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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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修辭)와 행동

지난 해 12월 28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맺은 이른바 ‘한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관한 협상’을 벌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합의문 발표에 이어 아베 신조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착실히 실시해 나가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본의 잘못된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피해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란다”
일련의 소식이 전해지자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번 합의에 소녀상 철거에 대한 내용이 있다는 이유였다. 소녀상 철거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지 공식적인 확인은 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일본 언론이 “소녀상 이전과 철거해야 아베 총리가 말한 ‘위안부’ 지원 재단 설립비용 10억 엔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 중, 대학생들은 현재도 노숙을 자청하며 밤을 새운다. 지독한 한파가 엄습했던 날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대한민국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됐다. 1월 21일 인사동 입구 종로경찰서에 자진 출두한 그들은 경찰서 정문 앞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며, 경찰이 ‘표적수사’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수사의 향연이라는 외교 문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소녀상 곁을 지키고 있을까? 그것은 이번 외교 문구가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와 인권의 문제에 있어서는 아베 총리의 말대로(원하는 대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는 없다. 또한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둘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누가 누구에게 사과했으며, 누가 누구를 용서했는지도 모르겠다.
황석권 anarchy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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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와 미디어 아트?

인상주의 전시는 매력적이지만 낚이기 쉽다.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 출품작 대부분이 유명 작가의 대표작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 인사이드: 빛과 음악의 축제>(1.8~4.17)에는 반 고흐뿐 아니라 터너, 모네, 르누아르 등의 주옥같은 명작들이 소개된다. 대신 회화 작품은 한 점도 걸려 있지 않다.
그동안 홍보대행사 측이 제공한 보도자료를 확인해보니 메일이 16통이나 된다. 그만큼 홍보에 심혈을 혼신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어떤 전시인지 호기심에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음악과 함께 감상하는 미디어아트 전시라고 소개되지만 사실 놀이공원 분위기에 가깝다. 고흐의 작품에 들어갔다 온 것 같은 체험이 강조된다. 벽면, 천장, 기둥 등 전시장 전체를 스크린 삼아 영상을 쏘기 때문에, 고흐의 작품은 볼 수 없지만, 고흐의 이미지는 즐길 수 있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씁쓸했던 것은 진품이 없다는 사실보다 전시를 홍보하는 ‘미디어아트’라는 수식어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기술의 향연과 그 경계가 모호해졌지만 주최 측이 미디어아트라는 개념을 상업적으로 남용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이번 전시에 작가라고 한다면 고흐가 아니라 화려한 스펙터클을 마련한 연출자와 영상 감독, 음향 감독 등일 게다. 이번 행사는 하나의 아이디어 상품이라 할 수 있다. 반 고흐의 작품은 하나의 소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전시에 열광하는 대중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날이 갈수록 이 문제가 어렵게 느껴진다.
이슬비 drizzlesb@gmail.com

이종구〈다시 오리지에서〉(부분) 종이에 아크릴릭, 포스터 215×391cm 2003

이종구〈다시 오리지에서〉(부분) 종이에 아크릴릭, 포스터 215×391cm 2003

보트크래프트:전쟁의 서막(vote craft: The Beginning 2016)

2016년 4월 13일.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후보자 등록일(3.24~25)을 한참 남겨둔 1월부터 예비후보자들의 현수막이 거리에 등장했다. 지역 중심가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크게는 건물의 1/3까지 덮은 예비후보자의 얼굴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선거철만큼 모르는 사람 얼굴이 떡하니 도시 중심부를 도배할 때도 없다. 선거를 위한 천편일률의 현수막과 포스터가 ‘센스 있게’ 소속 정당과 후보별 서로 다른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거나, 자신이 출마하는 지역구의 고유한 특징을 드러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번 총선기간에도 ‘정치인 전용 얼짱각도’에 정당색만 입힌 일종의 ‘인물 공해’가 얼마간 도시를 장악해 갈 것이다. 사실 현수막이나 포스터가 단순한 선거 홍보 도구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기간 도시를 채우는 생활 디자인이다. 좋은 선거용 현수막 및 포스터 디자인은 시대의 흐름을 담고 유권자의 목소리를 수용해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간혹 선거용 전단지나 포스터가 새로운 시도로 주목 받은 경우가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용한 포스터는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그는 성조기의 색을 적용해 자신의 얼굴을 덮음으로서 본인의 피부색을 지우고, 미국색을 입었다. 이후 이 포스터와 동일한 색과 디자인을 이미지에 적용할 수 있는 웹사이트가 만들어지면서 유권자들이 자신의 얼굴에 색을 입혀 SNS에 올리는 하나의 놀이가 이어지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간혹 파격적인 포스터를 통해 이슈가 된 정치인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 단발성 이슈를 위한 변화가 아닌 시각적인 이끌림과 적확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효율적인 ‘아름다운 현수막과 포스터’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임승현 shlim98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