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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주의

구축주의 構築主義
Constructivism(영)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에서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의 여러 분야에 걸쳐 일어난 전위적인 추상미술* 운동. 현대 미술상의 반(反)사실주의 운동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예술상의 한 주의로서, 자연의 묘사 또는 인상적인 표현을 배제하고 주로 기계적 또는 기하학적 형태의 합리적, 합목적 구성에 따라 새로운 형식의 미를 창조, 표현하려고 했다.
구축주의는 브라크George Braque(1882~1963)와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시도했던 입체주의*의 실험적 작품에서 발전된 것이다. 1913년 타틀린Vladimir Tatlin(1885~1953)은 피카소의 파리 스튜디오에서 피카소가 제작한 금속판과 철사로 구성된 최초의 작품 <기타Guitar>(1912)를 보고, 러시아로 돌아간 후 조각사상 최초로 완전한 추상작품의 하나로 인정되는 구축주의 부조*들을 제작하였다.
전통적으로 조각을 제작하는 기법은 진흙이나 석고 등을 이용하여 양감을 덧붙이거나, 돌이나 나무에서처럼 깎아내는 데에 초점을 두어 왔다. 그러나 구축주의자들은 한가지 또는 여러 종류의 금속, 유리, 판지, 나무, 플라스틱 등의 재료를 함께 사용하고, 양감보다는 공간이 중시되는 조각을 제작하였다. 또한 타틀린은 ‘재료에 충실한(truth to materials)’ 구축주의의 원리를 성립시켰는데, 이는 각 재료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 속성에 의거하여 조각형태가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한편 타틀린이 1919년에 모형으로 제작한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물>을 비롯한 많은 구축주의 구조물들은 건축이나 무대 미술, 공업디자인 등의 원형이 되었다.
1917년에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 이후 구축주의 미술가들은 추진력을 얻었으나 보다 개인적인 미술을 추구하려는 작가들과 대중을 위한 공익적 설계를 내놓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이견으로 두 파로 갈라졌다.
즉 타틀린이나 로드첸코Aleksandr Rodchenko(1891~1956)가 구축주의의 정치성을 강조한 것에 반해, 가보Naum Gabo(1890~1977) 및 펩스너Antoine Pevsner(1886~1962)는 순수 조형을 의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1921년 가보와 펩스너는 모스크바를 떠나 특히 기술적인 분야에 중점을 둔 독일의 바우하우스*로 옮겨가 유럽 전역에서는 물론, 미국에서까지 일어난 구축주의의 국제적 확산에 기여했으며, 그 후에 이들은 파리의 추상창조그룹*과 융합하였다. 한편, 타틀린 일파는 국내에서 일시 왕성한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구 소련의 미술 지도 방침의 변화에 따라 1930년 이후 그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였다.
구축주의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미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기법면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주로 용접을 이용해 여러 다른 재료를 결합하는 이 기법은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조각과 제작방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또한 구축주의는 미술을 테크놀로지 및 과학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사고 방식에 주요한 공헌을 하였다.
이러한 구축주의의 합리적 접근방식은 키네틱 아트*, 미니멀 아트*, 미술과 테크놀로지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하드엣지* 페인팅과 기하학적 추상*에서까지 그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구축주의는 회화, 조각뿐만 아니라 건축, 무대미술, 상업미술의 영역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네덜란드의 데 스틸*이나 신조형주의*와 함께 건축 및 공업 의장(意匠)을 혁신시킨 원동력이 되었다.