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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르

아바타르 avatar(범)

비슈누*신이 악마로부터 신과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세계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며 화현(化現) 또는 화신(化身)이라고 한다.
비슈누의 대표적인 화신은 모두 10가지로 물고기(마트시야Matsya), 거북(쿠르마Kurma), 멧돼지(바라하Varaha), 사람 모양의 사자(나라싱하Narasimha), 난쟁이(바마나Vamana), 도끼를 든 라마(파라수라마Parasurama), 라마(Rama), 크리슈나*(Krsna), 불타(Buddha), 칼킨(Kalkin)을 말한다. 그 중 마지막 화신인 칼킨은 유가의 마지막 시기에 인간을 구원하러 올 화신으로서, 아직 세상에 오지 않은 미래의 화신이다. 그러나 10가지 화신 중에서 가장 많이 숭배되었던 바라하, 나라싱하, 바마나, 라마, 크리슈나 등이 주로 조각*이나 회화*로 자주 표현되었다.
바라하는 악마 히라니약샤Hiranyaksa를 물리치고 대지의 여신을 우주의 바다에서 구했다는 신화에 등장한다. 나라싱하는 사람도 동물도 아닌 사람사자의 형상을 하고서 신과 인간들을 박해하던 아수라* 히라니야카시푸Hiranyakasipu(히라니약샤의 형)를 죽였다고 한다. 또한 발리Bali라는 악마가 신과 인간을 괴롭히자 난쟁이로 변신한 바마나는 발리에게 세 걸음만큼의 땅을 요구했는데, 발리가 허락하자 거인으로 변한 비슈누는 단 세 걸음으로 삼계(三界)를 모두 차지했다. 그래서 이 도상*을 트리비크라마Trivikrama, 즉 ‘세 걸음을 소유한 자’라고 부른다. 라마와 크리슈나는 독립적인 신상*(神像)보다는 이들이 등장하는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내용을 그림으로 풀어놓은 일련의 작품 속에서 많이 표현된다.

아방 라 레트르

아방 라 레트르 avant la lettre(프)

동판화*의 시험쇄(試驗刷)로서 아직 작가의 서명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서명이 들어 있는 것을 아프레 라 레트르(après la lettre) 또는 아베크 라 레트르(avec la lettre)라고 한다.

아방가르드

아방가르드 avant-garde(프)

→ 전위미술

아쇼카왕 석주

아쇼카왕 석주 Aśokan Pillars(영)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아쇼카왕Aśoka(재위 기원전 272~232)이 불법(佛法)을 널리 펴기 위해 세운 기념 석주*(石柱, la)를 말한다. 대략 15m가 넘는 높이로 그 위에는 동물상들이 올려져 있고 석주 아랫부분에는 왕의 칙령이 명문*(銘文)으로 남아 있다. 이 석주들은 불타의 일생과 관련된 성지들이나 인도와 네팔의 히말라야 분지를 연결하는 교통로상에 세워졌다. 기원전 243년 네팔 부근의 로리야 난단가르Lauriyā Nandangarh에 세워진 사자 석주는 현재 완형으로 남아 있는 드문 예이며 람푸르바Rāmpurvā에서는 황소 주두*가 출토되었다.
또한 사르나트*Sārnāth의 녹야원에 서 있던 사사자(四獅子) 주두는 네 마리의 사자가 등을 대고 있는 모습이다. 이 주두들은 모두 종모양으로서 그 표면에는 연꽃잎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형태는 이란의 아케메네스조* 건축과 매우 유사하다. 아쇼카 시대는 아케메네스 왕조로부터 영향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자주 지적되어 왔다. 예를 들면, 베다 시대에 쓰였던 나무, 상아, 금속 대신에 돌이 적극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바로 이란의 석조 기술이 인도로 유입되었음을 뜻한다. 돌에 칙령을 새기는 것도 영원히 지속시키고자 하는 서아시아적인 관습이며 기념비적인 석주를 세우는 것도 인도 고유의 전통이 아니라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쇼카왕의 석주는 아케메네스조의 영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아수라 阿修羅

아수라 阿修羅 Asura

인도의 베다시기에는 ‘절대령’ ‘생명있는 자’ 등을 의미하여 선신(善神)이었는데, 이것이 시대의 변천과 상상의 변화에 따라 악신(惡神)으로 변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역불전(漢譯佛典)에서 ‘부단정(不端正)’ 또는 ‘비천(非天)’이라 의역되는 아수라는 일찍이 제석천*帝釋天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으나, 나중에 석가모니의 호위천룡팔부중(護衛天龍八部衆)의 하나가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6도(六道) 가운데 아수라도의 주인공으로, 4대 아수라를 비롯하여 수라세계의 많은 귀신을 총칭한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형용이 매우 크고 양 손에 해와 달을 받치고 있는데, 수미산 대해저에 살면서, 세 개의 머리와 여덟 개의 팔을 지닌 채, 산을 넘고 바다를 밟고서, 해를 만지며 세계를 잡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아수라상은 돈황석굴*의 벽화* 가운데 남북조(南北朝)에서 오대(五代)에 이르는 동안에 제작된 예가 있고 운강석굴* 제6, 7, 9, 10굴의 벽화와 천장에도 나타나 있다. 부조형식은 삼면사비(三面四臂) 또는 오면육비(五面六臂)이고, 해와 달 또는 활과 화살을 들고 있다. 또 이것의 상체는 맨몸이고 형식도 비교적 자유롭다. 또한 감숙성甘肅省 북석굴사北石窟寺 불동佛洞에 북위北魏의 대형 조각상이 있다. 수隋, 당唐 이후의 밀교사원에 많이 나타나는데, 전에 비해 화려해지고 도상*도 복잡하다.

아스카시대 미술

아스카시대 미술 飛鳥時代美術

538년의 불교 전래에서부터 중앙집권 정치가 시작되는 645년의 다이카노 가이신(大化の改新)까지의 약 1세기에 걸친 아스카시대는, 중국에서 한역된 경전이나 한국불상을 본받은 외래 불교문화의 섭취 시대이다. 6세기말에는 숭불파崇佛派 소가蘇我에 의해 일본 최초의 본격적 불교 사원인 아스카테라飛鳥寺의 건립이 있었고, 추고기推古期에 들어서면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의 열렬한 불교 장려에 힘입어 중국풍 기와집의 사원건축이 많이 지어졌다.
이러한 사원건축이나 그 내부에 안치된 불상*과 회화*는 중국 북위北魏로부터 동위東魏까지의 미술이나 같은 시대인 남북조(南北朝)시대의 미술이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건축:오늘날 아스카시대의 건축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나 그 유적은 기나이畿內지방을 중심으로 40여 곳에 이른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일본 최초의 본격적 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스카지는 탑을 중심으로 북쪽과 동서에 금당이 있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이러한 전례는 고구려 청암리淸岩里 폐사지廢寺址에서 볼 수 있어 한국의 가람 형식을 모방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이밖에 탑*, 금당, 강당이 남쪽에서부터 일렬로 서는 시텐노지四天王寺식 가람배치도 있는데 이는 아스카테라식보다 보편적인 형식이다.
조각:이 시대의 조각에는 호류지法隆寺의 본존인 석가삼존상을 제작한 도리불사止利佛師와 호류지의 백제관음계(百濟觀音系)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쇼토쿠 태자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도리불사가 제작한 석가삼존상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옷주름이 좌우 대칭인 7세기 전반의 조각과 공통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도리식 불상은 엄격한 작풍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양팔부터 드리운 천의가 앞뒤로 휘날리는 백제관음상은 부드러운 리듬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한반도로부터 도래했을 가능성이 있는 고류지廣隆寺의 반가사유상도 있다.
회화, 공예:비단벌레의 겉날개를 투조(透彫) 장식 속에 쭉 깔아서 빛나게 하는 기법으로 그 명칭이 붙은 타마무시노즈시玉蟲廚子와 쇼토쿠 태자의 비(妃) 중 한 사람이었던 귤대낭녀橘大郞女가 태자가 천국에 왕생한 모습을 보고자 화가 야마토 아야노마켄東漢末賢 등에게 초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자수를 놓은 〈천수국만다라수장天壽國曼茶羅繡帳〉이 아스카시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아시리아 미술

아시리아 미술 Assyrian Art(영)

고대 메소포타미아 미술에 있어 최후의 전성기를 이룬 미술.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도시 아수르를 본거지로 하여 기원전 2000년경 말부터 군사 및 정치력을 강화하여 점차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바빌로니아 지방에까지 세력을 넓혔다. 그리고 기원전 1000년경에는 거의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군림하는 광대한 제국을 형성하였다. 이처럼 아시리아는 정치, 군사면에서 강력한 힘을 과시했으나 문화적으로는 뒤떨어져 바빌로니아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처지였으며 이러한 경향은 종교, 문학 등의 분야에서 뚜렷하였다. 그러나 미술 분야에서는 아시리아 제국시대(기원전 9세기 이후)부터 독자적인 특색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예술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박육부조(薄肉浮彫)와 같은 평면적인 미술에서 특히 뛰어난 면모를 보여준다.
전기 아시리아시대(기원전 2450년경까지)의 미술은 현재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발굴 결과, 아수르에 성새(城塞)가 조성되고 신전도 세워졌음을 알 수 있게 된 것 외에 마리에서 출토된 조상과 흡사한 인물조각이나 약간의 원통인장(圓筒印章) 등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수메르 문화의 영향이 크며, 기원전 2100년경부터 상류계급의 주택은 앞채와 안채 두 정원을 중심으로 구성, 중정 사이에 응접 광장을 만드는 것이 관례가 되어 이 관습은 그 후로도 오래 계속되었다.
중기 아시리아시대(기원전 1000년 초까지)에는 아수르에 몇 개의 신전, 성탑, 궁전 등이 조성되었다. 건축에서는 투쿨티니누르타 1세가 건설하였거나 재건한 이슈타르신 및 아수르신의 신전 등이, 조각에서는 제단을 향하여 예배하는 왕을 부조*한 석회석 환조 제단과 추종하는 짐승과 신을 좌우로 거느린 풍요신의 부조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이 시기에는 원통인장에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동물이나 신화, 전설의 주인공이 묘사되었으며 그 표현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역동적인 장면구성이 특징을 이룬다. 한편 <투쿨티니 누르타 1세의 제단> 등 부조 작품이 적지 않게 남아 있어 후기 아시리아시대의 개화한 미술의 특질이 조금씩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기 아시리아시대(기원전 900~612년경)에 판세의 확장과 더불어 미술도 화려한 양상을 띠게 된다. 기원전 9세기의 아슈르나지르팔 2세는 카라프, 현재의 님루드에 새 도시를 조성하고 대규모의 북서(北西) 궁전을 건설하였다. 대궁전은 옥좌실 및 왕이 사생활을 영위하는 부분, 부엌, 창고, 위병식 등을 포함하는 서비스 부분, 정무기관, 신전 등의 건물이 각각 중정을 둘러싼 단위로 부가되어 있고 많은 중정을 포함한 방대한 복합체를 이루었다. 주 출입문에는 설화석고*로 만든 인면수신(人面獸身)의 수호상이 놓여있고 옥좌실을 중심으로 하는 한 구획과 중정은 박육부조의 많은 오르토스타트(부조석판)로 장식되었다.
부조는 주제에 따라 둘로 분류된다. 하나는 아슈르나지르팔왕이 이웃 여러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전투장면을 그린 것으로 주로 옥좌살 벽에 방을 에워싸듯이 배치되어 있는데 상하 2단으로 되어있다. 가로로 긴 부조 화면에 아시리아군, 적군, 말과 전차, 요새 등으로 구성된 장면이 차례로 나타나면서 설화적이고 동적인 화면 전개를 보여준다. 또한 이에 대하여 왕, 시종, 날개 달린 정령상, 생명의 나무나 대추야자 같은 성수(聖樹) 등이 등장하여 예배, 종교의식과 같은 장면을 나타내는 일련의 부조가 있다. 화면은 움직임이 적어 장중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며 세부묘사는 치밀하고 신중하다.
아슈르나지르팔을 잇는 여러 제왕 시대에도 부조가 제작되고 있었으나 전성기는 사르곤 2세가 두르 샤를르킨, 현재의 코르사바드에 도시를 신설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사르곤 궁전 외에 대규모의 신전과 첨탑이 조성되었으나 도시의 조성 그 자체는 미완성으로 끝났다. 커다란 건물 출입문에는 인면수신의 석상이 놓여있고 궁전의 중정에는 사르곤과 열을 지어 선 시종, 조공자(朝貢者)를 나타낸 거대한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사르곤의 후계자들은 주로 니네베에 궁전을 세웠는데 그 중에서도 아슈르바니팔은 궁전에 갖가지 재료로 수많은 부조를 남겼다. 왕의 원정장면을 다룬 부조로서는 <우라이 강변의 전투>가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기존의 설화식의 방식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화면으로 처리되어 있다.
한편 아슈르바니팔은 사자사냥을 좋아했는데, 사자사냥을 다룬 일련의 부조는 뛰어난 아시리아 부조 예술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동물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과 순간적인 동작이나 표정까지 묘사하는 정확한 표현력이 이들 작품의 특색이다. 반면 인물 묘사는 다소 유형적인 편이다.
아슈르바니팔 시대의 부조군(群)을 끝으로 아시리아 미술은 막을 내렸고 왕국도 얼마 후(기원전 612) 메디아와 바빌로니아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후기 아시리아 시대에는 몇 개의 환조조상이 만들어졌으나 모두 평면적이며 박력이 없다.
그 밖에 엄청난 수의 상아 세공품이 각 도시에서 출토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님루드에서 출토된 <아시리아의 모나리자>가 있다.

아에로피투라

아에로피투라 Aeropittura(이)

1920년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적인 회화운동. 비행(飛行)의 경험과 회화를 연결시킨 ‘공중회화Aeropittura’라는 명칭이 암시하듯, 미래주의*가 표방했던 주장을 그대로 이어받아 현대 생활의 기술로 인한 현상과 그로 야기되는 충격을 다루고자 했다. 1929년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1876~1944), 베네데타Benedetta, 발라Giacomo Balla(1871~1958) 등에 의해 ‘아에로피투라 선언Manifesto dela Aeropittura’이 발표된 후 1931년에 첫 전시회가 개최되었고 여기에는 도토리Gerardo Dottori, 무나리Bruno Munari, 아자리Fedele Azari 등의 작품도 출품되었다. 그 후 파리(1932)와 베를린(1934)에서 전시회가 개최되었는데, 특히 나치의 선전상인 괴벨스의 후원을 받았다.
이 운동은 1934년 마리네티가 사망하자 주춤해졌고, 1945년 파시즘의 붕괴와 함께 해체되었다. 이들은 주로 비행기의 속도와 폭발적인 힘에서 유발되는 감각, 비행기에서 관찰되는 새로운 현실, 새로운 시공간과 외계의 정신세계 등을 묘사하는 데 힘썼으나, 그 이념은 보다 포괄적이어서 1929년 선언서를 기반으로 공중조각, 공중시, 공중음악 등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인다.

아우라

아우라 Aura(독)

‘아우라’란 원래 ‘분위기’ 등의 의미로, 20세기 초의 독일 사상가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예술 이론으로 도입한 용어이다. 그에 따르면, 아우라는 예술작품에서 개성을 구성하는 계기로, 예술 작품이 지니고 있는 미묘하고도 개성적인 고유한 본질 같은 것을 의미한다. 예술 작품이 풍기는 고고한 분위기는 이 아우라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이러한 개성적이고도 근접하기 어려운 분위기 때문에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예술 작품이 가능할 것이다. 예술 작품에서의 품위와 자율성이 아우라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벤야민은 아우라가 생겨나게 된 예술의 전통으로부터 유도해 내고 있다. 이 점은 예술이 원래 지니고 있던 기능, 즉 예술 작품이 신을 예배하고 숭배하는 제의와 의식에 사용되었던 사실에서 볼 수 있다.
최초의 예술 작품은 의식에 사용되었는데 처음에는 마적인 의식(magisches Rituel)에, 나중에는 종교적인 의식에 쓰였다. 이러한 근원에서 비롯된 예술 작품 또한 의식 기능을 여전히 내포하고 있다고 벤야민은 주장한다. 제의적인 예술작품 속에는 주관화된 신성(das göttliches Subject)이 상징화되어 있다. 이러한 예술 작품 앞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예배와 기도였던 것처럼 예술 작품은 인간에게 아주 가깝게 밀착된 것이며 동시에 접근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종교와 신적인 것은 예술 작품에 어떤 마적인 힘을 부여하기 때문에 작품은 감히 가까이 대할 수 없이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스런 자태로 나타나지만 동시에 아주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우리를 끌고 있다. 이것을 벤야민은 예술 작품의 본질적인 비밀 수조(Geheimstruktur)라고 해석하며, 이러한 예술 작품의 제의적인 가치를 시간, 공간적인 감지의 카테고리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 그의 아우라 개념이다. 물론 예술 작품 속에 깃든 신적인 것의 표출을 긍정하는 데에서만이 아우라의 개념이 가능할 것이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유일하고도 아주 먼 것이 아주 가까운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일회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예술 작품의 불가촉(das Unnahbare)의 마적인 현상은 작품의 일회적인 존재성이며, 이것이 곧 아우라의 의미이다. 그렇게도 먼 것이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기이하게 얽힌 짜임’에 기인하고 있다. “원(遠)과 근(近)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고, 먼 것은 접근할 수 없다는 본질적인 것이 곧 예술 작품 속에 구현된 제의적인 것의 상(Kultbild)이 지닌 본질이기도 하다.” 벤야민은 이 원과 근의 동시성, 그 유착을 인식 내지 경험하고자 했으며, 이것을 개념화하려는 시도로 나타난 것이 ‘아우라’라는 그의 사고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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