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달진 (1)

역사적 자료의 중요성과 아카이브의 힘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낯선 단어이던 ‘아카이브 (archive)’가 이제는 일반인도 알 정도로 친숙해졌다. 간단히 말해 기록된 자료를 의미하는 이 전문용어가 이처럼 친숙하게 된 이면에는 미술자료연구가 김달진의 노력이 크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예컨대 국립현대미술관 등 공공미술관들이 나름의 자료실을 갖추고 있었으나,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순전히 아카이브 자료만의 전시로 발전한 것은 김달진미술자료 박물관에 이르러서이다.
최근 선보인 <한국미술 전시공간의 역사전>(7.24~10.24)은 순전히 전시 자료에 관한 전시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말만 들었지 실물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었던 희귀자료 250여 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일 게다. 가령 개성부립박물관 신축공사 설계도 3호(1931, 국가기록원 소장)는 이 역사적인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준다. 더군다나 이 박물관의 위치가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 땅 개성에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하다. 지금도 이 건물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무슨 용도로 쓰이고 있는지 우리는 이 설계도면 하나를 앞에 놓고 갖가지 상상을 할 수 있다. 특히 이 박물관이 미술인에게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고(故) 고유섭 선생 때문이다. 이 박물관은 1931년 개성의 유지들이 헌금을 모아 지은 것으로 고유섭 선생은 1933년에 이곳에 초대관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한국근대미학 및 미술사의 선구자 고유섭 선생의 업적에 대해 논하기에는 지면이 짧아 생략하거니와, 아무튼 이 한 장의 도면이 이처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만 밝혀두고자 한다. 이야말로 미술자료가 지닌 힘이 아닌가. 대한민국이 문화 국가임을 자부하고 나아가서 문화강국이 되고자 한다면 ‘아카이브’에 대해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또한 전시에는 조선총독부가 시정 5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의 미술관 신축설계도(1915, 국가 기록원 소장)도 출품되었다. 오늘날의 엑스포에 해당하는 이 물산공진회는 일제가 조선을 강제 병합(1910)한 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저간의 시정을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꾸민 것이다. 말하자면 순전히 대국민 홍보용 전시로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전시였다. 이 건물은 행사가 끝난 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 한 장의 설계도면은 1936년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한 덕수궁미술관 입면도와 함께 1930년대 당시 일제에 의해 서양풍의 건물이 이 땅에 많이 지어졌음을 입증해주는 시각적 자료물이다. 따라서 이런 자료들은 서양의 근대가 일제를 통해 어떻게 이땅에 수입되고 어떤 문화적 갈등과 충돌을 일으켰으며, 또 부분적으로는 어떻게 토착화했는가 하는 첨예한 문제들를 풀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들인 것이다.
이번 전시는 비단 건축물의 설계도면에 그치지 않고 100여 년에 걸친 전시의 역사 속에서 한국미술이 어떤 도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 하는 점을 구체적인 실증자료를 통해 입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가령, 명동화랑에서 열린 전시 <한국 현대미술 1957~1972: 추상=상황 및 조형과 반조형> 도록은 당시 일개 상업화랑에 지나지 않은 명동화랑이 미술관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업 활동에만 치중하는 현재의 국내 상업화랑들에 시사하는 바가 큰 자료이다. 명동화랑 사장이자 초대 한국화랑협회장을 역임한 고(故) 김문호 선생을 기리는 기념사업의 필요성을 이 한 장의 자료가 생생히 말해준다.
윤진섭 시드니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