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MILANO & VENICE

프라다파운데이션 기획전 시리얼 클래식

렘 쿨하스가 설계한 포디움에서 개막된 그리스 로마시대 고전조각을 독창성과 모방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한 전시다. (사진 이영란)

Fondazione Prada
Serial Classic | Portable Classic | An introduction | In Part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들이 속속 미술관을 세우는 가운데 밀라노에 프라다재단이 세운 폰다지오네 프라다가 5월 9일 정식 개관했다. 900여 명의 미술계 인사가 운집한 가운데 화려한 개막식을 가진 이 미술관은 총 9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중 3개 전시장을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맡아 설계했다.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컬렉션을 자랑하며 이탈리아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폰다지오네 프라다를 방문했다.

전복적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예술실험, 날개를 달다

이영란 전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그날 오후 미우치아 프라다(66)는 ‘Bar Luce’(바 루체)에 있었다. 베니스에서는 비엔날레가, 밀라노에서는 엑스포가 막 개막한 시점이었다. ‘Bar Luce’(Luce는 ‘빛’이라는 뜻)는 밀라노 남쪽에 새롭게 조성된 ‘Fondazione Prada’(폰다지오네 프라다) 내에 위치한 아담한 카페다.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프라다(PRADA)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예술애호가인 미우치아는 폰다지오네의 공식 개관(5월 9일)을 하루 앞두고, 모두 9개에 달하는 공간(건물)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카페를 점검 중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청하며 “당신의 오랜 꿈이 결실을 보았다. 감회가 어떠냐”고 묻자 미우치아는 “아, 내일부터 관람객을 맞는다. 이 시대 예술의 의미에 대해 늘 질문해왔는데 여기(Fondazione)에서 사람들과 함께 그 답을 찾고 싶다”고 했다. 미우치아는 미국의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47.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 연출)에게 카페 인테리어를 맡겼다. 이에 앤더슨은 1950, 60년대 이탈리아 영화풍으로 실내를 고졸하게 꾸몄다. 천장과 벽은 밀라노 도심의 유서 깊은 문화유산 ‘갤러리아 빅토리오 엠마누엘레’(아케이드)가 프린트된 월페이퍼로 장식했다.
명품업계에서 ‘별종의 패트론’으로 꼽히던 미우치아는 보다 체계적인 예술공헌을 위해 1993년, 남편(파트리지오 베르텔리 회장)과 함께 프라다재단을 만들었다. 또 밀라노시 남쪽 라르고 이사르코(Largo Isarco) 지역의 낡은 증류주공장도 사들였다. 언젠가는 ‘아트’가 살아 꿈틀대는 흥미로운 사이트로 바꿔놓겠다는 꿈을 갖고서 말이다.
그러곤 마침내 1만9000m2 규모의 미술관 콤플렉스를 조성했다. 우리로 치면 구로공단 같은 곳에, 대단히 혁신적인 아트전진기지를 만든 것이다. 뻔한 것, 제도권의 것을 거부하고 언제나 ‘도전과 전복’을 추구해온 프라다 부부의 예술실험은 국제 미술계의 이슈가 되곤 했는데 이번에 그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된 셈이다. 도대체 이 범상찮은 커플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며, 그들의 컬렉션엔 어떤 작품이 포진해있을까 궁금했던 미술계로선 메가톤급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카타르왕국의 알 마야사 공주, 악동작가 데미언 허스트와 마우리치오 채틀란, 제프 쿤스,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 오쿠이 엔위저, 다사 주코바, 카를라 소차니 등 900여 명의 유명인사가 이사르코로 몰려들었다.
1910년대에 지어진 옛 술공장의 사무실과 실험실, 창고, 술탱크 등 7채 건물의 리노베이션과 3채 건물의 신축은 미우치아의 오랜 파트너인 렘 쿨하스(71. OMA 대표)가 맡았다. 쿨하스와 OMA는 용도폐기된 건물의 내외관을 되도록 원형 그대로 살려 전시실과 어린이도서관 등을 만들었다. 또 본격적인 현대미술 기획전시를 위해 앞마당에 ‘포디움’과 ‘극장’을 새로 추가했다(층마다 층고가 달라지는 거대한 ‘탑(Torre)’은 공사 중). 따라서 프라다의 예술캠퍼스는 연대가 다르고, 높낮이와 형태가 다른 건물들이 미묘하게 어우러지며 색다른 화음을 선사한다. 모두 6개 섹션으로 이뤄진 전시 또한 마찬가지다.
장관을 이루는 것은 포디움(podium)이다.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초현대식 유리건물인 포디움 1,2층에선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조각들이 어떤 방식으로 변주됐는지를 ‘독창성과 모방’이라는 상반된 맥락에서 살펴본 〈Serial Classic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베니스에서 개막된 〈Portable Classic전〉과 짝을 이룬다.
살바토레 세티가 큐레이팅한 이들 전시는 고전조각은 물론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조각과 현대의 재현작, 미니어처가 총망라돼 서양미술의 뿌리인 ‘클래식’과 이를 차용한 예술 간의 연결점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위대한 걸작과 유실된 원본, 그에 기반을 둔 무수한 복제본 및 재현작을 다각도로 훑었는데 특히 그리스조각 ‘원반 던지는 사람’과 로마시대의 ‘웅크린 비너스’, 아폴로 및 헤라클레스 상은 다양한 시리즈가 나와 눈길을 끈다. 카피본 제작시 적용되는 법칙(캐논)과 기술도 공개돼 흥미롭다. 양 전시에 나온 조각만 150점이 넘는다.
옛 술공장의 작업실을 개조한 남쪽(sud)갤러리와 너른 창고갤러리에서는 프라다의 ‘지난 25년 컬렉션’을 집대성해 보여주는 〈An Introduction전〉이 막을 올렸다. 프라다의 컬렉션은 1970년대 예술영역에서 시작해, 뉴다다이즘을 거쳐 미니멀아트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그중 이번에 공개된 70여 점의 회화와 설치작품은 미우치아 컬렉션의 방향성을 감지케 한다. 이브 클라인, 피에르 만조니, 도널드 저드, 바넷 뉴먼, 에드워드 케인홀즈,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이 나왔다. 특히 마지막 전시실의 자동차 설치작업은 가히 압도적이다. 우아한 롤스로이스를 검댕이로 만든 뒤 새 깃털을 흩뿌려놓은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작업과 월터 드 마리아, 사라 루카스의 자동차 작업은 대단히 전복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북쪽(nord)갤러리의 〈In Part전〉은 전체와 부분 간 함수관계를 성찰한 전시다. 타이틀은 루치오 폰타나와 피노 파스칼리의 조각난 바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명명됐다. 만 레이, 프란시스 피카비아, 로버트 라우센버그, 리처드 세라, 브루스 나우먼, 존 웨슬리,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회화, 사진, 설치, 비디오작업을 만날 수 있다.

밀라노프라다 (1)

과거 거대한 증류주 탱크가 있었던 공간에는 데미안 허스트의 수조작품 < Lost Love > (2000)이 자리잡았다. (사진 이영란)

프라다재단 미술관 루이스 부르즈아 4875

한쌍의 남녀를 한 몸에 결합시킨 루이즈 부르주아의 조각 < herself-and single >. (사진 이영란)

더없이 매혹적인 동시에 유용하다
프라다의 새 캠퍼스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Haunted House(유령의 집)’이다. 옛 건물 전체에 순금(gold leaf)을 입혀 유난히 도드라지기도 하지만(쿨하스는 ‘의외로 돈이 많이 들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4채 건물이 하나로 조합된 갤러리에는 놀라운 통찰력에 기반을 둔 작품들이 들어찼다. ‘유령의 집’이라는 이름도 미우치아가 지었고, 로버트 고버와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을 선별해 영구 설치한 것도 그녀다. 인간의 몸과 공공질서, 섹슈얼리티, 종교와 개인을 다룬 ‘똑 떨어지는 작품들’은 관람객의 의표를 여지없이 찌른다.
그러나 대중이 가장 환호하는 공간은 3개의 장엄한 갤러리로 이뤄진 ‘Cisterna’이다. 100년 전 증류주 탱크가 있던 공간에는 에바 헤세, 피노 파스칼리, 데미언 허스트의 정방형 작품(큐브)들이 자리를 잡았다. 전시타이틀은 3부작을 의미하는 ‘Trittico’. ‘부드러운 조각’의 작가 에베 헤세의 <케이스2>, 파스칼리의 매력적인 1960년대 설치작품 <1입방미터의 흙>, 대형수조 속에 산부인과 수술대와 진료탁자(수술용 메스에 진주목걸이와 금반지가 놓여있다)를 설치하고 수백 마리의 열대어를 풀어넣은 데미언 허스트의 <Lost Love>를 감상할 수 있다. 인간존재와 그를 둘러싼 조건을 탐색한, 서늘한 작업이다. 극장에서는 로만 폴란스키에게 영감을 준 이미지들을 찾아나선 필름이 상영되고 있고, 지하 공간에는 토마스 데만트의 묵직한 설치작업이 자리를 잡았다.
프라다의 아트캠퍼스는 근래들어 명품 패션하우스들이 너나없이 예술공간을 오픈하고 있어 별반 새롭지 않을 수 있다. ‘이미지 제고를 위한 흔한 전략’으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폰다지오네 프라다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우선 장소다. 라르고 이사르코는 도처에 후기산업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후미진 지역이다. 프라다 폰다지오네도 겉으로 봐선 다른 공장들과 잘 구별되지 않는다. 담벼락에 현재의 기획전을 알리는 스크롤 전광판이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아트월드’가 펼쳐진다.
다음으론 재단과 기업 간 철저한 선긋기가 차이점이다. 프라다재단은 출범 초부터 ‘브랜드(비즈니스)와 아트는 완전히 별개’임을 강조해왔다. 미우치아는 아트에 비즈니스가 얽히는 걸 무척 싫어했다. 루이비통이 ‘예술과의 협업’을 통해 큰 실익을 거뒀고, 샤넬 또한 자하 하디드와 함께 세계를 순회하는 ‘모바일 아트프로젝트’를 펼치면서 각국의 미술가들에게 샤넬의 2.55핸드백을 작품화해줄 것을 요구한 데 반해 미우치아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선을 긋는다. 새로 조성된 밀라노 폰다지오네는 물론이고, 베니스 전시장 어디에서도 프라다 로고를 찾아볼 수 없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예술 자체로 존재해야지, ‘프라다를 위한 예술’은 그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단 설립 이래 미우치아는 뜻 맞는 예술동지들과 똘똘 뭉쳐 내밀하게 활동해왔다. 제르마노 첼란트(큐레이터)와 렘 쿨하스(건축)가 그들로, 이들 삼각편대는 ‘컬트집단’이라 불릴 정도로 기이한 프로젝트들을 터뜨려왔다. 프라다는 1990년대 초부터 아니시 카푸어, 루이스 부르주아, 샘 테일러-우드, 월터 드 마리아, 마크 퀸의 작품전을 (그들이 유명해지기 전에) 열었다. 또 댄 플래빈의 밀라노 성당 프로젝트, 엘름그린&드라그셋의 텍사스 마파사막에서의 프로젝트도 시행했다. 게다가 무모하다 싶으리만큼 혁신적이었던, 서울 경희궁에서의 움직이는 건축프로젝트(프라다 트랜스포머)도 진행한 바 있다. 젊은 시절 ‘좌파와 럭셔리’를 오갔던 미우치아의 이율배반적이고도 불가해한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하랄트 제만의 기념비적인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1969년 베른)를 오늘로 불러내, 재해석해낸 베니스 프로젝트(2013)는 “비엔날레 본전시보다 낫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어쨌거나 문화예술이 ‘더없이 매혹적인 동시에 유용하며, 세계와 삶을 또다른 각도로 성찰하게 한다’고 믿는 미우치아에게 폰다지오네 프라다는 지금껏 해온 실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전위와 혁신을 지향해온 그녀의 도전을 이제는 우리가 즐길 차례다.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입장료도 그닥 비싸지 않다.  10유로다. ●

포터블클래식

프라다재단의 베니스 전시관에서 오는 9월13일까지 열리는 < Portable Classic전 > 밀라노의 < Serial Classic전 >과 짝을 이룬다. (사진 이영란)

 

 

WORLD REPORT| HAVANA

the 12th Havana Biennale   Between the Idea and Experience

현재 세계 여러 나라 도시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약 150여 개. 이 가운데 베니스, 상파울루, 휘트니비엔날레를 3대 비엔날레로 손꼽는다. 그리고 이스탄불, 상하이, 광주비엔날레 등이 특색 있는 비엔날레로 주목받고 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개최되는 아바나 비엔날레는 이른바 ‘제3세계 국가’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비엔날레로 알려졌다. 올해로 12회째인 아바나 비엔날레가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22일까지 아바나 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특히 이번 아바나 비엔날레에는 한국작가로 유일하게 한성필이 참여했다. 박불똥, 임옥상(1993)과 故 박이소(1994) 이후 20여 년 만이다. 《월간미술》이 아바나 비엔날레를 현지 취재했다.

정치와 예술이 교차하는 풍경

이준희 편집장

‘아바나 비엔날레’는 아니, ‘쿠바’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그럼에도 쿠바라면 막연히 카리브 해(海)의 낭만과 이국적인 이미지가 먼저 연상된다. 이런 선입관을 품게 된 배경엔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혹은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선율과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여기에 개인적 경험을 덧붙이자면,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 연상된다. 2,500개의 빈 맥주병 위에 ‘감시원 청소배’라는 글씨가 낙서처럼 쓰여진 낡고 작은 나무배를 올려 놓은 설치작품 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쿠바 출신 알렉시 레이바 카초였다. 아바나 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한 작가의 당시 나이는 스물넷.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에 걸맞게 미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쿠바를 탈출하는 보트피플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아바나에 입성하기까지 꼬박 서른 시간이 걸렸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를 해준 쿠바교민(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쿠바의 연인>(2011) 정호현 감독)에게 카초의 근황을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카초는 현재 쿠바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아티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통신과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아바나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와이-파이 (Wi-Fi)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며 이를 기반으로 공공미술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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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구엘라(Alexander Guerra) < Sweet emo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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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뉴엘 A. 헤르난데스 카르도나(Manuel A. Hernández Cardona) < Love is calling you >

제3세계 미술을 넘어서
쿠바는 북한과 더불어 지구상에 몇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다. 1960년대 초 미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된 이후 미국의 철저한 경제봉쇄 정책으로 오랫동안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왔다. 하지만 최근 사정은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피델 카스트로의 동생)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조만간 양국 국교 정상화에 합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50년 넘게 고립된 채 자립경제 기치를 내걸고 사회주의를 고수해온 쿠바의 문호가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아바나 국제공항은 노랑머리 백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온 그들은 쿠바가 자본주의 물결에 오염되기 전, 사회주의 쿠바의 순수함(?)을 체험하기 위해 아바나로 여행 온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이데올로기의 아이러니가 만들어낸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일까? 이번 아바나 비엔날레에는 서구 유명 작가가 대거 참여했다. 애니쉬 카푸어(영국), 다니엘 뷔랭(프랑스), 앙리 살라(프랑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이탈리아), 티노 세갈(영국)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디어와 경험 사이(Between the Idea and Experience)’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아바나비엔날레에는 44개국 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 가운데는 미국에서 온 작가가 35명이나 된다. 쿠바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바나 비엔날레가 처음 시작된 해는 1984년이다. 그런데 올해가 12회란다. 30년 동안 3차례나 제때 비엔날레가 열리지 못한 탓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비엔날레 개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아바나 비엔날레가 서구의 여타 비엔날레와 차별되게 보여준 정체성은 한마디로 ‘안티-스펙터클’로 요약할 수 있다. 아바나 비엔날레는 그동안 베니스 비엔날레나 카셀도쿠멘타 같은 서구의 대규모 국제미술제에서 주목받지 못한 아티스트를 발굴해왔다. 동시에 쿠바를 비롯해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제3세계 작가에 주목해왔다. 이런 경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작품 내용과 전시 장소에서도 드러난다. 이번에도 그렇지만 아바나 비엔날레 출품작 대부분은 상업성 짙은 컬렉터나 권위적인 미술관 관계자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즉, 거래 가능한 완결된 오브제 작품보다는 전반적으로 퍼포먼스와 공연, 음악, 무용 등 일회성 작품이 강세를 보인다. 따라서 전시장소와 공간 또한 일반적이지 않다. 전시장과 생활공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도시 곳곳이 전시장이다. 바닷가나 낡은 건물이 밀집한 오래된 골목이 비엔날레의 무대다. 이처럼 아바나 비엔날레는 시민의 생활터전 속 깊이 침투해 있다. 일반 시민을 위한 이런 의도는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내포하며 공공미술로서의 기능을 강하게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작가 한성필의 작품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성필은 건물 파사드(façade)와 복원 공사 중인 가림막을 촬영한 사진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쿠바의 옛 국회의사당 건물인 카피톨리오(Capitolio) 바로 맞은편 건물 외벽에 설치된 작품 <조화로운 아바나(Harmonious Havana)>는 아바나 시민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경주 감은사지삼층석탑(유홍준 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권 표지에 실린 바로 그 탑이다)을 촬영한 한성필의 사진이 프린트된 대형 가림막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바나 구시가지(Habana Vieja)의 오래된 유럽식 건물 사이에서 아주 낯선 볼거리를 제공했다.
한편 한성필이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하게 된 과정은 이러하다. 작가는 지난해 아바나 비엔날레 큐레이터 팀으로부터 비엔날레 참가 제안을 직접 받았다. 아바나 비엔날레는 사회주의 국가답게 한 명의 특정 큐레이터가 아닌 쿠바 ‘위프레도 램 현대미술 센터(Wifredo Lam Contemporary Art Center)’라는 기관 산하 큐레이터 팀에 의해 공동 조직된다. 이들 큐레이터 팀은 전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참여 작가를 리서치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한성필 외에 몇몇 한국작가에게도 비엔날레 참여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제안에 응하지 못했고, 유일하게 한성필만 오케이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일단 참여를 수락한 한성필은 그때부터 적지 않은 전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던 중 외교부 산하 주멕시코한국대사관(대사 전비호)으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게 되었다. 현재 한국과 쿠바는 미수교 상태다. 그래서 주멕시코한국대사관에서 쿠바를 상대로 한 대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앞서 밝힌 대로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가 곧 성사되면, 한국과의 수교 또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정부도 미국처럼 정치에 앞서 문화예술분야에서 쿠바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다각도로 모색하던 터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성필의 작품은 한국과 쿠바 양국간 우호협력의 교두보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성필의 작품은 아바나 현지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훌륭한 기회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바, 여전히 아바나 시대를 굴러다니는 자동차 중 대부분은 1950년대 미국에서 생산된 이른바 ‘올드카’였다. 그리고 나머지 차량 중 20~30%는 한국산 자동차였다. 한국은 벌써 그들에게 아주 가깝게 다가가 있었다. 이밖에도 K-Pop과 드라마를 통한 한류 열기가 다른 남미 국가 못지않았다. 그동안 멀게만 여겨졌던 쿠바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우리와 가까워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안토니오 엘리지오(Antonio Eligio)

안토니오 엘리지오(Antonio Eligio) < TONEL > 이 작가는 쿠바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CRITIC 윤석남 ♥심장

윤석남_서울시립 (1)

위 윤석남 <종소리> (앞의 작품) 혼합재료 2002, 아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윤석남 개인전

서울시립미술관 4.21~6.28

김미정 미술사

지난 30여 년간 줄곧 여성문제에 천착해온 윤석남(1939~ )의 회고전이 서울시립미술관 1층 홀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대 중반 민중미술운동으로 시작된 한국 여성주의 미술은 산업화의 약자인 여성 노동자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하여 점차 여성적 경험과 그 표현의 구체화로 이어졌다. 이견 없이 윤석남 화업의 결산은 곧 한국 여성주의 미술사를 조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자칫 사회운동의 한 분파로 축소되고 말았을 페미니즘 미술이 시적인 함축과 문학적 서정성을 겸비한 윤석남의 열정에 의해 한층 풍부하게 펼쳐져왔다는 데 또한 화단과 비평가들의 평가는 일치하고 있다.
<윤석남 ♥ 심장>으로 간결하게 명명된 이 전시는 1980년대 화가의 초기작과 여성주의 미술운동이 구체화되던 시기의 자료들, 어머니 연작과 역사 속 여성을 다룬 설치작품들, 문학과 윤석남 미술의 관계를 보여주는 섹션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윤석남의 초기작에서부터 이미 아마추어를 넘어서는, 화면을 장악하는 힘과 분명한 주제의식이 드러나 있었다. <여성과 현실전>과 <시월전>에 관한 자료들은 1980년대 활발했던 여성주의 미술운동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게 정리되어 있다. 마흔, 결혼생활의 헛헛함을 메우기 위해 뒤늦게 그림을 배웠다고 해서 윤석남이 화단의 변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별 소득 없이 주류 남성들의 패거리 화단 정치에 소비되지 않은 것이 외려 다행일 수도 있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윤석남은 자주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서 주제를 길어 올렸다. 서른아홉에 홀로된 어머니를 추억하기 위해 작가는 낡아 버려진 목재들을 주워다 이어 붙였다. 폐목처럼 거칠게 조각난 삶을 통합해낸 어머니의 견고한 모성에 대한 아름다운 헌사이자 기념비였다. 이후 윤석남은 중산층 여성의 정체성 불안에서 여성성의 본질, 모성의 문제를 탐구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호랑이의 꼬리(Tiger′s Tail)>에 출품된 <어머니의 이야기>는 여러 변주를 거쳐 손이 길게 늘어난 여인상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 모성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에서 피 흘리는 거대한 진홍빛 심장으로 구체화했다.
모성의 끊임없는 신화적 재구축과 인간애로의 확장. 이는 지난 30년간 윤석남의 미술을 한 구절로 압축한 말이다. 모성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굴곡이 많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모성은 더욱 처연하여 무엇을 보태기도 허물어버리기도 어려운 정서적 영역이다. 어머니의 헌신은 미술뿐 아니라 수많은 문학적 텍스트로도 쓰였는데 소설가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의 프롤로그에서 어머니를 성모의 이미지에 중첩했다. 윤석남은 여성성을 병든 세계를 품어 안는 베풂과 희생의 미덕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바리공주 설화를 모성의 은유로 시각화했다. 윤석남의 여성주의 작품세계가 자생적이든 이후 학습을 통해 영향을 받은 것이든, 윤석남의 신화적 설화나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은 미국 페미니즘 미술과 대조를 이루고 있어 흥미롭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를 위시한 1970년대 과격한 서구 페미니즘 미술가들도 상실된 역사 속 여성을 되살리고 신화 속 여신의 이미지를 끌어내 사용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칼리나 이슈타르처럼 공포와 그로테스크함으로 여성 심리의 불안정성이나 몸의 비천함, 양육과 파괴의 이중성을 표현했던 서구의 예와는 달리 윤석남의 바리공주는 명백하게 효와 복종, 양육이라는 한국적 유교 윤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성주의에도 국적이 있는 것인지, 기실 바리데기 신화가 전통적 남성 이데올로기를 되풀이한다는 점에서 윤석남의 작품은 성 정체성의 전복을 꿈꾸는 여성주의와 가부장 이념으로 구축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위험한 경계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이 문제는 1993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어머니의 눈>에 맞춰 쓴 <모성, 역사 그리고 여성의 자기진술>에서 여성주의 사회학자 조혜정이 완곡하게 지적했던 것으로, 결국 중요한 것은 체험적 모성성의 실상과 작가의 자기 진술이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한데, 언젠가 고백한 것처럼 딸의 방해를 받을까 심지어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림에 몰두했다는 화가의 열정적 자기애와 어머니의 희생적 삶에 대한 향수는 이율배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윤석남의 일련의 우아한 작품에서는 상충하는 이데올로기와 선언이 슬쩍 봉합된 모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03년 <핑크룸>은 화가가 내면을 열어젖힌 것으로 해석되곤 하는 작품이다. 날카롭게 박힌 가시 때문에 결코 앉을 수 없는 화려한 의자들, 붉은색 구슬은 무의식 속 여성의 분열과 상처를 초현실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윤석남의 방에서는 초기의 회화만큼 그 복잡미묘한 여성의 리얼리티가 전해지지 않는다면 왜 그런가.
국문학자 권보드래는 식민지시대와 해방기, 1950년대 약진했던 여성성은 1960년대 이후 후퇴했다고 했다. ‘신여성’, ‘자유부인’과 ‘아프레 걸’이 풍미하던 팜므 파탈 여성유형은 민족의 자력에 끌려 현모양처와 희생자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 재현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 페미니즘은 그 시조인 나혜석 때에 가장 선명하고 처절했다. 이러한 페미니즘의 역조는 1990년대 이후 공감이라는 힐링 풍조와 맞물려 한층 부드러워졌다. 국내에도 꽤 알려진 《만들어진 모성》의 저자 엘리자베스 바탕테르(Elisabeth Badinter)는 “나는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여성의 본성보다는 여성들이 지닌 각기 다른 수많은 경험을 더 선호한다”고 했다. “여성은 만들어진 성”이라고 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언급이 너무 진부하다면 “세상의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것은 흑과 백으로 인종을 나누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고 한 유명한 트랜스젠더 여성 CEO 마틴 로스블랫(Martin Rothblatt)의 주장도 상기해볼 만하다. 나 역시 경험적으로 모성은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며 불안정하고 게다가 불완전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요는 사회적 계층과 젠더 역할의 차이에 따른 각자의 개별적 체험이 문제이다.
이미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윤석남에 대한 수많은 헌사가 있으므로 모성의 재현에 대한 나의 불편함이 화가의 작품세계에 흠집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평생 페미니스트로 불리고 싶다”는 윤석남은 그 존재 자체로 울림과 무게가 있다. 전시장에는 확실히 여성 관객이 많았다. 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주로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여학생 단체 관람객들의 진지한 표정에서 여성 연대의 가능성을 보았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전시장 벽 한쪽에서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이 뻗어 올라간 그로테스크한 윤석남의 <자화상>이 메두사처럼 강렬한 응시의 빛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다. 그 날 푸른 시선에 압도되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로 말이다.

 

CRITIC 윤석남 ♥심장

윤석남_서울시립 (1)

위 윤석남 <종소리> (앞의 작품) 혼합재료 2002, 아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윤석남 개인전

서울시립미술관 4.21~6.28

김미정 미술사

지난 30여 년간 줄곧 여성문제에 천착해온 윤석남(1939~ )의 회고전이 서울시립미술관 1층 홀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대 중반 민중미술운동으로 시작된 한국 여성주의 미술은 산업화의 약자인 여성 노동자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하여 점차 여성적 경험과 그 표현의 구체화로 이어졌다. 이견 없이 윤석남 화업의 결산은 곧 한국 여성주의 미술사를 조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자칫 사회운동의 한 분파로 축소되고 말았을 페미니즘 미술이 시적인 함축과 문학적 서정성을 겸비한 윤석남의 열정에 의해 한층 풍부하게 펼쳐져왔다는 데 또한 화단과 비평가들의 평가는 일치하고 있다.
<윤석남 ♥ 심장>으로 간결하게 명명된 이 전시는 1980년대 화가의 초기작과 여성주의 미술운동이 구체화되던 시기의 자료들, 어머니 연작과 역사 속 여성을 다룬 설치작품들, 문학과 윤석남 미술의 관계를 보여주는 섹션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윤석남의 초기작에서부터 이미 아마추어를 넘어서는, 화면을 장악하는 힘과 분명한 주제의식이 드러나 있었다. <여성과 현실전>과 <시월전>에 관한 자료들은 1980년대 활발했던 여성주의 미술운동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게 정리되어 있다. 마흔, 결혼생활의 헛헛함을 메우기 위해 뒤늦게 그림을 배웠다고 해서 윤석남이 화단의 변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별 소득 없이 주류 남성들의 패거리 화단 정치에 소비되지 않은 것이 외려 다행일 수도 있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윤석남은 자주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서 주제를 길어 올렸다. 서른아홉에 홀로된 어머니를 추억하기 위해 작가는 낡아 버려진 목재들을 주워다 이어 붙였다. 폐목처럼 거칠게 조각난 삶을 통합해낸 어머니의 견고한 모성에 대한 아름다운 헌사이자 기념비였다. 이후 윤석남은 중산층 여성의 정체성 불안에서 여성성의 본질, 모성의 문제를 탐구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호랑이의 꼬리(Tiger′s Tail)>에 출품된 <어머니의 이야기>는 여러 변주를 거쳐 손이 길게 늘어난 여인상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 모성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에서 피 흘리는 거대한 진홍빛 심장으로 구체화했다.
모성의 끊임없는 신화적 재구축과 인간애로의 확장. 이는 지난 30년간 윤석남의 미술을 한 구절로 압축한 말이다. 모성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굴곡이 많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모성은 더욱 처연하여 무엇을 보태기도 허물어버리기도 어려운 정서적 영역이다. 어머니의 헌신은 미술뿐 아니라 수많은 문학적 텍스트로도 쓰였는데 소설가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의 프롤로그에서 어머니를 성모의 이미지에 중첩했다. 윤석남은 여성성을 병든 세계를 품어 안는 베풂과 희생의 미덕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바리공주 설화를 모성의 은유로 시각화했다. 윤석남의 여성주의 작품세계가 자생적이든 이후 학습을 통해 영향을 받은 것이든, 윤석남의 신화적 설화나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은 미국 페미니즘 미술과 대조를 이루고 있어 흥미롭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를 위시한 1970년대 과격한 서구 페미니즘 미술가들도 상실된 역사 속 여성을 되살리고 신화 속 여신의 이미지를 끌어내 사용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칼리나 이슈타르처럼 공포와 그로테스크함으로 여성 심리의 불안정성이나 몸의 비천함, 양육과 파괴의 이중성을 표현했던 서구의 예와는 달리 윤석남의 바리공주는 명백하게 효와 복종, 양육이라는 한국적 유교 윤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성주의에도 국적이 있는 것인지, 기실 바리데기 신화가 전통적 남성 이데올로기를 되풀이한다는 점에서 윤석남의 작품은 성 정체성의 전복을 꿈꾸는 여성주의와 가부장 이념으로 구축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위험한 경계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이 문제는 1993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어머니의 눈>에 맞춰 쓴 <모성, 역사 그리고 여성의 자기진술>에서 여성주의 사회학자 조혜정이 완곡하게 지적했던 것으로, 결국 중요한 것은 체험적 모성성의 실상과 작가의 자기 진술이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한데, 언젠가 고백한 것처럼 딸의 방해를 받을까 심지어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림에 몰두했다는 화가의 열정적 자기애와 어머니의 희생적 삶에 대한 향수는 이율배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윤석남의 일련의 우아한 작품에서는 상충하는 이데올로기와 선언이 슬쩍 봉합된 모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03년 <핑크룸>은 화가가 내면을 열어젖힌 것으로 해석되곤 하는 작품이다. 날카롭게 박힌 가시 때문에 결코 앉을 수 없는 화려한 의자들, 붉은색 구슬은 무의식 속 여성의 분열과 상처를 초현실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윤석남의 방에서는 초기의 회화만큼 그 복잡미묘한 여성의 리얼리티가 전해지지 않는다면 왜 그런가.
국문학자 권보드래는 식민지시대와 해방기, 1950년대 약진했던 여성성은 1960년대 이후 후퇴했다고 했다. ‘신여성’, ‘자유부인’과 ‘아프레 걸’이 풍미하던 팜므 파탈 여성유형은 민족의 자력에 끌려 현모양처와 희생자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 재현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 페미니즘은 그 시조인 나혜석 때에 가장 선명하고 처절했다. 이러한 페미니즘의 역조는 1990년대 이후 공감이라는 힐링 풍조와 맞물려 한층 부드러워졌다. 국내에도 꽤 알려진 《만들어진 모성》의 저자 엘리자베스 바탕테르(Elisabeth Badinter)는 “나는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여성의 본성보다는 여성들이 지닌 각기 다른 수많은 경험을 더 선호한다”고 했다. “여성은 만들어진 성”이라고 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언급이 너무 진부하다면 “세상의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것은 흑과 백으로 인종을 나누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고 한 유명한 트랜스젠더 여성 CEO 마틴 로스블랫(Martin Rothblatt)의 주장도 상기해볼 만하다. 나 역시 경험적으로 모성은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며 불안정하고 게다가 불완전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요는 사회적 계층과 젠더 역할의 차이에 따른 각자의 개별적 체험이 문제이다.
이미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윤석남에 대한 수많은 헌사가 있으므로 모성의 재현에 대한 나의 불편함이 화가의 작품세계에 흠집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평생 페미니스트로 불리고 싶다”는 윤석남은 그 존재 자체로 울림과 무게가 있다. 전시장에는 확실히 여성 관객이 많았다. 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주로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여학생 단체 관람객들의 진지한 표정에서 여성 연대의 가능성을 보았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전시장 벽 한쪽에서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이 뻗어 올라간 그로테스크한 윤석남의 <자화상>이 메두사처럼 강렬한 응시의 빛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다. 그 날 푸른 시선에 압도되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로 말이다.

 

CRITIC 필름 몽타주

코리아나미술관 5.7~7.11

김지훈 중앙대 영화·미디어연구 교수

1990년대 이후 영화는 전자미디어의 부상과 더불어 영화적 이미지, 영화장치, 영화적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자신의 전통적인 경계와 구성성분을 잃고 인접 예술들 및 미디어 인터페이스들로 수렴하고 발산하는 포스트-시네마 조건 (post-cinematic condition) 속으로 진입했다. 이 조건 속에서 서로 다른 두 쇼트의 연결을 뜻하는 몽타주는 영화의 특정성을 지탱해온 기법이라는 본성을 유지하면서도 극장 중심의 표준적 영화로부터 이탈하여 현대예술로 이행한다. 이와 같은 몽타주의 확장을 근거로 기존 영상 및 역사적 자료들의 수집과 변형, 재조합을 통해 그것들에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영상 제작의 다양한 실천들을 아카이브 영상 제작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실험영화에서 습득영상 제작에 근거한 영화들을 가리키는 파운드 푸티지 영화(found footage film), 과거의 기록을 탐구하는 감독의 주관성이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의 혼합을 통해 표명되는 에세이 영화, 그리고 무빙 이미지 예술에서 과거의 영화를 포함한 역사적 자료들을 발견과 재구성의 대상으로 상정하는 아카이브 충동(archival impulse)에 근거한 작업들로 분류될 수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 2011년 개최한 <피처링 시네마(Featuring Cinema)전>은 브루스 코너, 피에르 위그, 크리스토퍼 지라르데와 마티아스 뮐러 등의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파운드 푸티지 영화의 역사,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비디오 설치작품들이 영화의 형식적, 주제적 모티프들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제시했다. 반면 이번 <필름 몽타주>에 소개된 작품들은 에세이 영화와 현대예술의 아카이브 충동이라는 전통들 속에서 이질적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역사와 기억의 새로쓰기를 시도한다.
하룬 파로키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Workers Leaving the Factory)>(1995)은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동명의 영화이자 영화사 최초의 영화를 시작으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산업영화와 선전영화들에서 공장과 노동을 재현한 장면들을 재배열한다. 이 방대한 영화적 파편들의 아카이빙을 통해 파로키는 영화와 공장, 노동 사이의 결연관계에 대한 역사를 재구성한다. 안무가 쇼반 데이비스(Siobahn Davies)와 영화감독 데이비드 힌튼(David Hinton)이 공동제작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 (All This Can Happen>(2012)은 몽타주의 다양한 기법들이 에세이 영화의 전형적인 텍스트와 연결될 때 생산되는 풍부한 이미지-사운드 결합들을 제시한다. 걷기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방랑과 노동 사이를 지속적으로 오가는 탈중심적인 내레이션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연속사진과 초기 극영화, 기록영화, 사진 등 방대한 시각적 자료들에 기입된 일상적 제스처들과 다층적으로 연결되면서 20세기 초에 대한 대안적 역사를 구축한다. 엘리자베스 프라이스(Elizabeth Price)의 <울워스콰이어(The WoolworthsChoir>(1979/2012)는 13세기 교회 성가대 좌석에 대한 기록사진과 1960년대 걸그룹의 제스처, 그리고 1979년 맨체스터에서 발생한 화재와 관련된 자료들이라는 3개의 상이한 과거를 비선형적으로 조합하여 새로운 지식들을 낳는다. 이 지식들은 교회 성가대와 현대의 팝문화가 공유하는 합창의 정서적 효과들, 합창단과 걸그룹, 화재 피해자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제스처들이다.
<필름 몽타주전>은 이러한 에세이 영화 및 영상설치 작품들을 노재운, 김아영, 박민하 등의 작업들과 병치시킴으로써 아카이브 영상 제작이 국내외에서 공히 영화와 현대예술 사이의 다층적인 중첩과 교환을 활성화해왔다는 점을 입증한다. 포스트-시네마 조건 속에서 아카이브 영화 제작은 셀룰로이드 영화가 추구해 온 몽타주의 유산들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현재와 미래로 어떻게 새롭게 재생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 노선은 우리의 과거를 항상 다시 기술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변증법적 시각에 호응한다. 몽타주는 바로 이러한 시각을 구체화하고, 영화적 과거의 파편들을 현재와 잠재적 미래를 향해 열어놓는 다양한 방법들이다.

위 안체 에만, 하룬 파로키 <노동을 비추는 싱글쇼트>(오른쪽) 8채널 영상 2013

CRITIC 시징맨 시징의 세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27~8.2

이선영 미술비평

한중일 세 나라의 프로젝트 그룹 시징맨(西京人)(김홍석+천샤오슝+쓰요시 오자와)은 <시징의 세계전>에서 서쪽에 있다고 가정되는 도시(西京)에 대한 상상을 펼친다. 그들은 동경, 남경, 북경 등 방위를 지칭하는 수도가 현재까지 실재하는 반면, 시징은 사라지고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왜 서쪽일까. 리처드 해리스는 《파라다이스》에서 파라다이스의 위치로 서쪽이 압도적으로 많이 설정된다고 한다. ‘해질 녘의 서쪽 하늘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데 반한 시인들은 서쪽을 빛과 영광의 세계로 본다’(불핀치)는 것이다. 그러나 지는 해 자체는 흥해야할 도시 명으로 어울리지 않기에 묻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서쪽으로 떠나는 여행’은 중국 고전소설 《서유기》와도 관련되며, 서양에서 서쪽을 향한 여행기이기도 한 《오즈의 마법사》를 차용한 작품도 눈에 띈다. 시징은 없기 때문에 있는 유토피아의 토포스를 보여준다. 전시장 입구이자 가상 도시로 들어가는 관문에 걸린 뾰족한 돌출이 있는 국기와 오륜을 뒤죽박죽으로 섞은 시징 올림픽기는 미지의 도시에서 벌어질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을지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정교함과 부조리함이 공존하는 여러 형식의 작품에는 파타피직스(pataphysics)적 감각이 두드러진다. 이 이질적 규칙의 세계에서 완벽함과 모순은 함께 간다. 작품은 개막식부터 시상 무대까지 올림픽에 있어야 할 것들을 두루 갖췄다. 세 작가가 이 전시를 꾸리기 위해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게임규칙을 패러디하는 과정은 진지하면서도 장난스럽다. 장난도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면 진지해진다. 그들의 작품은 국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풍자로 다가온다. 시징의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입국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춤과 노래, 또는 웃음과 미소다. 그럴듯한 세팅은 관객 역시 선수 못지않게 게임을 준수해야 하는 일원으로 변모시킨다. 이러한 공모를 통해 자연스러운 일상의 규칙들은 가상 도시의 우스꽝스러운 관례로 소격된다.
오랜 노력이 짧은 시간 안에 결판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어지는 값진 열매는 금방 상하는 채소로 만들어진 메달이다. 노랑과 파랑으로 번갈아 칠해진 시상식 계단은 착시효과 때문에 어지럼증을 자아낸다. 물감을 바닥에 뿌리고 슬라이딩 하는 게임, 눈을 바닥에 뿌리고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미끄러트리는 게임, 병뚜껑들로 만든 역도, 마구 엉켜 있는 자전거, 미술관 벽과 바닥에 그려진 골대 안의 수박 덩어리 등은 한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게임 규칙들이 애들 장난처럼 자의적임을 폭로한다. 선수는 물론 온 국민이 울고 웃는 게임이 운동경기에만 해당될까. 작가들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총체적인 역량을 경쟁의 무대로 삼는 거대 행사가 일상의 미시적 권력 망에도 편재함을 보여준다. 침구나 의상에 박혀있는 국가의 로고나 노동자가 흘린 땀의 양을 계측하는 누런 수건 등이 그것이다. 역할극의 의상이나 꼭두각시 인형 등이 전시된 방은 인간 사회가 배후의 힘에 조종되는 연극 무대로 다가오게 한다. 소품, 의상, 공연 장면 등은 아카이브 같은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으나, 작가들은 이러한 거시-미시 권력이 그때 그곳에만 관철되는 구조와 힘이 아님을 설득한다. 시징맨이 다루는 문제의식은 올림픽 게임에 한정되지 않고, 교육이나 예술 같은 전반적인 것으로 확장된다. 국내외 유명 작품들을 간장 제조용 면포 위에 간장으로 그린 쓰요시 오자와, 유명한 팝아트 작품을 우그러뜨리고 타인의 노동력을 구매해 제작된 단색화 156개를 비춰서 기이한 왜곡 상을 만들어낸 김홍석은 한 시대와 세대에게 익숙한 예술적 게임을 자신이 고안한 게임으로 변주한다. 나아가 천샤오슝은 지배자의 일방적 게임규칙에 저항하는 민중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시징맨은 마지막 방에서 각자의 작품으로 돌아와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지배적 게임규칙이 또 다른 규칙으로 변모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러한 메시지는 매우 정치적이다.

위 시징맨 <시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시징 올림픽 / 시징 동계올림픽> 혼합재료 2008/2014

CRITIC 함경아 Phantom Footsteps

국제갤러리 6.5~7.5

홍지석 단국대 연구교수

샹들리에가 등장하는 함경아의 큼지막한 자수 그림들의 제목은 “What you see is the unseen(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이다. 이 제목은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너무 당연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화가가 화면 위에 찍은 점 하나도 뭔가 다른 것을 지시(함축)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가시화함으로써 비가시적인(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화가의 통상적인 작업이다. 물론 “What you see is what you see”를 외치며 그 ‘어떤 것’을 화면에서 축출하고 거의 사물에 가까운 작품을 제시하고자 했던 옛 시도들은 예외로 해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작 “What you see is the unseen” 또는 “Needling Whisper, Needle country”로 명명된 함경아의 근작들에서 그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작품 자체의 분석을 통해서 이 작품의 심층적인 의미를 해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함축한다고 보기에 이 작품들은 너무 평평하고 얄팍하다. 그 한 땀 한 땀 수놓은 비단 자수, 알록달록하고 반짝반짝한 이미지들은 매혹적이지만 막상 그 이미지들로부터 화가가 공언한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일은 이미 시작 단계에서 난관에 봉착한다. 어쩌면 그 작품 안에는 “보이지 않은” 어떤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속 편할 것이다. 작가가 굳이 “What you see is the unseen”이라는 제목을 택한 데에는 사연이 있는 셈이다.
내가 보기에 작가가 공언한 ‘보이지 않는 것’은 작품 안이 아니라 작품 바깥에 있다. “수다스럽다” 또는 “과잉이다”라고 할 만한 많은 정보가 있다. 모두 작가가 직접 우리에게 전달한 것들이다. 그 정보들을 열거해보기로 하자. 1)이 작품들은 북한의 자수공예가들이 완성했다. 2)작가가 여기저기서 수집한 이미지와 텍스트들로 제작한 도안을 중간자를 통해 북한으로 보냈고 북한 공예가들이 그 도안을 자수로 구현했다. 3)작품 제작의 구체적인 절차, 경로는 밝힐 수 없지만 간혹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작품이 압류되거나 실종된 적이 있다. 4)몇몇 작품은 문구(이를테면 Are you lonely?, Imagine!)가 숨어 있다. 이것들은 냉전시대 삐라를 예술적 메시지로 변용한 것이다. 북한 공예가들도 그 메시지를 접했을 것이다. 5)흔들리는 또는 추락한 샹들리에의 이미지는 권력, 이념, 담론의 불완전성을 나타낸 것이다. 등등
이 정보들을 종합하면 함경아는 작가적 실천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북한, 북한인민들, 북한의 공예가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기할 것은 우리(관객)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도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유령과 같은 것인 까닭이다. 유령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 머물며 때때로 출몰하여 우리를 위협한다. 마치 북한처럼 말이다. 그 보이지 않는 유령의 흔적을 잡아내는(떠내는) 일이야말로 함경아의 근작들의 과제다. 그 근작들의 전시회 제목은 “유령 발자국(Phantom Footsteps)”이다. 이렇게 본다면 함경아는 상징(개념)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지표(흔적)의 수준에서 보이지 않는 것(실재)에 관여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도래한 실재는 자못 생생하다. 전시장에서 연작 가운데 하나가 마치 설치작품처럼 공간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 뒷면과 만날 수 있다. 여기에는 유령, 아니 살아 숨 쉬는 인간 행위-맺고 당기고 밀고 누르는 행위들-의 궤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러니 작가가 공언한 ‘보이지 않는 것’은 작품 안도 작품 바깥도 아닌 작품 뒷면(배후)에 있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위 함경아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섯 개의 도시를 위한 샹들리에> 북한 주민 손자수, 중개인, 걱정, 검열, 나무 프레임 등 2013~2015

CRITIC 유승호 머리채를 뒤흔들어

페리지갤러리 6.4~8.8

고동연 미술사

“이는 아무 목적이나 의미 없이, 무엇에 대해서도 여념이 없이 생각과 마음을 모두 비운 상태로 그저 멍하니 작업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2015 개인전 도록 《머리채를 뒤흔들어》 중에서)
의식을 최대한 배제한 상태에서 창작이 가능한가? 1920-30년대 초현실주의자들부터 절제되지 않은 몸의 움직임에 따라 우연적으로 물감이 캔버스에 안착하기를 바랐던 폴록에 이르기까지 창작 과정에서 자신의 의식을 배제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가들은 각종 ‘잡념’에서 벗어나 최대한 다른 차원의 정신적 상태에 이르려는 강한 욕구를 갖게 마련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차원’이 반드시 초월적이거나 해탈의 경지일 필요는 없다. 실제로 우연적인 효과를 염원하는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기존의 도덕적인 권위주의나 아름다움에 대한 선입관도 배제하고자 했다.
반복적인 행위를 통하여 ‘멍 때리는’ 상태에 도달하고자 한 유승호의 이번 개인전에서도 종교와 성이라는 테마가 부각되었다. <죽이도록 주기도문>에서와 같이 해탈의 경지에 해당하는 종교적 테마와 <머리채를 뒤흔들어>에서와 같이 강남의 뒷골목에 있는 ‘살롱’문화를 연상시키는 성적인 장면들이 조선시대 풍속화나 문인화를 연상시키는 수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와 같이 종교나 성을 무의식의 상태와 연관시키는 것은 이성적인 인식의 간섭이 배제된 엑스터시(ecstasy) 상태가 종교적인 행위나 성적인 관계를 가질 때 인간이 경험하는 정서적인 상태와 유사하다는 추측에서 나온 듯하다.
전시에서도 종교와 성이라는 상반된 테마가 나란히 소개되었다. 유승호 특유의 낙서 산수화 수법으로 그려진 <죽이도록 주기도문>에서 관객은 무엇보다도 작가가 글씨를 반복적으로 쓰는 과정을 상상하게 되고 이어서 의미 없는 글자들로 그득 채워진 화면을 보면서 엑스터시의 경지에 이른 작가의 창작과정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주기도문을 반복적으로 외울 때 우리의 의식이 몽롱해지는 것과 유사하다. 반면에 <머리채를 뒤흔들어>에서 즉흥적으로 그려진 선들과 소재를 통하여 엑스터시의 상태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즉 전자가 반복적인 과정에 의하여 유발되는 의식의 부재 상태를 노린 것이라면 후자는 결과로서의 ‘성’과 연관된 소재가 암시하는 이성과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쯤 되면 유승호의 작업에서 작가가 말하는 “멍 때리는 상태”가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되는지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화면을 그득 메운 글씨들은 작가가 무의식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극도의 반복적인 행위를 기록한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는 작가의 수고와 노력에 대하여 감탄하는 것 이외에 보다 적극적으로 작업과 지적인 교류를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또한 관객이 원거리에서 본 풍경과 가까이서 본 글씨들 사이의 괴리를 깨닫게 되면서 일종의 희열을 경험할 수는 있으나 이 조차 반복적일 수밖에 없다. 유승호 작업의 메커니즘을 아는 관객에게 그 희열은 한시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기도문과 <머리채를 뒤흔들어> 시리즈에서 보여준 해학적인 요소들은 소재를 통하여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문제는 개인전의 작업들이 장식적으로 변하면서 실상 멍 때린다는 느낌보다는 이전 작업들에 비하여 훨씬 의식적이고 명확하게 작가의 미적 취향과 기술을 드러내는 점이다. 자칫 흥미로운 강남판 조선 풍속화 정도로 여겨질 위험도 있다. 따라서 작가 스스로 반복적인 행위나 해학의 미를 즐기는 것만큼이나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와 구현방법을 고안했으면 한다. 올드 보이의 귀환에 앞서 더 많은 변신과 고민을 기대해 본다.

위 유승호 <죽이도록 주기도문> 종이에 잉크, 금박 2015

CRITIC 이예승 Moving Movements

갤러리 조선 6.3~30

유은순 미학

2012년 <CAVE into the cave>부터 지금까지 이예승의 작업은 디지털미디어와 오브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실체와 환영, 현실과 가상이 혼재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현실과 가상의 모호한 경계를 드러내왔다. 시각적 자극들과 정교하게 프로그램화된 이미지들에 우선적인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이예승의 작업은 주로 디지털미디어의 시각적 인식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갤러리조선에서 열린 최근의 개인전 <Moving Movements>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듯이, 그녀는 시각 중심적으로 발전해온 디지털미디어에 대한 촉각적(신체적) 체험의 가능성을 꾸준히 제시해왔다(그 시작은 2009년 <BI LIE F>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특히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좁은 계단으로 내려가 높은 천고와 마주하게 되는 갤러리 공간의 특성을 활용하여 사람의 머리보다 높은 위치에 벽을 관통하는 듯한 원형의 스크린을 설치하고, 프로젝터와 컴퓨터가 켜켜이 쌓인 미디어탑을 제작하여 전시장 중앙에 놓았다. 2013년 <CAVE into the cave전>(쿤스트독), <xLoop전>(갤러리루프) 등에서 선보인 작업들에서는 관객이 스크린과 먼저 마주하고 그 다음에야 스크린을 투영시키는 프로젝터와 오브제들을 발견하는 구조였다면, <Moving Movements>는 미디어탑이라는 묵직한 물질성과 먼저 마주한 다음 스크린을 보도록 구축되어 있다. 원형의 스크린이 작품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느슨한 기준이라고 볼 때, 이전에는 관객이 작품의 외부에 위치하여 스크린 주위를 돌며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관객이 이미 작품의 내부에 위치해 있다.
<Moving Movements>는 관객이 허상과 실체를 직접 찾아보도록 디지털미디어라는 마술상자의 내부로 초대한다. 이 마술상자는 상자를 구성하는 재료들 –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컴퓨터프로그램, 메인파워와 시스템 전선,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 사용된 장갑과 못까지 -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관객은 디지털미디어의 실체를 탐구하기 위해 마술상자 안에 발을 디딘 순간, 작품이 자신의 발걸음, 숨소리까지도 포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관객들은 외부와 내부의 구분마저 모호한 아이러니한 상황과 마주하고 평소 감각하지 못했던 것을 지각하기 위해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을 불러들여 작품을 탐색하게 된다.
대부분의 뉴미디어아트는 미디어의 신기술을 활용하여 매혹적인 이미지를 선보이면서 시각에 의존하여 작품을 감상하도록 관객을 유도하고, 미디어아트의 최전선인 인터랙티브아트의 경우에도 완성된 프로세스대로만 움직이도록 관객을 수동적으로 작품에 참여시킴으로써 작품과 관객을 구분짓는다. 그에 반해 <Moving Movements>는 작품과 공간, 작품과 관객이라는 구분을 없애고 작품과 공간, 관객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장을 제시한다. 이로써 관객은 온전히 독립적인 자아로서 대상과 자신을 분리시켜 작품을 감상하는 시각 중심적 주체가 아닌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 작품 전체를 몸으로 체험하는 촉각적 주체로 거듭난다.

위 이예승 <Moving Movements> 인터랙티브 설치, 두랄루민 아크 스크린, 마이크로 컨트롤러, 적외선 센서, 디밍 조명, 웹캠, 나무, 모터 2015

CRITIC 신건우 All Saints

갤러리 구 6.11~7.9

홍이지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회화작업의 수직적인 과정과 행위는 잭슨 폴록이 캔버스를 이젤이 아닌 바닥에 내려놓고 드리핑(dripping: 흘리기 기법)한 이후 그 이상의 가능성을 맞이하게 되었고, 평론가 로젠버그가 그의 작품보다 작업 과정 즉, 행위(doing)에 주목한 이래 회화의 가능성과 해석의 지평은 확장되었다. 물감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팔과 손목을 움직이며 시선을 옮겨가는 회화작업 행위 자체에 대한 ‘연극성’에 기반을 둔 해석은 과정과 시간성이라는 중요한 지점에 대해 다시금 주목하게 된 것이다. “캔버스 프레임 위에 물감을 던져 조각한다”(작가 인터뷰 중)는 작가 신건우는 회화 즉, 평면작업과 부조 형태의 조각을 한 프레임 안에 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반항적인 제스처와 전통적인 매체의 특성, 그 경계를 건드리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대개 조각을 전공한 작가들은 ‘만들기’와 입체에 대한 갈망을 쉽게 놓지 못하는 듯 보인다. 이는 신건우의 작업 과정에서도 드러나 있는데 조각을 전공한 그는 부조라는 형식을 빌려 프레임 안에서 내용을 구성, 밑그림을 그려내고 부조 조각을 만들어 붙인 후 다시 채색의 과정을 거쳐 완성시킨다. 이 과정에는 회화의 그리기와 조각의 만들기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신건우의 작업이 흥미로운 것은 매체적 특성과 그 혼성적 작업 과정이 한 화면에서 구성된다는 점도 있겠지만 그의 작업에는 그 가능성 안에 이쪽도 저쪽도 아닌 불안정한 그 ‘사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다. ‘조각’과 ‘회화’의 방법을 한 화면에 배치하고, 종교적인 제단화나 삼단화 등의 형식을 차용하여 함께 섞이기 힘든 극단적 요소를 뒤섞어버림으로써 그의 작업은 미묘한 지점에 놓이게 된다.
이번 전시 <All Saints>에서 선보인 작품 <Hiatus(틈)>은 대칭적이고 이질적인 둘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고 애를 쓰는 본능을 보여주려는 동시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중심을 과감하게 제거함으로써 그 균형은 무엇을 위한 노력이었고,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읽어나가야 하는지, 애초에 그것은 존재했는지를 되묻게 된다. 최근 일어난 사건들에서 보이듯 근본적인 문제를 밝히려는 질문이 사실 그 대상이나 주체가 없는 허무한 메아리로 돌아온 아픈 기억을 떠올려 보면, 우리는 그가 작업의 주제로 삼은 사건과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건드리며 ‘개인’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로 만들어가는 순간과 그 과정을 통해 동시대성을 취득한다. 이 부분은 그의 작업 매체가 시간성을 담보로 동시대성을 띠는가 혹은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라는 질문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는 부조작업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부조 작업 외에도 기존에 진행해왔던 알루미늄 평면작업과 입체작업이 묵직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일련의 시간성과 새로운 공간성을 확보하고 관람객에게 보다 확장된 감상의 즐거움을 준다.
예술에 정답이 없고 우리의 삶이 흑백논리로 얘기할 수 없듯이 20세기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회화의 죽음과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제 새로운 해석과 그 다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크 로스코가 스티브 잡스와 함께 소비되는 오늘, 신건우의 전시는 그 틈 사이에서 부유하며 개인의 이야기와 생경함이 만나는 순간을 제공한다.

위 신건우 <Sandymount shore 8pm> 혼합재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