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시각예술 전문지의 디지털화, 그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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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특히 시각예술을 다루는 잡지를 전자책으로 기획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만약 종이책과 별도의 편집이 가능하다면) 고해상도의 이미지나 영상 자료를 분량 걱정 없이 집어넣을 수도 있고 클릭 한 번을 통해 인터넷으로 바로 기사에 사용된 레퍼런스에 접근함으로써 종이책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다. 잡지 콘텐츠의 주인공이 여전히 텍스트라고는 해도 거기에 전자책의 멀티미디어적 성향이 커다란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소 고리타분한 발상이기는 해도, 예술이 감각적-비언어적 지각을 통해 감상자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면, 그 예술 작품을 다루는 기사 또는 해설의 ‘언어’와는 별개로 독자로 하여금 해당 작품을 보다 깊이 감각할 수 있도록 하는 쪽이 작품에 접근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향에 다다르기에는 갈 길이 멀다. 인터넷 시대에 들어 하이퍼텍스트와 멀티미디어라는 가능성 자체는 언제나 열려 있었지만 이를 기획하고 편집할 수 있는 역량은 종이책에 얽힌 감수성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아직 활성화하지 못한 전자책 잡지에 앞서 이와 유사한 시도를 진행 중인 웹진의 경우가 그렇다. 특히 국내에서 웹진은 종이 잡지로 타산을 맞추지 못한 잡지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후퇴한 장소인 경우가 많았다. 웹진으로 변신한 잡지들은 기존의 종이 시절 포맷을 고수했다. 비용을 줄이면서 뒤로 물러서는 과정에서 플랫폼의 특징을 살필 만한 여유가 없어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웹진은 대부분 몰락한다. 독자 수가 줄고 수익성이 악화돼 웹진으로 변신을 꾀한 뒤에는 그 줄어든 독자들을 대상으로 웹상에서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판매 권수가 광고 수익과 직결되는 종이책과는 달리 대부분의 웹사이트 광고는 해당 배너를 클릭하거나 노출되는 빈도를 통해 유동적인 비용을 지불한다. 즉, 콘텐츠를 보러 온 독자들이 곧 수익과 직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비용 절감을 위해 플랫폼을 웹으로 옮긴 잡지 대부분이 얼마 가지 못해 문을 닫은 건 당연한 수순이다. 비용은 줄었지만 수익 역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달라진 플랫폼에 맞추어 잡지의 정체성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독자층을 끌어들일 여력이 없었던 ‘후퇴형 웹진’들의 마지막은 한결같았다.
전자책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종이 잡지보다는 웹 형식의 기사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국내 전자책 플랫폼 소비자층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20세기가 종언을 고할 무렵 한국에서는 수많은 예술 리뷰 잡지가 함께 수명을 다했다. 영화 월간지들이 사실상 전멸했고, 음악 리뷰 잡지 역시 대부분 아예 사라지거나 웹진이 되거나 무가지로 후퇴하는 등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몇몇 잡지가 포맷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버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야는 미술이나 사진 정도다.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보수적인 아마추어들이 존재하는 분야를 다루는 잡지들이 그나마 상황이 좋았던 셈이다. 1970년대 이후 교양-문화-잡지라는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세대가 아직 독자층으로 유지되고 있어서다. 반면에 키노나 서브처럼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종이 잡지 문화는 20세기를 기점으로 저물었고, 그 자리를 웹 텍스트가 대신했다. ‘키노 이후의 젊은이들’은 전자책 플랫폼으로 진입할 개연성이 가장 높은 세대지만 동시에 종이 문화 잡지에 대한 경험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나마 동시대의 예술에 대해 관심이 있는 젊은 독자들은 전통적인 콘텐츠를 가진 잡지보다는 좀 더 현장의 목소리에 가까운 독립출판 계열의 여러 개성적인 잡지로 분산되어 퍼져나가는 중이다. 이들에게 잡지는 동인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와 달리 보다 보편적인 독자층을 상정한 문화 잡지들이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 어필할 가능성은 낮으며(‘우리꺼’가 없다), 반면에 충성도가 높은 중년 이상의 독자층은 디지털 플랫폼을 별도로 학습해야 한다는 난점이 있다. 현 시점에서 전자책 형식의 문화 잡지가 당장의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시간이 갈수록 전자책 독자층이 두터워지기는 할 것이다. 현재 국내 전자책 시장의 낮은 성장률은 전자책 자체의 가능성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열악한 디바이스 때문이다. 이 부실함은 언젠가 개선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매스미디어가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온 것처럼 단행본이나 잡지 시장도 자연스럽게 넘어올 것이다. 다만 관건은 처음에 언급한 대로 바뀐 플랫폼에 얼마만큼 적응하고 그를 이용할 수 있느냐다. 단지 대세가 이동한다는 이유로 옮겨가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신의 육체가 담긴 장소를 고찰하지 않는 ‘디지털 문화 잡지’에 눈길을 주는 젊은 예술 애호가는 많지 않다. 표현 방식에 따라 콘텐츠의 성질이 바뀌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보여주는 잡지라면 그 자신의 폼/표현 방식부터 신뢰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신뢰에 다다르는 순간에야 ‘예술 잡지’는 디지털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꽃필 수 있을 것이다.
최원호  인터넷서적 알라딘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