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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미술

고려시대 미술 高麗時代美術

918년에서 1392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나타난 미술. 고려는 문화적으로는 송宋을 가까이 하였고, 송이 몽골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송문화를 문화 발전의 토대로 삼아 12세기 중엽에 문화적 전성기를 누렸다. 10~11세기 초기의 미술에는 새로운 왕조의 북방적 생기가 있지만, 12세기 중반 무렵부터 13세기에 걸친 평화와 안정은 상층계급의 세련된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가장 고려적인 미술양식이 발달하였다. 고려양식의 특색은 직선의 기피와 구성 요소의 조화이지만, 이 고려양식의 성립에는 백제적 전통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고려 전성기 미술도 13세기 중반부터 비롯되는 몽골의 침입과 국력의 피폐가 작용하여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건축: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는 건국 초부터 왕궁과 대규모의 불교 사찰의 건립이 왕성하였음을 만월대萬月臺 등의 궁터와 개성 교외의 흥왕사興王寺, 불일사佛日寺의 유지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고려의 건축은 시대의 추이에 따라서 초기에는 신라의 건축을 기초로 하면서 중국 요遼의 영향을 받았고, 후기에는 원元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측된다. 또 몽골과의 항쟁기에는 남송南宋의 건축양식도 받아들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목조 건물로서 현존하는 것은 모두 13세기 이후에 건립된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그 형식상 공포*(栱包)가 기둥 위 즉 주심에 있는 주심포 양식*과 공포가 기둥 사이에 배치된 다포 양식*으로 구분된다. 주심포 양식은 삼국시대 이래의 ‘아마조亞麻組 양식’에 13세기 무렵부터 남송의 ‘천축天竺 양식’이 수용되어 새로운 변화를 이룬 것으로, 외관상 간결하고 명쾌한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주심포 양식의 예로는 안동의 <봉정사鳳停寺 극락전極樂殿>(1366 重修), 예산의 <수덕사修德寺 대웅전大雄殿>, 영주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1376) 등이 있다. 한편 다포 양식은 주심포 양식보다 뒤늦은 고려 말기에 들어와 조선시대에 성행한 건축 양식으로서 장식성이 강하다. 현존하는 예로는 <심원사心源寺 보광전普光殿>, 안변의 <석왕사釋王寺 응진전應眞殿>(1368)이 있다.
석조 건축은 석탑*과 부도*로 대표되는데, 석탑은 초기에는 신라의 양식을 이어 받았으나 부분적으로 차츰 변화하여 새로운 고려탑의 형식을 성립시키고 있다. 즉 탑신부의 비례가 좁고 높아져 전체적으로 높고 웅대해지고, 옥개석 받침의 층수가 적어져 안정감이 줄어들고, 옥개석의 네귀가 위로 더욱 들리는 등의 특색이 나타난다. 경상북도 예천군 보천사지寶泉寺址 오층석탑이나 의령 보천사지寶泉寺址 삼층석탑, 현화사玄化寺 칠층석탑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육각이나 팔각 등의 다각탑이 출현하는데, 금산사金山寺 육각 다층석탑, 영명사永明寺 팔각 오층석탑, 보현사普賢寺 팔각십삼층석탑 등이 있다. 후기의 것으로는 원의 라마 양식을 그대로 따른 경천사 십층석탑(1348)이 주목된다.
부도는 전대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을 계승하면서도 사각당형, 석종형(石鐘形), 석등형(石燈形), 불탑형(佛塔形) 등이 새로운 형식으로 나타났다. 또한 표면 장식의 표현도 전대에 비해 더욱 정교하고 화려한 면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그 밖의 형식은 대부분 신라의 형식을 계승한 것이지만, 고려 말기에 해당하는 공민왕의 능은 왕과 왕비의 봉분 두 개가 합쳐진 합장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각:국초 이래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시대의 조각은 전대에 이어 불교 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건국에서부터 12세기까지의 전기에는 고려의 새로운 기상이 표현된 거대한 석상과 신라 말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독특한 철불의 조성이 성행한다. 그러나 전대의 불상에서 나타난 이상주의적인 표현에 견주어 볼 때, 감동적인 면에서나 조형기술상에서나 퇴화된 면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거대한 석불조각으로는 <괴산 미륵리의 석불> <북한산 구기리의 마애불> <대흥사 북미륵암의 마애불>이 유명하다. 철불로는 <광주 춘궁리의 여래좌상>을 비롯해 개성 적조사지, 충남 보원사지 등의 여래좌상이 대표적이다.
한편 충남지방에는 지역적 특성이 강한 불상 양식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강원도 일대의 강릉 한송사寒松寺 〈석조보살좌상石造菩薩座像〉, 강릉 신복사지神福師址 〈석조보살〉,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精寺 〈석조보살좌상〉, 또는 충청도 일대의 충주 대원사와 단호사丹湖寺의 〈철조여래좌상〉 등은 지역적 특성이 뚜렷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전자의 석조보살좌상들은 육체의 풍부함과 살찌고 생기 넘치는 얼굴 표정이 독특하며, 후자인 충주 지방의 철불들은 12세기 중반의 제작으로 전해지는데 생경한 얼굴 모습과 도식화된 옷주름 등의 양식이 일치하고 있다.
후기에 접어들면서 특히 원의 지배하에 있었던 14세기 이후 고려 불상은 더욱 경직된 사각형의 얼굴, 두꺼운 옷주름, 형식적으로 번잡해진 세부 표현에서 그 퇴조가 여실히 나타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협시* 보살좌상과 동조불(銅造佛), 고창 선운사禪雲寺의 〈금동보살좌상〉 등에서 볼 수 있다. 이 밖에 원에서 유행한 라마교 불상의 영향을 받은 이국적인 보살상 등과 가내(家內)에 봉안되었을 금동불감과 소형 호지불(護持佛) 등이 오늘날까지 다수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불교 조각 이외에 안동 하회동에 전래되는 목제 가면(假面)과 인물과 동물을 주제로 한 상형청자, 그리고 능묘(陵墓) 조각 등을 통해서도 고려시대의 조각성을 살펴볼 수 있다.
회화:고려시대는 도화원圖畵院이 설치되고 상당수의 화가와 작품이 문집(文集)과 사서(史書)에서 확인되는 등 회화가 전대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화원들 이외에도 왕실과 귀족, 승려들이 폭넓게 회화 활동에 참여했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의 회화는 왕의 진영(眞影), 공신의 초상을 그린 인물화*와 탱화*, 변상도* 등의 불교 회화 및 산수, 영모, 궁정누각도, 계회도* 등의 일반 회화에까지 매우 다양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현존하는 작품이 희귀하고 그나마 불교 회화들이 대부분이어서 일반회화에 의한 고려시대 회화의 특색 및 변천 연구는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그러나 고려의 회화가 전대의 회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송, 원을 비롯한 중국회화와의 교섭과 영향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을 것임은 중국 회화와의 교섭과 몇몇 화적을 통해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일본에 다수 남아 있는 13세기를 전후로 제작된 고려불화의 우아하고 정교한 양식을 통해 고려 회화의 위치를 살필 수 있다. 현존하는 고려의 화적은 안동 소수서원에 있는 안향安珦의 영정과 해애海崖라는 관지가 있는 <세한삼우도細寒三友圖>(日本 妙滿寺), 전(傳) 고연휘高然暉의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공민왕恭愍王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수렵도狩獵圖>, <흑칠금니소병黑漆金泥小屛>에 그린 노영魯英의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등이 있다. 한편 대부분 일본에 건너가 있는 고려불화는 〈관경변도觀經變圖〉 〈나한상羅漢像〉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 〈아미타여래상阿彌陀如來像〉 등을 포함하여 거의 70여 점에 달하는데, 정성을 들인 정밀한 표현 속에 깊은 종교적 분위기와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밖에 고분벽화로는 경기도 개풍군開豊郡 수락암동水落岩洞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과 경남 거창군居昌郡 둔마리屯馬里 고분의 <주악천녀상奏樂天女像> 등이 있어 당시의 풍습과 의식 등을 짐작할 수 있다.
공예:고려시대의 불구*(佛具), 칠기*, 도자기 등은 관념적이고 표현 위주의 조선 것과는 다른 기교를 위주로 한 섬세하고 정치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대형의 동탑(銅塔)이나 동향로(銅香爐)에 있어서도 형태의 완벽과 문양의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신라 이래 전통공예품이 된 나전칠기*螺鈿漆器는 당唐의 평탈기법에서 유래했지만, 고려시대에 이르면 문양 면에서도 독특한 발전을 이룩하여 원으로부터 대장경함大藏經函의 주문을 받을 정도였다. 청자*는 송의 월주요*기법을 받아들이는 등 중국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되는데, 고려인의 감각과 취향에 의한 본격적인 고려청자*가 완성된 것은 11세기 중반쯤이다. 한편 12세기부터는 고려인의 독창성에 의한 상감청자*가 활발하게 제작되어 고려미술이 절정을 맞게 되었지만, 13세기 중엽 이후에는 바탕색도 거칠게 되고 상감이나 철회(鐵繪)의 전면에 크게 부각되면서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출현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