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진정성의 승리

“ … “그만 찍고 밥 먹어! 그게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미대 6년 넘게 다녔으면 됐지. 쯧쯧…, 에그! 저놈은 도움이 안 돼!”. 비디오 작업에서 부모님이 촬영을 하고 있는 내게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물론 싫거나 미워서 하는 말씀은 아니다. 미술을 하는 내게 있어 이러한 현실은 사회의 계급과 국가권력이 생활세계에 어떻게 교차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으로 살아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통해 나와 가족, 나와 미술, 나와 사회와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며 그러한 일상의 과정 속에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자 했다. …”
– 2001년 대안공간 풀에서 열린 임흥순의 첫번째 개인전 <답십리 우성연립 지하 101호> 《작업노트》에서

그렇다, 임흥순은 이런 작가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실천’이라는 화두를 끈질기게 잡고 있다. 《작업노트》에서 밝힌 것처럼 ‘나와 가족, 나와 미술, 나와 사회의 상관관계’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오고 있다. 그러면서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서서히 진화해 왔다. 초기 페인팅 작업부터 단편 비디오 영상작업을 거쳐 최근에 다큐멘터리 장편영화로까지 형식은 확장됐고, (특히 2000년대 중반까지 활동했던 프로젝트 소그룹 ‘믹스 라이스’ 시절은 오늘의 임흥순을 있게 한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생각된다.) 내용은 자신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이야기로 시작해 이주 노동자와 제주 4·3, 그리고 아시아 여성노동자의 현실까지 한층 폭넓어 졌다. 이런 그가 이번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작가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위로 공단>은 런닝타임이 95분이나 되는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애초에 비엔날레 출품을 위해 제작된 작품이 아니다. 그러니 수상에 대한 기대도 없었으리라.
반면 한국관 사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7채널 영상 설치 작품 <축지법과 비행술>은 화려하고 쌈빡하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를 목표로 만들어 졌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필두로 대기업과 각 분야 전문가에게 후원과 지원도 받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부 국내 미술관계자 사이에서) 국가관 황금사자상 수상을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올해는 한국관 개관 20주년이 되는 해고, 커미셔너나 작가 모두 나름 국제적인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며, 여기에 유명 여배우가 출연했고, 전문적인 촬영장비가 동원돼 만들어진 작품이었기에 내심 기대감이 컸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축지법과 비행술>에 대한 평가와 반응은 (물론 호불호가 갈리지만) 썩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축지법과 비행술>과 <위로공단>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마치 국가대표 축구팀이나 프로야구 같은 인기종목과 필드하키나 럭비 같은 비인기 종목의 차이라고나 할까? 누군가는 임흥순의 수상에 오버하며 호들갑떨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개천에서 용 났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하더라. 거두절미하고, 나는 임흥순의 이번 수상을 ‘진정성의 승리’라고 대변하련다.
P.S. 지난달 사무실에 붙어있던 시간은 고작 며칠. 연이은 출장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 여러 가지가 걱정되고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마감 직전에야 복귀했다. “그런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장기간 편집장 부재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빈자리가 무색할 정도로 기자들은 모든 일을 알아서 착착 해내면서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왜냐구? 만약 진짜 그랬다면 “편집장이 없어도 우리끼리 알아서 잘 돌아가니 그 놈에 편집장 있으나마나다” 뭐 대충 이런 얘기일 테니까. ‘헉~!’ 소리가 절로난다. 다행히도 속 깊은(?) 우리 기자들은 이번 기회에 편집장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 분량의 일거리를 남겨놓고 기다리고 있더라. 하여튼 고맙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bold_title]CONTRIBUTORS[/bold_title]

유진상유진상 계원예대 교수

굵직한 해외 미술이벤트 현장에서 만나는 우리 미술인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특히 유진상 교수처럼 원고를 청탁할 수 있는 필자라면야 더더욱 그렇다. 현지에서 바로 진행된 원고청탁에 주저함 없이 응한 유 교수. 다양한 국내외 반응과 레퍼런스를 살펴보느라 마감일정을 살짝~ 넘겼으나 그만큼 고민의 깊이를 더한 원고를 생산하기 위함이리라. 그 고민의 흔적은 특집에서 살펴보시길.

[separator][/separator]

함영준 (1)함영준 일민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커먼센터 멤버

한창 준비 중인 전시 내용을 정리해달라는 청탁에도 흔쾌히 응해준 너무나 감사한 필자이자 동시에 이번호 마감기간 물에 빠진 휴대폰으로 기자를 마음 졸이게 한 장본인. 시대의 변화를 세심한 관찰력으로 읽어내 미술을 이해하는 ‘힙(Hip)’한 큐레이터. 2013년 영등포에 위치한 ‘커먼센터’를 개관하고 직접 기획한 〈오늘의 살롱〉, 〈스트레이트〉 등은 그만의 감각을 잘 보여준 대표적인 전시다. 올해부터 일민미술관 책임큐레이터로도 근무 중이다.

COLUMN

총체적 난국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공석상태가 장기화하면서 미술관 내외부에서 떠돌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이제 괴소문 수준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작년 가을 전임 관장이 개인 비리로 직위해제된 뒤 자동적으로 임기가 만료되었다. 뒤늦게 신임 관장 선임 절차를 시작해 지난 3월 마지막 단계에서 2명의 후보자로 압축되었지만 웬일인지 두 달이 넘은 5월 하순 현재까지 최종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혹시라도 이 글이 활자화되어 출판되기 전에 관장이 임명된다 하더라도 시기를 놓친 김빠진 결정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관장 직무대행을 해오던 기획운영단장은 다른 국가기관으로 전보 발령되었고 새로 미술관에 발령된 운영단장은 오자마자 관장 직무대행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어수선함 속에서 학예실장직을 수행하던 직원은 사표를 내고 지방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당면한 작금의 상황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맥상이라고 할 것이다. 미술관장이 부재 중인 상황에서 기획운영단장과 학예실장이 다른 기관으로 가버리고, 새로 온 기획운영단장이 관장 직무대행을 하고 있는 상황은 누가 보아도 염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늘의 국립현대미술관 사태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물론 직접적으로는 특정 개인의 불법적 행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그 근원에는 제도의 경직성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후기 산업사회를 넘어 신속한 정보사회로 전환된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관료사회의 경직된 의식과 제도가 발목을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점을 미술관 내부 문제와 외부 환경 문제로 나누어 들여다보자.
내부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직원들의 전문성을 함양하는 데 소홀했다. 전문연구자로서 학예직원들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평가제도도 없었기 때문에 일반 공무원으로서 복무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면 계속 근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학예직원에게 가장 중요한 연구실적이나 전시기획 성과는 진지하게 평가된 적이 없다. 그러니 긴장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질좋은 성과도 도출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외부 환경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예술의 속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과 가변성 혹은 자율성이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예술기관의 운영은 이러한 속성을 가진 예술작품을 다루는 데에 걸맞은 전문성에 더하여 자율성과 창의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게다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미술생태계에서 최근까지 유효하던 제도도 어느 순간 비효율적이고 거추장스런 것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미술관의 운영에는 가벼운 몸놀림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제도의 유연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을 움직이는 근거가 되는 법률과 규정은 전문성, 자율성, 창의성을 보장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을 규제하는 법과 규정이 미술관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인 셈이다. 다시 말해서 미술관의 운영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고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과 실제로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불일치가 문제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둔한 움직임을 보이는 데에는 미술관 내부 인력들의 자기책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실제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을 통제하는 행정 관료들의 비문화적인 의식과 태도, 그리고 그들이 행동 기준을 구하고 있는 법률의 시대착오적인 규정과 시대적 비동시화(非同時化)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오늘날 국립현대미술관이 처한 어지러운 상황의 원인은, 국립현대미술관을 운영하는 규정과 그 규정을 적용하는 인력에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과거의 기준에 묶여서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문화예술기관은 경직된 사고로 이끌어 나아갈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만큼 관료사회의 경직성이 새로운 시대로 가는 발목을 잡아왔다고 비난받은 일본의 예를 보자. 일본은 1980년대부터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정부기관을 축소하고 민영화하는 과정에서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오히려 확대 강화시키고, 학예사들의 자질 향상을 위하여 교육과 연수를 충실히 하는 쪽으로 문화정책을 방향 전환했다. 이런 점은 우리 정부의 문화정책 운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계훈 미술비평

HOT PEOPLE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작가 임흥순

작가가 보내는 존경과 위로

이번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한국 작가 3인이 참여한 것도 화제였지만, 임흥순 작가의 은사자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것 또한 많은 이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임흥순의 이번 수상작은 <위로공단>. 심사위원단은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조건과 관계된 불안정성의 본질을 섬세하게 살펴본 작품”이라며 “가볍게 매개된 다큐멘터리 형태로 그의 인물들과 그들의 근로조건을 직접적으로 대면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위로공단>은 우리 근대화, 산업화 시기 식구들을 위해 노동 현장에 투신한 여성노동자들의 과거 삶을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값싼 노동력을 요구하는 지금의 현실을 접붙여 보여준 작품이다.
하지만 정작 임 작가는 담담했다. “수상은 생각하지도 않은 일이라 실은 매우 당황스러웠죠. 미술전시를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이 아니어서 더욱 그랬고요. 그래서 오히려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작품에 등장한 분들을 생각하니 수상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했다. 수상이라는 개인적인 영광이 그분들이 지내온 모진 세월과 힘겨운 현실과 맞바꾼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그래도 수상으로 가계의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작가에게 힘이 된다. 제도권 미술의 성공 방식에서 벗어난 자신의 수상 소식에 다른 이 또한 어떤 가능성을 본 것에 환호했으리라는 것이 임 작가의 말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해 8월 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해 오쿠이 엔위저와 대면했으며 두 번의 미팅을 거쳐 최종 출품작가로 선정됐다. 작가 스스로 본전시 출품작가로 선정된 이유를 비엔날레 현장에서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사실 총감독의 의도를 대략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나 자본에 대한 그의 생각이 저의 작업과 맞닿아 있구나 짐작했을 뿐이였어요. 미술의 변방에 위치한 작가였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었기도 했고요. 그런데 오히려 이 점이 본전시에 출품하게 된 이유가 됐던 것 같아요. 전시가 개막한 뒤 구체적인 사례와 단순하면서 직접적인 작업이었기에 그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매체를 통해 <위로공단>이 “40년 넘게 봉제공장 ‘시다’ 생활을 해오신 어머니와 백화점 의류매장, 냉동식품 매장에서 일해온 여동생의 삶으로부터 영감받은 작품”이라고 알려져 작가의 경험에 바탕한 이른바 ‘리얼스토리’로 보도됐다. 언론의 속성이 무언가 드라마틱한 내용을 원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어머님과 여동생, 그리고 형수께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저에게 많은 지지와 지원을 해주셨던 분들이니까”라고 말했다. 30대에 사회와 현실 비판을 담은 작업을 할 때는 이런 감정을 최대한 감추려고 했단다. 그런데 <금천미세스> 작업을 하면서, 나이 40을 넘어가면서 자신의 감정에 오히려 솔직해지는 작업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현실을 비판하고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 말하고 그러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떤 희망이나 비전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작업하면서 인터뷰한 여성들에게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분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경이로움과 존경심이 생겨났어요. 시대에 상처받으신 그분들은 분노하고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는 삶을 사셨더군요. 세상을 다차원, 다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됐어요. 그것이 오히려 제가 배운 점입니다.”
스스로 금천예술공장 입주가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며 그 이전 작업은 80% 정도가 ‘시행착오’라고 말한 그다. “<금천미세스>를 비롯 제 첫 장편 <비념>을 거쳐 <위로공단>은 지금까지 해온 제 모든 작업의 복합체라고 볼 수 있어요. 초창기 개인적 관심사였던 가족과 사회 계급, 계층, 노동자의 문제 등으로부터 우리 근대사에 등장하는 다른 어머니, 다른 가족, 이웃들로 이야기의 주제가 옮겨간 것으로 봐요. 그 내용을 억지로 이어 붙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하려 했습니다.”
임 작가의 작품은 다양한 경로로 관객을 맞이하게 된다. 우선 <위로공단>은 올해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 또다른 신작으로 7월에는 일본 신미술관에서, 12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각각 관람객을 만날 예정이다.
황석권 기자

임 흥 순 Im Heungsoon
1969년 태어났다. 경원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샤르자 비엔날레>(2015), MoMA PS1(2015), 국립로마현대미술관(MAXXI) <미래는 지금이다(Future is now)전>(2014), 아르코미술관 <역병의 해 일지전>(2014)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상’(2014), 인천다큐멘터리리포트 ‘베스트러프컷’(2014) 등을 수상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프로그램 참여작가다.

임흥순 은사자상 (2)

 베니스 비엔날레 시상식 장면

24 위로공단
  <위로공단> 스틸 컷

HOT PEOPLE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인문과 예술의 만남, 미술관이 된 캠퍼스”

대학 강의실이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의자와 책상이 줄지어 있고 그 앞에 권위적인 강단이 놓인 건조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공간은 작가들의 그림과 함께 예술적 공간으로 변모해 생동하고 있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는 휴식의 시간을, 수업을 하는 교사에게는 사색의 공간을 제공한다.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에 들어선 ‘성신캠퍼스 뮤지엄 군집미술관’은 교정에 문화 융성을 이끄는 예술적 감성의 옷을 입힌 공간으로 교육과 문화계 전반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캠퍼스뮤지엄이란 생소한 프로젝트에 도전해 진두지휘한 이는 다름 아닌 이 대학의 심화진 총장이다. 심 총장은 평소 “교육에도 감성적 힐링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마니프(MANIF) 조직위원회 김영석 대표와의 만남은 캠퍼스를 문화예술공간으로 가꿔 지성과 함께 감성을 고양시키고자 했던 결심에 도화선이 되었다. 강북구 미아동 운정그린캠퍼스는 2010년 건립 당시부터 문화예술 캠퍼스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건물 중심을 관통하는 아트갤러리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떠올리는 것도 이러한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캠퍼스를 미술전시장으로 꾸미려는 발상은 신선했다. 그러나 대학 구성원들에게 생소한 개념을 설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심 총장은 지난 1년 2개월간 30여 차례의 운영위원회의를 진행하며 ‘캠퍼스뮤지엄’의 형태를 차근차근 잡아나갔다. 작가 선정단계부터 참여해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후에도 작품이 걸리는 위치, 캡션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애정을 갖고 관여해왔다. 작품 보존 관리에도 신경 썼다. 공조기 시스템 및 항온항습기 시설을 완비했고 햇빛에 작품 색이 변질되지 않도록 층마다 유리창에 UV필름을 부착했다. 캠퍼스는 그 자체로 전시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그의 열정적 모습은 이러한 “강의실이 과연 전시공간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회의하던 원로 작가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운영위원들이 적극 협조하고 작가들이 작품을 선뜻 기증하면서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1차 프로젝트로 구자승 김영재 류민자 유휴열 유희영 제정자 최예태 전뢰진 전준 최만린 민경갑 총 11인의 원로 작가가 각자의 이름을 딴 개인미술관을 강의실, 복도 로비 곳곳에 열게 되었다. 개인미술관을 갖게 된 11인의 작가에 대해서는 단순히 그림을 기증받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별로 ‘디지털카탈로그 레조네’ 제작 지원, 지적재산권 보호 대행은 물론 사후 유가족에 대한 유·무형의 지원 방안 모색 등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갈 예정이다. 대학 측은 이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공간과 지원의 폭을 확대할 계획이다.
심화진 총장은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가 뮤지엄으로 탈바꿈했다는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대학이 사회공헌 그리고 예술·인문 정신 확산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돈암동 수정캠퍼스, 더 나아가서는 성신학원 전체로 퍼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또한 재학생만이 향유하는 문화에 그치지 않도록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심화진 총장 본인이 미술에 애정을 갖고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개관 이후 캠퍼스 뮤지엄을 찾은 문화·교육·정관계 인사들의 전시 도슨트 역할은 주로 심 총장의 몫이었다고 한다. 심 총장은 작은 체구지만 어떤 이보다 열정이 가득했다. 캠퍼스 곳곳을 걸으며 작품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심 총장의 눈에는 미술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이제 11곳의 미술관을 관리하는 관장이 된 셈이니까 더 열심히 미술을 공부하고 전시를 봐야겠다.” 심화진 총장/관장이 이끌어갈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인 캠퍼스 뮤지엄이 성신여대 교정을 넘어 국내 미술계 안팎에 어떻게 번져나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임승현 기자

심 화 진 Shim Whajin
1956년 태어났다. 성신여대 대학원 의류학 박사를 졸업하고 러시아 극동연방대 교육학 명예박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5기 KNA 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성신여대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로 근무했고 2005년부터 2년간 학교법인 성신학원 제25・26대 이사장직을 수행했다. 현재 전쟁기념관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2007년부터 지금까지 성신여대 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DF2B1178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복도에 위치한 ‘성신캠퍼스 뮤지엄’

SIGHT & ISSUE 창덕궁 대조전 벽화展

IMG_0758

위 김은호 <백학도> 비단에 채색 214×578cm 1920 (등록문화재 제243호) 창덕궁 대조전 서쪽 벽에 설치된 부벽화로 현재 모사도로 대체되어 있다.
아래 오일영, 이용우 <봉황도> 비단에 채색 214×578cm 1920 (등록문화재 제242호) 창덕궁 대조전 동쪽 벽에 설치된 부벽화로 현재 모사도로 대체되어 있다.

〈창덕궁 대조전 벽화展〉국립고궁박물관 4.28~5.31

황제의 덕을 기억하라

바람처럼 스며들어야만 이를 수 있는 궁궐의 한구석을 좋아했다. 너덜너덜한 문창호 사이로 어렴풋이 방 안이 들여다보였는데, 가난한 친구 집에서처럼 벽에는 신문지가 발려져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궁궐에 신문지는 절대 맞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그런데 창호지의 뚫린 구멍 사이로도 보이지 않는 곳이 있었다. 서울역그릴에서 언뜻 보았던 부엌 같기도 한 네모진 건물 옆의 커다란 한옥은 닫힌 문 안에 또 닫힌 문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 복도에서 복도로 신을 벗지 않고도 이를 수 있는 방들의 문틀 위 간벽에서 아름다운 벽화를 볼 수 있었다. 어느 봄날, 학생들과 함께 찾은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의 당혹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마치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경복궁 강녕전이나 교태전 내부 사진에서처럼 문틀 위에는 찬란한 벽화 대신 하얀 종이가 발린 공간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벽화가 사라진 이유에 대한 아무런 설명문조차 없던 햇빛 쏟아지는 대조전의 그 모습은 마음에 바람 한 줄 지나는 상실감의 풍경이 되었다. 2005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을 준비할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지만 정작 보존처리를 위해 벽화를 걷어낸 대조전의 대청은 낯설었다. 희정당이나 경훈각의 벽화에 비해 균열과 박락이 더 심했던 대조전 벽화는 2년 동안 복원과정을 거쳤고 대체될 모사도도 제작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복원된 대조전 벽화를 조우하며 마치 사라진 명화를 되찾아 공개하는 탐정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 것은 그때의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박물관 진열실에 펼쳐진 벽화는 1920년 여름 덕수궁 준명당에서 완성되어 궁중표구사의 손에서 재단되었을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벽에 부착되어 있던 탓에 커튼 박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가장자리들이 실루엣을 드러냈다. ‘김은호 근사(金殷鎬謹寫)’ ‘오일영 이용우 등 근사(吳一英李用雨等謹寫)’라는 묵서는 발걸음을 얼어붙게 하였다. 잠시 궁중화사가 된 당대 재능있고 젊은 화가들의 필치는 희정당 벽화에 엄청난 크기로 써넣은 김규진의 글씨에 비해 얼마나 예의바르며 겸손한지.
1917년 원인이 의심스러운 화재가 창덕궁 내전 일곽에서 발생하였다. 1920년에 재건된 전각들은 경복궁의 주요 건물을 헐어서 자재를 댄 것으로 외양은 한식이지만 전기와 수도를 설비하고 내부에는 커튼박스와 샹들리에, 양식 가구를 배치하였으며 부벽화(付壁畵)를 설치했다. 희정당(熙政堂)에는 김규진이 그린 <총석정절경도>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 경훈각(景薰閣)에는 이상범이 그린 <삼선관파도>와 노수현이 그린 <조일선관도>를 배치했다. 대조전에는 김규진을 제외한 청년 화가 중 나이가 가장 많았던 30세의 오일영과 나이가 가장 어렸지만 천재화가라 일컬어지던 16세의 이용우가 합작한 그림 <봉황도>와 김은호가 그린 <백학도>를 배접해 붙였다.
대조전 동벽, 즉 주인 좌측에는 <봉황도>가, 서벽인 우측에는 <백학도>가 배치되어 있다. <봉황도>는 가로로 봉황 10마리가 배치되고 우측에 바위와 폭포, 모란, 흐드러진 붉은 꽃을 피운 나리와 두꺼운 잎의 오동나무가 있다. 가운데에는 오동나무 가지 아래 바위와 대나무, 괴석과 나리가 있고 좌측에는 하늘을 나는 봉황과 그 아래 바닷물이 넘실대고 하늘에는 붉은 해가 떠 있다. <백학도>에는 열여섯 마리의 학이 가로로 펼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좌측에는 폭포와 소나무 그리고 모란과 대나무가 표현되었다. 가장 좌측의 학 세 마리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고 그 아래 물가와 모란 옆으로 다섯 마리가 놀고 있다. 우측의 달 가까이에서부터 학 여섯 마리는 좌측으로 날아드는 형상인데 달 아래 파도가 넘실대고 모란 가까이에는 붉은 영지가 바위 사이에 드러나 있다.
임금의 덕이 높으면 그 덕이 한갓 미물인 새와 짐승에까지 미치므로 성군(聖君)이 나타나면 봉황이 날아다닌다고 하였다. 따라서 <봉황도>는 성군과 해의 도상이 결합한 것으로 왕의 덕치를 의미한다. 민화에서는 부부 화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궁중 장식화로서 봉황도는 치세(治世)의 상징물인 것이다. 벽오동과 물은 왕의 정치에 대한 상징이다. 그런데 해와 봉황은 의미가 연결되지만 해와 나리꽃은 상관관계가 없다. 모란, 물, 해, 바위 등 상서로움을 의미하는 제재 속에서 나리꽃은 십장생과 연관이 없는 소재임에도 화면의 우측과 하단 중앙부에서 눈에 띄는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나리는 일본화에 자주 등장하는 야생초로서 병풍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결국 궁궐의 제도를 지키는 엄중한 그림에서부터 도상이 약화되고, 풍경화한 것이다.
<백학도>는 학이 장수를 의미한다고 해서 십장생과 연관되어 이해되었다. 노송, 물, 바위, 달, 구름, 영지는 그러한 의미를 증명한다. 전면의 모란은 부귀를 상징함으로써 단순 십장생도에서부터 그림의 해석에 다른 여지를 제공한다. 늙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달밤에 춤추는 학은 고고한 선비를 의미했다. 그림에서 상징은, 게다가 여러 제재가 동반할 때는 하나의 의미로만 파악할 수는 없다. 궁중화에서는 일상적인 화제와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데 그것이 장식화에서는 더더욱 제왕의 덕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봉황도>와 <백학도>는 부부화평과 무병장수라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 왕의 공간에 배치되는 길상도로서 덕을 칭송하는 천보구여(天保救如)의 영역에 위치한다.
어좌 뒤에 설치되는 <일월오봉도>에서 왕의 좌측에는 해, 우측에는 달이 온다. 산과 나무와 더불어 넘실대는 파도와 폭포가 함께 나타나는 <일월오봉도>는 왕의 덕을 칭송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그런데 1920년 이왕직과 조선총독부의 계획에 의해 재건된 창덕궁 내전은 정치적 공간이 아닌 순종의 거주처였을 뿐이었다. 따라서 벽화 또한 정치적 의미를 잃었다. 그럼에도 대조전 벽화에서는 봉황과 백학을 소재로 함으로써 해와 달을 배치할 수 있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의 자존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의 덕이 대대손손 전하리라는 천보구여의 제재는 의미로 숨어 그림을 해독하는 이들에게는 영롱한 국가 존립의 증거로 존재하였을 것이다.
이번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창덕궁 대조전 벽화展>에서는 살문을 지나 대조전의 벽화를 좌우에 두고 관람할 수 있었다. 관람자의 시각을 위한 많은 장치는 친절했다. 벽화가 전시된 공간의 중앙 열린 부분에서는 동영상을 통해 다른 전각의 벽화들도 만날 수 있었다. 벽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생동감있게 표현한 이 장면은 말 그대로 현란한 빛으로 움직이는 ‘영상작품’이었다. 어두운 공간을 밝히며 빠르게 움직이는 작품에서 근엄한 시대의 교훈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근대기 빛나는 진채(眞彩)의 아름다운 대조전 벽화는 디지털의 위력 앞에서 어스름히 빛을 발하기 위해 힘을 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접혀져 나무상자 속에서 잠들어버릴 대조전 벽화가 안쓰러운 것은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조은정 미술사

창덕궁 (9)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창덕궁 대조전 벽화> (4.28~5.31)에서 보존 처리된 <백학도>(사진)와 <봉황도>가 공개됐다.
IMG_0720
김규진 <금강산만물초승경도> 비단에 채색 205.1×883.0cm 1920 (등록문화재 제241호) 창덕궁 희정당 서쪽 벽에 설치

IMG_0783
 노수현 <조일선관도> 비단에 채색 194.9×524.5cm 1920 (등록문화재 제244호) 창덕궁 경훈각 동쪽 벽에 설치

HOT ART SPACE

이완 개인전
313프로젝트 4.15~5.20

이번 전시 <울고 간 새와 울러 올 새의 적막 사이에서>에서 작가는 역사적 콤플렉스, 민족과 전통에 대한 피상적인 통념,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소비사회의 현실 등 한국 사회의 이면에 은폐되거나 왜곡된 다양한 문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재구성 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사진_토탈 (6)

거짓말의 거짓말 : 사진에 관하여
토탈미술관 4.23~6.21

사람들은 당연하게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진은 태생적으로 거짓말에 능하다. 구본창, 김도균, 노순택, 원성원, 정연두 등 18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통해 카메라의 시선이 세상을 포착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선사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탈루_아라리오 (4)

탈루 N.L. 개인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5.7~6.28

전시장 지하에는 전시 제목인 ‘Threshold(임계점)’와 동일한 제목의 설치작업으로 톱날을 가는 기계가 사람이 접근할 때마다 불꽃을 튀기며 작동한다. 작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비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과 삶의 근본적인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홍원석_선재 (1)

홍원석 개인전
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 스페이스 4.17~5.10

직접 택시기사가 되어 만남과 소통을 시도하는 작가는 그동안 선보여 온 택시 프로젝트를 드로잉, 영상, 설치작업으로 구성했다. 전시기간 동안 그는 p택시에 탑승할 승객을 모집하고 이후 승객이 신청한 장소로 운행하며, 남한의 각 지역에 터전을 마련한 탈북자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현대_곽덕준 (2)

곽덕준 개인전
갤러리 현대 4.29~5.31

재일작가 곽덕준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주변인으로서 사회와 개인의 문제, 부조리한 현실과 자의식, 정체성을 성찰한 작업을 일관되게 선보였다. 그는 이번 전시 <Timeless>에서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회화, 사진, 설치 비디오 등 폭넓은 작업세계를 펼쳐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한애규_포네티브 (3)

한애규 개인전
포네티브 스페이스 5.9~31

작가는 보편적인 삶의 문제를 흙만이 간직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이번 전시 <반가사유상을 생각하다>에서는 소박한 형태의 여성 형상이 차분하게 사유하는 장면을 담아내 현대인이 자신의 삶을 조용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쉼표의 공간을 제공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황규백
황규백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4.28~7.5
국제무대에서 판화가로 명성을 쌓은 작가가 국내 미술관에서 갖는 첫 개인전이자 작업 여정 60년을 보여주는 회고전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일상과 사물의 풍경이 은유적으로 병치돼 선보이는 환상의 세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메조틴트 기법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함과 최근 작가가 몰두하는 유화작업을 살펴볼 수 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송영방 (2)

송영방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31~6.28

1960~1970년대 수묵의 추상실험을 거쳐 문인화의 정신세계를 독자적인 품격으로 담아낸 한국화가 송영방의 개인전이 <오채묵향>이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시적인 정취와 기운생동하는 작품이 다양한 드로잉 자료와 함께 소개돼 원로 작가의 예술 의지를 조명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커먼센터 (2)

혼자 사는 법
커먼센터 4.17~5.25

최근 대두된 사회 현상 ‘1인 가구’를 실제적인 삶의 영역에서 조망한 전시다. 구민자, 길종상가, 소목장세미, 이은우, 텍스쳐온텍스쳐 등 미술가와 디자이너 15팀이 참여해 각자 전시 공간을 꾸몄다. 길종상가가 꾸민 방(사진)은 전시기간 동안 숙박공유 사이트 ‘에어비엔비(airbnb.com)’를 통해 예약한 관람객에 한해 원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제공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표_최영욱 (5)

최영욱 개인전
표갤러리 3.26~4.16

작가는 ‘Karma’를 주제로 오랫동안 달항아리를 그려왔다. 캔버스에 가득 채우는 달항아리는 언뜻보면 극사실기법으로 재현해 놓은 것 같지만 인간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와 교차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고려대_호시탐탐 (3)

호시탐탐_호랑이 예술을 즐기다
고려대학교박물관 4.28~6.21

호랑이는 한국인의 정신적 기상을 상징하며, 동시에 고려대학교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고려대학교 개교 110주년을 맞아 (사)코아스페이스와 공동기획으로 호랑이의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강형구, 김구림, 백남준, 서용선, 이이남, 안장헌 등 총 51명의 작가가 참여해 호랑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선보인다.

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자르디니공원 전경. 전면 조형물은 라크 미디어 컬렉티브(RAQS MEDIA COLLECTIVE)의 <Coronaton Park>(2015)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5월 9일 개막, 자르디니공원과 아르세날레, 그리고 베니스 도시 곳곳을 수놓으며 11월 22일까지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창립 120주년을 맞는 경사도 겹쳤다. 알려졌다시피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은 2008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아 한국과도 인연 깊은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그가 앞세운 전시 주제는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다. 역사적인 프로젝트와 반역사적인 프로젝트를 동시에 탐색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본전시에 53개국 136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국가관 전시에는 89개국이 참여했다.
무엇보다 이번 비엔날레는 한국작가와 미술계 인사의 참여가 눈에 띈다. 본전시에는 김아영, 남화연, 임흥순 세 명의 작가가 초청되었으며, 특히 임흥순은 <위로공단>을 출품, 한국작가로서는 사상 최초로 본전시 ‘은사자상’을 수상해 주목 받았다. 국가관에는 문경원 전준호 작가가 참여 <축지법과 비행술(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을 선보였는데, 한국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건물의 내외관을 이용, 역사성과 장소성 모두를 살리는 작업을 구현했다. 또한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자 현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은 비엔날레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병행전시(Collateral Events)로 열린 <단색화전> <Human Nature and Society(山水)전> <Jump into the Unknown전> <Frontiers Reimagined전>을 비롯, <개인적인 구축물전> <베니스, 이상과 현실 사이전> <채집된 풍경전> 등 한국작가가 참여한 전시도 다수 개막했다.
《월간미술》은 베니스를 직접 찾아 현장을 취재했다.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생생한 전시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현지취재 이준희 편집장, 황석권 수석기자, 박홍순 사진기자

Giardini

자르디니 디 카스텔로공원은 국가관이 모여있는 곳이다. 1907년 벨기에관을 시작으로 현재 29개국 30개 전시관이 세워졌다. 한국관은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100주년이 되던 해, 이곳에 세워진 마지막 국가관으로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이했다. 또한 센트럴파빌리온과 야외전시장에서도 본전시가 열린다.

센트럴

Padiglione Centrale
자르디니 센트럴파빌리온에는 본전시 참여작가 44명의 작품이 전시됐다. 글렌 리곤(Glenn Ligon) <Untitled(bruise/blues)> 네온 2014

프랑스 (3)

France
셀레스트 부르지에-무그노(Céleste Boursier-Mougenot) <Revolution> 2015 감지하기 힘든 식물의 느릿한 성장이 주는 놀라움이 구현됐다

독일 (2)

Germany
히토 스테예릴(Hito Steyerl) <Factory of the Sun> 2015 공상과학 영화 <Tron>을 연상시키는 공간과 비디오 게임의 한 장면 같은 영상설치 작품

노르웨이 (6)

Norway
카미유 노르멘트(Camille Norment) <Rapture>
하모니와 불협화음 사이의 긴장을 표현한 작품으로 깨어진 유리창과 사운드 설치작업

IMG_0616

Japan
지하루 시오타(Chiharu Shiota) <The Key in the Hand> 2015
기억과 일상에 관련한 물건을 전시장 가득 채우는 작업을 해 온 작가는 셀 수 없이 많은 기억의 층위를 열쇠로 상징해 표현했다

호주 (1)

Australia
피오나 홀(Fiona Hall) <All The King’s Men>군복 와이어 혼합재료 2014~2015
세계 정치상황, 경제문제 그리고 환경문제를 다루는 작가는 호주관을 인류생태학적 오브제의 박물관으로 호주관을 꾸몄다

미국 (2)

USA
존 조나스(John Jonas) <Mirrors> 2015
<They Come to Us Without a Word>로 명명된 미국관은 이번에 비엔날레 특별언급(Special Mention)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 외에 <Bees>, <Fish> 등 5개 방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작가가 1960년대 이후 추구한 삶의 연속성 등을 다뤘다

스페인 (2)

Spain
페포 살라자(Pepo Salazar) <Untitled(La fiesta de los metales)> 2009
4명의 작가가 참여한 스페인관은 <The Subject>로 명명됐다. 참여작가 살라자는 복잡한 감수성을 요구하는 표현을 전개했다

러시아

Russia
이리나 나코바(Irina Nakhova) <The Green Pavilion> 2015
<The Green Pavilion>으로 명명된 러시아관은 45회 베니스 비엔날레 러시아관 참여작가인 슈세프와 카바코프의 <Red Pavilion>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편 러시아관에서는 우크라이나 작가들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폴란드

Poland
C.T. 야스퍼(Jasper) & 조안나 말리노브스카(Joanna Malinowska) <Halka/Haiti 18°48’05”N 72°23’01”W
1802년과 1803년 나폴레옹이 노예반란을 진압하라고 아이티에 파견한 폴란드군 일부는 오히려 반란군과 결탁했고 결국 아이티가 독립을 쟁취하자 그곳에 정착한다. 폴란드와 아이티 간 역사적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네덜란드 (2)

Netherlands
헤르만 드 브리에(Herman de Vries) <To be All Ways to be> 2015
인간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서로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가는 108파운드의 꽃, 타버린 나무토막, 농기구 등을 설치했다

이스라엘

Israel
트시비 게바(Tsibi Geva) <Archeology of the Present> 폐타이어 2015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을 주제로 삼은 작품은 아니지만 분쟁문제는 작가의 의식에 이미 깔려 있으며 작가의 경력이 그것을 말해준다” (Hadas Maor, 이스라엘관 큐레이터)

세르비아 (2)

Serbia
이반 그루바노프(Ivan Grubanov) <Untitled Dead Nations> 2015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동유럽 국가의 더럽혀지고 오염된 국기를 통해 집단적 기억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IMG_2386-보정후

Korea
문경원 전준호 <축지법과 비행술(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 7채널 영상설치 2015

한국관 (10)

축지법과 비행술 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

[section_title][/section_title]

zoom in

영상과 건축,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다

올해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다. 1995년 자르디니 공원에 한국관이 세워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국가관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 당시에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5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이숙경 큐레이터와 문경원 전준호 두 작가도 바로 이런 점을 의식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출품작 <축지법과 비행술>은 한국관의 디테일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에서 촬영된 것입니다. 실험실로 변한 한국관을 미래 주인공의 하루 일과가 벌어지는 장소로 설정했습니다.” 두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작업의 내용과 형식에 접근했고 그것이 큐레이터와 논의한 주된 내용이었다. “우선 내용에서는 예술이 가진 역할과 기능에 대한 근원적인 접근과 시대성의 접목 그리고 베니스라는 현장성과의 연계에 대한 것이었고, 형식에서는 혼재된 시간과 사건의 파편을 다채널로 표현하되 한국관의 건축적 특징과 부합하는 설치 방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관 전시가 비엔날레라는 큰 맥락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한국관의 건축적 특성을 ‘한계’가 아닌 ‘특수성’으로 보고 재해석하려 했다. 그래서 한국관의 유리벽이 화면으로 자연스럽게 활용된 것은 아닐까? 실제 현장에서는 외부에 길게 늘어선 관객들이 벽면 디스플레이를 통해 작업을 미리 한 번 만나고 입장해서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자르디니에 늘어선 국가관 중, 이처럼 외부 벽면을 활용한 작품은 몇 군데 없었다.
<축지법과 비행술>은 영화 형식이지만 대사가 없다. 작가는 이 점을 광유전학(optogenetic)으로 풀어 작품에 담았다. “시각적 언어를 매개로 하는 미술 표현 방식에 적합한 의사 표현 수단이라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작품 해석에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사운드가 절제된 작품은 그만큼 관객 몰입도를 높인 효과를 낳았다. 관객들은 작가가 교묘하게 숨겨놓은 숨은 장치들을 숨죽이며 찾아내기에 열중하는 듯햇다. “각 채널의 사건들이 서로 싱크가 맞게 연결된다든지, 각 채널을 자세히 보면 다른 시간과 사건에서 그 시각적 장치들이 서로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관이 모여있는 자르디니는 열기에 넘치면서도 각국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묘한 경쟁심리가 흐르는 곳이다. 어떤 매체는 이곳을 ‘올림픽’에 빗대어 설명할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이 큐레이터는 오히려 <축지법과 비행술>이 이러한 경쟁 구도와 경계를 없애는, 더 큰 국경 설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말미에 2015년 자르디니공원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경쟁적인 구도로 보는 것은 사실 미술 및 문화사업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고양하려는 여러 정부 기관의 입장”이라면서 이 큐레이터는 “미술의 영역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시각이라는 점 또한 인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미술 전문가들과 언론들이 비엔날레 주제전과 국가관들을 평가하는 잣대는 예술적인 것이지 국가적 경계에 대한 것은 아니죠”라는 견해를 밝혔다. 국가관이 한 국가 미술 전반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경쟁구도는 매체에서 “한국관의 역할을 두고 간혹 국가적 긍지를 유지하는 문제와 예술적 경쟁력 확보”라는 두 사안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보도하는 데서 생긴 현상인 셈이다. 이 작업은 프레스 오픈 때 많은 관객을 불러들이며 ‘흥행’몰이를 이어갔다. 바로 옆 일본관과 독일관에서는 보지 못한 기다림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 큐레이터는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디렉터이자 비평가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 선생님이 보셨다면 정말 기뻐했겠다며 ‘영상작품의 진화된 단계를 보여주었다’고 호평했습니다. 이우환 작가 또한 ‘캄캄한 공간에 가두어 놓듯이 하고 보여주는 미디어 작품은 싫은데 이 작품은 정말 잘 구성되었다’고 격려해 줬어요”며 현지의 평가와 코멘트를 전했다.
전시에 참여한 세 사람의 이후 행보도 궁금했다. 먼저 이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로 한국미술과 국제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됐습니다”며 “현재 벌어지는 미술의 동향들을 대하면서 어떤 대안들이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문경원 전준호 작가도 “그냥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보람되었습니다. 앞으로 8월 말 스위스 취리히 미그로스 현대미술관에서 저희 프로젝트 전시가 열리고, 독일의 ZKM과 프랑스 릴에서 단체전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문경원 작가는 일본 YCAM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 중이고, 전준호 작가는 그 동안 썼던 글을 정리해 책을 펴내려 합니다”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베니스=황석권 기자

한국관 (2)

왼쪽부터 전준호 이숙경(큐레이터) 문경원

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아이작 줄리언(Isaac Julien) <DAS KAPITAL>(1867)
센트럴 파빌리온 아레나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는 퍼포먼스 장면. 이 퍼포먼스는 현대사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시선과 차이에 대한 내용이다. 하루에 3번 30분간 진행된다. 이밖에도 아레나에서는 카릴 조레이주와 조안나 하디토마스의 《Latent Images: Diary of a Photographer》(2009~2015)를 낭독하는 퍼포먼스도 열린다. Photo by Andrea Avezzù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과거들

유진상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예술이 특정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 것을 경계하는 큐레이터가 비엔날레 주제에 ‘미래’라는 단어를 썼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쿠이 엔위저는 베니스 전역을 세계의 축소판으로 설정하고 구현하려 한 ‘과거의 미래’, 즉 현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국가관과 본전시를 통해 그의 목표는 달성되었을까? 필자의 시선을 따라 이번 비엔날레를 생각해본다.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라는 제목의 클레의 그림은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그것으로부터 이제 막 멀어지려고 하는 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눈은 노려보고 있으며, 입은 벌어져 있고, 날개는 펼쳐져 있다. 이것은 역사의 천사를 묘사한 것이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연쇄적인 사건들이 떠오르는 거기에서 그는 잔해 위에 쌓인 잔해들과 그의 발치에서 비명을 토해내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그곳에 남아 죽은 자를 일깨우고 파괴된 것들을 다시 재건하려고 한다. 그러나 낙원으로부터 돌풍이 불어온다. 그것은 그의 날개 안으로 너무나 강력하게 불어와 천사는 더 이상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 돌풍이 천사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를 향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그를 날려 보내는 동안, 그의 앞에 펼쳐진 잔해의 더미는 하늘 높이 쌓여만 간다. 이 돌풍을 우리는 진보라고 부른다.”
–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 논고》, 1940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모든 세계의 미래들’이다. ‘미래’는 동시대미술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다. 이 단어가 지닌 목적론적(teleological) 뉘앙스 때문이다.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떤 결말에 대해 말하는 것이자, 그러한 결말에 이르는 방법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목적론적 이념으로 우리는 성경과 자본론, 그리고 과학적 목적론을 예로 들 수 있다. 목적론은 모든 동시대미술 기획자가 피하려 하는 유일한 주제다. 어떤 큐레이터도 예술이 특정한 결말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이념적으로는 절실히 바라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오쿠이 엔위저는 미셸 푸코를 인용하면서 “긍정적이고 다중적인 것, 단일한 것이 아닌 차이들, 단위들이 아닌 흐름들, 시스템이 아닌 동적 배치를 선호할 것”을 강조했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의 《안티-외디푸스: 자본과 정신분열증》 서문 중) 그가 주제로 언급한 미래는 과거의 미래, 즉 현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1867년에 출판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바라본 미래이거나, 1940년에 폴 클레의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을 보면서 위에 인용한 단상을 쓴 발터 벤야민의 미래이기도 하다. 또 다르게 해석하자면, 여기서 언급한 복수의 ‘미래들’은 이제 창설 120주년을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1895년에 꿈꾸었던 미래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수많은 변천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개방적 플랫폼들을 구축했던 2002년 카셀 도쿠멘타에서와 달리, 이번 비엔날레에서 엔위저는 일종의 닫힌 공간, 즉 초기 비엔날레 공간이었던 자르디니(Giardini)로부터 현재의 아르세날레(Arsenale)와 베니스 전역으로 퍼진 국가관(pavillion)들의 집합적 공간을 마치 세계의 축소판과도 같은 상징적 공간으로 설정했다. ‘모든 세계’란 그러므로 처음부터 일종의 ‘파라다이스’로 꾸며진 이 ‘정원’ 안에 건설되기 시작해 이제 89개(자르디니 29개, 아르세날레 29개, 나머지는 베니스 시내 혹은 주변부에 흩어져 있다)에 이르게 된 국가관의 지정학적 배치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축약된 세계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실제의 세계, 다시 말해 정치-사회적 세계 전체의 현 상황(state of things)을 예술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이 전시를 위해 예술감독이 설정한 세 개의 필터 -무질서의 정원, 생동감 : 서사적 지속, 자본론 읽기-는 각각 자르디니, 아르세날레, 그리고 이탈리아관 안에 설치된 ‘아레나’ 등 세 개의 공간을 중심으로 상호지시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며, 전시뿐 아니라 발표, 토론, 퍼포먼스 등을 통해 올 11월까지 7개월 가까이 그가 ‘형태들의 의회(Parliament of Forms)’라고 이름 붙인 전 지구적 담론과 이슈들의 공회(公會)를 구현하게 된다. 주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은 이탈리아관 중심에 커다랗게 설치된 무대-세미나 공간인 ‘아레나’에 녹아들어 있다. 아이작 줄리언(Isaac Julien)이 2012년 런던 헤이워드갤러리에서 기획했던 <Choreographing Capital>의 후속 프로젝트로 이번 비엔날레 기간 전체에 걸쳐 마르크스의 ‘자본론’ 3부작을 읽는 퍼포먼스-세미나가 진행된다.
오쿠이 엔위저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세계의 ‘현 상황’, 즉 비극적 전쟁들과 갈등,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양극화, 신자유주의의 전횡, 예술의 사물화와 탐욕적 시장논리, 새로운 유형의 파시즘과 국가주의의 대두 등에 대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대답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한 반면, 그가 보여준 ‘전시’의 현 상태는 여전히 그가 선호하는 전시방식이 그러한 원대한 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136명의 작가가 참여한 본전시는 카셀이나 광주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높은 파티션들로 구분된 개별 작가의 독립적 공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치적 마니페스토를 제시하기보다는 여전히 미술관 전시에 가까운 정적 동선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89명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으로 참여했다는 평가는 거꾸로 47명이 이미 초대되었던 작가라는 말이어서 빛이 바랜다. 브루스 나우먼, 한스 하케, 게오르그 바셀리츠 등은 기시감 못지않게 구작들과 다름없거나 더 못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어 전시의 혁신성을 떨어뜨린다. 앞서 언급한 아이작 줄리언의 <렉처-퍼포먼스> 프로젝트나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의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2013)과 같은 몇 개의 수행적 프로젝트를 제외하면-사실 그 정도의 작품들은 이전에도, 다른 비엔날레에서도 볼 수 있다-이번 전시는 형식적으로는 이전 전시들과 별반 차별화할 것이 없다. 아드리안 파이퍼가 칠판 위에 ‘Everything will be taken away’라고 적은 <Everything> 연작과, <The End> 연작을 통해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고발해온 파비오 마우리(Fabio Mauri), 동남아에서 만들어져 가나로 수입된, 가나 노동자들의 구조적 빈곤을 상징하는 코코아 포대자루들로 아르세날레 옆 회랑 전체를 뒤덮은 이브라힘 마하마(Ibrahim Mahama)의 작품 <Out of Bounds>와 아시아에서의 여성 노동착취와 세계화에 따른 지역적 양극화의 심화를 다룬 임흥순의 <위로공단(Factory Complex)> 등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와 가장 잘 연동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남화연의 작품 <Botany of Desire> 역시 이번 비엔날레에서 관객들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IMG_2168

한스 하케(Hans Haacke) <Blue Sail> 1964~1965

IMG_0362

이자 겐즈켄(Isa Genzken) <Realized and Unrealized Outdoor Projects> 1986~1991

개념적 요소는 가득, 비전의 차별화는 글쎄?
김아영의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3>는 복잡한 참조들과 그것들의 또 다른 복잡하고도 임의적인 조합이라는 구성이 몰입을 방해했다. 비엔날레 수상자로 황금사자상에 아드리안 파이퍼, 은사자상에 임흥순을 선정, 시상한 것은 ‘정치성’과 ‘노동’이라는 두 개의 핵심 이슈를 살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오쿠이 엔위저의 베니스 비엔날레는 개념적 요소들의 구축에서는 흥미로웠지만, 전시 자체로는 그러한 비전을 형식적으로 차별화해내지 못했다.
국가관 전시 가운데는 독일관의 ‘Fabrik’에 소개된 히토 스테예릴(Hito Steyerl)의 <Factory of the Sun>(2015)이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지하’에 설치된 ‘사이버 비치’에서 게임 형태로 제시되는 전지구적 저항의 미션을 텍토닉 댄스와 인터뷰 등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폴란드관 작가인 C.T 야스퍼(Jasper)와 요안나 말리노스카(Joanna Malinowska)의 <Halka/Haiti>는 18세기에 아이티 독립을 위해 싸웠던 폴란드 탈영병들의 후예에게 스타니슬라브 모니우츠코의 1858년 작 오페라 <Halka>를 들려주기 위해 폴란드 국립 오페라단이 그 후예들의 마을인 Cazale의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영상이다. 덴마크관의 단 보(Danh Vo)는 1861년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청년 테오파네 베나르(Théophane Vénard)가 아버지에게 남긴 위로의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빈 병 박스, 깨진 조각들, 낡은 테이블 등을 사용하여 죽음과 운명, 기억과 미래 사이에 끼여있는 존재의 모습을 초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르데코 화가이자 분리주의 화가였던 알폰세 무하(Alphonse Mucha)의 회화 <Slave for Humanity>(1926)와 카를 마르크스의 <환영(Illusionism)>에 대한 글을 독특한 미장센으로 해석한 체코&슬로바키아관의 지리 다비드(Jiri David)의 <The Apotheosis>, 그리고 아프리카의 인종차별과 극단적인 가난, 사회-정치적 절망감을 강렬하게 풀어낸 <Trans-African Project: Invisible Borders> 등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외에도 오스트리아, 프랑스, 우루과이, 아르메니아관 등이 호평을 받았다. 이번 국가관의 황금사자상은 20세기 초의 대학살(genocide)로 촉발된 아르메니안 디아스포라(이산)를 다룬 아르메니아관(큐레이터 아델리나 본 휘르스텐베르그(Adelina von Fürstenberg))에 돌아갔다. 유감스럽게도 이 국가관은 멀리 리도(Lido) 섬에서도 더 가야 하는 외딴 섬(Isola di San Lazzaro degli Armeni)에서 열리는데다가 수상 선정 결과가 오프닝 이후에 발표되는 바람에 프리뷰에 참석한 많은 이가 볼 수 없었다. 전준호와 문경원은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주제로 ‘매우 다루기 어려운’ 한국관의 외벽과 내부를 모두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야심찬 영상설치 작품을 보여주었다. 임수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작품은 카셀 도쿠멘타와 광주비엔날레 등에서 선보인 <News from Nowhere>의 시퀄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디스토피아적 환경에서의 예술의 근본적 역할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많은 이가 국가관 수상 가능성을 점쳤지만, 개인적으로 이들의 작품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제시한 ‘미래들’이라는 주제와는 다소 상이한 미래의 비전을 다룬 게 아닌가 싶다.(물론 국가관 전시가 전체 비엔날레의 주제와 반드시 연관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병행전시는 아니지만 피노 컬렉션의 ‘Punta della Dogana’에서 열린 <혀의 미끄러짐(말실수, Slip of the Tongue)>은 덴마크관 작가로도 출품한 베트남 출신 작가 단 보가 큐레이터 및 작가로 참여한 전시로, 이번 비엔날레 기간 동안 가장 많은 호평을 받았다. 어쩌면 이 전시는 오쿠이 엔위저의 비엔날레와 전혀 다른 지점에서 ‘전시’의 강력한 기능을 드러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스토리, 참조, 지식에 대한 의존 대신 작품들에 대한 집중도와 작품들 상호 간의 조응만으로 조용하게 고통과 깊은 공감을 생산해내는 마법과도 같은 큐레이팅을 보여주었다. 나이리 바흐라미안(Nairy Baghramian)의 작품 <혀의 미끄러짐>에서 제목을 빌려온 이 전시에는 단 보를 비롯하여 동시대작가들 (장-뤽 물렌느(Jean-Luc Moulène), 펠릭스-곤잘레스 토레스(Felix-Gonzales Torres), 로니 혼(Roni Horn) 등)의 작품 외에도 16세기 작가인 조바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의 <그리스도의 머리>와 같은 박물관 소장본들도 함께 전시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은 2010년 84세로 작고한 낸시 스페로(Nancy Spero)의 <Codex Artaud>(1971~1972)로, 분노와 격정에 가득 찬 앙토닌 아르토(Antonin Artaud)의 글들을 34장의 종이 위에 드로잉, 페인팅과 함께 콜라주한 작품이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한국 작가들의 참여전시가 곳곳에서 열렸다. 특히 영국에서 활동하는 김승민이 기획한 <Sleepers in Venice>는 마크 월링거(Mark Wallinger)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혜영, 강임윤, 장지아, 이현준 등이 참여하여 국제적인 미술행사 시즌을 경험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44개의 병행전시 중 하나로 열린 <단색화전>은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미 80대 중반에 들어선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화백이 직접 오프닝과 리셉션에 참여했으며, 매우 많은 유럽의 주요 미술계 인사가 한국의 1960년대 아방가르드 회화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특히 일본 모노하(物派)가 회화를 거의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당대의 아방가르드 회화로서 단색화의 의미가 더욱 깊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쿠이 엔위저의 표현처럼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지만, 동시에 과거는 현재의 미래인 것이다. 그것은 예술에서나, 세계의 현상태(Etat des choses)에서 모두 그러하다. ●

[section_title][/section_title]

zoom in

어서 와, 베니스는 처음이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 중 참여한 나라 중 눈길을 끄는 국가관이 있었다. 바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하기 때문. 그레나다, 모리셔스, 몽골, 모잠비크, 그리고 세이셸 제도다. 또한 에콰도르, 필리핀, 과테말라가 1950~1960년대 이후 반세기 만에 다시 참가해 관람자의 이목이 집중됐다.
참가국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레나다는 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40여 년에 걸친 독립 투쟁과 혁명 실패, 침략의 역사를 겪어온 그레나다 작가들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 섞인 내외부의 시각을 전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모리셔스는 1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모리셔스와 유럽 작가 간 대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권과 교접한 결과물을 전시장에 설치했다. 몽골은 2명의 작가가 참여해 몽골 특유의 유목민 문화를 담은 작품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한 모잠비크는 예술과 전통의 연계점을 보여주는 작업을, 그리고 세이셸 군도는 그곳을 상징하는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작품 등을 선보였다.
오랜만에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은 국가관도 눈에 띄었다. 1966년 이후 49년 만에 참여한 에콰도르관은 마리아 베로니카 레옹 베인테밀라(Maria Veronica Leon Veintemilla)의 단독 작품으로 꾸며졌다. 두바이에 거주하는 작가는 강렬한 금과 물의 투명성을 주요 요소로 하는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51년 만에 다시 참가한 필리핀은 4명의 작가가 빈티지 영상과 설치 등을 선보였다. 과테말라는 1954년 참가한 이후 61년 만에 베니스를 다시 찾았다. 10명의 작가가 책과 영화, 오페라 등에서 영감받은 사진작업 등을 선보였다.
베니스=황석권 기자
IMG_3004
Philippine
호세 텐체 루이즈, 다닐로 이랑 이랑, 제레미 기압 (Jose Tence Ruiz, Danilo Ilag-Ilag and Jeremy Guiab <et al., Shoal> 2015

[section_title][/section_title]

interview

베니스 비엔날레의 역사와 권위, 그늘, 경쟁의 현장에 서다

이용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 관장

단색화 (4)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으로 선임됐다. 개인적으도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한국미술계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받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심사위원 선정에 대해 소감을 부탁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은 예술감독이 추천, 이사회에서 승인을 받아 임명된다. 상(賞)의 중요성이나 시사성 때문에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이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선후배 미술인이 많은데 먼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어 송구스럽기도 하다.
국가관과 본전시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5명의 심사위원이 합동으로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94개 국가관을 돌며 작품을 감상, 검증했다.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를 비롯하여 시내 곳곳에 퍼져 있는 국가관을 찾아다니는 것은 고된 노동이었다. 작품을 보고 심사위원들끼리 현장에서 하는 뜨거운 토론이 매우 유익했다.
임흥순 작가가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미술계의 높아진 위상을 말해 준다는 시각이 있다.
고통을 나누는 현장성과 시적 감수성을 함께 갖춘 작품이라는 것이 임흥순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상은 국가경쟁력과 비례한다는 과거의 지배이론은 많이 소멸됐다. 오히려 얼마나 독자적인 자기 목소리를 생산하는지가 더 관건이다. 수상이 마치 미술올림픽에서 메달을 받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예술과 상이라는 다소 미묘한 관계를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비평적 시각을 견지하는 관람객 입장에서 이번 비엔날레를 어떻게 보았는가?
예술의 사회적 실천에 대해 중점적으로 질문하는 매우 독특한 구성이었다. 예술의 자본종속을 통렬하게 비판하거나 1867년 발행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을 주제의 전방에 배치하는 등 매우 격렬한 기조를 취했다. 그런가 하면 세계 각 지에서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 억압의 현장을 고발하거나 차별의 문제를 다루는 등 오늘날 예술의 역할이 목격자 수준을 넘어 참여의 길로 나가도록 안내하는 담론들을 주도했다. 베니스의 과거 전시형태와 견주어 훨씬 진보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보니 우리가 자주 대하는 시각예술의 미학적 아름다움이나 재미, 정보사회와 과학기술만능주의가 선사하는 디지털 문화론 등의 맥락은 억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평가로, 큐레이터로 지난 20년 동안 본 어떤 전시보다 한편으로는 숭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이론화된 전시, 이념화된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감 넘치는 비엔날레였다.
수년간 광주비엔날레를 책임진 당사자로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가 주는 교훈이라면?
광주비엔날레는 그 창설 배경에 ‘광주정신’이라는 깊고 넓은 철학이 있다. 그리고 광주비엔날레의 성공 배경에는 세계 속에 광주를 넓게 열어놓고 광주를 정치, 사회, 문화행동적 플랫폼으로 유도했음을 들 수 있다. 현재 광주비엔날레재단을 구성하고 있는 분들도 이러한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베니스는 국가관체제를 갖고 있는 유일한 비엔날레다. 그리고 감독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한다. 5명으로 구성된 소수의 이사가 무한책임을 지는 체제다. 미술, 건축, 영화, 음악, 연극 등 한 재단에서 장르를 분산시키는 것은 자칫 힘을 빼는 체제가 될 수 있어 경영합리화나 경쟁력에서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베니스 비엔날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참 많다. 그러나 참고할 점이 더 많다.
병행전시의 하나인 <단색화전>을 기획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나는 오히려 늦게 전시기획을 맡은 한 명일 뿐이다. 다만 무대가 베니스여서 시각적으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한국현대미술의 20세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언급 할 두 가지 핵심적 담론이 있다. 하나는 서구모더니즘의 영향을 토대로 한국적 토착화를 시도한 단색화이고, 다른 하나는 서구모더니즘의 영향과 모방을 비판하고 자생적 미학으로서의 정치사회적 비평을 시도한 민중미술이다. 이 두 가지는 한국미술사와 비평적 담론을 두텁게 한 중요한 족적이다. 단색화가 뒤늦게 시각적 형식에서 설득력을 획득하고 시장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면, 민중미술은 과거의 과도한 정치성, 이념성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화과정에 있는 괄목할 만한 시각적 현상들이다. 시장에서 단색화에 빠르게 반응한 것은 미술사적 중요성도 있지만 그 아이템이 소장 가치가 강한 회화라는 점도 반영되었다. 회화는 시장의 영원한 우군이니까. 시장의 시각을 떠나 주제적으로 바라본다면 향후 분단국가, 또는 이념논쟁의 생생한 현장으로서의 한국미술을 담아낼 현실주의 미술이 몰고올 제2의 파장은 폭발적일 수 있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한국미술사 정립 과정에서 1970-1980년대를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연구자들의 세밀하고도 넓은 시각이 요구될 것이다.
최근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 관장으로 선임됐다. 미술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운영계획을 알려달라.
일본계 미국 건축가인 아라타 이소자키가 설계했으며, 상하이 푸둥에 있다. 전시면적은 약 4000㎡다.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도 사립미술관이라는 한계와 장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그 자율성을 잘 발휘할 생각이다. 중국과 상하이, 아시아와 세계가 어떻게 상생하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과 글로벌 프로그램이 반반으로 운영되었는데 더 연구해볼 생각이다. 굳이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또 다른 비엔날레도 생각하고 있다. 바탕은 현대미술이지만 영화와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강연시리즈를 담는 비엔날레 같은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계비엔날레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외국 일이 많은 편이다. 특히 내년 후반기부터는 도쿄예술대학의 글로벌아트프로그램 교수를 겸하며, 영화와 건축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황석권 기자

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Arsenale

이탈리아 국영조선소였던 아르세날레에선 본전시를 중심으로 자르디니에 국가관을 건립하지 못한 국가의 전시가 열린다. 전시장 입구부터 마지막 전시관까지 작품이 빼곡히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IMG_2532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Untitled(Not falling off the wall)> (부분, 총8점) 2014

IMG_1205

릴리 레이노드 드워(Lili Reynaud Dewar) <My Epidemic(Small Bad Blood Opera)> 2015
퍼포먼스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는 이번 비엔날레에 배너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중국

쉬빙(Xu Bing) <Phoenix> 2010

아르세날레 끝자락에 있는 쉬빙의 작품은 그의 두 번째 베이징 생활의 메인 작품이었다
베니스_Panorama7

카타리나 그로스(Katharina Grosse) <Untitled Trumpet> 벽에 아크릴 660×2100×1300cm 2015
아크릴 물감을 천에 채색하고 부서진 벽 등을 설치했다

IMG_2517-보정전

남화연 <욕망의 식물학>(왼쪽) 2015
“어떤 사실이나 메시지의 전달보다는 욕망하는 상태를 암시하는 여러 요소들을 연결해가면서 인공적인 생태계를 배양하고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싶었다”(남화연)

페루

Peru

질다 만틸라(Gilda Mantilla) & 레이몬드 차베스(Raimond Chaves) <Misplaced Ruins>
우리의 상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IMG_1579

China

류자쿤(Liu Jiakun) <With the Wind> 2015
참여 관객의 메시지를 담은 쪽지를 낚싯대 끝에 달아 늘어뜨려 전시한다

IMG_1504

Indonesia

헤리 도노(Heri Dono) <Voyage-Trokomod> 2015
인도네시아 코모도왕도마뱀을 연상케 하는 작업으로 인류의 역사가 수천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 주민에게 미친 영향을 탐구했다

IMG_1420-보정전

Tuvalu

빈센트 J.F. 황(Vincent J.F. Huang) <Crossing the Tide> 2015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9개의 섬 중 2개가 사라진 투발루의 상황이 묘사되었다

IMG_1566

Italy

마르자 미글리오라(Marzia Migliora) <Stilleven/Natura in posa> 옥수수 1993
옥수수로 채운 방을 통해 토지 소유권 갈등, 착취 등으로 점철된 인류 농업의 역사를 환기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report

비엔날레, 가까이 들여다 보기

외신을 통해 전해진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의 이슈는 오쿠이 엔위저가 총감독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120년 비엔날레 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나이지리아) 출신 총감독이 선정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기획하는 전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여러모로 관심을 모은 것이 사실. 그래서였을까? 참여한 135명의 작가 중 35명이 흑인 작가였으며 이중 절반가량이 아프리카 출신임을 두고 개막 전부터 여러 언론에서 기사를 쏟아냈다. 개막 후 《르몽드》는 “검은 대륙을 위한 비엔날레”라는 제하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서구의 뿌리 깊은 문화패권주의의 열망이 살짝 비치기도 하는 광경이다. 따라서 오쿠이의 개인적인 성향과 결합해 비엔날레가 이러한 관점을 대놓고 드러내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팁이 될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 6일 열린 공식기자간담회에서 오쿠이로부터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라는 주제를 설정한 이유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감사의 말과 함께 오쿠이가 제시한 이번 비엔날레 전시구성의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한 3개의 ‘필터(Filter)’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다. 그것은 전시공간을 지속적으로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생동: 서사의 지속’, 전 지구적으로 펼쳐진 지정학적, 환경적, 경제적 무질서를 뜻하는 ‘무질서의 정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불안과 무질서를 야기하는 모더니티의 중심인 자본의 픽션과 본성을 이야기하는 ‘《자본론》: 라이브 리딩(A Live Reading)’이다.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개막일인 5월 9일에는 각 부문별 시상식이 거행됐다. 먼저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아르메니아(Armenia)관이 받았고, 국제전 황금사자상은 <The Probable Trust Registry: The Rules of the Game #1–3>을 출품한 미국의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가, 은사자상은 <위로공단>을 출품한 임흥순이 받았다. 특별언급상(Special Mentions)은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독일), 아보우나다라 콜렉티브(Abounaddara collective, 시리아), 마시니사 셀마니(Massinissa Selmani, 알제리) 3명의 작가와 조안 조나스(Joan Jonas)가 참가한 미국관이 수상했다. 이보다 먼저 발표된 황금사자상 특별상(Special Golden Lion)은 미국의 수잔 게즈(Susanne Ghez)가, 황금사자상 공로상(Lifetime Achievement)은 가나 출신의 알 아나추이(Al Anatsui)에게 돌아갔다. 알 아나추이 역시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흑인작가다.
베니스=황석권 기자

The winners, i premiati, 56.Biennale d'arte Venezia, Venice
오른쪽 수상자 일동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알 아니추이, 수잔 게즈, 오쿠이 엔위저, 파올로 바라타(운영위원장), 아드리안 파이퍼, 조안 조나스, 임흥순

SPECIAL FEATURE the 56th Venice Biennale

베니스의 한국 작가들

임종은 전시기획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베니스 일대에서 다수의 한국작가가 40여 개에 달하는 병행전시와 기획전에 참여하거나 개인전을 열었다. 이는 세계적인 미술 빅이벤트 현장을 찾은 각국의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및 미술계 관계자와 조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월간미술》은 베니스 현장에서 벌어진 우리 작가들의 활동을 담았다.

올해 베니스는 한국 작가 다수의 비엔날레 본전시 참가, 임흥순의 수상소식 등으로 더욱 매력적인 현대미술의 현장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고조된 비엔날레의 분위기 속에서 국가관과 본전시장 이외에도 베니스 섬 곳곳에서 한국 작가들의 기량을 만끽할 수 있었다. 국제전이라는 쉽지 않은 여건 속에, 특히 베니스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연다는 만만치 않은 과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작가들의 전시는 한정된 기간에 다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20대 작가부터 30~40대 작가뿐만 아니라 원로작가들과 유고작가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골고루 볼 수 있었다.
연령대가 다양한 만큼 전시도 여러 형태로 구성되었다. 게릴라전을 표방한 젊음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전시, 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개인전, 베니스의 대학전시장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 비엔날레 병행전시의 일환이면서 해외 미술관 기획 특별전 등 이 기간 베니스에서 열릴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전시 형태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었다.
수상버스 정류장과 전시장 등 주요 거점에서 한국 작가들의 전시홍보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전시 <The Light, The Shade, The Depth>의 포스터를 보니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 소개된 작품을 연상케 했다. 잔잔한 이미지 속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영문이름 ‘김민정’이 적혀 있어 밀라노와 파리를 근거로 작업하는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됨을 알 수 있었다. 한국보다는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비엔날레 전시장인 아르세날레 초입의 카 보토(Ca’boto)를 방문했다. 전통 재료와 기법을 이용한 김민정의 작품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삶과 역사가 담긴 공간(카보토)과 작품을 통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미학적 접근방식이 구현된 은은하고 차분한 화면이 잘 어우러졌다. 이번 개인전은 앤 다이안 갤러리를 통해서 전 바젤미술관 관장이자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관 커미셔너 등을 지낸  스위스 출신 큐레이터이자 미술사가  장 크리스토프 아망이 기획하였다.
한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해온 박병춘의 전시는 문화예술 기업인 ‘체네 인터내셔널’ 주최, 카포스카리대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대학은 본관 전시장에서 브루스 나우먼 등의 전시가 열리는 등 세계적 예술을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곳에서 박병춘 작가를 만나 개인전 준비의 어려움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국인 최초로 유서 깊은 전시장에서 작품을 선보였다는 것과 전통매체 작품으로 현장의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것에 무척 고무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채집된 풍경(Collected Landscape)>이라는 제목으로 미술관 전관에서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작가의 작업세계를 알 수 있도록 최근 작업과 신작이 짜임새 있게 설치되었고, 공간에 맞춘 듯 전시된 평면작품뿐만 아니라 검은 비닐봉투를 이용하거나 푸줏간을 연상시키는 붉은 전등과 130개의 쇠갈고리에 회화작품을 걸어 연출한 설치작품 등은 박병춘의 실험적인 면모와 역량을 보여주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행사인 병행전시(Collateral Event)에 참여한 한국 작가 이매리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리알토 다리와 산마리코 광장 사이에 있는 팔라조 카 파카논(과거 카사노바의 저택으로 현재 1층은 우체국으로 사용되고 있다)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이 주최, 주관하고 왕순지 관장이 기획한 이 전시의 제목은 <Humanistic Nature and Society(山水)-An Insight into the Future>이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 13인의 충실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모아 주제가 입체적으로 드러난 전시였다. 전시는 ‘생성-과거의 형상’, ‘진화-현재의 형상’, ‘산수 사회-미래의 형상’으로 나뉘어 작가들의 상상력과 철학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참여 작가 중 유일하게 한국 작가인 이매리도 현대적인 산수 의미에 대한 연구와 동양철학의 재해석을 통해 자신의 작업세계를 펼쳐냈다. 영상 설치 작업인 <Poetry Delivery>는 50여 개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민족, 문화, 종교, 역사, 사회 등이 담긴 시를 낭송하는 영상과 이매리 작가의 고향인 강진으로부터 서울에 이르는 과정이 담긴 영상이 동시에 상영되고, 벽면을 가득 채운 50개의 스피커에서 낭송 시가 흘러나오는 설치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환경 파괴에 대해 동양의 산수정신으로 성찰하고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민족과 국가의 생성과 소멸의 문제를 인류학적인 접근을 통해 교차 해석하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이다.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항들을 산수화와 불가분의 관계인 시적 세례를 통해 치유하고자 하는 이매리의 의도를 충실히 담아 보여주고 있다.
중견 작가 개인전과 병행전시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들의 전시도 볼 수 있었는데 그중 <베니스, 이상과 현실 사이(Sleepers in Venice)>가 흥미로웠다. 베니스라는 현대미술의 현실 속에서 작가들이 취하는 태도와 관점의 진솔함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베니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마크 월링거의 <Sleeper>에 영향을 받아 기획되었다. 기획자 김승민은 “이 두 작품은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치열한 격전장의 모습이자 대형 자본의 유입으로 예술이 작아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도 베니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예술가와 큐레이터들의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리알토 다리 부근에 마련된 전시공간에서 참여 작가 8명은 8가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기획에 영감을 준 마크 월링거의 영상작품 <Sleeper>도 상영되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스파이의 도시인 베를린에서 곰으로 변장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을 거점으로 삼아 자신이 만든 틀(작업)에 갇힌 듯 미술관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강임윤은 베니스의 안료로 수초와 물을 연상시키는 추상적인 화면을 표현하였는데 자연광이 드리운 전시장과 조화를 이루었다. 구혜영은 <그라핀>이라는 흥미로운 최첨단 소재를 이용하여 영상, 설치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김덕영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자 했으나 결국 비판적인 시각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싶은 욕망으로 바뀌는 모순적인 상황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우디킴은 어두운 방에 앉아 있는 관객의 주위를 돌며 적외선카메라를 쓴 발레리나가 춤을 추는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였다. 이현준은 일상 속에서 사소한 재미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작품과 사운드가 결합된 영상작품을 풀어냈다. 장지아는 하늘거리는 커튼에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셰익스피어 시 <소네트>를 썼다. 그녀의 불멸의 사랑은 햇빛을 받으면 변색되는 소피로 한 글자씩 찍어 만들어졌다. 리알토 다리 쪽 운하에 걸린 커튼이 햇빛을 받아 불멸을 뜻하는 단어 ‘Immortality’를 만들지만 그림자는 이내 햇빛에 의해 지워졌다가 다시 생겨난다. 듀오 아티스트 MR36(료니, 모즈)는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엄청난 틀 속에서의 보잘것없는 존재인 작가 본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천장에서 일정 간격으로 떨어지는 종이가 바닥에 쌓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형상으로 풀어내었다. 작가들의 작품 외에도 함께 마련된 공연과 퍼포먼스가 이 전시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몽골과 필리핀 국가관이 있는 팔라조 벰보와 팔라조 모라에서도 한국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가 열렸다. 이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이우환의 전시가 역시 The European Cultural Centre에 의해 진행된 곳으로 이번 전시 제목도 <Personal Structures-Crossing Borders>이다. 이 전시는 50개에서 100여 명이 참여했으로 유럽 작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팔라조 정원부터 건물 내부 곳곳에서 설치, 조각, 미디어, 비디오, 회화, 드로잉, 사진 등으로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친숙함 때문이었는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현장에서 이이남, 한호, 차수진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팔라조 벰보에 전시된 한호의 작품은 여러 개의 패널을 연결하여 새로운 공간을 연출하였는데 패널에 함입된 조명색이 서서히 변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패널의 얇은 표면에서 빛이 새어나오며 구한말 혹은 식민시기 한복을 입은 여성, 군복을 입은 남성, 날아가는 새 등의 이미지가 중첩되었다. 팔라조 모라에서 전시하는 차수진은 색실과 오브제 등을 이용하여 공간에 어울리는 적절한 설치작업을 보여주었다. 층고가 높은 공간에 자연광이 비취며 높고 낮게 드리운 실의 섬세한 연출은 허공에 자수를 한 듯하다. 역시 같은 공간에 전시된 이이남의 작품은 어두운 방에 큰 수조와 물결이 만드는 그림자, 바닥면부터 천장까지 설치되 모니터 등으로 공간을 장악했다. TV가 수조에 담겨졌다 꺼내졌다 하는 기계적인 동작이 반복될 때, TV화면에서는 새가 날갯짓을 한다. 마치 세례식이 거행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디지털이라는 비인간적인 물체를 통해서 가장 인간적인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기계가 물에 적셔지는 것은 곧 죽음(정지 혹은 고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기계가 물을 향해 내려가는 시간이 마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의 삶을 연상시킨다. 작가에게는 모터의 기계음과 울림이 인간이 삶 속에서 자아내는 고통의 신음처럼 들릴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미술관과 관계 기관에서 판을 벌리는 베니스는 이 기간 섬 전체가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전시가 열렸다.(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한국 작가 참여전시도 상당수 있다) 동시에 비엔날레와 여기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기 위해 모여든 문화미술계의 유명 인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엔날레를 계기로 열기(비록 어떤 본질과 깊은 관계가 없더라도)가 감도는 베니스 현장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그들의 활동 연장선에서 보게 된다. 그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기울여온 노고를 간접적나마 느꼈으며 또한 짐작하기에 생긴 나의 한계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 베니스에서 작가들이 보여준 작품들은 또 다른 맥락을 생성할 것이고 그것이 펼쳐질 앞으로의 과정이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낼지 기대되며, 또한 궁금하다. ●

[separator][/separator]

Frontiers Reimagined
팔라조 그리마니 뮤지엄 Palazzo Grimani Museum
5.9~11.22
병행전시로 열린 이 전시에는 46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전광영과 김준이 참가했다.

전광영2

[separator][/separator]

Collected Landscape
카 포스카리 대학미술관 (Ca’ Foscari Esposizioni)
5.8~8.30
동양화가 박병춘이 이탈리아에서 개최하는 첫 개인전이다. 높이가 5m가 넘는 대형 평면작업을 비롯해, 길이가 25m가 넘는 2층 로비 공간에 130여 장의 동양화를 갈고리에 매단 설치작업도 함께 선보였다.

IMG_2929
<흐릿한 풍경-가족> 한지에 먹 130×368cm 2015

[separator][/separator]

Personal Structures-Crossign Boarders
팔라조 벰보/팔라조 모라 Palazzo Bembo/Palazzo Mora
5.9~11.22
50여 개국에서 100명이 넘는 작가가 참여한 대규모 전시에 한국작가 6명이 출품했다. 이이남 한호 박기웅 이명일 차수진이 바로 그들. 참여 작가 규모로 짐작할 수 있듯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호
한호 <EternalLight-Dong Sang I Mong>(부분) 캔버스에 유채 LED 영상설치 450×400×450cm 2015

[separator][/separator]

Humanistic Nature and Society(Shan-Shui, 山水)-An Insight into the Future
팔라조 카 파카논 Palazzo Ca’ Faccanon
5.7~8.4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 최근 관장으로 선임된 상하이 히말라야뮤지엄이 기획한 이 전시에는 13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병행전시인 이 전시에 이매리가 한국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참여, 영상작업 <Poetry Delivery>(2015)를 출품했다. 고향에서 서울로 가는 여정을 담은 이 영상작업은 산업화에 따른 환경파괴와 인간의 욕망 등을 다뤘다.

이매리 (2)
이매리 <Poetry Delivery> 25분 2015

[separator][/separator]

The Light, The Shade, The Depth.
카 보토(Ca’ Boto)
5.5~9.27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는 작가 김민정의 개인전. 한국 전통 기법인 먹과 물감, 한지를 이용한 김민정의 작업은 베니스의 역사적인 건축물과 호응하였다.

김민정 (1)

[separator][/separator]

Sleepers in Venice-The Purgatory of Desires
칼레 델 카르본 Calle del Carbon
5.6~6.7
영국에서 활동하는 김승민 큐레이터가 기획하고 7명(팀)의 한국작가가 참여한 전시. 강임윤 김덕영 구혜영 우디킴 이현준 장지아 MR36의 신작을 선보였다. 전시명 Sleepers는 마크 월링거의 영상설치 <Sleeper>에서 땄는데 결국 세계미술의 빅이벤트인 베니스 비엔날레로 회귀하려는 작가들을 의미한다

IMG_2827
<Sleepers in Venice전> 참여작가. 왼쪽부터 김덕영, MR36(료니), 강임윤, 구혜영, 장지아, 김우디, 이현준

[section_title][/section_title]

interview

“마치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과 같은 심정이었다”

슬리퍼스 (3)김승민 <Sleepers in Venice전> 큐레이터

세계 최고, 최대의 미술 빅이벤트로 평가받는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적으로 초청을 받고 참여하는 작가도 있지만 이 치열한 각축의 현장에서 자신의 작업세계를 선보이려는 작가도 속속 모여든다. 여기에 7명의 당찬 한국 젊은 작가가 모였다. 이들에게 비엔날레 초대장은 중요치 않았다. 그들이 베니스에서 펼쳐보이려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전시를 기획한 김승민 큐레이터를 만나 들어보았다.
<Sleepers in Venice전>을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해달라
10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베니스 비엔날레를 매번 찾았는데 때마다 그 거대함에 위축되어 의욕을 상실한 채 런던으로 돌아가곤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글로벌 담론 형성의 장이긴 하지만 국가관은 문화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전쟁터 같았다.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는 모습은 오래된 노스탤지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고. 결국 작가는 미술현장에서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작가가 베니스에 다시 돌아오는 현상은 거대한 미술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직결된다. 베니스에 가고 싶어하는 예술가들에게 베니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나는 자본도 없고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도전정신과 진정한 비평정신을 갖춘 젊은 작가들과 베니스 비엔날레의 심장부로 들어가서 판을 한번 바꿔보자라는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과 같은 심정이었다. 이것이 전시를 기획한 계기가 되었다.
처음 기획의도를 어떻게 설정했으며, 작가 선정과 준비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해외와 국내 거주 작가, 미술 비전공자를 비롯 다양한 작가를 혼합하여 이들 각자의 관점과 장점이 모여 이야기가 만들어져 나갈 때 파급될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예상했다. 즉 장소특정적 작업, 퍼포먼스 작업, 회화, 영상작업, 관객참여적 작업 등 주제에 맞게 떠오르는 작가들을 먼저 접촉했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 주제는 작업을 왜 하는지, 우리는 베니스에 왜 가는지인데, 장지아의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이라는 영상작업이 떠올랐고 바로 연락을 했다. 세계시장에서 잘나가는 작가들은 진정한 화두를 던지는 이들이다.
마크 월링거의 작품 <Sleeper>(왼쪽 사진)를 본 작가들의 해석이 담긴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구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전시 제목은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마크 월링거의 영상작업을 조합해서 만들었다. 소설과 영상이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고 느꼈다. ‘슬리퍼’라는 명칭은 잠자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스파이들이 어떤 사회에 잠입하기 위해서 가면을 쓴 채 지령을 받기 전까지 잠복근무하는 수습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크 월링거가 베를린 국립미술관 전시 초청을 받았을 때 이런 내용으로 퍼포먼스를 벌였는데 베를린을 상징하는 곰으로 분장하고 열흘 동안 미술관에 갇혀서 지냈다. 작가가 작업이자 자신이 세워놓은 어떠한 룰에 결국 숨을 조이게 되고, 그 안에서 못 벗어나는 고뇌가 담긴 작업이었다. 가장 심각한 내용을 가장 유머러스하게 풀 수 있는 해학을 아름다우면서 장엄한 베니스와 연결했을 때 작가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세계적인 미술 빅이벤트와 이번에 기획한 전시를 병렬로 보여주면서 의도한 바는 무엇인가?
세계 미술전문가들이 총집합하는 베니스에서 되짚어볼 만한 전시 주제로 큐레이팅을 하여 베니스에 오는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국작가들을 전략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그래서 비엔날레 프레스 오픈 기간에 개막했다. 한국작가들이 국제무대에서 실험적 전시로 가능성을 제시하고, 국제무대에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마크 월링거가 같이 전시한다는 것도 큰 홍보 포인트였다. 또한 작가들이 전시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데 현대미술 작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작업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해외 유학을 하고 세계를 무대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은 작가가 다시 국내로 돌아와 다시 나갈 수 없는 현실과 이유도 짚어보고 싶었다.
ISKAI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소개를 부탁한다.
사회적 목적을 띠는 공공미술과 연계된 전시기획과 문화교류가 ISKAI의 모토다. 2011년에는 경방 타임스퀘어 쇼핑몰에서 모리츠 발데마이어의 공공미술전시를 기획했으며, 리버풀 비엔날레 시티스테이츠 한국도시관에서는 윤석남, 함경아, 샌정 등 한국과 영국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를 기획했다. 한·영수교 130년, 6·25전쟁 종전 60주년을 맞아 <어느 노병의 이야기전>도 기획했다.
국내에서 활동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런던에서 열었던 미술과 과학이 접목된 전시를 한국에서 할 계획이 있는데,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융복합적인 전시로 미술뿐 아니라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작업을 콜라보하는게 꿈이다.
황석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