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ART SPACE

요세프 쿠델카 개인전
2016.12.17~4.15 한미사진미술관

집시 시리즈로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요세프 쿠델카. 12월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집시〉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첫 전시이면서 내 삶에서는 마지막 전시”라며 이번 전시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전시된 〈집시〉 111점은 모두 그가 직접 선별한 사진이며 디스플레이 순서에도 그의 의견이 반영됐다. 작품 설명을 부탁하는 기자들 질문에 쿠델카는 “I have never explained the pictures”라는 짧은 답변으로 응답했다. 작가의 말보다 각자의 스토리를 담아 관람하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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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중2

김근중 개인전
2016.12.14~1.8 통인옥션갤러리/통인화랑

〈Natural Being〉. 작가 개인전의 부제다. 예술가는 존재하는 순간부터 온갖 압박을 받는다. 그것은 사명과 임무를 강요하며 작가는 그것에 충실하게 따라왔다. 작가는 모란을 매개로 작업하던 이전의 양상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강렬한 컬러와 형태를 벗어던진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 듯하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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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익 (2)

정소연 개인전
2016.11.24~2016.12.14 이화익갤러리

강렬한 파란 하늘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그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은 마치 가상의 건축물과 같다. 이러한 대비는 실재와 가상을 한 캔버스에 존치하게 하여 자연과 의도된 풍경으로 파생된다. 또한 실재하는 장소와 그의 모형을 각각의 독립된 캔버스에 옮겨 관람객이 직접 비교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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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주황 개인전
2016.12.1~1.22 플랫폼-엘

작업에 페미니즘 시각을 드러내는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온전한 초상/Her Portrait〉로 명명됐다. 일반인을 섭외해 마치 화장품 광고 사진처럼 표현한 프레임을 통해 지금 시대 여성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진다. 또한 공항에서 만난 여성을 대상으로 한 〈Departure〉 연작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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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

김덕영 개인전
2016.12.21~ 온그라운드 프로젝트 스페이스

2016년 12월에 개관한 건축 전문 갤러리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은 〈Return to Wave〉로 명명됐다. 새롭게 선보인 벽면설치작업은 파도가 밀려왔다 쓸려가는 것처럼 이면의 힘이 작용한 과정의 흔적으로서 형태가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힘의 균형을 보여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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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밀푀

동백꽃 밀푀유
2016.12.9~2.12 아르코미술관

한국과 타이완 큐레이터의 협력 기획전. 각자의 지역을 방문한 큐레이터들은 차이와 동일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이에 식민지배와 전후 사회변동(조주리), 한국 사회의 일면(김현주), 그리고 한국과 대만의 현대사를 되짚는(왕영린) 내용으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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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홍범 개인전
2016.12.8~2.11 파라다이스 집

특정 공간에 대한 기억을 되짚고 그것을 복구하려는 내용으로 꾸며진 전시다. 〈홍범.ZIP-오래된 외면〉을 부제로 하는 이 전시에는 그 기억의 복구를 위한 설치, 드로잉, 사운드 등의 방식이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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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댓게이츠

올게이츠
2016.12.10~18 인천 중구 신포로 일대

‘2016 인천 청년예술제’의 하나로 열린 이 전시는 인천예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젊은 작가들이 기획했다. 수도권으로 묶여 고유의 정체성을 찾기 힘들었던 인천의 미술은 나름대로 그 속살을 채워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행위와 과정으로 보여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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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미술관

山水, 풍경으로부터
2016.11.29~1.31 단원미술관

안산에 자리한 단원미술관이 마련한 겨울기획전. 12명의 젊은 작가가 한국의 산수를 다양한 재료와 매체로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였다. 전통 기법부터 영상 미디어작업까지 선보이며 산수 표현의 외연을 넓혔다.

HOT PEOPLE 윤난지

미술사의 길로 들어선 일이 지금껏 해온 수많은 선택 가운데 가장 잘 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윤난지 교수. 알고 싶은 의욕과 배움의 나눔을 통해 더 많은 배움을 얻고자 시작한 ‘읽기모임’이 2012년 ‘현대미술포럼’으로 명칭을 바꿔 활동 범위를 점차 확장해온 지 어느덧 5년여가 흘렀다. 대안적 연구공동체의 모델로 떠오른 이 모임의 중심에는 20여 년간 모임을 이끌어온 그가 있었다. 그의 연구실을 방문해 미술사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견해를 들어보았다.

연구공동체의 대안을 제시한 미술사학자

지난 12월 14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1990년대 이후, 동시대미술 읽기〉 제하의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됐습니다. 대표로 계시는 현대미술포럼을 내걸고 마련한 첫 번째 외부행사였는데요. 개최 소감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우선 매우 기쁩니다. 우리 ‘읽기모임’이 한국미술사를 만들어가는 현장에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자리였어요. 그동안 저희는 주로 출판 작업을 해 왔고 이렇게 전시와 연계된 미술현장의 행사에 참여한 것은 처음입니다. 당일 행사장에 와주신 많은 분께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심포지엄을 준비하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희는 2년쯤 전부터 동시대 한국미술을 10개 주제로 나누어 공부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가져왔어요. 그러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저희와 같은 주제의 전시를 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화 과정에서 〈X: 1990년대 한국미술전〉의 부대 심포지엄을 공동주관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지요. 그동안 우리가 공부해온 10개의 주제 중 시립미술관 전시와 부합하는 4편의 글을 전시 큐레이터들과 함께 선정하였고, 전시를 기획한 시립미술관 여경환 선생의 글을 합쳐 총 5편의 글이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본래 책 출간을 목표로 공부해왔기 때문에 최종 목표는 책을 내는 것입니다.

수요일 오후 1시에 포럼이 열린 탓에 현장에 오지 못한 다수의 지인이 당일 배포된 책자를 구입하고 싶다고 했어요. 대략 1200부를 찍었다고 들었는데요. 그 책이 모두 소진됐으니 많은 분이 다녀간 듯합니다. 이처럼 소박한 공부 모임이 공적인 심포지엄 행사로 개최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오랫동안 함께 해온 읽기모임 회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 등을 들려주세요.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서문을 쓴 당시에도 이 모임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더듬어 보았는데요.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별 큰 목표 없이 자연스럽게 모인 모임이죠. 아마 1995년 여름경에 시작했던 거 같아요. 제가 1991년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에 교수가 됐죠.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당대 미술에 관한 이론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중엽부터이지만 1990년대 당시에도 우리 미술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었어요. 이것에 대해 알고 싶은데 관련 자료는 대부분 외국 문헌이었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그야말로 ‘읽기’ 위해서 모이기 시작했어요. 외국 문헌을 선정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각자 번역한 내용을 다 함께 공부했죠. 규모도 크지 않았어요. 5~6명 정도로 작게 시작했는데 원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다보니 이렇게 커졌어요. 처음에는 주로 동료 연구자들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이 제자들이지요. 공부한 자료들이 점차 쌓이니까 번역한 수고가 좀 아깝더군요. 그래서 아예 주요 포스트모던 이론들을 제가 선별해서, 각자 맡은 글의 전문(全文)을 번역해 와 소리 내어 읽고 다 같이 틀린 것을 바로잡아 주며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하여 출판까지 하게 되었어요. 첫 번째 책이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라는 이름으로 1999년 9월에 출판되었고 이후 《전시의 담론》, 《페미니즘과 미술》 그리고 2016년에 나온 《공공미술》까지 총 4권이 출판됐습니다. 4권의 번역 작업에 총 21년이 걸렸네요. 모두 저와 읽기모임 참여자들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물이지요.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번역, 토론, 교열 과정을 여러 차례 가졌어요. 전 바로 그 부분에 읽기모임의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싶어요. 첫 번째 책은 모두 6쇄를 찍었으니 미술이론서로는 괜찮은 반응이지요. 물론 여기엔 《화두》 시리즈를 출간해주신 출판사 눈빛의 도움도 컸습니다. 저희를 믿고 재론 없이 모든 책을 내주셨거든요. 그런데 번역이란 작업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리즈라 할 수 있는 ‘읽기’ 제하의 책이 나오게 된 과정도 설명 부탁드려요.

최근 몇 년간 회원들의 글을 모아 편집하는 일을 진행했는데, 지금까지 3권의 책이 나왔어요. 《추상미술 읽기》, 《현대조각 읽기》, 《한국현대미술 읽기》 등입니다. 그 후속으로 지금은 동시대 한국미술의 현장을 주제로 앤솔로지를 진행하고 있지요. 최근 20~30년 동안의 한국미술을 역사적으로 기록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작업이에요. 그런데 일을 진행하다보니 동시대미술을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더군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잘 보존돼 있는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이번 전시를 진행한 여경환 선생도 그런 고충을 말씀하셨어요. 시간이 더 가기 전에 부지런히 자료를 보존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합니다. 물론 한 시대 미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역사적 거리가 확보되었을 때 그러한 해석이 수정될 수 있는 여지는 전제로 하고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을 종합해보면, 읽기모임이 선생님께는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이 모임이 지속된 지도 벌써 20여 년입니다. 읽기모임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보다 배움을 나눈다는 데 있을 것 같아요. 긴 과정을 함께하며 서로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요. 특히 배움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해 온 과정이지요. 이 모임은 일종의 대안적인 연구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관도, 규칙도 없이 편안하게 토요일 오전 10시 반에 오고 싶은 사람들만 제 연구실로 모이지요. 발표자는 ‘숙제’를 해 가지고 오고. 매우 느슨하고 유동적인 모임이지요. 2~3명이 올 때도, 20여 명이 모일 때도 있습니다. 사실 정확히 누가 회원인지 아닌지도 모릅니다. 대화 주제도 공부와 일상을 왔다 갔다 하지요. 천천히 걸어왔는데 책 출판과 학술 발표 등의 결실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이러한 느슨함 혹은 유연성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사적이자 공적인 혹은 그 어느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여성적인, 이것이 우리 모임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네요. 얼마 전 공적인 면모를 갖추기 위해 현대미술포럼이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아직도 우리들은 읽기모임이라고 불러요.

그렇다면, 이제 1990년대 한국미술계에 불었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얘기를 나눠봐야 할 듯싶은데요. 이번 심포지엄에서 논의한 시기 역시 1990년대이기도 하고요. 언어로써 1990년대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동향을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미술사, 나아가 우리 역사에서 1990년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우선 이번 시립미술관 전시를 통해 1990년대가 ‘전시’란 형태로 구현됐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결국 1990년대 미술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지요. 당시 자료나 작품을 가능한 한 수집하고 복원하고자 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이러한 시도는 사실 1990년대 당대에도, 또한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가버려도 할 수 없는 작업이지요.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를 볼 수 있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시야가 확보되었다는 의미에서이지요.

사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제게 1990년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그 시기를 보다 객관적으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실 듯합니다.

되돌아보면 1990년대는 한국현대미술의 전환점 같은 시대였어요. 무엇보다도 모든 종류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때였다고 볼 수 있지요. 그 이전에는 사회적 발언의 미술, 순수 미학을 추구하는 추상미술 등이 동시대에 대립하거나 시대를 바꿔 출현했는데, 1990년대에는 많은 작가가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양식을 보이거나 형상을, 때로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자 했고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도상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페미니즘 전시들이 열린 것도, 뉴미디어 아트가 본격적으로 수용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그야말로 다양한 가치들이 혼입하고 공존하는 시대였지요. 우리가 당시 읽은 글들이 우리 미술 현장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는 것을 실감한 시기였지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1990년대 사회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그 당시에 요즘 보는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근대기의 다방을 대신하는 공간인데, 다방과는 달리 그 공간에는 젊은이들이 모였지요. 최정화의 카페 공간 같은 소위 ‘폐허 디자인’이 시작된 것도 이때로 기억됩니다. 근대의 잔재가 새로운 미학적 의미를 부여받으며 재탄생하는 공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 이런 특성이 카페나 그 시기 새롭게 등장한 대안공간에서 볼 수 있는 특성이었지요. 이런 공간적 특성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시기에는 사회적으로도 세대 간의 교차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지요. X세대, 오렌지족 같은 용어가 일반화했듯이 젊은 세대가 문화를 이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기성세대도 그들의 감각을 공유하기 시작한 시대이지요.

1990년대만의 시대정신이 있다면요?

‘1990년대 이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시대정신(zeitgeist)’이란 말은 이 시기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매우 ‘모던한’ 어휘이기 때문이지요. 이 시기에는 오히려 ‘시대감각’이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봐요. 표피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그리고 다양성이 용인되는 감각 그 자체, 그것이 1990년대 이후를 특징 짓는다고 생각해요. 동시대의 세계적인 문화현상을 공유하면서도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적 정서들이 혼존하는 현장, 그것이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모습이지요.

다시 선생님과 읽기모임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읽기모임의 모든 활동에서 선생님은 주축이셨습니다. 대학원 수업, 과제 평가, 논문 세미나 등의 학교 활동과 책 집필, 그 밖의 연구 활동들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원동력 같은 건 없어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꾸준히 일을 해온 것뿐입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그만둘 용기를 못내는, 일종의 결정 장애 때문이지요.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느끼는 것이겠지만 몰두하는 시간만큼은 너무나 마음이 평안하지요. 저는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주세요.

가까운 계획은 읽기모임 회원들과 지금 진행하고 있는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에 관한 책 출판을 마무리짓는 것이에요. 그 후에는 1970~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후속연구를 진행해볼까 구상 중입니다. 그러나, 읽기모임도 그 시작처럼 자연스럽게 해체될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못하는 거고요. 또 개인적으로는, 제가 2018년 2학기를 끝으로 26년간의 교수직을 은퇴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수업하고 논문지도하면서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은퇴 후에도 당분간은 공부를 계속하긴 할 거 같아요. 조금은 여유롭게. 또 현재 제가 쓰고 있는 한국현대미술사 책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1990년대 중엽부터 틈틈이 써온 글을 보완하는 중이에요. 그렇게 저는 한국현대미술사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으로 연구 인생을 마감할 듯싶어요. 멀리 돌아 가장 가까운 내 나라 미술로 돌아온 셈이지요. 민족주의적인 사명감에서가 아니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을 보자는 생각에서지요. 아무래도 외국의 사례들은 제가 살아온 시대와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제게는 매우 버추얼(virtual)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미술사학자, 교육자로서 후배와 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일단 미술사는 ‘바쁜 공부’입니다. 책만 읽어서는 안 되고 직접 전시장을 다니면서 작품을 보는 것이 필수적이지요. 전 세계를 여행해야 하는 공부에요. 또한 현대미술사의 경우 작가도 만나야 하고, 글도 논문 뿐 아니라 비평문 등 다양한 글을 써야 하지요. 이러한 바쁨을 기꺼이 받아들여야하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미술사도 사람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혹은 연구의 현장에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또한 사람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미술사 공부입니다. 미술사가 ‘인문학의 꽃’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작품을 연구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공부하는, ‘따뜻한’ 학문이기 때문이지요. 간혹 학생들에게서 미술사가 너무 어렵다는 고민을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미술사를 공부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를 먼저 느껴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보다 얼마나 잘한 일인지를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잘하게 될 것이라고요.
진행ㆍ정리 = 곽세원 기자

HP_윤난지 (5)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눈빛)는 윤난지 교수가 읽기모임을 통해 번역한 글을 주제별로 엮은 책으로, 총 4권이 나왔다. 1960~1990년대에 논의된 미술계의 다양한 담론을 다룬다.

윤 난 지 Yun Nanji
1953년 출생했다. 1976년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 동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1984년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1991년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까지 저서 6권, 번역서 3권, 편저 7권 등 총 16권의 책을 발간하였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2000년 석주미술상 평론부문과 2007년 석남미술이론상을 수상했다. 현재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현대미술포럼 대표로 있다.

SPECIAL FEATURE Cody Choi + Lee Wan & Lee Daehyung

의외의 연속이었다. 2017년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책임질 이대형 큐레이터가 선정됐을 때도, 또한 그곳을 장식할 작가로 코디 최와 이완이 선정됐을 때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장소에서 최고의 화학반응을 일으켜야할 큐레이터와 두 작가를 엮을만한 요소가 언뜻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간미술》이 그들을 만났다. 그 자리는 의외의 시간이 아닌 그들은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필연’으로 이어졌다. 그 필연은 올해 한국관의 모습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는 단서가 아닐지.

그들이 만나다

황석권 | 수석기자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책임질 이대형 큐레이터가 선정되고 참여작가로 코디 최와 이완을 발표했을 때 국내 미술계의 반응은 대부분 ‘의외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는 큐레이터가 선정됐을 때 이미 절반은 그 윤곽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큐레이터와의 인맥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관을 책임질 큐레이터 후보군이 발표되고, 그들이 최종 선정을 위한 프리젠테이션에 포함시킬 작가는 현장 전문가라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대형 큐레이터가 최종 선정됐을 때, 미술계는 이 세 사람이 어떤 인연이었을까 검색하기에 바빴을 터인데 그 단서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월간미술》은 2017년 한국미술계가 가장 주목할 이들 3인을 만났다.

우선 시점을 한국관 예술감독 선정 당시로 되돌렸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6인의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작가 선정에 앞서 꼬박 일주일 동안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의 지난 20년간의 큐레토리얼 계보를 연구했어요. 본전시라는 큰 물줄기를 이해하고 거기서부터 거리 두기를 해나간다면 한국관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이대형) 크리스틴 마셀이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내세운 주제는 〈Viva Arte Viva!〉다. 말 그대로 “예술 만세”다. 이에 현대미술 창작활동의 주제인 미술가, 미술가의 작업과정, 미술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역할이라는 인문적 측면을 재주목해 보겠다는 의미다. 이 큐레이터는 이런 질문에 질문하는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저자의 문제’, ‘몸 그리고 개인의 역사’,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거대한 물리적 스펙터클이 아닌 ‘절제된 형식’으로 작품을 표현해왔는가? ‘개인과 역사의 관계’를 실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고 ‘사실과 픽션이 혼재’하는 시대적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는가? 재료와 의미의 ‘혼성교합’을 통해 ‘전통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가? 사회, 정치적 맥락과 역사적 이벤트를 비평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다양한 의미의 레이어’를 부여해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있는가? 특히 서구 비평가들, 큐레이터들이 시도하지 않은 ‘한국과 아시아 모더니즘의 문제’를  실증적인 태도로 보여줄 수 있는가?” 등으로 말이다. 이러한 과정에 먼저 포착된 작가가 바로 이완이다. “비엔날레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메이드인(Made in)〉 연작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있었어요. 놀랐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 큐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작업이 세계 미술계에 선보이는 점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이완)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의 모더니즘을 보여주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는 총감독이 아시아의 역사를 재방문하려는 기획의도를 내세운 방향성에 부응하기 위함이었다. “작가가 만난 수많은 아시아 사람의 삶을 통해 이론이 아닌 현실로서 모더니즘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이대형)

원래 전시는 2인전으로 꾸밀 예정이었다. 아시아의 모더니즘과 더불어 한국의 모더니즘도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 여기서 이완 작가가 뜻밖의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100여 년 전 살았던 한 실존인물(‘Mr.K’로 명명했다)의 사진이 담긴 나무상자를 황학동에서 5만 원에 구한 이완 작가가 이로 상징되는 ‘귀신(鬼神)’을 끌어들이자는 내용이었다. “일제시대?한국전쟁?산업화 과정을 관통하는 실존인물의 삶을 단돈 5만원에 길거리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에피소드가 개인의 역사를 넘어 한국의 역사와 근대화가 얼마나 쉽게 버려지고, ‘헐값’에 거래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라고 생각했습니다.”(이대형) 하지만 곧 아시아와 한국의 100년이라는 극한 속도감을 묘사하는 데 한계에 직면했다. 그래서 하나의 가족 계보를 만들기로 했고, Mr.K로 대변되는 ‘할아버지’, 이완 작가로 상징되는 ‘손자’ 사이에 ‘아버지’ 격으로 코디 최 작가가 전격 합류하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문화적 불균형의 문제를 파격적인 형식을 통해 탐구해왔고 2015년 뒤셀도르프 쿤스트할레에서 시작된 대규모 회고전을 유럽 여러 국가 미술관에서 순회하고 있는”(이대형) 그다. “전혀 모르던 이 큐레이터의 전화를 받고 ‘왜 내게 이런 제안을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죠. 30년 넘게 해외에서 활동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국에서 미대를 나오지도 않은 (인맥도 소소한) 나에게 왜? 이제 곧 환갑을 맞는 나에게 왜? 또 함께 전시에 참여할 이완 작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말 그대로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나 싶었죠. 하하“(코디 최) “코디 최 작가에 대한 한국 주요 큐레이터, 작가들의 평가와 해외 비평가나 저널리스트, 큐레이터들의 평가가 상반되었어요. 1990년대부터 낸시 스펙터(Nancy Spector), 앤 패스터낵(Anne Pasternak), 그레고리 얀센(Gregor Jansen), 존 웰치만(John Welchman), 필립 베르네(Philippe Vergne)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온 코디 최를 한국에서는 잘 모르거나, 평가절하하거나, 심지어 터부시하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됐죠.”(이대형) 편협한 인식에 일종의 오기도 일었으리라. 이런 과정을 거쳐 짜여진 진용으로 2017년 자르디니 공원 한국관을 접수할 수 있었다.

전열이 갖춰졌다. 이에 큐레이터와 참여작가 2인의 생각이 펼쳐졌다.

이완이 말하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2014〉에서 수상을 계기로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긴 했지만 이완 작가의 작업은 자본주의와 노동이라는 문제에 천착한 맥락성이 매우 견고하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출품될 작품도 〈메이드인〉 연작에서 비롯된다. 이미 작업을 위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그 단서는 던져졌다. “〈고유시(Proper time)/부제: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김수영〉을 위한 자료로 쓰입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메이드인〉 시리즈와 연결되는 본 작품은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전시됩니다.”(설문조사를 위한 서문 중)
〈메이드인〉 연작에 대한 작가의 말이다. “2005년 학교를 졸업하면서 불가항력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내가 왜 이것을 좋아하게 됐지?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됐지? 내가 왜 태어났지? 꼬리를 무는 질문은 점차 본질적 내용으로 채워지더군요. 〈메이드인〉 연작도 마찬가지예요. 마트(mart)라는 ‘시스템’에 대한 관심, 역사에 대한 관심, 현대 자본주의와 경제구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질문이 작업을 낳았죠.” 이 작가는 일상생활의 동선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산품임을 인식했을 때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메이드인〉 연작은 이와 같은 현실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소비자이니까 구매만 하면 끝이잖아? 이러고 싶지 않았던 거죠. 최후의 소비자임과 동시에 최초의 생산자가 될 방법을 생각했고 닭고기를 사서 야구공으로 만든 작업을 선보인 거죠.” 작가는 일전에 《월간미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개인의 무모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현대 경제체제에 반하는 행위를 극대화하여 보여주기 위해 그가 택한 방식은 ‘비효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타이완에서 2달, 태국에서 1달 반, 미얀마와 캄보디아에서 1달간 생활했다. 미얀마에서는 순금 3g을 얻기 위해 도심에서 1000km 떨어진 탄광에서 일했다. 그 금은 서울에서 15만 원이면 구할 수 있다. 동네 마트에서 몇 천 원이면 구할 수 있는 설탕을 위해 대만에서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결정을 만들기도 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하려면 공부가 필요했다. 실제 경제학, 마르크시즘 등을 공부했고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뻗어나갔다. “〈메이드인〉 연작 이후 〈뱅크〉 연작을 하게 됐죠. 앞서 말한 제조사는 결국 주식으로 구성된 것이 실체가 아닌가 싶었어요. 또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에까지 이르다 보니 실제 주식 거래를 시작하게 되었죠.” 모두 자본의 흐름을 추적하고 파악하기 위해 시행되는 프로젝트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제시한 〈고유시〉는 제목에 이미 작품의 복선이 깔려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전 세계의 ‘개인’들은 얼마만큼의 시간을 노동에 쓰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작품입니다”라는 말이 작품의 내용이 될 것이다. “고유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의 개념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두 대상이 움직이는 속도가 다르면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시간의 차이가 생기지만 두 대상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각자의 노동시간과 불균형에 대해 누구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작업은 전 세계인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들여야 하는 노동시간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하여 그것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이뤄진다고. 이를 설명하며 공개한 그의 노트는 마치 수학연습 노트 같았다. 그리고 이완 작가는 작품에 대해 여기까지 말했다.

코디 최가 말하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코디 최 작가의 일상은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곳에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가치만 선별적으로 취할 수 있는 유학생과 달리 자신은 이곳에서 정착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결과는? 미국인이 되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서의 삶도 그가 기대한 바대로 흘러가진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가 큰 갈등으로 다가왔다고 털어놨다. “최근에 생각해보니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이런 라이프 프로그램이 진행됐구나 싶었어요. 제안을 받고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내 삶이니깐 충돌의 지점을 작품화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양상의 갈등과 충돌을 느꼈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와 강의를 하면서 꼭 비엔날레에 대한 커리큘럼을 마련했었어요. 비엔날레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었죠. 비엔날레 시스템부터 그것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까지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비엔날레에 출품을 한다?” 난처한 시간이 흘렀고 코디 최는 예전에 그가 들었던 존 발데사리와 한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을 떠올렸다. “발데사리가 ‘작가의 삶은 3가지가 필요하다’라고 합디다. 첫째는 작가적 기질, 즉 재능, 둘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작가라는 믿음, 세 번째가 바로 타이밍. 이건 언제 올지 모른다더라고요. 그러니 이 기회가 그가 말한 타이밍이 온 것이라면 내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그 타이밍(베니스 비엔날레)을 둘러싼 충돌과 갈등이었죠.” 그리고 결정했고 작품에 대해 고민했다. 바로 지금의 베니스를 만든 여러 역학적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베니스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격년제로 진행하며 관광객을 모으고 돈을 버는 도시예요. 베니스 비엔날레는 한마디로 미술(예술)이 자본(돈)과 관광(대중의 눈요기)과 결합하는 곳이죠. 이 결합은 베니스 비엔날레만의 독특한 메커니즘을 형성하는데 베니스라는 물리적 공간은 지형정치적(geo-political) 역학관계가 만든 모순을 안고서 이 시대 미술의 한계와 혼란을 몸소 보여주고 있어요.” 이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하는 작가 대부분이 보여주는, 그리고 코디 최 스스로도 느꼈던 예술적 모순과 한계점을 건드려볼 참이다. 사회정치적으로 기여하려는 작업을 하면서 예술의 본질을 파괴하는 그 모순 말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나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점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비판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향해 총을 쏘고 싶은 거죠. 하하.”
그러면서 코디 최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예술가가 인식하는 베니스의 메커니즘’ ‘이중교배의 모순이 만든 거대한 지형정치’ ‘모든 예술가가 식민화된 글로벌 예술의 모순과 한계.’ 코디 최가 제시한 키워드에 대한 설명을 정리해보면 우선 작가는 미술의 진보와 예술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기여에 대해 강박을 갖게 되는데 그에 비해 관람객은 관광객의 마인드와 유사하다. 이 독특하고 상반된 메커니즘의 매개체는 바로 ‘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술’과 ‘관광’, ‘자본’이 만나 독특한 지형변화를 일으키는데 이는 경제전체주의 강화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은 글로벌 예술시장에 걸맞은(거래가 되는) 작품을 예술의 파괴를 주창하며 만들어내는데 여기에서 얻어지는 화상(?商)들의 극찬은 현실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경제가치에 부합하는 작업에 종착하게 된다는 의미다.

다시 모여 이야기하면

“코디 최가 실제 자신의 경험(아픔, 상실, 분노 등등)을 바탕으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집요한 학술적 연구와 분석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문화적 가치가 만들어지는 근원을 찾는다면, 이완은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원에 접근한다. 코디 최가 동서고금의 수많은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를 제시한다면, 이완은 다양한 파편을 긁어모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문을 만들어 보인다.”(이대형) 이러한 차이를 간략히 말하면 집중하는 지점이 작가의 개인사냐 시스템이냐이다. 코디 최는 “이번 전시는 ‘자본주의’라는 큰 틀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 큰 틀만 맞으면 우리는 서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 몰라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완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1990년대 초기 제가 벌인 작업을 보면 이완 작가의 작업과 프로세스나 표현에서 다른 시점이긴 하지만 비슷한 점이 보여요. 한국에 발표되지 않은 작업이 좀 있어요. 예를 하나 들면 중력과 하이힐(서구 여성의 신발)의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컬럼비아 대학의 물리학 박사와 공식을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코디 최)
서로 다른 양상을 띠는 작가의 작업이 한곳에 전시된다. 그곳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케미가 만들어질지, 아니면 불협화음을 내며 파국을 맞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일단, 인터뷰 내내 큐레이터와 작가, 작가와 작가 사이는 그 분위기가 요즘말로 너무나 ‘달달’했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장소를 양보하고, 상대 작가에게 작품 제작에 드는 비용을 더 얹어주려 배려했단다. 작가로서 욕망이 우선 아니냐며 몇 가지 이간질(?)을 유도하는 질문을 했지만 손사래를 치며 서로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두 작가였다. 코디 최는 인터뷰 중간에 이완에게 “아 맞다. 고마워. 좋은 작업해줘서. 이 말을 꼭하고 싶었다”고 깜짝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관을 작은 통로로 연결된 3개의 어항으로 생각했다는 이대형 큐레이터. 자신의 공간은 지키지만 같이 호흡하는 3명이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번에 모이는 회의도 열지만 각 작가를 개별적으로 만나는 회의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작가들이 서로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두 분 작가는 서로의 작업을 꼭 50%만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견고한 작품이 구축됐을 때, 나머지 50%를 알 수 있게 칸막이를 치울 것”이라고 말했다. 글쎄. 그 칸막이는 아무래도 5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일에 치워질 것 같다. ●

SPECIAL FEATURE The Grand Tour 2017 of Europe Big 5

미리보는 2017 유럽 그랜드 투어

2007년 이후 10년 만이다. 전 세계 미술인의 시선이 다시 유럽으로 모아지기까지 말이다. 올해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57th Venice Biennale, 5.13~11.26)를 필두로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documenta 14, 4.8~7.16(그리스 아테네)/6.10~9.17(카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nster, 6.10~10.1), 터키의 이스탄불 비엔날레 (15th Istanbul Biennial, 9.16~11.12) 그리고 프랑스의 리옹 비엔날레(14th Lyon Biennale, 9.20~12.31)가 열린다.
그 이름으로도 세계의 미술작가는 물론 미술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빅 이벤트들이다.
이에 《월간미술》은 2017년 신년호 특집기사를 올해 유럽에서 열리는 미술 빅 이벤트 5건에 대한 프리뷰로 꾸몄다. 각 대회의 전반적인 내용과 전시주제에 대해 소개한다. 카셀 도쿠멘타와 이스탄불 비엔날레 총감독 인터뷰도 성사시켰다. 보다 심도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맡은 이대형 예술감독은 출품작가로 코디 최와 이완을 선정하고 현재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가 한국관의 청사진을 밝히는 글을 보내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10년 만에 동시에 열리는 미술 빅 이벤트를 통해 동시대미술 변화의 양상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올해 미술계는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 미술 빅 이벤트를 한 해에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한 인간의 인생에서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진행=황석권 수석기자

문화전쟁의 또 다른 차원

유진상 | 계원예대 교수

문화전쟁이라는 표현은 종종 정부의 대외 문화 콘텐츠 정책이나 기업/관광분야의 국제적 콘텐츠 마케팅 및 프로모션 같은 내용을 다룰 때 튀어나오는 표현이다. 국가 차원의 홍보 비즈니스에 초점을 둔 이 표현은 동시대예술과 관련해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첫째 문화전쟁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 사회, 역사 이슈들에 대한 철학적 조망을 포함한 가장 상위의 논쟁과 도전들을 가리킨다. 둘째로 문화전쟁은 이러한 상위의 전장에서 지식인과 예술가 집단이 가장 도전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관점을 세계 내에 투영하고 관철시키는 ‘가치의 전쟁’이자 ‘정신적 수월성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세 번째는 문화전쟁은 이러한 논의의 전장에서 각각의 국가나 이해 집단들이 자신들의 명분을 드러내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투여하는 사건이 되었다. 동시대미술은 이러한 문화전쟁이 벌어지는 영역들 가운데 가장 ‘심화’ 단계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동시대미술은 이미 가장 비대중적(non-popular)이고 철학적인 기여들로 채워진 지적인 역동성의 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향을 분명하게 반영해온 것이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와 같은 초국가적 거대 전시다. 2년이나 5년 간격으로 벌어지는 이 행사들은 약 20년 전부터는 모든 분야의 지식인들이 참여하여 당대의 모든 이슈와 쟁점에 대한 토론과 미학적 전위, 교육과 출판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들로 발전했다. 여기에 10년 간격의 독일 뮌스터 공공조각프로젝트가 같은 시기에 열리면서 우리는 동시대미술에서 일어나는 문화전쟁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건을 접하고 있다.

베니스-카셀-뮌스터로 이어지는 ‘그랜드 투어’(르네상스 이후에 유럽의 귀족들이 반드시 치러야 했던 통과의례와도 같은, 유럽을 가로질러 이태리로 가는 여행)에 금년에도 수많은 한국인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바젤아트페어를 비롯한 여름 시즌의 주요 전시들까지 포함하면 동선과 일정은 더욱 길어진다. 1997년에는 IMF 외환위기와 겹치면서 한국인들이 거의 해외에 나서지 못했지만, 2007년 ‘그랜드 투어’ 때에는 오프닝에 맞춰 베니스, 카셀, 뮌스터를 잇는 여정으로 한국 방문객이 300백 명 가까이 찾았다. 상당수가 국내 미술관 아카데미 회원이거나 현대미술 테마투어에 참여하는 애호가들이었는데 이들이 버스로 이동하면서 카셀이나 뮌스터 같은 소도시에서는 호텔 방을 잡기 힘들 정도로 한국인들이 붐볐다. 오프닝 기간의 호텔 예약은 1년 전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년에도 이미 상당수 호텔의 예약이 마감되었을 공산이 크다. 유감인 것은 2007년에는 중국과 일본 작가 수십 명이 이들 전시에 초대받았음에도 한국 작가는 베니스 한국관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이 대규모 전시들에 참가하지 못했던 점이다. 오프닝의 수많은 한국인은 다른 나라 작가들의 전시 오프닝을 빛내주러 그 먼 여행을 한 셈이다. 도쿠멘타 경우에는 1977년부터 참가한 백남준과 1992년의 육근병을 제외하고는 지난 2012년 20년 만에 양혜규와 문경원/전준호가 초대를 받았다. 이번에 한국 작가가 얼마나 초대되었는지는 참여작가 리스트가 공개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번 ‘그랜드 투어’까지 한국 미술계는 이 최상위 무대에서 구경꾼 신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국제무대에서 한국 작가의 존재를 알릴 전문가의 활동이 부재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국제적 ‘문화전쟁’의 수준에서 쟁점들을 드러내고 발화시킬 작업을 보여줄 작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카셀 도쿠멘타의 예술감독은 2014년까지 10여 년간 바젤 쿤스트할레 관장을 역임한 폴란드 출신의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다. 그는 이번 도쿠멘타의 주제를 ‘아테네로부터 배운다’로 정했으며 행사도 아테네와 카셀에서 함께 열린다. 유럽과 세계가 출구 없는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에 빠졌다는 전제하에 이를 헤쳐 나가는 데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결정적인 역사적 순간으로서 서구 민주주의의 기원인 아테네를 다시 소환한 것이다. 2012 부산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았던 로저 브뤼겔(Roger Buergel)과 루스 노악(Ruth Noack)이 총감독을 한 2007년의 12회 전시에서는 〈형태의 이주(Migration of Forms)〉라는 주제로 총감독의 주관적인 미학 관점이 강하게 반영되었으며, 카롤린 크리스토프-바카르기에프(Carolyn Christov-Bakargiev)가 총감독을 맡은 13회 전시는 〈붕괴와 회복(Collapse and Recovery)〉이라는 주제로 글로벌한 시대적 이슈들을 다루었다. 특히 이 전시에서는 몇 개의 주문형 상주 프로젝트를 1년 동안 카셀 현지에서 진행한다던가, 이제까지 다루어진 적 없는 급진적 방식으로 전시공간의 연출하면서 전시 규모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도쿠멘타 특유의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퐁피두센터 내 현대미술관에서 수석큐레이터로 활동해 온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이 예술감독을 맡는다. 아직 전시 주제가 발표되지 않아 구체적인 방향을 알 수 없지만 유럽을 휩쓸고 있는 인종, 난민, 테러, 극우, 유럽의 분열, 전쟁의 공포와 같은 시의적 이슈들이 함께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참고로 2015년에는 오쿠이 엔위저가 〈세상의 모든 미래들(All the World’s Futures)〉이라는 주제 안에서 발터 벤야민과 마르크스가 미래를 향해 투사했던,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린 세계관을 다루었으며, 2013년에는 마시밀리아노 지아니가 〈백과사전 궁전(The Encyclopedic Palace)〉이라는 주제로 지식과 꿈의 실현, 유토피아에 투영된 인류의 열정에 대해 다루었다. 이 두 예술감독은 모두 근래에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한 만큼 한국 작가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크리스틴 마셀은 지금까지는 한국과 협업한 적이 없는 만큼 어떤 한국 작가들이 참가하게 될지 궁금하다.

1977년에 시작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카스퍼 쾨니히(Kasper Konig)가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으며 10년마다 열리는 전시의 총감독을 맡고 있다. 뮌스터는 독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바 있고 아테네, 로마 등과 함께 ‘유럽 역사유산(European Heritage Label)’에 오를만큼 유서 깊은 도시이며, 대학생 수가 6만 명에 달하는 대학도시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공공조각을 설치하겠다는 생각을 실현에 옮기면서 뮌스터는 일본의 에치고 쓰마리를 위시하여 세계의 수많은 도시가 공공조각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한국에서도 안양조각축제를 비롯하여 뮌스터를 모델로 한 공공조각 프로젝트가 다수 이루어져 왔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멋있게 낡은, 신나게 젊은(Enchantingly Old, Excitingly Young)〉이다. 40년에 이르는 프로젝트를 통해 설치된 지 오래된 작품들과 새롭게 설치된 작품들의 조화와 역사적 공존이 강조된 표어라고 하겠다.

바젤아트페어는 잘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아트페어라기보다는 바젤이라는 도시 전체가 만들어내는 예술적 프로그램들의 오케스트라가 방문의 내용이다. 바이엘러 미술관, 샤우라거, 쿤스트할레, 비트라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수준 높은 전시프로그램들, 같은 시기에 열리는 리스테, 볼타, 스코프 등의 중소 아트페어들까지 보자면 며칠이 걸리는 일정이 된다. 게다가 바젤아트페어 부대행사인 언리미티드와 매번 새롭게 제안되는 프로젝트 및 강연들은 가히 매년 열리는 중소 비엔날레급 행사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다. 개막 시기로 보았을 때 프리뷰/오프닝 행사는 베니스 비엔날레 5월 10~12일, 도쿠멘타 6월 8~9일,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6월 10일, 아트바젤 6월 15~18일 순서로 열린다.

철학, 문학과 같은 인문학적인 영역의 역할이 커져가는 동시대미술의 장에서는 유럽의 지식인과 전문가들, 그리고 미술관과 이러한 초국가적 거대 전시들이 주도하는 국제적 예술제도의 틀이 어느 때보다 공공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고급문화예술 영역에서 창조적이고 주도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권 내부에서 그러한 역량과 자원을 쌓아야 한다. ‘문화전쟁’을 콘텐츠와 시장의 주도권 싸움으로 국한하는 것은 지나치게 수준 낮은 생각이다. ●

REGIONAL NEWS

광주

젊음의 열기가 만드는 빛의 조화
〈빛 2016〉 2016.11.30~2.26 광주시립미술관

사진, 조각, 설치, 회화, 영상 등 시각예술 장르를 망라한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있다. 전국 시·도립미술관 큐레이터와 평론가들의 추천 및 심사과정을 거쳐 선별된 김인숙, 김화람, 이승수, 정광희, 홍원석 총 5명의 작가는 독특한 시각과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업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재일교포 3세 김인숙은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 서있는 교포들이 겪는 정체성의 아노미를 사진기로 포착했다. 김화람은 금속성 철판에 새겨진 텍스트 사이로 빛을 투과시켜 몽환적인 환영의 공간을 선보인다. 제주도 출신의 이승수는 돌과 구리를 이용한 공간 설치작업을 진행했는데, 구리선의 감각적인 조각 사이로 채워지는 그림자의 음영이 독특하다. 정광희는 서예와 한국화를 접목한 수묵 설치 작업을 통해 동양화의 현대적 접근방식을 고민했다. 홍원석은 흔들리는 택시 안에서 바라본 불안한 시선으로 아버지와의 추억을 따라가며 애잔한 그리움의 정서를 영상에 담았다. 작가마다 전시공간이 독립돼 있어 각각의 고유한 색감이 잘 드러나 지루하지 않은 동시에 저마다의 개성이 어우러져 발산되는 통일성을 찾을 수 있다. 지난 16년간 청년작가 지원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온 하정웅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의 뜻과 같이 젊음의 열기를 발산하는 작가가 늘어나 그들이 만들어가는 빛의 조화를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부용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사업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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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의 감귤농원에서 만나보는 백남준
〈백남준 언플러그드〉 2016.11.12~2.28 중선농원 갤러리2

제주
작가 백남준 작고 10주년을 기리는 전시가 제주 중선농원 갤러리2에서 열리고 있다. 감귤 창고를 개조한 전시공간에는 비디오 조각부터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관객을 맞이하고 백남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회화작품 〈노(魯)〉와 드로잉 작업 〈무제〉는 백남준의 중학교 동창인 공로명(동아시아재단 이사장)의 소장품으로, 백남준이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한 것이기도 하다. 크고 화려한 그림보다 편지 같은 소박함이 느껴지고 백남준의 인간미가 담겨 있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 오른편에는 가부좌를 틀고 있는 부처를 형상화한 〈블루 붓다〉가 있는데, 네온사인과 TV로 형상화한 부처는 기계와 인간, 육체와 정신, 동양과 서양, 물질과 비물질 사이에 위치하며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선뜻 결정하기 힘든 어떤 교차 지점을 시사한다. 이 작품은 1994년 백남준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뉴욕 구겐하임 전시의 보증인이자 컬렉터로서 인연을 이어간 김수경 문인의 소장품이다. 새장 안에 소형 모니터, 무전기, 청자 그릇이 있는 〈케이지 5〉는 목기 컬렉터로 알려진 작가 김종학의 소장품이다. 안에 담긴 TV와 청자에서 현대와 전통, 김종학과 백남준의 관계와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TV 화면에 나타나는 존 케이지의 모습에서는 그가 백남준의 작업세계 확립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으며 그 의미가 어떠한지 가늠하게 한다.
언플러그드는 ‘전기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번 전시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작품뿐 아니라 작품에 전원이 들어오기 전까지의 과정, 즉 언플러그드된 백남준의 작품에 보다 집중한다. 작품을 구상하고 이를 위해 소통한 흔적, 그리고 그와 교감하고 교류한 지원자와 동료 또한 작품 너머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승미 미술사

김화람 작업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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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미술 언어로 만나는 동학(東學)
〈동학(東學)〉 2016.12.9~2.5 전북도립미술관

송만규_新全州和約 - 평화통일이다_장지에 수묵채색_세로 280센치, 가로 1,030센치_2016

송만규 〈 新全州和約-평화통일이다 〉 장지에 수묵 채색 280×1030cm 2016

예술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정신을 이끌어내는 전시가 〈동학〉이란 이름으로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북에서 발생한 동학농민혁명과 그 모태가 된 동학의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살펴보는 자리다. 단지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고자 관계자들은 전시에 앞서 현장을 답사했고 신영우 충북대 명예교수와 소설가 이광재의 특강도 진행됐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롭게 제작된 작품과 동학에 관련된 기존 작품을 합하여 총 70점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전시에 참여한 19명의 작가는 상상력을 입힌 작품으로 오늘의 문제 혹은 민주주의의 가치, 정권의 부패와 이에 대한 척결 등 동학의 정신을 환기하고 있다. 외세 일본군에 맞서는 민중의 힘을 동학으로 보여주는 여러 회화작품부터 전봉준 묘지를 만들고 이에 참배하는 관객이 그 흙을 한 봉투씩 가져가게 하는 박문종의 설치작업 〈전봉준지묘〉, 최제우의 얼굴이 가끔씩 서양 사람의 얼굴로 바뀌는 영상작업을 통해 서구 열강에 맞선 동학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박경종의 〈동학〉, 그리고 동학농민들과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맞서는 군사적 장면들을 세로 4.8m 가로7.5m 규모의 거대한 화면에 담아낸 서용선의 대작 〈동학농민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저마다 다양한 해석과 표현방식으로 동학을 이야기하였다. 비교해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이다.
양승수 소리문화의전당 문화부장

대전

대전의 국제예술가모임 DJAC를 아시나요?
〈제10회 정기 전시회〉 2016.12.8~13 우연갤러리

대전 수니혼2

수네 혼 〈 Bound by Fiction 〉 구리, 석고, 황동 15×17×23cm 2016

미국, 남아공, 아일랜드, 캐나다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대전’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이는 ‘대전국제예술가모임(DaeJeon Arts Collective, 이하 DJAC)’을 만들었다. 모임이 결성된 2011년 당시엔 회원 대다수가 외국인이었지만 점차 한국 작가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조합 형태의 이 모임은 매년 봄가을에 정기전을 갖는데 지금까지 25명의 작가가 창작워크숍, 연극, 콜라보레이션 회화 등을 진행해왔다. 올해 전시에서는 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과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인터랙티브 작업이 유독 눈에 띄었다. 전문 작가부터 아마추어 작가까지 DJAC는 어느덧 기량을 쌓은 작가를 다수 배출하며 대전 예술의 어엿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유현주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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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작가 최영림의 화골
〈최영림 드로잉전〉 2016.12.3~18 인디프레스 부산

부산
청사포에 위치한 인디프레스 부산에서 작가 최영림 탄생 100주년 기념 드로잉전이 열렸다. 최영림은 1930년대 후반 일본의 다이헤이요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일본 판화를 대표하는 무나카타 시코의 문하생으로 목판화를 익혔다. 또 그의 고향인 평양에서 박수근, 장리석, 황유엽 등과 주호회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이번 전시는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중
한 명임에도 100주년을 맞이한 이중섭, 유영국에 비해 저평가 된 최영림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6·25전쟁 당시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검은색이 주조를 이룬 ‘흑색시대’를 이루었고, 이후에는 캔버스 위에 모래와 흙을 뿌려 표현한 ‘황색시대’가 이어졌다. 그림의 뼈대라고 하여 드로잉을 ‘화골(?骨)’이라고도 일컫는다. 이번 전시에는 황색시대에서 설화시대 사이, 1969년부터 1970년 사이에 제작된, 최영림 작품의 모티프라고 할 수 있는 드로잉 23점이 전시됐다. 나부, 선녀도, 여인과 소, 나부 군상, 불상, 보살, 심청전 등 최영림만의 자유분방한 필치가 두드러지며 대범한 선묘 사이에 무심한 듯 사용한 색, 스케치북이 겹치면서 생긴 그림 자국들이 각각의 작품에 희미하게 번진 모습 등이 흥미롭다.
박수지 독립큐레이터, 《비아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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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기억할 그리고 살아갈 역사 속에서 여성인권의 길을 찾다
〈자갈마당시각예술아카이브: 발화, 문장의 외부에 선 행위자들〉
2016.11.23~2016.12.4 봉산문화회관

대구 윤동희

윤동희 〈언니의 배〉 채색된 꽃신, 단채널 비디오 (각)45×197.5×54cm 가변크기 2016

대구에는 속칭 ‘자갈마당’이라는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 1908년 허가받은 매매춘, 즉 공창 지역이던 대구읍성 북서쪽(지금의 중구 도원동) 일대 야에가키조(八重垣町) 유곽에서 비롯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윤락행위등방지법’ ‘성매매특별법’ 등의 정책이 발효되었음에도 이곳에서는 여전히 종사 인원 200여 명에 달하는 40여 개의 업소가 영업 중이다. 100년 이상 존재해온 자갈마당이 비로소 폐쇄될 가능성이 커진 것은 불과 50m 떨어진 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자갈마당이 여성 인권 침해라는 당위성의 논리로 폐쇄되는 것이 아니라 도심 개발과 환경 개선의 일환으로 폐쇄된다면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여성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폭력적으로 밀려나게 된다.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지역 개발에 의해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묻혀버리는 과거가 될 자갈마당을 통해 묵시적으로 방관되어온 성매매 문제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성매매 여성이 처한 비인권적 현실을 환기하고자 〈자갈마당_기억 변신 프로젝트〉를 주관하였다. 이번 프로젝트의 전시를 기획한 최윤정 큐레이터는 “자갈마당을 둘러싼 서사에서 철저한 ‘바깥의 행위자’로서” 연구자 또는 관찰자의 역할로 대상을 객관화하고자 하였다고 언급한다. 13팀의 참여작가가 함께 조사하고 연구한 과정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담긴 작품들은 자갈마당이라는 장소와 역사, 인권문제에 대한 예술가들의 발언이다.
이민정 미술사

 

CURATOR'S VOICE 복행술

2016.11.17~12.11 케이크 갤러리

조은비 | 독립 큐레이터

〈복행술〉 전시의 철수 작업은 단 세 시간 만에 끝났다. 설치와 철수를 반복해온 지난 몇 년간 줄곧 그러했지만, 전시를 준비를 해온 수개월의 시간에 비해 전시 공간의 ‘리셋’은 너무나 신속하고 명쾌하게 끝이 난다. 물론 전시의 생명력이 그 물리적 현존에 의해서만 유지된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전시 도록과 아카이브, 작가-기획자-관객이 공간에서 함께 나눈 질문과 이야기들의 무형의 연결… 그렇게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지난 시간을 복기한다. 물론 아직(혹은 영원히) 전시와의 거리두기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이를 통해 전시라는 일시적 사건을 향해온 내 생각의 실타래를 짧은 지면을 빌려 공유하고자 한다.
이 전시는, 오늘날 언어가 처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말의 생산과 유포, 전파가 빠른 시대에 문장은 짧아졌고 단어들은 ‘우물가(井)’를 맴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키워드에 익숙하지 검색창에 ‘문장’을 써넣지 않는다. 조합된 문장보단 파편적인 단어가 더 많은 검색 결과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효율적인 소통을 가능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대상이나 사건을 ‘키워드’로 지시해 이외의 것은 빠르게 망각시킨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몇 개의 ‘키워드’는, 지금 이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환원이며 본질 실종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각종 레토릭에서부터 혐오 발언 등 오늘날 더욱 교묘하고 악랄해진 ‘말’의 홍수는, ㅡ???인터넷의 위력이 거세진???ㅡ 동시대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손쉬운 명명 행위를 통해 대상과 사건에 딱지를 붙이고 낙인을 찍어 분류하는 폭력을 일상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하나, 내가 주목한 것은 비단 매체 환경의 변화와 맞물린 언어의 무기력함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명료한 개념 속에 자리하기 힘들거나 자극적인 말에 의해 배제되어온 ‘언어’를,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그 의미에 더 섬세하게 주목하고 싶었다. 이러한 고민을 둘러싸고, 나는 언어의 표면에 ‘막(veil)’을 친다는 비유로 전시의 알레고리를 제시했다. 의미를 하나로 규정하려는 ‘익숙한’ 의지 앞에서, 미술(언어)에 잠재한 ‘불확정성’을 전면에 내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무언가를 직시하기 위해선 ‘키워드’가 대상의 표면에 완전히 들러붙기 전에, 그 사이로 침투해야 한다는 일종의 ‘미적 개입’에 대한 개념적 은유였다. 물론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작가(팀)의 작품이 실제로 언어적 작용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의 집단적 망각과 퇴행의 징후들을 ‘해마’를 통해 우화적으로 드러낸 김영글의 영상부터, 유토를 입힌 구조물이 케이크 갤러리의 표면을 느린 속도로 회전하는 이미래의 “뼈가 있는 것”, 전시장 곳곳에 의뭉스럽게 걸려 있는 정희승의 사진과, 둥근 표면 안쪽에 공통적으로 ‘빈 공간’을 품고 있는 이제의 회화, 그리고 서신의 물음표에서 출발해 미지의 오브제를 만들어낸 양윤화+이준용의 작업까지. 말하자면,
그들의 개별 작업은 공통적으로 물음에 즉답하지 않고, 행위는 일정 자세를 유지하며, 사물은 미완의 상태에 머무른다. 하나의 ‘언어’에 ‘안착(landing)’하지 않고 기표와 기의 사이를 끊임없이 배회함으로써 말의 어리석음 또는 오류를 시각적,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전시기획’이 삶에서 생겨난 구체적인 질문을 미술이란 형식을 통해 물질화해내는 ‘(공동의) 순간’이라고 한다면, 나에게 전시의 첫 질문은 과연 어떻게 되돌아올 수 있을까? 요컨대 나는 이 전시를 통해서, 무수한 말에 짓눌리는 작금의 사회에서 쉽게 잊히거나 누락된 존재의 발화 방식을 제안하고 싶었다. 미술에 있어 그 모호성이야말로 이야기를 발생시키고, 이를 ‘전시화’하게 하는 가능성이지 않을까? 글을 마무리하며 〈복행술〉 서문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자 한다. “규정되지 않는, 그럼으로 미지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불확정적인 것들은, 한 가지 해석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을 스스로 배태하고 있기에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 〈복행술〉은 조은비가 기획해 케이크 갤러리(2016.11. 17∼12.11)에서 열린 전시로, 김영글, 이미래, 이제, 정희승, 양윤화+이준용 작가가 참여했다. ‘복행’(復行)은 항공기가 착륙 직전에, 행로를 뒤집어 다시 날아오르는 조작을 의미한다. 이 전시에서는 안착하지 않고 우회하는 기술이라는 의미로 ‘복행술’이란 조어를 만들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cakegallery.kr 참고.

위〈복화술〉 전시광경. 이제 〈더미〉(왼쪽 벽) 캔버스에 유채 150×200cm 2010

CRITIC 양유연 불신과 맹신

2016.11.24~12.29 갤러리 룩스

신양희 | 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

양유연의 〈불신과 맹신〉에서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연민을 엿볼 수 있다. 어떤 날 어떤 시간에 벌어진 사건, 그리고 그가 마주했던 순간이 그림이 되었을 때, 그 세계가 밝지 않다는 것, 그 세계를 살아내는 인간의 모습도 결코 가벼울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 세계는 음울하게 보인다. 이처럼 양유연은 세계의 모순 앞에서 불안하고 불완전한 상태에 놓인 인간을 그려냄으로써 모순의 한 측면에 주목한다. 그래서 빛을 세밀하게 조절하였지만 어둠은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물감이 깊숙이 스며들었음에도 비집고 나온 상처와 같은 흔적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림들을 몇 가지 층위로 나누어보는 것은 전체적인 맥락을 훼손하는 행위이겠지만, 그럼에도 구별되는 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허수아비1〉, 〈쇼윈도우〉, 〈명암〉, 〈질식〉에서 허수아비와 마네킹은 인간을 대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그 자신의 본분에 맞게 경화된 표정과 부자연스러운 신체를 가진다. 그들을 인간이라 볼 이유는 없을 테지만 그렇게 보지 않을 이유도 없다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 희망 없음 앞에 속수무책이 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나’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그렇게 무기력하게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작업들이 인간의 모습을 표면으로만 다루고 있다면, 〈엉킨 손〉, 〈에우리디케〉, 〈붉은 못(사냥)〉, 〈흔(痕)〉, 〈Stuck〉은 좀 더 극적인 사건을 끌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인물들은 외부로부터의 충격 혹은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여러 손에 짓눌린 얼굴, 얼굴을 죄어 오는 손, 핏빛 물속에서 몸을 온전히 숨길 수 없는 헐벗은 신체, 온몸에 남은 구타의 흔적,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야 마는 신체. 이 인물들의 고통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알 길은 없다. 다만 이 그림들이 현실의 어떤 사건들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이들의 통증을 어루만지는 작가의 손길이 느껴질 때,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삶이 우리를 응시하고, 우리는 그것을 방기하거나 기만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그림 속 인물들은 안정된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인물이 부재한 〈백열〉, 〈결코, 이어지지 않는 길〉,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에서도 음울한 상태는 이어진다. 현재의 어떤 장소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이 그림들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어둠 속의 빛마저 구원을 약속하지 않고,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도 까마득하다. 이 풍경들은 현실을 회피하듯 막을 내린다. 그렇게 작가가 유보한 세계는 또다시 우리의 현실로 이어질 것이다.
양유연이 마주한 현실은 어둡고 우울한 감정을 유발하는 인물, 사건으로 치환되어 있다. 세상을 향한 그리고 인간을 향한 작가의 연민은 한 측면으로 귀결됨으로써 우리 삶의 어두운 측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서치라이트〉의 응시하는 그 사람처럼, 우리는 양유연이 그려낸 고통스러운 삶과 그 삶에 놓인 인물들을 응시하는 목격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배제된 그 어떤 그림도 무의미하다고 그와 함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나친 연민을 넘어서는 일도 필요할 테지만.

위〈허수아비1〉(오른쪽) 장지에 아크릴 148.5×105.5cm 2015

CRITIC 김윤경 Reverse and Penetrate

2016.12.2~1.15 김종영미술관

이수균 |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13회 김종영조각상’을 수상한 김윤경 작가의 개인전이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김윤경은 신체(특히 피부), 옷, 건축적 공간, 생물학적 환경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피부는 신체의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는 막으로서, 내부이면서 외부, 안이면서 바깥을 의미한다. 또한 피부는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 고정된 형태를 부수고 시시각각 변화한다. 따라서 피부는 고정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예술가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다면 이러한 피부의 이중성과 다의성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가 피부의 이중성에 대해 품고 있는 철학적 고찰과 예술적 성찰의 결과가 바로 김윤경 작가의 전시 제목 ‘Reverse and Penetrate’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피부를 뒤집어서 안으로 파고든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의미를 전달한다.
작가의 피부에 대한 관심은 그 피부와 맞닿아 있는 옷으로 이동한다. 즉 작가의 상상력은 수사법상 환유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경향이 있다. 환유란 시간이나 공간상 가까운 것들을 동일시하는 것을 말하는데, 갈매기를 보고 바다를 연상하거나, 잔을 보고 술이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따라서 우리의 피부와 닿아 있는 옷을 피부 혹은 어떤 사람의 신체로까지 상상하고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렇게 피부나 인간의 신체로 의인화된 옷을 통해서 작가는 다시 그 조작 가능성을 더욱 확장한다. 즉 옷이 본래 가지고 있던 사회적 기능과 옷이 가지는 피부와의 동질성을 결합하여 현대인이 사회 속에서 처한 위치나 고립감, 정체성의 혼란, 또는 정체성 재발견을 위한 몸부림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에게 유연하면서도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가진 옷을 통해 인간의 문제를 탐구하고 재발견하는 것이 실제의 인간 보다 훨씬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그 표현의 가능성이 더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작가의 설치작업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창문이나 문, 혹은 피부의 역할을 하는 벽면과 같은 건축 공간이다. 즉 건축적 공간은 다시 환유적 상상력의 영향을 받아 거주자의 신체 연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서 창이나 문은 피부처럼 공간의 안과 밖을 가르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 당연히 작가는 이번에는 은유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유사한 기능을 가진 두 대상을 동일한 것으로 상상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김윤경은 문이나 벽을 설치하고 옷감을 배치하며 피부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그 옷감 위에는 에볼라, 지카, 메르스 바이러스들이 우글거리듯 온통 가득하다. 바이러스 역시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왕래하는 인간 신체의 안이면서 바깥인 존재이다. 그렇다면 안과 밖인 신체, 경계나 형태가 모호한 신체,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관계, 유동적인 사회적 관계 등을 통해서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묻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는 김윤경 작가가 영혼과 육체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한다는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부와 옷, 신체를 상징하는 구조물을 통한 작가의 작업은 차후로도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날 것이다.

위 〈Viruscape-4 Windows〉(왼쪽) 혼합재료 173×75×35cm(각) 2016

CRITIC 이동욱 LOW TIDE

2016.12.29~7.9 아라리오뮤지엄 제주 동문모텔Ⅱ

하진희 | 제주대 미술학과 강사

우리는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모든 것이 속도와 빠름의 미학으로 포장된다. 인간이 존재 의미를 사색하고 사유의 시간을 보내며 느림의 미학을 즐기면서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그 산더미 같은 정보의 환영에 의해 산산이 부서진다. 가슴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에게 이동욱의 작품은 ‘왜’라는 의문을 던진다.
이동욱의 작품 앞에서는 좀 더 찬찬히 그 작품을 들여다보고 음미하고 싶어진다. 그의 대학시절의 작품, 두 남자가 바퀴를 돌리는 주제를 시작으로 인간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그의 고민은 시작된다. 크기가 다른 두 남자가 끊임없이 바퀴를 돌린다. 두 남자의 크기나 돌리는 속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둘 중 누구든 돌리기를 멈추면 안 된다는 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그 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일상의 바퀴를 끊임없이 돌리면서 각각의 하나는 다른 하나의 존재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어 슬픈 현실이다.
이동욱의 인간과 인간이 처한 현실에 대한 탐구는 그가 선택하는 주제, 재료와 기법에 의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금속의 강인함과 차가움을 달콤한 벌꿀의 부드러움으로 스르르 무너뜨린다. 그래서 결국은 형태가 없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녹여버리는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또한 전쟁의 수많은 죽음을 넘어 얻어진 승전 트로피에 흘러내리는 벌꿀은 전쟁의 살생을 감추는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그 달콤함에 취하는 순간 어느새 우승의 영광은 녹아 없어진다. 또한 유리병 속에 갇힌 남자의 섬뜩한 모습에는 이동욱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암시와 함께 끊임없이 바퀴를 돌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이동욱의 인간에 대한 탐구는 서슬 퍼런 장도 위에 드러누운 누드의 남자, 때로는 유리병 안에 갇힌 기이하면서도 미숙한 남자, 벌꿀로 속이 채워진 도금된 금속 위에서 총을 쏘는 남자, 원반을 던지는 남자, 장도를 끄는 남자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동욱은 이처럼 다양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과 삶의 무게를 가차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재료인 금속, 폴리머클레이, 유리 등은 작가의 생각과 기법을 유기적으로 연관시키기보다는 서로 다름을 통해 보는 이의 시선을 묶는 역할을 한다. 작가가 이러한 자신에게 익숙한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어 주제의 순수성을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택하는 작가의 실험을 기대해 본다.
이동욱이 ‘모두 다 흥미로운’ 을 위해 수집한 다양한 원석들을 보며 그의 부지런함과 인내심에 놀라게 된다. 또한 그가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와 허무를 뛰어넘어 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오르려 시도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연의 개체들이 지닌 길지 않은 거친 아름다움 앞에서 인간의 몸짓은 한없이 작고 초라할 수밖에 없음에 대한 암시가 아닐까. 그러나 이동욱이 처음 암시했던 것처럼 그는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비상을 위해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바퀴 돌리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위〈Amor〉 혼합재료 15×10×10cm 2008

CRITIC 김형석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2016.12.2~10 갤러리 담

권진 |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이번 김형석의 개인전을 함께 본 다른 작가는 김형석의 회화에서 ‘계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는 이 표현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의 대화는 예전 작품들과 비교해서 보자면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작품들이 화면의 형식이나 회화의 물질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다른 차원으로의 이행을 그려냈다고 축약된다. ‘계절’은 빛과 대기로 이루어진 환경이고, 자연의 궁극적인 질서이며, 일정한 공간에서 형성되는 어떤 시간의 특성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계절은 작가 김형석이 선택한 어떤 의식과 유사성을 갖게 된다. 이 의식은 ‘생활-세계로부터 안간힘을 써서 벗어나’ 감각들로 수렴되는 것들을 이미지의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미학적 몰입 혹은 생생함이라고 볼 수 있다.
2011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개인전을 열어 온 작가의 이번 전시는 그동안 발표했던 회화 시리즈의 연속선에서 읽힌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넓게 보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데, 그것은 작가의 표현대로 상실과 소진의 시대에서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을 회복’하는 것이다. 회화의 존재론적 질문과도 같은 주제를 붙잡고 있는 작가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활의 범주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재현하고, 이들을 무질서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재배치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여기서 김형석의 회화는 사실적 재현
에서 더 나아가 그 본질을 마주한다는 의미에서 리얼리즘적인 태도를 지닌다.
그것은 어떤 시각적인 유사성이나 소재의 구체성으로 드러나지 않는, 표피적인 유사성과 구체성을 부정하는 회화가 역설적으로 획득하는 인식적 감각의 리얼리즘이다.
철학적 사유를 가시화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김형석 회화의 형식이 푸코가 논한 벨라스케즈나 마그리트의 회화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형석의 회화가 지금 현재 한국이라는 지역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서구의 미술사로 편입되지 못하는 다행스러우면서도 불행한 지점은, 그의 회화에 내포된 지역적 도상에서 출발한 동시대적 감각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 산, 손, 건축적 공간, 불, 바람, 도자기 등은 현실의 그것들과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현실의 상태를 암시하는 상징적인 도상으로 존재하고, 이 상징들은 서로 어긋난 시간과 공간에 얽혀 어떤 비가시적인 정신 상태를 전한다. 그리고 이 불명확하고 징후적인 정신의 상태에서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자가 아닌 그림을 보는 자의 위치에서 동시대적 감각과 동화되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눈’을 얻는다. 다른 말로, 공감을 얻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전시는 사상 최대의 인원이 집결하는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지금의 시점에서, 주요 현장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를 통과해야 진입할 수 있는 삼청동의 조그만 갤러리에서 열렸다. 어수선한 시국의 현장을
거쳐야만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그의 회화를 보는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어느 공간으로 훌쩍 넘어가는 일종의 ‘신성한 힘’을 경험한다. 이러한 추상적 차원의 경험은 현실에 시사적인 문제나 사건적 배경을 직접적으로 묻지 않지만, 대신 현대 사회에서 회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조건을 더욱 두드러지게 인식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은 지금 시대에서의 회화가 어떻게 사회심리적인 사고를 촉발시키는지에 대해 엇갈리는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찾고자 했다면 반대로 우리는 그림을 ‘보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회화를 통해 호출된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특정한 감각이 전이되는 생생함이 있다. 이 생생함은 현재 사회에서 무한히 가변하는 여러 조건, 상황, 이미지와 그것의 기호들이 우리와 맺는 복잡한 관계의 작용에서 비롯된다. 시시각각 변화해가는 감각 세계의 경험을 우리는 김형석 회화의 ‘계절감’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도〉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60×60 cm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