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절지

기명절지 器皿折枝

동양 회화의 한 화제(畵題). 고동기(古銅器)나 자기*(磁器)에 꽃가지 과일 문방구류 등을 함께 그린 그림이다. 잡화(雜畵) 계통의 그림으로 정물(靜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중국에서는 ‘박고도(博古圖)’ ‘청공도(淸供圖)’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그릇에 꽃을 꽂는 병화도(甁花圖)에서 비롯되었으나, 오대(五代)말~송대(宋代)에 이르러 고동기가 중심 도상*(圖像)이 되는 기명절지도로 발전되었다. 특히 송대에 왕성한 발전을 보였는데 이는 금석학*金石學의 대두로 인한 문인사대부들의 복고취미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고동기는 상, 주(商周)시대의 제사에 쓰이던 제기(祭器)로, 신비스러운 힘을 가진 왕권 상징의 보기(寶器)였다. 송대에 와서 고동기는 몸체에 새겨진 명문*(銘文)으로 인해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유물로, 꽃을 꽂아 감상하는 애완품으로 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따라서 고동기를 연구하고 그림으로 남기는 작업이 성행하였고, 이러한 도상에 길상성(吉祥性)의 뜻을 내포한 꽃이나 과일이 곁들여져 기명절지도라는 화제가 성립되었다.
기명절지는 문인취향의 성격에 길상적 의미까지 있어 원, 명, 청대(元明淸代)를 걸쳐 자주 그려졌다. 한국에는 고려시대에 <제기도祭器圖>가 중국 송宋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보여 그 원류에 대한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조선 초기에는 <의기도欹器圖>에 대한 기록이 보이며,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박고물(博古物)과 박고취미에 대한 인식이 보인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1713~1791)에 의하여 <정물靜物>과 같은 본격적인 기명절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김홍도金弘道의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와 같은 그림에 기명절지적 요소가 보이며 책거리나 도자기, 신선도, 민화*(民畵) 등 여러 방면에서 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장승업張承業(1843~1897)에 의해 근대 기명절지도의 전형이 마련되어 유행되었다. 이후 근대기의 많은 화가들에 의해 188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일상적으로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