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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일치론

서화일치론 書畵一致論

글씨와 그림은 기원이 같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하는 설. 당대(唐代)의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앤위앤, 815~875경)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서 고대(古代)에는 글씨와 회화가 동체(同體)였다고 주장하였다. 본시 글씨와 회화는 그 근본을 같이 하였는데, 순임금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나뉘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고개지顧愷之(꾸 카이즈, 344~406), 육탐미陸探微(루 탄웨이), 오도자吳道子(우 따오쯔)의 용필(用筆)을 연구하면서 “글씨와 그림의 용필법(用筆法)은 같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장언원의 주장은 당대 이후에 발전한 회화예술이 육조이래로 이미 예술적 가치를 확립하고 있던 글씨에 필적한다는 사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장언원의 서화일치론은 그 후 다양한 발전양상을 보이다가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에 이르러 보다 심화되었다. 조맹부는 “그림과 서예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서화동원론(書畵同原論)으로 발전시켰다. 즉 장언원은 서화의 용필법이 같고 기원이 같다고 하였을 뿐이고, 서예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림은 형(形)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해 서화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조맹부는 형사*(形似)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음으로써 서화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강조하였다. 또 형사와 대립되는 서예적인 심미기준을 회화에 보다 직접적으로 대입하려고 하였다. 이는 북송(北宋)시대에 발전하였던 ‘서화란 작자의 인품반영’이라는 문인화*론의 또다른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