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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도

고목도 枯木圖

동양 화훼화(花卉畵)의 한 화제(畵題). 문인화*의 영역에 속하며 마른 나무를 그린 그림이다. 당대(唐代)에 그려진 송석도(松石圖)나 오대(五代)에서 북송北宋에 걸쳐 제작된 산수화* 중에 보이는 해묵은 나무가 그 시초라고 한다. 북송시대에 그려졌다는 소식蘇軾(쑤 스, 1036~1101)의 <고목도枯木圖>는 기록으로만 전하고 확실한 유품은 없다. 문인의 묵희(墨戱)로서 묵죽*(墨竹)과 더불어 특히 원대(元代)에 유행하였다. 몽골족에 나라를 빼앗긴 한족(漢族) 문인들의 저항정신과 지조를 상징하는 화목(畵目)으로 널리 그려졌다.
이곽파*李郭派의 화풍으로 많이 그려졌고 이간李衎(리 칸, 약 1260~1310), 오진吳鎭(우 즈언), 조지백曺知白(차오 즈바이) 등이 유명하였다. 대표작으로는 금金의 왕정균王庭筠(우앙 띵쥔, 12세기)이 그린 <유죽고차도幽竹枯槎圖>, 자정子庭(쯔 띵)이 그린 <고목도> 등이 있다. 특히 왕정균이 그린 <유죽고차도>가 유명한데, 그는 고목과 죽석(竹石) 등을 잘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고목과 대나무를 섞어 그려 대나무의 절개와 고목의 창연함을 표현한 작품으로, 수묵의 농담처리가 뛰어난 문기(文氣)가 높은 작품이다.
묵죽과 괴석(怪石)을 조화시킨 ‘고목죽석도枯木竹石圖’도 고목도의 한목 유형에 속한다. 북송시대의 소식이 그렸다는 <고목죽석도>에 대해 미불米芾(미 후, 1051~1107)은 그의 저서 《화사*畵史》에서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자첨(子瞻; 소식)이 그린 고목은 가지와 줄기가 마치 규룡처럼 꾸불꾸불하고 돌의 준(皴)은 굳세고 또한 매우 기괴하여 마치 그의 가슴 속에 맺혀 있는 울적함과 같다.” 이와같은 평가는 문인들의 묵희로서의 사의*(寫意)를 반영하는 것이다. 기타 작품으로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의 <과목죽석도窠木竹石圖>(대북 고궁박물원)가 유명하다. 조맹부는 묵죽 또는 고목죽석도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묵죽, 고목, 바위 그림에 서예의 예서(隸書), 전서(篆書), 비백법(飛白法)의 기법을 적용할 것을 제기하는 등 서화일치론*(書畵一致論)을 주장하였다.

고목죽석도

고목죽석도 枯木竹石圖

→ ‘고목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