원을 향유하는 곳 등 다양한 모습이다. 동아시아에서도 극락정토나 불로불사의 선계 등 절대시공을 추구하는 종교적 상상세계가 있었고 현실사회 및 철학분야에 집중한 이상향도 여려 형태로 구축되었다.
유가와 도가의 사유방식에 근거한 이상향의 주제는, 현실 너머의 이상을 꿈꾸는 지식인의 산수 지향 개념과 근본적으로 일치했다. 산수화는 문학작품 못지않게 이러한 이상향을 담아내는 멋진 그릇이 되었다. 말하자면 산수화는 다양한 이상향을 표현하는 시각매체로 풍성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 예컨대 정치사회적 문제가 제거된 ‘도원(桃源)’, 지상 최고의 풍경으로 동경된 ‘강남(江南)’경, 성리학적 이상을 담은 ‘무이(武夷)’계곡과 군자로 추앙받은 사마광의 독락원(獨樂園), 도가의 최고경지 ‘선경(仙境)’ 등이 산수로 그려졌고, 이에 더하여 조선후기 중인들이 완벽한 아(雅)의 실현을 그린 산수화와 조선후기 학자들과 국왕의 비전으로 빚어낸 강산무진   (江山無盡)이 모두 이상경을 그려내어 회화사에 빛나는 산수화 작품들이다.
‘도원’(桃源)을 찾는 바람.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기록된 도원은 무릉 깊은 산에 자리한 상상의 마을이다. 길 잃은 어부가 우연히 입구를 찾아냈다는 도원은, 자급자족하는 작은 농촌이라 정부의 횡포가 없고, 국제 간 왕래가 불가하여 전쟁이 없는 곳이다. 도원은 폐쇄적이며 정태적인 사회였지만, 그 기원이 노자의  《도덕경》에 제시된 소국과민(小國寡民)에 이르고 이후로는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나 두보의 <위농(爲農)> 등 한・중・일의 모든 문인이 노래하였을 만큼 동아시아에서 오래오래 지속된 이상향이었다.

산수와 이상향의 만남
복숭아꽃잎 흩날리는 분홍빛 산수 속에 착한 농민들이 거주하는 전원풍경으로 떠오르는 도원은, 한중일의 산수화로 수없이 제작되었다. 그 가운데 어부가 도원으로 드는 장면이 가장 많이 그려졌으니, 도원을 찾아들고픈 꿈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나라 고려로부터 기록되는 청학동(靑鶴洞)의 전설이 모두 도원의 꿈을 반영한 상상이었으며, 조선초기 왕자 안평대군이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도원에 드는 꿈으로 선포하고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한 데서도 도원이 멋진 이상세계의 대명사로 통용된 사정을 보여준다.
‘강남(江南)’에의 동경. 모든 이상은 현실에서 비롯한다. 어떤 현실은 거부되고 어떤 현실은 과장되면서 이상이 만들어진다. 직접 갈 수 없기에 이상화된 곳으로,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과 서호십경(西湖十景) 등이 있었다. 소강과 상강이 흘러드는동정호나 서호가 자리한 항주는 중국에 실재한 풍경이지만, 중국뿐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이곳에 대한 동경이 깊어지면서 이상향으로 정착되었다. 세계의 중심을 중국이라 여기던 시절, 중국 양자강 남쪽의 ‘강남’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수로 인정되었다.
호수의 수평선이 하늘과 이어져 망망한 ‘강남’경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가을달이 뜨고 기러기가 내려앉는 상상 속에 펼쳐지는 평화로운 풍광들은 한중일 산수화의 주요한 테마로 수백 년 동안 그려졌다. 특히 소상은 순임금의 아내들이 나란히 숨진 열녀 미담으로 조선에서 각별한 의미가 부여되었고, 효녀 심청이 인당수로 가는 길에 유람하는 꿈의 공간이 되었다. 민화라 불리는 산수화에서도 소상팔경은 가장 많이 그려지던 주제였다.
존모하는 사람이 머물던 곳.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면, 그들에 대한 이상화와 맞물려 그 공간도 이상화되기 마련이다. 주자성리학에 매료된 조선 학자들은, 주자의 시 <무이도가>(武夷棹歌, 무이계곡 뱃놀이)를 읽으면서 무이산 계곡을 굽이굽이 돌며 단계단계 철학의 경지가 오르는 만족을 꿈꾸었다. 무이산의 아홉 계곡을 상상한 <무이구곡도>를 보고, 이황 선생은 눈물을 흘렸고 그의 제자 정구는 감동으로 탄식하였다. 조선의 학자들에게 무이구곡은 대스승의 숨결이 감도는 곳이요 학문성취의 경지였다. 조선후기 이익이 병중에 무이산을 보고자 강세황에게 그림을 부탁하고, 국왕 정조가 김홍도에게 무이산 그림을 요청한 이유이다. 무이구곡은 민화라는 범주에서도 실로 많이 그려졌다. 굽어지는 물길을 따라 배에 탄 주자의 모습으로 점철된 무이구곡도는 철학의 이상을 담은 감동의 산수화였다.
이외에도, 공자의 태산 등반, 제자 증점이 꿈꾼 기수의 물놀이, 왕유의 망천, 소동파의 적벽, 주렴계의 연못, 백거이와 사마광의 정원 등 대학자 대문인과 함께 하고픈 꿈이 산수의 이상경으로 그려졌다.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던 시절《  자치통감》을 저술하며 정원 독락원(獨樂園)을 경영했고 그 내용은 <독락원기>로 전한다. 독락원은 중국 명나라 문인들의 요구 속에 구영(仇英)이 여러 차례 그렸고, 조선후기에도 거듭 그려졌다. 이러한 그림들은 수백 년 전 공간에 대한 상상이며 당시 조선학자들이 누리고 싶어 한 정원이나 산수경의 이미지였다.
신선의 경지, 선경(仙境). 신비로운 식물과 동물, 불사의 선약, 신선과 선녀가 노니는 곳으로의 상상을 하노라면, 유한한 인간의 운명이나 현실의 질곡을 모두 잊고 무한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선의 경지는 실존하지 않은 고대의 신화로부터 실존한 인물의 신비화가 어울리며 이미지화되어 실로 오랜 역사를 가진다. 중국 한나라 박산(博山)의 상상에서《  산해경》,       《  장자》 등의 언급을 거쳐 조선시대 유선시(遊仙詩, 신선계를 노닐다)로 드러나는 조선 학자들의 선계 유람 상상이 어울려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신선경이나 신선을 그리는 그림, 잘 익은 반도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린 서왕모의 요지를 그린 그림 등이 모두 현실을 잊는 행복을 공유하게 해주었다. 산수화로 그려진 신선산의 풍경은 먼 바다 속 신비로운 산으로 표현되었으며 뿌리가 가늘고 위가 넓어 오르기 어려운 오묘한 형태로 그려지기도 했다.  봉래 ·영주· 방장이란 기록을 바탕으로, 신선경은 ‘봉래선경’이라 불리기도 했다.
중인의 ‘아(雅)’ 추구. 지위가 높고 고결한 사람들의 행위를 ‘아(雅)’라고 부른 역사가 깊다. 우아하고 고아하다는 의미의 아(雅)란, 속(俗)의 반대말로, 옛 문인들이 추구한 이상의 개념이었다. 조선후기에 ‘아’를 간절하게 바라고 표현하는 문화그룹이 등장한 것은 주목할 만한 문화현상이다. 이들은 사회신분이 중인이라 양반사대부에 속하지 못했지만 경제적 성취로 문화적 수준도 높았기에, 그들 자신의 모습을 ‘아’로 표현하여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들이 향유한 산수화를 보면, 실로 고상한 운치로 그려진 그들의 아집(雅集)이 있고, 산수 속에서 하염없이 독서를 하는 비현실적 장면도 있다. 산수에서 시간을 잊은 독서 ‘산중독서(山中讀書)’나, 이른 봄 매화 가득 핀 산속의 독서 ‘매화서옥(梅花書屋)’은 환상경이었다. 눈 향기의 밤바다를 연상케 하여 ‘향설해     (香雪海)’라 불린 매화서옥은, 간절한 바람이 만든 특별한 이상향이었다.
학자와 국왕의 비전, ‘강산무진.’ <강산무진도>는 특기할 만한 산수경이다. 기이한 산수가 펼쳐진 가운데, 시끌벅적한 수레 소리, 나귀 굽 소리, 도르레를 돌리는 함성이 산속 구석구석까지 진동하는 그림이라, 이 그림의 산수는 청정하고 고요하지 않고, 폐쇄적이고 정태적이지 않다. 백 척도 넘는 거대한 배들이 정박하고 드나들며 산비탈로, 폭포 뒤로 유통과 건축이 이루어지며 곳곳에서 수레가 돌아간다. 당시 조선에는 수레와 배와 나귀가 이렇게 발달하지 않았다. 튼튼한 배를 만들라 당부하고 요동과 심양까지 이르는 수레길을 꿈꾸었던 국왕 정조의 비전을, 이 그림 속에서 엿보게 된다. 정조 시절 우리산천은 관동절경으로 인기를 누렸기에 우리 국토 깊숙한 곳에 대한 국왕의 상상은 기암절벽이었다. 국토 깊은 곳까지 파고든 개발과 유통의 비전이 <강산무진도>로 표현되었다. 이 그림은 위정자의 이상이 반영된 문명추구의 산수화이다. 현실문명을 제거시켰던 오랜 산수화의 이상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산수 속 이상, 그리고 우리
‘산수’란 그 자체로 현실 너머의 이상이며 초월이었다. 그곳은 생각으로 빚은 ‘이상한 나라’였다. 그 속에는 가장 멋진 산수경이 펼쳐지고 훌륭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산수의 이상은, 사람들이 꿈꾼 다양한 이상향을 반영할 수 있었다. 산수화로 그려진 이상의 표현 속에서 우리는 그 시절의 결핍을 보고 그 결핍에서 자란 꿈의 형상을 만나보게 된다. 그 꿈과 이상은 현실을 왜곡하기도 하고 가끔 공허한 메아리로 울리는 것도 감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공허함 속에서 반짝이는 빛줄기는 우리에게  영감의 원천과 삶의 위안을 준다. 이상과 꿈은 고금과 동서를 초월하여 인간이 공유하는 또 다른 하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전근대기의 산수화에 구현되었던 이상향의 모습은 근현대로 오면서 그 모습과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 성서적 파라다이스가 우리의 꿈에 포함되었고, 전통시대의 간절했던 이상은 과거의 아련함이나 푸근함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꿈이 되었다.
7월 말에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 없었던 이상한 산수와 그 속을 노니는 이상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 안에 산수화의 정수가 있었고, 그것은 옛 시절 꿈과 바람의 극점이었다(필자는 이 특별한 전시의 오픈을 기다리는 한 명의 관람자로서, 함께 관람하실 분들을 위한 작은 안내의 역할을 기대하며 이 글을 썼다.). ●

도 8) 소아미, 소상팔경(오른쪽)

소아미(相阿彌, ?~1525)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종이에 먹 173.4×370.8cm(각) 일본 무로마치(室町) 16세기 전반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mage source: Art Resource, NY 일본식 6폭 병풍에 그려진 <소상팔경도>. 강남의 습윤한 경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위·이한철(李漢喆, 1812~1893?)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종이에 담채 138.3×198.3cm 조선 19세기 1981 이홍근 기증 매화나무 사이에 가옥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선비를 그린 전형적인 매화서옥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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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을 기획한 권혜은 학예연구사

“큰 구성 속에 한중일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_MG_2281이번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전>은 아시아의‘이상향’을 주제로 한 흔치 않은 전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이유와 그 과정, 그리고 미술사적 의의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상향(理想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오랫동안 널리 애호된 회화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이번 전시는 이상향을 그린 한·중·일의 정통 산수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전시로, 동아시아 회화의 큰 흐름 속에서 형성된 이상적인 삶과 사회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기획하였다. 회화 전시는 일반적으로 작가나 화파, 장르를 주제로 하는데, 이상향이라는 주제로 산수화전을 개최한다는 점에서 외국에서도 드물다고 한다. 회화를 카테고리를 벗어나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전시하는 것은 박물관 입장에서도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지만, 우리 박물관이 꼭 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이상향을 주제로 한 한·중·일 3국의 작품이 모였다. 모두 중국문화권이라 주제나 모티프, 그리고 형식이나 구현방식이 같거나 비슷한 작품도 눈에 띈다. 그래서 혹자는 이번 전시에 대해“중국회화에 드러난 이상향이 한국과 일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볼 기회”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공통된 문화를 공유했다고 해서 모두가 중국회화의 영향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주자에서 비롯된 무이구곡은 조선에 들어온 이후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등의 영향으로 조선만의 구곡문화를 형성한다. 성리학이 뿌리내리면서 중국보다도 다양한 구곡도가 성행한 것이다. 오히려 이처럼 같은 주제라도 세 나라의 문화권에서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그렸는지 비교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전시에서도 큰 구성 속에 한중일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실제 전시작업을 하면서도 서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세 나라의 작품이 잘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전시 기획도 그런 방향으로 구성하였다.

이른바 이상향을 그렸다고 한다면 흔히 관념산수를 떠올린다. 그 의미를 살펴본다면?
중국의 문인 종병(宗炳, 375~443)은 산수의 아름다움과 감상 작용을 중요시하고, 산수화를 보는 것은 “정신을 펼쳐내는 것(暢神)”이라 하여 산수화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산수화를 곁에 두고 감상하며‘마음을 맑게 하고 도를 본다(澄懷觀道)’는‘와유(臥遊)’의 정신은 산수 자체에 도덕성과 자연미를 부여하고 이를 그린 산수화의 심미 작용과 나아가 교육기능까지 인정되어 산수화를 창작할 수 있는 토대가 굳건하게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마음의 눈으로 본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그리는 것이고, 여기에 마음속 바람을 담은 것이라 하겠다.

이른바‘이상향을 주제로 그렸다’고 한다면 당대의 현실에 염증을 느꼈거나 심정상 도피를 목적으로 작업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봄직하다. 조선 산수화에서‘이상향을 주제로 그렸다’라는 의미에 대해 설명해달라.
조선 문화와 예술의 부흥기인 18세기,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자연과 사람, 사회가 서로 평화롭게 어우러진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백성들은 맡은 일에 충실하고 군주는 백성을 덕으로 다스리는 유교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사회가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개인으로는 선비들은 모름지기 벼슬길에 나아가 왕을 보좌하며 백성을 돌보는 것이 삶의 목표이지만, 그 뜻을 펼치지 못하면 자연에 귀의하여 조용히 덕을 쌓는 것이 도리였다. 한편으로 관직에 있을 때는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은거를 꿈꾸기도 하였다. 이처럼 당시의 작품들을 통해 대의적인 이상사회를 꿈꾸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속세를 떠나 자연에서 안식을 취하는 은거를 표방하였던 조선시대 지식인의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이상향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작가들은 주로 어떤 이들인가? 그들이 이상향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이유와 함께 설명해 달라.
화가들은 워낙 다양한 화목(畵目)을 다루었기 때문에, 이상향을 주로 다룬 특정한 화가를 꼽기는 어렵다. 진경산수로 유명한 겸재 정선(謙齋 鄭敾) 역시 실경뿐만 아니라 은거(隱居)를 지향하는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조선시대 화가들 중에선 조선후기 대표적 화원인 이인문이나 조선말기 화가 이방운을 꼽을 수 있겠다. 이인문은 진경산수화보다 우리가 잘 아는 <강산무진도>나 산거(山居)를 주제로 한 <산정일장도>를 많이 남긴 작가이다. 산속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거나 자연 속에서 은거하는 삶을 추구한 것 모두 조선후기 문인들이 애호한 주제 중 하나이다. 진경산수나 풍속화 등이 유행한 당시의 풍조 속에서도 그가 전통적인 화목들을 지향하고자 했음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별도의 영상으로 관객을 만나게 된다. 최근 고미술 전시에서 디지털 콘텐츠로 전시를 진행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
최근 전시에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은 고미술이나 현대미술을 떠나 꼭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는 전시실 입구에 이미지화 한 단순한 영상물 하나를 설치하고 내부에는 최근 많이 하는 디지털 전시기법을 배제하였다. 오직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부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공예품이나 대형 유물의 경우 디지털을 활용한 보조물이 그 유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산수화는 멀리서 감상해야 할 작품도 있고 디지털 전시보조물이 오히려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전시해설 음성가이드를 운영하고 있다.

한·중·일의 대표작이 모였다. 작품 대여를 섭외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이번에 전시되는 총 109점 중 42점이 해외 박물관 소장품이다. 보통 우리 박물관을 비롯해서 해외에서 유물을 대여받으려면 최소 전시 1~2년 전에는 협의를 해야 한다. 이번에 우리가 원한 작품들은 모두 유명한 작품이라 전시 스케줄을 맞추고 협의하는 데도 많은 시일이 걸렸다. 다른 기관보다 한발 늦게 섭외하여 놓친 작품이 있었는데 매우 아쉬웠다. 또한 미국, 중국, 일본에서 여러 작품을 들여오다 보니, 기관별로 대여조건들을 맞추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전시작업 첫날 한국, 미국, 중국의 큐레이터가 한자리에 모여 작업을 하였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각국의 전시방식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업이기도 했다.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라면? 일반 관람객을 위한 관람 팁을 제시해달라.
정선(鄭敾), 김홍도(金弘道), 이인문(李寅文), 안중식(安中植), 장욱진(張旭鎭)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이번 특별전에는, 특히 18세기 조선 화단에서 쌍벽을 이룬 이인문과 김홍도의 대작 산수도가 모처럼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와 김홍도의 <삼공불환도>에서 조선시대 문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나라와 개인의 삶의 모습이 아름다운 산수로써 구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폭이 무려 8m50cm에 달하는 <강산무진도>의 전장면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으며, <삼공불환도> 역시 대작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도록 전시하였다.
전체 전시 작품 중 42점은 국내에 처음 전시되는 중국과 일본의 명작들로 놓칠 수 없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문징명(文徵明)과 동기창(董其昌) 등 중국 산수화 대가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그린 <귀거래도歸去來圖>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중국 회화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명품이다. 일본 교토국립박물관에서 온 <봉래선경도(蓬萊仙境圖)>와 <무릉도원도(武陵桃源圖)>는 일본의 마지막 문인으로 불리는 도미오카 데사이(富岡鐵齋)의 대작이다. 여름의 더위를 잊을 정도로 시원한 대폭의 화면이 시선을 끈다.
한편 전시기간에 맞추어 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휴게공간에 디지털 산수로 유명한 황인기 작가의 <몽유도원도>가 전시 중이다. 전시 중인 옛그림과 이를 자그마한 못으로 픽셀화하여 재해석한 현대 작품을 비교해보는 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오디오가이드를 제작하였다. 오디오가이드를 받으며 작품들을 감상한다면 전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황석권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