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rdon Matta-Clark Photo: Cosmos Andrew Sarchiapone ©The Estate of Gordon Matta-Clark; Courtesy The Estate of Gordon Matta-Clark and David Zwirner, New York/London/Hong Kong.

[WORLD REPORT] | Tokyo

고든 마타 클락은 일상에서 예술행위를 벌이며 예술과 일상을 경계 없이 넘나든 작가다. 그의 타계 40주기를 맞아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Mutation in Space〉가 열렸다. 시대 변화의 패러다임에 기꺼이 자신을 던졌던 고든 마타 클락의 실천의 흔적을 좇아보기 바란다.

썸네일

[KOREAN ARTISTS GOING ABROAD] | Japan

한국 문화예술의 동시대성 및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고자 해외 곳곳에 있는 한국문화원을 거점으로 현지 문화예술 전문기관과 협력을 꾀하는 중이다. 지난 8월 31일 개막한 〈One Inspiration-한국 전통문화에서 찾은 최초의 아이디어〉 제하의 전시는 한국국제문화 교류진흥원이 추진하는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프로젝트 일환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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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여행, 그림이 되다

《월간미술》은 아트투어전문 여행사 아츠앤트래블과 함께 차별화된 예술문화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 선보였다. 그 첫 번째로 10월 13일부터 22일까지 ‘여행, 그림이 되다’를 주제로 강정모 아트투어디렉터(아츠앤트래블 대표, VIATOR 선정 세계 10대 가이드)와 함께 서양미술사 거장들의 영감의 진원지인 프로방스 지역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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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ARTIST GOING ABROAD] Beijing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이다. 그 변화의 속도는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예술과 미디어학회가 주최한 〈 2018 베이징 국제미술초대전 – 예술과 미디어, 실크로드〉는 변화 속도를 줄이고 사유의 깊이를 더하자는 취지를 담은 전시로 보인다.

〈 오백 명의 남자들과 게임 그리고 경품: 면봉 한 봉지, 냅킨 한 봉지, 볼펜 한 자루, 설탕 1kg들이 한 봉지, 액자,
소금, 감자 한 봉지…〉 벽 위에 드로잉, 사진콜라주, 종이에 프린트, 3개의 라이트패널 가변크기 2018

[KOREAN ARTIST GOING ABROAD] Birmingham

믹스라이스의 개인전 〈이주하는 감각(Migrating Flavours)〉은 이주하는 존재들의 연대와 타자들의 주체되기에 대해 말한다. 영국에서 열린 믹스라이스의 첫 개인전으로 버밍엄에 위치한 이스트사이드 프로젝트(Eastsideprojects)의 재개관을 기념하는 전시였다.

Okwui Okpokwasili 〈Sitting on a Man’s Head〉 2018, Inszenierung einer Partitur für kollektiven Ausdruck, ein fortlaufender Prozessder Manifestation eines ich, du, wir und uns, Projektentwicklung gemeinsam mitPeter Born, Performance, Installationsansicht, 10. Berlin Biennale, KW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Berlin, Courtesy Okwui Okpokwasili, Foto: Timo Ohler

[World Report | BERLIN ] 10th Berlin Biennale

제10회 베를린 비엔날레가 6월 9일부터 9월 9일까지 아카데미 데어 쿤스트 등 베를린 전역 5개 전시장에서 열린다. “We don’t need another hero”라는 타이틀을 건 이번 베를린 비엔날레는 아프리카 출신 총감독 (Gabi Ngcobo)을 앞세워 난민, 탈식민주의 등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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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Report | SYDNEY ] Biennale of Sydney

올해로 45주년을 맞은 시드니비엔날레(Biennale of Sydney, 3.16~6.11)는 여러모로 비엔날레의 문법에서 비켜서 있는 듯하다. 생각해보라. 유럽과 미주대륙이 동시대 미술사를 양분하여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데 그 외 지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늘 경계 밖의 주변인으로 내몰리지 않았는가?

< L’amour du Risque전 > 오프닝에서 포즈를 취한 EVA&ADELE

[World Report | BERLIN] EVA & ADELE L’amour du Risque

등장 그 자체로 퍼포먼스를 완성하는 부부작가 에바와 아델레(EVA&ADELE). 이 둘의 모습은 비엔날레나 아트페어 등 세계미술빅이벤트 현장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들의 작품을 모은 회고전이 베를린의 미 컬렉터스룸에서 8월 27일까지 열린다. 연중 8개월 가량을 퍼포먼스를 벌이고자 해외에서보낸다는 그들. 고전적 의미의 성 경계를 넘나드는 그들을 《월간미술》이 전시장에서 직접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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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REPORT New Museum Triennial 2018

 New Museum Triennial 2018 Songs for Sabotage

Haroon Gunn-Salie(남아프리카공화국) 〈벽〉(바닥 설치작업) Clan Dayrit (필리핀)&Violet Dennison(미국) 〈M.O.O.P〉(사진 뒤 벽면 설치작업) 2018 Seagrass collected in the Florida Keys, resin and electrical metallic tubing conduit, Dimensions variable ㅑPhoto: Maris Hutchinson / EPW Studio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저항과 프로파간다

서상숙 | 미술사

 

Wilmer Wilson IV(미국) 〈Nev〉 나무에 스테이플과 피그먼트프린트 243.8×122×3.8cm 2017 Courtesy the artist and CONNERSMITH, Washington D.C.

 

최근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 중심지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사람(백인)을 기다리던 젊은 흑인청년 두 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매장 직원은 그들이 주문하지 않은 채 앉아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을 불렀다. 두 청년에게 수갑이 채워지는 이 장면은 현장에 있던 백인여성에 의해 그대로 촬영되었고 배포되어 엄청난 공분을 일으켰다. 필자는 그중 한 명이 남편이 가르치는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영대학을 졸업한 재원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이것이 피부색이 검은 그들이 미국에서 처한 절대적인 운명이다.

Manuel Solano(멕시코) 〈I Donʼt Know Love〉 캔버스에 아크릴 171×202cm 2017 Courtesy the artist

이 같은 일은 인종 및 여성 차별주의자로 극우적인 정책을 펴나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현 정권하에서 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불법이민자들이 추방되고 합법이민자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불편하며 흑인은 범죄자로, 여성은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 그들의 위치를 재점검당하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이 뉴스를 보면서 뉴뮤지엄에서 한창 진행 중인 트리엔날레 <저항의 노래들>에 출품된 흑인 작가 윌머 윌슨 4세(Wilmer Wilson IV, 1989~)의 작품들이 겹쳐지며 떠올랐다. 작가가 사는 필라델피아 거리의 자동차 윈드쉴드에 끼워놓은 광고지, 거리의 벽이나 전봇대에 스테이플로 찍어 고정시켜 놓은 전단지들을 거두어 확대,  합판 위에 붙인 후 공업용 스테이플을 촘촘히 박았다. 은빛의 철로 만들어진 수천수만 개의 스테이플은 조명 아래에서 물결 같은 그림자를 만들며 그 뒤에 숨은 흑인 형상을 언뜻언뜻 보여준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남겨둔 부분만 그대로 노출된다.


Zhenya Machneva(러시아) 〈CHP-14〉 면, 리넨, 합성섬유 135×190cm 2016 Courtesy the artist

<Nev>(2017)에는 흑인남자의 늘어진 두 손과 샴페인 병만이 드러나며 <Afr>(2017)에는 한 손엔 총이 들려져 있고 다른 한 손은 총을 쏘는 듯한 제스처를 한 흑인의 손이 노출되었다. 죄 없는 흑인청년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뉴스를 본 후 이 작품은 가슴에 비수를 꽂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벽에 세워진 윌슨의 스테이플 작업 바로 앞에는 알루미늄 파이프로 만든 놀이터의 그네 세트가 설치되었다. 위에는 빨간 벽돌 한 장이 놓여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그네를 타는 순간 벽돌은 떨어져 아이의 머리를 칠 것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조성한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업하는 흑인 여성작가 다이아몬드 스팅리(Diamond Stingly, 1990~)의 작품 <E.L.G.>이다. 그 작업 옆에는 태풍이 지나간 후의 잔재를 보는 듯한 노르웨이 작가, 티릴 하셀크니페(Tiril Hasselknippe, 1984~)의 미니멀한 메탈작업 <발코니(Balconies)>(2018) 시리즈가 전시장의 침묵 속에서 유럽이 직면한 난민 문제를 언급한다.


Tomm El-Saieh(아이티) 캔버스에 아크릴 243.8×365.7cm 2017~2018 Courtesy the artist and CENTRAL FINE, Miami Beach

이번이 4회째인 뉴뮤지엄의 트리엔날레는 2011년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만든 용어, 프레카리아트(Precariat) 계급과 그들의저항(sabotage)을 주제로 한다. 정규직을 가질 수 없어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떠돌아다니는 불안정한 노동계층, 그래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으며 희망을 버린 사람들, 여성(가정주부, 미혼모 등), 노숙자, 실업자, 임시직장인을 비롯 고학력의 예술인, 작가, 프리랜서, 대학의 시간강사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밀려난 숙련공 등이 프레카리아트이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극대화에 따른 이 같은 현상이 21세기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신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빠르게 스며들며 전 세계적으로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불안을 이용한 신국수주의의 등장마저 부추기고 있다.

알렉스 가텐필드(Alex Gartenfeld, 마이애미 현대미술관)와 함께 이번 트리엔날레의 큐레이터를 맡은 게리 캐리온-무라야리(Gary Carrion– Murayari)는 전시 카탈로그에서 스탠딩의 이론을 인용하며 이번 트리엔날레가 “자본주의의 특성인 착취와 지배의 구조에 대한 저항을 요구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두 큐레이터는 지난 3년 동안 24회에 걸쳐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한 지역 등을 포함,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가들을 방문했다.

페루 작가 다니엘라 오르티즈 (Daniela Ortiz)의 50×30×30cm 크기의 세라믹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는 관람객들. 벽에 설치된 브라질 달톤 파울라(Dalton Paula)의 작품도 보인다(사진: 서상숙

6명의 미국작가를 비롯 전 세계 19개국에서 선정된 25세부터 35세까지의 참여작가, 컬렉티브, 그룹 등 26명 대부분은 자신의 나라에서 실제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액티비스트들이기도 하다. 전시작의 80% 이상이 이번 트리엔날레를 위해 만들어진 신작이며 참여작가 대부분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갖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하룬 군-살리 (Haroon Gunn-Salie, 1989~)는 머리가 없는(혹은 잘린) 남성 17명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조각을 광산에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설치한 작품 <센제니나(Senzenina, 남아공의 반인종격리정책 노래)>(2018)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2년 17명씩 두 곳에서 파업을 하던 34명의 광부가 경찰에게 총살당한 마리카나 참살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미술, 정치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다

컬렉티브 KERNEL(그리스) 〈As you said, things resist and things are resistant〉(사진 왼쪽 바닥설치작업) 알루미늄, 구리, 철, 혼합재료 500×200×170cm 2018 Photo: Maris Hutchinson / EPW Studio

근 미국의 주요 전시에 수직, 도자기, 태피스트리 등 노동집약적 핸드메이드 작업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데 이번 트리엔날레 역시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 작가 제냐 마치네바(Zhenya Machneva, 1988~)는 하나 둘 사라지는 소련의 공장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흰색 회색이 주조를 이루는 모노톤의 수직 작품(<CHP–14>(2016)) 등 태피스트리 시리즈로 소련의 몰락을 조용히 증언한다. 필리핀의 시안 데이릿(Cian Daylit, 1989~) 역시 태피스트리로 필리핀의 식민지 역사를 되새긴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수공예적 작업과정을 택함으로써 신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더불어 미술작품까지 대량생산,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현대미술의 상황에 저항한다.

다니엘라 오티즈 (Daniela Ortiz, 1985~)는 페루에서 태어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큐레이터들은 오티즈에게 페루로 돌아가 출품작을 만들도록 요청했다. 오티즈는 뉴욕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 모형에서 머리를 없앤 <콜럼버스>(2018) 등 스페인 식민정치에 망가진 페루의 과거와 현재를 50cm 높이의 실내장식용 작은 도자기 시리즈로 고발하고 있다.

흑인,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거침없는 붓질과 화려한 색조로 그려낸 작가들의 페인팅도 아름답다. 아이티 출신으로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톰 엘-사이아(Tomm El-Saieh, 1984~)의 환상적인 추상, 트랜스젠더로 의료 조치를 거부당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눈이 먼 멕시코 작가 마누엘 솔라노(Manuel Solano, 1987~)가 기억으로 그린 인물화, 미국 흑인여성들이 느끼는 고립감을 표현한 하와이 출신의 제니바 엘리스(Jenniva Ellis, 1987~)의 오일 페인팅, 축출된 독재자 무가베의 얼굴을 그린 짐바브웨의 그레샴 타피와 냔데(Gresham Tapiwa Nyande, 1988~), 케냐의 체무 녹(Chemu Ng’ok, 1989~) 등의 작품들이다.

뉴뮤지엄 트링엔날레 전시 광경 Photo: Maris Hutchinson/ EPW Studio

비디오작업으로는 중국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작업하는 쉔신(Shen Xin, 1990~)의 한국어로 상영되는 비디오 <나이팅게일의 도발(Provocation of Nightingale)>(2017~2018)이 1층 로비 갤러리에 설치되었다. 이밖에 홍콩의 왕핑(Wong Ping, 1984~), 중국의 쑹타(Song Ta, 1988~) 등 중국작가 세 명의 비디오가 선정돼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전 세계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진단하는 정기전인 뉴뮤지엄의 올 트리엔날레는 전통적 방법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선호함으로써 아날로그적 접근방식을 택했다. 디지털 시대를 주제로 한 지난 2015년 트리엔날레와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뉴뮤지엄의 외진 계단 한쪽에는 알제리아 작가, 리디아 오라만(Lydia Ourahmane, 1992~)의 작업 <유한성(Finitude)>(2018)이 설치되어 있다. 설치된 소리의 울림으로 벽에 칠해진 석회가 서서히 떨어져 바닥에 가루가 쌓이는 작품이다.

작품을 통한 작가들의 저항과 프로파간다가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잘못된 정치와 사회구조를 변화하는 힘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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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숙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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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OPIC <격자적서신>중국에 상륙한 예술혁명가들

백남준 〈푸른 부다(Blue Buddha)〉 150-2x205x250cm 1992-1998(Gallery Artlink 소장)

Lettres du Voyant

Joseph Beuys × Nam June Paik

요세프 보이스 〈We are the Revolution〉 191x100cm 1972

중국 상하이 하우아트 뮤지엄에서 백남준과 요제프 보이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1월 20일 개막해 5월 13일까지 〈견자적 서신(LETTRES DU VOYANT: Joseph Beuys × Nam June Paik 见者的书信:约瑟夫 · 博伊斯×白南准)〉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 전시는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와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을 역임한 하우아트 뮤지엄 윤재갑 관장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전시로 하우아트 뮤지엄 공식 개관전이다. 독일을 무대로 실험적인 전위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두 주역의 작품을 직접 경험한 상하이 현지 미술 관계자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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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상륙한 예술 혁명가들

유정아 | 미술사

19세기 말 상하이는 중국이 바깥 세계와 접촉하는 일차적인 통로였다. 중국인들이 사실상 외국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조계지로 몰려들면서 중국인과 서양인이 만나는 공간으로서 근대 상하이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푸둥 지역은 황푸강의 동쪽으로, ‘서양 귀신들’이 들어와 놀던 상하이 와이탄 조계지와는 달리 오랫동안 변두리로 남아 있다가 1990년 이후 본격적으로 중국 경제를 담당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경제 특구로 거듭났다. 푸둥 지역에는 현재 외국계 은행과 투자회사, 물류회사, 유수 기업의 연구개발센터, 고급 호텔과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화려한 고층 빌딩들 사이에 위치한 하오미술관(昊美术馆)에서 요제프 보이스와 백남준의 전시 ‘투시자의 편지’(Lettres Du Voyant, 见者的书信, 2018. 1.20~5.13)가 열리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랭보(Arthur Rimbaud)의 편지를 인용한 이 전시는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960~80년대 백남준의 행위미술, 비디오, 멀티미디어 작품들과, 요제프 보이스와 백남준의 협업작품들, 그리고 보이스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다수의 사진과 영상자료, 실물자료, 다큐멘터리 등의 아카이브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중국 상하이 광동구에 위치한 하우아트 뮤지엄은 원홈 아트호텔(One Home Art Hotel)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사진은 한국작가 이용백의 작품이 설치된 원홈호텔 외관. 하우아트 뮤지엄은 이 호텔내에 있다.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들
모든 대상을 눈에 보이는 현상과 다르게 관찰할 수 있는, 곧 미지의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투시력을 지닌 예술가, 시인 랭보는 1871년 5월 13일과 15일, 각각 스승과 친구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자신을 ‘투시자(voyant)’라고 불렀다. 투시자는 선지자 혹은 예언자와는 다르다. 랭보의 ‘투시자’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천부적 능력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해체를 통해 새로운 구성요소를 찾아나서는 지극히 인간적인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랭보의 편지 속 구절처럼, 시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전적인 인식”을 토대로, “자신의 영혼을 탐색하고, 이를 조사하며 시험하고 배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는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로서, “자기가 발명한 것이 느끼고 팔딱거리고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자이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는 자”이다.

요제프 보이스와 백남준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시인 랭보가 제시한 투시자는 바로 자신들이라고 유쾌하게 선언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1층 전시장에서 마치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백남준이 우리 인류에게 가져다 준 선물인 비디오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프레임 속에 네온과 각종 오브제들을 구성하여 인간의 얼굴을 형상화한 <네온 TV: 버튼>(1990), 오래된 모니터 속에서 촛불이 은은히 빛나고 있고 붓다가 그것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붓다>(1996), 고깔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온몸 곳곳에 모니터와 전자장치, 금속 등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 <로봇 피에로>(2000) 등의 작품들이, 아직은 백남준의 이름이 생소한 중국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이어 어둡고 캄캄한 방에 들어서면 여러 대의 스크린이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켜 투사하는 빛과 환영적인 이미지들을 만나게 된다. 이 중첩된 스크린들이 쏟아내는 영상 이미지에 매료된 관객들은 신기한 듯 여러 번 멈춰 서서 화면을 바라본다. 다중 모니터와 카메라, 폐쇄회로들의 복잡다단한 배치 속에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과 <바이바이 키플링>(1986)의 유쾌한 음악과 춤들이, 주파수를 변형시켜 생성해낸 전자영상 신호들, 그리고 형형색색의 영상화면들과 함께 경쾌하게 다가온다.      

요제프 보이스의 오브제 작품과 각종 포스터 등이 전시된 아우아트 뮤지엄 2층 전시장 광경. 요제프 보이스 전시는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장 그레고르 얀센이 큐레이팅 했다.

전시장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백남준과 요제프 보이스의 우정의 기록들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독립된 공간에서 큰 화면으로 다시 보게 된 <코요테 Ⅲ> (1984) 퍼포먼스에서 이루어지는 두 사람의 만남과 교감은 전시 주제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설정이었다. 도쿄의 소게쓰 홀에서 벌어진 이 퍼포먼스에서 두 예술가는 각각 검은색과 붉은색의 피아노를 맞대고 서양 고전음과 동물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기이한 하모니를 들려준다. 언뜻 들으면 두 사람이 각각 서로 다른, 그래서 결코 어울리지 않을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마치 재즈의 즉흥 연주처럼 서로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음을 알게 된다.

더불어 이번 전시에서 독일 감독 안드레아스 파이엘(Andreas Veiel)의 다큐멘터리 <보이스(Beuys)>(2016)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요제프 보이스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라는 명성답게, 영화는 보이스에 관한 푸티지 장면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로 하여금 예술가 자신의 말과 표정을 직접 듣고 보게 만든다. 영화 속에는 평상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자 벗은’ 보이스의 모습도 등장하고, 그가 다른 이들과 날선 논쟁을 벌이거나 혹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어딘가 당황하거나 난처해하는 표정들도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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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곧 혁명이다.

1984년 인공위성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1986년 〈바이바이 키플링〉을 비롯해 백남준의 초기작부터 각종 자료가 출품된 이 전시장은 김남수가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2층에서 만나게 되는 요제프 보이스의 전시는 1층 전시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백남준의 미디어 작품들이 온갖 시청각적인 감각을 자극하면서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면, 보이스의 전시는 관람객 자신이 적극적으로 대상에 다가가 꼼꼼히 읽고 관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시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동안 미술관 측에서 소장해 온 작품들을 기반으로 세심하게 조사하고 연구해 온 노력을 실감할 수 있는 방대한 양의 문헌과 시각자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마치 고대 박물관처럼 체계적으로 배치된 아카이빙 자료들 앞에서, 우리는 보호 유리 상자 앞으로 다가가 커다란 돋보기를 들고 대상을 일일이 세밀하게 조사하는 고고학자가 되어야 한다.

전시 주제는 ‘모든 이는 예술가이다’, ‘예술의 확장 개념’, ‘사회조각’, ‘플럭서스와 해프닝’ 등 보이스가 제시했던 주요 개념 혹은 활동별로 구분되어 있고, 관련된 각종 사진, 회화, 선언문 같은 시각자료들이 벽을 따라 빼곡하게 채워져 있으며, 전시장의 내부공간은 <비트린(Vitrine)> 시리즈로 알려진 유리 진열장이 다수 배치돼 있고 그 안에 그가 사용했던 일련의 오브제들, 안내 책자, 선언문, 엽서, 가방, 상자, 장미꽃, 펠트 등이 보관되어 있다. 예술과 삶의 일치를 꿈꾸며, 개인 각자가 지닌 에너지와 창조력을 통해 보다 이상적인 휴머니즘을 실현하고자 했던 요제프 보이스의
예술세계가 기존의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 장르와는 다르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에 선뜻 다가가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아보였다. 전시는 이를 충분히 고려한 듯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별도의 문서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사실 요제프 보이스의 전시 현장이 다소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것에 비해, 전시 개막일 하루 전에 상하이의 괴테하우스에서 열린 강연회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뒤셀도르프 미술관 관장 그레고르 얀센(Gregor Jansen)은 요제프 보이스의 주요 개념들을 자세히 소개했고, 중국의 예술청년들은 상당히 깊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 혁명의 시기에 중국 미술계가 부르주아 예술을 배격하고 예술의 공공성, 혁명성, 사회성을 추구했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현재 중국 청년들이 요제프 보이스의 예술세계에 보이는 깊은 관심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통한 대중교육, 사회혁명, 공공토론과 사회참여 등은 개혁개방 이후 여러 모순에 당면한 중국 미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주제들 중 하나이다.

그날의 뜨거웠던 토론과 논쟁을 떠올리면서, 나는 2층 요제프 보이스의 전시장이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자료 제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강연과 토론이 열리는 ‘사건의 현장’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가 그 자리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조용했던 미술관은 어느 순간 요제프 보이스가 꿈꾼, 예술과 일상이 만날 수 있는, 나아가 그 힘이 혁명으로 전화하는 현장으로 변모할 수 있지 않을까. 박제가 된 미술작품이 아니라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개인의 창조력을 이끌어내고, 이를 새로운 사회구성의 힘으로 만들어내고 싶어 했던 그의 예술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전시에서 만난 요제프 보이스와 백남준의 생애와 작품들을, 우리가 지나치게 현실의 삶과 유리된 것으로, 혹은 다가서기 힘든 신비주의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랭보는 ‘투시자’로서 시인의 길이 초현실적이거나 환영적인 것이 아니라 결국 ‘일하는 자’로서 예술가의 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세 예술가가 보여주고 있는 공통분모, 즉, 일상과 예술이 맞닿아 있는 곳, 그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힘, 현재 상하이 푸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투시자의 편지’가 미지의 세계로부터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어쩌면 의외로 간단한 것일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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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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