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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조 미술

주왕조 미술 周王朝美術

상商왕조가 쇠퇴기에 들어갔을 때 서쪽의 한 제후국인 주周가 강대국으로 등장하였으며, 문왕文王은 상 영토의 3분의 2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였다. 문왕의 아들 무왕武王이 안양을 함락하였고, 무왕을 계승한 성왕成王의 섭정으로 알려진 주공은 봉건제도를 확립하였다.
주왕조는 봉건제도, 전례(典禮), 조상 숭배의식 등 상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국가를 발전시켰다. 상제(上帝)를 숭배하는 것이 중심이 되던 종교생활은 ‘천(天)’의 관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또한 청동기의 명문이나 고문헌에는 후에 공자 가르침의 기본이 된 천의를 따르고 덕을 숭상함을 중심으로 한 도덕률의 기원이 나타나 있다. 주왕조는 기원전 771년 유왕幽王의 서거와 섬서성 동부의 낙양으로 천도함에 따라 종말을 고했다.
공예:서주西周의 청동기는 상 이래의 전통을 변화없이 이어받고 있으나, 청동기 표면에 명문*을 새기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명문의 내용은 정치적 업적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제기가 봉헌되었다. 기원전 10세기경의 청동기 양식은 일반적으로 과장되며 거칠게 소상되고 테두리 장식은 점점 커지며 여러가지 새로운 동물 문양이 등장하고 있다. 기원전 9세기에는 새나 짐승이 수평으로 전개된 여러 모양의 비늘무늬로 분해되어 상대(商代) 말기에서 주대(周代) 초기 청동기에 보이던 문양의 통일성이 사라진다. 기원전 7세기경에는 북방 이민족과 접촉하여 동물의 형상을 복잡한 무늬로 만든 새로운 예술적 양식이 발전되기 시작한다.
도자기는 청동기를 거의 모방하였으며, 서주시대 토기의 대부분은 거친 회도(灰陶)이며 아랫부분이 둥글고 구연부가 넓은 저장용 항아리이다. 이외에 청동기의 명문으로 미루어 보아 기원전 11세기에서 10세기로 짐작되는 유약을 바른 그릇들이 하남, 강소, 안휘성 등의 고분에서 발견되어 주목된다. 이러한 그릇은 후대 청자* 계통의 시조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