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김형석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김형석 (3)

2016.12.2~10 갤러리 담

권진 |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이번 김형석의 개인전을 함께 본 다른 작가는 김형석의 회화에서 ‘계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는 이 표현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의 대화는 예전 작품들과 비교해서 보자면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작품들이 화면의 형식이나 회화의 물질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다른 차원으로의 이행을 그려냈다고 축약된다. ‘계절’은 빛과 대기로 이루어진 환경이고, 자연의 궁극적인 질서이며, 일정한 공간에서 형성되는 어떤 시간의 특성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계절은 작가 김형석이 선택한 어떤 의식과 유사성을 갖게 된다. 이 의식은 ‘생활-세계로부터 안간힘을 써서 벗어나’ 감각들로 수렴되는 것들을 이미지의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미학적 몰입 혹은 생생함이라고 볼 수 있다.
2011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개인전을 열어 온 작가의 이번 전시는 그동안 발표했던 회화 시리즈의 연속선에서 읽힌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넓게 보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데, 그것은 작가의 표현대로 상실과 소진의 시대에서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을 회복’하는 것이다. 회화의 존재론적 질문과도 같은 주제를 붙잡고 있는 작가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활의 범주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재현하고, 이들을 무질서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재배치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여기서 김형석의 회화는 사실적 재현
에서 더 나아가 그 본질을 마주한다는 의미에서 리얼리즘적인 태도를 지닌다.
그것은 어떤 시각적인 유사성이나 소재의 구체성으로 드러나지 않는, 표피적인 유사성과 구체성을 부정하는 회화가 역설적으로 획득하는 인식적 감각의 리얼리즘이다.
철학적 사유를 가시화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김형석 회화의 형식이 푸코가 논한 벨라스케즈나 마그리트의 회화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형석의 회화가 지금 현재 한국이라는 지역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서구의 미술사로 편입되지 못하는 다행스러우면서도 불행한 지점은, 그의 회화에 내포된 지역적 도상에서 출발한 동시대적 감각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 산, 손, 건축적 공간, 불, 바람, 도자기 등은 현실의 그것들과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현실의 상태를 암시하는 상징적인 도상으로 존재하고, 이 상징들은 서로 어긋난 시간과 공간에 얽혀 어떤 비가시적인 정신 상태를 전한다. 그리고 이 불명확하고 징후적인 정신의 상태에서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자가 아닌 그림을 보는 자의 위치에서 동시대적 감각과 동화되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눈’을 얻는다. 다른 말로, 공감을 얻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전시는 사상 최대의 인원이 집결하는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지금의 시점에서, 주요 현장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를 통과해야 진입할 수 있는 삼청동의 조그만 갤러리에서 열렸다. 어수선한 시국의 현장을
거쳐야만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그의 회화를 보는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어느 공간으로 훌쩍 넘어가는 일종의 ‘신성한 힘’을 경험한다. 이러한 추상적 차원의 경험은 현실에 시사적인 문제나 사건적 배경을 직접적으로 묻지 않지만, 대신 현대 사회에서 회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조건을 더욱 두드러지게 인식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은 지금 시대에서의 회화가 어떻게 사회심리적인 사고를 촉발시키는지에 대해 엇갈리는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찾고자 했다면 반대로 우리는 그림을 ‘보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회화를 통해 호출된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특정한 감각이 전이되는 생생함이 있다. 이 생생함은 현재 사회에서 무한히 가변하는 여러 조건, 상황, 이미지와 그것의 기호들이 우리와 맺는 복잡한 관계의 작용에서 비롯된다. 시시각각 변화해가는 감각 세계의 경험을 우리는 김형석 회화의 ‘계절감’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도〉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60×60 cm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