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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 페인팅

스테인 페인팅 stain painting(영)

색면 회화*에 속하는 스테인 페인팅은 캔버스 위에 붓을 사용해 물감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처리 즉 초벌질이 되지 않은 캔버스에 물감(주로 희석된 아크릴 도료)을 직접 부어버림으로써 얼룩지거나 스며들도록 하는 회화이다.
대개의 경우 얼룩회화는 캔버스를 이젤이나 벽 대신 바닥에 펼쳐 놓은 채 제작된다. 얼룩회화 기법은 1952년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의 드리핑* 페인팅에서 영향을 받은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1928~ )가 시작하였으며, 1953년 4월 그의 작품 <산과 바다>를 본 루이스Morris Louis(1912~1962)가 깊은 감명을 받고 자신의 양식을 변화시켜 새로운 스테인 회화에 몰두하게 되면서 확산되었다.
평론가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는 그의 변화에 대해 “색채와 바탕과의 밀접한 일치감을 얻어내는 방법은 기름에 수채화 물감의 기법을 차용하여 흡수력 있는 표면에 안료를 얇게 펴바르는 것이다. 루이스는 크기가 정해지지 않고 바탕칠이 안된 두꺼운 목면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흘려 안료가 아주 얇게 모든 부분에 퍼지게 한다. 그리고 그 색채의 막이 아무리 많다 해도 밑에 있는 섬유의 짜임새가 드러나도록 가볍게 부착시킨다. 이 경우 섬유는 단순히 물감으로 덮였다기 보다 그것이 스며들어 젖었기 때문에 오히려 안료 그 자체, 색 그 자체가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실제 루이스의 스테인 회화는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작품과는 아주 다른 물질적 효과를 발산하며, 그 채색과정은 색채의 형태와 명암에 대한 반동을 의미한다. 그 결과, 작품은 색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나아가 폴록이 입체주의*에서 물려받은 얇은 공간을 벗어나는 동시에 뉴만Barnet Newman(1905~1970)과 로스코Mark Rothko(1903~1970)의 희미한 상징적 공간에 비해서도 훨씬 실재적인 ‘평면성’을 성취할 수 있었다. 표면처리가 되지 않은 캔버스는 겹치거나 주름이 잡혀 다양한 구성을 창출하였으며, 완성 단계에 이르러 주름이 펴지게 되는데, 이것은 화가들에게 있어 위치 안배의 문제, 즉 화면 이미지와 액자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연관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과 다름없다. 희석된 아크릴 도료는 천 속으로 스며들어 자체의 색이 겉으로 보기에 실체가 없는 것처럼 드러나게 함으로써 도료의 질감이나 광택은 느껴지지 않는다.
스테인 페인팅은 상당히 자동기술적인 제작 양상을 띤다. 미국의 비평가들이 지적한 스테인 페인팅의 강점은 다음과 같다. 손이나 팔의 움직임이 전혀 개입되지 않음으로써 화가는 전통적으로 붓을 갖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그림의 선이 함축하는 속성으로부터 해방된다. 안료의 얼룩진 부위는 순수한 색채로 존재하고 색조의 변화를 기하는 문제는 초월된다. 스테인 페인팅은 제작과정이 그대로 기록되는 회화이며 따라서 회화의 구조와 제작과정이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몇몇 비평가들은 스테인 페인팅의 미를 ‘결함을 감추는 화장과도 같은 것’이라고 비난하였고, 로젠버그Herold Rosenberg(1906~1978)는 스테인 페인팅의 색채 흡수성을 비판하면서 여기에서 청결함과 편안함이라는 중산층의 가치가 확인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