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하이트_ (6)

3.31~6.24 하이트컬렉션
조은비 | 독립큐레이터

이른바 신진작가를 발굴, 소개하는 형태의 전시는 기관마다 상이하지만, 대개 공모제 혹은 추천제로 이뤄진다. 공모제가 지원자 중에 선택된 소수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추천제는 말 그대로 공인된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니, 방식상의 차이가 있더라도 사실상 “간택된” 자가 누리는 기회의 독점과 선??/??후배라는 위계에 내재된 배타성은 불가피하다. 하이트컬렉션이 지난 4년간 선보인 젊은 작가 연례전은, 이쯤 들 법한 추천제를 둘러싼 관객의 궁금증에 대해 기획자 스스로가 다시금 입장을 밝혀두었다. 그는 이 전시가 구조상의 추천제 너머, “추천인-피추천인의 관계에서 감지되는 작업의 상관관계나 미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 역시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기획을 익숙한 추천 구조로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일 테고, 일종의 메타 기획의 차원으로 바라보면 전시를 둘러싼 더 풍부한 시선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이트컬렉션 측은 매해 추천인 작가를 선정하는 기획자의 기준점과 더불어 전시 키워드를 제시한다. 2014년 〈미래가 끝났을 때〉가 매체의 구분 없이 동시대 젊은이들의 “우울한 현재가 미술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파악했다면 2015년 〈두렵지만 황홀한〉은 매체를 회화로 한정했고, 지난해 〈언더 마이 스킨〉에선 “강력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지닌 작가”를 추천인으로 선정해 그들이 추천한 젊은 작가들에게서 역시 유사성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추천인(권경환, 권오상, 우순옥, 이주요, 정희승)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참여작가들(강희정, 김세은, 노혜리, 박천욱, 서정빈, 이준용, 장종완, 전명은, 한우리, 황효덕)은 그 어느 해보다 매체에 있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넘나든다. 추천인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특정 매체에 대한 자기 확장과 변주를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기성 작가들의 개별적 특성은, 곧 그들이 추천한 ‘다음’ 세대 작가들의 특징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여기에 기획자는 전시를 포괄하는 키워드를 미래를 둘러싼 몇 가지 태도로 세분해 “또 다른 날(새로운 날), 반복적인 하루(똑같은 날), 자신과 타인에게 주어지는 삶의 여러 가지 기회(또는 외면)” 등으로 상정했다. 미래라는 낱말이 지시하는 가능성, 앞날, 다음 단계와 같은 희망적인 메시지보단 그를 둘러싼 이면(裏面)을 다룬다는 점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작가들의 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재구성과 그를 바탕으로 한 자기 인식이다.
가령, 서정빈은 전통 조각의 재료적 속성으로 인한 한계를 돌파하고자 건담 프라모델의 구조적인 메커니즘을 작업에 대입해 조각의 내부 구조와 움직임을 구현하는데, 이러한 일종의 자가 응용은 조각 매체에 대한 고민을 담으면서 동시에 그를 넘어서고자 하는 것 같다. 김세은 역시 추상회화의 전통적인 요소들과 무관하게 자신이 선택한 대상을 확대??/??응시하는 방식을 구축하는데,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이러한 방식은 “그리는 대상을 향해 스스로 움직”임으로써 추상적인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다. 전명은은 찍는 대상과의 만남을 통해 사진 안에 상이한 매체와 감각 등 ‘다른 세계’를 끌어들이고, 이는 곧 사진 매체 자체를 향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황효덕은 작업 제작 과정에서 현실적인 상황에 맞춰 변형하거나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물리적, 정서적, 신체적 영향 관계 속에서 작업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비물질적인 상태나 현상, 그에 따르는 불가능한 상상을 물리적인 조건 안에서 구체화하는 일이다. 이준용 역시 드로잉을 선택하게 한 자신의 물적 토대와 이에서 비롯한 특유의 테크닉을 발굴하는데, 이는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대한 작가의 불가피한 반응임과 동시에 저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대적하는 저항, 곧 “상상력”의 표출이기도 하다.
지면 관계상 일부 작가의 작업에 한정해 거칠게 살펴봤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들 작업에선 개념이나 내용보다 매체 자체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전유와 이종(異種) 혼합 그리고 자신의 감각과 행위에 집중하는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매체 사용과 그 전환은, 추천인 세대의 매체적 관심과는 분명 다르다. 매체의 본질에 대한 탐구 ‘이면’에 참여작가들은 모순된 상황 속에서 절단된 파편들을 접합하면서 연결과 어긋남, 전환과 전복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유희한다. 그렇게 자신이 고안하고 재구성한 장치나 도구들을 작업을 위한 파편이자 요소로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술 안에서 하나의 경향을 이루는, “핵심으로 가지 않고 에둘러가는” 형식적인 태도는, 다소 멜랑콜리한 이 전시 제목을 상기시킨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꽃잎의 홀짝에 기대는” 행위는, 절실한 바람을 담고 있으면서 그 선택을 우연에 맡긴다는 점에서 일견 체념적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러한 자기 불확신은 더 이상 앞날을 내다보며 삶을 기획할 수 없는 시대에 주술과도 같은 연약한 희망에 기대려는 정서적인 생존 전략이 아닐까. 미래(未來)는,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았다.” 때문에 오늘의 미술하기는 부재하는 내일이 아니라 충실한 현재를 뒤섞으며 펼쳐지고 도약한다.

위 박천욱 〈주체롭게 자라다 2〉 화분, 인공식물, 의자, 전등, water aperture 170×150×90cm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