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감히 바란다

이번호까지 헤아려서 지금까지 170권의 책을 여러 사람과 함께 만들어 왔다. 작년 10월 편집장이 된 후로는 열한 번째 책이다. 10권 째도 아니고 12달 한 바퀴를 돈 1주년도 아니다. 그냥 11번째란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10진법을 기준으로 뭔가 특별한 기념일을 삼아 따지는 것을 좋아한다. 백일잔치부터 시작해, 만나거나 이별한지 100일, 무슨무슨 10주년, 아무개 탄생 100주년 등등.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에 리움 개관 10주년에 맞춰 특집기사를 만들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리움과 좀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한국 미술계에서 리움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고 막강하다. 그야말로 적수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드러내지는 못하고 뒤꽁무니에서 괜히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사적인 술자리에서 가끔 리움에 대한 볼멘소리를 듣곤 한다. 그들은 주로 ‘명품, 고급, 폐쇄적, 권위적, 부자, 스타작가’ 같은 수식어를 동원하면서 침을 튀긴다. 하지만 하나씩 따지고 보면 그런 불평불만은 하나같이 무책임한 투덜거림에 지나지 않다. 정작 어떤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거나 손해를 입지도 않았으면서 (실체도 없이)막연히 아쉽다며 서운한 감정을 내뱉을 뿐이다. 나는 거기다 대고 이렇게 말한다. “괜히 쓸떼없는 참견 말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나라고 왜 못마땅하거나 불만이 없겠는가? 다만 잠자코 있는 이유는 리움 전시를 통해 누리는 안복(眼福)과 미적체험의 기회에 대한 만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국공립 미술/박물관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능과 역할을 리움이 어느 정도 대신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리움의 존재감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런 것처럼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라이벌 없는 경쟁은 긴장감이 떨어지고, 견제 없는 독주는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감히 바란다. 한국 미술계에서 리움과 제대로 한번 맞장뜰 만한 라이벌 미술관이 하루속히 생기기를.
다시한번 지난 10달의  《   월간미술》을 되돌아본다. 내심 걱정했던 바와 달리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상궤도에 안착했다고 자평한다. 예전에 비해 파격적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그래도 세세한 부분에서 조금씩 변화를 모색해 왔다. 이런 성과가 있기까지 무엇보다  맡은 일을 헌신적으로 묵묵히 성실하게 (133.3%)달성해준 기자들과 포토그래퍼 그리고 디자이너의 공이 크다. 황석권 이슬비 임승현기자는 각자 전공과 관심분야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차별화된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해 냈다. 포토그래퍼 두 명은 사진 본연의 역할과 기본에 충실하면서 생생한 현장 기록과 인물 포착에 주력했다. 편집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책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크리에이티브로서의 고유한 컬러를 발산하고 있다. 이처럼 책을 만드는 주체가 의기투합해 한권의 책은 매달 내놓는다. 모든 책의 완성은 독서! 이제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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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선박민선 삼성미술관 리움 홍보팀장

7월 플라토에서 열린 <스펙트럼-스펙트럼전> 이후 리움 측은 3주간 미술관 문을 닫고 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 준비에 힘을 쏟았다. 이어 10월 진행되는 공식적인 10주년 행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에 근무한지 올해 20년째를 맞는 박 팀장은 홍보 업무를 시작하고 리움 개관 이래 가장 큰 행사라며 기대도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부터 취재 협조까지 홍보 업무를 총괄하면서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씩씩한 에너지를 잃지 않으며 기자들을 환대해 주었다. 모든 행사를 성공리에 마치시고 에너지를 200% 충전하시길.

 

 

이종률문원원장이종률 중남미한국문화원 원장

외교부 소속 참사관 신분이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문화부 공무원 역할에 가까웠다. 중남미 30여 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아르헨티나에만 있는 중남미한국문화원을 통해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을 최전선에서 진두지휘 한다. 유창한 스페인어로 <동시적 울림전> 취재를 적극 도와줬다. 덕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서 깊은 공연장에서 탱고가 아닌 현대무용을 관람하기도 했다.《  월간미술》의 오랜 독자인 부인은 미술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과 문학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 애정이 각별했고, 민간외교사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li zong color이동림 포스갤러리 디렉터

2010년에 베이징 798예술단지에 들어선 포스갤러리의 디렉터. 애니메이션 제작사 CHOCO프로듀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베이징에서 만난 그녀는 전시 준비로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때로는 세심하게 주변을 챙기고 때로는 화통하게 대규모 교류전 행사를 진행했다.
올해 포스갤러리는《  BAZAAR ART》에서 꼽은 중국 신진 갤러리 TOP5에 들어 입상하는 등 중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여장부다운 그녀의 포스가 갤러리를 움직이는 강력한 포스의 원천이 아닐까.

[Sight & Issue] Arario Museum in Space

아라리오뮤지엄 9월 1일 공식 개관

최고의 컬렉션, 제대로 된 ‘공간’을 만나다

_MG_2493“두려움과 흥분하는 감정이 뒤섞여 이 자리에 섰다”는 김창일 회장의 목소리는 다소 뜰떠 있었다. (구)공간사옥에 자리 잡은 아라리오뮤지엄 개관을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김 회장의 심정이 이 한마디로 대변되었다. 그리고 김 회장이 직접 나서 기자간담회를 주도할 정도로 이곳에 대한 그의 애착이 느껴졌다.
이번 아라리오뮤지엄의 개관전은 <Really?>. 정식 개관일은 9월 1일로 맞춰졌다. 이 전시에는 김 회장이 35년간 수집한 약 3700점의 작품 중 총 43명 작가의 100여 점이 소개된다. 마크 퀸이 자신의 피를 수집해 만든 <셀프(Self)>, 피에르 위그의 <반짝임 탐험, 제2막>, 바바라 크루거의 <무제(끝없는 전쟁/당신은 영원히 살거야)>, 수보드 굽타의 <모든 것은 내면에 있다> 등이 회장작이다. 이밖에도 강형구, 소피 칼, 신디 셔먼, 백남준, 네오 라우흐, 요르그 임멘도르프 등 동시대미술을 조망할 수 있는 컬렉션을 선보인다.
김 회장은 공간사옥이 경매에 유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날 제주에서 올라와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고 한다. 유찰된 경매물건에 대해서는 차후 유찰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호가를 시작하는 것이 룰. 그러나 김 회장은 유찰된 가격 그대로 공간사옥을 매입했다. 김 회장은 “유찰은 결국 이곳이 버림받았다는 말 아닌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현재 이곳은 유적으로 지정되어 증개축을 하려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역사적으로 의의가 큰 이 건물의 원형이 보존되길 바라는 김 회장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됐을 것이다.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이 건물을 뮤지엄으로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는 김 회장은 “창문 하나라도 가급적 원형 그대로 보존할 것을 주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뮤지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이라며 “이곳에 어울릴 작품을 선택하여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을 도드라지게 할 조명과 시설까지 김 회장이 일일이 다 챙겼다고. 아라리오뮤지엄은 1개의 방을 1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원칙을 세우고 전시를 열 계획이다.
아라리오뮤지엄이 들어선 (구)공간사옥은 1977년 故 김수근이 설계해 지금의 서울 원서동 자리에 세워졌으며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건축물로 손꼽힌다. 문화재청은 이 건물을 올해 2월 27일부로 파격적으로 등록문화재(586호)로 지정했다. 이곳은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을 현대적 기법으로 해석, 각 공간이 막힘없이 연결되고 가변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라리오뮤지엄은 연중무휴로 운영될 예정이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연다(수요일은 오후 10시까지). 단, 개관을 기념해 9월 5일까지는 오후 10시까지 개관하며 오후 8시부터 1시간 동안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장을 투어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한편, 아라리오갤러리는 10월 1일 제주 탑동시네마와 탑동바이크샵, 그리고 동문모텔에도 아라리오뮤지엄을 개관할 계획이다.
참조  www.arariomuseum.org

황석권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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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ht & Issue] 베이징 798 아트팩토리 한・중 작가 교류전

The East Bridge
In the Absence of Avant-garde Reading

베이징 798 아트팩토리 한・중 작가 교류전

장기적 한·중 문화교류의 장을 열다

한국과 중국의 작가들이 베이징의 역사적인 공간, 798아트팩토리라는 가교에서 만났다. 국가 간 교류전시는 통상적으로 자국의 유명 작가들을 내세워 타 국가에 선보이는 형태를 띠거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베이징 798단지에 자리한  포스갤러리(Force Gallery)는 이같은 기존 교류전의 성격을 지양한다. 포스갤러리는 베이징 현지에서 한국인 디렉터 이동림이 운영하는 곳이다. 지속가능한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한·중 문화교류를 도모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의 서막으로 <The East Bridge: In the Absence of Avant-Garde Reading전>(8.16~9.7)을 열었다.
<The East Bridge> 프로젝트는 포스갤러리가 주관하고 한국교류재단과 베이징 798문화창의산업유한공사의 후원으로 진행된다. 이 프로젝트는 이번 베이징에서 열린 한 차례의 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서울에서 두 번째 전시를 열 예정이다.
한국 작가로는 문범, 이용덕, 유근택, 한진수, 임태규, 유정현이, 중국 작가로는 탄핑, 인슈전, 양융량, 황징위안, 저우밍, Polit-Sheer-Form Office가 작품을 선보였다. 이들의 작품은 마오쩌둥 시대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베이징의 798아트팩토리에 설치되어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 특히 전시가 열린 798아트팩토리는 798예술단지 중에서도 중국 근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담은 장소로서 이곳을 운영하는 준정부기관인 문화창산하 산업투자유한공사는 엄격한 잣대로 이곳에서 열릴 전시를 선별하기로 유명하다. 마오시대에 무기공장으로 쓰인 798아트팩토리 공간은 중국의 공업화와 냉전시대의 긴장을 그대로 담고 있다. 벽면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오쩌둥 시절의 선전선동 구호, 옛 공장의 잔여물 등이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시대적인 배경과 긴 터널형의 정돈되지 않은 건축물이 자아내는 압도적인 분위기로 인해 작품이 눈에 들기 쉽지 않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작업은 공간과 묘한 조응을 이뤘다. 문범의 작품은 전통 산수화적인 이미지와 옛 공장의 잔해가 겹쳐졌고, 정돈되지 않은 시멘트 바닥 위에 키네틱아트를 설치한 한진수의 작업은 회전하는 기계부품들 속에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형태로 공간을 유영했다. 친숙한 환경에서 유토피아를 찾아 보여주는 임태규의 작업은 전시장 한 면에 집 형태의 구조물을 세워 천장이 높은 전시공간을 적절히 활용했다.
798아트팩토리의 역사적 의미에서 읽을 수 있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사회적 변화의 흐름은 한·중 양국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다. 전시는 바로 이 점에 집중했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을 표면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작가 개개인의 내면적 소리에 집중하여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기획자로 참여한 케이트 림은 “단순히 각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메시지 강한 작품을 나열하는 교류전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한국과 중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은 아방가르드 미술에 내재하는 ‘개념의 전복’이나 ‘구조의 파괴’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에 명확한 메시지가 존재하지 않기에 오히려 관람객으로 하여금 동시대를 이해하는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라고 말했다.

베이징=임승현 기자

포스 (4)

전시장 건물에 마오쩌둥 시대에 쓰여진 문구가 남아있다. 작가 문범의 <Secret Garden> 시리즈가 정면에 보인다

[Hot People] 예술의전당에서 개인전을 연 畵手 조영남

가수의 탈을 쓴 화가 조영남의 미술계 왕따미술전

가수 조영남의 <왕따 현대미술전>(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제7전시실 8. 3~ 24). 이번 쇼는 미술계에 있는 사람에겐 유감스러운 불량형 전시로 분류된다. 겉으로나 무늬로나 40년 회고전을 빙자한 이 전시는 분명 “왜 우리 놀이터에까지 와서 놀려고 하냐”는 미술계의 아니꼽고 치사한 시선에 대한 그의 강렬한 저항성 퍼포먼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조영남만큼 현대미술에 해박하고, 책도 내고, 백남준 최욱경 곽훈 등 미술계의 인맥을 아우르고 있는 스타는 단연코 없다. 다만 흠이라면 그가 미술을 너무도 잘 알아 잘난 척하여 화가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것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그가 딴따라가 미술을 한다고, 십수 년 동안 미술계로부터 화가로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을 풀기로 작정한 듯 40년간 쌓은 미술 유전인자를 내장까지 다 끄집어 내보였다. 그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일과 다른 사람이 낚시하는 일은 총체적으로 똑같다”며 그림 그리는 이유를 낚시에 빗대 설명한 적이 있다. 물론 이렇게 그는 향수 달래기 겸 취미로 유화에 손을 댔다고 일찍이 고백한 바 있다. 또한 백수 시절에 행복해지기 위해 음악보다 훨씬 강도 높은 열정으로 미술작업을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진술했다. 조영남은 프로 화가이다. 다만 노래로도 돈을 벌고, 그림으로도 돈을 벌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우리가 그를 왕따시킨 것이 아니고, 거꾸로 그가 미술계를 왕따시켰음을  환기하는 자리였다.
화가는 참 많다. 그러나 몇 년에 한 번씩 개인전도 안하고, 그런 너희들이 미술대학 나왔다고 그래 다 화가냐? 그는 우리에게 들이대며 따져 묻는다. 이 발언은 틀리지 않다. 30여 회의 국내외전을 연 그는 이 점에서 대단히 박식하고 부지런하며 천재적 감성을 가진 예술인임에 틀림없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그림도 그릴 줄 알고 노래도 참 가수답게 잘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어느 분야든 어느 정도 텃세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 것이 죄라면 조영남은 유죄이다. 현대미술에 박식한 만큼 이 바닥에도 텃세가 좀 있다는 것을 일찍 그리고 조금 눈치 챘어야 옳았다.
그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끈질기게 화투패를 그리고 화투에 집착했다. 그는 현대미술이 요구하는 독창성을 고민하다 화투라는 오브제를 선택했다. 화투를 통해  곡절 많은 인생사를 보려 했고, 화투를 통하여 한국적 팝을 내다보았다. 화투를 통하여 작가적 메시지를 토해냈다. 그는 시작부터 조영남표 브랜드와 독창성을 노래하듯이 주장했다. 태극기와 음표들은 그러한 부속품이었다. 그리하여 화투는 꽃이 되기도 하고, 지붕이 되기도, 스무 끗짜리 5광(光)은 영광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일찍이 1969년의 청계천 풍경에서 시작해, 1973년 안국동 한국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1980년대를 화투작업으로 이어갔고 1990년대 실험 오브제 설치작업 등 그는 정말 피카소처럼 미술과 음악, 설치의 경계를 넘나들며 화투인생의 철학에 올인했다.
우리는 그에게 왜 화투를 그리느냐고 물을 수도, 항의해서도 안 된다. 이번 전시 대표작은 <극동에서 온 꽃>으로 보이지만 그의 작품 중 압권은 보이스에게 헌정한 것처럼 보이는, 죽음에 관한 콘셉트의 발상의 관에 놓인 화투로 덮인 그의 자화상이다. 나머지 요강을 비롯한 회화, 콜라주, 입체 조각, 그리고 마지막 자신의 온통 평면에 대담용 글쓰기, 자기 PR과 변명 등은 그가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위해 화폭 가득 묻어놓은 위한 지뢰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문제는 작품에 작가로서의 철학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조영남의 40년 왕따 회고전은 콧대 높은 미술계 사람들에게 아부 혹은 엿 먹이는 전시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 전시를 보고 모두가 마냥 즐거워하는 것을. 조영남의 패러디, 오만불손, 자뻑이 모든 그의 잡학과 상상력이 비빔밥처럼 섞여 우리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한다.
판사는 오로지 판결로 말한다고 했다. 화가도 오직 그림으로 말할 뿐이다. 2000점이 훌쩍 넘는 작품. 그는 이 작품들을 조수도 없이 해냈다. 조영남 어쩌면 그는 가수의 탈을 쓰고 오광이 든 화투 패를 만지작거리며 재미있게 인생을 즐긴 보기 드물게 썩 훌륭한 화가일지도 모른다.

김종근·홍익대 겸임교수
조영남은 1945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명예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 트리니티 바이블 칼리지를 졸업했다. 1973년 한국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3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저서로 《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현대인도 못알아 먹는 현대미술》, 《이상은 이상이상이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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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Art Space]

‘2014 세계수학자대회’가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한국에서 열렸다. 이를 기념하고자 <매트릭스: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전>이 8월 12일부터 2015년 1월 1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전시 타이틀 ‘매트릭스’는 수학에서는 ‘행렬’을 뜻하며 이번 전시에서는 “근대 이후 수와 계산 또는 행렬과 연산에 의해 통제 받는 ‘수학화된 오늘’을 상징”한다. 국내외 작가 15명의 작품 11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수학과 그 반대 영역에 놓인 예술의 사유의 세계가 만나는 장이 될 것이다. 사진은 국형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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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

7월 15일부터 10월 26일까지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들전>은 발레단, 곡예단과 함께 하여 이룬 아크로바틱한 순간과 일반인의 신청을 받아 벌이는 삶의 특별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선보이는 자리다. 일상에서 찰나에 벌어졌다 소멸되는 현상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조던 매터의 프레임은 평범한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해 ‘찬란한’ 기억으로 변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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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

조미영의 <감행된 풍경전>(갤러리 조선, 8.13~9.4)에서는 공중에 떠 있는 작품에 가상의 경계면이 존재한다. 또한 개인의 기억에서 연유하는 확장된 구조도 존재한다. 그렇게 구축된 구조는 우리가 사는 도시의 현재 모습이다. 작가는 이렇게 형성된 도시 풍경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천착 거기에서 인지한 다양한 요소 사이에서 무모함을 읽어내 시각화하기를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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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2)

임영선의 캔버스는 표현된 어린아이 등의 인물을 점묘로 표현한다. 단순하다. 그러한 임영선의 캔버스를 만날 수 있는 전시 <On the Earth>가 7월 17일부터 8월 29일까지 갤러리 로얄에서 열렸다. 주로 중화권과 아시아의 아이들을 모티프로 작업하는 임영선은 작업을 위해 순례자가 되기를 기꺼이 자청한다. 대형 캔버스에 등장하는 어린이를 묘사하는 작업은 작가에게 치유의 과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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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1)

호주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전시 <Vertigo>가 7월 24일부터 8월 27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렸다. Asialink (The University of Melbourne 연계 호주 문화기관)에서 기획되어 아시아 순회 전시로 진행 중이다. 10명의 호주 작가가 내일에
대한 불안함, 불안정성에서 오는 현기증적인 상황을 비디오, 네온 콜라주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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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 (2)

인간에게 물은 없어서는 안될 삶의 요소이다. 그래서일까. 고대부터 지금까지 물은 생명을 위한 필수요소일 뿐 아니라 우리 삶의 양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8월 15일부터 10월 26일까지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Water_천진난만>은 물에 대한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보여준다. 전시에 참여한 22명의 작가는 물의 의미, 조형적 이미지, 있음에 대한 사유 등 물을 다각도의 측면에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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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2013년 제4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인 김영나의 전시. <선택표본>(두산갤러리 서울, 7.16~8.23)으로 명명된 그의 전시는 관람객이 전시장 내부로 들어오기 만나게 되는 전시 홍보매체, 사인 등의 전시 관련 시각언어들을 전시장으로 끌어오는 작업을 모은 것이다. 이에 관람객은 전시를 둘러싼 내외 요소들의 충돌지점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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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리 (1)

<제14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 8월 7일부터 15일까지 미디어극장 아이공, 한국영상자료원, 산울림소극장, 서교예술실험센터, 갤러리잔다리, 더 갤러리에서 열렸다. 올해의 주제는 ‘우리 시대의 민속지.’ 출품된 630여 편의 작품 가운데 경쟁부문인 <글로컬 구애전>에 오른 50편과 비경쟁부문에 오른 94편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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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승 (2)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모습을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 감각적이고 시적으로 담아내는 정희승의 개인전이 8월 8일부터 9월 12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을 포함한 신체, 식물, 공간 등 5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간결한 조형성을 바탕으로 긴장감을 잘 포착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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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5)

김동유 김인 문형민 서은애 이중근이 참여한 <의미의 패턴전>이 8월 1일부터 10월 12일까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열린다.
참여 작가들은 패턴을 작업에 적용한다는 형식적 공통점을 띠고 있는 바, 이 전시는 각 작가의 이러한 공통점을 넘어 그들의 맥락과 의미의 차이점을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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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호_쿤스트독 (1)

박치호의 개인전 <실체라는 부유-파편을 매만지는 분절들>이 쿤스트독갤러리에서 8월 1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 알려졌다시피 토르소는 로고스적 인간을 지향한 고대미술에서 기원했으나 신체의 일부가 결여된 상태로 발견되어 그 의미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역설적인 현상을 바라보는 작가는 토르소를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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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연 (1)oci

남혜연 (2)oci

OCI미술관이 신진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OCI YOUNG CREATIVES’ 프로그램이 남혜연과 양유연의 개인전으로 마무리되었다. 7월 17일부터 8월 13일까지 미술관 1, 2층 전시장에 두 작가의 작품이 각각 나뉘어 전시된 것이다. 남혜연(사진 아래)은 인터렉티브 설치와 영상 등으로 사회체계 내에 편입돼 살아가는 인간을 표현하며 양유연은 인간 내면의 상처와 상실감, 무의식 등을 회화의 언어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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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림 (1)

한국 아방가르드 예술을 이끌어온 작가 김구림의 개인전이 아라리오갤러리 천안(7.29~10.5)과 서울(7.17~8.24)에서 열렸다. 천안에서 열린 <그는 아방가르드다>는 작가가 지난 60여 년간 선보여온 실험적인 작품들을 시대별로 조망했고, 서울에서는 ‘진한 장미’라는 제목으로 작가가 2000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잡지, 광고 등 대량 생산된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사진은 서울 전시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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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선 (1)

제주에 살며 작업하는 김옥선의 사진전 <The Shining Things>가 8월 9일부터 9월 6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예의 아무런 감정없이 정면성을 강조하는 작업방식으로 나무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에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나무는 관람객을 만나 뿌리를 박고 자라는 진정한 ‘나무’가 되는 것이 다. 한편 이번 전시와 함께 그의 작업 50여 점을 담은 사진집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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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3)

세월호 참사를 희생자를 추모하는 전시 <세월호 추모전-2014, 대한민국 봄>이 8월 10일부터 24일까지 아마도 예술공간/연구소에서 열렸다. 가천대 윤범모 교수가 총감독을 맡고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한겨레》에서 <잊지 않겠습니다> 캐리커처를 연재하고 있는 박재동 화백이 특별초대작가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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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개인전 <We’re all made of>가 8월 8일부터 30일까지 플레이스 막에서 열렸다. 작가는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업체의 음식재료를 담은 포장지로 제작한 캐스팅 작업과 박스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해당 업체의 파트타임 노동자이기도 한 작가는 신자유주의 기치 아래 비정규직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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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 (1)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의 여름기획전 <21세기 풍속화>가 7월 30일부터 9월 21일까지 열린다. 김태연(사진) 김혜연 김홍식 서기환 이동연 이상원 최현석 최석운 8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상과 일상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동시대 풍속을 담은 작품을 통해 지금을 바라보는 작가 나름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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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P

울산 소재 레지던스 공간 모하(MOHA) 창작스튜디오 5기 입주작가 상반기 성과전으로 <MOHA N°5>가 8월 12일부터 30일까지 CSP111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참여작가는 문진욱 서리 이원주 윤혜정 이진명. 한편 이번 전시는 7월 7일부터 13일까지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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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물결 (4)

서초구에 위치한 흰물결아트센터의 화이트홀에서 김필래와 임정은의 2인전 <빛과 선이 만드는 이야기>가 7월 10일부터 8월 28일까지 열렸다. 김필래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선, 실이라는 도구를 통해 나타냈고 임정은은 유리나 거울을 투과한 빛이 만들어내는 색다른 공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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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

2014년 1월에 창립된 단기 프로젝트 전시모임인 동네사람들(대표 정복두)은 젊은 작가로 구성되어 서로의 작업에 대한 기탄없는 비평과 작품활동 모색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그들의 두 번째 전시 <사람탐구>가 8월 6일부터 8월 12일까지 경인미술관에서 열렸다.

 

 

[Special Feature] 삼성미술관 Leeum 개관 10주년

교감

Beyond and Between

交感

올해는 삼성미술관 Leeum(이하 리움)이 개관한 지 10주년 되는 해다. 2004년 10월 13일 공식 개관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선보인 리움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은 어떠할까? 개관 당시 리움은 세계적인 건축가 3명이 참여해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 미술관 건축으로 먼저 이목을 끌었다. 또한 당시 아시아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 ‘제20회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총회’ 기간 CIMAM(ICOM의 현대미술분과위원회) 총회가 리움에서 열리면서 전 세계 박물관·미술관 관계자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수준 높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상설전과 기획전시를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이처럼 리움은 개관 이후 현재까지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미술관으로서 그 명성과 권위를 굳건히 지켜왔다.
리움의 시원은 1965년 삼성문화재단 창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문화재단은 1982년 경기도 용인에 호암미술관을 건립해 삼성그룹 창업자 호암 이병철 회장이 30년 넘게 수집해 온 한국미술품을 정리했고, 이후 서울 서소문에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현 플라토)를 운영하면서 국내외 미술품 전시를 끊임없이 개최해왔다. 이와 같이 국보급 고미술품과 세계적 수준의 근현대미술이 총망라된 삼성문화재단의 컬렉션이 2004년부터 한남동 리움에서 한데 모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리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교감(交感, Beyond and Between)전>이 8월 19일부터
12월 21일까지 리움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를 계기로 《월간미술》은 리움 10주년의 의미와 미래를 조망하는 특집 기사를 마련했다. 먼저 이번호에서는 리움 전관에서 펼쳐지는 <교감전>을 집중 조명한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그리고 장르를 넘나들며 관객과 소통을 시도하는 <교감전>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사진・박홍순 조영하

시대교감 – Beyond time – 時代交感

“고미술 전시실 Museum1은 장르적인 특성과 시대를 반영한 4층 청자, 3층 백자・분청사기, 2층 고서화, 1층 불교 및 금속공예의 현재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대미술과 교감할 수 있는 적절한 지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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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청자가 전시된 4층 비디오실에서 작가 김수자의 영상작품 시리즈 <대지, 물, 불, 공기>(2009~2010> 중에서 <대지의 공기>가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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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양각운룡문매병> 고려 12세기 고려청자(보물 제1385호)와 고려의 비색을 소재로 한 바이런 김(Byron Kim)의 회화작품 <고려청자 유약 #1, #2> (캔버스에 유채 213×152.4cm(각) 1995~1996)이 함께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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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달의 이면> 도자파편, 에폭시, 스테인리스 스틸, 동분, 금분, 24K 금박 135×135×135cm 2014
오른쪽 뒤에 <백자 달항아리>(국보 제309호)가 보인다. 이수경은 함경도 회령지역에서 만들어진 흑자와 옹기 파편을 이어 붙여 이 작품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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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걸작 <금강전도>(왼쪽)와 <인왕제색도>를 같은 공간에서 나란히 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최초다. 세로 79.2cm
가로 138.2cm인 <인왕제색도>는 국보 제216호, 세로 130.7cm 가로 94.1cm 크기의 <금강전도>는 국보 제217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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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도호의 조각 <우리나라>가 함께 전시되어 있는 2층 고서화실 전시광경. 오른쪽에 보물 제1394호로 지정된 작자미상의 <경기감영도 12곡병> (135.8×442.2cm 조선 19세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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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도호의 부조작품 <우리나라> 청동 137×194.3×8cm 2014는 한반도 지도 형태 위에 서 있는 수많은 인물상을 통해 역사 속에 명멸한 개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표현했다.

 

동서교감 – Beyond Space – 東西交感

“한국 근현대미술부터 동시대 세계 미술을 전시하고 있는 현대미술 상설실은 ‘동서교감’을 큰 틀로 하여 현대미술의 표현적 경향의 흐름, 예술의 근원적 요소에대한 탐구, 최근 확장적이고 혼성적인 미술의 특성을 담는 세 개의 전시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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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심연> 폴리우레탄 주물, 아크릴 릭, 거울, 쌍방향 거울, 유리, LED 조명, 목재, 에나멜 페인트 370×360×330c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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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윤형근 <청다> 캔버스에 유채 259×182cm 1976, 김환기 <하늘과 땅 24-IX-73 #320> 캔버스에 유채 263.5×2.6.5cm 1973, 하종현 <접합 75-1> 캔버스에 유채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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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이응노 <인간> 한지에 먹 265×182cm 1988과 오른쪽에 알베르트 자코메티의 조각 <거대한 여인 Ⅲ> 청동 235×29.5×54cm 1960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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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설치된 로니 혼 <열 개의 액체 사건>(표면 가공하지 않은 유리 주물 2010)과 벽에 걸린 아그네스 마틴 <무제#9> 캔버스에 아크릴, 연필 183×183cm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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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루이즈 부르주아 <밀실 XI(초상)>(왼쪽)(177.8×109.2×109.2cm 2000)과 세실리 브라운 <무제> 캔버스에 유채 246.4×195.6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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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 <피할 수 없는 진실> 유리, 강철, 비둘기, 해골, 포름알데히드 용액 222×176×74cm 2005
작가는 기독교에서 성령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와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을 영구적인 보존을 가능케 하는 방부액 속에 설치함으로써, 종교나 과학이 결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지 못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며, 그것이 바로 피할 수 없는 진실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관객교감 – Beyond Art and People – 觀客交感

“예술에서의 관람객의 역할은 점점 더 커져서 이제 예술 작품을 담는 그릇인 미술관의 중심은 사람이며 사람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획전시실은 두 개의 상설전시실의 주제, 즉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교감을 포괄하면서, 관객의 능동적 참여가 중요시되는 작품들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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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웨이웨이 <나무> 2009~2010 중국 남부지방에서 수집한 고목을 절단하고 재조합한 이 작품은 중국 역사의 비극적 이면을 은유함과 동시에 예술과 인류의 영속성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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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경 <카페트 위의 머리카락> 2014
리움 로비에서 기획전시실로 이어지는 경사면 바닥 전체를 뒤덮은 카페트에 수놓아진 문양은 머리카락을 강력 접착제로 붙여서 만든 것이다. 때론 불결하고 불쾌하게 보일 수 있는 머리카락을 의도적으로 점잖은 미술관 공간 속으로 끌어 들인 작가는 예술과 삶의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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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토 네토 <심비오인테스튜브타임-향기는 향꽃의 자궁집에서 피어난다> 합판, 폴리아미드 망, 강황, 정향, 커민, 프리아미드 천, 발포고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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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재닛 카디프 & 조지 뷰어스 밀러 <F# 단조 실험> 2013
관람객이 72개의 스피커가 설치된 테이블에 가까이 다가가 주변을 거닐면 신비로운 선율이 흘러 나온다.

 

[Special Feature] 삼성미술관 Leeum 개관 10주년

interview

성미술관 리움 학예연구실장 우혜수

 “Beyond and Between은 리움의 비전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DF2B4191먼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특히 처음으로 리움 전관(全館)에 걸쳐 전시하는 것도 꽤나 부담이 컸으리라. 전시 개막 후 주위 반응이나 평가는 어떠한가?
많은 분이 리움 개관 10주년을 축하해주신다. 이번 전시는 개관 10주년 기념전시이자 첫 전관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감(交感)’이라는 주제는 이 시대의 화두이기도 하고 리움의 향후 방향 설정의 중심이 되는 것으로서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해주신다. 전시 면에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상설전시실의 변화에 중점을 두었는데,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교감을 시도한 고미술 상설전시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밖에도 국내외 작가의 신작을 준비했고, 로비 같은 공용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볼거리가 많은 전시로 준비했다. 어떤 분이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분 표현대로 어릴 때 특별한 날 선물로 받았던 ‘종합선물세트’의 행복한 느낌 일거라는 생각을 하니 매우 감사하고 덩달아 기뻤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보여준 점이 특히 돋보인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리움의 소장품 특성이 잘 드러난 것 같다. (현대미술 전공자로서) 고미술에 대한 이해나 접근 방식을 어떻게 설정했는가?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로부터 가장 주목 받는 전시가 고미술 전시실, 즉 Museum 1에서 열리는 ‘시대교감’이다. 지금까지 흔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관객의 호응과 관심이 이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소장품 전시실 가운데에서도 특히 고미술 소장품 전시실에서 이루어지는 시도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미술은 그 존재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을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점으로 불러들여 지속적으로 새롭게 해석해내고 맥락화할 때 생명을 갖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고미술에 대한 연구와 해석은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에 의해서만, 혹은 고미술 전시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반면 이번 리움에서의 시도는 고미술에 대한 작가들의 연구와 해석이다. 이것은 분명히 생동하는 가치 부여이며 유의미한 예술적 연구라고 확신한다. 많은 분이 이런 시도가 지속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이야기해주셔서 반갑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두 분야 큐레이터의 연구는 물론이고 현대미술 작가와도 오랜 시간 연구와 토론을 통해 작품과 전시 구성을 완성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번처럼 완성도 높은 전시를 다시 기획하려면 최소한 1~2년의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교감(交感)’이라는 타이틀은 시기적으로나 주제를 드러내는 면에서도 적절한 것 같다. 영문으로는 ‘Beyond and Between’이라고 표기하는데, 타이틀에 대한 부연 설명을 부탁한다.
교감, 소통, 공감 등은 우리 사회의 화두이다. 이것은 예술과 사람이 함께 하는 미술관에서도 중요한 주제이다. 특히 한국의 고미술과 현대미술, 외국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리움의 소장품은 전통과 현대의 단절 문제, 동양과 서양의 복잡한 관계 등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시대적 간극을 뛰어넘는 교감, 현대미술에서 한국과 서양이라는 지역을 초월한 교감을 통해 예술 간의 단절을 극복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리움이라는 미술관이 관람객에게 더욱 가까운 도심의 휴식처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관객교감이라는 주제에 담고자 했는데, 이 세 교감은 미술관이 중점을 두게 될 미래를 담는 것이기도 하다. 영어로 Beyond and Between은 많은 의미를 담기 위해 다소 의역한 면이 있다. Beyond는 경계를 초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Between은 예술과 사람, 과거와 현재, 예술과 과학 등 다양한 가치들을 포괄하고 예술로서 매개하고자 하는 뜻을 갖고 있다. Beyond and Between은 미술관의 슬로건이기도 한데, 리움의 비전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소장품 외에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신작 혹은 특히 눈여겨볼 작품을 소개해달라.
<교감전>에는 리움 소장품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이 제작된 작품이 여럿 있다. 특히 로비의 작품들은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 누구나 볼 수 있는 공용공간에 설치되어 누구나 가까이 접할 수 있다. Museum 1 계단 공간에 설치된 올라퍼 엘리아슨의 네온 설치, 플라스틱 바구니로 만든 최정화의 18미터 높이의 기념비적 기둥, 카페 공간을 변화시킨 리암 길릭의 벽 설치작업과 파티션은 모두 리움 공간을 면밀히 관찰, 분석하고 주제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신작이다. 특히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은 고미술 상설전시실과 현대미술 상설전시실을 연결하는 계단에 위치하는데, 이 공간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실 외국 작가가 이 공간의 의미를 해석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고미술관을 나오면서 마주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고려가 있었다. 오랜 기간 작가와 논의해 우리는 태양계 우주공간을 창조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주라는 영원한 시간과 공간을 표현한 것으로 인류와 예술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영속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고미술 상설전시실과 현대미술 상설전시실을 연결하는 상징적 의미다. 로비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고헤이 나와의 유리구슬로 뒤덮인 사슴도 매우 아름답다.

‘관객교감’이라는 주제가 눈에 띄는데 기획의도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관객교감이라는 주제는 세 관의 주제를 하나의 주제 아래 놓고 볼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미술관은 어렵고 엄숙한 듯 보이며, 특히 현대미술은 난해하다. 대중에게 미술이 어떻게 하면 흥미롭고 즐거우며 가끔은 단순하게 몸을 움직여 걸어 다니기만 해도 즐길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관객교감이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구성했다. 네토는 자칫 현대미술이 간과하기 쉬운 아름다움, 즐거움, 휴식 등과 같은 요소들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작가로 이해되며, 티라바닛은 예술작품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관점의 변화를 일관되게 추구해 온 작가이다. 재닛 카디프 & 조지 뷰어스 밀러의 작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통한 공간 창조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온 작가이다. 그리고 인사이트씨잉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젊은 작가들이다. 리움이 이태원에 자리 잡은 이래 이 지역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것은 예술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리움과 이태원은 알게 모르게 소통하며 서로를 변화시켜왔다고 보며, 작가들이 이태원을 연구함으로써 리움과 개인을, 나아가 예술이 사회와 세계를 매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표면적인 흥미로 작품을 즐기는 것도 충분히 좋고, 그 이면에 자리 잡은 맥락들을 해석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는 모두 보는 사람의 몫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대로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삼성미술관 학예사들에게도 이번 전시는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이었을 듯싶다. 전시를 준비하며 고미술과 현대미술 전공-담당 학예사 간의 의견 조율은 어떻게 했나. 혹시 이견은 없었는가?
리움의 고미술 학예실과 현대미술 학예실이 통합된 지도 이제 6년이 넘었다. 리움 개관 이전 오랫동안 서울과 용인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두고 있었던 두 학예실이 통합된 후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늘 가까이 대화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회의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전시에 대해 토의한다. 처음 ‘교감’과 ‘시대교감’이라는 주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간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4년 리움이 개관할 당시 고미술 학예실과 현대미술 학예실은 ‘고미술 상설전시실은 조선말기까지, 현대미술 상설전시실은 그 이후부터’라는 시기 구분 외에는 함께 논의한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서로 놀랐다. 고미술 전시실은 고미술 작품의 크기를 고려한 전시실의 형태와 작품 보호를 위한 고정된 진열장으로 인해 장르 간의 교류나 전시 실간 교체 등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큰 제약이었다. 또한 현대미술과의 표피적인 교류가 되지 않기 위해 현대미술 큐레이터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고미술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작품이 나오기를 서로 원했고, 따라서 오랜 기간 학예사들 간에 주제와 작가 선정을 위한 토론, 고미술/현대미술 학예사와 작가의 토의를 거쳐 작품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길고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의미 있고 뿌듯한 일이었다.

리움 전시실의 전시환경은 국내 최고수준이다. 소장품을 보존 관리하는 수장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소 소장품 관리와 연구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미술관의 근간은 소장품이다. 리움은 사립기관으로는 드물게 보존연구실이 있는 미술관으로 늘 소장품을 최상의 상태로 관리,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면, 이번에 상설전시에 처음 나온 박노수의 <산정도>는 오랜 기간 복원처리를 통해 공개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오래된 고미술, 근대미술의 보존과 복원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레지스트라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빠짐없이 관리한다. 크기, 서명, 재질 등은 물론이고, 이동에 대한 세세한 기록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일은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의 기본적 활동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임을 늘 생각한다. 학예사들은 소장품으로 구성되는 상설전시를 위해 각각의 소장품을 늘 연구하며 또 그 작품들의 맥락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리움처럼 한국 고미술, 현대미술, 외국 현대미술에 이르는 방대한 소장품을 가진 미술관에서는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이번 10주년 기념전은 오랜 기간 소장품 연구의 축적으로 맺은 열매이다. 앞으로도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소장품 전시들을 기획할 계획이다.

개관 10주년 기념전 이후 계획하고 있는 일정이 있다면 소개 바란다.
올 연말까지 <교감전>이 열리고, 내년 상반기에 작가 양혜규의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2015년은 삼성문화재단이 창립 50주년을 맞는 해다. 이를 기념해 삼성미술관의 근간이 되었던 고미술 분야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호암미술관과 리움에서 기획하는 2개의 고미술 특별전이 있고, 연이어 한국 고건축을 다루는 전시가 리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올해 새로이 개편한 아트스펙트럼도 지속하면서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등 시대와 지역, 장르를 초월하여 다양한 분야와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아우르는 전시들을 기획하고자 한다.

이준희 편집장

[Special Feature] 삼성미술관 Leeum 개관 10주년

삼성미술관 Leeum 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 특별전을 둘러보고

안휘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2014년 8월 20일 오후 나는 그동안 써오던 논문 한편을 대충 마무리 짓자마자 서둘러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향하였다. 전날 공개하기 시작한 <리움 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交感)>을 빨리 보기 위해서였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조지윤·이승혜 학예원이 나와서 맞아주었다. 모처럼 만난 이 제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고미술 상설전시관인 Museum1의 4층으로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고려청자 전시부터 보기 시작하였다. 평소 상설전시를 통하여 눈에 익은 작품들 이외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자기들도 여러 점 볼 수 있어서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고려청자들은 구면이든 신출이든 단 한 점도 예외 없이 지고(至高)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뛰어난 조형성과 형태미, 그윽하고 고운 비색(秘色, 翡色)의 유약(釉藥), 섬세하고 세련된 문양 등 무엇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
송나라의 태평노인(太平老人)이라는 학자가 그의 저술 《수중금(袖中錦)》에서 ‘천하제일(天下第一)’을 꼽으면서 고려의 비색, 즉 청자를 꼽은 사례가 떠올랐다. 고려청자는 하버드대의 박물관 전시에서도 ‘천하제일(The First under the Heaven)’으로 소개되었을 정도로 서양에서도 그 진가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최고 중의 최고(The best of the best)라고 부를만하다. “어떻게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낮은 신분의 고려 도공들이 이처럼 놀라운 수준의 아름다움을 그토록 다양한 방법으로 창출할 수 있었을까” 늘 경이롭게 느꼈지만 이번에는 더욱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역시 자신들의 비법을 소중하게 여기고 철저하게 지켜낸 ‘청기와쟁이들’의 작품 답다. 청기와도 청자를 굽던 청자 도공들이 만든 것이어서 ‘청기와쟁이’는 ‘청자쟁이’로 바꾸어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 청자는 공예이면서 유약의 제조법과 번조법 등 전 제작과정이 당시로서는 최첨단 과학기술이었던 것이다. 영국의 한국도자기 전문가 곰퍼츠(Gomperts)가 고려청자의 4대 업적으로 꼽았던 ‘아름다운 조형성’, ‘신비로운 유약색깔’, ‘상감기법(象嵌技法)의 창안’, ‘진사(辰沙)의 최초사용’ 등도 절감하며 재확인하였다.
평생 걸작들 앞에서도 알량한 미술사가의 냉철한 객관성을 보도(寶刀)처럼 앞세워 표정관리를 엄격히 하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자 애를 썼건만 이제는 늙어서일까 이번에는 보석 같은 청자들 앞에서 자제력을 잃은 듯 한숨과 감탄이 입에서 저절로 주체할 수 없이 튀어나왔다. 실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의 높은 격조와 다양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였다. 이어서 보게 될 다른 전시도 대단한 것임을 예감케 하였다. 4층의 고려청자실에서 나는 이미 미적 포만감을 충분히 느꼈고 설령 더 이상 다른 전시를 못 본다 해도 아쉬울 것이 없을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두 제자는 3층의 조선시대 도자기실로 나를 이끌었다. 조선왕조 전반기에 우리 도공들이 발전시킨, 다른 나라에는 없던 조선 고유의 각종 분청사기와 조선시대 초기부터 말기까지 간단없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진 순백자 및 청화백자를 위시한 다양한 백자들은 잠시 동안이지만 나를 시각적 충격 속에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마치 4층에서 3층으로 갑자기 떨어진 것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별개의 세계로 옮겨진 듯 혼미하게 느껴졌다. 한국의 도자기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아마도 4층의 고려도자실을 본 다음에 3층의 조선도자실로 들어서면서 ‘같은 나라의 도자기 맞아?’라는 의문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고려와 조선왕조의 도자기들이 드러내는 차이는 새삼스럽게도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전에는 늘 같은 층의 다른 전시실에서 두 시대의 도자기들을 수평적으로 이동하면서 보았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으나 이번의 리움 전시에서는 같은 건물의 4층에서 3층으로 수직 이동한 후 층을 달리하여 보니 그 차이가 그렇게 별나게 두드러져 보일 수가 없었다. 이번의 삼성미술관 리움 전시를 통하여 겪은 새로운 시각적 경험이었다.
이 방의 압권은 그 유명한 얼룩진 달항아리이다. 둥글고 아담하고 덕스러운 몸매, 희고 깔끔한 피부, 넘치는 안정감 등등 흠잡을 데 없는 보름달 같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얼룩마저도 흰 캔버스 위의 담갈색 추상화같이 보여서 전혀 밉지가 않다. 다음 기회에는 조그만 별실을 만들어 따로 모셨으면 좋겠다. 주변에 누구의 어떤 작품을 갖다 놓아도 압도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귀얄문 편병도 형태의 특이함과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귀얄무늬가 돋보이는 세계 유일의 대표작이다. 그렇다고 다른 분청사기들이 그보다 못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각종 분청사기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와 무늬와 유약의 안정적인 소박성, 넘치는 창의성과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또렷한 한국성, 확연한 시대성과 지역성을 이번 전시에서 다시 한 번 절감하고 거듭 확인하였다.
15세기의 <청화백자매죽문 항아리> 앞에서는, 중국 것보다 뛰어난 우리나라 미술의 대표작들을 선정하여 기술한 졸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사회평론, 2010)에 여러 차례의 주저 끝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을 거듭거듭 후회하며 개탄하였다. 중국에서 워낙 뛰어난 청화백자들이 원대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이 가작을 누를 수 있는 작품이 혹시라도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앞서서 포함시키기를 망설였던 것인데 역시 포함시켰어야 마땅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이다. 이 항아리에 그려진 매화와 대나무 그림은 일류 화원의 작품이 분명하여 회화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처럼 도자사 뿐만 아니라 회화사의 측면에서도 더없이 중요한 작품인 것이다. 이 청화백자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을 거듭 재확인한 것을 소득으로 여기며 마음을 달랬다. 이번 전시에서 얻은 또 다른 큰 소득이다.
2층으로 내려가니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군선도> 등 국보들이 반겨주었다. 정조대왕의 화성 능행(陵幸) 장면을 그린 그림 중의 한 폭인 <환어행렬도>도 낙폭이지만 최고 수준의 궁중기록화로서 눈길을 끈다.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하였다는 서도호의 <우리나라>는 수많은 아주 작은 인물상을 군집시켜 한반도 형태를 재현했는데 작품 속에 깃든 젊은 작가의 남다른 창의적 생각과 수고로움을 마다않는 성실함이 합쳐져 관객들의 눈길을 끌어들인다. 평면미술인 회화의 방에서 회화도 아닌 엑스트라가 관람객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작가의 능력과 평판, 작품이 지닌 한반도의 지도와도 같은 조형성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1층 전시실에서는 불교미술과 금속공예를 감상하였다. 국보 제196호인 통일신라의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과 변상도, 국보 제218호인 고려의 불화 <아미타삼존내영도>와 삼국시대 및 후대의 불상들, 금관을 비롯한 각종 금속공예들이 각기 뛰어난 아름다움과 함께 역사적 의미를 드러낸다. 불화와 불상 곁에 배치된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와 자코메티의 조각은, 이번 전시의 기획자들이 보여주고 싶어 한 ‘교감’에 대한 강한 의도를 엿보게 한다. 이로써 Museum1의 고미술전시관을 터질 듯한 미적 포만감 속에서 떠날 수 있었다.
이어서 ‘동서교감’을 느끼게 하고자 계획된 한국의 근현대미술과 서양의 미술을 Museum2 현대미술관에서 보게 되었다. 현대미술의 조형적 변화, 예술의 본질에 대한 탐구, 다양화하는 여러 가지 특성 등을 엿볼 수 있었다. 현대미술 전시는 Museum2의 2층부터 지하 1층까지 차지하고 있다. 동서 현대미술의 여러 경향과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실험적 성격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현대미술 전시는 기획전시실과 로비로 까지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고미술 상설전시관인 Museum1과 현대미술 전시관인 Museum2 등 삼성미술관 리움 전체의 공간을 모두 활용하여 한국의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위주로 하면서 서양 및 중국 등 외국의 현대미술까지 포함하여 최대한 많은 작품을 ‘교감’이라는 시각에서 효율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이번의 삼성미술관 리움 10주년 기념전은 종래의 전시들과 원칙적인 점에서는 공통된다. 다만 전시의 규모가 훨씬 더 커지고, 박물관 전시공간을 비우지 않고 꽉 메우듯 최대한 활용하여 동서고금의 다양한 미술의 흐름과 특성을 되도록 많이 소개하되 ‘교감’이라는 큰 명제로 조화롭게 묶어보고자 한 점이 두드러진 차이일 뿐이다.
지금까지 삼성문화재단은 1965년 설립 이후 호암미술관, 호암갤러리를 거쳐 삼성미술관 리움, 플라토(구 로댕갤러리)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삼성미술관 리움만이 할 수 있는 전시’, ‘삼성미술관 리움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전시’를 개최해왔다. 1990년대에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했던 <고려, 영원한 美>, <大고려 국보전>, <조선전기 국보전>, <조선후기 국보전>, 리움에서 열었던 <조선말기 회화전>, <금은보화전>, <조선화원 大展> 등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리움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은 특히 더욱 주목할 만한 전시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아니면 어떤 박물관이 이런 대규모의 폭넓고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다양한 전시를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고미술은 물론 현대미술, 그리고 서양의 현대미술까지 어우르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막강한 소장품, 대규모의 전시가 가능한 넉넉한 전시공간, 뛰어난 전문 인력, 옹색하지 않은 예산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 같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전시들이다. 이런 전시들을 통하여 국민은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려왔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실제로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생각만 하고 글로써 드러내지 않았던 몇 가지를 이번의 전시를 핑계 삼아 털어놓고자 한다. 만약 삼성미술관 리움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문화와 문화재, 현대미술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전제로 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리움이 다른 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이 열 수 없는 ‘굉장한’ 전시회를 끊임없이 열어왔으나 그 중요성을 제대로 아는 국민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막연히 ‘돈이 많으니까 하는 일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문화를 키우고 문화재를 보전하겠다는 투철한 인식과 애국심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크나큰 중대사가 바로 문화재와 미술품을 수집하고 박물관을 세워 국민을 위해 전시하고 교육하는 일인 것이다. 실로 국가를 위해서 또는 국가가 할 일을 대신해서 하는, 숭고한 애국적 문화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고마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리움은 지나치게 좌고우면하지 말고 당당하게 홍보를 보다 적극화하고 국민들은 그런 전시들을 통하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현대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는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만 한다.
둘째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오랫동안 수집해온 수많은 문화재와 현대미술품의 엄청난 가치를 정부와 국민 모두가 올바르게 인식하고 인정해야 마땅하다는 점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 이후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 홍라희 관장 부부, 호림박물관의 윤장섭 회장을 비롯한 문화재 및 미술품 수집가들이 없었다면 간송선생 사후의 문화재 분야의 공백을 누가 메우고 가꾸며 끊임없는 문화재의 해외 밀반출을 어떻게 막을 수가 있었겠는가. 간송선생과 더불어 후대의 애국적 문화재 수집가들에 대해서도 올바른 평가가 똑같이 공평하게 이루어져야만 하고 대등하게 고마운 존재들로 대우해야 마땅하다.
셋째는 삼성미술관 리움 같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문화융성’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이 마련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1000개의 박물관 늘리기는 언뜻 성공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진정으로 견실한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은 지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전문가들은 훤히 알고 있다. 우선 돈 많은 재벌들이 리움 수준의 튼실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세울 수 있도록 정부는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는 등 정책적 배려를 하는 것이 장족의 국가 발전과 문화융성을 위해서 절실하게 요구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생산하는 재벌은 자동차박물관, 소비재를 주로 만들어내는 재벌은 소비재박물관의 설립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나라가 선진국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숫자가 얼마나 되며 그것들이 또 얼마나 알찬지도 중요한 잣대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10주기를 충심으로 축하하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마지않는다. 훌륭한 전시를 위해 애쓴 홍라희 관장과 홍라영 상임부관장, 우혜수 학예실장을 위시한 직원 모두에게도 전시를 만끽한 관람자의 한 사람,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끝으로 오늘의 리움이 있게 한 이건희 회장의 빠른 쾌차를 마음으로부터 기원한다. ●

[Special Feature] 삼성미술관 Leeum 개관 10주년

블랙박스 속 현대미술의 교감

정연심  홍익대 교수

재난이 유난히 많이 발생한 올해, 예술이 우리 사회에 근원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플라톤이 이상국가에서 예술을 추방한 것은 어쩌면 예술이 가진 전복적인 힘, 예술이 미메시스로서 모방 차원이 아니라 ‘예술작품에서 그려진 이미지, 재현 그 자체가 현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예술은 사회에서 때때로 전복적인 힘을 가지고 충격효과를 더해서 기존의 질서에 혼란을 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로 전복적인 현실, 어려운 현실을 마주한 채, 오히려 예술작품 그 자체에서 위안을 받으려 기대를 걸기도 한다.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 10주년 기념전으로 개최되는 〈교감〉은 우리 사회가 가진 여러 형태의 갈등과 충돌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소통’과 ‘함께함(Being-together)’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시를 구성하는 상이한 미학적 요소들, 시대적 배경, 다양한 역사성과 예술성은 시대와 특정 장소를 초월하는 독특한 미적 언어로 다가온다.
특히 삼성미술관 리움의 블랙박스에 배치된 현대미술은 참여를 지향하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지점들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글로벌한 맥락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대미술가들을 중심으로 비엔날레, 도쿠멘타 등을 통해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들인 에르네스토 네토(Ernesto Neto), 리크릿 티라바닛(Rikrit Tiravanija), 재닛 카디프와 조지 뷰어스 밀러(Janet Cardiff & George Bures Miller), 함경아, 문경원+전준호, 이세경, 아이웨이웨이(Ai Weiwei), 최정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리암 길릭(Liam Gillick) 등이 이 전시에 참여한다. 이들의 작품을 함께 모아주는 요소들은 한 단어일 수 없지만,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200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동향이나 단면들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현대미술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바탕으로 전개되면서, 이전의 예술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터랙션(interaction)의 증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시각예술은 이제 시각성이나 시각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것을 확장하여, 인간이 가진 또 다른 감각들에 반응하거나 작용하는 예술로 나아간다. 시각적인 것을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것, 인체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지각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가들은 시각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예술을 정의하고자 한다. 1964년 브라질 태생의 미술가인 에르네스토 네토는 리우 데 자네이루의 파르크 라즈 시각예술학교(Escola de Artes Visuais do Parque Lage)에서 수학하였는데, 그의 설치미술은 관람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관람자들은 네토의 비정형적인 설치물 안으로 걸어가면서, 브라질의 원시림을 걷는듯 정향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심비오인테스튜브타임-향기는 자궁집에서 피어난다>(2010)에서, 반투명한 재질들은 조각적이면서도 건축적이고, 또 은신처처럼 따뜻하고 포근하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떠나 명상에 취할 수도 있다. 아로마 향을 맡으면서 말이다.
전통미술을 바라보는 수동자의 위치가 아니라, 작품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원형무대 위로 직접 올라가야 한다. 니콜라 부리요가 관계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선정했던, 리크릿 티라바닛은 <데모스테이션 No.5>(2006~2014)를 통해 관람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한다. 실제로 작가는 영감의 원천으로 회화를 삼차원적 입체 조형물처럼 전시했던 프리드리히 키슬러를 들고 있다. 관람자들은 미술관 안에 배치된 놀이터와 같은 <데모 스테이션>에서 같이 온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 수도 있고, 날씨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일종의 벤치, 혹은 공연장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미술관에서 오브제는 만지지 말아야 할 대상이었던 역사가 무색하게 이제 관람자는 작품을 직접 사용하는 공간의 유저(user)가 되는 것이다.
이번 리움 전시에서 전통미술을 관람하고 내려오는 순간 발견할 수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은 ‘세런디퍼티(serendipity)’이다. 실내공간에서 인공자연과 빛을 주로 다뤄온 작가(1967년생)는 덴마크 태생으로 아이슬란드에서 성장했다. 북유럽의 사회주의적인 공동체를 주장하듯, 그의 작업에는 유난히      ‘당신/당신들(you)’이라는 대명사가 많이 등장한다. 엘리아슨의 신작인 <중력의 계단>은 벽 전체를 거울로 덮어 무한한 우주 공간을 만들고, 그 위로 태양계를 상징하는 빛의 고리들이 부유하게 하였다. 그는 문화의 공간인 미술관 안에서 빛과 거울, 기계장치들을 사용함으로써, 미술관 내에 자연의 시뮬라크라를 형성한다. 천장에 비춰지는 관람자 자신과 상대방의 모습은 그 공간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공간과 빛을 새롭게 체험하게 한다. 그는 미술관 안에 이끼, 버섯, 가짜태양 등을 설치하여 관람자들이 순간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낸 바 있다. 그것은 지속되지 못하는 공동체이지만, 리암 길릭의 <일련의 의도된 전개>처럼 예술작품과 사물의 경계를 계속해서 얄팍하게 만들면서, 관람자들을 오브제의 향유자가 아니라 ‘설치’라는 물리적 공간의 개입자들로 존재하게 한다.
카디프(1957년생)와 밀러(1960년생)는 각자 단독 작업도 하지만, 사운드설치 협업 미술가들로 활동한다. 두 작가는 72개의 스피커를 설치하여 피아노, 첼로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소음이나 대화 등을 사용하여 전시 공간에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F#의 음악은 다양한 스피커 아래에 설치된 센서들을 통해 관람자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는데, 특히 그림자는 다양한 소리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은 관람자 수와 위치에 따라서도 인터랙티브하게 반응한다. 그들이 모두 떠나면, 이 작품이 놓인 룸은 고요와 침묵이 흐르는 빈 방으로 바뀌게 된다. 카디프는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중세분관에서 현대미술로는 처음으로 <40성부 모테트(40 Part Motet)>를 설치하여, 소리가 만들어내는 공간성을 새로운 조형요소로 실험하였다. 이러한 사운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리 채집인 경우도 있지만, 종교적인 숭고함과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현존성(presence)을 강조했다면, 아이웨이웨이와 문경원+전준호의 작업은 심리적이고 실존적이다. 대표적인 저항 미술가인 아이웨이웨이는 중국 남부지방에 버려진 나무들을 가져와 전통방식으로 이어 중국정원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나무지만, 가까이서 보면 상처받고 어눌하게 이어진 나무 정원은 실제로 오늘날의 사회를 말해주는 듯하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신작 <q0>는 이번 전시의 주제에 맞춰 특별히 제작된 신작이다. 영상은 리움의 소장품인 통일신라시대의 <금은장 쌍록문 장식조개>를 소재로 이용하여, 소지섭 등이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유물의 탄생과 역사를 가상적인 시나리오로 연결한다. 소장품과 영상작업 사이에 위치한 관람객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것 같은 순간적인 아찔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넓은 스크린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람자가 설 수 있는 공간이 다소 좁아서, 영상 속의 이미지와 관람자의 몰입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이용하는 이세경은 <카펫 위에 머리카락>으로 전혀 예기치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직접 밟아서 들어올 수 있는 작품 위의 길을 만들어낸다. 함경아는 추상화가 모리스 루이스의 회화 형식을 차용하되, 인터넷 뉴스에서 가져온 문구들을 이용하여 탈추상화시키는 작업을 보여준다. 그리고 4명의 젊은 작가로 구성된 인사이트씨잉 그룹은 영상작업인 <잇!태원: 감각의 지도 프로젝트>에서 상황주의자들처럼 여기저기를 표류하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들추어내어 과거의 기억 지도를 재편성한다. 낯설다고 느껴지는 현대미술은 최정화의 <연금술>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온 플라스틱들을 이어 붙여서 만든 연금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동아줄 같기도 하지만, 로툰다 사이에 있는 공간으로 머리를 내밀고 끝없이 긴 선을 보면 아찔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에게 ‘연금술’은 일상적인 것을 예술적인 가치의 오브제로 변형시키는 일이며, 그 어떤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연금술사의 비밀이 내재된 것 같다. 전통미술을 보면서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서도호의 <우리나라>와 고려청자 옆에 배치된 바이런 킴의 <고려청자 유약> 작품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펴본 작업들은 어려운 비평언어 속에 매몰되어버렸거나, 예술의 전복적인 은유 속에 은폐되어버렸던 예술작품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설치들은 작품 속 몰입과 비평적 거리두기를 적절하게 작동시키는 동시에 관람자들의 물리적 참여와 개입, 심리적 교감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을 만들어낸다. <교감>전은 미술관의 공적 기능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서구와 한국의 지리성과 시간성을 수직적인 위계 관계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인 실천, 수평적인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어 2000년대 이후 한국미술의 동시대성과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

Museum3 블랙박스 아래 언더그라운드 전시장 광경

Museum3 블랙박스 아래 언더그라운드 전시장 광경

 

[Theme Feature] Korean Biennales 2014 Preview 2014광주비엔날레

2014광주비엔날레
터전을 불태우라

9.5-11.9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중외공원 일대

역동적 움직임을 즐겨라

9월 5일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라는 화끈한 주제를 내건 광주비엔날레의 막이 열린다. 1980년대 초 미국 언더그라운드 밴드 토킹 헤즈의 히트곡 제목에서 따온 이번 전시의 주제는 ‘물리적 운동과 정치적 참여’를 반영한다. 불이 가진 역동적이고 강렬한 인상만큼이나 전시의 메시지와 움직임은 강하다. 이번 전시에는 36개국, 106명(팀)의 작가가 참가하며 특히 사운드, 댄스, 퍼포먼스 등이 강조된다.
전시장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관객은 전시관 외관 벽면을 가득 채운 제레미 델러의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시민 권력의 장악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문어가 마치 화재가 난 건물을 탈출하는 듯 보인다. 이와 함께 전시관 마당에 설치된 스털링 루비의 주철로 만든 작품인 거대 장작 스토브에 장작불을 지펴 전시 주제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전시가 열리기 15일 전 찾아간 비엔날레 전시관에는 스케일이 큰 작업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연기 이미지를 벽지로 제작한 엘 우티모 그리토의 작업은 전시장 전체를 관통했다. 그의 작업은 전시장 곳곳에 월페이퍼로 사용되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그 위에 전시된다. 이를 통해 전시의 연속적 이야기를 전개한다. 또 다른 월페이퍼로 이목이 집중되는 작가가 있다. 뉴욕에 있는 자신의 집을 극사실주의 사진을 사용해 벽지로 제작하고 전시장에 가건물을 세워 그 벽지를 붙인, 취리히 출생의 작가 어스 피셔다. 그의 작업은 마치 자신의 집을 전시장에 그대로 옮겨온 듯 보인다. 작품 입구에는 피에르 위그의 <네임 어나운서> 퍼포먼스가 지역 작가 등 10여 명의 참여로 이뤄지고 가건축물 내부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놓인다. 이외에도 전시 기간 10여 개의 퍼포먼스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손으로 노동하는 직업군의 사람들이 입장하는 관객을 악수로 맞이하는 알로라&칼자디아의 <기질과 늑대>, 임민욱 작가의 대규모 오프닝 퍼포먼스 <네비게이션 ID> 등이 전시장 곳곳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관객은 전시장 속 전시장, 집 속의 집, 작업 위의 작업 등 전시장 내외부에서 동시 발생하는 역동적인 미술의 스펙터클 속에 놓이게 된다. 다양한 작품의 홍수를 세밀한 이야기로 이어간 전시감독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이번 전시를 보는 관람포인트가 될 것이다.
90%이상의 작가가 광주비엔날레에 처음 소개되는 만큼 예술의 저항, 혁신의 힘을 보여주는 세계무대 속 작가들의 작품이 어떤 시각적 유희와 충격을 줄지 궁금하다. 20주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가 그간 보여준 전시와 어떤 차이점을 내포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국내 가장 오래된 비엔날레 행사인 광주비엔날레가 명불허전의 전시가 될지, 실망을 안겨줄지 이제 관객들이 판단할 시간이다.
광주=임승현 기자

최수앙  2014의 전시 설치 중인 모습

최수앙 <흔적> 2014의 전시 설치 중인 모습

카르슈텐 휠러(Carsten Höller) Sliding Doors 2003 Installation view atée d'Art Contemporain, Marseille. Photo by Attilio Maranzano. Courtesy of the artist

카르슈텐 휠러(Carsten Höller) Sliding Doors 2003 Installation view atée d’Art Contemporain, Marseille. Photo by Attilio Maranzano. Courtesy of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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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광주비엔날레 이은하 전시팀장

“예술을 통한 한국현대사회의 검증과 치유”

이은하 인물전시 라인업과 함께 플로어 플랜까지 5월에 이미 공개되는 등 순차적인 전시진행과정을 보여주었다. 그간의 여정이 궁금하다.
지난해 6월 전시총감독 선임 후 숨 가쁜 일정을 달려왔다. 같은해 9월 전시협력큐레이터 선정 이후 다수의 리서치와 전시기획회의를 거쳐 전시 주제가 연말에 발표되었고, 올 5월에 전시구성, 참여 작가가 발표됐다. 실질적으로는 1년 반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준비되는 셈이다. 물리적으로 매우 빡빡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예년보다 더 체계적이고 내실 있게 진행되고 있다. 차질 없이 체계적으로 준비된 데에는 기획자의 뛰어난 역량과 더불어 지난 20년간 쌓인 광주비엔날레 조직의 노하우와 경험이 뒷받침했다고 자부한다.
9월은 비엔날레의 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유사한 비엔날레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며 각각의 비엔날레만 색깔이 흐려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도 있다. 타 지역 비엔날레와 비교해 광주비엔날레만의 차별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광주비엔날레는 예술을 통한 한국현대사의 실체적 검증과 치유라는 동기를 가지고 탄생했다. 개최지의 역사ㆍ문화와 밀착되면서도 이를 인류 공동의 이슈나 화두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세계 비엔날레들 가운데서도 가장 특징 있는 행사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즉, 창설 배경의 하나인 5・18 광주민주화항쟁의 경험과 상처, 에너지를 문화적으로 승화시켜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로서 ‘광주정신’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점을 특화된 강점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는 국가 문화행사 브랜드 인지도 1위의 행사다. 그만큼 국내외적으로 확실한 위상과 퀄리티를 인정받았다. 다만 그 위상에 걸맞은 국가적 지원이 절실할 뿐이다.
고정 관람객 수가 어느 정도 되는가. 그중 지역주민과 미술전문가의 비율이 어떤지 궁금하다.
<2012 제9회 광주비엔날레> 관람객 수는 645만51명으로 집계됐다. <1995 제1회 광주비엔날레>는 163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으며 이후 40~50만명의 고정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중 지역 주민을 따로 카운트하고 있지 않지만 광주 전남권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두드러진다.
이번 주제인 ‘터전을 불태우라’에서 터전이란 단어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 ‘터전’이란 긍정적인 의미가 다분한 어휘로 ‘삶의 근원, 바탕’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터전’의 의미를 무엇으로 정의하는가.
‘삶의 근원, 바탕’의 의미, 당연히 긍정적인 해석도 전시 주제 안에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혁신과 부정을 통해 발전과 변화를 위한 긍정적인 힘을 찾아가는 반복적인 과정의 결과물이지 않은가. 이번 전시에는 관습과 권력, 부조리의 팽배, 개발 위주 현대 사회, 인간성 말살, 재난, 빈부 격차 등의 글로벌 이슈들이 정치·사회·역사적 맥락에서 대거 등장할 예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의 물질을 변형 가능케 하는 힘, 생성과 소멸의 이중성, 인류학적 문맥에서의 변화와 가치 등을 지닌 ‘불’의 속성과 메타포가 이번 전시의 의미를 구성・기획하는 방법의 중심이 되고 있다. 기존의 터전을 불태우고 우리들 미래의 ‘삶의 근원이자 바탕’인 터전을 더 견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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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창립 20주년 특별 문화행동 프로젝트
<달콤한 이슬, 1980 그 후>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하기 한 달여 전인 8월 8일, 광주비엔날레 창립 20주년 특별 문화행동 프로젝트가 열렸다. <달콤한 이슬, 1980 그 후>가 그것.      ‘광주정신’을 되새기며 인권, 민주, 평화의 증진을 문화, 인문, 사회학적 방법으로 모색하는 프로젝트로 전시, 강연, 퍼포먼스 총 3개의 분야로 나눠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행사의 주최 측은 “역사를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해석하고 1980년 광주를 기억하며 오늘의 우리 사회에 대한 위로와 치유, 동시에 비판의식을 일깨우겠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전시 개막 전 광주시가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작가 홍성담과 20명이 공동 참여한 대형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를 불허하면서 ‘사전 검열’논란이 일었다. 이에 전시 참여작가인 이윤엽과 홍성민이 작품을 철수하고, 윤범모 책임큐레이터가 사퇴의사를 밝히는 등 파행이 지속됐다. 8월 24일에 홍성담이 자신의 작품을 비엔날레 특별전에서 자진철회하기로 결정하고 윤범모는 사퇴를 철회하고 특별전을 온전히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달콤한 이슬, 1980 그 후> 강연시리즈의 경우 지난 1월부터 진행된 원탁 토론회를 시작으로 초청강연과 심포지엄을 진행 중이다. 특히 8월 8일 개막식에 앞서 개최되는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사람들’ 좌담회는 후 한루, 카스퍼 쾨니히 등이 참여해 광주와 현대미술사 30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광주비엔날레 폐막식이 열리는 11월 9일에는 광주 발(發) 마니페스토를 선포한다. 또한 강좌 시리즈와 함께   ‘오월 길’ 행사 같은 퍼포먼스도 진행 중이다. 이번 특별전의 강연과 퍼포먼스는 광주비엔날레 2014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와 강연과 함께 상호간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임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