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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

용문석굴 龍門石窟
Long-wên(중)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의 남쪽으로 14km 정도 이수伊水를 따라 내려가면 동서 양안의 석회암 산허리에 위치한 불교석굴이 나온다. 그 암벽이 마치 우뚝 솟은 궐문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이궐(伊闕)’ 또는 ‘용문(龍門)’이라 불렸다. 커다란 굴은 서산(西山)에 28개, 동산(東山)에 7개, 그 외에도 2,000여 개 정도의 작은 굴과 감실이 있다. 북위北魏 효문제가 낙양으로 천도한 태화 18년(太和, 494)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동위東魏,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 수隋, 당唐, 북송北宋 등 각 시대마다 계속하여 조성되었다. 서산(西山)에는 가장 오래된 고양동(古陽洞)을 비롯하여 선무제가 발원한 빈양동(賓陽洞)과 연화동(蓮華洞), 위자동(魏字洞, 제17동) 등 북위 말기의 석굴이 많다.
운강석굴*에 비해 탑굴이 없는 불상중심의 석굴뿐이지만, 불상은 중국식 복식을 한 상현좌*(裳懸座)가 발달했다. 빈양중동이 용문 북위굴 중에서는 최대이다. 빈양, 남북동과 약방동(藥方洞)의 건설은 북위 때 시작되어 북제, 수까지 계속되었다. 초당 전기에는 위왕태魏王泰(웨이 우앙타이)가 빈양 3동을 다시 보수했고, 재발동(齊秡洞)을 만든 후 그곳에 저수량褚遂良(주 쑤에리앙)이 쓴 〈이궐불감비伊闕佛龕碑〉를 세웠다.
초당 후기는 용문석굴의 최성기로, 경선사동(敬善寺洞), 쌍동(雙洞, 제7, 8동), 만불동(萬佛洞), 사자동(獅子洞), 혜간동(惠簡洞), 노용동(老龍洞, 제12동), 봉선사동(奉先寺洞)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당의 고종高宗이 발원한 봉선사동의 비로자나불*은 이 시기 최대의 것으로, 함형 3년(672)부터 상원 2년(675)까지 만들어졌다. 수, 당의 굴은 서산 북쪽 끝에서 시작되었는데, 측천무후 시대(690~705) 말기에 정토동(淨土洞), 극남동(極南洞) 등이 남쪽 끝까지 이르러 서산에는 더 이상 석굴을 뚫을 곳이 없게 되었으므로, 동산(東山)에 간경사동(看經寺洞), 뇌고대동(擂鼓臺洞) 3동 등 여러 개의 석굴이 만들어졌다. 당의 석굴은 대부분 성당(盛唐)까지 만들어졌는데, 그 후로는 쇠퇴하였다. 그리고 북위의 석굴에는 불상 외에 불상 조성에 관한 글을 돌에 새긴 것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들은 〈용문이십품龍門二十品〉 〈용문오십품龍門五十品〉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