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우리 미술계 큰 어른은 어디 계십니까?

불미스런 사유로 대한민국 미술계를 상징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중도하차 했다. 최초 여성관장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취임한 제18대 관장말이다. 공교롭게 공학박사이자 ‘탱크주의’를 내세웠던   기업의 CEO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역임했던 17대 관장도   임기를 4개월 남겨놓고 돌연 자진사퇴한 바 있다. 기업경영 마인드로 미술관을 이끌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는 결국 스스로 미술계를 떠났다. 미련 없이 뒤도 안돌아보고(비겁하게) 미술관 관장 자리를 내팽겨 친 것이다. 둘 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행보다. 누가 될지는 몰라도 후임 관장의 역할과   임무가 막중하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과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담론형성과 활력이 사라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운을 북돋아야 한다. 이합집산으로 분열된 갈등도 조정해야한다. 인사가 만사라 하지 않던가. 이번에야 말로 정말 제 몫을 할 수 있는 적임자가 등용 되어야 한다. 허울 좋은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인물이라든지, 정치권과 가까워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등, 본질에서 비켜난 부차적 자격요건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우리 미술계 속사정을 저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잘 헤아려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창간된 지 3년 된 시각예술저널《경향 아티클》이 지난 9월호를 마지막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홈페이지 게시글에 의하면 3개월 동안만 휴간하고 내년 1월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간하겠다고 한다. 부디 그들이 바라는 대로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 기원한다.
한편 지금까지 6회에 걸쳐 민화(民畵) 연재를 해온 강우방 선생은  편집디자인에 대한 불만과《월간미술》이 ‘천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연재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해왔다. 나는 그렇게 하시라했다.  대신 이에 버금가는 후속 연재물을 기획해서 조만간 선보이겠다.
요즘 들어 부쩍 건강 챙기라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듣는다. 안 그래도 몸 여기저기에서 이상신호를 보낸다. 발바닥도 아프고 팔도 저리고 기관지도 좋지 않다. 술 먹고 새벽이슬 맞고 다니니 당연한 꼴이라고 혀끝을 차면서도 마누라는 모과차를 만들어 놓았다. 후배기자들도 거들었다. “몸이 나른하고 피곤하시다고요? 드셔보신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을 비교해 보세요”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활성비타민제 6개월 치를 생일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육체피로, 눈의 피로, 신경통에 좋다는 이 알약을 아침저녁으로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만병통치 될 것만 같은 플라시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덕분에 기존에 복용해오던 혈압, 간, 콜레스테롤 약까지 합쳐서 한 움큼 알약을 매 끼니마다 삼킨다. 그것만으로도 배부른데 가끔씩 난데없이 여기저기서 욕도 얻어 먹는다. 이래저래 살기 참 힘든 세상이다.  쩝…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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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슬신보슬  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이번 특집은 그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국내외를 종횡무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는 큐레이터로서 동시대 작가들과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특유의 에너지와 사교적인 성격으로 다양한 기획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프로젝트로 이끌었다. 수십 명의 작가들을 이끌고 국내외 여행을 떠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축적된 노하우로 여행사를 차려도 성공할 듯. 2011년부터 말레이시아와 해외 교류프로그램 <플레이그라운드 인 아일랜드>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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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CO고승현  2014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위원장

지난 9월 취재차 방문한 기자들을 태우고 직접 승합차 운전대를 잡은 그는 쌍신공원 일대를 돌며 친절하게 가이드를 해주었다. 자연미술가 그룹 ‘야투’를 이끌고 비엔날레를 펼쳐 매력적인 국제적무대로 일구어낸 장본인. 국제레지던스를 진행하며 작가들에게 기술 자문까지 한다. 야외 설치작업은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데 오랜 노하우가 축적되어야 가능하기 때문. 최근 연미산 일대 땅을 확보해 자연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여 더 많은 이가 자연미술을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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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사진2이정윤 대전 통신원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대전, 충청지역  미술계 소식을 생생히 전해주었던 그녀가 이달을 마지막으로  본지 통신원을 그만둔다. 집이 분당으로 이사를 해서다. 그동안 매달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대전, 청주, 공주, 천안 할 것 없이 동분서주했고,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2002년 1월에는 마감 전날 예정일보다 일찍 출산하게 되어 남편이 미처 쓰지 못한 기사자료를 속달로 부치는 스릴 넘치는 일도 있었다고. 변덕스러운 기자의 요구에도 늘 밝은 목소리로로 답해줬던 그녀의 앞길을  응원한다.

 

[Column]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년, 그러나 10년은 된 듯한 고단함이 묻어나는…

11월 13일이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한 지 1주년이 된다. 하지만 1주년을 축하한다고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글을 쓰게 되어 마음이 착잡하다. 적어도 개관 시점에는 고립된 섬처럼 자리하던 과천 시대를 뒤로하고, 명실공히 국립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도심형 미술관이 탄생했다는 생각에 기쁘고도 뿌듯했다. 과천에서는 기대하지 못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관람객 증대, 그리고 장소성을 살려 낮고 열린 공간으로 설계된 건축 언어의 매력과 함께 오랜만에 미술관 문화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관전 이래 이런저런 잡음으로 위태한 상황을 보이더니, 결국 학예사 부당 채용 의혹과 관련하여 정형민 관장의 직위 해제로 결론이 난 지금의 모습은 심히 곤혹스럽다.
그동안 정형민 관장이 보여준 행태는 한마디로 디렉터십의 곤궁함이었다. 아니 디렉터십 이전에 국립 기관의 수장으로서, 사회적 공인으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갖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개관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이미 미술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곤욕을 치렀지만, 사실상 정형민 관장은 2012년 1월 취임한 이후 소장품 구입이나 운영 방식 등에서 본인이 재직하던 서울대와 연관된 의혹을 꾸준히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기야 전시 기획자 선정에서부터 작가 선정에 이르기까지 서울대 편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가운데, 제자 및 서울대 박물관장 시절 함께 일한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채점 결과 조작 및 면접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공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곧 권력 남용에 다름 아니고, 이는 우리 미술계에 오래된 전근대적 관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전 지역에서 미술관이 건립되고 있고, 그래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절실한 때이다. 하지만 관장 선임이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관계로 얽혀있음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점차로 나아질 것이고 또 어떤 지역은 나아진 곳도 있지만, 지역 미술관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되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주목하면서 리더십을 보이는 관장의 디렉터십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제도와 인프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미술계 내부의 역량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럴 경우 미술계 출신 인력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결국 이해관계로 움직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유례없는 기업 후원의 세례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그동안 미술관에 기업 후원이 거의 주어지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행이라 여겨 이를 단순히 실적과 성과로 자화자찬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먼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체제가 책임운영기관제인 만큼 후원에 따른 예산 운영에 한계가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또 재단을 설립하여 식당과 커피숍, 아트숍 등을 위탁 관리하고 있지만, 그 자체의 수익금이 미술관으로 오지 않고 국고로 환수되는 시스템이다. 미술관 재정 자립도에 도움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변 상권 침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굳이 과도하게 상업시설을 유치할 필요가 있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다른 한편 기업 후원을 어느 지점까지 받을지도 문제다. 지난 국감에서 현대카드 소지자에 대한 입장료 무료 혜택이 지적된 바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만 입장료를 낸 셈이 되면서 논란이 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견해나 입장은 다양할 수 있지만, 사실상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업 후원을 받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은 제기돼야 할 것 같다. 부족한 예산에 전시회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인가? 워낙 전시회 기획력이 뛰어나 기업 후원이 절로 이루어진 것인가? 기업 후원 자체가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쟁력 지표가 된다고 믿어서인가? 기업은 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후원하는가? 혹시 유명 작가에 집중하면서 브랜드 효과를 노리는 것은 아닐까? 후원 열풍은 서울 최고의 장소인 북촌에 입지하면서 일종의 상승세를 탄 결과는 아닐까? 추후 다른 미술관에도 기업 후원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이제 개관한 지 1년, 그러나 마치 10년이 지난 것 같은 피로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갑작스러운 상승세에 비해 우리 미술계의 내적 역량과 문제의식이 준비되지 못한 데에 따른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박신의・미술비평, 경희대 교수

 

[Hot People]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소장 최완수

“이념이 뿌리라면 예술은 꽃입니다”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을 처음 만든 사람은 간송 전형필이다. 그리고 지금의 간송미술관이 있게끔 이끌어온 주인공은 가헌 최완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송미술관의 학예연구실 격인 한국민족연구소 최완수 소장은 겸재로 대표되는 진경시대를 세상에 널리 알린 학자이자 추사 김정희 연구의 최고 권위자다. 최 소장은 간송 전형필만큼이나 세상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인물이다. 최근 《추사집》 개정본을 내고, 10월 12일부터 26일까지 2014년 가을 정기 전시로 <추사정화전(秋史精華展)>을 개최한 최 소장을 간송미술관 보화각 2층 연구실에서 만났다.

1976년 5월 초판이 나온 이래 38년 만에 《추사집》 을 다시 펴내셨습니다.  제 욕심이 한정 없이 발동해서 이렇게 오래 걸렸나 봅니다. 그래도 너무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순서를 정해놓고 일정에 맞추느라 아주 혼이 났지요. 교정과 편집이 쉽지 않았지만 출판사(현암사) 직원들이 잘 대처해줬어요. 내가 까다로운 사람인데, 내 안목에 찰 만큼 능력 있게 해줬어요. 38년 전과 비교도 안될 만큼 지금은 제작환경이 좋아졌지만, 의외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어요. 요즘 젊은 세대(편집자)가 한자를 너무 모른다는 거였죠.
언제부터 개정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초판이 나온 직후부터, 그러니 38년 동안 내내 수정을 하고 있었다고 봐야죠. 그때는 책이 뭔지도 모르고 번역하는 데 급급해서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던 것 같아요. 추사의 문장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서 오류가 눈에 띄는 대로 계속 고쳐왔어요.
선생님과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 선생의 주선으로 맺은 간송가(家)와의 인연은 그야말로 운명적입니다. 그럼에도 간송선생과는 직접 만나신 적이 없는데?  간송선생이 돌아가신 건 1962년이고, 나는 1966년 4월, 스무다섯 살 때 간송미술관에 처음 왔어요. 당시 이 일대는 모두 포도밭이었고, 성북동에서 가장 높은 최신식 건물이던 보화각(寶華閣)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었죠. 사실 간송선생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는 간송이 누군지도 잘 몰랐어요. 그분은 광복 직후 보성고등학교 교장 잠깐 맡은 거 외엔 평생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으니까요. 간송은 일절 소문내거나 드러내지 않으셨어요. 옛말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러니까 지금껏 간송의 유산이 지켜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사학(史學)을 전공하셨어요?  역사 공부를 안 하면 미술사를 할 수 없어요. 요즘 서양미술사는 물건만 봐요. 식물학도 표본만 보고는 알 수 없잖아요. 미술사 자료 가운데 역사자료는 기록으로 남긴 자료라서 기록자의 시각이 투영돼 있죠. 여차하면 흑(黑)이 백(白)이 될 수 있는 자료란 얘기죠. 개인의 일기조차 자기한테 불리한 얘기는 안 써요. 그러니 역사기록이라는 건 그렇다는 전제를 하고 공부해야 하죠. 이렇듯 미술자료라는 건 한 시대 문화역량의 총아입니다. 내가 늘 하는 얘기지만, ‘이념이 뿌리라면 예술은 꽃’입니다. 그중에서도 미술, 즉 조형예술은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으니, 보고도 믿지 못하면 어쩔 수 없어요. 제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미추(美醜)를 판단 못하면 미술사를 공부할 수 없어요. 그 능력이 있어야 예술사, 미술사를 할 수 있어요. 결국 역사를 알아야 미술사를 알 수 있고 미술사를 알아야 진정한 역사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선생님과 일군의 후학을 일컬어 간송학파라고 칭합니다. 간송학파의 학풍은 무엇인가요?  간송학파란 앞서 얘기한 사관(史觀)에 입각해,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우리의 역사를 긍정적인 사관으로 평가하자는 겁니다. 일제 식민사관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기술해놨어요. 우리는 처음부터 슬픈 민족이고, 비참한 민족이고, 정체된 민족이라고 기술해놨어요. 그렇다고 일본사람들이 사료 자체를 날조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여태껏 그 논리에 꼼짝 못하고 끌려 다닌 거죠. 사료를 날조했으면 날조했다고 따질 텐데 그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세요. 좋은 시기일수록 자신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냉철하게 자기를 반성하는 기록을 남겨놓습니다. 개인도 그렇잖아요. 건전할 때 자기에게 스스로 비판을 가해요. 하지만 망조(亡兆)에 들어가면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태평성대라고 해요. 망조를 이끄는 주역들이 만든 기록이니까, 이때가 좋은 시대라고 기록을 남겨요. 그래서 사실은 양당(兩黨) 이상이 존재할 때가 이상정치 시대예요. 내가 주장하는 진경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죠. 치열한 당쟁이 전개되던 시기란 말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그때 당쟁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당쟁 당사자들이 기록해놨어요. 그러니까 그걸 보고, 일제가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조선은 당쟁 하다가 당쟁 때문에 망했다고. 하지만 정작 당쟁 때문에 망한게 아니라 오히려 당쟁 때문에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절정기를 맞은 거죠. 이건 현재도 아주 간단한 상식이에요. 양당 이상의 당이 존재하며 서로 견제하면서 이상정치가 이뤄진단 말입니다. 일당 독재를 할 때는 견제세력이 없으니 자화자찬을 합니다. 일당 독재는 망하는 길이에요. 조선도 척족 세도가가 등장해 독재를 하면서 태평성대라고 기록돼있지만, 실제로는 백성은 한정 없이 도탄에 빠져 힘들었어요. 이런 잘못된 역사관을, 그걸 밝히는 게 간송학파의 학맥이고 경향입니다.
그럼 간송학파에 속한 학자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누구누구가 간송학파라고 얘길 할 수 없어요. 내 학풍에 공감하고 내가 인정하는 제자들이 모여서 묵묵히 공부 할뿐이죠. 봄 가을 정기 전시 기간 외에 연구자는 계속해서 공부합니다. 각자 여러 분야를 연구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기 공부를 하는 거죠. 요즘 세태가 마치 홍수처럼 한쪽으로 휩쓸려가는데 거기에 안 쓸려가고 우리의 독자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매번 정기 전시에 맞추어 발행되는 《간송문화(澗松文華)》가 간송학파의 실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1971년부터 시작해서 이번에 87호에 이르기까지 여태껏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지속됐죠. 어떤 국가기관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간송문화(澗松文華)》야말로 간송학파, 학풍의 결정체로 봐야죠.
어떻게 변함없이 이렇게 오랜 세월 한결같이 한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을까요? 기본적으로 간송의 정신과 내 생각이 일치해서입니다. 그분과 내가 지향하고 지향하려 했던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서로 대타협을 이뤘다고 봐요. 나의 학문적 지향점을 실현하고 유지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가 이곳이고, 적합한 선구자가 간송이라는 걸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간송이 일제강점기에 전력을 기울여 문화재를 수집하고 지킨 것은 우리 문화의 독자성과 우수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나 또한 그것을 평생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간송의 뜻을 이어온 겁니다.
얼마 전 DDP에서 전시가 열리기도 했지만, 과거 간송미술관은 관람객에게 친절하지 않았던게 사실입니다. 불평불만과 요구사항도 많았는데요?  모든 층이 다 만족하고, 만족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간송미술관은 애당초 입장료도 안 받았고, 돈과 상관없이 시작한 전시니 관람객이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부터 그랬으니까요. 삼성미술관 리움은 쾌적한 공간에 전시물을 오래 걸어놔도 견딜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각기 형편이 다른거죠. 리움은 리움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이번 <추사정화>전에 처음으로 예약제를 시행했는데, 경험해보고, 실험해보고 개선할 것은 개선해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간송문화재단 쪽 일은 내가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공부하시는 시간 외에 휴일이나 여가활동 등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휴일이 있을 새가 없이 살았으니까. 공부 안 할 때가 있어야지(웃음) 그저 꽃 기르고 기이한 새 기르고…, 지금은 힘이 부쳐서 다 나눠주고 없어요. 미술사 하는 사람은 당연한 거지요. 취향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아름다운 것을 보면 거기에 취해서 다른 건 안보이니까. 가끔씩 여행이나 고적 답사 가서도 평소 못 보던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인을 찾아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꼭 분양 받아오곤 했답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운전도 안하시죠?  난 평생 손목시계도 안 차본 사람입니다.(웃음) 그만큼 늘 곁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얘기고, 지금은 완전히 제자들 도움으로 살고 있는 거라고 봐야죠.
완전히 인간문화재시네요?  인간문화재라, 그 이름이 천박해서.(웃음)
후학들 외에 평소 주로 어떤 분들과 교류하시는지요?  많지는 않지만 고등학교시절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고 함께하는 친구가 예닐곱 명 됩니다. 공부하는 일이 외롭고 적적하고 힘들지만, 그때마다 물심양면으로 후원 격려해주는 옹위세력이죠.(웃음) 전시 열어놓고 누가 와도 내려가서 설명하지 않지만 그 친구들한테만은 꼭 설명해준답니다.
외람되고 무식한 질문입니다. 겸재와 추사(의 시대)를 우열(優劣)로 견주어 평가한다면 어떤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겸재와 추사 모두 조선후기 문화절정기를 장식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추사는 조선후기 사회가 멸망기로 접어드는 내리막길이었던 시대를 살았죠. 다시 말해 새 시대를 열어야 할 시기, 즉 진경문화를 일으켰던 조선 성리학 시대를 청산하고 새 사회를 열어야 하는 시기, 새로운 이념의 시대를 열어야 할 당대의 기수 역할을 한 인물이란 말입니다. 반면 겸재는 진경문화를 절정을 열어간 주인공이고요. 진경시대는 청나라를 완전히 라이벌로, 심지어 오랑캐로 여겼어요. 그러면서 조선이 중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진경산수와 풍속화를 창안했습니다. 그런데 추사는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서, (여기서 추사에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진경사회를 부정해야 하는, 부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겸재(1676~1759) 사후 약 30년 후에 추사(1786~1856)가 태어납니다. 그토록 단기간에 문화적으로 이렇게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겸재는 추사의 고조부 세대 사람입니다. 충분히 바뀔만 할 시간이죠. 문화란 파도와 같이 늘 변합니다. 문화가 발전했다고 끝없이 지속되는 건 아닌 것처럼, 왕조가 바뀌는 것 역시 문화가 기멸(起滅)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죠. 늘 하는 얘기지만, 내가 역사를 통괄해 보니까 그 기간이 대체로 250년 정도 되더군요. 중국이나 일본은 그 기간에 딱딱 맞게 왕조가 바뀌었는데 우리 조선만 500년 동안 유지됐어요. 우리 선조가 중국문화에 현명히 대처하고 대응, 대항하면서 우리 문화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지켜온 거죠. 조선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중국이 문화적으로 앞선 선진이니까,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들인 상태로 충분히 소화하면서 250년을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동화되거나 따라가지 않고 심화 발전시켜 우리 것을 만들었지요. 이렇게 조선은 중국 것을 우리 것으로 완성시켜 다시 250년을 살아온 거죠. 성공적인 후기 문화란 항상 ‘고유성’, ‘독자성’, ‘완결성’을 보여줍니다. 조선후기 완결성의 대표적인 결과가 바로 진경산수와 풍속화고, 서예에서도 그 완결판을 보여주는 게 바로 추사의 추사체입니다. 물론 진경시대에 ‘동국진체(東國眞體)’가 있었고, 그것이 있었기에 추사체라는 세계적인 서체를 완성시킨 거지만, 중국 역대 서법의 특징과 장점을 융합해 추사체를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더 주목해야 합니다. 이렇듯 추사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서 우리 독립성을 처음부터 이뤘지요.
결국 추사 쪽으로 조금 기우시는 군요.(웃음) 추사를 연구할 때는 안타까워요. 겸재를 연구할 때는 갈수록 신바람이 나는데 말입니다. 겸재는 우리문화가 절정기 독자성 발현할 때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추사는 아쉬워요. 자꾸 망조로 들어가니까 공부하며 아주 힘들어요. 추사 개인사적인 입장에서도 비참해서 참 안타깝고 마음 아파요. 반면 겸재는 시대를 정말 잘 만난 사람이죠. 겸재는 기세가 하늘로 뻗는 시대를 만났고 추사는 내리막길을 만난 사람이잖아요. 새 시대의 기수를 자처하기에 딱 좋은 시기였으나, 좌절당하고 그러면서 나라는 망해가고….
요즘 화가들이나 그들의 그림을 보면 어떠신가요.  새로운 화풍을 창조한다는 것, 새로운 예술의 경향을 창조해서 이끌어가는 사람은 결국 인문학자, 선비들이에요. 생각할 능력이 있고 이념을 자기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거죠. 선진 문물이나 전통을 자기 나름대로 제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인문학자입니다. 일반 기술자는 이념기반이 없어서 진정한 의미의 창조를 못 합니다. 단원이나 혜원 같은 사람은 창조자라기보다는 화려한 대미를 장식한 사람이죠. 화려한 기법, 기교를 부려서 마무리는 짓되, 새로운 기법을 창조하지는 못했어요. 지금 그런 분위기를 바꾸려면 인문학자인 화가가 나와야하는 데, 그건 이념기반이 확립되기 전에는 불가능해요. 앞서도 얘기했듯, ‘이념이 뿌리고 예술이 꽃’이에요. 지금은 뿌리가 형성이 안되어 있어요. 지금 세상은 완전히 미국뿌리를 옮겨 논 상태에서 미국뿌리로 살고 있어요. 요즘 화가들은 동양화 그리라면 미국 동양화를 그려요. 발상이 그렇고 사고한계가 거기 있으니까 좋은 그림이 안 나와요. 한편으론 이런 상황은 자연스러운 이치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면 미국 따라갈 수 있을까 거기 모두 매달려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걸 무작정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는 않아요. 이게 우리 문화 발전의 동력이에요. 이 과정을 거쳐야 우리문화의 독자성이 나오게 돼요.
아이쿠! 이번호에 함께 실릴 손동현 작가 작품 보시면 놀라시겠네요.(웃음)  지금 내가 하는 이런 주장은 욕 얻어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아요. 남보다 상당히 앞서 있으니까.(웃음)
외국 여행은 가보셨나요?  한 번도 가본 적 없어요. 불상 연구할 때도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그래서 내 불상 연구를 가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웃음)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 얘기 더 잘해요.(웃음) 우리의 공부 경향이라는 게 외국 가서 공부해야 제대로 된 공부고 국내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안 가도 할 수 있다는 오기가 있었어요.
밤늦게까지 공부하시나요?  아니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요. 옛날 선비들도 그랬어요. 승려들이 그렇듯이 술시(戌時, 저녁 7~9시)에 자고 인시(寅時, 오전 3~5시)에 일어나요. 뭐든지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그래요.
오랜 말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찍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은 두루마기를 입고 찍어야 하는데…. 대담할 때는 상관없지만, 이 저고리는 속옷 차림이니까.(웃음) 이준희 편집장

가헌(嘉軒) 최완수는 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4월부터 간송미술관에서 근무하며 연구실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제10회 일민문화상(2012), 제21회 위암장지연상 한국학부문(2010), 우현학술상 미술사분야(2010)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추사집》,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 1, 2》,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 《겸재의 한양진경》, 《겸재정선》 등이 있다.

 

[Hot People]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윤진섭

“아시아 미술비평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2014 국제미술평론가협회 학술대회 및 총회(2014 AICA International Congress Korea, 아래 사진)’가 10월 8일부터 16일까지 수원 라마다호텔과 SK아트리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등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올해 47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는 32개국에서 모인 국제미술평론가협회(Association Internationale des Critiques d’Art, 이하 ‘AICA’) 회원 58명을 비롯, 비회원까지 총 145명이 참여했다. 유네스코(UNESCO) 산하단체인 AICA는 1950년 창설, 현재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62개국 4600명의 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비영리 미술비평 단체다.
한국에서는 처음 개최된 이번 대회는 국제적인 비평대회가 전무하다시피한 한국 현실에서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이번 AICA 총회와 함께열린 AICA 어워드를 통해 故 이일이 특별공로상을, 이선영이 젊은비평가상을 받았다.
이번 AICA 총회를 계기로 이 단체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윤진섭 전 호남대 교수를 만났다. 대회 준비부터 본대회 진행과 기조발제, 마무리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는 윤 부회장은 다소 피곤한 얼굴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전날까지 이번 총회에 참여한 AICA 회원 30여 명과 함께 타이베이비엔날레 등을 참관하고 막 귀국한 터였다.
일단 이번 서울 총회를 마무리지은 소감을 물었다. “보통 AICA 회장직에 입후보하면 공약 일순위가 자신이 속한 국가에서 총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나도 회장직에 입후보하면서 그러한 공약을 했던 터라 어찌 보면 서울 총회는 개인적으로도 숙원사업이었던 셈이다. 이는 1986년 故 이일 선생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AICA에 가입한 후 30여 년 만에 이룬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전 세계 면적과 인구에서 3분의 2를 차지하는 아시아가 비평에서 변방 취급당하는 것에 대해 늘 아쉬웠다고. 그래서 서울대회는 이러한 선입견을 깨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추진했다. “2004년 타이완에서 총회가 열린 이후 10년 만에 아시아에서 열린 총회이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AICA가 아시아로 확장하기 위한 전진기지 구축의 모멘텀으로 삼았다. 현재 AICA 국가지부 중 아시아에 속한 곳은 한국을 비롯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 파키스탄 정도다. 중국, 홍콩, 인도도 국가지부가 아닌 회장 관할의 프리섹션으로 분류되어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ICA는 미국과 유럽 국가지부를 중심으로 회장이 선출되는 등 지역적 편중현상이 심화됐다고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아시아를 통해 AICA의 지역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AICA 총회에서 회장직에 출마했다. 기폭제가 될 요량으로 말이다. 다행히 이번 서울대회에 대한 평가가 좋다.”
최근 그는 16년간 재직한 학교를 그만두었다. 바쁜 스케줄 때문이다. 오래 재직하며 정든 만큼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을 터. “원래 결정하면 감행하는 스타일이라.(웃음) 그런데 오히려 더 바빠졌다. 비평은 비평대로, AICA 부회장직과 시드니대학교 명예교수직은 또 그대로 충실해야 한다, 또한 작가로서, 기획자로서 전시도 열고 있다. 일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윤진섭을 정의하는 직책은 비평가이다. 현재 우리 비평의 현황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미 2005년 아시아비평포럼을 만들어서 그 문제를 제기했다. 포스코빌딩에서 열렸던 <비평의 위기: 미술비평과 전시기획 사이>를 통해서 말이다. 국공립미술관 큐레이터의 힘은 현장에서 커지는 반면, 비평은 그렇지 않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비평이 힘이 있었고 작가가 미술운동에 앞장서서 작가 기획전시가 즐비했다. 현재와 같은 비평의 퇴조는 미술계 상업주의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 힘의 균형추가 이동해서 그렇다.”
한편, 작가로서 그는 현재 윤진섭이라는 본명 외에 ‘왕싸가지(四家之王)’, ‘한큐(HanQ)’, ‘빈들 빈들(Vindle Bindle)’ 등 수많은 예명을 만들어 장르별로 바꿔서 활동하고 있다. 이를 두고 그는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라 말했다. “추사 김정희는 300여 개가 넘는 자와 호가 있으며 서구 현대미술을 뒤집은 뒤샹은 로즈 셀라비라는 예명을 썼다.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 까닭이다. 이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꺾인 인간의 자유를 찾는 행위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저항해야 한다는 강변의 표출이다.”
총회는 끝났고 손님은 돌아갔다. 이제 남은 일을 물었다. “총회 백서를 내야 하고, 비평집을 내야한다. 또 故 이원일 큐레이터의 추모전으로 ‘한중일 미디어아트전’을 공동으로 기획 중이다. AICA의 노쇠함을 극복하기 위해 ‘아시아비평포럼’도 그 논의의 장을 확장할 계획이다.” 여기까지가 두 달 남짓 남은 올해 그의 계획이다. 황석권 수석기자

2014아이카어워즈

윤진섭은 1955년 충남 성환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석사), 호주 웨스턴 시드니대(박사)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비평 당선(1990),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1회, 3회), ‘상파울루비엔날레’ 국제전 커미셔너, 제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행위예술감상법》(1995), 《미술관에는 문턱이 없다》(1997), 《현대미술의 쟁점과 현장》(1997),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2000)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호남대 교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이다.

[Hot People] 타이페이 비엔날레 2014 총감독 니콜라 부리요

 

 

“관계항을 확장시켜라”

1990년대 니콜라 부리요가 현대미술 비평서《관계의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을 출간했다. ‘관계의 미학’은 1990년대 미술에서 나타난 새로운 시도들을 예리한 관점에서 바라본 시기적절한 비평적 키워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해석될 수 없는 현대미술의 작가군을 설명하는 새로운 방식의 제안이었다. 현재 매우 영향력 있는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리크릿 티라바니자, 리암 길릭, 피에르 위그,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은 《관계의 미학》에서 언급된 후 미술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반면에 니콜라 부리요가 제시한 비평이론에서 ‘인간 상호관계(inter-human relationship)’ ‘참여미술(participatory art)’등의 특징을 호출한  몇몇 이론가들은  날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된 이 현장비평 이론은 현재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니콜라 부리요는 이후 계속되는 전시(<플레이리스트>(2004, 팔레 드 도쿄), <2009 테이트 트리엔날레>(2009, 테이트 모던)와 이를 근간으로 한 비평서 (《포스트프로덕션)》(2002),《   레디컨트》(2009)) 출간을 통해  개념을 발전 및 확장시키면서 새로운 모색을 꾸준히 하고 있다. 최근 그는 자신이 감독한 타이베이 비엔날레 2014에서 새로운 개념인 ‘Exform’을 제시해 재주목 받고 있다. 《월간미술》은 지난 10월 13일 삼성미술관 리움개관 10주년 강의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지금까지 제시한 일련의 개념과 최근 전시에서 제시한 새로운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관계의 미학》이 출간된지 어느덧 약  20년이 흘렀다. 당대의 미술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으로서 제시했던 ‘관계의 미학’이 오늘의 미술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가.  세월이 흘러도 의미는 같다고 본다. 사실 이는 《   관계의 미학》에 주로 등장하는 1960년대 출생 작가들의 삶의 배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관념이 사라지고 동네슈퍼가 아닌 대형마트가 출현하는 새로운 시각환경의 산업사회구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다. 이들은 1990년대 서비스 중심 사회로 접어 들었을 때 인간상호 관계만이 완전히 상업화, 상품화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영역이라 생각했다. 당시의 작가들은 이 점을 매우 정확히 꿰뚫었고 이 상업화 경향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들은 미술에서 만큼은 시장과 거리가 먼 새로운 형태를 만들려고 애썼다.  결국 ‘관계의 미학’의 의미는 같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외려 확장되었다. 내가 《   관계의 미학》을 저술한 1998년만 해도 스마트폰, SNS는 존재하지 않았고 인터넷도 지금처럼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기계는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전시 <교감>은 ‘관계의 미학’에 기반을 두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전시에 일명 ‘관계의 미학 작가들’(리크릿 티라바니자, 리암 길릭 등)이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전시가 ‘관객 참여’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인상도 든다. 사실 관계의 미학이 참여미술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관계의 미학’을 처음 제시한 큐레이터로서 이번 전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 <교감전>의 핵심은 ‘대화(dialogue)’인 것 같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대화 말이다. 특히 바이런 킴의 청자 유약색 회화와 고려청자, 마크 로스코의 작품과 고려불화가 함께 놓인 구성은 전시의도가 잘 살아난 큐레이팅이라 본다. 반면 리크릿 티라바니자와 리암 길릭 등의 작품이 있는 기획전시실과 로비의 전시는 비교적‘관계의 미학’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하지만 ‘참여’는 ‘관계의 미학’의 일부일 수 있지만 결코 필수적인 개념은 아니다. 내가 관계(relational)라고 말한 것은 예술에서 이론적, 형태론적으로 인간상호 관계(inter-human relationship)의 장을 여는 시작점을 뜻했다. 이는 일종의 ‘생산의 형태’다. 예술가는 어떤 구조를 통한 사회적 만남을 만든다. 특별한 방법과 미학적 의미에서 ‘관계’는 전시 자체의 관객 참여 여부보다는 전시 이전, 중간,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일종의 열린‘장’이다. 그러므로 훨씬 포괄적인 의미이다.
전시감독을 맡은 타이베이 비엔날레 2014 는, 당신이 기존에 제시한 인류 상호(inter-humanity) 관계의 범위가 확장된 듯 보인다.
타이베이 비엔날레 2014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상에는 인간보다 로봇의 개체수가 더 많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생태학적 알고리즘과 로봇의 관계는 충분히 이야기될 만하다. 기계와의 대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러한 기계의 알고리즘에 ‘관계’가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미학’의 원본적인 개념을 우리의 새로운 세계에 좀 더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보고 다가가려고 했다.
타이베이 비엔날레 2014에서 선보인 개념을  Exform이라는 용어를 앞세워 곧 책으로 출간한다고 들었다. 그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의 실체 없는 불가해성을 이야기하며 모더니즘 안에서 대안을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제시하는 개념 Exform을 대안적 모더니즘(얼터모던)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시는 알터모던을 포함한다. 모든 전시는 그다음 전시를 수반하는데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9년 기획한 테이트 트리엔날레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다음 전시를 준비하면서 되돌아보면 내가 이전 전시를 준비하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전시들의 어떤 연결성말이다. Exform의 영향을 준 인류세(Anthropocene)는 훨씬 폭넓은 개념이다. 이는 환경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 준다. 전체성과의 관계 말이다. 알터모던(Alter-modern)이 ‘문화적 재평가와의 관계’였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즉 규모나 범주에서 알터모던과 다르다.
인류세(Anthropocene)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인류세(Anthropocene)란  1980년대에 대두된 과학용어다. 즉 후기빙하기 시작 이후 약 1만 년간 인류의 활동이 지구의 생물권에 영향을 미쳐온 시간의 발생을 말한다. 인류가 세계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인데 이 개념에는 자명한 모순이 있다. 우리의 변화가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삶에서는 우리를 해치고 있고 개인의 무력감은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화된 경제시스템에 직면한 인간은 자신이 만든 인프라스트럭처의 희생자이자 방관자가 되고 있다. 우리는 개인 혹은 시민과 종속계급 사이의 전례없는 정치적 연합이 출현하는 시대의 목격자들인 셈이다. 기계 산업 시스템은 시민사회와 확연히 분리된 구조다.
결국 과학용어인 인류세(Anthropocene)의 개념을 철학용어인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논의를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은 철학적 동향으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완전한 평등을 말한다. 그리스철학에서부터 데카르트의 ‘코기토 아고숨’까지 인간의 사고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인간중심주의)는 서양철학의 오랜 개념이다. 즉 인간이 경험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할 수 있었다. 사변적 실재론은 객체를 넘어서는 인간의 사고 우위를 비판한다. 사변적 실재론의 대표적 학자인 그레이엄 하만의 ‘객체지향 존재론(object oriented philosophy)’이나 레비 브리언트의 《  The Democracy of Objects》에서 이들은 형이상학적 자율성을 부여해 의식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객체를 시도한다. 다른 요소들 간에 계급이 없는 존재론(flat ontology)을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적 의미로서 사변적 실재론을 해석하자면, 이는 pre-marxist의 상황이다. 내 생각에 그 배경은 자본주의의 논리적 결말로도 분석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것은 객체가 된다. 우리는 모두 물질/객체(object)고 거기에는 어떤 인식도 없고 각 물질/객체 간의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술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뒤섞임의 장을 연다. 결국 사변적 실재론이 제안하는 존재론은  Exform의 새로운 예시가 되고 이는 현대미술에 주요한 영향을 끼친다. 모든 객체가 같이 놓일 때(flat ontology) 오직 예술만이 예외적인 상황을 즐길 수 있기에 객체는 예술 속에서 변주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베이 비엔날레2014는 관계의 미학의 이론적 내용과 사변적 실재론 사이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의 미학은 미학화한 정치, 정치적 미학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된다.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미술을 읽는 방법 및 시각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정치적인 것’이란 어떤 의미인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알랭 바디우가 철학에 대해 설명하며 “세계는 철학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은 사고의 방식으로서 스스로 변화한다”라고 한 말을 깊이 생각한다. 예술은 예술 내부의 변화로서 세계를 바꾼다. 어떤 정치적인 콘텐츠나 발언보다 예술 스스로의 변화가 더 정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그들은 예술을 정치적으로 생산해낼 수고 혹은 작품에 정치적 해설을 부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페이 비엔날레2014에서 정치적이란 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말한 인류세(Anthropocene)의 명백한 역설은 상기시키는 바가 크다. 즉 자연, 기계, 인간 간의 역할과 관계 맺기가 “정치적인 것”이다. 모든 관계는 정치적인 것의 메타포다.
‘예술이 보다 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일종의 ‘정치적 선언서’ 역할을 해야한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술작품은 늘 정치적인 것에 대한 해설이다. 그러나 한 시민으로서의 입장과 생산자로서의 예술가가 취하는 내용은 다를 수 있다. 작가가 정치적인 내용을 포함한다고 그 인물 자체가 진보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정치색과 작품 속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은 일치되지 않고 혼동되고 섞일 수 있다.
글로벌한 이슈를 다룬다. 동일한 개념을 다른 지역에서 전시한다면 그 의미와 표현이 동일하게 이해될 수 있을까.  우선 이번 타이베이 비엔날레2014의 주제는 대만의 상황에서 고안했다. 현재 대만은 동서양의 대화에 대한 그들의 관심, 즉 에고(ego)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철학적 근간과 그 외의 다양한 시각적 측면을 다루는 수많은 타래의 동양철학 사이 어디에도 발을 내디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역성은 전시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비엔날레의 특성상 지역 작가들의 전시참여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동안 많은 비엔날레를 진행해왔다. 당신의 전시기획 방식이 궁금하다. 또한 아직까지 비엔날레가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어떤 전시도 구상의 시작점은 이미지로부터 나온다.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아이디어의 언어들을 생각해낸다. 그 후 이들을 건설할 나의 시각을 구축한다. 사실 내가 구상한 대로 정확히 되지는 않는다. 마치 영화를 찍을 때 구상을 하고 크랭크인을 하더라도 촬영을 하면서 여러 요인에 의해 시나리오가 중간 중간 변경되는 것과 같다. 현실적인 예산, 지역, 상황 등 현실적 문제와의 싸움에 끊임없이 봉착한다. 나 역시 비엔날레가 가진 특정한 의미에 대한 인식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비엔날레가 열린다. 전시는 단순히 같은 장소에서 작품을 나열하기보다 그 속에 많은 지적인 주장이 담겨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장소의 우연성에 기댄 전시를 이끄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대안적 비엔날레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임승현 기자

니콜라 부리요는 1965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큐레이터이자 평론가, 이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제롬 상과 함께 팔레 드 도쿄의 공동 창립자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공동 디렉터를 역임했다. 1990년부터 베니스비엔날레, 리옹비엔날레 테이트 트리엔날레 등 다수의 비엔날레 감독을 맡았으며 최근에는 타이베이비엔날레 2014 의 감독을 맡았다. 현재 파리 국립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의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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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관계’의 장을 여는 작가 리크릿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리크릿 (6)“작품을 통한 메시지의 강요를 원하지 않는다”

‘팟타이’작업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그 이후 작업을 하면서 부담감은 없었는가.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고 나서 그에 대한 짐을 갖지 않는다. 수많은 명작을 남긴 피카소가 어떤 작품을 끝내고 난 후 부담감을 가졌겠는가. 내 작업들 사이에 간극을 만들어 오히려 사람들에게 혼동을 주는 작업을 보여주고 싶다. ‘팟타이’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짐이 될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 예상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 작은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넓은 생각을 펼치게 하고 싶다.
팟타이를 만들어 나눠 먹고, 티셔츠를 제작해 거리로 나가는 등 기존 미술관의 전시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식으로 전시를 이어왔다. 화이트큐브 전시와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인가.
매체보다는 소재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나의 작업 소재는 ‘삶’과 ‘삶 속의 시공간’이다. 전시와 작업의 장소는 중요치 않다. 예술적 경험이란 ‘무엇이 예술이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인지 ‘무엇을 만들고 보여주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당신 작업은 끊임없이 유동(flux)하는 것 같다.
내 작업은 변화하고 부유한다. 사실 예술은 상품화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예술을 특정 장소에 두고 소장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예술이 분명 존재한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무한히 확장가능하지 않은가.
‘관계의 미학’에 해당하는 작가들의 작업이 정치적 유토피아를 나이브하게 펼친다는 비판적인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모두는 사람들이 삶을 이해하도록, 그래서 더 자유롭게 되기를 바란다. 그 방법은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자유란 무엇인지를 교육학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서구적인 헤게모니다. 나는 동양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 모든 것은 자기 내부에서 일어난다. 스스로 내린 결정은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 결국 정치적 자각은 내부에서 일어난다. 차를 나눠 마시며 그 차가 시작된 식물에서부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정치적인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인 것은 특정 그룹의 의견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어야 한다. 장을 여는 것까지가 나의 작업이다. 나머지는 관객의 몫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관계의 미학》을 읽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분류하는 작업은 작가가 아니라 이론가와 세상이 하는 것이다.
현재 준비 중인 작업이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인위적인 개입없이 식물이 스스로 자라도록 하는 방식의 식물 키우기에 푹 빠져있다. 나의 사고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3년 전부터 타이완에 사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제작 중이다. 얼마 전 퇴직한 농부에 대한 작업을 마친 상태다.
임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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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 <교감전>에 설치된<데모 스테이션 N.5> 2006~2014

 

[Sight & Issue]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14: 옆으로 자라는 나무

자연을 품은 예술, 예술을 품은 자연

공주 금강변을 따라 모래사장과 강물이 햇볕에 반짝이고, 강변의 모래땅에는 나무와 풀들이 제각기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보(洑)가 설치되고 수변공원이 조성되면서 모래사장은 사라지고, 땅에서 자라던 나무와 풀들은 물속에 그 뿌리를 박게 되었다. 천변을 따라 난 사람의 걸음을 닮은 산책길과 그 주변에 자라던 야생화의 고운 시선과 향기들도 시멘트 블록과 자갈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사라졌다. 그런데 공주 금강변의 과거와 현재의 풍경 사이에 지속적인 관계를 생성시키는 자연미술운동 그룹이 있다. 1981년 여름, 젊은 작가들이 금강 백사장에서 만나 ‘자연의 품에 예술가의 몸을 던지기’를 약속하며 의기투합한  그룹 ‘야투(野投)’다. 고승현, 허강, 임동식, 정장직, 이종협 등 당시 청년작가들은 1970년대 개념미술, 대지미술의 유행과 추종적 행위로부터 벗어나 예술가의 원초적인 몸짓에 초점을 맞추었고, 예술의 형식이나 개념을 창출하기보다는 예술가와 자연의 순환적 관계, 예술가 자신의 주된 방법론을 벗어나 자연과의 동화와 생성적 감응을 예술창작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러한 자연미술운동은 1991년 첫 국제전을 시작으로 2004년  <제1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개최하고 2014년 6회를 맞이했다. ‘야투’ 그룹운동의 역사는 33년에 달하고, 국제전으로서는 23년을, 비엔날레로서는 11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갖게 되었다. 현재의 전시에 부쳐 긴 과거사를 짧은 지면에 설명한 의도는 자연미술운동이 오늘날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가?를 되묻고자 함이며 현행의 다양한 비엔날레 중 하나인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떻게 그 의미를 생성시키고 차이를 발생시켜 나아갈 것인지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 현재 공주 금강변 자연공원은 올해 설치된 작품과 2012년에 설치된 작품들이 금강의 자연-작품-풍경을 이루고 있어 일회성 전시와는 사뭇 다른 감상을 제공한다. 자연미술이 갖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적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되며 자연과 동화되는 작품들과 인간의 환경개입과 파괴로 인해 생명의 질서를 벗어나 언제든 소멸해버리는 자연세계가 한 공간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이번 <6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14> 전시총감독 김성호는 “우리에게 자연에 대한 피상적이고도 관성적인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순환과 네트워크의 자연 본성을 성찰하게 만드는 하나의 화두”로 ‘옆으로 자라는 나무(Horizontally growing trees)’를 제안했다. 주제 안의 키워드 ‘옆으로’는 ‘대결’이 아닌 ‘조화’를 도모하고, ‘하나’가 아닌 ‘더불어’를 지향하는 자연의 근원적 본성에 관한 하나의 메타포임을 강조한다. 자연이 미술 표현의 대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가 미술 안에서 직접 작용하는 실험적 태도를 중시한다. 이 주제 아래 본전시-숲(林)과 특별전-비밀정원을 기획하고, 부대행사로 어린이자연미술전, 시민강좌,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프로그램 등의 참여프로그램과 쌍신공원,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의 상설전시를 마련하여 자연미술운동에 대한 폭넓은 체험과 이해의 기반을 구축한다. 공주 금강변의 쌍신공원(야외)에 마련된 본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26명이, 특별전(실내전)에는  12명이 참여한다.
본전시 ‘숲’은 복수성, 유목성, 우연성, 메타포적 자연미술 등을 내용으로 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베티노 프란치니(Bettino Francini) 작가의 <안(inside)>은 인간과 자연의 재결합을 시도하는 작품으로 아슬아슬 수면을 걷듯 그물다리를 지나 물고기의 몸으로 들어가면 강의 세계를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인공물이 자연에 대한 신체적 경험을 제한하는 것과 달리 작품을 통해 자연의 내부로 직접 들어가 보는 신체적 경험을 제공하고 인간이 본디 자연과 하나였다는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허강 작가의 <흐르는 나무(Flowing Tree)>는 강물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나무나 식물, 열매를 상기시킨다.
노란색 부표로 제작한 이 작품은 물의 흐름과 바람에 의해 유동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을 인식하게 한다. 제임스 에드워드 토윌리스(James Edward Towillis)의 작품 <MC2=E>는 나무를 둘러싼 큐브와 빈공간을 드러내는 큐브를 병렬설치한 작업으로 ‘나무와 인간=에너지’ 혹은 그 역이 주제다. 관객이 빈 공간을 채우는 인간-오브제로서 작품의 일부가 되고 자연과의 관계성을 경험케 한다.  특별전 ‘비밀정원’은 “자연의 소소한 요소들이 확산해서 또 다른 전일체 구현”이란 형식에서 ‘인공(일상) 안의 자연’과 ‘자연 안의 인공(일상)’을 오고가며 탐구한다. 이이남 작가의 <옆으로 자라는 산>과 이명호 작가의 <사진-행위 프로젝트>, 석리(Seok Lee) 작가의 <공공연한 반항 II> 등은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아트가 그릇이 되어 자연을 담아낼 뿐 아니라 자연물과 아날로그적 사유가 그릇이 되어 일상과 인공을 담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트랙터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전시장 곳곳을 탐색하는 중에 고승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위원장은 올해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모태로 추진한 “글로벌 노마딕 프로젝트-자연미술 프로젝트”의 중요성과 차이성을 강조했다.
필자는 세계의 자연미술 관계자들이 집결하는 이 프로젝트에서 인간에 의한 자연의 훼손 내지는 생태의 위기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극복하고, 보다 건강한 삶의 조건과 환경을 복원하고자 하는 염원과 의지가 충만함을 느꼈다. 만연한 비엔날레의 관행으로부터 탈주하여 신선한 대안을 찾고자 하는 세계 자연미술가들이 함께 하는 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자연미술운동의 참뜻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것이란 기대를 품게 되었다. 황찬연・대전시립미술관 객원큐레이터

제임스 에드워드 토윌리스 (나무/인간/바위=에너지) 2014

제임스 에드워드 토윌리스 <MC2=E>(나무/인간/바위=에너지) 2014

베티노 프란치니   혼합재료 설치 2014

베티노 프란치니 <안(inside)> 혼합재료 설치 2014

 

[Sight & Issue] Moving Triennale Made in Busan

무빙트리엔날레 메이드인 부산

부산의 중심에서 대안을 외치다

<무빙트리엔날레_메이드인부산전>은 부산의 미술단체와 공연예술, 인문학 단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9월 27일부터 10월 26일까지 부산연안부두터미널을 본전시장으로 하고 용두산공원 입구 (구)노인복지회관, 원도심창작공간 또따또가, 부산지방기상청, 복병산 창작여관, 하동집 등 부산일대에서 열렸다. 다양한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인 만큼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Last Exit-가방, 텍스트, 사이트 프로젝트>를 비롯해, 공연과 학술행사, 그리고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복합 프로그램 등이 진행됐다.
취재를 위해 찾은 부산연안부두터미널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과거 인근 도서지역으로 향하는 배가 출항하던 곳이지만 거가대교 개통 등으로 그 기능이 축소돼 매우 한산했다. 전시는 과거 여행객의 승선편의를 위해 설치된 길이 240미터에 달하는 무빙워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지금은 가동을 중단했지만 과거 섬과 뭍을 오가던 수많은 이의 족적이 아로새겨진 곳이다. 전시에 참여한 100여 명의 작가는 ‘여행용 가방’을 매개로 작품을 출품했다. 이를 보면 본전시는 장소 특정적 작업들로 채워진 것 같다. 전시 장소가 부산을 대표하는 항구에서 산 꼭대기까지 고루 분포하니 그렇게 생각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하겠다. 그러나 이번 전시 주제는 ‘무빙’은 아니다. 전시감독인 김성연 전 대안공간 반디 대표는 “무빙은 전체 ‘행사명’일 뿐입니다. 공간의 특성에 따른 전시구성과 추후계획 등 무빙을 전제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출품작가들은 지극히 사적인 문제나 일상 등을 가방 속에 담아 표현하고 있어요.  다만 가방이 여행과 이동을 전제로 하니 무빙과도 연관되어 있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네요”라고 설명했다. 기계적인 해석을 경계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작가에게 주어진 제안은 오로지 가방을 매개로 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시각적 효과나 미학적 관점으로 작품의 수준을 논하기는 곤란한 성격”임을 전제로 했다. 그렇다면 출품작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수 있겠지만 수준차를 논한다는 것은 전시의도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그래도 무빙워크를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장소가 주는 아우라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가방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마치 멀리서 여행 온 이방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과 관객의 괴리는 오히려 작품 내부를 관찰하게끔 유도하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된다.
이번 전시가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정 과정에서 빚어진 일련의 잡음과 무관하지 않다. 무빙트리엔날레의 김성연 전시감독이 바로 그 문제의 핵심에 있었고,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단체가 부산비엔날레 보이콧 선언을 하면서 무빙트리엔날레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국내외 40여 개 문화예술단체와 300여 명의 작가가 동참했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부산비엔날레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지역의 단체들이 모여 행사를 계획한 것으로 알고 있고, 이들로부터 제안을 받은 것은 맞습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이번 행사가 비엔날레의 ‘안티’라기보다는, 이러한 시도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대안 제시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래서 전시만을 두고 평가하기보다 인문학과 공연 등 여러 장르가 혼재되어 벌어지는 전체 프로그램을 두루 살피고 그 맥락을 살펴야 이번 대회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로서 비엔날레의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다양한 층위의 예술적 시도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의미가 큽니다. 소모적이거나 일회적이지 않으면서 많은 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준비과정에서 벌어진 다양한 논의와 협업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참여 작가의 층위와 지역도 다양하다. 130여 명의 작가 중 부산 출신 작가는 30여 명 정도이며 나머지 작가는 비영리 활동을 하는 국내외 기획자들의  추천을 받았다. 따라서 무빙트리엔날레를 부산비엔날레에 반하는 전시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다만,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속살이었다며, 만약 부산이라는 지역성이 강하게 느껴졌다면 이 행사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낸 반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제 전시는 끝났다. 이 대회가 지속성을 갖는 대회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지역의 단체들과 예술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다 3년에 한 번씩 회합해 행사를 지속하자는 취지의 트리엔날레지만, 조직이나 예산 등 아직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방프로젝트의 경우, 연내에 다른 국가, 다른 도시로 ‘무빙’할 것을 계획 중입니다. 그 도시의 예술가와 시민들이 참여하여 가방 속에 그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또 텍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그 지역 예술인들의 생각을 추가해서, 지역과 지역을 이동하며 여행을 하다 3년 후에 다시 돌아오면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감독이 남긴 마지막 말이 3년 후 어떻게 실현될지 궁금하다.부산=황석권 수석기자

이창진  2014

이창진 <캐리어에는 짐만 넣어지길 바란다.> 2014

 

 

[Sight & Issue] Jirisan Project 2014: Universe-Art-Zip

2014 지리산프로젝트:우주 예술 집

지리산, 우주를 품다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산은 지리산(智異山)이다. 전라남북도, 경상남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종착지라는 지리적 의미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의 장였던 역사적 의미가 깊은 이른바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지리산을 배경으로 예술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지리산프로젝트추진위원회(예술감독 김준기)가 주관한 ‘지리산프로젝트 2014: 우주예술집’이 바로 그것. 이 프로젝트는 10월 3일부터 11월 2일까지 남원의 실상사(南原 實相寺), 산청의 성심원 그리고 하동의 삼화에코하우스에서 각각 나눠 열린다. 참여작가는 총 30여 명(팀)이다.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의도는 “개인과 공동체와 자연의 생명평화의 가치를 담아 우주를 품는다”이며, 개별의 집합체로서 우주가 되듯 모든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에 특정예술, 융합예술 그리고 서로예술이라는 3가지 방향성을 제시하여 전시로 구체화했다.
먼저 실상사를 찾아 전시 관람을 시작했다. 알려졌다시피 실상사는 신라시대(828년)에 창건되어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을 비롯 국가지정 보물을 품은 천년고찰이다. 그러한 실상사가 이번 지리산프로젝트를 통해 품은 작품은 오랜 시간의 켜를 현재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작가가 풀어내거나, 분열을 극복하고 상호 ‘존중’의 가치를 담아내는 내용으로 설치된 것들이다. 이에 현재 실상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발굴현장을 기록하고(장유정, <천년 묵은 먼지>), 구(舊) 해우소(解憂所)에서 사찰 주변에서 채집된 소리를 재생하거나(정만영, <실상사의 소리풍경>), 불상의 광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김기라, <광배프로젝트>) 등의 작품이 선보였다. 또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이들의 원혼을 달래고(장영철, <실상사 기도소>/안상수 마고 신믿음, <생명평화깃대, 빛 304>), 타인과 상처에 대한 인간의 마음을 탐구한(천경우, <하늘이거나 땅이거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발걸음을 산청으로 옮겼다. 이곳에 위치한 성심원은 개원한 지 50여 년이 지난 곳으로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이룩한 마을이다. 강제적으로 격리되었던 한센병 환자의 한과 원이 서려있는 이곳은 현재 지리산 둘레길과 연결돼 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한센인들이 생활하던 공간은 작가들의 레지던스 공간으로 변모했다. 성심원은 지리산을 매개로 만난 이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등 주변 커뮤니티와 교류가 활발하다. 이곳에 이방인과도 같은 작가들이 또 하나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전시에 담았다.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르지 않은 곳에 낯섦을 선사하고(구헌주, <‘교환, 서로 다른 익숙한’ 그래피티 프로젝트>), 지리산의 신화를 소재로 작업했으며(서용선, <지리산 풍경, 역사, 신화_마고성 사람들>), 자신이 머물렀던 타지에서 만난 이들과 성심원을 세우고 살아온 신부를 투사한 작업(인진미, <패러럴 시티>, <미상(nobody) 트레일러>),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봐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본인의 이름 밝히기를 꺼려했던 이들의 존재를 찾아나선 작품(정용국, <첫 번째 사람>) 등을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하동의 삼화에코하우스에서는 강영민과 팝아트조합이 함께 한 캠핑과 무궁화나무 심기, 감따기 농활 등의 퍼포먼스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전시 개막일과 그 다음날까지 이틀간 열린 학술심포지엄도 이번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구축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장소로서 지리산의 의미를 상정하고, 예술이 공동체와 바로 여기 지리산에서 무엇을 매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제안과 질문, 그리고 대담이 쏟아졌다.
지리산프로젝트는 1회성 사업이 아니다. 10년을 생각하고 기획한 프로젝트라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수적이다. 기획의도에도 밝혔듯 지리산프로젝트가 우주의 마음의 품고 개인과 자연의 에너지 운행을 어떻게 화(和)할 것인지 향후 행보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남원/산청=황석권 수석기자

정재철  경내에 흩어져 있는 자연석으로 쉼터를 만들었다

정재철 <백자만다라> 경내에 흩어져 있는 자연석으로 쉼터를 만들었다

허태원  과거 성심원과 바깥 세상을 이어주던 배(船)의 일화를 담았다

허태원 <정원 정원(庭園, 正圓), 장소 특정적 꽃심기> 과거 성심원과 바깥 세상을 이어주던 배(船)의 일화를 담았다

 

[Hot Art Space]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관장 직무대리 윤남순) 개관 1주년 기념전 <정원>이 10월 21일 개막해 내년 4월 26일까지 계속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013년 11월 13일 개관했다. 이번 전시는 회화, 사진, 공예, 조소,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남, 쉼, 문답(問答), 소요유(逍遙遊) 이렇게 네 개 주제로 나누어 구성됐다.
사진은 서울관 로비에 걸린 김보희 이화여대 교수의 대형 회화 작품 <그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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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_이승택 (1)

한국을 대표하는 전위미술 1세대 작가 이승택의 개인전 <거꾸로>가 10월 7일부터 11월 9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다. 전시장 1층에는 자각상(自刻像)이 거꾸로 매달려 있고 그 아래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밖에 이번 전시에는 주류 화단에 저항해온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설치 작품과 더불어 행위 예술을 담은 기록 영상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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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지기 (8)

(재)아름지기가 통의동 아름지기 사옥에서 10월 8일부터 11월 12일까지 <소통하는 경계, 문전>을 계속한다. 건축에서 공간 사이를 넘나드는 장치인 문을 주제로 전시장을 새롭게 해석했다. 장르 간 소통의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 한국의 유명 건축가들과 산업디자이너가 함께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전통건축을 보여주는 ‘제3의 문’ 섹션은 <동궐도>를 바탕으로 이문과 판장을 재현하고 취병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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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찬 (2)

폐기된 비닐봉지를 소재로 작업하는 이병찬의 개인전 <자연사박물관>이 10월 3일부터 24일까지 문래동 구(舊) 진양테크에서 열렸다. 다섯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예의 팬으로 부풀린 비닐봉지 괴물을 생성해냈다. 이는 바로 극단의 소비시대를 살고 있는 도시인 스스로 소비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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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 (2)

갤러리 나우에서 임택의 <倣 옮겨진 산수유람기전> (10.8~21)이 열렸다. 작가는 이전 사진을 매개로 한 작업과는 달리 캔버스에 유채로 표현된 산수화를 선보였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던 동양화의 다양한 변주의 일환이다. 그러나 임택의 캔버스는 이미 작가가 계산한 대로 펼쳐졌으니, 즉흥적인 운동감보다는 정적인 사유의 결과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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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2)

우리 근현대 동양화에 큰 발자국을 남긴 청전 이상범(1897~1972), 소정 변관식(1899~1976), 월전 장우성(1912~2005), 운보 김기창(1914~2001), 4명의 작고 작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노화랑에서 10월 15일부터 31일까지 열린 <근대의 화선 4인전>이 바로 그것. 이번 전시는 우리 전통 산수화의 맥을 이은 대가들의 묵향을 맡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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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박 (1)

올해부터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 한글날.
이에 맞춰 개관한 국립한글박물관(위 사진)은 한글의 창제 과정과 역사적 가치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집대성했다. 개관을 기념해 특별전 <세종대왕_한글문화 시대를 열다>가 10월 9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김미진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가 협업큐레이터로 참여한 이번 전시에는 과거의 한글과 그것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작품이 조우해 시대를 뛰어넘는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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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돈_트렁크 (2)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상실을 안겨다 주었다. 희생된 청소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 김상돈은 이 사건을 미래에 난 구멍으로 인식했다. 10월 2일부터 28일까지 트렁크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모뉴먼트 제로>에서 작가는 종이, 유토 등의 재료로 시간, 공간, 서사, 형상이 부재한 조형물을 제작하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한 부재의 기념비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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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1)

2013년 제4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한 차재민의 첫 번째 개인전 <히스테릭스(hysterics)>가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10월 15일부터 11월 8일까지 열린다. 정신적 신경증으로 인한 일시적 흥분상태를 일컫는 ‘히스테릭스’는 사소한 단서에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이에게서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말의 의미가 해석되지 않고 소비되는 지금 시대에 그것이 무의미화하지 않도록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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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이만나의 8번째 개인전
<Snowy Night>(이유진갤러리, 10.10~11.7)는 4m가 넘는 대형 작품 등 신작으로 구성되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작가가 영은미술관
레지던시에 입주해 작업하던 시절, 폭설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익숙했던 주변이 낯설게 다가오는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어둠이 삼켜버린 컬러는 섬세한 묘사가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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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탄

강원도 정선에 소재한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의 폐광 터에 건립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열린 ‘2014정선국제불조각축제’ 는 전시와 퍼포먼스를 아우른 미술이벤트였다. 전시는 <고원(高原)의 기억과 힐링>을 주제로 15명의 작가가 참여, 10월 1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린다. 또한 10월 1일부터 4일까지 ‘불조각 태우기’(사진) 퍼포먼스가 벌어졌는데 이는 자연에서 취한 재료로 만든 작품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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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 (1)

김형종의 개인전 <SILHOUETTE-(WALK)>가 10월 15일부터 21일까지 갤러리 그림손에서 열렸다. 유리로 제작된 그의 인간상은 존재를 잃어 허상으로 보이는 도시인의 삶을 상징한다. 평면으로 드리운 그림자는 이러한 존재의 가벼움을 극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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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3)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조각가이자 남성 중심적 시각을 전복시키는 페미니스트 아트스트로 유명한 미국 작가 키키 스미스의 개인전이 10월 3일부터 11월 12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계속된다. 인체에 대한 해석이 돋보이는 조각 〈Pyre Woman Kneeling Ⅱ〉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을 띠는 별모양 스테인드글라스인 〈Behold Ⅰ〉 등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작품 12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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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1)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는 전유정의 개인전이 8월 11일부터 10월 19일까지 신세계갤러리 본점 아트 월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빛과 생명을 주제로 오묘하면서 독창적인 색의 조화를 이뤄낸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위에 수채화나 데생을 더하고 다시 촬영하는 방식을 취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감성을 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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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웅필 (2)

10월 16일부터 11월 7일까지 UNC갤러리에서 열리는 변웅필의 개인전은 <옥림리 23-1>로 명명됐다. 이는 현재 작가가 머물며 작업하는 지명을 의미한다. 다소 한적한 곳에서 작가가 발견한 것은 일상성이다. 주변의 것들에 대한 작가의 담담한 소회와 진술이 한결 담백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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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랑_갤러리 세줄 (3)

성형 퍼포먼스를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프랑스 출신 행위예술가 생트 오를랑의 개인전이 10월 10일부터 11월 18일까지 갤러리 세줄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컴퓨터 합성으로 얼굴 사진에 경극 가면 이미지를 덧씌우는 작업 <마스크> 시리즈를 선보인다. 일종의 디지털 성형을 시도한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을 통해 사진 속 증강현실도 체험할 수 있다.
한편 전시개막에 맞춰 오를랑이 내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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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MG_1739

2009년 시작한 아트페어 ‘코리아 투모로우’가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서울디자인재단의 공동 주최로 새롭게 확대된 형태의 전시 <코리아 투모로우 2014>로 탈바꿈하였다. 동대문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국내의 젊은 작가를 양성하는 의미로 ‘발아’라는 제목의 1부(10.9~11.2)와 ‘문화지형도’라는 제목의 2부(11.8~30)로 나눠 진행된다. 1부에는 강석호 유승호 이세현 홍경택 등 총 24명이, 2부에는 김홍석 원성원 정직성 등 23명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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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규

서양화가 정송규의 개인전 <다 괜찮을 거야>가 9월 3일부터 11월 20일까지 그가 세운 전남 광주 소재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2006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광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된 정송규는 그간 광주지역 미술 발전을 위해 투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개인전에는 회화, 설치 등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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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파크

심문필의 개인전 <공간유희>가 10월 10일부터 23일까지 갤러리 아트파크에서 열렸다. 플렉시글라스 뒷면을 채색하여 이면의 잔잔한 색채감을 선사하는 그의 작업은 평면에서 공간을 인식하게끔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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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작파 (2)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은 중작파의 제17회 전시가 9월 26일부터 11월 5일까지 울산현대예술관 미술관에서 열린다.
전국 규모의 단체인 중작파의 이번 전시에는 다양한 장르의 회원 작가 작품 80여 점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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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애 (1)

화가 장승애의 개인전 <소리보기>가 가나아트 스페이스(10.8~14)(사진)와 카페 에이알트레인 (10.15~11.15)에서 연이어 열린다.
지난 2002년부터 제주에 거주하는 작가는 제주의 자연이 주는 기쁨을 선명한 색채와 진한 여운이 감도는 구성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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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규

앵포르멜 계열의 작가로 평가받는 故 당림 이종무(1916~2003) 화백을 추모하는 25인이 모여 전시를 개최했다. <제2회 당림문화예술제-故 당림 이종무 화백 추모 25인전>(당림미술관, 9.27~11.28)이 바로 그것. 당림미술관(관장 이경렬)은 고인이 고향인 온양으로 돌아가 설립(1997)한 충남1호 미술관이다. 탄신 100주년을 앞둔 전시로 그 의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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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림

추상미술 작가 정문규(1934~) 화백이 세운 정문규미술관. 이 미술관에서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한국미술의 거장전> 두 번째 전시로 <문신·하인두>가 9월 12일부터 11월 9일까지 열린다. 문신의 대칭적 형상의 조각품과 상형적 요소로 가득한 하인두의 평면작업은 적절한 디스플레이에 힘입어 묘한 조화를 낳는다.

 

 

[Special Feature] This is not a tour

10년 전 예술계에서 ‘이동’의 개념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노마딕한 예술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이주, 이산의 경험을 통해 디아스포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장소를 이동하는 물리적 한계가 없어진 오늘날 공간의 이동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예술에서 ‘이동’의 개념 역시 새롭게 변화된 지점이 주목된다.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실제적인 장소를 방문해 장소의 구체적인 감각을 경험하는 작업 혹은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장소를 이동하며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통해 다양한 층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전시 형태도 이동을 콘셉트로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현지와 긴밀한 협업 속에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전시의 강조점이나 맥락이 유동적으로 변모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이러한 경향은 단순한 중심의 이동이 아니라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관계를 향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또한 과거 이동의 개념이 작가 개인적 측면에서 상징적인 장소의 변화로 작용했다면 최근에는 구체적인 장소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작품 내용, 전시 형태뿐 아니라 프로젝트, 포럼, 리서치 등의 방식에서 읽을 수 있다. 《월간미술》은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와 교감을 이끌어내는 ‘이동’의 문제를 변화된 지점에서 살펴보길 제안한다.

작가기획 ‘투어(Tour)’와 최근 국내미술

고동연  미술사

“나는 관광행위 그 자체를 일종의 기획자적인(curatorial) 행위라고 본다. 그것은 장소(Site), 그리고 관광(Sight-Seeing)을 일종의 변화, 문화적인 기억과 경험의 매개제로 위치시키는 행위적이고 통합적인 액션이다.1) – 셸리 혼스타인, <장소를 잃다>(2011) 중에서”

*  Shelley Hornstein, 《Losing Site:Architecture, Memory and Place》(Surrey: Ashagate, 2011), p.105.
현대미술에서 오래된 용어나 개념들이 재활용되어 유통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근 현대미술에서 등장하는 도시 투어, 관광을 통한 국제교류 등의 개념 또한 이미 19세기에 등장한 복합적인 개념이자 사회적 현상인 관광이라는 방식을 차용해 새롭게 현대미술에서 변형시킨 예이다. 리슨투더시티의 최근 프로젝트     <전환도시>(2014~)나 전세계 각지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예술가이 다양한 작업과 경험을 프리젠테이션하는 페차쿠차. 혹은 서울, 제주, 경주, 실크로드 등 국내외 작가들이 함께 여행하는 <로드쇼> 등은 도시나 자연환경을 예술가들이 관광자의 눈으로 해석하거나 직접 관광하면서 파생된 작업이나 문화적 이벤트이다.
물론 편의적으로 말해서 ‘관광’을 주제로 최근의 프로젝트, 작업, 전시 등이 전통적인 의미의 관광과 동일한 의도를 지니지는 않는다. 원래 관광이라는 단어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힘을 가진 입장에서 그렇지 못한 여행지를 신기하게 둘러보는 관광이든지 ‘우수한’ 문화를 배우고 모방하기 위하여 탐방하는 관광이든지 간에 제대로 된 국제교류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문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반하여 비판적인 의미에서 도시 속, 혹은 거대 도시들 간의 진보적인 관계망을 형성하려는 리슨투더시티의 <서울 투어>(2009~)나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관광지로 변모시킨 신지선의 <아파트 투어>(2005~)등은 보다 비판적이고 때로는 실험적인 측면에서 관광의 개념을 규정한다. 또한 <로드쇼>(2011~)는 진보적인 이슈들로 전 세계 예술가들을 엮는다. 전통적으로 기득권층을 위하여 봉사해온 국제교류 대신에 진보적인 사회적 이슈로 서로 다른 문화권의 작가들이 만나게 되는 초국가적인 진보의 연대를 달성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관광이 어떻게 젊은 세대 작가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전략으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가? 또한 최근의 프로젝트들이 어떻게 일반화된 국제교류의 유형으로부터 벗어나서 전통적인 의미의 장소성, 개인, 공동체, 커뮤니티, 정체성의 문제를 아우르게 될 것인가? 필자는 ‘관광’이나 ‘여행’이라는 개념이 방대하고 복합적인 것이기에 이와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그 발전 방향에 대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투어리즘 예술과 국제교류
최근 한국 현대미술에 등장한 관광과 연관된 프로젝트들은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숭앙하는 현대미술과 보수화된 한국의 정치현실 사이의 충돌로부터 파생됐다. 청계천 복원사업과 이명박(MB) 정권 당시 강행된 4대강 사업,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최초로 구축된 제주 해군기지를 복원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MB 정권은 식민시대나 군사독재 시대의 각종 역사적, 건축적 기억이나 방식을 재생했다. 결과적으로 국내 현대미술계는 재개발과 연관된 작업에 추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보다 구체적으로 비판할 장소, 대상, 건축물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관광의 개념은 이러한 과정에서 반어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볼만한 관광지, 관광지와 관광자의 정체성, 관광의 경로 등에 대한 통념을 뒤엎고,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관객들이 장소와 장소의 정체성, 기억을 보고(sight-seeing)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표적으로 리슨투더시티 프로젝트들은 1970~1980년대에 세워져 점차로 철거나 재개발 상황에 있으나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거나 파괴되기 직전에 놓인 각종 도시의 건축물과 그것들을 둘러싼 기억을 근대화, 자본주의 비판론의 입장에서 끄집어낸다.
자연스럽게 작가들의 주된 소재는 청계천 개발을 둘러싼 건축가, 건축물, 그로부터 파생된 잉여 물건들이 남아있는 세운상가의 특정한 장소들, 황학시장에 집중돼 있다. 물론 이러한 지역들이 각종 국공립기관들의 발빠른 문화정책을 통해 도시재생사업의 부분으로 수렴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투어 형태를 택한 최근의 프로젝트들은 공통적으로 국제교류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10년 ‘서울-리버풀’ 도시교환 프로젝트를 필두로 올해 광주비엔날레 강연에 포함된 리슨투더시티의 워크숍 시리즈에는 국가적인 경계선을 넘어서 유사한 이슈를 다루는 작가공동체, 대안공간, 협동조합의 대표들이 참여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로드쇼는 국내 작가들과 외국 작가들이 함께 4대강, 제주 강정마을 등을 돌고 이를 작업화한다. 개발독재시대의 환영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음을 국내외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관광이 전지구화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면 작가들의 투어는 돈이나 자본화된 문화가 아니라 비평적인 사고가 교류하는 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도시 속으로
‘관광’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최근 프로젝트들이 국제적인 연대를 확고히 해 나가는 데에 더 집중하고 있다면 필자는 ‘작가가 기획한 투어’ 자체가 더 흥미롭고 독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물론 작가들이나 그들의 공동체가 기획한 투어가 일반 대중을 끌어들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일반 대중을 끌어들이는 경우에도 과연 전통적인 의미에서 신기한 것을 감상하고 구경거리에 감탄하는 일반적인 관광객들의 행태나 목적을 배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도시 간섭, 장소에 대한 실험적인 작가 공동체들이 벌이는 프로젝트나 전시들이 ‘국내에서 국외로’라는 정형화된 틀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국제교류를 일종의 그 다음 발전단계쯤으로 여기는 기금 시스템이나 문화정책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지만 작가 투어가 지닐 수 있는 다양한 미학적, 비평적 가능성을 덜 고민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특정한 이슈를 중심으로 초국가적인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독창적으로 장소를 재해석하고 관광객과 관광지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서 더 많은 리서치와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에 몇 가지 작가 투어의 예를 살펴보면서 작가투어의 재연방식이나 가능성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최근 시작된 신지선의 아파트 투어를 보게 되면 작가 투어야말로 오랜 시간 참여 관객들과 정해진 투어장소간의 상호소통과 변화의 과정을 실험할 수 있는 적합한 방식이며 이를 위해서 다양한 새로운 기술적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신지선의     <아파트 투어>는 강서구 등촌3동 아파트를 커뮤니티이자 관광지로 만들고 참여자가 경비아저씨한테서 배포 받은 매뉴얼을 가지고 동네의 일상성을 ‘재발견’하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이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며 더 많은 일반인의 참여를 담보로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에 따르면 웹사이트, 홈페이지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의 파급력 덕택에 작가투어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1960년대 관객참여 형태의 작업이 작가와 관객의 관계를 규정하고 얼마만큼 자율적으로 관객이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고민한 바 있는데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는 이와 연관된 다양한 가능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가 투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두 번째로 작가투어에서 빠짐없이 등장하여온 황학동이나 청계천 등은 오랫동안 버려진 공간이었으나 이미 많은 작가의 레지던시, 투어, 심지어 대안공간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투어의 다양한 목적은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의 역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스쳐가는 수많은 이에 의해 끝없이 재생산되고 변화되는 곳이라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외부인이 관람하듯이 투어하는 몇몇 노마딕 타입의 여행 레지던시나 국제교류가 한계를 지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올해 황학동의 중앙시장 내에 5월부터 11월까지 예술가들과 미술이론가들이 모인      ‘팀 황학동’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공연을 계속 벌여나가고 있는데 작가 투어 또한 지속성을 가지고 작가와 지역이 서로 영향관계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젊은 작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수법이지만 작가 투어를 기획하는 과정에서도 지역이나 시대에 대한 보다 다양한 자료 수집과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실제로 작가 공동체 ETC는 인천의 구시가지에 자신들이 리서치한 가상의 인물을 따라서 진행되는 투어를 기획한 바 있고 이어 서울역에서 후암동에 이르는 지역의 투어 <If you dreamt it●□★△×>로 발전시킨바 있다. 그들의 자료는 역사적 사실에 의존하면서도 다양한 사료, 분석,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동일한 공간과 인물을 가상으로 설정하기도 하는데 철저한 준비기간을 통해서 장소성에 대한 보다 독창적인 해석의 폭을 지닐 수 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포대에 오래된 질문을 담기
장소성과 개인적, 공동체적인 정체성의 문제는 현대미술사와 인문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였다. 뿐만 아니라 투어와 같은 예술형태는 장소성과 관계미학, 그리고 사회참여의 주된 현대미술의 전략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정의 내리기 힘들지만 흥미로운 한 예술적 성향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낯선 타지인들이 볼만한 것을 들여다본다는 의미에서 관광이 아니라 전통적인 관광개념을 패러디하면서 결국 일상성, 새로운 장소, 관계, 장소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발견하고 동시에 비판적으로 바라볼 기회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개념적이고 비평적인 예술 형태라 하겠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적인 통념, 즉 관광과 자본주의, 새로운 것을 보는 것과 새로운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관광을 주제로 한 예술작업, 프로젝트, 문화적 이벤트 등이 함께 떠안고 가야 하는 문제이며 오히려 쉽게 대중적인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대신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도시 비판이나 국제교류와 같은 축약된 주제나 목적이 아닌 매우 소소하고 다양한 주제와 어우러져서 발전되어야 한다. 새로운 예술형태나 이론이 등장할 때마다 일종의 유행병처럼 전체 미술계를 휩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질문들- 장소, 정체성, 소통, 대화-이 계속 새로운 형태와 만나고 결합되면서 더 독창적인 예술 실험들로 이어지기를 기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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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티씨
etc

도시의 현상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며 리서치/프로젝트 기반의 작업을 하는 ETC는 2097년 정부의 신도시 건설 중 발굴된 도시 유적을 탐험한다는 설정으로 인천 투어 <Back to the Future: ○□★△×>, 서울투어 <If you dream it: ○□★△×>를 진행했다. 과거 도시의 유적지들을 둘러보며 도시의 흥망성쇠를 여러 연극적인 장치들과 함께 새로운 도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현재 소설가 박태원의 <구보씨의 일일>에 등장하는 구보씨와 연결시켜 서울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펼치는 프로젝트 <도시신사 A씨의 일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게릴라 피크닉인 <황금광 시대: 서울역 롯데마트 야유회>, 영상 상영회인 <멋진 신세계: 세운상가 스크리닝>, 지하철 퍼포먼스 <어느 곳에 행복은 나를: 2호선 순환열차 투어>, 허상을 파는 <다방의 오후 2시: 미네랄 워터 팝업 바>, 그리고 사회군무 워크숍 <신사화와 숙녀화>로 구성된다.

 투어장면 2012

Back to the Future: ○□★△× 투어장면 2012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는 2012년 설립됐으며 이샘, 전보경, 진나래로 이루어진 작가그룹이다. 리서치 기반으로 다양한 상상의 내러티브를 개발하고 안내관광, 대인대행 서비스 등 기존 사회시스템을 패러디하거나 이용하는 작업을 퍼포먼스, 전시, 출판 등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스페이스빔, 문래예술공장 M30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2 오프앤프리 국제영화예술제>, <기억>(경기창작센터) 등에 참여했다.  theetc.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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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차쿠차 서울
Pecha Kucha Seoul

건축, 디자인, 예술,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신인과 기성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발표하는 네트워킹 파티다. ‘페차쿠차(pechakucha)’ 는 일본말로 의성어 ‘재잘재잘’에서 파생한 단어. 이 행사는 2003년 영국 출신의 건축가들이 작품을 공유하고자 도쿄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후 런던, 뉴욕, 서울 등 전 세계 도시로 확산되어 현재 600여 개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2007년부터 비영리단체 어반 파자마(urban Pajama)가 주최하는 ‘페차쿠차 서울’은 다른 도시의 행사와 달리 매회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개최된 것이 특징이다. 관객과 함께 서울의 다양한 장소성을 형성하고 스스로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도입된 방식이다. 페차쿠차의 매력은 발표자들이 각자 20개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준비해 하나의 슬라이드를 20초씩 설명하고 총 6분40초 안에 발표를 끝내는 흥미로운 규칙이다. 이를 통해 현장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영역의 벽을 허물며 작업에 공감하고 피드백을 하며 소통한다. 지난 10월 17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13번째 행사에는 관객 400~500명이 참여해 열기를 더했다. 내년에는 지난 8년간 ‘페차쿠차 서울’에 참가한 150여 명의 작가 아카이브가 출판될 예정이다.  pechakucha.kr

 ‘페차쿠차 서울’ 13번째 행사에서 야마시타 트윅스터  퍼포먼스 공연 광경

‘페차쿠차 서울’ 13번째 행사에서 야마시타 트윅스터 퍼포먼스 공연 광경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13번째 행사에서 미디어아티스트 에브리웨어 발표 광경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13번째 행사에서 미디어아티스트 에브리웨어 발표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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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슨투더시티
Listen to the city

리슨투더시티는 지난 5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왔지만 이들 활동의 주요 키워드는 ‘도시’다. 2009년부터 시작한 <서울 투어>는 서울이라는 공간의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탈기념비적 여행 프로그램으로 청계천 복원 현장, 황학동 롯데캐슬베네치아, 동대문 홈플러스 등을 찾아가 스펙터클 이면에 개발주의와 소시민의 삶과 문화가 충돌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이후 4대강 사업이 본격화 하면서 <내성천 투어>를 조직하고 많은 사람이 직접 4대강 현장을 목격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각종 퍼포먼스와 전시를 진행했다. 이는 도시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자연을 희생시키는 우리 사회의  잔인함과 무책임에 대한 반성적 사유에서 비롯되었다. 리슨투더시티 박은선은 이들 투어는 “도시가 만들어낸 수많은 시뮬라크르를 해체시켜 도시의 차이와 가치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게 하는 실재적 행동”이라고 말한다. 최근 이들은 ‘점거’, ‘자립’을 키워드로 내세워 포럼과 공연이 결합된 프로젝트 <전환도시 : 해킹더시티>(10.9,18,19)를 기획해,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도시를 어떻게 공공의 장소로 돌릴 것인가, 그리고 예술가들은 그곳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장을 마련했다.

리슨투더시티 개발관광여행상품 홍보 포스터

리슨투더시티 개발관광여행상품 홍보 포스터

 페스티벌 광경. 10월 19일 신촌 ‘차없는 거리’에서 진행된 ‘단편선과 선원들’ 공연 광경

<전환도시:해킹더시티> 페스티벌 광경. 10월 19일 신촌 ‘차없는 거리’에서 진행된 ‘단편선과 선원들’ 공연 광경

리슨투더시티는 미술가 박은선, 디자이너 권아주 정영훈, 영화감독 김준호로 구성된 시각예술가 집단으로 용산참사가 일어난 2009년 결성됐다. 이미지 생산자로서의 예술가보다 실재 감각의 회복자로서 예술의 역할에 고민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념비적 여행>(스페이스C), <폐허프로젝트>(경남도립미술관), <식물사회>(팩토리)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독립 건축잡지 《어반드로잉스》를 발간하고 있다. listentotheci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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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선
Shin Jisun

<아파트 투어 프로젝트>는 2005년 작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이 프로젝트는 빌라, 세운상가, 황학동으로 이어졌으며, 작가는 현재 <뉴타운 투어 프로젝트>를 위한 리서치를 진행 중이다. 현지 주민들이 표지 모델로 등장하는 관광 안내 리플렛에는 실제와 허구를 넘나들며 현지의 볼거리, 유적지, 놀이, 식물원, 예술, 쇼핑, 체험장, 야경 등을 소개한다. 관광지가 될 수 없는 일상적인 공간이 ‘관광’의 형식으로 풍자되어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www.apt-tour.co.kr

신지선 apt-tour

아파트 투어 여행사 설치 장면, 퍼포먼스

신지선은 성균관대 예술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6년 브레인팩토리에서 연 <아파트 관광>을 시작으로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www.shinji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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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민
Park Hyemin

작가는 (주)HPARK여행사를 운영하며 ‘쑤이’(중국), ‘씨올라’(인도), ‘씨엘루르’(아프리카)라는 가상의 도시를 설정하고, 한국 안에서 중국, 인도, 아프리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여행상품을 개발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HPARK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여행상품을 실제 해외여행 상품으로 착각한다. 작가는 공동 집필자들과 함께 한국 안에서 접할 수 있는 다문화적 요소를 탐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이드북과 여행사 홍보영상을 제작한다. 현재 영상은 중국, 인도편이 완성됐고 아프리카편을 제작 중이다. 여행을 통하여 한국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는 다문화도시의 한 이면을 유희적으로 체험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hparktravel.com

HPARK 여행사 투어 장면

HPARK 여행사 투어 장면

 싱글채널비디오 스틸 컷 2013

<걸어서 세계로 : 중국 ‘쑤이’ 편> 싱글채널비디오 스틸 컷 2013

박혜민은 이화여대 회화・판화과를 졸업하고 런던 첼시 칼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에서 순수예술 석사를 마쳤다. 5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2 부산비엔날레 특별전_두 개의 문>, <움직이는 좌표>(스톤앤워터, 2012)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년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로 활동했다. hparktrav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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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Lee Minho

이민호는 현대 도시를 유영하는 휴대용 풍경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여기저기 뚫린 공간으로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 기억과 기억이 연결되는 일상과 그곳으로부터의 일탈이 연결되는 곳. 그런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업을 설명한다. 그녀의 사진은 디지털 합성이 아니라 가방에 잔디를 키우고 사진을 붙인 후 이것을 특정 장소에서 촬영한 것이다. 다양한 풍경과 익명의 도시공간이 충돌하는 이미지는 불안하고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C-Print 100×150cm 2011

Portable Landscape n.20 C-Print 100×150cm 2011

이민호는 성신여대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파리 소르본느 1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5년 데까레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www.minho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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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Lee Jungyoon

구두 신은 코끼리를 통해 일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2012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왕복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고유의 일련번호가 매겨진 코끼리 봉제인형을 원하는 사람에게 분양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되돌려받는 과정을 겪는다. 코끼리 인형은 현재까지 총 10여 개 국가에 360점 이상이 분양되어 여행을 하고 있다. 타인의 일상 속으로 여행을 떠난 코끼리들은 단순한 인형이 아닌 특별한 존재로 거듭난다. 특별한 옷을 입거나 화장을 하는 등 다양한 외적 변화와 함께 여행기간 동안의 각종 기록(사진, 영상, 녹음 등) 등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지고 돌아온다.

 돌아온 봉제인형과 소포상자, 가일미술관 설치광경 2013

<왕복여행 프로젝트> 돌아온 봉제인형과 소포상자 가일미술관 설치광경 2013

이정윤은 이화여대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산대 미술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9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1 부산국제바다미술제>, <2012 창원아시아미술제>, <2014 국제조각페스타>등 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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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애즈 폼
Living as Form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의 공원도서관 사업 일환으로 해외교류전 <리빙 애즈 폼(더 노마딕 버전)>(2013.10.26.~5.15)이 안양파빌리온에서 열렸다. 이 순회전은 네이토 톰슨과 독립큐레이터 그룹 크리에이티브 타임이 지난 20여 년간 벌어졌던 ‘사회 참여적 예술’ 가운데 100점을 선정하고 2011년 뉴욕에서 선보인 전시에서 시작한다. 세계를 순회하며 전시를 초청한 기관과 큐레이터가 재량에 따라 기존 작업 중에서 골라 전시하며 각자 지역의 활동이나 현지 작가의 작업을 보탤 수 있다. 4회 APAP 노마딕 버전을 기획한 김진주는 기존의 작업 아카이브를 분석해 ‘풀뿌리’, ‘이웃’, ‘참여’ 등의 키워드를 뽑아 대표작 48점을 선정하고 김대남의 사진 아카이브, 박찬경의 영화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구민자와 김월식의 신작을 전시에 포함시켰다. 이 전시는 전세계의 다양한 큐레이터의 참여로 사회 참여적 예술에 대한 아카이브를 계속 축적하며 삶의 형태 자체를 누구나 연관된 공적인 삶의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www.apap.or.kr/ko/living_as_form

김월식  2014 작가 콜렉티브 ‘무늬만 커뮤니티’의 활동 기록물 복합 설치 (사진: 홍철기, 제공: 4회 APAP)

김월식 <무늬만 아카이브> 2014 작가 콜렉티브 ‘무늬만 커뮤니티’의 활동 기록물 복합 설치 (사진: 홍철기, 제공: 4회 AP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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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폴리오 가방 프로젝트 : 쇼 머스트 고우 온
The Show Must Go On

2012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기획 신보슬 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는 뒤샹의 <여행가방 속 상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담은 가방을 제작하여 운송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큐레이터가 관심이 가는 작가의 포트폴리오 가방을 한 달 동안 가지고 있다가 다른 큐레이터에게 전달하는 릴레이 방식으로 쇼는 계속된다. 이 프로젝트의 장점은 전시의 형태보다 작가의 작품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작가와 큐레이터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방을 건네받은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에 대한 300자 내외의 간단한 평을 작가에게 전달한다. 현재 권순관 김구림 김종구 노순택 서효정 이동재 이창원 장지아 지니서 최수앙 등 작가 26명의 가방이 세계 각지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최수앙의 포트폴리오 가방

최수앙의 포트폴리오 가방

포트폴리오 가방을 받은 큐레이터들의 인증사진

포트폴리오 가방을 받은 큐레이터들의 인증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