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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특수성

장소 특수성 場所特殊性
site-specific(영)

장소 특수성이라는 개념을 개진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인물은 스미슨Robert Smithson(1938~1973)이다. 그는 특정한 장소의 위치인 ‘site’와 그로부터 옮겨진 물질이나 사진, 지도, 관련된 기록의 형식으로 화랑 내에서의 ‘site’의 재현인 ‘non-site’라는 개념을 창출했다. 그가 말하는 site와 non-site는 여러 가지의 대립점을 갖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즉 site가 한계가 없이 열려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면 non-site는 닫힌 한계를 말하며, site가 지점의 연속이라면, non-site는 물질의 배열을, 그리고 site가 바깥 좌표를 말한다면 non-site는 내부의 좌표를, site가 삭감을 의미한다면 non-site는 더함을, site가 비결정적 확실성을 뜻한다면 non-site는 결정적 확실성을, site가 산재된 정보를 뜻한다면 non-site는 포함된 정보를, 또한 site가 반사됨을 의미한다면 non-site는 거울을, site가 가장자리의 의미를 가진다면 non-site는 중심을, site가 물질적인 특정 장소를 지칭한다면 non-site는 추상적인 비(非)장소를 뜻하고, site가 다수의 것을 뜻한다면 non-site는 하나임을 뜻한다.
스미슨을 비롯한 하이저Michael Heizer, 홀트Nancy Holt, 터렐James Turell,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등의 작품 행위가 실제 장소에서 행해진 반면, 그들의 작품이 화랑 시스템에 의존되어 남는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구분은 대단히 중요하다. site가 물질의 근원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라면, non-site는 관객이 화랑에서 우연히 접하는 ‘재발견된 물질’인 것이다.
장소 특수성은 작품이 설치된 환경과 합치되면서 현대미술과 알레고리*간의 연계성을 갖는 것이며, 1960년대에 그저 바라다본다는 의미에서의 관객의 입장이 아니라, 작품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개입자로서의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환경(environment)’으로서의 미술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특정한 장소에 설치된 작품은 일정 기간 일시적으로 존재하는데, 그것은 작품의 우연성에 대한 척도를 제공한다. 이러한 작품들의 대부분은 해체될 우려는 희박하며 단순히 자연에 내맡겨진다.
스미슨의 작품이 침식되고 풍화되어 궁극적으로 자연에 순치되는 힘을 작품의 일부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시성, 또는 모든 현상들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또한 일시적인 까닭에 이러한 작품들이 사진(non-site)으로서만 남겨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결정적으로 사진의 알레고리적인 잠재력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때때로 선사시대의 거대한 기념비를 갈구하는데, 스톤헨지(stonehenge)와 나즈카 라인(nazca lines) 등과 같은 것이 그 원형으로 꼽힌다.
1970년 스미슨이 미국의 ‘대염호The Great Salt Lake’에 설치한 <소용돌이 방파제Spiral Jetty>와 같은 작품의 내용은 종종 신화적인 색채를 띤다. 작품이 설치된 위치(site)를 읽어내는데 몰입하는 경향을 예시하는 이러한 작품에서는 위치의 지형적 특성과 아울러 심리적인 여운까지 동원된다. 작품과 설치된 장소는 서로 변증법적인 관계 내에서 유지된다. 여기에서 site는 환경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도 고고학적인 흥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장소 특수성은 단순하게 작품이 특정한 장소에서 발견될 수 있다거나 또는 바로 작품이 장소 자체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작품이 마치 어떠한 것으로 보인다거나 작품이 실현되는 공간의 배치에 폭넓게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만약에 동일한 대상들이 다른 장소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배치되었다면, 그것들이 별개의 서로 다른 작품의 성격을 성립시키는 근거인 것이다. 그것은 작품이 계산된 장소를 점유한다기보다는 작품이 실제적으로 장소를 구성한다는 설치(installation)나 배치(display)의 전시적 규범의 확대를 가져온다. 1970년대 이후 미술가들은 단순한 장소로서 화랑 그 자체를 이용할 가능성을 발견함으로써, 익명적인 문화적 장소인 화랑을 특정한 문화적 유형을 갖는 공간으로서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