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미술전문지 기자란?

특집 제목을 결정하느라 마감 막바지까지 고심했다. 이슬비 기자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서 ‘자본주의-신자유주의 그리고 예술의 딜레마’라는 타이틀을 뽑아냈다. 딜레마라는 말처럼 이번 특집은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내용 전체를 차분히 곱씹으며 읽어 내려가야 비로소 그 의도가 조금씩 파악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처럼 이슬비 기자는 이번호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이런 성격의 특집을 여러 차례 제안하고 만들어 냈다. 가깝게는 2014년 3월호 <샤먼으로서의 예술가>, 6월호 <예술에서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11월 <이것은 여행이 아니다> 그리고 2015년 5월호 <시선의 정치, 동물원을 다시본다> 등이 좋은 예다. 무엇하나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것이 없다. 흡사 막연해 보이거나 어마어마한 거대담론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슬비 기자는 이런 주제에 겁 없이 도전한다. 그리고 결국 곰삭은 결과물을 내놓는다. 바로 이런 점이 이슬비 기자의 차별화된 능력이자 장점이다. 아무튼 나는 이번 특집을 보면서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고 외쳤던 체 게베라(Che Guevara, 1928~1967)가 불현 듯 떠올랐다.
한편 《월간미술》은 지난달 수습기자 한명을 새로 채용했다. 응모한 수십 명의 지원서류를 봤다. 기본적인 신상명세가 담긴 이력서와 A4 두 장 분량의 자기소개서 가운데 이력서를 먼저 대충 훑어봤다. 우열을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지원자 대부분은 석사학위 이상의 고학력자였고, 요즘 말로 ‘스펙’도 빵빵하고 경력도 화려했다. 심지어 ‘수습’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과분한 이력의 소유자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아주 꼼꼼히 읽었다. 객관적 사실과 정보만 담긴 이력서만으론 변별성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소개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기계로 찍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글쓰기 형식이나 내용이 대동소이했다. ‘대치동 논술입시학원에서 이런 걸 가르치나?’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이런 자기소개서를 읽으면서 자칫 현란한 글재주에 홀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행간에 담긴 진정성을 간파(看破)하려 애썼다.
서류심사를 거치고 면접까지 통과해서 곽세원 씨가 수습기자 최종 합격자로 선발됐다. 곽세원 씨는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썼다. “미술기자는 큐레이터와 비평가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많은 직업이 기계나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뉴스를 접하지만, 인간의 ‘감성’을 다루는 일, 즉 ‘예술’은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결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숭고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다루고 전달하는 ‘미술기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험난한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은 초짜 수습기자가 부디 초심을 잃지 않기 바란다.
이번호부터 새로운 모니터 요원의 의견이 실린다. 따끔한 충고와 냉철한 비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격려와 조언을 기대한다. 2015년 4월호부터 올 3월호까지 1년 동안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해 준 6기 모니터 네 분, 배정인 이강호 이병일 홍지수 님께 이 자릴 빌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COLUMN

뉴(디지털) 미디어아트 시론

뉴미디어 작가 클레멘트 발라의 <Postcards from Google Earth>(2010-) 프로젝트 이미지 중 하나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외곽지역 교량들의 모습인데 한결같이 올록볼록한 것이 요철이 많은 도로처럼 보인다. 실제 교량이 저런 형태로 존재한다면 문제가 심각할 것이다. 작가는 2010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디지털 매핑을 통해 2차원으로 구현된 지구 표면을 훑어나갔다.
그리고 어딘가에 존재하는 구글어스의 ‘오류’들을 찾아내어 아카이브해왔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알고리즘의 오류 혹은 프로그램 오작동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언뜻 글리치 현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구글어스의 알고리즘과 프로그램 실행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구글어스가 위성으로부터 받은 데이터의 양이었다. 특정 지역에 구글어스 알고리즘의 데이터 처리능력을 초과하는 방대한 데이터가 제공되다 보니, GPS 데이터와 위성사진 이미지가 매핑되는 과정에서 현실에서는 멀쩡한 교량들이 엿가락처럼 휘거나 늘어진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작가의 집요한 추적의 결과들은 하이퍼-리얼한 재현이 붕괴되는 순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보는 이의 지각이 당혹스러운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인 것이다.
최근의 뉴미디어 아트 작가들은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이 실행되는 과정을 역이용함으로써, 관찰과 데이터 수집의 대상을 프로그램 자신으로 역전시켜버린다. 프로그램이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타자화함으로써 관찰 대상으로 인지하고, 프로그램 자신이 목적 수행의 대상으로 역설정되는 것이다. 스털링 크리스핀의 <Data Mask>(2013)는 유전 알고리즘이 안면인식 알고리즘을 충족시킬 때까지 무작위적으로 얼굴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알고리즘에 의해 인공적으로 생성된 얼굴이 기계의 눈에는 얼굴로 인식됐지만, 인간의 눈에는 전혀 얼굴처럼 보이지 않았고 울퉁불퉁한 얼굴 표면은 오히려 괴기스러운 가면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테크놀로지가 구현되는 프로세스를 실험적으로 다룸으로써 테크놀로지의 모순과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예상치 못한 전혀 새로운 이야기들이 갑론을박처럼 오가는 ‘장(場)’이 형성되는 것, 이것이 최근 뉴미디어 아트의 특징이다.
뉴미디어 작가들에게 시스템 오류나 에러,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의 불완전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연계된 담론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글리치 미학의 경우 의도적 혹은 우연적으로 발생한 디지털 에러들을 실패로 간주하지 않고, 오히려 테크놀로지의 내밀한 속성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 또한 글리치로 인해 파괴되고 변질된 데이터는 예술가에 의해 사운드, 웹, 이미지, 비디오, 실시간 오디오, 비디오 퍼포먼스 등을 위해 재가공된다. 1997년 IBM의 슈퍼 컴퓨터 ‘딥블루’가 카스파로프와의 체스 대결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대결 중 딥블루에 발생한 글리치 현상 혹은 프로그램의 버그 때문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WIRED》, 2012년 9월) 테크놀로지 그리고 뉴미디어 아트 사이의 실험적인 매칭과 그 결과들이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누구도 매체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으며 결과도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공보다는 실패, 결과보다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테크놀로지와 뉴미디어, 디지털 아트 주위의 담론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이유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긴밀하게 연결된 최근의 뉴미디어 아트는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어떤 예술매체보다 중요하다. 온라인의 수많은 이미지 파일은 어딘가의 서버에 저장되어 있어 개인의 블로그나 웹페이지로 링크시켜 사용하곤 하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링크는 늘 불안하기만 하다.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디지털 아트를 컬렉션하고 아카이브하고 있지만, 동시에 디지털 아카이브와 보존 프로세스 및 플랫폼 개발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병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는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를 아카이브와 보존 속도가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술품 보존 전문가뿐만 아니라, 엔지니어(하드웨어)와 프로그래머 (소프트웨어)의 협업 없이는 아카이브와 보존 프로세스 개발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큐레이터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히트를 비롯해 최근 활발하게 활동 중인 큐레이터와 디렉터들이 주목하는 현상이 있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젊은 작가들이 테크놀로지 및 뉴미디어 아트와 교감하고 반응하여 보여줄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그것이다. 꼭 테크놀로지나 뉴미디어 아트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20여 년 동안의 삶에 함축된 디지털 세포들이 인문학, 사회과학, 기초과학, 공학, 의학, 음악 등 장르와 매체를 불문하고 어떻게 진화해 나갈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배남우 APAP(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위 클레멘트 발라(Clement Valla) <Postcards from Google Earth> 2010~

EDITOR’S VIEW

염치

한참 쓴 글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몇 번째.
그날 기자는 취재를 위해 이동 중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사고가 일어났음을 전해들었고, 분명히 구조 작업을 벌여 인근 항구로 이송 중이라는 보도를 접했다. 그냥 아무 일도 아닌 듯, 그냥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취재에 나선 것으로 기억한다. 2년이 지난 지금, 300명이 넘는 이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선생, 누군가의 친구….
일면식도 없고, 인연을 맺은 이도 없지만 어디서 그저 스쳐 지나며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던 이들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 전시장에서 관람객으로 만났을 수 있었을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사진으로만 미술관 앞에 있는 분향소에서나 만날 수 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의 밑바닥을 봤다.
살아있는 자들의 세치 혀로 누군가는 망자와 그 유족을 모욕했다. 누군가는 그럴 듯한 말로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음에 수렴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발언은 정치적이라고 했고, 위로는 배와 함께 침몰했다.
그러니 애당초 망자와 유족을 위로한답시고 허락된 지면에 이 글을 쓰는 것부터가 무리였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경기도미술관 앞 분향소를 다시 본다.
2주기 추모전은 <사월의 동행>(경기도미술관, 4.16~6.26)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황석권 anarchy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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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적률 게임

원고 청탁을 위해 리슨투더시티 박은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가는 지금 옥바라지 골목에 철거가 진행돼 내일 통화하자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최근 리슨투더시티는 지역 주민, 예술가들과 함께 옥바라지 골목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우연찮게 이번 호에 소개되는 작가 이정배의 <씨앗 프로젝트>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1908년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서대문형무소는 독립투사들이 모진 고문 속에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했던 곳이자,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많은 민주화 열사들이 수감되어 고난을 치른 곳이다. 이들의 가족들은 형무소 맞은편 자리에서 옥바라지하며 그들과 함께 고통과 설움을 나누었다. 바로 그 장소가 옥바라지 골목이다.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이 골목에는 100년 가까운 세월과 수많은 이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며칠 전 방문한 옥바라지 골목은 을씨년스러웠다. 아파트 재개발로 철거가 예정된 이 구역은 현재 대부분 빈집으로 곳곳에 출입금지 띠가 둘리어 있었다. 하지만 18가구 약 40여 명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재개발 반대 여론을 수용해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재개발 조합과 종로구가 이에 반발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이번 5월 28일부터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의 주제가 ‘용적률 게임’으로 정해졌다. 용적률은 대지 면적에서(지하 제외) 건물 각층의 면적을 합한 총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용적률은 건축물이 높아질수록 늘어나는 수치다. 최근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에 들어설 현대자동차 신사옥의 높이가 105층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고층인 123층의 롯데월드타워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어마어마한 높이다. 서울시가 용적률을 800%로 올려준 대가로 현대차로부터 1조7000억 원을 기부받는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땅의 효율성을 따지자면, 땅값이 올라갈수록 용적률 싸움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적 가치도 현재 롯데캐슬 아파트 네 동과 저울질 중이다. 씁쓸하지만 용적률 게임은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이슬비 drizzles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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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이미지

ⓒBen Gillin

그림으로 말해요

지난 해 말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Face with Tears of Joy)〉이었다. 얼굴 표정을 설명하는 이 표현이 한 해 동안 사용이 크게 급증하거나 이슈가 된 단어로 선정됐다니 어딘가 미심쩍다. 그러나 이 단어를 표현한 그림문자를 보면, 누구나 ‘아하!’하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다. 픽토그램의 하나인 이모지(Emoji)가 언어표현으로 인정된 이 사례는 ‘문자’의 범주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겐 ‘이모지’보다 ‘이모티콘’이란 말로 익숙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모티콘이 부호를 조합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면 이모지는 그림문자에 가깝다. 스마트폰 사용으로 메신저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긴 문장으로 적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단순한 아이콘을 한 번의 터치로 표현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국내 메신저 카카오톡에 따르면 매월 카카오톡 사용자들이 메시지에 주고받는 이모지 수는 약 20억개라고 한다.(《앱스토리》 2016년 2월호 참조) 엄청난 수치가 증명하듯 이모지는 어느새 생활 속 문자가 되었다. 공산품이 된 이미지에는 개성이 드러나는 글의 뉘앙스는 없다. 그러나 그림문자는 계속해서 알파벳을 확장하고 있다.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메신저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이모지 사용을 넘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기도 한다. 간혹 이모지를 직접 제작하는 경우까지 있다.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이모지 폭이 넓어지면서 그림문자는 점차 일차적이고 단순한 표현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최근 미국의 웹디자이너인 벤 길린(Ben Gillin)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소재로 한 이모티콘 킴은지(Kimunji)를 제작해 무료 배포했다. 언뜻 정치적 풍자로 보이지만 실상 그의 화살은 “미국 헐리우드의 모델 겸 배우인 킴 카다시안의 엉덩이 등 신체 부위를 500여개의 이모지인 ‘키모지(Kimoji)’에 열광하는 대중에게 있다. 언어유희를 통해 만들어진 이 이모지는 정치인과 연예인을 연결해 놀이를 제공함과 동시에 가벼운 사회적 풍자를 제시한다. 깊고 무거운 장편의 비평문에서 짧은 단상을 적는 SNS의 글을 넘어 이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기 표현이 이뤄진다.
임승현 shlim987@gmail.com

 

HOT ART SPACE

세종대왕 창공에 띄우다
광화문 세종대왕상 3.24~4.14

김영원 홍익대 명예교수가 제작한 세종대왕상은 현재 광화문광장에 설치되어 일반인을 만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존경을 받는 세종대왕의 업적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벽안(碧眼)의 작가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카스텔바쟉은 세종대왕에 경의를 표하며 오마주 형식의 작품을 설치했다.
이 작품은 세종대왕상을 중심으로 육면체의 네온프레임을 싸고 각 귀퉁이에 ‘눈을 떠라’ ‘행동하라’ ‘사랑하라’ ‘꿈의 날개를 펼쳐라’는 의미를 담은 상징물을 설치한 것. 작가는 세종대왕상이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3월 24일 열린 점등식에는 작가와 김영원 교수, 그리고 장 마크 에호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참석, 그 의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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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기_313 (4)

박선기 개인전
313 아트 프로젝트 3.10~4.8

‘Reflection-色卽是空(리플렉션-색즉시공)’이란 제목으로 갤러리 1층 전면에 깨진 거울 조각 뒷면에 아크릴 물감을 칠한 신작을 선보였다. 이와 함께 전시장에 숯 조각으로 통로를 만들어 사색의 공간을 조성했고, 광섬유를 이용한 조각 등 다양한 작품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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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메 (1)

이은숙 개인전
블루메미술관(BMOCA) 3.12~6.19

작가 이은숙은 가족과 남북관계를 주제로 오랜 시간 작업해왔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는 개인의 이야기로 이 두 주제는 작가에게 동량의 거리와 무게를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블랙라이트에 반응하는 형광실을 투명 상자에 담아 일상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나타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베를린 에서 선보였던 작업을 미술관 내에 재구성해 보여준다. 또한 관객이 형광실을 끊어 직접 꾸밀 수 있는 참여형 작업도 함께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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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서(書)로 통일(統一)로-통일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3.1~4.24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1년 4개월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했다. 이 전시는 재개관을 맞아 준비한 특별전으로 서예와 미술이 만나 통일논의의 한 획을 그으려는 기획 의도를 갖고 있다. 리모델링을 거쳐 두 배로 커진 전시공간에 1만여 명의 서예가와 최정화 박기원 서용선 조민석 등의 작가가 참여하여 ‘망국: 독립열망’ ‘분단:통일염원’ ‘통일:세계평화’라는 3개 섹션으로 나뉜 전시공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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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림 (1)

김구림 퍼포먼스-〈현상에서 흔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조각공원 4.11

46년 전 김구림은 한강 살곶다리(한양대에서 뚝섬 방향) 근처 둑방에 총 길이 400m, 폭 22m에 달하는 잔디밭을 삼각형 형태로 태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1970.4.11) 우리 나라 초기 아방가르디스트의 면모를 보였던 이 퍼포먼스는 “예술의 비물질화 제시” “대지미술 개념의 발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 30주년을 알리는 첫 이벤트로 김구림의 이 퍼포먼스를 야외 조각공원에서 재현한 것은 그래서 매우 의미 있다고 하겠다.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총 길이 32m의 잔디밭에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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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 (1)

빨주노초파남보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 3.2~7.24

봄을 맞아 어린이를 위한 전시가 줄을 잇고 있다. 이 전시는 색채의 형식과 내용을 실험하며 색 자체를 작업의 주제로 삼은 박미나 작가가 참여, 색을 매개로 한 감상 경험을 제공하고 색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린이들이 색에 대한 미술적, 과학적 경험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전시장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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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 (1)

East Bridge 2015-2016_Plastic Garden
토탈미술관 3.17~4.24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유현석)과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회장 왕옌링)가 2014년부터 해마다 개최해온 〈East Bridge전〉. “문명의 기록은 곧 야만의 기록”이라고 한 발터 벤야민의 말에서 영감을 받아 ‘Plastic Garden’이라는 주제를 설정했다. 양국의 작가 10명이 참여해 신자유주의 체제로 넘어오면서 경험한 현실적 무력감, 정신적 공허와 같은 상실감을 담은 회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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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BEUYS- NAM JUNE PAIK
갤러리 토마스 모던(Gallery Thomas Modern) 2.19~5.7

향년 74세의 나이로 2006년 1월 29일(한국시각 1월 30일) 미국 플로리다 자택에서 타계한 백남준. 그의 타계 1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여러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백남준의 예술적 동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요셉 보이스가 세상을 떠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해 독일 뮌헨에 있는 갤러리 토마스 모던(Gallery Thomas Modern)에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뜻 깊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2월 19일부터 5월 7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 김순주(베를린 B/S 쿤스트 라움 디렉터)가 기획에 참여했다. 뮌헨은 1956년 24세의 백남준이 음악사와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유학 와서 처음 도착한 곳으로, 요셉 보이스를 비롯한 ‘플럭서스’ 활동의 주요 무대였던 도시다. 전시 오프닝에선 생전에 백남준이 주장했던 ‘비빔밥 정신’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에서 참석자에게 비빔밥이 제공됐다.

HOT PEOPLE 최재은

“DMZ라는 추상적인 공간”

올해 5월 28일부터 11월 27일까지 열리는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 최재은이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참여한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은 칠레 출신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가 총감독으로 선정됐으며, 주제는 ‘Reporting from the Front’로 정해졌다. 출품작은 최재은이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반 시게루와 협업한 <夢의 庭園(Dreaming of Earth)>이다. 건축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 설치 및 영상, 슬라이드, 문서 등의 아카이브 형식으로 구성된다고. DMZ(비무장지대)내 13개의 공중정원과 군사분계선 근처에 높이 20m의 전망대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작품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최재은 작가를 만나 출품작과 전시 참여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DMZ의 생성 과정에 대한 아카이브를 제작할 예정입니다. 러일전쟁부터 역사 공부를 했는데 우리가 현재까지도 이렇게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나 싶어서 좀 슬픈 감정이 들더군요.” DMZ에 대한 역사공부를 통해 작가가 느낀 감정이 ‘슬픔’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식민지배, 광복, 전쟁으로 이어진 한국의 역사와 그 역사의 결과물로서 DMZ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는 점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최재은 작가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은 ‘몰입’이라고 했다. 다른 역사와 문화권에서 성장한 작가와의 협업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DMZ가 분단의 상징보다는 생명의 보고라는 점을 더 선명히 드러내고 싶은 욕심이 터 컸겠다는 것이 그와의 대화에서 느낀 점이다. “DMZ는 치열한 공간이에요. 남북이 70년 가깝게 서로에게 적의(敵意)의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잖아요? 정말 ‘징그럽고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실이에요.” 서로에게 고정된 시선은 그 주변을 돌아볼 수 없게 한다. 최재은 작가는 그래서 이번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을 들여다볼 것을 주문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현실인 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의 구체적인 면모를 들여다봐야 해요.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일도 알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DMZ는 굉장히 추상적인 공간이에요.”
황석권 수석기자

6_Biennale plan by Jae Eun Choi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설치 작품 스케치. DMZ프로젝트 실물의 1/200 규모로 설치될 예정이다 (Courtesy of the artist 국제갤러리 제공)

 

HOT PEOPLE 안혜령

공격적으로 달려온 리안갤러리 10년

23년여간 컬렉터로 활동해오던 안혜령 대표. 그가 대구에 있는 시공갤러리를 인수해 2007년 3월 리안갤러리를 개관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컬렉터였던 그가 갤러리 오픈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시공갤러리 폐관을 아쉬워한 대구지역 미술 관계자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2007년 10월 리안갤러리 창원에 이어 2009년 11월에는 미술시장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서울 청담동에 LEEAHN on road 공간을 마련해 대구에서 전시 중인 작가와 작품을 홍보했다. 이어서 2013년 1월에는 경복궁 옆 서촌 문화지구에 리안갤러리 서울을 신축, 개관해 규모를 확장했다. 그렇다고 갤러리의 거점을 서울로 완전히 옮긴 것은 아니다. 안 대표는 “대구에는 그림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공부를 많이 하는 컬렉터가 많다. 그분들이 갤러리를 운영하는 데 큰 힘이 된다”며 대구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였다. 그동안 전시했던 작가들의 작품 및 소장품(데이비드 살르, 앤디 워홀, 키키 스미스, 데미안 허스트, 알렉스 카츠, 프랑크 스텔라, 백남준 등)으로 구성된 〈10주년 기념전〉(리안갤러리 대구, 3.2~4.15)이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열린다는 점 역시 대구를 향한 그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트바젤 홍콩〉 참가준비로 바쁜 와중에 기자와 만난 안 대표는 화랑을 운영하며 그간 겪은 어려움에 대해 “오픈 당시 해외 유명 작가의 전시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엄청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랑 한 장뿐이다. 그만큼 우리의 신용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하며 리안갤러리를 향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안 대표는 “지금까지 갤러리를 알리는 데 주력했지만 앞으로는 전속 작가들을 꾸준히 늘려갈 계획”이라며 “‘좋은 작가를 양성하는 갤러리’ ‘작가들이 전시하고픈 갤러리’라는 평을 듣고 싶다. 리안갤러리 출신 작가들이 해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밝혔다. 이제 리안갤러리는 세계 주요 갤러리 대표 및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들려야 하는 곳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됐다. 이에 걸맞게 해외 주요 아트 페어에도 꾸준히 참가해 한국 작가들의 국제무대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갤러리 운영의 원동력으로 꼽은 안 대표와 리안갤러리의 향후 행보를 기대해본다.
곽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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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린 〈10주년 기념전〉(3.2~4.15) 전시광경

 

HOT PEOPLE 임근우

072-075 핫피플-최재은 리안 임근우(엡손)ok

위에서부터 시계방향 국립춘천박물관(3.7~4.3) 춘천문화예술회관(3.7~3.18) KT&G상상마당 춘천(3.7~4.6)갤러리 4F(3.7~4.6) 춘천문화 예술회관(3.7~3.18) 전시전경

〈임근우의 ‘춘천 고고학적 기상도’ 5色〉

선사고대문화의 현대적 재해석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영감을 받아 고고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작업세계를 펼치는 작가 임근우가 그의 고향인 춘천에서 대규모 전시를 이어간다. ‘춘천의 선사 고대문화, 예술로 꽃피우다’라는 주제하에 열리는 〈임근우의 춘천 고고학적 기상도 5色전〉은 춘천지역 박물관 미술관 및 갤러리 등 무려 5곳에서 동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한 작가의 작품 300여 점을 한 번에 만나 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로 조명 받고 있다. 이에 전시장을 찾는 관객이 많은 토요일(3.26, 4.2)에는 아트투어 셔틀버스를 운행해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하고 5곳에서 연이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행사도 진행한다.
규모가 가장 큰 전시는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열렸다. 작가는 춘천에서 출토된 선사 고대 유물이 설치된 상설전시장에 춘천의 대표 청동기 마을인 천전리를 탁본한 그의 작품 〈천전리 평면도〉(1994)를 배치한다거나 도기 조각을 사용해 오브제를 중첩시키는 작업을 선사시대 도기와 함께 배치해 현대미술과 고대 문화유산의 협업을 이뤄냈다.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는 임근우의 초기작을 포함한 대형 회화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춘천미술관에서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상암경기장에 설치한 작품인 〈다리 밟기〉를 공간에 맞게 재설치하는 등 설치작품과 아카이빙 자료를 중심으로 전시를 꾸몄다. 다른 두 곳은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의 회화와 조각을 밀도 있게 관람할 수 있다. 임근우는 춘천 지역의 중도, 신매리, 천전리나 전곡리 등 고고학 발굴 현장에 직접 참여하며 옛것과 현재가 만나는 환경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25년간 〈Cosmos-고고학적 기상도〉라는 제목을 모든 작품의 명제로 삼았다. 이를 통해 흘러간 시간을 발굴 및 조사하는 고고학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예측하는 기상도를 연결해 현재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인류학적 상상의 시간을 제공해 일종의 시공간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임근우는 1958년 태어났으며 서울, 춘천, 부산, 바르셀로나, 베이징 등에서 총 42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1994년 MBC미술대전 대상, 1995년 제14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춘천=임승현 기자

 

SPECIAL FEATURE 자본주의-신자유주의 그리고 예술의 딜레마

The Soul of Money DOX. Foto Jan Slavik 08

프라하 DOX 현대미술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돈의 영혼> 전시 광경 2016 ⓒ DOX. Photo: Jan Slavik 호세 마리아 카노(Jose Maria Cano)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맨 왼쪽) 캔버스에 납화 187×532cm 2013

자본주의 돈의 민낯

박진아 미술사

지난 2011~2012년 피렌체 팔라초 스트로치에서는 <돈과 아름다움-은행가, 보티첼리, 허영의 모닥불>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창조된 미술과 아름다운 도시와 문명의 뒤엔 돈과 권력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줬다. 지난해 독일 드레스덴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죽은 자들의 슈퍼마켓전전>(2015.3.14~2015.6.14)은 상품을 향한 현대인의 열망을 물신주의라 꼬집었다. 최근에는 독일 바덴 시립 쿤스트할레에서 <좋고도 나쁜 돈-그림역사로 본 경제(Gutes boses Geld)전>(3.5~6.19)이 개막해 고대부터 현재까지 돈이 미술작품 속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같은 추세를 몰아 올 초 체코공화국의 프라하 DOX 현대미술센터(DOX Center for Contemporary Art)에서 개막한 <돈의 영혼(The Soul of Money)전>(2.19~6.6)은 현대인에게 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주제로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한다.
체코인들은 그들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웅장한 이데올로기와 거창한 구호는 매번 외부 침략자들이 지배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쓴 거대한 속임수였음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현대미술센터의 설립자 겸 관장인 레오쉬 발카(Leo? Valka)는 미술관 이름을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한 어휘인 독사(doxa)-또는 억견(臆見) 즉, 아무도 반문하지 않고 맹종되는 여론이나 신념-에서 따와 독스(DOX)라 짓고 미술전시회를 통해 우리 안의 억견을 뒤흔들고자 한다. ‘돈의 영혼’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에서는 돈이라는 억견을 현대미술 작품들을 통해 조명한다.
과거 유럽의 교권과 궁정 권력자들을 위한 미술에서 나치, 공산주의를 위한 구호와 프로파간다로서의 미술은 모두 권력에 봉사하는 수단이었다. 근대가 동트던 1903년 빈 합스부르크가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중유럽권 최초의 공공 미술관인 근대갤러리(Moderne Galerie)를 프라하에 설립했다. 오랜 절대주의 통치에 반발하며 유럽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불거지던 당시, 신세계의 신시대를 준비하며 근대적 개념의 미술관과 화랑을 설립해 문화로 여러 민족과 국가를 달래고 아우르려는 소프트파워 정책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 보건대, 인생의 당연지사이자 만능 해결사인 돈을 주제로 한 도전적인 미술전시가 등장한 배경에는, 체코가 지난 한 세기 지구상에서 벌어진 온갖 이데올로기, 정치 체제, 국경 변화의 격동과 수난을 겪으며 헤쳐온 저력이 지탱하고 있는지 모른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패망과 함께 합스부르크 제국이 붕괴되자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해 그 공백을 메우면서 나치가 침략한 1938년까지 20년 동안 독립을 누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체코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로 다시 편입됐다. 1989년 동서독의 통일과 함께 슬로바키아와 분리된 후 다시금 중유럽권 독립국가로서 서방세계로 진입한다. 이렇듯 숨 가쁜 근현대 역사를 경험한 체코 공화국은 근대기 공산주의 체제의 유산을 안은 채 2004년부터 유럽연합 정치체제 및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사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미술은 창조되고 존재한다. 하지만 그 미술이 교환의 일부분이 되려면 가격이 매겨져야 한다. 미술작품의 가격은 신념, 협상 그리고 어느 정도의 조작의 결과이며 그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해 미술전문가, 딜러, 화랑업자, 큐레이터, 경매인 같은 중개인이 활동한다. 여전히, 아니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미술관 기관과 화랑업계 대다수는 미술시장에 참여하거나 기업의 후원에 의존하며 돈에 대한 억견에 힘입어 작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덩달아 문화계에서도 돈은 막강한 권력으로 세도를 부린다. 19세기 후반 낭만주의와 더불어 교권과 궁정 귀족에 봉사해 오던 유럽 미술은 드디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새 기치 아래 권력자에게 봉사하는 미술을 접고 미술가 개인의 자율성과 자발적인 창조력을 주창했지만, 여전히 미술가들은 돈을 가진 후원자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돈이 그 누구도 의문시하지 않는 만능 수단이 된 오늘날, 미술 역시 많은 돈을 가진 자에 봉사하는 시녀로 전락한 게 아닐까? 미술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미술작품에 매겨진 가격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권력자 후원의 수혜자였던 근대기 이후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치던 미술가의 위상은 달라졌나? 미술작품에 붙을 가격표는 미술가가 아닌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지 않은가?
2008년 10월 공식 개장하여 대중관객에게 문을 연 DOX 현대미술센터는 프라하 남동쪽을 끼고 흐르는 블타바 강가 홀레소비체(Hole?ovice)라는 교외에 위치해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지어졌다 폐허가 된 옛 공장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이 미술관 근처에는 프라하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프라하 국립미술관(Narodni galerie v Praze)이 자리해 있기도 하다.
DOX는 벌써 지난 몇 년 홀레소비체 구역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추세를 이끌며 특히 문화와 영미권 신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오가는 새로운 힙스터 구역으로 탈바꿈했다. 글로벌 표준형 인테리어로 꾸며진 카페에서는 커피체인 스타벅스와 진배없는 미국풍 커피와 분위기를 팔고, 거리 매장에는 세련된 패션 부티크, 서점, 작은 공연장,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들이 속속 들어서며 문화 소비욕구에 맛들인 젊은이들과 해외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다. 황량히 버려졌던 과거 제국시대의 허름한 공장 건물들은 냉전기 공산주의 시대엔 노동자들의 일터가 되었다가 이제 21세기 미술문화가 기획되고 전시되는 미국식 글로벌리즘 ‘문화 공장’으로 다시 한 번 재탄생하며 호불황이 교체하는 불변의 경제 순환(boom and bust cycle) 원칙과 교훈을 상기시킨다.
<돈의 영혼전>은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이 정의한 돈에 대한 세 가지 시점을 빌려, 즉 첫째 돈을 상업적 용도와 숭배의 대상으로 보는 실리적 시각, 둘째 돈이란 노동의 양을 환산한 심볼이라 여기는 고전 정치경제학적 시각, 셋째 상품의 가격은 장내 공급과 수요의 반영이라 여기는 신고전주의적 시각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작가 호세 마리아 카노(Jose Maria Cano)는 캔버스에 왁스를 발라 제작한 초대형 10파운드짜리 영국 지폐 속에 묘사된 영국 여왕의 두상은 환상적으로 반짝이며 비록 한 장의 종이로 보일지 언정 돈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숭배의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런가 하면 동독 출신의 큐레이터 겸 컬렉터인 볼프강 셰페(Wolfgang Scheppe)가 직접 기획하고 전시한 설치작 <죽은 자의 슈퍼마켓(Supermarket of the Dead)>은 돈과 럭셔리 상품을 향한 중국인들의 못말리는 물신주의(fetishism)와 무분별한 소비주의를 꼬집는다. 동경하는 물건 모양새를 금은종이로 만들어 태워 날리며 죽은 조상들에게 부와 태평을 빌던 고대 중국문화를 조상숭배와 물신주의의 결합이라 해석한다. 원래의 역사적 맥락은 무시한 채 조악해 보이는 프라다 구두, 삼성 텔레비전, 애플 컴퓨터, 말보로 담배갑, 현금 꾸러미 종이 모형들을 진열해 놓은 싸구려 슈퍼마켓 설치에 마르크스주의 물신론을 적용해 타문화의 제례 문화를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한 산물에 불과하다고 손쉽게 결론내린 것은 아닐까?
한 장의 종이 위에 미술과 돈의 관계도를 그린다 치자. 그 두 요소 간의 관계선은 흔히 깔끔한 직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정치판에서 회자되는 고전적인 농담도 있듯이, 정파란 모름지기 아무도 모르는 제일 복잡한 선이라고 했다. 미술과 돈을 잇는 선도 그에 못지 않게 꼬불꼬불하고 복잡하다. 미술과 돈의 연계는 바로 권력과 정치를 재료로 삼아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메커니즘을 일찍이 깨닫고 어떤 미술가들은 일찍부터 미술시장의 원리를 이용했다. 바로크 시대 거장 피터 폴 루벤스는 일찍이 공장형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그림을 대량 생산했고, 이후 앤디 워홀은 팩토리에서 미술품을 대량 생산해내며 “돈을 버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하지 않았던가. yBA 데미언 허스트는 2008년부터 화랑업자의 중개매매 단계를 끊고 컬렉터와 직접 거래를 시도해 화재를 모았다.
이번 전시에서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 표지 로고를 크게 확대한 그림을 선보인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카노는 이미 지난 2008년 <자본주의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Capitalism!)> 제하의 DOX 창립 기념 전시회에 초대되어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초상을 왁스 엔코스틱 기법으로 그린 회화로 주목받았다. 때마침 바클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국빈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카노의 오바마 초상화를 선사했고, 그 사건을 계기로 카노는 별안간 작품 당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인기화가가 되었다.
카노는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초상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대로 도용해 자기가 그린 초상인 양 전시하고 이 초상화를 그린 <월스트리트저널> 소속의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인용한 사실은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은 상태다. 신문이나 화폐 속의 시각 콘텐츠는 공유물인가? 그렇다면 표절과 인용의 경계는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미술작품에 대한 가격 책정은 정치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뿐만 아니라 미술관 기관은 현대미술가의 직업적?경제적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제도권임을 재입증한 미술계 뒷이야기임에 분명하다.
루마니아 출신 작가 단 페르조브스키(Dan Perjovschi)는 사소한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세상사나 고정관념을 만화풍 드로잉으로 풍자하는 화가로서 특히 최근 유럽 미술계에서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장 내 흰색 벽면을 스케치북 삼아 글로벌 시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뒷받침된 금융 체제의 부조리를 꼬집은 수많은 드로잉을 선보인다.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변형(morph)되는 드로잉 속 형상들을 통해서 페르조브스키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규칙과 법안을 바꾸는 것도 마다않는 무자비한 국제 금융시장의 메커니즘을 은유적으로 꼬집는다.
페루 출신 설치작가 호타 카스트로(Jota Castro)에 따르면 그러한 금융시장의 조작 결과는 죽음뿐이라고 암울한 결론을 내린다. 예컨대 그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설치물 <모기지(Mortgage)>는 달러 지폐를 꼬아 만든 참수대와 밧줄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좇던 무고한 대중이 싼 이자의 대출 유혹에 홀려 갚기 어려운 빚의 늪 속으로 빠지고 급기야 목숨으로나 되갚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영단어 모기지의 ‘mort’는 죽음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기원했다. 그런가 하면 페르디난도 몰레레스(Ferdinando Moleres)는 비트코인 환전기를 전시장 한구석에 설치하고 21세기 디지털 사회에서 디지털 머니의 시대가 멀지 않아 도래할 것이라고 논평한다.
만사의 금융화 추세와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억압 속에서, 오늘날 과거 어느 시기보다 많은 억만장자가 탄생했고 또 제3세계 수많은 빈곤층도 절대극빈 상태를 벗어났다. 하지만 돈과 노동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빚어진 금전적 대가의 격차와 불평등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는데, 아프리카, 홍콩, 인도 노동자들의 고난과 빈곤상을 고발하는 리사 크리스틴, 이언 베리, 페르디난도 몰레레스, 파울로 파트리치의 사진작품들을 통해서 이 쟁점을 보도한다. 끝으로 이 전시는 조지 오웰의 <1984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브래버리의 <파렌하이트 151>을 인용해 3개의 디스토피아적 미래 사회를 예견한 3편의 설치작으로 암울한 전망을 내리며 마감한다.
미술은 메시지 전달을 위한 수단이다. 미술은 권력자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말하기 꺼려하는 것을 말해줄 수도 있다. 미술작품의 가격은 미술시장이 결정하지만 바로 그 미술시장에 의문을 가할 수도 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미술이 기업의 후원과 금융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 체코공화국의 수도 프라하에 자리한 DOX 현대미술센터에서 오는 6월6일까지 계속될 <돈의 영혼전>은 돈-권력-문화의 관계에 의문을 던지고 재고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

P.S. 이 원고는 레오쉬 발카 DOX 현대미술관 관장과의 인터뷰를 주선해주고 동유럽 문화사에 대한 깊은 식견으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해 준 마리오 갈리아르디(Mario Gagliard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음을 밝힌다.
마리오 갈리아르디는 오스트리아 태생 디자이너, 문화정책자문가, 문필가, 디자인 교육자로 현재 빈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정보 및 집필 활동은 그의 블로그 www.mariogagliardi.com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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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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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21세기 패러독스”

레오쉬 발카 DOX 현대미술센터 관장

돈을 주제로 한 미술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동기나 이유가 있나?
이 세상에는 미술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많다. 오래전부터 나는 사람들이 돈을 다루는 방식과 그 변천상을 보면서 늘 매력을 느꼈다. 과거 공산주의 시대 공장에서는 현금을 봉투에 넣어 노동자에게 월급으로 주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돈의 거래 흔적을 남기는데 나는 그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돈은 15세기의 산물이지만 21세기가 된 지금 일종의 패러독스가 되었다. 세상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있다. 과거 나는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시장들끼리 경쟁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자조차 상품(commodity)에 불과하다.

당신은 이 미술관의 관장인 동시에 전시회 기획도 직접 진행한다. 한 편의 전시를 기획하고 개막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야로슬라브 얀델(Jaroslav And?l) 전 예술디렉터가 자리를 떠난 후 내가 직접 기획한다. 전시 준비하는 데 약 1년 정도 소요된다. 나는 과거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성장했다. 학문으로 성공하고 싶은 야심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교육을 받지도, 대학에서 전공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전시회를 기획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미술을 활용해 메시지를 알리는 사회운동가라고 여긴다. 결국 모든 미술은 정치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에 대한 당신의 철학이나 견해가 궁금하다.
미술은 우월하다는 지위감이나 미술을 둘러싼 신화는 모두 허튼소리다.
(이 말과 함께 발카 관장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쓴 책 《예술의 음모(The Conspiracy of Art)》를 집어 보여주며 이 책은 자신의 바이블과도 같다고 말했다.) 앞서도 말했듯 나는 스스로를 사회운동가라 생각하며 나에게 미술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물론 그 목표가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미술 전시 기획만 할 뿐 미술작품을 모으고 소장하는 미술컬렉터가 아니다.

현재 체코의 현대미술계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현재 체코에서 몇몇 소규모의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지만 활동이나 성과는 대체로 미미한 편이다. 서구미술계처럼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는 개별 미술가도 별로 없다. 체코 미술가들은 대체로 서구와 동구 서방세계 양쪽 모두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곳 미술인들은 각자의 관심과 이해관계에 맞게 서로서로 도우면서 대체로 눈에 띄지 않게 소규모 단위로 활동한다.
프라하=박진아

레오쉬 발카(Leo? Valka)
1981년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호주로 건너갔다가 1996년에 귀향해 현재 프라하에 살고 있다. 호주에서 건설업과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 사업가로 활동하며 성공했지만 그의 진정한 평생 열정은 건축과 현대미술이라고 한다. 2008년 로버트 아페스(Robert Aafjes)와 함께 DOX 현대미술센터를 설립했으며, 현재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1년 그는 시각예술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체코 정부로부터 문화부상을 받았다.

 

SPECIAL FEATURE 자본주의-신자유주의 그리고 예술의 딜레마

예술과 자본주의 그리고 창의성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2016년 3월 초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에서 침묵시위가 벌어졌다는 뉴스를 이 글의 화두로 삼고자 한다. 시위대는 ‘인문사범대학’, ‘지식서비스공과대학’, ‘창의예술대학’, ‘뷰티산업국제대학’, ‘휴먼웰니스대학’, ‘교육부’라는 글귀를 쓴 패널에 검은 리본을 달아 ‘조의(弔意)’를 표했다. 교육부가 ‘권장’하고 학교 당국이 ‘실행’하는 ‘통폐합’에 학생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구체적인 속사정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뷰티산업대학이나 휴먼웰니스대학 같은 해괴한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부터 의외였다. 이른바, ‘돈이 되는’ 학과를 만들어서 ‘취업률’을 올리려는 시도라는 점에도 큰 의문이 없다. 후문으로는 지식서비스공과대학이라는 것도 기존의 자연계를 개편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니 그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 가장 관심이 가는 학과의 명칭은 ‘창의예술대학’이다. 아마도 기존의 음악대학이나 미술대학을 통폐합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명칭 자체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창의’와 ‘예술’은 오랫동안 긴밀하게 연관되어 왔고, 그 연관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 단어들의 어감이 ‘뷰티’나 ‘웰니스’처럼 그 저의가 노골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혹시 창의와 예술 사이의 연관성이 이제 더 이상 자명하지 않고, 두 단어가 오랫동안 표상해왔던 어의가 심각하게 변환되고 있는 것일까. 창의라는 단어와 창조라는 단어를 혼용할 수 있다면, 언뜻 ‘창조경제’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친다. 이 정책 용어에 대해 냉소적으로 반응하기에 앞서 ‘창조’라는 단어가 ‘경제’라는 단어와 결합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 성찰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예술적 창조성과 자본주의 경제의 이분법
‘예술과 자본주의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해 보인다. ‘아무 관계 없다’라는 답이나 ‘적대적 관계다’라는 답이나 그 실제적 뜻은 다르지 않다. 고상한 예술과 통속적 자본주의를 대비시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미학과 경제학은 인간 세계의 전혀 다른 영역이고, 그 화신들인 창조적 예술가와 범속한 경제인은 전혀 다른, 그리고 상극적인 인간 부류일 것이다. 이상의 발상은 예술과 자본주의에 대해 오랫동안 존재해 왔던 고정관념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 그 고정관념은 매우 강력해서 하루아침에 변할 것 같지 않다. 우리가 현실에서 사용하는 어휘 중에서, 예술은 예술이고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이다. 그 이분법을 허물어뜨리는 일은 매우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예술가와 자본주의의 경계가 더 이상 또렷하지 않다는 게 이 글의 주장이다.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우선 예술과 연관되던 창조성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하는 과정을 훑어본 다음 이 지점으로 돌아오자.
내가 알고 있는 한 창조는 근대 이전까지는 신의 영역에 속했고 인간의 영역에는 속하지 않았다. 인간은 창조의 주체가 아니라 창조의 대상으로 이른바 피조물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 단어의 의미가 급격하게 바뀐 것은 근대 초기, 이른바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가의 창조성이 인정되면서부터다. 인간이 신의 섭리에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문화와 지식의 주체가 된 것이다. 즉, 창의성 혹은 창조성은 특별한 인간의 일부 속성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지 매우 오래된 것 같지만 실상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인류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그리 긴 것은 아니다. 이상의 이야기도 서양 역사에 기반을 둔 것이니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그 역사는 더 짧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논점은 일단 덮어두기로 하자.
근대가 인간의 창조성이 개화한 시대라는 것은 또 하나의 환상이다. 인류의 극소수는 그랬을지 몰라도 대다수 인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하는 존재로 삶을 보냈다.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사상가들은 테일러주의(Taylorism)나 포드주의(Fordism)라는 용어를 고안해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가 어떻게 소외되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앉아서 단조로운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공장노동자는 창조적인 예술가와 정반대의 존재였다. 경제적 명령으로부터 자유롭게 예술적 창조를 수행하는 예술가들은 낭만적이고, 보헤미안적인 그리고 독립적인 존재로 자본주의 경제 및 노동과 대립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던 자본주의에서 노동과 예술은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앞서 내가 말한 이분법이란 이런 시대에서 형성된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이런 이분법이 서서히 흐릿해지고 있는 것 같다. 즉, 예술과 자본주의, 미학과 경제학, 예술적 창조와 자본주의적 노동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에서 언제는 흔히들 신자유주의나 포스트포디즘이라는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실현된 시점을 말한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여전히 자본주의이지만,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자본주의와 무언가 다르다.
이런 말이 아직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애플의 광고를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처음 그 광고를 접할 때 거기서 구래의 자본주의 경제나 노동을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광고에서 재현되는 영상이나 문구는 매우 힙(hip)하고 쿨(cool)해서 하마터면 광고야말로 현대의 최고의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마저 느낄 정도이다. 아니나 다를까 ‘카피라이터는 현대의 시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시대다. 실제로 ‘creative’라는 말을 가장 먼저 흡수한 산업부문은 광고산업이다.
예전에 예술가의 배타적 속성으로 언급되던 창의성, 독립성, 혁신 등의 단어들은 최신 경영학 서적에 너무 많이 등장해서 멀미가 날 정도다. 마치 ‘노동을 예술적·창의적으로 하지 않으면, 직장 그만둘 각오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만약 스티브 잡스(Steve Jobs)나 래리 페이지(Larry Page)를 그저 경영인이나 기업가로 취급한다면, 예술적 감성이 한참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저런 인물들을 지칭할 때 구루(guru)라는 종교적 명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창의적 기업가는 이제 인간계를 넘어 신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처럼 창의성·창조성이라는 용어는 좁은 의미의 예술 분야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연구해온 나는 좁은 의미의 예술에는 문외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서 창의성이나 창조성이라는 용어는 자주 등장한다. 특히 ‘도회적 창의성(urban creativity)’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연관짓는 이론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들려온다. 이른바 창조도시에 관한 이론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독립적 예술창작자와 상업적 비즈니스의 결합에 의해 혁신적 경제가 나온다는 이론이다. 즉, 양자는 외주나 하도급 같은 복잡한 관계에 의해 얽혀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경제에서 예술과 창의성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기업 조직의 경영뿐만 아니라 공간 경제를 통해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창의성으로 어떤 장소의 문화적 가치를 상승시키고 예술적 환경(millieu)이 조성되면, 이를 타깃으로 하는 부동산 경제가 작동하여 정작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장소에서 쫓겨난다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이론에서도 예술가라는 행위자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자본주의를 인식하는 방법
방금 소개한 이론들은 뉴욕이나 런던 같은 ‘글로벌 도시’를 배경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 앞서 덮어두었던 아시아나 한국이라는 상황을 불러와야 할 것 같다. 추상적 논의를 피하기 위해 서울의 한남동을 찾아가 보자. 이곳에는 삼성이라는 한국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직영하는 미술관부터 카페 경영과 예술 전시를 결합하여 자가발전하려는 공간, 예술가 3명이 월세를 분담하는 작업실을 겸한 갤러리가 공존한다.
내가 이곳을 처음 관찰할 때 ‘셋 사이에 유기적이지는 않더라도 상호관계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아직은 특별한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게다가 2010년대 초에 이곳에 자리를 잡은 예술가들의 대안공간 몇몇은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앞서 말한 카페는 연예인이 새 건물주가 된 뒤 자리를 비워야 할 형편이다. 한때 이곳을 감돌던 예술적이고 ‘보헤미안’적인 환경은 점차 사라지고 의식주라는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 업소들만 ‘힙’한 외양으로 발흥하고 있다. 이 장소는 ‘한국식’ 창조경제의 담론과 실천에서, 대기업과 연예인은 찾아보기 쉬워도 예술가는 찾아보기 힘든 현실을 공간적으로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이 현상을 관찰하다 보니 몇 년 전 ‘작가 사례비’ 혹은 ‘아티스트 피(artist fee)’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 생각한다. 나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이 미묘하고 복잡한 주제에 대해 훈수를 두지는 않으려고 한다. 단지, 어떤 래디컬한 교수이자 평론가가 “노동이란 경제이고 예술이란 자본제적 경제의 타자”라고 말하면서, 예술을 노동이라고 인식하는 주장을 비판하던 글이 기억난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주장에 대해 한 예술가가 “답답하다”라는 소회를 밝힌 것이었다.
나 역시 그 답답함에 동의한다. 그 답답한 감정은 ‘예술은 노동이 아니므로 경제적 보상을 바라면 안 된다’는 논리도, ‘예술도 노동이니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도 자본주의 경제에 이용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이용당하는 게 단지 예술만은 아니라는 점이 예술가에게 위안의 말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예술과 자본주의가 더 이상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서로 혼융되면서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식이 답답함을 극복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추상적 논리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장소에서 지배의 새로운 양태를 지각하는 일이다. ●

SPECIAL FEATURE 자본주의-신자유주의 그리고 예술의 딜레마

 금융자본주의의 시대

노동력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는 갔다. 동시대 자본주의의 경제체제는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라 ‘돈을 창조하는 사회’다. 투자 열풍은 과열되고 사람들의 불안감을 담보로 보험 상품은 쏟아진다. 물가는 계속 상승하고 화폐의 가치는 끝없이 하락하고 있다.

이완 판화

이완 < Bank of Leewan > 2015~

이완은 판화를 제작해 판매하고 이를 1wan=10,000원 단위의 화폐로 쓴다. 작가는 판매한 금액을 다른 곳에 투자해 이익을 내고, 이익에 따라 판매된 판화는 실제로 주식 증권, 채권과 흡사한 효력을 지니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이 작업은 홈페이지(www.bankofleewan.com)에 과정이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실물 경제시스템을 주목한 <made in>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단위가 커지면 작가는 부동산 및 회사를 직접 차리는 방식 등으로 키워 나갈 계획이다.

Installation view Sarah Meyohas 303 Gallery, New York 507 W 24 S

사라 메요하스는 뉴욕 303갤러리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1.9~2.6)에서 <주식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라 메요하스(Sarah Meyohas)는 전시 기간 직접 주식 거래에 참여하고 주가 변화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캔버스에 그려진 선은 시간의 가치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움직임과 소유권을 나타내는 지표에 해당한다. 작가는 이 작업 이전에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bitcoin)’을 벤치마킹해 자신의 사진작업을 유통에 쓰일 가상의 화폐 개념인 ‘Bitchcoin’을 만들었다.

갈유라_7. 지상의 양식(The Fruits of the Earth)_김창명선생님의 근현대사적유물, 가치측정 되#8AE5

갈유라 <지상의 양식> 수집된 오브제 가변설치 2015

고물상인(지역 전문가)과 함께 지역민들을 만나 그들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물품의 시간적 가치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들이 현재 생산하는 물품을 고(古) 화폐로 교환하는 방식의 프로젝트다. 고 화폐는 정해진 가치가 아닌 변동되는 (매년 오르거나 떨어지는) 매개체로 작가는 비물질적인 가치를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시키는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며, 화폐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을 환기시킨다.

장지아_원더플 행복보험

장지아 <원더풀 행복 보험> 인터랙티브 설치 200×400×400cm 2002

미래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행복의 보증수표인 보험은 역설적으로 고통과 슬픔을 전제로 하는데, <원더풀 행복 보험>은 불행의 정도에 따라 보상금이 결정되는 이 보험 규칙을 응용해 고정된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전구의 마지막 단계까지 속도를 내어 불을 켜면 보험에 가입시켜주는 작업이다. 당시 이 작품은 흥국생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80여 명의 관람객이 실제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1년간 보장되는 이 보험은 1급 장애 발생 및 사망시에 10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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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종교, 자본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자본주의는 세속화된 종교”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돈만 많으면 우리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요하며 자본주의적 ‘구원’을 약속한다. 식량이 남아서 썩어나가도 이 종교의 구원을 받지 못한 세계 인구의 6분의 1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굶어 죽어가고 있다.

유비호 (3)

유비호 <두 개의 탑> 레디메이드 상품, 이동형 수레, 팔레트, 포장지, 노끈 (각) 74×45×227cm 2010

마트에서 구입한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고정된 받침대에 쌓아 올려 탑을 만들고 이동형 짐수레 위에 동일한 높이와 사이즈로 쌓아 올린 상품을 포장지로 싸고 노끈으로 동여맨 또 다른 탑을 제작했다. 작가는 욕망과 소비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물질 사회와 지식, 정보, 윤리와 같은 비물질적이고 유동적인 가치마저 교환 논리로 환원시키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김원화 P1120334 (3)

김원화 <최대 성당>(모형) 아크릴 시트, 3D print, 에나멜 컬러 45.3×89.5×150cm 2015 <보이지 않는 손>(영상 설치) 프로젝터, 포그 머신 2015

9·11테러로 파괴된 월드트레이드 센터는 자본주의의 적대 세력의 공격으로 파괴됨으로써 오히려 자본주의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김원화는 이를 모티프로 고딕 양식의 자본주의의 성당을 제작했다. 디지털화된 스테인드글라스 <보이지 않는 손>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광선을 신의 손길로 해석하는 것과 대비하여 종교적 자본주의의 손길을 표현했다. 수요와 공급이 스스로 균형을 맞추어 경제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고전경제학 개념 ‘보이지 않는 손’ 기저에는 신에 의해 세상의 만물이 조율된다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깔려있다.

주재환 19_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 8,601 Diamonds versus Stone Rice, 2010, 캔버스에 냄비, 돌, 사진복사 A pot, stone, photograph co#8AD6

주재환 <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 캔버스에 냄비, 돌, 사진복사 2010

작품가 918억5000만 원을 기록한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해> 복사 이미지와 이 작품에 영감을 준 브라질 빈민촌 돌밥이 캔버스 위에 부착되어 있다. 작품 하단 오른쪽에는 장 지글러의 저서 《탐욕의 시대》의 인용구가 노랗게 표시되어 있다. “브라질 북부 판자촌에 사는 주부들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어머니들은 배가 고파서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 거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그냥 잠이 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보면서도 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어미가 느끼는 수치심을 감히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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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착취를 바탕으로 한 사회

한때 인간의 노동은 최고의 가치로 평가됐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마치 기계 부품처럼 다뤄진지 오래다.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고 억압해 온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역사다.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 일자리를 잃어버릴지 모르는 불안을 항상 안고 산다. 그리고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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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균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 캔버스에 아크릴 162×692cm 20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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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균 <뉴스 그리기 1, 2> 캔버스에 아크릴 각 163×112cm 2013

박영균은 <저기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에서 예술 노동자로서 작업물을 생산하는 화가의 작업실과 자신의 작업환경까지 포함해 노동환경 전반을 지배하는 부당함에 대한 저항과 연대의 움직임이 전개되는 현장을 연결했다. <뉴스 그리기>는 한겨레 신문 박종식 기자의 기사 <둘 중 한 명은 비정규직, 누구일까요>(2013)에서 착안했다. 이 기사는 홈플러스, 현대차, 서울메트로 등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을 5회에 걸쳐 나란히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076-097 특집_자본주의8

차재민 <미궁과 크로마키> HD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 15초 2013

이 영상은 케이블을 설치하는 손과 설치 동작은 같지만 노동가치가 거세된 손을 병치하고 있다. ‘손’이라는 은유는 전문가, 장인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을 신성화하며 동시에 노동 소외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때로 손노동은 숙련된 기술이자 자아를 실현하는 활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양쪽으로 찢어진 극단의 추상성은 노동을 인격으로부터 분리하고 노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업은 우리가 ‘노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노동’을 제대로 감각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또한 차재민은 이 작업과 함께 케이블 설치 노동조합원 인터뷰를 담은 핸드북 《노는 땅 위에서 파업 중》을 제작해 5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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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에 희망이 있는가?

자유방임을 모토로 내세운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 내몰린다. 독식하는 승자와 다수의 패배자로 이분화된 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끝을 달린다. 특히 지금의 청년층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에 이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는 ‘오포 세대’, 추가로 꿈과 희망을 포기한 ‘칠포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이들에게 ‘희망을 품어라’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한다.

윤성지  각목, 사운드, 벽면 페인팅, 조명 설치 2014

윤성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각목, 사운드, 벽면 페인팅, 조명 설치 2014

쏟아지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각목으로 만들어진 바리케이드가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되어 있다. 관람객은 그 주변으로 난 통로로 겨우 지나다닐 수 있다. 전시장 양쪽 벽면에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이라는 텍스트가 쓰여 있고, 바리케이드 끝 어딘가에는 밝은 빛이 가득하지만 막상 그곳에 도달하면 막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다.

윤동천  시트지, 신문, 폐지, 병, 캐리어 272×436×140cm 2014

윤동천 <삶의 무게> 시트지, 신문, 폐지, 병, 캐리어 272×436×140cm 2014

러시아의 국민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문구 너머 쇼 윈도 안에는 고물상에서 5000원으로 교환할 수 있는 폐휴지, 신문지, 빈 소주병이 쌓여 있다. 고단한 삶의 무게는 제대로 된 밥 한 끼 식사값으로도 바꾸기 어렵다.

이양정아  콘크리트 가변설치 2011~2012

이양정아 < Concrete Seoul > 콘크리트 가변설치 2011~2012

(오른쪽) 종이에 물리적 드로잉1100×790cm 2011

< Cutting Out Seou l >(오른쪽) 종이에 물리적 드로잉1100×790cm 2011

<Cutting Out Seoul>은 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거주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는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과 관점을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제시한 작업이다. 서울 지도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 조건으로 거주 가능한 동(洞)은 남기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칼로 오려냈다. <Concrete Seoul>은 거주할 수 있는 동네를 그 모양의 시멘트 블록으로 제작했다. 매물이 많은 동네일수록 시멘트 블록은 높이 쌓이고 매물이 없는 동네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고 그냥 비어있게 된다. 작가가 거주할 수 있는 지역과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의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