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더 많이 그리고싶다” 노상호작가 인터뷰

아이러니한 장면에 매혹적인 색감, 수채물감을 사용해 두께가 얇으면서도 중첩된 이야기를 담은 듯한 화면구성. 노상호의 작업을 보고있으면 묘한 분위기의 영화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수상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묘한 매력의 작품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는지 매일 작업을 업로드하는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엔 팔로워가 2만4천 명이다. SNS 팔로워가 많다고 좋은 작가는 아니다. 다만 노상호는 작업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그 이미지가 가상환경에서 소비되는 것 까지가 자신의 작업이라고한다. 작품이 가상환경에서 널리 소비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작업을 인터넷이나 SNS와 같은 ‘가상환경’에 선보이게 되었을까? 얇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는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할지 궁금해졌다. 연희동 주택가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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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 안녕하세요, 가상환경 속 이미지 소비에 관심이 많은 작가, 노상호입니다. 이미지를 소비하고 제작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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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는 매일매일 그리는 사람.

사진: 노상호 작가의 작업실

– 새로운 이미지를 매일같이 만들어내는데, 이미지를 고안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 제 작업 방식을 이야기 해 드리면, 우선 전날 인터넷이나 SNS에서 떠도는 하루 치 이미지를 모아둬요. 다음날 그 이미지들을 프린트하며 작업을 시작해요. 프린트한 시각물을 토대로 스케치하고 색을 칠해서 작업을 완성하죠. 직장 다니듯이 매일 9시 반에 출근해서 6시에 작업을 마무리해요. 사실 ‘영감’이라는 단어에 완벽히 동의하지 않아요. 갑자기 영감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타입이 아니에요. 쌓이는 이미지를 하루하루 처리해 내는 느낌이 강해요. 무언가가 불현듯 떠오르는 때는 거의 없어요. 오히려 시스템을 구축해 나간다고 생각하죠. 매일 작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여담이지만, 할 일이 많은 날에는 야근도 해요. 가끔은 너무 직장인같이 생활해서 스스로 반발심이 들 때도 있어요. ‘아, 내가 이러려고 작가를 한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그럴 땐 하루 정도 쉬어요. 직장인 같은 생활을 하다보니 하루 쉬는 날에 친누나가 ‘월차 썼네’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래도 굳이 어디서 영감을 얻냐는 질문에 대답을 해보면 가상환경, 인터넷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니깐 ‘가상환경 속 이미지’에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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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이야기가 탄생하도록 ‘소스(source)’를 제공하는 사람

사진 : 노상호 작가의 작업

– 최근 작업에서는 이야기를 짓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네. 최근 작업에서는 이야기를 짓지 않아요. 초창기엔 제 작품들이 가지는 ‘스토리’에 집착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점점 사람들이 본인 방식대로 그림을 해석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억지로 이야기를 넣으려고 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야기의 소스(source)들이 굴러다니게 하는 역할을 하려고요. 배치를 토대로 네러티브가 생기도록 하는 게 즐거워요. 열린 형식으로 두면 모두 다르게 생각하게 되잖아요. 제가 특정한 이야기를 만들지 않아도 보는 이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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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해석하던지 보는 사람의 해석에 맡기는 건가요?

“ 네. 그게 제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직접 그리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제가 만든 이미지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까지를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많을수록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 그림이 현재 1,500장 정도가 있는데 그걸 쭉 보고 하나의 맥락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부분만 읽고도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도 있을거에요. 다 다르게 정보 값을 받아들이는 거라서 정보의 양 자체가 네러티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워낙 이미지가 많기 때문에 각자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도, 만들어내는 내용도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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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장르를 국한하고 싶지 않은 사람

사진: 최근 노상호 작가가 네이버에 연재한 웹툰 일부

– 최근에 네이버 만화 연작을 하신 걸 보았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시작은 ‘작업’의 연장선이었어요. 저는 인터넷상의 이미지들을 모아서 작업해요. 이 과정을 역으로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인터넷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재구성해서 다시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로 만들어볼까 하는 아이디어로 만화를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만화를 그리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원래 만화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년에 연구를 많이 했어요.

최근에 네이버 연재로 단편만화를 게시한 이유는, 제가 동료 작가나 친구들한테 만화를 그릴 거라고 너무 많이 말하고 다닌 거예요. 일 년 째 이야기 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그 누구한테도 아직 보여주지 못해서 예시용으로 게재했어요. 1년 동안 만화를 그려왔는데 연재를 한다고 가정해보니 3~4주면 끝나는 분량이더라고요. 계속 내용을 쌓는 중인데도 연재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겠어서 미리 다 그린 후 연재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차근차근 모으고 있어요. 앞으로 5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요?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하는 모든 걸 작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은 그걸 ‘장르’로 구분하잖아요. 저는 작업을 꼭 어떤 장르에 국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쉽게 소비시켜버리는 작업을 하므로 빨리 소비시키고 다른 장르로 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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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 먹지같은 사람

사진: 노상호 작가의 작업실에 놓여있던 작품

만화나 다른 매체를 활용해 작업을 해 나가면서 본인 작업이 빠르게 소비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작품이 얇아진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이에 거부감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 저는 더 얇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태도’에요. 다른 작가들과 차이점을 가질 수 있는 지점인것 같아요. 행거, 옷걸이 같은 소재를 활용해 전시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제가 ‘얇은’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그림도 정면으로 전시하지 않고 옆면이 보이게 디스플레이해요. 얇고 팔랑이는 모습을 관람객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보는 이가 그 ‘얇음’을 물질적으로 느끼길 바래요. 그래서 일부러 200호 작품을 전시할 때도 캔버스 틀에 짜지 않고 천 그대로 낭창낭창하게 걸었어요.

난지창작 스튜디오에 있을 때 다른 작가분들한테 많이 혼났어요. 어린 나이에 운 좋게 들어간 거라 난지창작 스튜디오에서 만난 다른 작가분들은 저한테 마치 연예인 같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제 작업실을 보고 충격을 받으신 거예요. 작업 방식을 보고는 걱정이 되신 거죠. 왜냐면, 옛날에는 작업실 바닥에 드로잉이 막 굴러다녔거든요. 매일 세 장씩 그려서 드로잉이 너무 많으니깐 그림에 큰 애착이 없었어요. 제가 원본에 집착하지 않기도 했고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매일같이 제 방에 오셔서 작품 관리를 잘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등등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막내여서 예뻐해 주신 것 같아요. 처음엔 선생님들 말씀이니깐  잘 따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가지고 있는 태도가 아주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원본에 집착하지 않냐면, 저는 컴퓨터로 작업을 옮기면 작업이 끝났다고 느껴요. 그림을 그리면 바로 스캔을 하는데 스캔 파일이 컴퓨터에 jpg로 저장이 되면 원본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끼는 거예요. 사실 스캔 된 파일에 더 원본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그림은 컴퓨터로 옮겨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중요한 물질성은 아니더라고요.

가끔 가상과 실제가 역전될 때도 흥미로워요. 전시할 때 그림을 꺼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컴퓨터 화면에서 보정된 그림을 보다가 실제 원본을 보면 어색할 때가 있거든요. 액정으로 보는 게 더 리얼하다고(실제 같다고) 느끼기도 해요. 시간이흐르다 보니 이런 태도를 조금 더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다른 사람과는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거니깐요. 그래서 더 얇아진다는 의견에 대해서, 더 얇아져도 된다고 말해요. 요새는 얇은 태도를 더 많이 드러내려고 하죠. ‘나는 먹지 같은 사람이다’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아주 얇고, 팔랑거리고, 들어오는 정보와 나가는 정보가 있는데 먹지같이 그 가운데에 아주 얇게 서 있는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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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노상호작가의 작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